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화
67. 체리블라썸의 신곡 5
“실장님.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죠.”
“응? 이제 막 시작인데 왜?”
들뜬 표정의 이동민 실장이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린다.
“형. 조금만 더 하고 갈게요.”
하여간 예능계에 있는 인간들 치고 뭐 하나에 미치지 않은 인간은 없다.
현재 시각은 밤 11시.
한 시간 만에 몇 곡이나 수정한 건지 모르겠다.
“거울이나 보세요. 지금 두 사람은 인간의 몰골이 아니니까.”
두 사람 모두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데다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이동민 실장은 녹음실 한편에 붙은 거울을 쳐다보고는 어처구니가 없다며 웃었다.
“누구냐 넌?”
그제야 방선우도 자기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 여기까지 할까요?”
“그러자.”
이동민 실장과 방선우가 서로를 쳐다보며 만족한 듯 웃는다.
“그러면 제가 선우 태워다 주고 퇴근하겠습니다.”
“아 그래 줄래?”
“예. 오늘 실장님이 차 끌고 다니셨잖아요. 그리고 가면서 선우한테 할 말도 있고요.”
“부탁 좀 하자.”
그때였다.
녹음실 밖에서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실땅님~.”
세리다.
벌컥.
“어? 유노 오빠도 있었네요? 오빠. 하이!”
하이텐션이 된 세리가 하이파이브를 하자며 다가왔다.
“하~이!”
찰싹.
손을 올려 손바닥을 맞추자 세리가 이상한 소리를 내뱉는다.
“찹쌀~~떡!”
이해는 안 가지만 내 나름대로 대꾸해줬다.
“메밀~~묵!”
“아 모예요~!”
킥킥대던 세리는 그 뒤엔 ‘쫀드기’를 붙이란다.
‘그건 또 뭔데?’
알지 못하는 세계엔 깊이 발 들일 생각이 없다.
그냥 하라면 하는 거지.
뭐 마르코~ 폴로 같은 건가 보다.
“쫀드~기!”
세리가 만족한 듯 킥킥대며 웃는다.
그 뒤로 한명호 팀장이 나머지 체리블라썸을 양몰이를 하듯 데리고 들어왔다.
“실장님! 작곡가 선생님을 찾으셨다면서요?”
“어. 여기. 방선우 선생. 오늘부터 우리랑 같이할 거야.”
한명호 팀장이 환한 표정으로 손을 내민다.
“아이고! 선생님! 앞으로 우리 체리블라썸 애들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방선우는 바싹 얼어붙어 석상처럼 손을 내밀었다.
“아 그게 저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연예인을 코앞에서 보자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방선우다.
뭔가 외계인을 본 듯한 표정 같기도 하고.
아 비슷한 사람 하나 더 있다.
녹음실 입구에서 들어오다 방선우를 보자마자 백스텝을 밟아 입구 밖으로 도망간 유은아가.
“은아야. 너 거기서 뭐 해! 어서 작곡가 선생님한테 인사해야지!”
양은비가 달려가 은아를 끌고 들어왔다.
“으······ 응.”
체리블라썸은 자세를 잡고 방선우에게 아이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올봄에는 꼭~ 꽃피고 싶은 체리블라썸입니다!!”
발랄한 표정으로 말하긴 하지만 저 구호는 꼭 바꿔야겠다.
체리블라썸이 90도로 아이돌 인사를 하자 방선우도 똑같이 맞절했다.
“니들 지금 거의 완성된 곡 한번 들어볼래?”
이동민 실장의 제안에 세리가 가장 기뻐했다.
“벌써 곡이 나왔어요?”
“그래. 그럼 다들 소파에 앉아봐. 끝내주게 나왔다.”
들뜬 표정의 체리블라썸이 옹기종기 녹음실 소파에 앉았다.
이동민 실장이 자신 있게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녹음실의 서라운드 스피커를 통해 첫 음이 흘러나오는 순간.
체리블라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우와! 인트로 좀 쩌는 듯!”
두 번째 듣는데도 처음보다 더 좋다.
착착 감기는 후크 음이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았다.
세리가 흥얼대며 무릎을 탁탁 치기 시작하자 양은비가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우연희는 흥이 나는지 그루브를 타고 은아는 손가락을 튕기며 박자를 타고 있었다.
그렇게 3분 50초의 시간이 지나자 이동민 실장이 기쁨에 들뜬 채 의자를 돌렸다.
“어때? 좋지? 그치?”
세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쌍 엄지를 들었다.
“짱짱짱인 거 같아요. 그리고 이 박자면 나도 충분히 안무 따라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안무는 기본적인 곡의 템포를 따라간다.
그래서 아이돌이 부르는 곡은 미디엄템포가 많고.
그 덕에 안무 실력이 떨어지는 세리가 제일 기뻐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우연희가 못 믿겠다는 듯 물었다.
“진짜 저희 곡 맞아요? 이러다 골든로드 선배들한테 뺏기거나 하는 거 아녜요?”
