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67화
667. 반격(反擊) 1
강지영 이사는 현재 일본 쪽 협력사를 변경하기 위해 AMOSE의 본사에서 히로시 대표와 협의 중이었다.
그런데 협의가 잘 진행되던 도중 히로시 대표는 내가 오면 후속 이야기를 하자고 했단다.
“제가 가야지 협상을 계속하겠다고요?”
-네. 체리블라썸을 중심으로 합동 콘서트를 할 거라고 말하니까 그 이후로는 정 실장님이 와야 협의하겠다네요.
내 기억 속 히로시 대표는 협상의 달인이었다.
그렇다면 뭔가 우리 쪽에서 내거는 조건이 그의 마음에 들지 않은 게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아 혹시 A1 엔터의 스즈키 대표님과 함께 가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그리고 조금 전에 아리스 프로덕션에게 업무 협력 관계 해지를 통보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뒤처리해야 할 게 좀 있을 것 같습니다.”
난 강지영 대표에게 다나카 대표 그리고 최만식 대표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렸다.
이미 아리스 프로덕션과는 계약 해지를 하기로 되어 있었기에 그녀는 알겠다고 답한다.
-알겠어요. 뒤처리 문제는 우선 여기 일부터 끝내고 하죠.
“예. 그러면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강지영 이사는 다시 회의실로 돌아가서 히로시 대표의 의향을 조금 더 알아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난 스즈키 대표와 함께 클럽을 나섰다.
혹시라도 입구에 차상진 실장이 기다리고 있을까 싶었지만 그는 이미 최만식 대표와 함께 돌아간 이후였다.
난 스즈키 대표가 운전하는 차에 오른 다음 같은 시부야 지역에 있는 AMOSE로 향했다.
* * *
클럽 SIBUYA55를 나온 최만식과 다나카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차상진 양지훈 비서실장과 함께 근처에 있는 다나카 대표의 단골 클럽으로 자리를 옮겼다.
회원제 고급 클럽 남풍(南風).
지배인의 안내를 받고 클럽 VIP 룸에 앉은 최만식은 함께 들어온 차상진에게 정윤호를 관찰한 결과에 대하여 물었다.
그러자 차상진은 정윤호가 마치 일본에 수십 번이나 와본 것처럼 익숙해 보였다고 답했다.
“오는 동안 유심히 지켜봤습니다만 일본에 한두 번 와본 게 아닌 듯했습니다. 길도 잘 알고 일본어도 제법 하더군요.”
“그놈. 우리 회사 들어와서 해외 나간 적이 보홀 나간 거 말고 없잖아. 그전에는 돈이 없어서 한국을 나가지도 못했을 거고. 그런데 어떻게 그게 가능해?”
“그러게나······ 말입니다.”
다나카 역시 비슷한 소리를 한다.
“정 실장의 일본어가 약간 서툴긴 했지만 학원보다는 현지인에게 배운 듯한 말투였습니다.”
최만식은 점점 더 머리가 복잡해졌다.
일본에 와 본 적도 없는 놈이 일본 현지 업무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그 자식 대체 정체가 뭐야!”
일본계 저축 은행과는 협업을 자주 하는 터라 도쿄는 자신에게 익숙한 곳이었다.
그래서 정윤호가 일본 진출을 시도하기 전에 손을 봐두려고 바쁜 와중에 짬을 내서 직접 이곳으로 왔다.
그런데 또다시 정윤호가 그의 앞을 막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말이다.
하지만 최만식은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이대로는 안 돼······.’
아리스 프로덕션과의 협력 관계가 종료되면 그동안 만들어 둔 일본 인맥 전체가 흔들린다.
아리스 프로덕션이야 그저 중견 엔터테인먼트 일뿐이지만 그 뒤에는 일본 연예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바니즈 프로덕션이 있다.
그리고 그 바니즈 프로덕션의 야마모토 회장은 일본 저축 은행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순간 최만식은 양지훈 비서실장을 향해 눈짓했다.
양지훈 비서실장이 차상진을 툭툭 건드리며 함께 일어났다.
“그럼 저흰 클럽 밖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양지훈 비서실장까지 나가고 문이 닫히자 최만식은 그 즉시 다나카에게 말했다.
“다나카 대표. 이대로 물러날 건 아니시죠?”
다나카 대표가 머리를 벅벅 흐트러뜨린다.
“아니······ 내가 뭘 더 할 게 있겠습니까? 다 끝났어요 다!! 이제 우리 회사 법무팀이 날 도와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습니다. 젠X! 빌어먹을!”
