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7화
677. 비상(飛上) 1
오복희 PD는 한선명과 양성택 실장을 모니터링 천막으로 불렀다.
잠시 후 한선명과 양성택 실장이 주춤거리며 감독에게 다가왔다.
어젯밤 내내 잠을 못 잤는지 두 사람의 눈 밑으로 짙은 다크서클이 보인다.
하지만 오복희 PD는 그런 두 사람에게 가차 없이 폭언을 퍼붓기 시작했다.
“진짜 내가 현장에서 별의별 종자들을 다 겪어 봤지만 가해자라는 새X가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건 첨 봤네. 하~ 야 한선명. 너 미쳤지?”
“가 감독님. 저는 그 H란 사람이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어제부터 오늘까지 올라오는 기사들이 다 네 사진인데? 와~ 이 새X 이거 진짜 안 되겠네. 너 내가 등신으로 보여?”
오복희 PD의 목소리가 카랑카랑 울린다.
세트장 한쪽 구석에서 촬영을 대기 중인 기자들은 한선명의 변명이 가소로운지 연신 콧방귀를 뀐다.
-미친 새X.
-아오~ 저걸 믿고 기사를 쓴 내가 미친 X이지.
-우리 데스크는 뭘 믿고 저딴 놈을 편드는 기사를 쓰라는 거야?
-야 지금 내 기사에 댓글 달리고 난리 났다. 나보고 또 기레기랜다. XX. 올해만 12번째 기레기 소리다.
-진짜 이럴 때 다 연예계 기자 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니까.
-얀마 그러길래 형이 정 실장 담당 연예인 건들 땐 두 번 세 번 의심하고 확인하랬지? 정 실장 저거 질 싸움은 절대 안 하는 놈이야.
-아 내가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나.
-그러니까 네가 그 모양이지. 기자라는 놈의 감이 그리 형편없어서 어떻게 해? 난 우리 데스크에서 내리는 지시 싹 다 쨌잖아. 정 실장이랑 싸우기 싫어서.
그렇게 기자들이 한창 떠드는 사이 오복희 PD가 양성택 실장을 향해 말한다.
“아~ 그리고 양 실장 당신.”
한참 욕을 먹고 쭈그리가 된 양성택 실장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예. PD님.”
“오늘 선명이는 야간 촬영을 끝으로 더는 나올 필요 없으니까 그렇게 알고 회사에다가 연락해둬요.”
한선명을 공식적으로 퇴출시킬 거라는 소식이었다.
양성택 실장은 몰려오던 잠이 싹 다 사라졌는지 눈을 부릅뜨며 말한다.
“PD님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 선명이가 맡고 있는 ‘태청랑’역은 40화까지 나오기로 되어 있잖습니까?”
“이렇게까지 큰 사고를 쳐놓고서 계속 나오시겠다? 이 사람 정말 웃기는 사람이네? 양심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오복희 PD는 학폭 가해자를 어떻게 더 출연시키냐며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그런데 그때였다.
눈치 없는 한선명이 주춤거리며 끼어든다.
“PD님. 제가 갑자기 안 나오면 팬들이 가만히 안 있을 텐데요?”
오복희 PD가 시선을 홱 하고 돌린다.
“야! 너 지금 나 협박하니?”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방송국에서 고소장 날리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해! 알았어?”
살기등등한 오복희 PD의 협박에 한선명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갈 땐 가더라도 이따가 밤에 죽는 씬 찍고 가. 알았어?”
오늘 <화란전>에서 ‘태청랑’은 죽게 될 거라며 밤까지 대기하라는 마지막 말로 긴 갈굼이 끝났다.
한선명은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리고 양성택 실장 역시 더는 뭐라 하지 못했다.
“그리고······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요. 그리고 이따가 밤에 부르면 재깍 튀어오고!”
두 사람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털레털레 자리를 떠났다.
순간 금은동 AD가 급히 찬물이 든 컵을 오복희 PD에게 내밀며 손부채질을 시작했다.
“감독님. 참으세요. 워워~”
“아오~ 내 성질 진짜 많이 죽었다 진짜!”
