제 692화
692. 방송 출연 2
백석주 CP가 나타나자 대기실 복도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그는 <전지적 관찰 시점>의 최초 기획자로 이 프로그램 덕분에 차기 국장 후보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자기 얼굴과도 같은 이 프로그램의 폐지가 거론되고 있다 보니 평소와는 달리 잔뜩 날이 선 얼굴이다.
하지만 노련한 백석주 CP는 화를 내며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현장 정리부터 시작했다.
“이 PD. 일단 카메라부터 꺼.”
백석주 CP는 먼저 MBS <다큐 7일> 팀의 이선애 PD에게 지시를 내린다.
“CP님. 이런 리얼한 일상을 담는 게 저희 프로의 목적인데 카메라를 끄라뇨.”
“야. 이 PD! 지금 그거 방송 타면 너뿐 아니라 너희 CP랑 국장님들까지도 줄줄이 사장실로 소환될 수도 있어. 이 프로 찍고 남극 가서 다큐 찍고 싶어?”
남극이라는 말에 이선애 PD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카메라를 내린다.
백석주 CP는 그 이후 윤주연부터 달래기 시작한다.
“주연 씨. 신인 상대로 이러면 갑질이니 뭐니 해서 시끄러워지잖아. 자기가 그걸 모를 사람도 아니고 아마추어처럼 왜 이래?”
윤주연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얘가 예의 바르게 굴었으면 저도 안 그러죠. 어떻게 된 애가 인기가 좀 생기자마자 이렇게 버르장머리 없게 굴어요?”
윤주연의 말에도 백석주 CP는 듣는 둥 마는 둥 한 귀로 듣고 흘린다.
경력도 인지도도 모두가 윤주연이 앞서지만 이번 주에 한해서만큼은 덕배가 가장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즉 백석주 CP는 윤주연의 눈치만큼이나 덕배와 내 쪽도 신경을 쓰는 것이다.
연예계에서는 신인이라도 ‘인기’가 갑이니까.
“에이~ 뭔가 오해가 있었겠지. 그나저나 내가 왔으니까 이 정도만 해. 곧 촬영 들어가야 하잖아.”
방송국의 CP가 다시 한번 중재하자 윤주연이 못 이기는 척 발을 뺀다.
하지만 윤주연은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해버렸다.
“뭐 CP님 체면도 있으니까 이쯤 할게요. 대신 저쪽에서 사과만 하면요.”
백석주 CP가 날 쳐다보며 어깨를 으쓱인다.
웬만하면 미친개한테 물린 셈 치고 적당히 넘어가자는 눈치다.
“정 실장도 이쯤 하지?”
우리로서는 갑자기 퍽치기당한 것과 같은 셈인데 그럴 수야 있나.
그리고 이제 막 연예계에 첫발을 디딘 덕배에게 잘못하지도 않은 걸로 사과하는 꼴을 보여줄 순 없다.
미친개한테는 미친개처럼 덤벼들어야지 다음에 또 이러지 않지.
“죄송합니다. CP님.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백석주 CP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꼭······ 이래야겠어?”
“밑도 끝도 없이 인사 안 했다고 애를 쥐 잡듯이 잡아 놓고선 저희한테 사과하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대로 저희가 사과를 해버리면 저희 잘못을 인정하는 건데 전 그럴 순 없습니다.”
난 이번 주 프로그램 시청률의 ‘인기’를 올려줄 사람이 누군지를 놓고 백석주 CP에게 묻고 있는 셈이다.
<화란전>의 ‘김법민’ 역할로 나와 이번 주 시청률 30.5%를 찍는 데 일조한 덕배냐 아니면 한때 당당한 주연급이었지만 갈수록 존재감을 잃어가는 윤주연이냐고.
그 순간 윤주연이 눈치 없이 끼어든다.
“CP님도 보셨죠? 매니저가 저렇게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니까 배우들도 똑같이 굴잖아요!”
백석주 CP가 미간을 찌푸리는 데도 윤주연이 다시 한번 외친다.
“CP님! 뭐 하세요?”
그때였다.
백석주 CP가 결단을 내린 듯 고개를 돌린다.
우리 쪽이 아닌 윤주연 쪽을 향해서.
