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4화
674. 악의(惡意) 3
한선명은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함께 운영하는 강남의 유명 중견 로펌 HANS의 외동아들이다.
녀석은 얼마나 오냐오냐 컸는지 자신보다 어른인 내게 반말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봉필이라고 불러서 화난 탓도 있겠지만.
“씨X 지금 뭐라고 했어? X새끼가!”
과거 이름을 부르는 게 어지간히 거슬렸는지 한선명은 밥을 먹던 입에서 밥풀까지 튀기며 욕을 해댄다.
“왜? 네 이름 맞잖아. 봉필이. 한봉필.”
참지 못한 한선명이 주먹을 쥐고 벌떡 일어난다.
과거 세탁을 하면 뭘 하나.
이렇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대번에 덤벼드는데.
순간 난 손을 뻗어 놈의 어깨를 눌렀다.
꾹.
한쪽 어깨를 누르자 균형을 잃어버린 한선명은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털썩.
“크흑.”
엉덩이뼈가 딱딱한 의자에 부딪혔는지 인상을 찌푸린다.
“까불지 말고 앉아. 지켜보는 눈이 많으니까.”
그때 옆자리에 앉은 에이스 엔터의 매니저 양성택 실장이 낮은 목소리로 날 질타한다.
“정 실장. 너 지금 뭐 하냐? 내가 보는 앞에서 내 배우에게 시비를 걸어? 그리고 봉필이는 또 누구야?”
난 한선명의 어깨에서 손을 떼며 양성택 실장과 마주했다.
어지간히 기분이 상했는지 날카로운 눈이 한층 더 갸름하게 찢어져 있다.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
한선명의 과거 세탁은 아마 변호사인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미국으로 보내면서 해줬을 거다.
도피 유학을 보내면서 아예 국적도 검은 머리 미국인으로 만든 걸 보면 프로의 솜씨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일을 대형 엔터테인먼트사인 에이스 엔터가 모를 리 없다.
대형 엔터테인먼트사는 배우나 가수의 전속 계약을 하기 전 흥신소에 의뢰해 스카우트 대상의 뒷조사를 생각보다 꼼꼼하게 한다.
만에 하나 데뷔를 시켰는데 학폭 같은 일이 터지면 투자한 돈이 휴지 조각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양성택 실장은 모든 걸 다 알고 있을 가능성이 100%였다.
그런데도 양성택 실장은 시치미를 뚝 떼고 뻔뻔하게 답한다.
“모르니까 묻는 거잖아.”
그렇다면 뭐 원하는 대로 대해주는 수밖에.
오히려 잘 됐지 뭐.
“아~ 실장님은 모르시나 보다. 그러면 그냥 가만히 지켜 보고나 계십쇼.”
난 그 말과 동시에 다시 한번 한선명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대체 왜 그랬니 봉필아?”
“씨X! 봉필이가 누구냐고!”
뒤늦게서야 모른 척 시치미를 떼려 하지만 동공이 빠르게 흔들리고 숨이 거칠어지고 있다.
“얀마 그게 숨긴다고 숨겨지겠냐? 잡아떼도 소용없어. 연예올타임즈 기자한테 흘렸다며? 그런데 덕배한테 피해를 입었다면 네 과거가 들키지 않을 줄 알았냐? 그나저나 너······ 생각이 깊은 스타일이 아니네?”
한선명이 분한지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 흔들면 고해성사가 시작될 것 같다.
“아 그리고 봉필아······.”
“XX. 봉필이라는 말 좀 그만해! 내 이름은 선명이라고!”
어지간히 화가 났는지 주먹을 꼭 쥔다.
“왜? 치려고?”
난 쳐보라는 듯 고개를 내밀며 도발했다.
하지만 그때 양성택 실장이 한선명의 손목을 덥석 잡는다.
국대급 권투선수 출신인 내게 실수로라도 덤벼들었다간 먼지 나게 맞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다.
“선명아. 참아.”
“실장님! 왜 날 말려요? 설마 저 자식 편드는 거예요?”
“조용히 해 인마. 지금 네 편을 드는 거니까.”
