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0화
690. 계획
“전 은기가 출소하면 방송에 내보내서 스타로 만들 생각입니다. 그러면 당분간 은기의 안전이 보장될 겁니다.”
난 강은기를 스타 매니저 겸 20대의 나이로 엔터테인먼트 업계 5위인 리버스 엔터테인먼트를 키워 낸 청년 사업가로 포장해 유명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최은태 회장은 유명해지면 안전해진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스타가 되면 안전해진다는 건 또 무슨 소리인가?”
난 최은태 회장을 위해 풀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스타가 되면 기자와 사람들이 따라다니면서 SNS와 기사로 일거수일투족을 중계할 겁니다. 그러면 오히려 해를 입히기 힘들어지죠. 자칫 해를 끼쳤다가는 9시 뉴스에 실릴 테니까요.”
은기를 노리는 적들의 중심에는 정치인인 박상곤 의원이 있다.
그리고 정치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바로 여론이다.
그런데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사람의 목숨을 노린다?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스타가 되는 순간 따라다니는 기자와 스태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몇 명인데 말이다.
즉 지금 난 강은기의 주변으로 인(人)의 장막을 치려는 셈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하면 막 나가는 최만식 대표도 강은기를 어찌하지 못하게 된다.
자칫 저축은행 대표가 손을 썼다는 이야기가 퍼진다면 최만식 대표 역시도 모든 것을 잃어버릴 테니까.
“그런 건 생각지 못했군. 오히려 세상에 더 알려서 안전하게 만든다라. 허허허······.”
최은태 회장은 생각지도 못했다며 웃음을 짓는다.
“근데 은기가 스타가 될 수 있겠는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있잖습니까?”
사실 난 회귀 전 이와 같은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정치인 접대 썰에 시달리던 탑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김동수를 한국 최고의 ‘스윗 가이’로 만든 게 바로 나였다.
MBS의 장수 프로그램인 <전지적 관찰 시점>을 이용해서 이미지 전환을 했었다.
뭐 그때는 죽 쒀서 X를 줬지만 이번은 아니다.
내 친구인 강은기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스타로 만드는 거니까.
거기다가 조건도 그때보다 좋다.
강은기의 외모는 꽤 잘생긴 편인데다가 카리스마가 있는 눈빛에 단단한 근육질 몸매의 소유자이다.
게다가 키도 185cm나 되는 터라 코디와 메이크업의 도움을 받는다면 사람들의 시선을 잡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난 MBS에서 방송하는 <전지적 관찰 시점>에 출연시켜서 대중의 관심을 끌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 이야기에 푹 빠져있던 최은태 회장이 일순간 날카롭게 핵심을 찔러 온다.
“자네라면 충분히 은기를 스타로 만들 수 있겠지. 그 점은 믿네. 그런데 말일세······ 은기가 감옥에 다녀온 건 어떻게 포장할 생각인가?”
과연 한 분야의 탑을 찍은 사람다운 통찰력이다.
하지만 그 또한 염두에 둔 상황이다.
“은기의 과거를 숨길 생각은 없습니다.”
“응? 숨기지 않는다니? 대중을 어떻게 믿고?”
“숨기지 않는다는 건 보기 싫어하는 부분까지 보여주려는 게 아닙니다. 전 개과천선한 은기를 보여준 뒤 대중에게 용서를 구할 생각입니다.”
현재 은기는 50명 정도의 고아들을 돌보고 있다.
과거를 반성하고 아이들을 책임지는 모습만 보인다면 선한 대중들이 용서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렇다면······ 학창 시절 문제는 어떻게 할 건가? 학폭 피해자라도 튀어나오면 여론 악화는 순식간일 텐데?”
“괜찮습니다. 은기는 학폭을 저지른 적 없습니다. 조폭 생활을 할 때도 민간인은 건드린 적이 없고요. 그래서 1년 형만 받은 거잖습니까?”
“아니 잠깐. 조폭 때야 그렇다 치더라도 은기가 학폭을 저지른 적 없다니? 그게 말이 되나?”
“싸움 자체를 안 한 건 아니지만 돈을 뺏거나 갈취하는 건 안 했습니다. 대부분은 상대가 시비를 걸어와서 싸운 거고요. 그리고 자기보다 약한 녀석을 괴롭힌 적도 없습니다.”
약자를 괴롭힌 적은 없다는 말에 최은태 회장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어린다.
“알겠네. 그러면 우리 은기를 잘 부탁하네.”
“예.”
그런데 최은태 회장은 자신이 도울 게 없는 것이 아쉽다는 표정이다.
