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69화
669. 반격(反擊) 3
밤 10시가 넘은 밤.
시부야의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 AMOSE의 정문 앞.
벤X 승용차 3대에서 내린 6명의 정장 남자들이 나를 막아섰다.
딱 봐도 이들은 아리스 프로덕션의 다나카 대표가 보낸 사람들이다.
아리스 프로덕션은 자신들과 관계를 끊으려는 이들에겐 모회사인 바니즈 프로덕션에 연락해서 이렇게 야쿠자를 보내 협박을 하곤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리스의 다나카 대표와 관계를 끊으려 할 때부터 이들이 움직일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난 그들을 따라가서 이 기회에 담판을 지으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결국 바니즈 프로덕션과의 관계를 끊어야지 모든 협약을 완벽히 종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짐작만으로 움직일 순 없다.
한국도 아닌 일본에서는 약간의 변수만 생겨도 대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을 보낸 사람이 누군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다나카 대표가 직접 보낸 것인지 바니즈 프로덕션의 임원 중에서 누가 보낸 것인지에 따라서 대응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난 곧장 정장을 입은 사내에게 되물었다.
“누가 보내서 왔습니까?”
“가 보시면 압니다.”
어쭈 비싸게 나오는데?
그때였다.
우릴 배웅하러 정문까지 내려온 히로시 대표가 싸늘한 목소리로 그들의 말을 끊는다.
“감히 야쿠자들이 내 회사 앞에서 날 찾아온 손님을 협박해? 이러고도 뒤탈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AMOSE는 도쿄 1부 증시에 등록된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보니 정부나 검찰과 경찰과도 인맥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게는 강압적으로 대하던 정장의 사내가 히로시 대표에겐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저희도 이토 사장님 체면을 상하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냥 물러날 수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히로시 대표의 미간에 깊은 고랑이 파인다.
“양해하지 못하겠다면?”
“필요하다면······ 강제로라도 모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해 볼 테면 해 보게. 정 실장은 우리 손님이니 데려갈 수 없네!”
바니즈 프로덕션으로부터 우리들을 보호해 준다더니 히로시 대표는 그 약속을 지키려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잠시 고개를 뒤로 돌렸다.
어린 세리와 은아를 비롯해 내 사람들이 걱정되어서였다.
그런데 내가 선택한 둘째 아들 사스케 대리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에도 강지영 이사와 내 연예인들의 앞으로 나서는 게 보인다.
마치 그들을 지키겠다는 듯 말이다.
하지만 반면 첫째 아들 테츠야 본부장은 슬쩍 뒤로 빠진다.
둘째 사스케와는 달리 야쿠자와 같은 인간들과는 얽히기조차 싫다는 듯 말이다.
두 사람의 행동만으로도 누구를 신뢰해야 할지 내 선택이 옳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너만 믿는다 사스케.’
난 그런 뜻을 담아 사스케 대리를 향해 눈웃음을 지었다.
사스케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로비에 있던 AMOSE의 경호원들이 일제히 뛰어나온다.
“대표님!”
대략 열 명쯤 되는 건장한 경호원들이 뛰어나왔다.
여섯 명의 야쿠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자세를 잡는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려는 순간 난 맨 앞에 선 정장의 사내에게 다시 물었다.
“괜히 사태를 악화시키지 말고 절 부른 사람이 누군지나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따라가겠습니다.”
정장의 사내가 다가온 AMOSE의 경호원들을 경계하며 말한다.
“야마모토 회장님께서 보냈습니다.”
다나카 대표나 바니즈 프로덕션의 임원이 보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설마 회장이 직접 나설 줄은 몰랐다.
생각보다 이번 일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강감찬 대표가 끼어든다.
“야마모토 회장님이라면 잘 됐군. 안 그래도 한번 뵈러 가려고 했는데 나도 같이 가지.”
정장의 사내가 인상을 쓴다.
“정 실장만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만?”