“주연 씨. 적당히 하자.”
“그래! 너희들 적당히······ 잠깐 지 지금 저에게 하신 말씀이세요?”
“그래. 내가 적당히 넘어가자고 했으면 넘어가야지. 왜 사람이 적당히를 몰라? 혹시 갑질 여배우로 이름나고 싶어?”
“가······ 갑질 여배우라뇨! 저게 인사를 안 해서 그렇다니까요?”
“장난해? 본인 분량 빠졌다고 신인을 후려잡는 게 한두 번이야? 주연 씨가 짜증 낼 때마다 오냐오냐하고 봐줬는데 그것도 한도가 있어. 도대체 내가 언제까지 참아줘야 해?”
“그······.”
백석주 CP가 지난 과거의 일들을 소환하며 윤주연의 입을 막았다.
“그래도 선배라서 우리 MBS에 오랫동안 공헌도가 있어서 봐줬더니 더는 안 되겠다. 앞으로는 이딴 사고 치면 가만 안 둘 테니까 당장 촬영이나 들어가. 덕배한테는 미안하다고 하고.”
윤주연이 부르르 떨며 백석주 CP를 노려본다.
“진짜 이렇게 나오실 거예요? CP님.”
“그래. 왜?”
그 순간 윤주연이 마지막 초강수를 둔다.
“보니까 덕배를 참~ 예뻐하시는 거 같은데 그럼 저 없이 덕배 데리고 촬영하세요. 그럼 되겠네.”
박은찬 PD가 당황해서 말리려고 한다.
“주 주연 씨. 그러지 말고······.”
그런데 그때였다.
백석주 CP가 너무도 흔쾌히 답한다.
“아~ 그래? 그럼 때려치워!”
윤주연의 얼굴에 당황이 어린다.
“뭐 뭐라고요?”
“하기 싫으면 때려치우라고!”
백석주 CP는 고개를 홱 돌리고 날 쳐다본다.
“정 실장. 덕배 오늘 예고편이랑 다음 주 출연 분량을 좀 늘릴까 하는데 가능해?”
윤주연은 오늘 예고편과 다음 주는 본방송 출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걸 싹 날리고 덕배로 대체하겠다면야 나야 오케이지.
그리고 난 출연 분량이 늘어날 기회를 놓칠 생각 따윈 없다.
그리고 이유 없이 내 배우를 건든 인간을 용서해줄 아량 따위도.
‘잘 가라 윤주연~.’
난 백석주 CP가 고민할 틈도 없이 즉답했다.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래? 그럼 콜!”
윤주연은 순식간에 분량이 날아가 버리자 잔뜩 골이 났다.
“지······ 진짜 이러실 거예요? CP님?”
“왜? 없이 덕배랑 촬영하라며? 하라는 대로 했는데 왜 시비야?”
예전 같으면 뭘 해도 윤주연을 중심으로 돌아갔을 상황이 이젠 덕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 탓에 윤주연은 ‘인기’가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겸손한 배우들도 쉽게 넘어가기 힘든 문제인데 윤주연처럼 오만한 사람에겐 충격 그 자체로 다가올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윤주연은 감전이라도 된 듯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이를 꽉 깨문 그녀는 날 홱 하고 노려보고서 도끼눈을 뜬다.
그녀는 마치 두고 보자는 듯 노려보다 말도 없이 대기실 복도 한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주연으로서 지내왔던 시절 때문에 그녀의 자존심으로는 사과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양성택 실장은 곧장 따라가려다 발걸음을 멈추고 백석주 CP에게 항의를 한다.
“CP님. 이번 일······ 저희 대표님에게 전달하겠습니다.”
백석주 CP가 콧방귀를 뀐다.
“그러시든가~ 아 그리고 이왕 전달하는 김에 이 이야기도 전해. 김 대표한테 윤주연 갑질 영상이 고대로 찍혔다고 말해줘. 수틀리면 풀어 버린다고.”
양성택 실장이 뒤늦게 아차 하고 입을 닫아 버리고 윤주연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박은찬 PD가 한숨을 푹 내쉰다.
“CP님. 그럼 다음 주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윤주연이 통째로 빠지면 분량이 안 맞을 거 같은데요······.”
