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6화
656. 한소원 2
김수명 원장이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애가 영양실조입니다.”
“영양······ 실조요?”
“예. 애가 너무 씩씩해서 처음엔 몰랐는데 검진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빈혈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는데 영양실조라니.
믿기지 않았다.
“설마 빈혈 때문에 생긴 겁니까?”
“아뇨. 단지 빈혈 때문에 생겼다기에는 상태가 안 좋습니다.”
“그러면요?”
김수명 원장이 고심하다 묻는다.
“이 아이. 혹시 소속사에 소속되어 있었습니까? 거기서 다이어트 혹독하게 시키면서 연습을 했다던가요?”
“아뇨. 학원 두 달 다니고 그 뒤로는 코인 노래방에서만 혼자서 연습했다던 아이입니다.”
김수명 원장이 머리를 긁는다.
“하~ 그런데 왜 저렇지? 거식증 증상은 없던데······.”
난 혹시나 하고 물었다.
“따로 문진을 안 해 보셨습니까?”
“진료를 시작하는 데 애 상태가 생각보다 안 좋아서 링거부터 꽂았습니다. 그런데 누우니까 바로 자버리네요.”
영양실조에 수면 부족이라니.
아이돌이 되기 위해서 식사를 참으면서 연습하면 생길 수가 있는 일이긴 하지만 소속사가 없는 일반인이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관리받는 아이들도 몰래 간식을 먹어대서 다이어트가 쉽지 않은데.
직접 물어볼까 했지만 지금부터 2시간은 푹 자게 두는 것이 좋단다.
“그나저나 문진도 제대로 못 할 정도인데 어떻게 참고 여기까지 왔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회귀 전 한소원이 얼마나 참을성이 있는 아이인지 떠올랐기에 씁쓸한 표정으로 답했다.
“애가······ 참을성이 참 많습니다.”
한소원은 현재 서울 이모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보니 함부로 불만을 이야기할 사람도 없었을 거다.
게다가 회귀 전에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절대 남에게 하지 않았다.
웃고 다녀서 그리 보이지 않지만 그녀는 악바리였기 때문이다.
“일단 채혈해 놨으니까 검사 결과가 정확히 나오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부모님은 안 오십니까?”
“엄마 혼자 계신 데 대전에 있습니다. 쟤는 서울 이모 집에서 살고 있고요.”
“그렇다면 서울 이모라도 부르시는 게······.”
“아뇨. 쟤가 오디션에 합격한 이상 관리 책임은 제게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진료해 주십시오. 이따가 어머니랑 통화하고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정확한 검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연락해 드리겠습니다.”
김수명 원장이 다시 진료실로 들어갔다.
나는 잠시 자리에 앉아 회귀 전 기억을 떠올려봤지만 한소원에게 빈혈이 있다는 것 정도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를 만난 것부터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그녀는 홀로 자취하고 있었고 엄마가 보내주는 생활비로 연습생 생활을 했다는 것만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아무래도 그녀의 엄마에게 직접 연락해서 알아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난 잠시 심호흡을 한 뒤 한소원의 엄마에게 영상 통화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벨소리가 울리더니 전화가 닿았다.
“소원이 어머니. 조금 전에 연락드린 정윤호 실장입니다.”
영상 통화 화면에선 한소원이 닮은 40대의 여성이 피곤해 보이는 표정으로 전화를 받는다.
-아 안녕하세요 정 실장님. TV에서 뵌 거랑 똑같네요.
이태풍과 유진이의 매니저로 알려지다 보니 이젠 내 얼굴이 명함이다.
“소원이가 요새 잠이 좀 부족하다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이 있어서 일단 링거 맞고 있습니다. 그런데 애가 피곤한지 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일어나면 영상 통화 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한소원의 엄마 정혜수가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다.
-우리 소원이. 괜찮아요?
정확한 사정도 알지 못하는데 영양실조에 대해서 언급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난 약간은 두루뭉술하게 답했다.
“약간의 빈혈 증상이 있긴 한데 자세한 건 혈액 검사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문제가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꼭 좀 부탁드려요. 저한테는 우리 소원이밖에 없어요.
하나밖에 없는 딸이 외지에 있다 보니 그녀의 어머니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그녀를 달랬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 원장님이 체리블라썸이랑 저희 회사 배우들을 관리하는 능력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오디션 참가할 때 부모님 위임장 보내주신 거 기억나시죠? 그 위임장이 있어서 병원 문제도 제가 바로 처리했는데······ 알고 계십니까?”