“그러면 전화해서 말씀드리게. 강감찬 대표가 말하기를 정 실장을 절대 혼자 보낼 생각이 없다고 했다고!”
경호원들을 훑어보던 정장의 사내가 품 안으로 천천히 손을 넣고 폰을 꺼낸다.
그러고선 야마모토 회장에게 전화를 건다.
“굴렁쇠 엔터의 강감찬 대표가 자신이 동행해야지만 정 실장을 보내겠다고 합니다. 예. 예.”
정장의 사내는 예라고 대답할 때마다 연신 고개를 숙인다.
잠시 후.
전화를 끊은 사내가 폰을 품에 넣으며 말한다.
“강 대표님까지만 가실 수 있습니다.”
강감찬 대표가 날 쳐다본다.
“윤호야. 진짜 괜찮겠느냐?”
“어차피 한번은 부딪혀야 할 거 아닙니까? 가시죠.”
강감찬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를 향해 말한다.
“지영이 넌 식구들 데리고 호텔에 돌아가 있어. 난 금방 갔다가 오마.”
강지영 이사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인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조심하세요.”
“걱정 안 해도 된다.”
강감찬 대표는 이어서 히로시 대표를 바라본다.
“죄송합니다. 계약을 맺기도 전에 걱정부터 끼쳐 드리게 됐습니다.”
히로시 대표가 강감찬 대표를 보며 고개를 젓는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모시러 온 사람이 바니즈의 야마모토 회장이라고 정체를 밝힌 이상 함부로 하진 못할 겁니다.”
이후 히로시 대표가 정장의 사내들을 쳐다본다.
“지금으로부터 2시간. 그때까지 여기 있는 두 사람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우린 곧장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맥에게 야마모토 회장의 이름을 거론할 거다. 반드시 그리 전해. 알았나?”
히로시 대표가 반 협박조로 말하지만 정장의 사내들이 예사로 듣진 않았다.
윗선의 이름이 언급되었으니 더 이상 자기들이 감당할 일이 아니게 된 거다.
“알았소.”
그 말을 마친 정장의 사내들이 벤X 차량을 가리킨다.
“갑시다.”
그때 스즈키 대표가 내 팔을 붙잡더니 굳은 안색으로 조용히 속삭인다.
-정 실장님. 야마모토 회장이 직접 불렀다면 이 근처에 있는 아리스 프로덕션의 집무실이거나 노기자카역 근처에 있는 회장의 집으로 갈 거예요. 히로시 대표는 2시간 후라고 했지만 상황이 돌변할지 모르니까 도착하는 대로 문자 주세요. 그리고 이후 30분마다 위치와 상황을 알려줘요. 여차하면 도우러 갈게요.
언제나 그렇지만 보험은 하나라도 더 있는 게 좋았다.
-안 그래도 부탁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조심하세요.
-예.
난 작게 속삭인 뒤 강감찬 대표와 함께 벤X 차량에 올랐다.
* * *
스즈키 대표가 말한 장소 중 한 곳인 아리스 프로덕션 건물이 목적지였다.
하지만 야쿠자들이 모는 차는 정문에서 30m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눈앞에 서 있는 11층짜리 대형 빌딩에는 [ARIS PRODUCTION]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바니즈에 본사가 없는 건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군.’
야마모토 회장이 바니즈 프로덕션의 본사로 부르지 않은 이유는 너무도 간단했다.
야쿠자 자금으로 설립된 바니즈 프로덕션은 일본 연예계의 절반을 먹었다고 알려진 대형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본사 건물이 없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현재 바니즈 프로덕션의 본사는 야마모토 회장의 개인 아파트 중 하나에 주소를 걸어 놓고 있다.
하지만 바니즈 프로덕션은 아리스 프로덕션을 비롯한 자회사 100여 개의 건물 최상층에다가 VVIP만 출입할 수 있는 장소를 따로 두고 있었다.
우린 아마도 그 장소로 초청을 받은 모양이다.