오복희 PD는 그 말을 끝으로 찬물을 들이켠다.
물을 다 마신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휴우~ 기자들한테 태청랑 하차 소식 알리러 가야겠네.”
그때 발길을 돌리려던 오복희 PD가 내게 말한다.
“아 그리고······ 정 실장님은 이따가 한 작가님이랑 통화할 때 곁에서 좀 도와주세요.”
한선명이 나가게 된 이상 대본의 수정은 불가피하다.
현재 30화를 집필 중인 한우주 작가에게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대본 수정을 부탁해야 했다.
그때 곁에서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오복희 PD의 얼굴이 환해진다.
“대신 덕배 확실히 띄워줄게요. 이따가 6시 생방송 하는 ‘현장 오늘!’ 팀도 불러서 라이브로 인터뷰도 하고요.”
그녀는 현재 연예 기사면을 채우고 있는 덕배에 관한 이슈를 더 띄워주겠다고 말한다.
아직 첫방송도 타지 않은 <화란전>의 덕배였지만 덕배의 인생사 자체가 드라마였기에 관심을 끌 거라며 말이다.
확실히 시청률 귀신답게 누구보다 시청률 올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럴 경우 아직 연예 기사의 절반을 채우고 있는 한선명의 학폭 기사를 지울 수도 있었다.
순간 난 물 들어오는 김에 노를 젓자는 심정으로 한 가지 더 제안했다.
“PD님. ‘MBS 다큐 7일’에 덕배와 한울이에 관한 이야기를 내보내자고 제안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MBS <다큐 7일>은 SBC의 <휴먼스토리>와 경쟁하는 다큐 프로그램으로써 주제를 놓고 일주일간 따라다니며 촬영하는 인기 다큐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평균 시청률이 6%에서 8% 정도가 나와 다큐 프로그램치고는 제법 시청률이 높은 편이었다.
“아~ 그거 좋은데요? 근데······ 아까 덕배랑 한울이 인터뷰하는 거 영상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다큐 7일’ 팀을 불러서 예고편이라고 좀 넣을 텐데······.”
난 폰을 들어 살짝 흔들었다.
“그럴 줄 알고 촬영해 뒀습니다.”
오복희 PD의 눈이 동그래진다.
“와~ 진짜. 정 실장님 없으면 나 어떻게 하지? 실장님. 내가 뽀뽀라도 해줘요?”
사흘 동안 제대로 잠도 못 자서 머리가 부스스한 오복희 PD의 뽀뽀를 받고 싶진 않았다.
“하하하. 아 아뇨?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뭐야? 왜 뒷걸음질 쳐요? 정 실장님. 뭐지? 왜 그러지?”
“전 빨리 가서 한선명이랑 이야기를 좀 해야 해서요.”
“하긴······ 이젠 그쪽 차례죠?”
“예.”
“신문에 안 실리게만 하세요.”
난 고개를 끄덕인 뒤 한선명이 사라진 쪽으로 달렸다.
놈에겐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봉필아. 어디 갔니? 이젠 내 차례인데~.’
* * *
와당탕!
한선명의 대기 장소로 가자 잔뜩 뿔이 난 한선명이 발로 의자들을 걷어차고 있다.
스태프들은 현재 세트장으로 다 몰려간 터라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
“XX! 나 지금 당장 갈 거야! 말리지 마!”
오복희 PD가 남아 있으라고 했지만 한선명은 가겠다며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잠시 말리던 양성택 실장도 지쳤는지 그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순간 난 심호흡하며 놈의 이름을 불렀다.
“한선명.”
대기 의자들을 발로 차던 한선명이 고개를 홱 하고 돌린다.
“이 씨X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찾아와?”
양성택 실장이 다시 한번 한선명을 말린다.
“참아! 더 사고 치면 수습 안 돼 인마!”
한선명이 발걸음을 멈춘다.
“아오! 너 진짜······ 내가 봐준 줄 알아.”
가소로워서 코웃음이 난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지.
“조금 뒤에 너희 아버지 로펌으로 고소장이 날아갈 거니까 목 닦고 잘~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인생은 실전이야 이 자식아.’