“어떻게 하긴 윤주연 분량 사전 녹화 뜬 거 있으면 다 날리고 새 사람 찾아야지. XX. 우리가 언제까지 그 여자 비위를 맞춰줘야 해?”
“알겠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뭐?”
“에이스 엔터가 아무리 절반으로 쪼개졌다고 해도 그래도 에이스 엔터입니다. 가만히 있겠습니까?”
백석주 CP가 가당찮은 듯 피식 웃는다.
“박 PD는 오늘 기사 안 봤어?”
“무슨 기사요?”
“아무리 일정이 바빠도 세상 돌아가는 것 좀 봐! 내가 진짜 이런 것까지 다 챙겨줘야 해?”
백석주 CP가 갤럭티카 폴드 폰을 펼치더니 사회면 기사를 보여준다.
[이대붕 의원 체포 동의안 가결.]
[이대붕 의원 전격 구속.]
“지금 막 에이스 엔터 뒷배가 날아갔어. 그뿐인 줄 알아? 자 여기. 봐봐.”
백석주 CP가 스크롤을 내린다.
[에이스 엔터 세금 추징금 50억 예상.]
“탈세가 임성학 대표 때 벌어진 거라서 김동수한테 책임은 없겠지만 추징금 내고 나면 활동할 여력이 있을 거 같아? 아마 올해 말에는 에이스 엔터가 사라질 수도 있을걸?”
어쩐지 백석주 CP가 좀 세게 나온다더니 이유가 있었다.
그 순간 박은찬 PD 역시도 표정을 바꾸기 시작한다.
“그랬었군요.”
“그래. 그러니까 박 PD도 줄 잘 서. 요즘은 굴렁쇠가 대세 아니냐?”
백석주 CP가 내게 들으라는 듯 말을 한 뒤 날 쓰윽 쳐다본다.
“그치? 정 실장?”
어색한 상황이었지만 백석주 CP의 말에 웃으며 대꾸했다.
이럴 때 적당히 호응해 주는 것이야말로 사회생활의 기본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굴렁쇠 엔터가 대세라는 것에 대해서는 나 또한 동감이었다.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하하. 그러면 빨리 촬영하러 가야지?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윤주연이 일으킨 사태로 인해 촬영 시간이 늦어져 버렸다.
박은찬 PD 역시도 시계를 본 뒤 촬영을 서두른다.
“정 실장. 그러면 오늘 예고 편이랑 다음 주 분량 좀 부탁하자.”
“예. PD님!”
“오케이. 그러면 남은 메이크업 마무리 받고 와. 거울 좀 보고. 지금 얼굴 달걀귀신처럼 붕~ 떠 있어.”
어쩐지 윤주연이 내 얼굴을 보고 조금 더 화를 내는 것 같더라니.
난 씨익 하고 한번 웃어준 뒤 대기실로 향했다.
그러고선 대기실로 돌아가며 속으로 생각했다.
‘윤주연 씨. 촬영장에서 봅시다.’
난 덕배를 향해 뜬금없이 화를 쏟아냈던 윤주연을 이 정도로 봐줄 생각은 없었다.
분명 윤주연은 질투심에 사로잡혀 다시금 덕배를 공격할 게 틀림없으니까 말이다.
* * *
양소리 대리의 메이크업을 받고 대기실에서 나왔다.
빠르게 세트장으로 이동하는 도중 곁에 있는 덕배를 도닥였다.
“덕배야 앞으로도 이처럼 별것 아닌 걸로 트집 잡는 선배들과 자주 충돌할 거야. 인기가 전부인 판에서는 밑에서 신인이 치고 올라오면 신경이 곤두서거든.”
덕배가 어깨를 으쓱인다.
밑바닥의 삶을 살며 구르고 구른 덕분에 윤주연의 말 정도는 아프지도 않다면서 말이다.
“형. 걱정 안 해도 돼요. 저 아시잖아요.”
“진짜지?”
“저 정도 꼬투리 잡기는 애들 장난이죠 뭐. 제가 살던 곳에서는 배식 조금 일찍 받았다고 어른들끼리 칼부림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 일에 비하면야······.”
출연 분량을 빼앗기 위해 각종 음모가 오가는 곳이 연예계였다.