그때 아리스 프로덕션 정문에서 경호원들 네 명이 나온다.
순간 조수석에 앉은 야쿠자가 말한다.
“내리시죠.”
일본 연예계는 야쿠자와 공식적(?)으로 관련이 있으면 불이익을 당한다.
그래서 야쿠자들은 눈 가리고 아웅 하듯 정문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우릴 회사 경호원들에게 건네주려 하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강감찬 대표가 날 보며 안심시킨다.
“별일 없을 거다. 윤호야.”
사실 나야 미래를 알고 야마모토 회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기에 겁이 나진 않았다.
하지만 강감찬 대표는 그 어떤 것도 갖지 못한 채 날 지키려는 마음만으로 함께 따라왔다.
그런 그의 행동은 내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었다.
“예. 대표님.”
그때 정문에서 나온 경호원 네 명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야쿠자는 ‘야마모토 회장’의 이름이 언급되었다는 것과 히로시 대표와 있었던 일을 밝히고 고개를 숙인다.
“의도치 않게 회장님의 존함이 언급되었습니다. 죄송하다고 말씀 전해주십시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럼 저흰 이만 가보겠습니다.”
야쿠자들은 자신들의 일이 끝났다며 몸을 돌려 버렸다.
그 순간 아리스 프로덕션 명찰을 목에 건 경호원들이 우릴 향해 말한다.
“따라오시죠.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경호원들이 몸을 돌린다.
강감찬 대표와 난 그 뒤를 따라서 건물로 향했다.
아리스 프로덕션 정문 앞.
우리가 들어가기 전 자동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일행들이 나온다.
일행들은 나오자마자 날 보며 외친다.
“정 실장. 당신이······ 여긴 왜······ 왔어?”
일본에 유배당한 골든로드의 멤버들이 아리스 프로덕션에서 연습하고 나오고 있다.
장은영 박수진 최명은 정이수 윤지희.
모두가 사고를 치고 쫓겨난 터라 기가 죽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다들 기세등등하다.
아마도 아리스 프로덕션의 도움을 받아 부활을 생각하고 있어서인 듯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경호원들 사이에 있던 강감찬 대표가 큰소리로 호통을 친다.
“정 실장이라니! 정 실장이 너희들 친구냐?”
안 그래도 예민한 상황인데 골든로드가 무례하게 굴자 강감찬 대표의 목소리가 커졌다.
뒤늦게 강감찬 대표를 발견한 골든로드가 아차 하고 고개를 숙인다.
“대 대표님. 오셨어요?”
“일본에 가면 반성을 할 줄 알았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장은영을 비롯한 멤버들은 아차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그때 경호원들이 손짓하며 말한다.
“바쁘니까 가시죠.”
“예.”
강감찬 대표는 골든로드에게 나중에 보자며 발걸음을 옮긴다.
“예······ 대표님.”
고개를 숙인 그녀들이 날 노려본다.
두고 보자는 눈빛이지만 두고 봐도 별일 없다.
지금 우린 그녀들이 부활하게 도와줄 아리스 프로덕션과의 관계를 완전히 종료할 생각이었으니까.
“수고들 해~”
난 천역덕스럽게 인사를 건넨 뒤 강감찬 대표의 뒤를 따라 건물 안으로 향했다.
* * *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경호원 중 한 명이 층수가 적힌 버튼 맨 위에 카드를 댄다.
그 순간 10층 버튼 위에 있는 빈 버튼에 V라는 불이 켜진다.
경호원이 카드를 댄 채 버튼을 누른다.
위이잉~
눈 깜짝할 사이 엘리베이터가 수직으로 상승한다.
카드키를 가진 사람만 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띵.
V층 즉 11층에 도착하자 문이 열린다.
고급스러운 카펫의 복도 양옆으로 아리스 프로덕션 출신의 수많은 가수와 배우들의 포스터 사진이 걸려 있다.
