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1화
671. 반격(反擊) 5
“가도······ 좋다.”
진짜 야쿠자가 나타나서 우리 둘을 내놓으라고 하자 야마모토 회장은 두 손을 들어 버렸다.
얼마나 분해하는지 관자놀이에 굵은 핏줄이 서 있을 정도다.
하지만 정작 화가 나는 건 나였다.
목숨을 한번 구해줬는데 그 은혜를 이렇게 원수로 갚으려고 할 줄이야.
그 탓에 난 그가 내게 호의적으로 대했다면 해주려고 한 말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치료 잘하시고 저흰 가보겠습니다.”
손을 휘휘 젓는 야마모토 회장을 두고 강감찬 대표와 병실 밖으로 나왔다.
드르륵.
난 엘리베이터로 향하며 에브리데이를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1년 3월 1일]
-PM 10:0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일본 출장 준비. (기타 : 바니즈 프로덕션 야마모토 회장 병문안. 심근 경색.))
조만간 심근 경색이 온다는 일정은 사라졌다.
하지만 내 다이어리에는 앞으로 1년 뒤에 또 한 번의 심근 경색이 있다는 일정이 남아 있었다.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2년 3월 5일]
-PM 10:00 일본 출장 준비. (기타 : 바니즈 프로덕션 야마모토 회장 장례식 참석. 심근 경색.)
원래는 이 일정마저도 상황을 봐서 이야기해 주려고 생각했었다.
사람의 목숨이라는 것을 놓고 저울질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한 번의 미래 예지만으로도 이렇게 발목을 잡으려고 하는데 두 번의 예지가 맞는다면 그땐 목숨을 걸고 날 붙잡을 테니 말이다.
역시나 운명은 바꾸기 힘들다는 걸 그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 * *
병원 정문 앞에는 야쿠자 50명이 여러 대의 벤X 승용차를 세워두고 자신들의 세력을 뽐내고 있었다.
그들은 강감찬 대표와 내가 안전하게 나오자 그제야 차 안으로 들어가며 위세를 낮춘다.
그때 정장을 입은 야쿠자 한 명이 다가와 우리에게 탈 차를 알려준다.
“강 대표님은 맨 앞 차를 타시고 정 실장님은 바로 뒤 차를 타십시오. 호텔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강감찬 대표와 왜 날 따로 태우려는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릴 도와주러 온 호의를 생각해서 그의 말에 따랐다.
정장의 야쿠자를 따라 뒷좌석의 왼쪽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이가 꽤 든 남자가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순간 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중절모의 사내가 날 쳐다보며 약간은 어색한 한국말을 한다.
“내가 누군지 아는가?”
“예. 스즈키 대표의 외삼촌 아니십니까?”
중절모의 사내는 왼쪽 뺨에 길게 상처가 나고 매서운 눈빛 호랑이 눈썹을 가졌지만 그의 얼굴에는 스즈키 대표의 귀여운 얼굴이 흔적처럼 남아 있다.
그는 고이치로 한국 이름으로는 박영수라 불리는 스즈키 대표의 외삼촌이자 토조카이의 두목이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스즈키의 부탁을 받고 왔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탔다.
부웅~
차가 움직이자 고이치로가 말한다.
“다친 곳은 없고?”
“예. 딱 맞춰 오신 덕분에 무사합니다.”
“그렇다곤 해도 대단하군. 야마모토 회장이 부르는데 넙죽넙죽 들어가고. 허허허.”
“제가 안 가면 히로시 대표와 다른 일행들이 다칠 것 같았습니다.”
고이치로가 날 보며 빙그레 웃는다.
“내 조카와 큰형님이 꼭 구해달라는 이유가 있었구만.”
친구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나선 모습이 보기 좋다며 그는 한동안 웃음을 짓는다.
잠시 후.
우리가 묵는 호텔에 도착했다.
그 순간 십 수 대의 차량 중 강감찬 대표와 내가 탄 차만이 전열을 이탈해 호텔 앞에 멈춰 섰다.
스즈키 대표의 외삼촌은 야쿠자인 자신들과 다니는 게 일반인들 눈에 띄면 안 좋다며 혼자만 내리는 게 좋겠다고 권유한다.
