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8화
678. 비상(飛上) 2
“27.3%입니다!”
금은동 AD가 두 손을 들고 고성을 지른다.
시작과 동시에 1분째 시청률이 12화의 최고 시청률인 26.7%을 넘겨버렸다.
그 순간 기다리던 스태프들이 두 손을 하늘 위로 들고 고성을 지른다.
“됐다~~!”
학폭 이슈가 터지면 무조건 시청률이 떨어지는 건 이 업계의 상식이다.
그러나 오늘 하루 그 일을 막기 위해 덕배에 관한 이야기로 온종일 기사를 뿌려대고 MBS <다큐 7일>에 나서서 덕배와 한울이에 대한 다큐를 다음 주에 긴급 편성을 하고 예고편을 내보냈더니 오히려 시청률이 올라가 버렸다.
덕배에 관한 호기심은 한선명이 저지른 학폭 이슈를 완전히 눌러 버린 것이었다.
그제야 마음을 놓은 오복희 PD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 살았다.”
아직 <화란전>은 거의 한 시간이나 방송이 남았지만 첫 1분대 시청률이 가장 낮은 터라 이젠 안심해도 될 정도다.
오복희 PD가 숨을 몰아쉬고 날 쳐다본다.
“정 실장님. 고마워요.”
내 덕이 아니라고 말하려는 순간 다른 스태프들도 일제히 인사를 건넨다.
“수고했어 정 실장.”
“덕배야 고맙다!”
“오늘 덕배가 큰일 했다!”
MBS가 시청률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주요 콘텐츠를 제공한 건 덕배였다.
그래서인지 다들 덕배와 날 향해 칭찬을 보내고 있었다.
결국 덕배와 난 스태프들의 인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스태프 여러분들도 수고하셨습니다~~!!”
꾸벅하고 고개를 숙이자 다시 한번 세트장에는 재차 환호성이 터진다.
그때 금은동 AD가 전화를 받고선 외친다.
“PD님. 아까 방송된 ‘다큐 7일’ 예고편은 10.4% 나왔답니다.”
“그 프로 아무리 잘 나와도 7%는 못 넘겼잖아. 근데 예고편이 10%를 넘겼다고?”
“예!”
“아~ 진짜 진작 말해주지~”
“진짜 죄송하답니다. 그쪽에서 사과하러 조만간 회사에 온다는데요? 어쩔까요?”
오복희 PD가 피식하고 웃는다.
“뭘 또 그렇게까지 해. 그럴 필요 없으니까 앞으로 잘하라고 해.”
앞으로 잘하면 된다니!
열 받으면 불을 토하는 드라마 귀신 오복희 PD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이야.
<화란전> 13화의 시청률 스타트가 좋게 나와서인지 오복희 PD는 귀신이 아니라 부처의 얼굴을 한 채 대답하고 있었다.
그 탓에 스태프들은 오복희 PD가 이러다가 성불하는 거 아니냐며 입을 막고 키득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난 혹시나 하고 MBS <화란전>의 시청자 게시판에 접속해봤다.
<화란전>의 13화에는 덕배가 나오지 않지만 <다큐 7일>의 예고편까지 내보낸 터라 대중들이 오해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청자 게시판은 덕배의 이름으로 도배가 되고 있다.
[<화란전> 시청자 게시판]
-오늘 덕배 님 나오나요?
-덕배 님이 맡은 김법민은 몇 화부터 나와요?
-20화부터 나온다던데?
-뭐야 덕배는 오늘부터 나오는 거 아니었어?
-오늘 나오는 것 때문에 홍보한 거 아니라고?
오늘 하루 덕배에 대한 홍보로 모든 연예면이 덮인 덕에 덕배에 대한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그러다 보니 시청자들은 덕배가 오늘 <화란전>에 출연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뭔가 수를 써야 했다.
자칫 이 오해가 분노로 바뀌기 전에.
그런데 그 순간 이 문제를 해결하고 덩달아 덕배의 인지도를 더욱 비상(飛上)시킬 방법이 떠올랐다.
‘출연을 앞당기면 되겠군.’
20화에 출연하는 덕배를 최대한 앞당겨 한 화라도 출연시키면 문제가 해결된다.
‘일단 드라마 방영이 끝나고 작가님들이 오시면 부탁드려봐야겠네.’
난 <화란전>의 13화를 쳐다보며 경주로 내려오고 있는 작가들에게 어떻게 덕배의 출연을 받아낼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 * *
1시간이 지나고 <화란전>이 끝났다.
금은동 AD가 다시 한번 방방 뛰기 시작한다.
“오늘 최고 시청률은 28.1%로 끝났습니다!”
“이야~ 이 정도면 뭐 오늘 덕배가 캐리 했는데?”