다만 사진 속 절반 정도는 바니즈 계열 소속사를 떠나려다가 찌라시 기사로 이미지를 망친 다음 어쩔 수 없이 바니즈 계열 소속 연예인으로 돌아온 사람들이다.
바니즈 계열사들은 회사를 떠나려는 연예인들을 온갖 형태로 공격하는 것으로 유명했기에 오늘 난 확실히 협약 관계 종료를 못 박을 생각이었다.
그 사이 어느덧 긴 복도 끝에 도착했다.
고급스러운 문을 열고 들어가자 회의실이 나온다.
회의실 상석에는 바니즈 프로덕션의 야마모토 회장이 앉아 있고 그 왼쪽에는 아베 전무와 승복을 입은 후지타란 승려가 앉아 있다.
그리고 맞은 편에는 다나카 대표가 앉아 있었다.
그런데 아베 전무와 후지타를 본 순간 하마터면 만세를 부를 뻔했다.
내가 아는 야마모토 회장을 두려워하지 않는 건 이들과 관련된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일이 생각보다 쉬워지겠다.
“모시고 왔습니다.”
야마모토 회장이 손짓하며 나가보라고 한다.
드르륵.
경호원이 회의실을 나선다.
야마모토 회장이 강감찬 대표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연다.
“강 군. 오랜만이군.”
강 군?
강감찬 대표와 생각보다 친분이 있나 보다.
그때 강감찬 대표가 야마모토 회장을 보며 덤덤히 답한다.
“예 오랜만입니다. 회장님.”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지.”
강감찬 대표와 난 회의실 끝 테이블에 앉았다.
강감찬 대표가 앉자마자 묻는다.
“우리 정 실장을 무슨 일로 찾으셨습니까?”
“그쪽 정 실장과 여기 다나카 대표 사이에 오늘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하더군. 그래서 중재를 하려고 불렀다네.”
“중재하시는데 왜 일개 실장을 부르시는 겁니까? 스즈키 대표를 부르시든 절 부르셨어야죠. 실장한테 무슨 권한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강감찬 대표가 조금은 날이 선 목소리로 말하자 야마모토 회장이 웃음을 짓는다.
“허허허. 이 친구야. 자네가 일본에 오는 줄 몰랐으니 그렇지. 그리고 어찌 되었건 당사자들끼리 화해는 해야지. 안 그런가?”
“회장님께서 부르시면 화해나 중재가 아니라 협박이 됩니다.”
“엎어치나 메치나 결과는 같지 않은가?”
야마모토 회장은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무서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억지로라도 ‘중재’를 하겠다는 의향을 드러내었으니까.
물론 강감찬 대표도 그 의도를 알아차렸다.
“다나카 대표가 멋대로 파칭코 회사의 사주를 받아서 저희 연예인들의 초상권을 넘기려 했습니다. 그런 시도를 한 인간이랑 어떻게 함께 일하겠습니까? 그리고 회장님 또한 약속을 어긴 자는 쳐다보지 않는 성격이라고 들었습니다만.”
“그건 도저히 말이 안 통할 때 이야기고.”
야마모토 회장이 우릴 노려보며 말한다.
“그러니 이 일은 없던 걸로 하는 대가로 위약금 5억 엔을 지급하도록 하겠네. 다시는 그 같은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약속은 물론이고. 어떤가?”
강감찬 대표가 고개를 젓는다.
“약속이 깨진 이상 돈은 그저 족쇄일 뿐입니다.”
그 순간 야마모토 회장이 긴 한숨을 내쉰다.
“쉽게 가려고 했는데 말이 안 통하는군.”
그와 동시에 야마모토 회장의 눈빛이 변했다.
이제까지 보이던 능글맞은 사업가는 어디론가로 사라지고 살기 어린 눈빛이 드러난다.
그는 현재 야쿠자가 아니지만 야쿠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이었다.
전직 야쿠자라는 소문도 있었고.
그러다 보니 그 살기가 만만치가 않았다.
