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7화
687. 친구 아이가~ 4
신효주와 신효리에 대한 전속 계약 해지 위약금으로 테이블 위에 세종대왕님 한 분을 내려놓았다.
장종구 대표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지금······ 장난하자는 거지?”
“비리를 덮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제값은 치렀지 않습니까?”
그 순간 장종구 대표뿐 아니라 송하윤 이사와 안현규 비서실장 눈이 팅팅 부은 공태상 팀장과 전윤기 팀장 모두의 얼굴이 험악해진다.
장종구 대표는 도저히 못 참겠는지 테이블 위에 놓인 1만 원짜리 지폐를 꽉 쥐어 구겨버린다.
“안 되겠다 너는. 일단 버릇부터 고친 다음에 다시 대화란 걸 해보자. 응?”
장종구 대표가 눈이 시퍼렇게 변해 있는 공태상 팀장과 전윤기 팀장을 쳐다본다.
“뭐해? 저 새X 안 밟고? 숨만 붙어 있으면 되니까 사정 봐주지 마!”
“예! 행님!”
공태상 팀장과 전윤기 팀장이 기세등등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난 눈도 끔쩍하지 않았다.
이쯤이면 움직일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송하윤 이사. 당신이 가만히 있을 사람은 아니잖아?’
아니나 다를까 이제까지 침묵하던 30대 중반의 미녀가 손을 들어 올린다.
“공 팀장 전 팀장. 가만히 있어 봐요!”
송하윤 이사는 회사의 자금을 다루며 주로 머리를 쓰는 인물이다.
게다가 오아시스 엔터테인먼트를 소유하고 있는 오성파 보스 현오성의 내연녀이기도 했다.
순간 날 손봐 주려던 공태상 팀장과 전윤기 팀장의 입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아 쫌! 이사님!”
“이사님. 우리 말리지 마이소! 오늘 화병 나서 죽을 거 같습니다.”
송하윤 이사가 싸늘한 목소리로 두 사람을 질책한다.
“말로 할 때 조용히 하지?”
송하윤 이사의 섬뜩한 경고에 미친 듯 날뛰던 두 사람이 순식간에 입을 다물었다.
송하윤 이사는 다음으로 장종구 대표를 말린다.
“대표님도 고정하세요.”
“내가 왜 참아야 하지? 저 녀석이 저렇게 싸가지 없게 나오는데?”
“설마 정 실장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왔겠어요? 왜 이러는지 이유는 안 다음에 주먹을 쓰든가 해야죠!”
송하윤 이사가 뾰족한 목소리로 짜증을 내자 장종구 대표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끄응······ 알았다.”
송하윤 이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날 쳐다본다.
“정 실장님. 계산은 똑바로 하죠. 미디어 센터 비리를 덮어주는 대가치곤 너무 많은 걸 요구하신 거 아시죠?”
“제 계산법은 다른데요?”
“장난하지 말고 위약금으로 두당 10억씩만 주세요. 신효주랑 신효리는 나이도 어리고 마스크도 좋잖아요. 정 실장님 정도면 두 명한테 20억 정도는 충분히 뽑아내고도 남잖아요. 아니에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난 그 돈을 낼 생각 따위는 없었다.
“싫다면요?”
“어머? 싫으시면 큰일 나는데? 이 방에서 우리 공 팀장이랑 전 팀장 눈 돌아간 걸 말릴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도 그런 말이 나와요?”
우두둑.
타이밍 좋게 공태상 팀장과 전윤기 팀장이 주먹을 꺾는다.
하지만 난 깔끔하게 무시하고 답했다.
“여긴 어지간한 비리는 모조리 아랫사람들한테 덤터기를 씌우시는 모양인데······ 그걸로도 못 막을 비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걸 덮어드릴 테니까 이쯤 하시죠?”
송하윤 이사가 블러핑인 줄 알고 피식 웃는다.
“풋. 그런 게 있어요? 뭔데요? 말해 봐요. 들어는 드릴게요.”
“사람들 듣는데 말해도 됩니까? 송 이사님에 관한 건데요?”
송하윤 이사의 자신만만하던 표정이 잠깐 흔들린다.
하지만 이내 괜찮은 듯 고개를 치켜든다.