최만식은 다나카 대표의 행동이 가소로웠다.
전직 야쿠자라고 강한 척은 다 하더니 상황이 어려워지자 나약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아뇨. 전 이대로 못 끝냅니다. 야마모토 회장님을 독대할 수 있게 자리를 잡아주십쇼. 지금 이 상황을 되돌릴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다나카 대표가 손사래를 친다.
“최 대표. 당신이 우리 회장님 성격을 몰라서 그러나 본데······ 잘못되면 당신이랑 나랑 다 죽습니다.”
“이대로 있으면 어차피 죽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감옥에 처박혀서 비실비실대다가 인생 마감할 겁니까?”
“야마모토 회장님께 잘못 보이면 감옥으로 가기도 전에 인생을 마감할 겁니다!”
최만식은 뜻 모를 미소를 머금었다.
어릴 때 최은태 회장의 눈에 띄기 전 독기 하나로만 길바닥에서 살아온 최만식이었다.
그 치열하던 시절의 독심(毒心)이 위기에 몰린 지금 다시 발현되고 있었다.
“그거야 모르는 일 아닙니까?”
섬뜩한 최만식의 눈빛에 다나카가 움찔한다.
“뭔가 생각이 있습니까?”
“회장님 앞에만 데려다줘요.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설득할 테니까.”
고민하던 다나카 대표가 눈을 질끈 감고 외친다.
“그래요. 갑시다. XX.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다나카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때 문이 열리며 종업원들이 고급 음식들을 들고 들어온다.
최만식이 손을 들어 종업원들을 멈춰 세운다.
“잠깐 우린 바로 나가야 하니까 지금 준비한 이 음식들은 다 포장해서 밖에 있는 비서실장에게 건네줘.”
그 말과 함께 최만식은 1만 엔짜리 10장을 종업원에게 건넸다.
무려 10만 엔.
팁을 포함해도 과한 금액이다.
종업원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다.
“벤또로 포장해드리겠습니다.”
“그래. 벤또는 잘 포장해서 밖에 기다리는 내 비서한테 보내. 그리고 이 클럽에 가장 비싼 술 2병이랑 안줏거리를 최고로 준비해줘. 높으신 분에게 선물할 거니까 신경 쓰라고 해.”
“하이!”
종업원들이 다급히 인터폰으로 마담에게 연락을 넣는다.
“3분 뒤에 나오시면 준비해 놓으시겠답니다.”
“그래.”
종업원들이 음식을 갖고 나가자 최만식과 다나카는 잠시 기다리다가 밖으로 나갔다.
로비에 도착할 무렵 기모노를 입은 마담이 헐레벌떡 주방에서 뛰어나온다.
그녀의 손에는 고급스럽게 포장된 최고급 사케 2병과 고급 안줏거리가 들려있다.
“사케 무니(無二) 2013년 산이에요. 그리고 안줏거리는 화과로 준비해 뒀어요. 화과는 저희 클럽이랑 거래하는 명인이 만든 것인데 상당히 맛있을 거예요. 혹 더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주방에 말해서 바로 챙겨 드릴게요.”
사케 무니(無二) 2013년 산.
클럽에서는 병당 2백만 엔에 파는 최고가 술이다.
그것이 2병.
합계 4백만 엔에 안주만 1백만 엔짜리가 준비되었다.
“됐습니다. 어차피 예의만 보여주면 되는 거라서.”
최만식이 카드를 내밀자 마담이 공손하게 받아서 결제기에 긁은 뒤 되돌려 준다.
최만식은 선물을 양손에 쥐고 심호흡을 한다.
야마모토 회장을 독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갑시다. 다나카 대표.”
“제가······ 운전하지요.”
클럽을 벗어나는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점점 야마모토 회장을 만난다는 압박감은 사라졌다.
그들의 머릿속엔 정윤호라는 풋내기 실장이 남긴 패배감을 씻어낼 생각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 * *
도쿄 한복판 시부야
AMOSE 본사 대형 회의실.
스즈키 대표와 함께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강지영 이사의 옆자리에는 막 일본에 도착한 강감찬 대표가 앉아 있다.
그리고 곁에는 ‘프로젝트 I.O.A’의 심사팀인 안예음 이사 한명호 팀장 유은아 강하나와 함께 세리와 서연우 그리고 방선우까지 와 있다.
세리와 서연우 그리고 방선우는 내일과 모레 이틀간 <프로젝트 I.O.A>의 도쿄 오디션에만 참석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리고 맞은 편에는 AMOSE 의 이토 히로시 대표가 앉아 있다.