“우리 강 군이 내 앞에서 감히 고개를 들고 있는 걸 보니 세월이 참 많이 흘렀어. 안 그런가?”
강감찬 대표가 긴장한 목소리로 답한다.
“새끼를 보호하려는 아비는 설령 상대가 범이라도 목숨을 걸고 덤비는 게 아니겠습니까?”
강감찬 대표는 날 지키기 위해 야마모토 회장과의 충돌을 불사했다.
두 사람의 인연이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그 인연을 포기하면서까지 말이다.
내 인생에서 날 위해 이렇게 나서 준 사람은 미카엘라 엄마 말고는 없다.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가슴이 벅차오르지만 그보단 이 일을 처리하는 게 먼저였다.
“대표님. 제가 회장님과 잠깐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습니까?”
강감찬 대표가 걱정하는 눈빛으로 날 말리려 한다.
“정 실장. 아니 윤호야······.”
“전 괜찮습니다.”
난 야마모토 회장과 직접 이야기를 하는 건 회귀 전을 통틀어 처음이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강감찬 대표가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난 그제야 야마모토 회장의 살기 어린 눈을 마주했다.
“자네 생각도 강 군과 같은가? 감히 내 중재를 수락하지 않고 끝끝내 이기지도 못할 싸움을 할 거냐 이 말이야.”
그가 날 대하자마자 싸늘한 목소리와 살기 어린 눈빛으로 날 몰아세웠지만 난 여유롭게 그 눈빛을 흘려 넘겼다.
“저희 업계도 나름대로 치열한 전쟁을 합니다. 그런데 회장님이라면 뒤통수를 치는 동료와 손잡고 전쟁을 나가겠습니까?”
“필요하다면 그럴 수도 있지.”
“전 그럴 생각 없습니다.”
야마모토 회장이 화를 꾹꾹 눌러 담으며 묻는다.
“말장난은 그만! 그렇다면 내 중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건가?”
난 당장이라도 어디선가 칼을 빼내들 것만 같은 그의 눈빛을 바라보며 답했다.
“예. 회장님의 중재는 못 받아들이겠습니다. 그건 중재가 아니라 강요니까요.”
“허~ 참. 강 군에게 배워서 그런지 배포가 남다르긴 하군. 하지만 일본에 진출할 수 없어도 그렇게 큰소리칠 수 있을까? 잘 듣게. 내 중재안을 받지 않는다면 내 기필코 굴렁쇠 엔터의 일본 진출을 막아 버리겠네. 그래도 괜찮다는 거겠지?”
예상한 대로 야마모토 회장은 일본 연예계의 절반 정도를 장악하고 있는 바니즈의 힘을 이용해 내 연예인들의 앞길을 막겠다고 협박한다.
하지만 난 그런 일을 당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회장님.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이야기 혹시 들어 본 적 있으십니까?”
야마모토 회장이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머금는다.
“중재를 거절하고도 버텨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군. 알았네. 그렇다면······ 어디 한번 꿈틀거려 보게나. 지렁이처럼!”
무법(無法)하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싶다.
무도(無道)하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고.
그리고 무례(無禮)한 짓을 이렇게도 당당히 말하는데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다.
난 언젠가 그런 세상을 부숴버릴 생각이었다.
다만 우선 당장은 이들과 연결 고리를 끊어버리는 게 우선이었다.
“회장님. 진짜 괜찮으시겠습니까?”
야마모토 회장이 기가 차다는 듯 웃음을 터트린다.
“하하하. 안 괜찮을 건 또 뭔가? 설마 자네가 날 어찌할 수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오늘 박수무당 정 스타로서 살풀이를 한번 해야겠다.
상대가 일본 연예계를 좌지우지하는 실력자라고?
그렇다면 난 이 세상 유일의 회귀자다.
그러니 지금부터 난 미래를 아는 것보다 강한 건 없다는 걸 야마모토 회장에게 알려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