“같잖은 짓거리 하지 말고 그냥 말해요.”
“아뇨. 진짜로 이건 위험한 겁니다. 그러니까 조용히 단둘이서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그다음에 다른 사람한테 말할지 말지 결정하세요.”
고민하던 송하윤 이사가 불안한 듯 말한다.
“대신에······ 제가 듣고 아니다 싶으면 제가 달라는 대로 계약금을 지불하세요? 콜?”
“콜!”
난 제안을 받아들였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그녀가 절대로 숨기고 싶을 비밀일 테니 말이다.
그때 송하윤 이사가 방 한구석을 가리킨다.
“밖으로 나갈 것 없이 이 방안에서 조용히 말해요.”
대표이사 방이 워낙 넓었기에 구석에서 말하자고 한다.
그 정도야 뭐.
난 고개를 끄덕인 뒤 구석으로 향했다.
송하윤 이사가 내 쪽으로 다가온다.
난 그녀의 귀에다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송 이사님이 현오성 회장님의 내연녀이자 저기 계신 장종구 대표님의 내연녀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어쩌려고 이렇게 위험한 분들 사이에서 양다리를 타십니까?
자신만만하던 송하윤 이사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그······ 그걸······ 어떻게······ 알아······요?”
어떻게 알긴 회귀해서 알지.
앞으로 5년 뒤.
오성파의 보스 현오성 회장은 송하윤 이사의 술책에 빠져 은퇴를 하고 차기 오성파의 회장 자리는 장종구 대표가 차지했다.
송하윤 이사가 돈을 쥐고 또 다른 내연남인 장종구 대표를 적극적으로 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 이후 송하윤 이사는 오아시스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자리를 받았다.
당시에 큰 병을 앓던 현오성은 이미 사태가 기울었다는 걸 알고선 별다른 저항도 없이 자기 여자와 후계자 지위를 물려줬다.
대신 편안한 은퇴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보장받았고.
하지만 지금은 이 일이 드러난다면 진짜 피비린내 나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었다.
한창 팔팔한 현오성이 절대로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이 일만은 조용히 속삭인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건 그저 신효주와 신효리를 회사에서 빼내는 것뿐이니까.
-그러니까 무조건 대표님을 설득하세요. 위약금을 1만 원만 드리는 건 이 이야기를 덮어드리는 값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송하윤이 덜덜 떨며 생각보다 큰 소리로 말한다.
“아······ 알았어요. 그렇게 해요.”
장종구 대표는 뭔가 이상하다 생각하고 묻는다.
“송 이사.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송하윤 이사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장종구 대표가 공태상 팀장과 전윤기 팀장에게 지시한다.
“야 뭔가 이상하다. 일단 정 실장 저놈 잡아다가 내 앞에다가 꿇려!”
그런데 그때 송하윤 이사가 대표이사실이 찢어지게 외친다.
“멈춰~~!!”
마치 무협지에서나 보는 음공이 이럴까 싶을 정도로 하이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장종구 대표도 깜짝 놀라 외친다.
“갑자기 왜 그래 송 이사?”
송하윤 이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대표님. 여기서······ 여기서 합의해야 해요.”
“아야. 그게 뭔 소리야? 내 체면도 있는데 여기서 멈추면······.”
그때 송하윤 이사가 다시 한번 빽하고 외친다.
“정 실장이 입 열면 대표님이랑 저랑 죽어요! 정 실장이 다 아니까 제발 내 말 쫌 들으라고요!”
송하윤 이사의 입에서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사투리가 터져 나온다.
장종구 대표가 바로 눈치를 챘다.
“뭘 알아? 설마······ 그거?”
“그래요! 그거!”
장종구 대표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날 여기서 묻어버릴까 하고 고민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럴 줄 알고 준비를 해뒀지.
난 즉각 폰 액정 위에 엄지를 두고 말했다.
“혹시라도 허튼 생각하신다면 기자한테 지금 말한 내용이 바로 전달됩니다. 그러면 감당하실 수 있습니까?”
오면서 미리 까톡 내용을 작성해서 복사해둔 터라 최소혜 기자에게 메시지 전송 버튼만 누르면 끝이다.