아쉽게도 양성택 실장이 한선명의 행동을 말린다.
도발이 성공하기 직전이었는데 조금은 아쉽다.
양성택 실장은 나를 쳐다본다.
“정 실장 번지수 잘못 찾아왔어. 우리는 봉필인가 봉팔인가 모르는 애고 연예올타임즈랑 연락한 적도 없어. 그러니까 그만 꺼져. 우린 밥 먹고 촬영 준비해야 하니까.”
한선명이 고해성사하면서 ‘잘못했습니다.’ 한마디만 했더라면 여기서 끝날 수 있었다.
그랬다면 난 에브리데이 일정이 사라지는 것만 보고 물러나려 했다.
내가 원한 건 아니었지만 덕배가 지나간 일을 문제 삼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게다가 현재 잘나가는 <화란전>의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 게 최선이긴 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예상한 대로 이건 그저 시작일 뿐이었다.
한선명이나 양성택 실장이나 둘 모두 악의(惡意)를 갖고 덕배를 첫 방송에도 못 나가게 만들 셈인 것이다.
결국 난 몸을 일으키며 두 사람에게 경고했다.
“양 실장님 나 건드렸다가 인생 꼬인 사람들 한둘이 아닌 거 아시죠?”
“글쎄다? 나 네가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양성택 실장은 안면에 철판을 깔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그래 그렇게 해봐.
난 가만히 양성택 실장을 노려본 뒤 마지막으로 한선명을 쳐다봤다.
“그리고 한봉필. 넌 대체 왜 가해자 주제에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이것 하나만 잘 알아 둬. 난 이제껏 내 배우 건드린 놈을 가만둔 적 없어.”
난 그 말을 남긴 뒤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신부처럼 고해성사하게 만드는 방법은 실패로 돌아갔으니 이젠 기꺼이 이단 심문관이 되어 칼날을 휘둘러야겠다.
* * *
정윤호가 돌아간 순간 한선명이 이를 빠드득 갈며 욕을 내뱉었다.
“씨X. 저 새X가 어떻게 안 거지?”
양성택 실장이 한숨을 푹 내쉰다.
“제발 선명이 넌 성질 좀 죽여라. 꼭 그렇게 티를 내야겠어?”
“실장님도 저 새X가 다 알고 온 거 보셨잖아요!”
“알면 어쩔 건데? 어차피 너희 아버지랑 할아버지가 세탁 제대로 해놔서 증거는 없단 말이야. 성형까지 확실히 했고. 그런데 네가 그렇게 자폭해 버리면 어떻게 해?”
“아 몰라요 하여간 이제 어떻게 해요?”
양성택이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네 편 들어줄 일진 친구들 다 포섭해 뒀다면서? 기사가 나가면 걔들이 SNS로 도와줄 텐데 뭐가 걱정이야? 기자들이랑 친구들이 도와주면 덕배같이 데뷔한 신인 하나 묻는 건 일도 아냐. 방송국이 얼마나 사람을 잘 버리는데?”
한선명이 고심하다 묻는다.
“근데······ 제가 구라친 거 들키면 어떻게 하죠?”
“걱정하지 마. 안 드러나. 그리고 거기다 너희 아버지랑 할아버지도 도와준다고 했는데 뭐가 문제야?”
“그렇긴 하지만 제 친구라는 놈들 다 입이 워낙 가벼운 것들이라······.”
“걔들 입막음은 아버지랑 할아버지가 잘하실걸? 걱정하지 마. 어차피 사실 밝혀지는 데 몇 년 걸려. 그러면 그땐 이미 상황 끝난 후야. 그러니까 눈 딱 감고 아니라고 우기면 돼. 알겠지?”
한선명의 얼굴이 그제야 밝아진다.
“그러면 당장 기자들 불러서 기사 준비해 줘요. 난 밥 좀 먹고 있을게요.”
“알았어. 보도자료 줘야 하니까 시간은 조금 걸릴 거야.”
“예.”
양성택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한선명은 양성택의 식판 위에 있는 갈비찜을 폭풍 흡입하기 시작했다.