하지만 덕배에게 그런 연예계라도 자신이 살던 세상보다는 꽃밭이라고 한다.
‘하여간 멘탈 강하다니까?’
매니저에겐 담당 배우의 멘탈이 강한 것만큼 축복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행이라고 말하려는 순간 생각지 못한 덕배의 말이 뒤를 잇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형이 있잖아요.”
우리 덕배.
사회생활 잘하네.
“덕배야. 너한테는 연예계가 딱이다 딱!”
덕배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눈웃음을 짓는다.
“그건 형도 마찬가지인 거 같은데요? PD님이나 CP님이나 저기 <다큐 7일> 팀도 다 형만 찾잖아요. 분량 챙기는 건 윤주연보다 형이 더 잘하는 거 같은데요 뭘.”
그러고 보니 졸지에 내 촬영 분량도 늘어났군.
“하하하. 그러게?”
그렇게 사이좋게 웃는 사이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박은찬 PD가 신이 나서 지시를 내리기 시작한다.
“자자. 덕배 씨는 가운데 앉고 정 실장은 저기 1번 카메라 옆의 의자에 앉아.”
“예.”
이후 덕배와 함께 다음 주에 출연하는 선혜주가 앉은 순간 박은찬 PD가 외친다.
“자~ 갑작스러운 촬영에도 바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레디~~ 액션!!”
* * *
덕배는 첫 스튜디오 촬영에서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촬영을 이어갔다.
카메라나 모든 환경이 낯설고 부담되는 게 정상이지만 멘탈이 강한 덕배다 보니 별다른 문제 없이 촬영을 이어갔다.
이어서 나에 관한 촬영이 시작된다.
카메라가 비추고 조명이 뜨겁게 내리꽂힌다.
난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조명을 이겨내며 MC들의 질문이 집중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 실장님은 진짜 방송이 처음 아닌 거 같은데?
-왜 매니저를 해? 차라리 연예인 할 생각 없어?
-에이. 돈을 잘 번다잖아. 정 실장 연봉이 장난 아니라는 소문이 있던데 맞지?
-혹시 덕배 씨 관리하시면서 제일 힘들었던 게 뭐예요?
비호감을 살 수 있는 질문은 적당히 흘리며 적절한 질문에만 답했다.
‘인터뷰를 내가 한두 번 한 줄 알아?’
어떻게든 자극적인 내용을 뽑아내야 하는 예능 PD들의 술수에 놀아날 정도로 난 어수룩하지 않다.
회귀 전 내 인터뷰 경험이 얼마인데.
물론 그 와중에도 덕배를 띄우는 걸 잊지 않았다.
“오케이! 거기까지. 근데 정 실장. 진짜 방송 처음 맞아?”
“예. 처음인데요?”
난 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예. 이번 생에는요.’
박은찬 PD가 믿을 수 없다며 혀를 내두른다.
달칵.
조명이 꺼지자 쏟아지던 열기가 사라진다.
그때 박은찬 PD는 스태프들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린 뒤 날 부른다.
“정 실장. 잠깐만 와 봐.”
박은찬 PD는 스태프 뒤에 떨어진 리버스 엔터의 이수찬도 불렀다.
배우들과 인사할 겨를도 없이 이수찬과 함께 갔다.
“오늘 촬영 나이스인데? 덕배나 정 실장이 둘 다 신인 같지 않게 촬영해서 생각보다 빨리 찍었어!”
“아닙니다 PD님.”
“아 그리고······.”
순간 주변을 물린 박은찬 PD가 말한다.
“강은기 대표가 채미현 씨랑 콤비로 나온다고 했지?”
“예.”
“혹시 내가 신경 써줬으면 하는 거 있어?”
난 강은기에 대해서 최대한 긍정적인 부분을 부각해서 말했다.
박은찬 PD가 살짝 고민한다.
“크흠······ 확실히 세긴 세네.”
채미현과 더불어 강은기의 등장은 시청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요소지만 그만큼의 리스크가 있다는 걸 알고서 저울질을 시작한다.
하지만 문제가 심각해질 경우 자르면 그만인 터라 사실 방송국 입장에서는 생각만큼 리스크가 크진 않았다.
다만 고민이 길어지면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이럴 땐 결단을 빠르게 도와줄 수가 있지.