순간 장종구 대표가 화들짝 놀라서 외친다.
“잠깐! 정 실장! 스톱! 멈춰! 대화로 풀자! 대화! 이게 위약금이라고 했지? 자 봐봐. 이거 내가 받았다. 됐지?”
장종구 대표가 급히 구겨놓았던 세종대왕님을 펼친다.
얼마나 세게 구겼는지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시다.
“그럼 계산 끝난 거 맞지?”
누구 마음대로.
“아뇨. 절 협박하셨으니까 저도 체면상 그대로는 못 드리죠.”
“그 그럼 어떻게 해?”
“일단 그것부터 돌려받겠습니다.”
난 저벅저벅 다가가 구겨진 세종대왕님을 돌려받았다.
그러고선 이번엔 퇴계 이황 선생님을 내려놓았다.
위약금 1천 원이다.
탁.
장종구 대표의 얼굴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안 된다고 말하지는 못했다.
결국 장종구 대표는 안현규 실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안 실장. 계약 해지 의향서······ 한 장 뽑아 와. 어차피 쌍둥이들 부모가 와야 본 계약 해지를 할 수 있으니까 오늘은 의향서만 쓰자.”
안현규 실장이 크게 반대한다.
“대표님! 안 됩니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빨리 가져 오래도?”
그때였다.
안현규 실장이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 폰을 꺼내 들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죄송? 뭐가 죄송한데?”
안현규 실장은 대답 없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그런데 그때였다.
대표이사실 밖에서 굴렁쇠 엔터 ‘이말숙’ 여사님의 구수한 트로트 곡 <누나 한번 믿어봐>의 한 자락이 들려온다.
『누나가~~ 다 들어줄게~~』
벌컥.
대표이사실의 문이 열린다.
올해 65살이 된 오성파의 보스 현오성이 경호원 4명과 함께 나타났다.
65살의 나이에도 워낙 체구가 좋다 보니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받았다.
장종구 대표가 놀란 눈을 한다.
“회장님이 여긴 어떻게······.”
오성파의 보스 현오성은 사투리를 쓰지 않고 점잖게 말한다.
“뭐? 내가 못 올 곳을 왔나 분위기가 왜 이래?”
안현규 실장이 폰을 집어넣고 벌떡 일어나서 고개를 숙인다.
“오셨습니까!”
현오성 회장이 계속 울리는 폰을 끈 뒤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남은 이들이 모조리 일어나 고개를 숙인다.
현오성 회장은 인사를 대충 흘리며 소파의 상석으로 향한다.
장종구 대표가 벌떡 일어나 옆으로 빠져주자 현오성 회장이 자리에 앉았다.
“다들 앉지.”
현오성 회장의 앞으로 달려간 안현규 실장이 굳은 표정으로 보고를 하려 한다.
“회장님. 실은······.”
“신효주랑 신효리 자매 이적 문제 때문에 전화한 거 맞지?”
“그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현오성 회장이 날 턱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저어~기 서 있는 정 실장 동생이 나한테 전화를 했더라고. 두 자매를 이적시키려고 자기 형님이 여기 와 있다고. 그래서 직접 왔다. 너희들이 사람을 못 알아보고 사고를 칠 수도 있으니까.”
동생이라고?
이수찬이군.
순간 현오성 회장이 테이블 위에 놓인 퇴계 이황 선생님을 쳐다본다.
“이건 뭐야?”
안현규 실장이 답한다.
“그게······ 위약금이랍니다.”
현오성 회장이 내 얼굴을 바라보다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는다.
“하여간 자네도 난 사람이군. 여기까지 찾아와 이런 짓을 하는 걸 보면 말이야.”
그 말을 마친 현오성이 테이블 위에 놓은 퇴계 이황 선생님을 오른손으로 들어 올린다.
“효주랑 효리에 대한 위약금은 받았네. 그러니까 자네 동생들보고 여기엔 올 필요가 없다고 전화나 해주게.”
이수찬이 대체 뭐라고 했길래 부산 최고의 조폭 조직 보스가 이렇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때 내 폰이 울린다.
번호를 보니 이수찬의 전화다.
“동생인가 보군.”
“맞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인 뒤 전화를 받았다.