맨 나중에 먹으려고 아껴놓은 세 점인데 말이다.
“야 한선명. 내 갈비찜 먹은 거 나중에 한우로 갚아라?”
갈비찜을 우물대는 한선명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요 뭐. 쩝쩝······.”
그제야 화를 조금 푼 양성택은 몸을 돌려 탈의실 쪽으로 향했다.
그러고선 사람들이 없는 곳에 온 양성택이 김동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저 양 실장입니다.”
-빨리 좀 연락할 것이지. 그래. 일은 어떻게 되고 있어?
“대표님이 경고하신 대로 정 실장이 우리 꼬리를 물었습니다. 어떻게 정보를 찾았는지 정말 대단한 놈이네요.”
양성택이 관리하는 한선명은 처음 최덕배가 현장에 나타났을 땐 그래봤자 신인이 얼마나 잘하겠냐며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최덕배가 첫 촬영부터 칭찬받기 시작하자 한선명의 신경질 빈도가 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최덕배의 촬영에 대한 칭찬이 일상처럼 되자 한선명은 더는 참지 못하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왕따에 쪽방촌 자식이 이젠 연예인이 된다는 것도 그리고 자신보다 주목받는 것도 말이다.
그래서 결국 최덕배라는 새싹이 채 올라오기도 전 자근자근 짓밟으려고 한 것이었다.
그걸 본 양성택은 한선명에게 기껏 과거 세탁까지 했으니 최덕배를 모른 척하라고 했지만 한선명은 듣질 않았다.
언제나 그러하듯 자신의 아버지를 통해 짓밟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그러자 양성택은 못 이기는 척 그의 의견에 찬성했다.
한선명을 자기 연예인으로 만들려면 비위를 맞춰줘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동수 대표는 정윤호의 연예인을 함부로 건드는 걸 회의적으로 판단했다.
정윤호는 만만치 않은 상대니까 절대로 직접 나서진 말고 곁에서 한 발 떨어져서 한선명을 도우라고 했었다.
노련한 매니저 양성택은 김동수 대표가 겁이 많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도 알 수가 있었다.
정윤호가 보통이 아니라는 김동수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그러길래 내가 말했잖아. 정윤호 그 새X. 절대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라고.
“예. 직접 만나보니까 대표님이 왜 그렇게 경계하는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양성택은 아직 패배를 인정할 순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겁니다. 선명이가 멍청해도 걔 아버지랑 할아버지는 최고의 전관 변호사들 아닙니까?”
-그거야 일이 돌아가는 걸 봐야 알지. 다들 그 빽믿고 깝치다가 어떻게 됐는지 봐봐. 전임 에이스 엔터의 대표진들은 어떻게 됐고. 이대붕 의원도 지금 완전 나락이잖아.
“절대 방심하지 않겠습니다.”
-하~ 그건 알아서 하고. 난 곧 검찰청에 들어가서 조사받을 예정이니까 연락 안 될 거야.
에이스 엔터는 아직도 검찰 조사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뒷배인 이대붕 의원 역시도 구속을 당하기 직전이고.
“그나저나 이 의원님은 어떻게 되신답니까?”
-내일쯤 구속 결정 날 것 같더라. 국회에서 긴급체포동의안도 결국엔 못 막을 것 같고.
“그러면 저흰 어떻게 합니까?”
-괜찮아. 자금은 미리 세탁해서 회사 곳간에 채워 넣었고 지금은 다른 뒷배를 물색 중이니까 그런 일은 걱정하지 말고 양 실장은 선명이 비위나 잘 맞춰 줘.
“예. 대표님.”
전화를 끊은 양성택은 잠시 고민을 하다 다시 전화를 들었다.
이번에는 한선명의 아버지 HANS 로펌의 대표 한지철에게 하는 전화였다.
“한 대표님. 이번 작전을 굴렁쇠 측에서 알아차렸습니다.”
-어디서 샌 거야?
일이 뜻하지 않게 돌아간다는 연락을 듣고도 한지철의 반응은 냉정했다.