“다음번에는 조용한 곳에서 조카랑 같이 천천히 보도록 하지. 혹시 괜찮겠나?”
“예. 그땐 제가 한턱 내겠습니다.”
고이치로가 다시 한번 큰 웃음을 짓는다.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밥을 얻어먹게 생겼군. 허허허.”
야쿠자로 살면서 타인들에게 배척당했을 거다.
그러나 그를 마치 친구의 외삼촌처럼 편하게 대하자 고이치로는 상당히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차에서 내렸다.
강감찬 대표도 차에서 내린 순간 두 대의 차량이 빠르게 빠져나간다.
그때였다.
“아빠!”
“실장님!”
스즈키 대표를 필두로 강지영 이사와 굴렁쇠 엔터의 식구들이 모조리 호텔 입구에서 뛰어나온다.
“괜찮으세요?”
우리 둘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일행들이 한숨을 내쉰다.
난 이어서 스즈키 대표를 바라보고 인사했다.
“덕분에 무사히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스즈키 대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에요. 안 다치셨으면 됐어요. 그나저나 가신 일은 어떻게 됐어요?”
“잘 해결됐습니다. 바니즈 측은 이제 우리 굴렁쇠와 관계된 일에서는 손을 떼겠답니다.”
“오~ 정말요?”
강감찬 대표도 우리 회사 식구들을 안심시키며 이제 아리스 프로덕션과의 계약 해지가 성공적으로 되었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안예음 이사를 비롯한 은아와 세리 등등 모든 일행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후 일행들을 호텔로 올려보낸 뒤 강감찬 대표와 강지영 이사 그리고 나만 남아 스즈키 대표와 함께 오늘 일에 대한 후속 회의를 시작했다.
스즈키 대표는 즉시 고소 절차에 착수하겠다고 했고 강지영 이사 역시 그 일을 돕겠다며 거들었다.
그때 강감찬 대표가 참았던 질문을 던진다.
“윤호야. 야마모토 회장이 아프다는 건 어떻게 안 거냐?”
야마모토 회장 앞에서는 내게 영빨이 있다며 맞장구를 쳐준 강감찬 대표였지만 이젠 해명해달라며 날 빤히 쳐다본다.
순간 난 기다렸다는 듯 다시 한번 일본문춘 기자의 핑계를 댔다.
“기자 친구가 취재하던 겁니다. 내부에서 파벌 싸움이 있다 보니 회장님의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났는데도 병원에 안 데리고 갔다고요.”
“흠······ 그래?”
“예.”
강감찬 대표가 날 빤히 쳐다보며 말한다.
“그 친구. 꼭 잡아야겠구나.”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일본 문춘 기자인 사이고 료타는 꼭 만나 이번 생에도 반드시 친구 관계를 맺을 생각이었다.
일본에서 그에게서 받은 도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번 생에선 내가 도울 차례였다.
이후 강감찬 대표가 깊은숨을 들이쉬고 말한다.
“그러면 이제 최 대표의 처리에 관해서 이야기해 볼까?”
강감찬 대표는 곧장 전화를 들더니 최은태 회장에게 연락을 넣는다.
“회장님. 늦은 시각에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아닐세. 고이치로한테 미리 연락받았어. 자네들은 괜찮은가?
“저야 괜찮습니다만 더 이상 최만식이 날뛰는 걸 두고 보고 있기가 힘듭니다. 주주 회의를 열까 합니다.”
-나도 찬성일세.
“그럼 시기는 어떻게 할까요? 저야 회장님만 괜찮으시면 당장 한국으로 귀국할까 합니다만.”
-그리하지. 만식이 놈이 저지른 짓이면 업무상 배임죄로 엮을 수 있을 테니 당장 한국으로 들어오게.
드디어!
굴렁쇠 엔터에서 최만식 그 인간의 영향력을 날려 버릴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내일 새벽 서울에 도착하는 대로 댁으로 가겠습니다.”
-그런데 강 대표.
“예. 회장님.”
-만약에 만식이 그놈이 상필이와 형문이를 선동해서 반기를 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뒀나?
굴렁쇠 엔터의 지분은 명동의 최은태 회장 우리 회사를 이끄는 강감찬 대표 LSP 그룹의 이상필 회장 트루엔젤스 투자사 박형문 대표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만식 대표가 나눠 갖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최은태 회장과 강감찬 대표의 지분이 절반을 넘는다.