“어떻게 방송에 나오지도 않은 애가 시청률을 이렇게 뽑아주냐?”
“그러게. 우리 덕배 이뻐서 어떻게 하지?”
스태프들은 다들 덕배를 칭송하며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들 서로 잘됐다며 축하를 보내던 그때였다.
부우우웅~
11시가 넘은 시각에 주차장으로 승합차 한 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작가들이 탄 거대한 흰색 벤X 스프린터 차량이다.
끼익.
주차장에 차가 멈춘다.
스태프들이 벌떡 일어나 작가들을 맞이하러 달려간다.
“우리도 가죠.”
오복희 PD가 먼저 말한 까닭에 그녀와 함께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주차장에 도착한 순간 작가들이 우르르 내린다.
메인 작가인 한우주 작가가 함께 에피소드를 쓴 이지연과 김솔잎 작가와 같이 내린다.
갑작스레 대본에 펑크가 나다 보니 한우주 작가는 이지연 작가에게 도움을 청했고 마침 이지연 작가의 집에 놀러 와있던 김솔잎 작가가 나들이 가는 기분으로 같이 따라왔다고 한다.
오복희 PD가 두 손을 모으고 작가들에게 사과한다.
“죄송해요 작가님들. 사태를 이렇게 키울 생각은 아니었는데 한선명을 급히 자를 수밖에는 없었어요.”
한우주 작가가 고개를 젓는다.
“아뇨. PD님 입장도 이해해요. 어차피 한선명을 더 데려갈 수는 없으니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별말씀을요. 아 그리고 오면서 들었는데 시청률도 올랐다면서요?”
“예. 다행히도 28.1%로 끝났어요.”
“그럼 됐죠 뭐. 그러면 한선명 씨는 혹시 현장에 남아 계세요?”
“걘 튀었어요. 하여간 싸X지 없는 새X.”
“어? 그럼 어떻게 하죠? 오는 동안 수정한 대본에서는 14화에서 ‘태청랑’이 칼을 맞아 죽는 거로 해뒀는데······.”
오늘 방송된 부분은 어쩔 수 없지만 내일 방송될 14화에선 태청랑을 퇴출시켜야 했다.
그때 오복희 PD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한다.
“저기······ 태청랑이 어디 가서 그냥 죽었다고 하는 걸로 대본을 한 번 더 변경 더 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럼 뒷 일은 제가 편집으로 처리해 볼게요.”
그때였다.
함께 온 이지연 작가가 씨익 웃는다.
“에이~ 오 PD. 그럴 필요가 뭐가 있어?”
“예? 좋은 방법이 있으세요?”
이지연 작가가 날 쳐다보며 씨익 웃는다.
“유노~ 대역. 가능하지?”
순간 모두의 눈이 내게로 쏠리고 있었다.
“제가······ 대역을요?”
한선명과 내 키가 같고 체형이 비슷하다 보니 내가 제격이 아니냐는 거다.
이지연 작가의 눈이 반달로 휘어진다.
무섭게 시리.
그때 오복희 PD 역시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하긴 정 실장님이 체격도 딱 맞으니까 태청랑 가면 쓰고 대역해 주시면 되겠네요.”
다들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 이 사람들이!’
칼침을 맞고 쓰러져야 하는 건 난데 다들 왜 흐뭇하게 웃지?
그때 메인 작가인 한우주가 골똘한 생각을 마치고서 말한다.
“그렇다면 14화에 태청랑이 당나라에 간 김춘추를 경호하다가 암살자들을 만나서 싸우는 씬. 거기서 죽게 대본 수정하면 되겠어요. 어차피 김춘추를 보호하는 태청랑은 복면을 쓰고 나오니까.”
내일 방송되는 14화에서는 백제와의 전쟁에 지원받기 위해 김춘추가 당나라에 가서 원조를 청하는 내용이 방송될 예정이다.
그리고 협상을 마친 김춘추는 사신단 숙소로 돌아오다 백제가 보낸 암살자들과 충돌한다.
다행히 김춘추를 수행하던 태청랑이 함께 암살자들을 막지만 김춘추는 큰 부상을 당한다.
바로 그 장면에서 태청랑이 암살자들에게 죽도록 만들자는 것이었다.
설명을 마친 한우주 작가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본다.
“정 실장님. 힘들까요?”
굴렁쇠 엔터 소속이 된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순 없다.
대역으로 죽어줄 순 있지만 그냥 죽어줄 수는 없지.
이런 절호의 기회에 배우의 출연 분량을 챙기는 것이 좋은 매니저가 할 일이니까.
“칼을 맞고 쓰러지든 칼을 맞고 춤을 추든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대신······.”
오복희 PD를 비롯해 작가진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대신?”