순간 한선명이 코웃음을 친다.
“지X. 나 한국인도 아닌데 무슨 고소야?”
“외국인도 고소돼.”
한선명이 양성택 실장에게 고개를 돌린다.
“실장님! 진짜예요?”
“나야······ 잘 모르지.”
한선명이 곧장 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아빠! 혹시 나 고소당했어? 그게 가능해? 어······ 어······ 뭐야? 진짜야?”
그 순간 한선명이 들고 있던 폰을 바닥에 내팽개친다.
콰직.
놈의 폰이 부서진다.
“으아아악. 씨X!”
진짜로 고소가 된다는 말을 들었는지 놈이 나를 향해 주먹을 쥐고 달려든다.
“정윤호~~!”
회사에다가 전화를 하려던 양성택 실장이 황급히 손을 뻗는다.
“선명아! 안 돼!”
이미 늦었다.
부웅!
이미 놈의 주먹이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가볍게 피할 수도 있었지만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넌 이제 뒈졌어.’
난 느릿느릿 날아오는 놈의 주먹을 끝까지 본 뒤 백 스텝을 밟으며 놈의 주먹을 피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놈의 주먹에 맞은척하며 뒤로 쓰러져버렸다.
마치 진짜 맞기라도 한 듯 두 팔을 휘적거리면서.
CCTV로 찍고 있는 구역인 터라 한 편의 액션 쇼를 벌인 것이다.
털썩.
바닥에 쓰러진 난 왼뺨을 잡고 말했다.
“열 받는다고 사람을 쳐?”
그때 주먹을 내뻗은 한선명이 말을 더듬거린다.
“어? 아냐······ 안 맞았잖아?”
난 왼뺨을 잡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 때려놓고 안 때렸다고? 하긴 뭐 우리 덕배를 매장시켜려 하고도 자기가 피해자라고 우기는 거짓말쟁이가 어디 가냐?”
이대로 고소장을 하나 더 날릴까 하는 생각이 문뜩 스친다.
하지만 난 원래의 계획대로 하기로 했다.
난 당황한 놈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고선 딱 달라붙은 다음 놈의 배에 오른 주먹을 가격했다.
혹시라도 죽을 수도 있으니 적당히 힘 조절을 해서.
퍽!
“컥.”
털썩.
한선명이 배를 부여잡고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끄윽······끄윽······.”
티는 안 나고 통증은 극심한 곳으로 골라 때렸다.
그러자 한선명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바닥에서 파닥거린다.
“아프냐?”
“끄윽······.”
“아프겠지. 하지만 덕배는 그보다 몇 배나 더 아팠을 거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기대해. 예전엔 그냥 빠져나갔지만 이번에는 너랑 너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HANS 로펌까지 함께 얽어줄 테니까.”
전관 변호사인 한선명의 아버지 한지철 대표가 이번 일의 불법성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아들의 편을 든 건 그만큼 자신이 있어서였다.
자신들은 힘이 있으니 힘없는 자들이 어떻게 나오든 밟아줄 수 있다고.
하지만 이번엔 절대로 불가능하다.
여론이 우리의 편이니까 말이다.
“XX······ 우 우리 아빠가······ 네 놈 따위한테······ 당할 거······ 같아?”
그때였다.
내가 기다리던 안태백 기자의 ‘끝까지 판다’의 기사가 올라왔다.
[(끝까지 판다 – 2화) <화란전>에 출연 중인 유명 배우 H 씨의 아버지는 HANS 로펌의 대표 변호사.]
-더러운 연예인의 비리를 덮은 곳으로 유명한 HANS 로펌 이번엔 학폭 가해자 아들의 신분 세탁을 주도하다.
-아버지 역시 군대 면제.
-HANS 로펌 창립자 한현무 역시 군대 면제.
-3대 부자의 군대 면제?
난 씨익하고 웃으며 폰을 거꾸로 뒤집어 한선명에게 보여줬다.
기사에는 살벌한 댓글이 달리고 있다.