“아냐. 방 선생은 우리 가수 2실 전속 작곡가야.”
이동민 실장의 대답에 양은비가 도저히 못 믿겠다며 외쳤다.
“실장님! 그럼 계약서 좀 보여주세요!”
“무슨 계약서?”
“이 작곡가 선생님이 우리 2팀과 전속을 맺었다는 계약서요!”
“야! 그걸 어떻게 보여주니?”
“아 그런가? 맞다. 비밀유지······가 있었지.”
평소에는 냉철하던 은비도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듯한 반응이다.
방선우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지 정확히 은아와 반대 방향을 쳐다보고 주춤대고 있었다.
어쨌건 체리블라썸은 단 한 명도 반대가 없었다.
“그리고 이번 작곡가 선생님은 윤호가 스카웃했다. 니들 진짜 윤호한테 잘해라.”
순간 녹음실 안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부담스러운 눈빛 끝에 우연희의 입이 가장 먼저 열렸다.
“역시 윤호 오빠는 키다리 아저씨인 거 같아요.”
“응!! 맞아!”
세리가 동의하자 나머지도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이번에 잘 되면 전부 오빠 덕분이에요.”
“솔직히 인정. 이런 곡으로 못 뜨면 누굴 탓하겠어? 연습 열심히 하자 세리야.”
“응. 알았어. 은비 언니.”
첫 번째 곡이 이렇게도 너무도 쉽게 정해져 버렸다.
그런데 흐뭇한 표정을 짓던 이동민 실장이 웃음을 지었다.
“윤호야.”
“예?”
“그런데 말이다. 혹시 아는 작사가랑 안무가는 없니?”
이동민 실장의 눈빛에 기대가 어려 있다.
사람을 뭐로 보고.
“당연히 있죠!”
모두의 얼굴이 다시 한번 밝아지고 있었다.
* * *
들뜬 체리블라썸이 ‘오빠도 내친김에 가수 2실 전속 OK?’를 외치는 바람에 방선우를 데리고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우연희가 내 앞을 막고 세리가 내 등에 매미처럼 달라붙고 은아랑 은비가 내 팔을 부여잡았다.
전속으로 계약하기 전에는 못 나간다고 말이다.
한명호 팀장이 말려준 덕에 겨우 녹음실에서 나올 수가 있었다.
회사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간 간 뒤 뒤늦게 유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진이에게 미소가 날 기다리다 잠들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죄책감이 들었다.
-오빠. 그럼 내일 아침 일찍 데리러 올 거죠?
“어. 내일 보자. 편히 쉬어. 야식으로 치킨이라도 시켜 먹고.”
-네. 알았어요 내일 봬요.
그런데 이상하다.
유진이에게 치킨을 시켜 먹으랬는데도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다.
환희에 가득 차 포효를 내질러야 정상인데 말이다.
“미소 때문에 삐졌나 보네.”
내일 일찍 가야겠다고 생각한 뒤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선우야. 타.”
“네.”
방선우를 태우고 집에다 데려다주며 연예계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작곡만 한다고 해도 대충 이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니까.
이야기를 듣던 방선우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국밥을 끓이고 있었는데 이게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어요.”
방선우의 목소리엔 울음이 섞여 있었다.
꿈도 희망도 없었는데 나 때문에 한 줄기 빛이 생겼다는 말이 꽤 무겁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만 믿어. 힘들고 어려운 일은 내가 다 처리해 줄 테니까.”
눈물을 닦은 방선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예. 엄마 말대로 형만 믿을게요.”
방선우를 다시 데리고 오자 밤 12시가 약간 넘은 시각이다.
그런데 김춘자 여사가 국밥집 앞에서 안 자고 기다리고 있었다.
“왔나? 울 아들?”
“응. 계약금으로 나 천만 원 받았다! 엄마.”
“진짜로?”
“응! 진짜로!”
기쁜 두 사람이 얼싸안고 울고 웃는 걸 보던 난 괜히 가슴이 뭉클했다.
술 한잔하고 여기서 자고 가라는 김춘자 여사의 제의를 감사히 물리치고 집으로 향하는 순간 전화가 울렸다.
“······왜 전화하셨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건너편에서 회귀한 직후 늘 전화를 걸까 망설이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자는 데 깨웠니?
난 깊게 심호흡을 하고 답했다.
“아 아뇨. 웬일이세요? 이 시간에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아 애들 씻기고 재우다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목소리나 듣고 싶어서. 너무 늦어서 미안해.
“아 아뇨 괜찮아요. 저 새벽까지 일한다고 했잖아요.”
밝은 목소리로 전화한 사람은 내가 자란 보육원을 운영하는 미카엘라 수녀님이다.
회귀 전.
늘 자신을 엄마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난 단 한 번도 엄마란 호칭을 부르지 않았다.
어린 나이엔 가짜 엄마라 생각해서.
그리고 나이가 들어선 입에 익숙하지 않아서.