그 순간 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걱정이 된다는 것 잘 압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은기에게 경호원을 붙이시죠.”
최은태 회장이 깜짝 놀라 되묻는다.
“경호원을 붙이다니? 내 사람들을 은기에게 보내도 된단 소린가?”
“예. 은기가 3월 1일에 나오는 즉시 회장님을 조용히 뵈러 오기로 했습니다. 경호원 문제도 미리 이야기를 해뒀습니다. 단 드러나지 않게 보호해야 할 겁니다.”
내 말을 들은 최은태 회장은 바르르 떨기 시작한다.
아들을 만난다는 말이 꽤 충격이었나보다.
“그 그게 정말인가? 정 실장?”
“예. 회장님.”
“허. 허. 허. 드디어······.”
최은태 회장이 말을 잇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얼굴에 가득한 주름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나이는 76살.
그에게 일 분 일 초가 주는 시간의 의미가 나와는 달랐다.
자신에게 여명(餘命)이 얼마나 남았을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들을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는 한동안 몸을 떨며 말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난 그의 여명(餘命)을 알고 있다.
최은태 회장의 여명은 대략 2년 정도.
회귀 전 탑 엔터테인먼트 시절 당시 그의 장례식장에 간 기록이 지금도 에브리데이에 남아 있다.
난 강은기가 만나러 온다는 좋은 소식을 들었으니 혹시라도 기운을 차려서 일정이 바뀌지 않을까 기대하고 슬쩍 폰을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3년 3월 1일]
-PM 03:00 최은태 회장 부고. 칠성 병원 장례식장 VIP 특실.
아쉽게도 일정에 변화는 없다.
병으로 죽는 건 미리 말해서 막을 수 있었지만 노화로 인한 죽음은 나로서도 어찌할 수가 없나 보다.
어떻게 이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알려줄 생각이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고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때 최은태 회장이 긴 한숨을 내쉬며 눈을 뜬다.
다시금 뜬 눈에는 생기가 맴돌고 있었다.
“내 아들을 위해서라도 박상곤의원을 반드시 실각시켜야겠군.”
“예. 회장님.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몸 관리 잘하셔야 합니다. 은기랑 화해하고 손주들 보고 사셔야지요.”
“허허. 당연하지. 천년만년 살아야지. 우리 손주들도 태어나고 그 손주들이 아이를 가질 때까지!”
원대한 포부를 그리는 그의 얼굴에는 생기가 머물기 시작한다.
“그러면 전 이제 가보겠습니다.”
“아. 알겠네. 그리고······ 정 실장.”
“예.”
“정말······ 고맙네······.”
단지 화해할 수 있도록 만날 기회를 줬을 뿐인데도 최은태 회장은 원이 없다는 듯 고마움을 표한다.
“감사는 은기가 아버지라고 말할 때 그때 받겠습니다.”
“왠지 자네라면 꼭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줄 것 같구만. 허허.”
난 머쓱하게 웃은 뒤 고택을 나왔다.
강은기를 스타로 만들기 위해서는 당장이라도 <전지적 관찰 시점>의 박은찬 PD와 출연 협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단 그전에 할 일이 있었다.
* * *
리버스 엔터의 회의실.
강은기가 나오자마자 화제의 인물이 될 수 있도록 내 계획에 찬성한 이수찬과 함께 신중히 <전지적 관찰 시점>에 함께 출연할 배우와 가수를 고르기 시작했다.
함께 출연하는 연예인이 유명할수록 매니저가 될 강은기의 이름도 유명해질 테니까.
현재 리버스 엔터는 에이스 엔터의 절반을 흡수한 터라 S급 연예인들이 많아서 꽤 많은 후보가 있었다.
그런데 그 중 딱 맞은 사람이 있었다.
채미현.
올해 35살의 그녀는 20살부터 로코의 여왕이라고 불렸는데 세련된 외모와는 달리 털털한 성격 덕에 스태프와 매니저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더군다나 현재 시청률 18%인 인기 월 화 드라마 MBS <무한 취업 시대>에서 주연을 맡은 인기인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예능에 나온 적이 없었다.
이수찬은 채미현을 설득하기 어려우니 다른 배우를 고르자고 했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화젯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난 그녀가 왜 예능 프로에 나오지 않는지 알고 있었고.
그때 채미현이 업무 때문에 회사에 왔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이수찬은 곧장 채미현을 회의실로 와주십사 요청했고 채미현은 유정연 매니저와 함께 회의실에 도착했다.
간단한 근황 이야기 후 난 그녀에게 예능 출연을 제안했다.