하지만 최은태 회장이 미래상상 저축은행을 통해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은 사실상 최만식 대표의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미래상상 저축은행이 최만식 대표에게 먹힌 상태니까.
지금이야 유야무야 덮고 있지만 진짜 전쟁이 벌어질 경우 실질적인 최대 주주는 우리 측이 아닌 최만식 대표가 되는 셈이다.
“법리적인 부분을 판단해야겠지만 1인 주주를 대상으로도 업무상 배임이 가능하잖습니까? 충분히 최만식에게 죄를 묻는 게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흠. 그보다 아예 그놈을 주주 회의에 못 오게 막을 방법이 없을까? 그럼 일이 간단하게 풀릴 텐데······.
그때였다.
난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뭔가?”
-그게 뭔가?
두 사람이 귀를 기울인다.
난 웃으며 그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각.
최만식은 인근 호텔에서 대기하며 야마모토 회장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야마모토 회장이 나선 이상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정윤호 그놈의 발도 묶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다시는 일본에 오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고 그렇게 되면 자신이 직접 나서서 굴렁쇠의 모든 일본 비즈니스를 접수할 생각이었다.
최만식은 그 일의 제일 처음엔 자신보다 정윤호를 선택한 스즈키 대표의 A1 엔터테인먼트부터 발아래 꿇릴 생각이었고.
그러고선 일본 전역에 있는 A2부터 A6까지를 싹 다 뒤져서 비자금을 찾을 생각이었고.
그렇게 해서 만약 일본 쪽 비자금을 찾게 되면 야마모토 회장의 도움으로 한국에 돈을 세탁해 보낸 뒤 그 돈으로 박상곤 의원이 이끄는 재보궐선거에 자금을 지원할 생각이었다.
박상곤 의원이 재보궐선거에서 승리를 거두면 차기 대통령 후보 1위가 되기 때문이다.
그 이후엔 명동 사채 시장을 양성화한다면서 최은태 회장의 자금줄을 다 끊은 뒤 한국의 사채왕으로 등극할 생각이었다.
감옥에 있는 최은태 회장의 친아들 강은기는 출소하는 즉시 제거할 생각이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고.
머릿속에 연이어 이어지는 즐거운 생각으로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흥이 난 최만식은 와인 잔을 들고선 침대에 누워 TV를 틀었다.
심야 시간 일본 TV에선 한국에서 작년 최대의 히트작 중 하나인 <파란 하늘>이 나온다.
띡.
다시 다른 채널을 틀자 이번에는 <신의 이름으로>가 나온다.
정유진이 일본 진출을 본격적으로 하지 않았지만 이미 방송을 통한 해외 진출이 이뤄지고 있었다.
“정유진 확실히 물이 올랐네. 올랐어. 아무래도 이번 일만 마무리되면 일단 쟤부터 시작해야겠는데?”
정윤호가 힘을 잃고 나면 그가 담당하던 연예인인 정유진을 고위층과 만나는 자리에 불러들일 생각이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여배우와 만나고 싶은 권력자들은 줄을 설 것이고 그 자리를 만들 수 있는 자신에겐 저절로 인맥이 쌓일 테니까.
애당초 자금 세탁이나 하고 여자 연예인들을 상납할 생각만 했던 엔터테인먼트 회사였지만 지금 보니 그렇게만 써먹기엔 너무도 아까울 정도였다.
정윤호가 키워놓은 굴렁쇠는 더 이상 과거의 구멍가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뿌린 씨는 내가 다 수확해주마 정윤호.”
최만식은 키득키득 웃으며 다시금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켰다.
입안에 기분 좋은 성공의 맛과 향이 잔잔하게 퍼져나간다.
그런데 그때 전화 한 통이 걸려 온다.
발신자는 야마모토 회장이었다.
최만식이 기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예. 회장님!”
그때였다.
-최 군. 미안하지만 우리 사이의 일은 없었던 걸로 하세.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회장님? 없던 일이라뇨?”