난 슬쩍 이수찬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 순간 이수찬이 방송국에 오는 동안 내게 들은 조언대로 한 가지 제안을 하기 시작한다.
“PD님. 프로그램 제작비가 얼마나 드십니까?”
박은찬 PD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건 왜?”
“전액 대겠습니다. 홍보비도 빵빵하게 쏴드리고요.”
업계 5위의 부대표인 이수찬이 화끈하게 FLEX를 해버렸다.
그 순간 박은찬 PD의 얼굴이 환하게 변하며 이수찬의 손을 붙잡는다.
“언제부터 촬영할까? 말만 해!”
박은찬 PD 역시 사회생활을 좀 아는 PD였다.
* * *
강은기의 출연에 관한 건 신경 써야 할 게 많았기에 박은찬 PD뿐 아니라 백석주 CP와도 협상해야만 했다.
하지만 백석주 CP 역시도 시청률에 목말라 있었기에 만에 하나의 리스크를 감내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강은기의 출연은 다음 주 예고편부터로 정해졌다.
이후 난 MBS를 돌아다니며 덕배의 PR까지 한 번 더 하고서야 방송국을 나왔다.
덕배를 암사동 집에 내려다 준 뒤 늦게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자 또다시 까톡이 들어온다.
<전지적 관찰 시점>이 방송을 시작한 이후 박은찬 PD가 5분마다 보내주는 까톡이다.
[박은찬 PD : <전지적 관찰 시점> 11시 40분 시청률 4.1%. 미치겠다. 계속 떨어지네······.]
현재 시각 11시 41분.
덕배와 내가 나오는 예고편은 11시 50분인데 그 전에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다고 발을 동동 구른다.
[정윤호 실장 : 잘될 겁니다 PD님.]
[박은찬 PD : 후우~ 그랬으면 좋겠다. 하여간 11시 50분부터는 1분 단위로 시청률 보내줄게.]
오늘 하루 스케줄이 빡빡해서 쉬려 했지만 방송은 다 보고 자야겠다.
그런데 그때 1층에 불이 켜진 게 보인다.
정인지 아주머니에게 인사도 할 겸 문을 열었다.
끼이익~
유진이가 파자마를 입고 거실에 앉아서 <전지적 관찰 시점>을 보면서 콩나물 대가리를 따고 있다.
맞은편에 정인지 아주머니도 똑같은 복장으로 다량의 콩나물 대가리를 따고 있는데 내일 노인 복지회관에 가서 콩나물국밥을 해줄 모양이다.
노인들이 콩나물 대가리를 소화를 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저렇게 일일이 따줘야 했다.
그 순간 인사도 하기 전 머릿속에 뜨끈한 콩나물국밥이 떠올랐다.
보글보글 끓는 콩나물국에 계란이 하나 퐁당 빠져 있는 그림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절로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어······ 오빠······ 배고파요?”
유진이가 인사를 하려다가 입맛을 다시는 날 보고선 묻는다.
“혹시······ 있어?”
“예. 아까 만든 거 있어요. 잠깐만요?”
“아냐. 내가 떠먹을게.”
유진이가 콩나물 대가리를 좌우로 흔들어 대며 말한다.
“노옵~ 오늘 스케줄 많았다면서요? 그대로 있어요.”
가끔 이럴 때 보면 내가 유진이 매니저가 아니라 유진이가 내 매니저 같다.
유진이가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간다.
정인지 아주머니에게도 인사한 뒤 손을 씻고 거실로 돌아왔다.
“오빠. 여기요.”
유진이가 콩나물국밥을 거실 탁자에 놓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콩나물국밥에 잘 된 반숙 수란이 동동 떠 있다.
“생큐.”
“빨리 먹어요.”
유진이의 재촉에 국물 한 숟가락을 떠 마시자 온몸이 부르르 떨린다.
“크~ 진짜 시원하다.”
나도 모르게 콩나물국밥에 정신을 잃고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유진이가 TV를 보고 외친다.
“이야~ 우리 오빠. 카메라빨 진짜 잘 받는데요?”
고개를 들어 TV 화면을 쳐다봤다.
그런데 화면 속에선 평소와는 전혀 다른 내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이래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