“다들 네 덕에 욕 좀 먹겠는데? 아냐 아니지. 널 이렇게 키운 게 너희 아버지랑 할아버지니까 인과응보지.”
“으아아악!”
한선명이 다시 발작한다.
놈이 덤비면 다시 한번 쇼를 펼치고 여전히 근질거리는 주먹을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양성택 실장이 나서 한선명을 붙잡아버렸다.
아쉽다.
“선명아. 가 가자. 빨리 가!”
“이거 놔! 이거!”
한선명이 조금 전 주먹에 맞은 것도 잊고 패악질을 부렸지만 양성택 실장은 억지로 차에 끌고 가버렸다.
어차피 덤벼봤자 맞기밖에 더 하겠냐며 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즉시 차를 타고 현장을 벗어난다.
그때 오복희 PD가 한선명에게 현장을 떠나지 말고 남아서 마지막 촬영을 하고 가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아 맞다. 쟤 그냥 가면 안 되는데?”
아무래도 한선명이 밤 촬영은 생까고 가버렸다는 이야기를 해줘야겠다.
‘아무튼 내 잘못 아님!’이라는 말도 섞어서 말이다.
* * *
세트장으로 돌아와 분위기를 살피니 오복희 PD가 한창 기자들과 인터뷰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잠깐 기다리던 순간 강감찬 대표가 전화를 걸어왔다.
-윤호야. 현장은 어떻게 됐냐?
“한선명을 퇴출하기로 결정 났습니다. 그런데 혹시 HANS 로펌에서는 별다른 항의가 없습니까?”
-항의는 무슨 항의. 그쪽 대표가 무조건 합의하자더라.
“합의요?”
-그래. 여론이 무섭기는 한지 5억을 줄 테니까 모든 걸 없던 거로 하자더구나. 그래서 말인데 덕배한테 한번 물어봐라. 그 돈이면 쪽방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도울 수도 있는 돈 아니냐?
덕배는 우리 회사에서 받은 계약금으로 쪽방촌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돕고 있었다.
그런데 5억이면 당장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돈이다.
다만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대표님. 근데 제가 조금 전에 한선명을 한 대 살짝 터치했는데 괜찮겠습니까?”
-터치? 팼다고?
“패다뇨. 쌍방입니다. 쌍방.”
-혹시 문제 될 일 있어? 뭐 뼈가 부러졌다든지······?
“전혀요.”
-그래? 그럼 잘했다. 그런 싸가지없는 놈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그리고 어차피 계약서는 저쪽 사인이 다 된 채로 온 거라서 상관없어.
“알겠습니다. 그러면 덕배한테 물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난 전화를 끊고 덕배에게 다가가서 5억 합의금을 언급했다.
덕배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5억이요?”
“어.”
덕배가 일행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송일섭 할아버지를 보며 묻는다.
“송 할아버지. 5억이면 임대 아파트로 이사 가셨을 때 제가 좀 도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현재 쪽방촌은 재개발이 계획되어 있어 원 거주민들은 임대 아파트로 옮기는 것으로 정부에게 약속을 받은 상태다.
하지만 송일섭 할아버지가 덕배의 말을 끊고 자기 곁을 본다.
“이보게들. 우리 돈 필요한가? 우리 덕배를 괴롭힌 놈이 돈으로 처리하려고 하는데?”
그때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콧방귀를 뀐다.
“살날이 별로 안 남았는데 돈은 무슨 돈.”
“임대 아파트로 이사 가면 어차피 지원금 나오잖아. 됐어~”
“난 덕배를 괴롭힌 놈이 주는 돈이라면 땡전 한 푼도 받기 싫어.”
어르신들은 돈보다 덕배를 더 생각하고 있었다.
송일섭 할아버지가 다들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인 뒤 덕배를 향해 미소를 지어준다.
“덕배야. 우리 생각해서 그 돈 받을 필요 없다. 네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딴 놈 돈 받지 말고 당당하게 걸어가거라.”
순간 덕배가 가볍게 떨며 고개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저 꼭 성공해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받은 은혜 반드시 갚을게요.”