“우리 덕배. 14화부터 좀 출연시켜주시면 안 됩니까?”
오복희 PD와 작가진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덕배를요?”
“예. 그리고 우리 ‘화란전’을 위해서라도요.”
난 폰으로 <화란전>의 게시판까지 보여주며 설득을 시작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덕배가 출연하지 않으면 시청자들이 배신감을 느낄 상황입니다.”
[<화란전> – 시청자 게시판]
-와~ 오늘 덕배 출연하는 거 아니었음?
-20화에 나온다고 기사 떴잖아요.
-난 그 기사 본 적 없음.
-속았네. 덕배 오늘부터 <화란전> 나오는 줄 알았는데······.
-내일부터 나오면 좋을 거 같은데······.
드라마가 끝난 <화란전> 시청자 게시판에는 덕배가 등장하지 않은 것을 성토하는 글이 더욱 늘어나 있었다.
경험 많은 이지연 작가가 고개를 끄덕인다.
“유노 말이 맞아. 오늘 관심도를 끌어놨으니 당장이라도 보고 싶은 게 맞아. 이거 안 들어주면 폭동 날 걸 오 PD?”
오복희 PD가 한우주 작가를 쳐다본다.
“한 작가님. 대본 수정 가능하시겠어요?”
“흠······.”
갑작스러운 대본 변경에 고심하는 찰나 난 슬쩍 미리 생각한 아이디어를 꺼냈다.
“한 작가님. 조금 전에 말씀하신 암살자들에게 습격당하는 그 씬에서 김법민이 나타나서 도와주는 게 어떻습니까? 태청랑이 죽었을 때 김법민이 나타나서 아버지인 김춘추를 도와주면 되지 않을까요?”
한우주 작가가 씨익 웃는다.
“이미 계획이 있으셨네요 정 실장님?”
“아 아뇨. 그냥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입니다.”
이땐 맞아도 아니라고 해야 한다.
작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우주 작가는 열린 마음으로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
“풉. 아니에요. 그 아이디어 괜찮은데요?”
그때 이지연 작가가 말을 덧댄다.
“나도 찬성. 대신 그렇게 갈 거면 15화랑 16화에도 덕배가 나오는 걸로 바꿔야 할 거야 한 작가. 김춘추가 장안성을 떠나기 전까지는 김법민이 함께 해 줘야지. 안 그래? 그리고······ 그게 오히려 더 괜찮아 보이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김춘추가 다쳤는데 당나라에 유학 중인 아들이 안 온다는 게 좀 이상하긴 했어.”
“저도 아쉽긴 했어요.”
이지연 작가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충고를 한우주 작가는 배척하지 않았다.
“그럼 해볼게요. 수정 대본은 30분 정도면 뽑아서 드릴 수 있을 거 같은데······ 혹시 저희가 작업할 공간이 있을까요?”
‘아자!’
덕배의 추가 출연이 결정되었다.
오복희 PD가 다행이라며 세트장 한쪽을 가리킨다.
“작가님들 오신다고 해서 컨테이너 박스를 하나 준비해 뒀어요. 임시 사무실로 쓰세요.”
“감사합니다. 바로 시작할게요.”
그때 이지연 작가가 웃음을 지으며 묻는다.
“한 작가. 정말 30분이면 돼? 한 작가는 대본 그렇게까지 빨리 못 쓰잖아?”
한우주 작가가 씩하고 웃는다.
“작가님들이 도우신다는 가정하에서 30분 걸린다고 한 건데요?”
“뭐~ 우릴 부려 먹으려고 했어? 푸하하합.”
“죄송해요.”
“푸흐흡. 아냐 아냐. 농담이야. 마음껏 부려 먹어. 어차피 그러라고 따라온 건데 뭐~”
한우주 작가는 천하의 이지연 작가를 보조 작가로 쓰는 깡을 보여주고 있었다.
순간 오복희 PD가 스태프들을 향해 외친다.
“은동이는 작가님들 작업 공간 드리고 스태프들은 전부 이 옆에 당나라 장안성 세트장으로 이동해서 셋업해요. 내일 14화 부분 재촬영 들어갑니다. 연출 팀들은 김춘추랑 화랑역 준비하시고 유진 씨도 준비해요.”
“예!”
14화 부분 재촬영을 위해서 다시 한번 세트장에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시를 내린 오복희 PD는 마지막으로 내게 말한다.
“그리고 정 실장님도 덕배랑 함께 준비해주세요.”
“예!”
난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연출팀 막내와 함께 덕배에게로 달려갔다.
나 역시 메이크업하고 의상을 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태청랑 역의 대역이 되기 위해서는 꽤 불편한 복장을 해야 하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
그러나 덕배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 일은 일도 아니었다.