비록 내가 굴렁쇠 엔터이긴 했지만 이수찬이 부대표로서 내 말에 힘을 실어준 터라 프로그램 제안을 말하는 게 어렵진 않았다.
“전지적 관찰 시점 출연 때문에 뵙자고 했습니다.”
순간 채미현은 생글생글 웃으면서도 단번에 딱 잘라 선을 그었다.
“나 예능 안 하는 거 알잖아요. 이 이야기 못 들은 걸로 할게요. 그럼 수고해요?”
그녀는 내 예상대로 출연을 거부한다.
이후 일어서며 이수찬을 쳐다본다.
“부대표님. 나 촬영이 있어서 그러는데 먼저 일어나도 되죠?”
그 순간 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언제까지 숨기실 생각이십니까?”
채미현이 내 쪽을 돌아본다.
“무슨 말이죠?”
“외할머니 동생. 제주도.”
그때였다.
이제껏 태연하던 그녀의 얼굴이 흔들리더니 몇 해 전 <악녀의 손길>이라는 작품에서 파격 변신으로 연기했던 마녀처럼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정 실장님! 지금 나 협박하러 온 거예요?”
실은 그녀에게는 18살 차이가 나는 지적 장애 늦둥이 동생이 한 명 있다.
미현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병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외할머니가 올해 17살인 동생을 도맡아 제주도에서 키우고 있다.
주변에 채미현의 가족이라는 것도 완전히 숨긴 채로 말이다.
그러나 채미현은 그런 동생을 만나러 가기 위해 주말마다 몰래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고 내려가서 동생과 놀아준다.
하지만 앞으로 2개월 뒤.
채미현의 동생이 기대하던 어린이날.
안개가 끼어서 서울에서 비행기가 출발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채미현은 외할머니에게 내일 내려가겠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 전화를 받는 사이 동생이 누나를 마중 나간다며 집을 나선다.
그러다 교통사고를 당해 운명하게 되고.
그런데 그 비극적인 일정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1년 5월 5일]
-PM 10:10 <연예계 방방곡곡> 탑스타 채미현. 그동안 숨기고 있던 지적 장애 남동생 사망.
당시 그녀는 세상에 동생이 있다는 걸 알렸다면 동생이 죽지 않았을 거라고 한없이 자책했다.
아침 방송 초대 손님으로 나온 그녀가 피눈물을 흘리며 한탄하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할머니는 이제 연세가 많으셔서 동생의 힘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동생분은 홀로 집 밖으로 나올 테고 사고의 위험에 놓일 겁니다. 차라리 세상에 알리고 도움을 받으시는 게 좋습니다. 거기다 할머니랑 동생분이 지금 사시는 제주도 집은 길가라서 더욱 위험하고요.”
채미현의 목소리가 더 떨리기 시작한다.
“그······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회귀해서요.
하지만 그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세상에 비밀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채미현이 주저하기 시작한다.
동생의 존재를 이제껏 숨겼다는 자신을 대중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로 그녀가 걱정하는 건 사랑하는 동생에 대한 대중의 손가락질이었다.
그래서 난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절 믿어 보세요. <전지적 관찰 시점>에서 채미현 씨의 사정을 잘 풀어드리겠습니다. 제가 이번에 덕배의 이미지 메이킹을 맡아서 바꿔 놓은 거 아시잖습니까?”
며칠 전 한선명의 문제로 나락으로 떨어질 뻔한 덕배는 내가 손을 쓴 덕에 현재 한국 최고 인기인이 되어 있다.
그래서 난 채미현과 채미현의 동생에 대한 인식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그치만······.”
그녀가 고민하는 터라 난 회귀 전 그녀가 직접 자기 입으로 한 말을 전했다.
“세상 사람들이 동생들이 바라보는 눈이 따가울 순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동생을 잃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동생을 위해서 용기를 내십시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이전에도 동생을 잃을 뻔한 경험이 있었는지 내 말을 듣자마자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린다.
결국 채미현은 가만히 날 쳐다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저도 언젠가는 밝혀야지 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잘됐어요. 다큐보다는 관찰 예능으로 알리는 것도 나쁘진 않네요. 대신 대본이랑 편집본만큼은 꼭 먼저 볼 수 있게 해줘요. 그럴 수 있어요? PD 권한이라서 넘보기 힘들 텐데요?”
됐다.
“무조건 얻어내겠습니다. 절 믿어 보십시오.”
채미현이 조금은 안도하고 말한다.