-자네와 관계를 끊겠다는 말일세. 그러니 앞으로는 어디 가서 내 이름을 팔 생각도 하지 말게. 그리고 혹여 자네 입에서 내 이름이 언급된다는 소리가 들려온다면 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아니 갑자기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정 실장과 최 군이 싸운다면 어느 쪽의 승산이 높을지 냉정하게 판단하고 내린 결론일 뿐일세. 그리고 그간의 우의를 봐서 내 충고 한마디 하지.
“이 상황에······ 무슨 충고를 해주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자네도 어지간하면 정 실장과 대립각 세우지 말게. 자넨 그 친구 절대 못 이기네.
달칵.
낮은 경고의 목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대체 무슨 일인지 영문을 물어볼 겨를도 없었다.
“내가······ 정윤호 그놈만 못하다고?”
최만식의 귓가엔 그 말만이 맴돈다.
그와 동시에 입 안에 가득 머금었던 고급 와인에서 갑작스레 떫고 텁텁한 맛이 느껴진다.
마치 흙을 씹은 듯한 이물감도 느껴진다.
실패의 맛과 향이다.
최만식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다나카 대표에게 전화로 사정을 알아보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쾅쾅쾅!
호텔 객실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씨X 이건 또 뭐야?”
방해하지 말라는 팻말을 걸어 놓았는데 두드리는 놈들이 있다.
머리끝까지 치솟은 화를 저놈들에게 풀어야겠다 생각하고 문 앞으로 나갔다.
달칵.
문이 열리자마자 최만식은 큰 소리를 지르려 했다.
그런데 자신의 앞에는 굴렁쇠의 강감찬 대표 AMOSE의 스즈키 대표 그리고 일본 경찰들이 서 있었다.
그리고 맨 뒤에는 정윤호 실장이 승리의 미소를 머금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나는 스즈키 대표 강감찬 대표와 함께 일본 경찰들을 대동해 최만식이 있는 호텔로 향했다.
최만식 대표가 주주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일본 내에 구금을 하기 위해서다.
그가 없다면 반란 또한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을 열자 호텔 가운을 입은 최만식 대표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고 서 있다.
“여긴 어떻게······.”
그 순간 스즈키 대표가 뒤쪽 경찰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이에요.”
그때 일본 경찰이 앞으로 나선다.
일본 경찰들이 일본어로 범죄 사실을 고지한 다음 체포하려 하자 최만식 대표가 빽 하고 외친다.
“야! 정윤호! 너 이거 뭐 하는 짓이야! 진짜 나랑 제대로 한번 해 보자는 거야 뭐야!”
“다나카 대표와 함께 손을 잡고 회사에게 피해를 주려고 한 것에 대한 사기죄와 배임죄 그리고 야쿠자 쪽에게 의뢰해서 저와 강감찬 대표님을 감금하라고 사주한 죄까지 더 하면······ 당분간 일본에서 못 벗어나실 겁니다.”
“잠깐! 내가 야쿠자에게 뭘 사주했다고?”
당황해하는 최만식 대표를 보고 함께 온 스즈키 대표가 말한다.
“AMOSE 본사 앞에서 이 두 분을 야쿠자가 끌고 가는 걸 봤다는 히로시 대표님의 증언이 있습니다. 회사 앞에서 찍은 CCTV도 확보했고요. 그리고 야쿠자를 사주한 범인은 모든 배후에 최만식 대표의 지시가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곳을 찾기 전 우린 다나카 대표를 먼저 만나 설득했다.
죄를 혼자 뒤집어쓰지 말라고.
어차피 야마모토 회장도 당신을 버렸으니까 형량은 적게 맞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그러자 다나카 대표는 곧장 최만식 대표를 배신해 버렸다.
배후를 최만식 대표로 해 두는 게 야마모토 회장을 거론하는 것보다 뒤탈이 없기에 망설일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내가 무슨 배후야! 난 그저······.”
최만식 대표가 누군가의 이름을 말하려고 하다 입을 멈췄다.
아마도 야마모토 회장의 이름을 말하려고 한 모양인데 말을 했다가 뒷감당이 안 되어서였다.
“XX!”
그때였다.
이제껏 차분하게 체포 절차를 진행하던 일본 경찰들은 상대가 욕을 했다고 생각해서인지 거칠게 팔을 꺾어 버린다.
콰앙!
최만식 대표의 얼굴이 문 쪽에 부딪힌다.