* * *
경주 월성 세트장의 옆에는 당나라의 수도 장안성 내부 세트가 세워져 있다.
당시 시대 상황상 중국의 장안성은 100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아시아 최대의 도시였기 때문에 대부분은 CG로 처리한다.
다만 주로 촬영하는 당나라 어전 사신단 숙소 장안성 시장 골목 세트장 거리 끝에 있는 아치형 다리는 만들어 뒀다.
그리고 오늘 암살이 이뤄지는 곳은 장안성 시장과 맞닿아 있는 세트장 끝 아치형 다리다.
아치형 다리 밑으로는 너비가 10m 정도 되는 천이 지나고 있었다.
잠시 후.
30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스태프들은 촬영 준비를 끝내 놓았기에 현장에 있던 배우들은 14화 재촬영을 위해 준비를 마치고 수정 대본을 기다리고 있었다.
덕배와 나 역시 메이크업을 마친 채 촬영을 대기 중이다.
난 왼쪽에는 ‘고리자루큰칼’을 찬 채 ‘태청랑’이 쓰는 푸른 가면을 왼손에 들고 있다.
덕배 역시도 신라 유학생답게 왼쪽에 차는 칼은 신라의 ‘고리자루큰칼’이었다.
다만 갑자기 첫 방송이 결정된 덕배는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난 덕배의 앞에서 씨익하고 미소를 지었다.
“떨지 마 덕배야. 연예계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일들도 있는 법이니까. 20화 때 네가 받게 될 관심을 미리 받는다고 생각해.”
연예계 생활을 하다 보면 수도 없이 의도치 않는 상황에 맞부딪친다.
그럴 때마다 기민하게 움직여야 했다.
이렇게 순풍이 불어올 때 날갯짓을 해서 그 바람에 올라타지 않는다면 언제 다시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르니까.
“예. 형.”
두 손을 꼭 쥔 덕배의 눈에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각오가 보인다.
자신이 성공하면 동생 한울이는 물론 쪽방촌 어르신들을 더욱 잘 모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작가들이 임시 작업실로 쓰이는 컨테이너의 문을 열고 나타났다.
30분 만에 눈이 퀭해져 있다.
“일단······ 수정 대본 나왔어요.”
한우주 작가가 복사된 대본 여러 개를 내민다.
그런데 14화의 수정 대본은 우리가 말한 것과 달랐다.
‘이게 뭐야?’
김춘추가 다리를 건넜을 때 나타난 암살자들에게 기습당하는 것까지는 의논한 내용과 같았다.
그리고 태청랑이 그 틈에 죽는다는 내용까지도.
하지만 다른 내용이 있었다.
-태청랑은 사실 백제와 내통하던 배신자였다.
-태청랑은 암살자들과 김춘추 경호원들과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는다.
-그러다 혼자만 살아남은 경호원을 죽이고 김춘추에게 칼을 겨눈다.
-이후 태청랑은 홀로 달려온 김법민과 칼을 나눈 뒤 배신자로서 죽음을 맞는다.
한우주 작가는 한선명이 연기하던 태청랑을 가장 추악한 인물로 만들 작정으로 대본을 수정한 것이다.
한우주 작가가 당황한 날 보더니 생긋 웃으며 말한다.
“이왕이면 화끈하게 끝내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그래봤어요. 두 분 선생님 의견도 저와 같았고요.”
한 작가님.
사람이 죽는데 너무 생글생글 웃는 거 아닙니까?
김솔잎 작가도 웃으면서 동의한다.
“시청자들도 좋아할 것 같아서 조금 바꿔 봤어요. 이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한선명이 배신자이자 위선자로 죽으면 다들 얼마나 통쾌해하겠어요?”
그래.
덕배를 위해서라면.
그리고 우리 한우주 작가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야 문제도 아니지.
“뭐 누구 칼에 맞아 죽나 똑같긴 하죠. 어차피 전 대역이니까······ 실감 나게 죽겠습니다.”
작가들이 잘됐다며 웃음을 짓는다.
그때 안석칠 무술 감독이 다가온다.
“그러면 덕배랑 정 실장. 리허설부터 해보지.”
대본을 읽고 온 안석칠 무술 감독이 리허설을 하자며 다가온다.
덕배와 난 대본을 읽은 뒤 무술 감독 앞에 섰다.
“자 리허설하기 전에 일단 칼을 잡고 서로를 한번 노려봐.”
덕배는 배역 몰입을 꽤 깊게 하는 터라 살살하자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첫 출연 때문에 긴장한 덕배가 입을 앙다물고 날 노려보기 시작한다.
덕배의 눈이 번뜩이더니 스산한 살기를 풍기기 시작한다.
자신도 모르게 배역 몰입을 한 덕배는 마치 날 원수를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고작 리허설인데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다.
‘나······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