하지만 그녀가 죽은 뒤에야 알 수 있었다.
미카엘라 수녀님이야말로 내 진짜 엄마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가 없었다면 절대 보육원 생활을 절대로 버텨내지 못했을 거다.
미카엘라 수녀님이 아무리 사랑으로 보듬어도 콧등으로조차 생각하지 않는 형과 동생들이 꽤 있었으니까.
회귀한 이후
난 매일 밤 폰을 붙들고서도 끝내 그녀에게 전화는 하지 못했었다.
무슨 말부터 시작할지 몰라서.
하지만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전화하면 되는 거였다.
아들이 그냥 엄마에게 안부 전화하듯 말이다.
‘죄송해요. 엄마.’
그리고 난 이제부터 그녀를 엄마로 부르겠노라고 다짐했다.
“자 잠시만요. 차 좀 대고요.”
울컥이는 감정을 억누르며 갓길로 차를 대었다.
그리고 난.
처음으로 엄마란 말을 입에 담았다.
“어······ 엄마.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전화기 건너편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엄마란 말이 대체 뭐라고 그렇게 하기 싫었는지.
흐느끼는 소리를 듣자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미카엘라 수녀님 아니 엄마가 나처럼 애써 울음을 멈춘 채 말한다.
-그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늘 이랬다.
아무 이유 없이 내 목소리가 듣고 싶다는 그녀의 전화들.
예전엔 무심하게 전화를 끊었지만 회귀한 내 눈치를 속일 수는 없다.
“동생들이 속을 썩여요? 지금 갈까요?”
보육원의 위치는 경기도 광주.
차를 밟으면 금방이다.
-아 아냐. 이 시간에 어떻게 와. 진짜 괜찮아. 너 지금 오면 엄마 걱정돼서 못 자. 나중에 너 시간이 날 때 한번 와. 급한 일은 아니니까.
한 번 터져 나온 엄마 소리가 입에 붙자 이제 더는 거칠 것이 없었다.
“알겠어요. 급한 일 있으면 바로 연락 주세요. 인제 엄마 목소리 좀 자주 듣고 싶으니까. 아니다. 내가 매일 밤 전화 드릴게요.”
조금은 밝아진 목소리가 들렸다.
-아들한테 전화한 보람이 있네. 엄마란 소릴 다 듣고.
엄마의 감동한 목소리에 괜스레 죄송스러워졌다.
“앞으로 많이 들려 드릴게요. 아 그리고 엄마. 올해만큼은 꼭 정기 검진받으세요.”
-그래. 우리 아들 부탁인데 내가 뭘 못할까. 올해는 꼭 갈 게.
앞으로 5년 뒤 나와 같은 위암 진단을 받고 수술엔 성공했지만 갑자기 다른 장기로 전이가 일어나 죽게 되는 우리 엄마.
이번엔 절대 그런 일을 겪게 둘 수 없었다.
그리고 난 다시 한번 용기를 내었다.
“조만간에 한번 갈게요. 그리고 엄마. 제가 늘 사랑······하는 거 아시죠?”
-응. 그리고 나도 언제나 사랑해. 우리 아들.
“저도요.”
그렇게 별것 아닌 이야기로 조금더 전화 통화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밤.
회귀 후 처음으로 고민 없이 편하게 잠이 들 수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호텔로 향했다.
문을 열자 미소가 파워터프걸 잠옷 차림으로 한걸음에 달려 나와 날 반겼다.
“삼촌~.”
“미소야~.”
내게 안긴 미소는 뒤늦게 생각난 듯 볼을 부풀렸다.
“흥칫뿡!”
“왜~에~?”
“흥! 흥!”
미소가 내게 안겨 고개를 돌린다.
어제 오기로 약속하고서 안 왔다고 시위하는 거다.
그럴 줄 알고 인형을 사 왔다.
“어제 일이 늦게 끝났어. 미안해. 대신에 이거 선물.”
미소에게 파워터프걸 인형을 내밀자 그제야 미소의 복어 같은 볼이 줄어들었다.
“헤헤. 이쁘다.”
금세 화를 풀어버린 미소가 인형을 들고 내 품에 폭 안겼다.
“근데 엄마는?”
“엄마. 씻어요!”
화장실에서 쏴아 소리가 들린다.
유진이가 씻는 모양이다.
난 스위트룸의 거실에 앉아 미소가 보던 어린이 채널을 함께 감상하며 미소의 호텔 생활일기를 들어야 했다.
드르륵.
샤워를 마치고 나온 유진이가 날 보며 인사한다.
“오빠. 왔어요?”
“어.”
“잠깐만요. 머리 좀 말리고 나올게요.”
“그래.”
유진이가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미세하게 입술을 삐죽거리고 있었다.
마치 화가 난 것처럼.
‘왜 저러지?’
그 순간 미소가 내 곁으로 다가와 귀에다 대고 속닥이기 시작했다.
자기 엄마가 왜 화났는지를 말이다.
“삼촌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