“그러면 저랑 <전지적 관찰 시점>에 함께 나갈 매니저는 누구로 해요? 정애랑 같이 나가요?”
채미현의 매니저이자 외사촌 동생인 유정애는 모든 사정을 알고 있다.
그래서 유정애가 매니저 겸 로드 겸 스타일리스트 역할을 모조리 겸하고 있다.
“유정애 씨는 스타일리스트로 빠지고 로드를 한 명 붙여 드리겠습니다.”
“로드요? 설마 신입을 나한테 붙여준다고요?”
“그냥 신입이 아니라 거물급 신입입니다.”
“누구······.”
“이 회사의 주인 강은기 대표입니다.”
강은기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으로 전환한 이후 매니저 경험을 할 틈도 없이 스스로 자수해서 교도소에 들어갔다.
그래서 난 강은기를 신입이라 말했다.
“아니 잠깐만. 그분은 지금······ 교도소에······ 있지 않아요?”
“이번에 특사로 나옵니다.”
그 순간 채미현이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까······ 제 이미지도 관리할 겸. 강 대표 이미지도 동시에 관리하시겠다?”
“정확합니다.”
채미현이 빤히 날 위아래로 쳐다보며 혀를 내두른다.
“다들 정 실장~ 정 실장~ 하던데 이제야 이유를 좀 알겠네요. 파격에 파격을 더하다니······ 후~ 아 오해 말아요. 이거 칭찬이에요.”
“감사합니다. 더불어 동생을 비난하는 악플은 무관용으로 대응하겠습니다.”
본인이 맞으면 참는 사람도 가족을 건드리면 끝까지 간다.
난 그걸 어기는 사람은 가만두지 않겠다고 재차 말했다.
이수찬도 내 말을 거든다.
“법무팀 애들한테 밥값 톡톡히 하라고 지시하겠습니다. 그리고 동생이랑 같이 살 집도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부탁······ 드릴게요.”
허락이 떨어진 순간 난 슬쩍 일정을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1년 5월 5일]
-PM 10:1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연예계 방방곡곡> 탑스타 채미현. 그동안 숨기고 있던 지적 장애 남동생 사망.)
다행히 일정이 삭제되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난 채미현을 보며 조금은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같은 회사가 아니니까 전 전면적으로 나설 순 없습니다. 대신 측면에서 확실하게 지원해 드리죠.”
채미현이 내게 손을 내민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정 실장님.”
* * *
채미현이 스케줄을 소화하러 떠난 즉시 난 스피커폰으로 박은찬 PD에게 전화를 걸었다.
채미현의 출연 제안을 듣자 박은찬 PD의 목소리가 들뜨기 시작한다.
-진짜야? 채미현이 우리 예능을 첫 예능 데뷔작으로 골랐다고?
현재 <전지적 관찰 시점>은 출연 배우들의 인기가 낮다 보니 시청률이 최대 5%를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난 <전지적 관찰 시점>에 숨겨진 팬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기에 과감하게 덕배의 출연을 결정해 놓았다.
그래서 덕배는 오늘 예고편을 찍은 뒤 다음 주부터 정식으로 3주간 출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내가 이번 주에 가장 핫한 덕배의 출연을 확정지어 놓은 상황이다 보니 박은찬 PD는 내게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이제껏 예능 출연을 하지 않던 채미현이 출연하고 싶다고 의사를 전달하자 그는 들떠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하하하. 이거 우리 정 실장이 날 진짜 살려주는데?
박은찬 PD의 목소리가 상당히 호의적인 터라 슬그머니 어려운 부탁을 꺼냈다.
“그런데 채미현 배우님이 대본이나 촬영분을 미리 검토하길 원하십니다. 처음 대중에게 자기 진짜 모습을 드러내다 보니 걱정이 많으셔서요.”
강은기의 문제보다 어떤 의미로는 이게 더 힘든 조건이다.
지금 말한 건 편집권이나 다름없는 요구인 터라 웬만한 PD는 거절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제안을 준비해 놓았는데 박은찬 PD가 흔쾌히 답을 한다.
-채미현 씨가 나와주면야 그게 뭐가 문제야~
생각보다 쉽게 풀리는 건가?
하지만 그때였다.
-대신······ 조건이 있어.
그럼 그렇지.
쉽게 풀릴 리가 없지.
“조건이요?”
그 순간 박은찬 PD가 생각지 못한 제안을 꺼낸다.
-그래. 오늘 예고편부터 정 실장이 ‘덕배’의 매니저로 출연해 줄 것. 그게 내 조건이야. 어때?
‘나보고······ 방송에 출연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