뿔테 안경을 쓴 올해 60살의 히로시 대표는 민영 방송사 1위인 후지스 TV 방송국 PD 출신이다.
현역 때부터 워낙 유능한 제작자이다 보니 지금도 여러 방송사와 신문사 실세들과 상당한 인맥을 자랑하는 수완가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AMOSE의 전무와 이사가 그리고 히로시 대표의 자랑이자 AMOSE의 후계자인 올해 30살인 장남 테츠야 본부장이 앉아 있었다.
나와 스즈키 대표가 인사하며 회의실로 들어서자 이토 히로시 대표가 반갑게 얼굴을 반긴다.
“오셨으무니까?”
“반갑습니다. 정윤호 실장이라고 합니다.”
-알고 있으무니다. 전 이토 히로시이무니다. 히로시라고 불러주시면 되므니다.
아내가 한국어에 능통한 재일교포 연예인 출신이다 보니 그 역시 어설프게 한국어를 할 수 있다.
“제가 일본어를 할 수 있으니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히로시 대표가 진땀을 닦으며 일본어로 말한다.
“하하. 다행이군요. 한국말은 너무 어려워서. 그리고 제 한국어보다 정 실장의 일본어가 한 수 위네요.”
난 같이 온 스즈키 대표와 함께 AMOSE의 임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굴렁쇠 엔터 쪽 식구들이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때 옆에 앉은 강감찬 대표가 귀에다 대고 작게 속삭인다.
-다나카와 계약을 깼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상황이 급해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혹시 그사이에 다른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아니. 전혀. 우리도 막 도착해서 대략적인 인사만 나눴다. 그리고 계약 깬 건 잘했다. 이따 이야기하자.
-예.
그때 히로시 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다 모였으니 다시 진행해 보죠.”
그때 강지영 이사가 말한다.
“그전에 제 질문에 대답부터 하세요. 대체 왜 우리 정 실장이 와야지 협상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신 건가요?”
히로시 대표가 날 쳐다보며 씩하고 웃는다.
“정 실장이 세운 일본 진출 계획 중에서 수정을 요구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강지영 이사는 <프로젝트 I.O.A>의 일본 활동 계획과 체리블라썸 강하나 서연우의 일본 진출 계획과 합동 콘서트 계획을 브리핑했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 계획을 수정하고 싶다고 한다.
강지영 이사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대체 무슨 계획을 어떻게 수정하길래 정 실장님까지 부른 거죠?”
히로시 대표가 능글맞게 웃으며 답한다.
“정 실장님이 체리블라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걸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어떤 협상을 하든 정 실장님이 있어야 결론이 날 거 같아서 불렀습니다.”
강지영 이사가 조금은 언짢은 표정을 짓는다.
본인이 모든 협상을 책임진 이사인데 내가 와야 말을 하겠다는 건 우리 측을 무시한 태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히로시 대표가 이번 협상을 위해 강지영 이사를 흔드는 것임을 깨달았다.
일부러 시간을 두고 답답하게 만드는 건 히로시 대표의 특기였으니까.
난 즉시 강지영 이사에게 흔들리면 안 된다고 경고를 하려 했다.
그러나 그때였다.
히로시 대표를 상대해온 강지영 이사가 의도를 알아차리고선 반격을 가한다.
“에이~ 그런 거라면 그냥 말씀하시죠. 난 또 계약을 아예 파기하자는 줄 알았잖아요. 그냥 돌아갈까 했는데.”
상대는 잽을 날렸는데 강지영 이사는 웃으며 카운터펀치를 날려버렸다.
수가 틀리면 협상이고 뭐고 판을 엎겠다고 말이다.
순간 히로시 대표가 제법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내뱉는다.
“하하하. 어렵게 만든 자리인데 그래서는 안 되죠. 하하하.”
히로시 대표가 한발 물러나자 강지영 이사도 한발 물러난다.
“사과하시니 그 일은 넘어가죠.”
서로 한 수를 주고받았다.
“하여간 본론부터 말씀해 보세요. 저희 대표님이랑 연예인들. 공항에서 바로 와서 많이 피곤하시거든요.”
삽시간에 기세 싸움에서 밀린 히로시 대표가 헛기침하고 말한다.
“일본에서 합동 콘서트를 한다는 계획을 단독 콘서트로 변경해 주셨으면 합니다.”
“단독······ 으로요?”
“예. 합동 콘이라고 해도 어차피 체리블라썸이 핵심이잖습니까? 그러니까 단독 콘서트만 했으면 합니다. 그러면 선 계약금 50억에 수익 배분을 6:4로 해드리죠. 여기서 6은 굴렁쇠 엔터의 몫입니다. 기간은 3년이고요.”