“연예올타임즈에서 샌 것 같습니다.”
-알았어. 그쪽은 내가 따로 연락해 볼 테니까 플랜 B로 들어가지.
“예.”
달칵.
통화가 끝나자 양성택은 한지철의 태도에 혀를 내둘렀다.
“대체 덕배랑은 무슨 악연이 있길래 부모까지 저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거야?”
플랜 B란 만에 하나 계획이 어긋났을 때 기사 폭탄을 터트려서 포털 연예면을 도배하는 물량전을 뜻했다.
한마디로 돈을 미친 듯 풀겠다는 의미였다.
“후우~ 그럼 나도 준비해 봐야겠군.”
양성택은 현장에 있는 다른 에이스 엔터 매니저를 찾아 일을 맡긴 뒤 플랜 B가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 언론사에다가 본격적으로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 * *
일행들에게 돌아온 난 간단한 경과를 보고했다.
한선명이 과거를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다고 말이다.
덕배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다가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
“형만 믿을게요.”
“걱정하지 말고 연기만 잘해. 저것들은 내가 확실히 처리할게.”
그때였다.
폰을 슬쩍 확인하자 에브리데이의 일정이 사라진다.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1년 2월 24일]
-PM 05:0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NEW. 최덕배] 연예올타임즈 “신인 배우 최 모 씨 학교폭력 의혹. 배역 교체 예정.” (회의 내용 : MBS 내부 정보에 따르면 경영진 중 일부가 첫 방송 전 강제 하차 언급.))
‘지금 일정이 사라졌다고?’
난 즉시 함께 떴던 일정 하나도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1년 3월 4일]
-AM 07:00 [NEW. 정유진]
연예올타임즈 “인기 스타 정유진. 학교폭력 가해자를 비호.” (회의 내용 : 화란전 15화 시청률 26%대에서 21%대로 급락. MBS 최덕배 퇴출 통보. 정유진 옹호 발언 취소 요구.)
연예올타임즈는 삭제됐고 유진이에 관한 일정이 그대로라면 불미스러운 일 자체는 일어난다는 거다.
아마도 기사를 터트리려는 일정을 앞당길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 쪽에서 먼저 기사를 터트리는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은 대부분 선수 필승이기 때문이다.
그때 식사를 마친 스태프가 외친다.
“곧 촬영 이어가겠습니다~~ 덕배랑 유진 씨는 화랑 숙소 쪽으로 이동할게요.”
덕배와 유진이가 날 쳐다본다.
“걱정하지 말고 두 사람은 촬영만 신경 써.”
“알았어요.”
두 사람이 곧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소희 팀장이 식판을 반납한 뒤 덕배와 유진이를 데리고 세트장으로 향한다.
그때 한선명과 양성택 실장이 세트장으로 가는 게 보인다.
날 보는 두 사람의 얼굴에는 자신만만한 표정이 어려 있다.
마치 수를 써둔 것처럼.
순간 그들보다 무조건 빨리 기사가 떠야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난 곧장 장문기 기자에게 전화를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지잉~
[발신자 : 장문기 기자]
나는 타이밍 좋게 걸려 온 장문기 기자의 전화를 받았다.
“장 기자님. 어디십니까?”
-어. 현장. 방금 도착했어.
“차에서 내리지 말고 세트장 앞 골목길에서 뵙죠. 쌀집 겸 방앗간 있는 데서요. 특종. 지금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둘이서 만나는 걸 스태프들에게 보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난 장소를 정한 뒤 주차장으로 향했다.
* * *
쌀집과 방앗간을 겸하는 경주 쌀집 앞.
장문기 기자의 차량 뒷좌석에 올라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화랑 F4라고 불리는 한선명이 학폭 사건을 일으키고 과거를 세탁해서 미국으로 간 주제에 거짓말로 피해자인 척 덕배의 첫 방송을 막으려고 한다고.
“흐음······ 한선명이 보기보다 멍청한 놈이로군. 그나저나 진짜 큰 건이긴 한데······.”
“뭡니까? 설마 쫄리는 건 아니죠?”