나 역시 덕배의 곁에 서서 함께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르신들. 우리 덕배. 이제부터 그깟 5억은 눈도 끔뻑하지 않을 만큼 큰 배우가 될 겁니다.”
그때 맨 앞에서 송일섭 할아버지가 내 쪽으로 다가와 손을 잡는다.
고개를 들자 그와 그의 곁에 있는 어르신들이 빙그레 웃고 있다.
“우린 이제 살날이 얼마 남은 늙은이들이야. 우리 덕배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게 좀 도와주게. 내 꼭 부탁함세.”
거친 손이었지만 따뜻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난 그 마음을 받고선 정중히 대답했다.
“제가 꼭 덕배를 한국 최고의 배우로 만들겠습니다!”
* * *
[(속보) MBS 경영진 ‘태청랑’ 역 한선명 퇴출!]
[MBS 오복희 PD “한선명의 하차는 드라마의 차후 스토리 전개와 일절 영향 없음.”]
[한선명이 저지른 폭력의 피해자 최덕배. MBS <다큐 7일> 팀에서 재조명! 오늘 밤 9시 53분 예고편 방송. (부제 : 얼짱 형제의 삶)]
MBS가 대처를 시작하자 SNS와 커뮤니티에는 한선명이 저지른 학폭 대신 덕배 형제에 관한 관심도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강감찬 대표에게 덕배가 고소 취하를 할 생각 없다는 의향을 전했다.
받은 대로 되돌려 줘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후 9시 50분이 되었다.
모니터 앞에 앉은 오복희 PD가 날 쳐다보며 묻는다.
“혹시 작가님들은 어디쯤이시래요?”
한선명을 하차시키면서 오늘 밤부터 추가 촬영을 해야 하다 보니 작가들의 수정 대본이 필요했다.
그래서 한우주 작가는 현재 김솔잎 작가와 이지연 작가와 현장으로 내려오며 대본을 쓰고 있었다.
“아까 동대구라고 하셨습니다.”
“아~ 그럼 금방 오시겠네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늘 시청률 안 떨어졌을 겁니다.”
“후······ 그래야 할 텐데요······.”
그때였다.
9시 53분이 되었다.
한선명의 학폭 이슈로 시청률이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긴급 편성한 MBS <다큐 7일> 예고편이 나간다.
다음 주 긴급 편성편인 <얼짱 형제의 삶 – 덕배와 한울이>의 5분짜리 예고편이다.
스태프들은 다들 그 영상을 보며 손을 모으고 빌기 시작했다.
화랑 F4라는 한선명이 학폭 사건을 일으키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 역겨운 짓을 저지른 상황이기 때문에 평소라면 무조건 시청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태프들은 지금 이렇게 덕배에 관한 인생 스토리와 화제성이 학폭 이슈를 막아주길 바라고 있었다.
잠시 후.
MBS <다큐 7일>이 끝이 났다.
이제 2분 뒤에 <화란전> 13화가 방송될 시각이다.
오복희 PD가 전화를 붙들고 있는 금은동 AD에게 묻는다.
“은동아. ‘다큐 7일’ 시청률은 얼마야?”
“아직 시청률이 안 나왔답니다.”
“응? 왜 안 나와?”
“프로그램을 긴급 편성해서 그런지 조사업체에게 집계 데이터를 못 받았답니다.”
“뭐?”
“5분 뒤에는 데이터 집계해서 알려줄 수 있다는데요?”
“야 그러면 이미 화란전 시작한 후잖아!”
발을 동동 굴렀지만 시청률 조사 기관 두 군데 모두에서 같은 대답이 온 터라 별다른 수가 없었다.
결국 다들 아무것도 모른 채로 <화란전> 13화의 시청률을 마주하게 되었다.
“화란전 13화 시작합니다~”
<화란전>의 12화 최고 시청률은 26.7%였는데 13화는 얼마나 나올지 다들 초조한 표정으로 빌기 시작한다.
제발 시청률이 떨어지지 않기를 말이다.
그리고 1분 뒤.
기다리던 <화란전> 13화의 첫 1분째 시청률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