체리블라썸의 한국 내 인기 때문에 일본 내 K-POP 팬들에게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상태였다.
하지만 합동 콘서트 멤버인 강하나는 독특한 보컬 음색으로 인해 마니아 층만을 갖고 있었다.
서연우는 이제 막 <화연가>로 1위를 한 터라 일본 내 몇몇 작은 커뮤니티에서만 알려져 있고.
그러다 보니 히로시 대표는 그중 알맹이만 쏙 빼서 먹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 양반. 여전하네.’
언뜻 좋아 보이는 제안을 하지만 그는 이득을 귀신같이 챙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제안에는 큰 맹점이 하나 숨어 있었다.
그걸 말하려는 순간 강지영 이사와 강감찬 대표가 날 쳐다본다.
경험이 많은 두 사람도 알아차린 게 확실했다.
그 순간 강지영 이사가 본때를 보여주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런 거라면 내 전문이지.
난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맡겠다고 신호를 보냈다.
강지영 이사가 경쾌한 목소리로 히로시 대표에게 말한다.
“그런 일이라면 정 실장과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좋겠네요.”
히로시 대표가 잘 되었다는 눈빛을 하고 날 바라본다.
“하하. 하긴 기획 초안을 짠 게 정 실장이라고 했으니까. 알겠습니다.”
히로시 대표가 자신만만하게 묻는다.
“어때요? 내 조건이. 이만하면 최상급 조건일 텐데요?”
난 흐뭇하게 웃는 히로시 대표를 똑바로 쳐다보며 답했다.
“불.가.합니다.”
“나니~?”
‘뭐라고’라고 되묻는 일본어가 히로시 대표의 입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 * *
단독 콘서트가 더 많은 돈을 벌고 팬들 또한 바란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합동 콘서트를 기획하는 이유는 너무도 간단했다.
체리블라썸이 너무 빨리 성공하는 바람에 콘서트를 할만한 곡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체리블라썸을 메인으로 부족한 세트리스트를 강하나나 서연우 그리고 김종훈 같은 게스트로 채워 합동 콘서트를 기획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이라도 체리블라썸을 잠도 안 재우고 콘서트 트레이닝만을 시키면 6개월 안에도 단독 콘서트가 가능하다.
하지만 난 당장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
소중한 내 연예인의 수명을 깎아서 트레이닝 시키면서까지 돈을 벌게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였다.
게다가 일본에서 단독 콘서트를 성공시키려면 일본어 앨범을 낸 뒤 한국 활동을 포기하고서 일본 활동에만 매달려야만 했다.
즉 지금 히로시 대표가 한 제안은 50억의 계약금을 받는 대신 한국에서 인기를 잃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히로시 대표는 그걸 고려하더라도 50억이란 계약금을 단번에 거절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아니! 정 실장. 일본 음반 시장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까? 체리블라썸 정도면 오리콘 차트 1위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 전역에서 돈을 쓸어 담을 거란 말입니다.”
“저도 우리 체리블라썸의 일본 성공을 의심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겠죠. 그리고 그 시간 동안 한국 수입은 포기해야 하고요.”
히로시 대표가 조금은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 말한다.
“그 그래도 일본 수익이면 그걸 보상하고도 남을 겁니다. 세계 2위의 거대한 시장이 일본입니다. 한국과는 규모가 다릅니다.”
난 피식 웃으며 답했다.
“올 한해 우리 체리블라썸 혼자서 벌어들이는 돈을 알면 그런 말씀 안 나오실 텐데요?”
“대체 얼마나 되길래요?”
“350억 플러스 알파로 예상합니다.”
“나 나니~?”
히로시 대표의 입이 다시 한번 쩍하고 벌어진다.
물론 한때는 일본이 매력적인 시장인 건 분명했다.
그러나 이젠 한국이란 본진을 놓고 갈 수는 없었다.
한국 음반 시장이 거의 없는 건 사실이지만 광고 수익과 행사 수익이 예전과는 비할 바 없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예능이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체리블라썸의 삽입곡도 알려지는 중이었다.
즉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기에는 일본보다는 한국이 유리해진 상황이었다.
결국 히로시 대표는 옆에 앉은 임원들과 귓속말로 속삭이며 대안을 마련한다.
한참을 속삭인 히로시 대표가 고개를 끄덕인다.
임원들과 대화를 끝낸 히로시 대표는 심호흡한다.
그러고선 작정한 듯 어마어마한 두 번째 제안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