-형님. 혹시 현오성 회장이 형님 제안 받아들였습니까?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별짓 안 했습니다. 지금 부산에 다 왔는데 형님이 티끌만큼이라도 다치면 전쟁이라고 경고한 것뿐입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살짝 언성이 높아진다.
“인마! 내가 이제 니들 조폭 아니라고 했잖아! 그런데 무슨 전쟁이니 뭐니 그딴 소리를 해!”
쩌렁쩌렁하게 목소리를 내지르자 이수찬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 전쟁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거······ 뭐랄까? 뻥카? 블러핑? 사쿠라?
“니들이 잘도 그러겠다.”
이수찬은 말을 참 잘 듣는 동생이지만 가족이나 내가 위협을 받을 땐 이렇게 폭주하곤 한다.
“근데 부산이라고? 원래 쪽방촌 어르신들 모시고 서울에 올라갔어야 하잖아.”
-예. 아 그거 내일 올라가기로 했거든요.
며칠 전 덕배를 지켜주기 위해 쪽방촌 어르신들과 내려온 뒤 경주 여행을 하고 있었단다.
서울로 올라갔을 줄 알았는데 덕배의 촬영분이 늘어난 터라 현장 구경을 다시 가느라 서울은 내일 가기로 했단다.
그때 이수찬을 비롯한 동생들이 부산에 왔다는 말을 들은 현오성 회장이 다급히 말한다.
“정 실장. 동생들에게 여기까진 오지 말라고 해! 우리 측에도 피 끓는 애들이 있으니까 얼굴 부딪치면 자칫 큰 싸움이 벌어질 수 있네!”
“아 알겠습니다.”
난 대답을 마친 뒤 이수찬에게 말을 전했다.
“오아시스 엔터테인먼트 말고 사직 체육관 앞에서 보자.”
-진짜 괜찮으십니까?
“그래. 그리고 쪽방촌 어르신들을 모시고 오면 어떻게 해?”
-근처에 내려놓고 쳐들어가려고 했죠. 그리고 서울에서 동생들 20명은 비행기 타고 오고 있고요.
아이고 머리야.
“수찬아. 나머지도 다들 사직으로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형님.
가까스로 이수찬을 말리고 전화를 끊었다.
현오성 회장이 안도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러면 내일 아침 일찍 신효주랑 신효리랑 같이 그 모친을 모시고 다시 와.”
“알겠······습니다.”
이수찬이 전화를 한 덕에 생각보다 일이 쉽게 끝나 버렸다.
덕분에 난 큰 충돌 없이 계약 해지 의향서만 받고 대표이사실을 나올 수가 있었다.
* * *
달캉.
정윤호가 단돈 1천 원의 위약금을 내고 계약 해지 의향서를 작성한 뒤 밖으로 나갔다.
순간 현오성이 주변을 둘러보며 외친다.
“다들 나가 봐라. 난 장 대표와 둘이서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안현규 실장이랑 송하윤 이사가 다 나가자 장종구는 첩자가 붙었다며 인상을 쓴다.
하지만 현오성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금 그런 사소한 거 신경 쓸 데가 아니다. 내일 계약 해지는 절대로 안 틀어지게 조심해라. 알겠냐?”
장종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한다.
천하의 오성파 보스가 과하게 신경을 쓴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회장님. 저 녀석 동생이 누군데 이리 신경을 씁니까?”
“이수찬 몰라?”
“수찬이요? 강한파의 그 이수찬?”
“그래. 그 녀석이 정윤호 실장을 돕겠다고 전 강한파 전투조를 데리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제야 장종구의 얼굴도 굳기 시작했다.
강한파는 경기도에서 시작해 서울에 진출한 전국구 조폭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한파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전투조들은 강은기를 비롯해 이수찬의 지시를 목숨을 걸고 따르는 무서운 놈들이었다.
“저기······ 그런데 걔들 해산했잖습니까? 조폭 아니라면서요?”
“그랬지. 그런데 자기 형님 건들면 그딴 거고 나발이고 전쟁한다고 하더라. 그리고 일단 나랑 너는 무조건 끝을 낼 거라고 하더구나.”
자존심이 상한 장종구가 말한다.