“에이~ 연예 신문사한테 쫄리긴 뭐가 쫄려? 그보다 HANS 로펌이 마음에 걸려서.”
강남 유명 로펌 HANS는 연예올타임즈를 비롯해서 연예 신문사들의 고소와 고발에 대응하는 업무들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많은 연예 신문사를 동시에 동원할 수가 있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저희가 이길 겁니다. 연예 신문사 중에서 1위인 주간스타랑 제가 손을 잡는 데 뭐가 무섭습니까?”
장문기 기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
“하여간 매번 보지만 정 실장은 깡이 참 좋아. 근데 말이야······ 진짜 버틸 수 있겠어? 정 실장 측에서 먼저 기사를 터트리면 방송국 압박이 엄청날 텐데?”
“그래서 몰래 만나자고 한 거잖습니까? 여기서요.”
창문 밖에서 들려 오는 방앗간의 기계 소리가 쿵덕거리며 연신 울리는 중이다.
“하하하. 그래서 그랬군.”
그때 장문기 기자가 안태백 기자를 바라본다.
“태백이 넌 어떻게 생각해?”
안태백 기자는 차후 장문기가 편집장이 된 후 그 뒤를 이어 주간스타의 실세가 되는 기자다.
동글동글하게 생겨 귀여운 외모지만 한번 잡은 사건은 터트리고야 마는 불독 같은 근성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끝까지 판다’라는 전속 코너까지 만들어서 조회 수도 꽉 쥐고 시리즈 기사를 만드는 장본이기도 하고.
즉 이런 싸움을 벌이는 데 적합한 기자였다.
“재미있네요. 가해자가 피해자 코스프레라니. 9시 뉴스감은 아니지만 커뮤니티가 환장할 소스 아닙니까? 우리 입장에서는 정치 경제보다 이런 막장 스토리가 진짜 특종이죠. 그런데 왜 저러는지 이유는 모르십니까?”
“중학교 시절의 악연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당시 동창들 위주로 취재를 해보셔야 모든 게 분명해질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건 제가 파 보겠습니다.”
“그러면 시간이 급박하니까 단독으로 몇 가지만 따서 올리고 2보 3보 계속해서 기사 낼게. 괜찮지?”
“기사야 장 기자님이 전문가니까 알아서 해주십시오.”
장문기 기자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가슴을 툭툭 친다.
“나만 믿어. 이 장문기. 오늘 어그로의 끝을 보여줄게.”
어그로를 잘 끄는 장문기 기자였기에 난 전적으로 그를 신뢰했다.
대신 난 다른 싸움을 준비해야 했다.
‘위기를 기회로.’
이번 기회에 난 <화란전>의 첫 방송이 이뤄지기 전 덕배의 오해도 풀고 덕배의 대중 인지도를 최고로 올릴 생각이었다.
“오케이. 그럼 나중에 보자고. 우린 기사 써야 하니까 가봐.”
장문기 기자의 축객령을 받고 그의 차에서 내린 뒤 내 차로 돌아왔다.
* * *
내 차를 몰고 다시 세트장으로 돌아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려는 순간 폰에 진동이 울린다.
장문기 기자의 기사가 업로드되었다는 소식이다.
지잉~
“벌써 떴네? 빠르네.”
난 안주머니에서 폰을 꺼낸 다음 기사를 확인했다.
그런데 그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장문기 기자가 어그로가 가득한 기사 제목으로 기사를 써버렸기 때문이다.
[(단독) <화란전>의 유명 조연 역인 검은 머리 외국인 H 씨의 추악한 민낯 충격 보도! (주간스타 장문기)]
장문기 기자가 믿어보라는 말에 책임을 지듯 기사 내용들은 더욱 자극적인 내용들로 가득했다.
그때였다.
지잉~ 지잉~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처럼 기사 댓글 알람 진동 소리가 미친 듯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자~ 그럼 이제 시작이군.’
난 이 여론전에서 반드시 승리를 거둔 뒤 덕배를 괴롭힌 놈들에게 똑같이 대해줄 생각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