친절하다고 알려진 일본 경찰이지만 외국인들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룰이었다.
“XX. 너 이 새X들아······ 아악. 놔 안 놔? 내가 누군지 알아?”
최만식 대표는 한국에선 미래상상 저축은행의 소유자이자 박상곤 의원의 예비 사위 그리고 명동 왕회장의 유일한 상속자였다.
하지만 일본에서 그는 그저 사기꾼이자 납치의뢰를 한 범죄 용의자일 뿐이었다.
최만식 대표가 일본어로 계속 떠들어댔지만 범죄자의 인권은 신경도 안 쓰는 일본 경찰들이었기에 결국 입에다 수건 같은 것을 물려버렸다.
“시끄러워.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된다.”
“읍읍읍.”
최만식 대표는 입에 수건을 물린 채 일본 경찰 네 사람에게 달랑 들려 호텔에서 끌려 나갔다.
‘잘 가라 최만식~’
이로써 최만식 대표가 일본 비자금을 노리는 일은 거의 불가능이 되었다.
일본은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에 대한 출입국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지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일일 거다.
최만식이 없는 동안 굴렁쇠 엔터의 주주 회의가 열린다면 그 회의는 명동 최은태 회장이 마음대로 주도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난 솔직히 이번 일본 출장에서 이렇게까지 좋은 결과가 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최만식 대표가 나에 대한 악감정으로 무리수를 둔 덕에 일본 쪽 비자금도 안전하게 지켰다.
더군다나 굴렁쇠 엔터에서 최만식 대표가 갖고 있던 영향력마저 확 하고 줄일 수 있게 되었고.
이번 일본 출장은 역전 만루 홈런이나 다를 바 없었다.
* * *
밤사이 최만식 대표는 일본 영사의 도움을 받아 유치장에서 나오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스즈키 대표가 즉각 일본의 초대형 로펌을 붙인 덕에 구속된 상태를 벗어날 수는 없게 되었다.
덕분에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최만식 대표는 한 달 동안 일본에 꼼짝없이 묶이게 되어 버렸다.
강감찬 대표는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다음날 새벽 비행기를 타고 바로 한국에 돌아갔다.
물론 아직 탑 엔터테인먼트의 설립 일정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그날이 결코 멀지는 않게 느껴지고 있었다.
난 스즈키 대표와 최은태 회장의 일본 내 비자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뒤 곧장 일본 스케줄을 시작했다.
<프로젝트 I.O.A> 도쿄 예선이 시작되자 눈코 뜰 새가 없이 바빠졌다.
그래도 다행인 건 새롭게 협력사가 된 AMOSE가 최고의 대우를 해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거다.
게다가 AMOSE의 후계자인 테츠야 본부장이 심사위원으로 둘째인 사스케 대리가 현장 관리자로 오자 <프로젝트 I.O.A> 방송을 주관하는 니혼즈 TV의 대접부터 달라졌고.
덕분에 SBC에서 온 <프로젝트 I.O.A> 제작팀들은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틀째 점심때가 되었다.
갑작스레 한국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자 : 주간스타 장문기 팀장]
‘이 양반이 웬일이지?’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전화를 받았다.
-정 실장. 나 지금 경주인데 혹시 현장에 있어?
“아뇨. 지금은 프로젝트 I.O.A 때문에 잠시 일본으로 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 그래? 이거 어떻게 하지. 내가 루머 하나를 들은 게 있는데 정 실장이랑 미리 의논해 봐야 할 거 같은데?
현재 <화란전>의 촬영 현장에는 유화 공주를 연기하는 유진이와 비형랑을 연기하는 한우혁 그리고 며칠 전부터 촬영에 간 김법민 역의 덕배까지 있다.
그 이외에 굴렁쇠 엔터의 조연들도 가득했고.
난 대체 누구에 관한 루머라서 그러는 건지 물어보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지잉~
에브리데이가 알람을 알려오고 있었다.
[알림 : 2021년 2월 24일 ‘최덕배’에 관한 새로운 일정이 등록되었습니다.]
[알림 : 2021년 3월 4일 ‘정유진’에 관한 새로운 일정이 등록되었습니다.]
덕배의 첫 방송에 관련된 두 개의 일정이 동시에 떠올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