“여기가 우리 나와바리인데······ 그 녀석들 간땡이가 부은 거 아닙니까?”
순간 현오성 회장이 한숨을 내쉰다.
“종구야. 우린 이미 조폭이 아니라 기업이다. 지금 우리 조직에서 큰 싸움 한번 제대로 해본 애들이 얼마나 되냐?”
“그 그건······.”
부산을 다 먹고 항쟁을 안 한 지 20년이 넘어가는 낡은 조직이 바로 오성파였다.
하지만 강한파는 최근까지 수많은 항쟁을 거쳤다가 최근에서야 해산한 조직이다.
“냉정하게 봐라. 그놈들이 눈 돌아가면 끝장이야. 설령 이겨도 우리 둘은 성치 못할 거고.”
그제야 장종구가 답한다.
“그래서······ 물러난겁니까?”
“얀마. 너랑 나랑 이 나이에 애들 앞에서 쥐어 터지는 거 보여주고 싶은 거냐? 응?”
“아 아뇨.”
“그래서 양보한 거니 오해 마라. 아 그리고 이수찬이 단단히 경고하더라. 정윤호는 나이도 나이지만 자기들이 못 이겨서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있다고.”
장종구는 어이가 없었다.
“강은기 다음으로 싸움을 잘한다는 이수찬이······ 일대일 싸움에서 진다고요?”
“일대일? 이수찬 말로는 세 명은 거뜬하고 컨디션 좋으면 10대 1로도 싸워서 이길 거라던데?”
“에이~ 그기 말이라고······.”
“이수찬 거짓말은 안 하는 놈인 거 너도 잘 알잖아. 말은 안 해도 강은기조차 상대가 안 된다는 뉘앙스던데?”
순간 장종구는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현오성이 고개를 갸웃한다.
“왜 그래?”
“아까······ 공 팀장이랑 전 팀장이 정 실장 뒤를 노릴지도 모릅니다. 저한테 맞아서 화가 잔뜩 나 있는데 그냥 내보냈으니······.”
현오성이 버럭 화를 내질렀다.
“당장 오라고 해!”
“예!”
장종구가 급히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상대는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대표이사실에는 싸늘한 공기가 맴돌고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딱 한 가지 생각만 들기 시작했다.
‘X됐다······.’
* * *
오아시스 엔터테인먼트를 나온 나는 건물 옆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회귀 전 오아시스 엔터테인먼트에는 자주 왔었기에 제일 빠른 택시 승강장으로 가는 길이란 걸 알아서였다.
좁은 골목길에는 CCTV도 없고 흔한 가로등도 없었다.
골목길 끝에 있는 가로등이 안까지 빛을 비출 뿐이다.
그때 폰이 울린다.
지잉~
[에브리데이 V12.2]
[알림 : ‘오늘의 운세’가 등록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오늘의 운세?’
뭔가하고 봤더니 어이가 없는 내용이 있었다.
[오늘의 운세 : 뒤통수를 조심하라!]
뒤통수?
그때였다.
탁탁탁.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때 보이그룹 ‘BIG BOMB’의 곡 ‘BOW BOW’ 벨 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BOW~ BOW~』
난 에브리데이의 경고대로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부웅~
바람이 일며 뭔가가 머리 위로 지나간다.
뒤로 물러나며 쳐다보자 공태상 팀장이 각목을 든 채 씩씩거린다.
그 뒤로 전윤기 팀장과 여덟 명 총 열 명이 각목을 쥐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
어쩐지 쉽게 넘어간다 했다.
“아따~ 글마 그거 잘 피하네. 퉷. 야 니는 이제 디짔다고 복창해라! 알긋나?”
안 그래도 손이 근질근질했는데 잘 됐다.
난 좁은 골목길에 홀로 서서 놈들에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입으로 싸우냐? 잔말 말고······ 드루와~ 드루와~”
“이 새X가 죽꼬 싶나! 야 다들 치라!”
눈이 돌아간 공태상 팀장과 전윤기 팀장 그리고 데리고 떡대들이 악을 쓰며 덤벼든다.
자신들의 운명은 한 치 앞도 모른 채 말이다.
‘니들이야말로 이제 다 뒤졌다고 복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