합숙 생활을 하다 보면 미성년자들의 부모를 대신해 회사가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학교의 출결 문제나 병원에 데려가는 것 등등.
그래서 2차 오디션 동영상을 보낼 때 부모의 위임 동의서도 도장을 찍어 보내도록 해 놓았었다.
당연히 한소원의 것도 받은 상태였고.
-예. 알고 있습니다. 실장님.
“그러니까 안심하십시오.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즉각 처리하고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전 24시간 연락이 되니까 불안하면 언제든지 전화하셔도 되고요.”
그제야 정혜수의 얼굴에 약간의 안도감이 깃든다.
-감사합니다 실장님.
그녀가 안심한 터라 그제야 난 사정을 묻기 시작했다.
한소원이 왜 이런 몸 상태를 가지게 되었는지 엄마라면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혹시 소원이에 대해서 제가 알아둬야 할 게 있습니까? 뭐 알레르기나 학교생활 등등. 유념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 정도요?”
-아 그게요······.
한소원의 엄마 정혜수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어릴 때 플라스틱 칼싸움을 하다가 머리에 작은 땜빵이 생겼다든가 골목대장이었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을 말이다.
그렇게 두 모녀만이 알고 있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서울에 올라온 뒤로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한소원의 엄마 정혜수는 새벽까지 식당 아르바이트 청소 아르바이트하며 딸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돈을 안 보내준 건 아니구나.’
많은 걸 알 수 있었지만 한 편으로는 깊은 후회가 밀려왔다.
회귀 전 난 내 일이 바빠 연예인들의 가족 사정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진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등한시했다고 봐야 한다.
매니저로서 스타들을 관리하는 것 말고도 기자 제작자 방송국 관계자들과 관계를 다지느라 바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 빠르게 머리를 털었다.
이미 지나간 일일 뿐.
후회는 과거에 남겨두고 두 번째 인생이라도 제대로 살면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알겠습니다. 자세한 건 소원이 깨어나면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쉽게도 엄마와의 대화로는 한소원이 영양실조에 걸린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그녀가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아 맞다. 그리고 학원에서 필요한 추가 레슨비 같은 거 모자라면 꼭 이야기해달라고 해주세요. 제가 어떻게 해서든 보내준다고요.
학원에서 필요한 추가 레슨비?
한소원이 학원을 다닌다고?
그녀는 두 달 정도 맛보기로 학원을 경험했다고 말했는데?
그 순간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감싼다.
한소원의 성격상 엄마를 속이고 돈을 떼먹을 아이는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학교 일진한테 갈취를 당하기라도 하는 건가?’
그런 의심이 생긴 난 그녀에게 다시 질문했다.
“어머니.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서울에 올라와서부터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애 뒷바라지에 얼마가 들었다든지 하는 거요.”
-아 그게요······.
한소원 엄마인 정혜수의 말이 이어진다.
정혜수는 매달 300만 원씩 그녀의 여동생에게 생활비와 학원비로 보내줬다고 한다.
그러다 2개월이 지난 뒤부터는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일을 쉬다 보니 200만 원씩을 보내고 있었다.
보컬과 댄스를 동시에 배우는 학원은 레슨 횟수에 따라 대략 60만 원에서 1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학원비를 제외하고도 충분히 많은 돈을 보냈는데 한소원은 아르바이트까지 하고 있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기에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저기 어머님. 그러면 혹시 소원이가 별도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아 예. 그건 코인 노래방에서 한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들었어요. 하루에 2시간 하는데 그건 노래를 마음껏 연습할 수 있어서 그런다고 하던데요? 사장님이 참 좋으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 알았지만 시간을 다르게 알고 있다.
현재 팔팔 코인 노래방에서 일해주는 대타 이호재는 2시간이 아니라 5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서로 사이가 좋은 두 모녀의 말이 다르다니.
뭔가 사정이 있는 게 확실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잘 참고해서 우리 소원이 꿈 이룰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영상 통화 화면에 대고 미소를 짓자 정혜수 역시 안심하는 미소를 짓는다.
-우리 실장님이 세세하게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병원비는 제가 지금 보내겠습니다. 계좌 번호를 알려주시면······.
“돈 걱정은 마십시오. 오디션에 합격한 이상 회사에서 책임질 테니까요.”
-그래도 그게 예의가 아니죠.
“정말 괜찮습니다.”
그때였다.
정혜수가 고개를 천천히 숙인다.
생판 남인데다가 나이도 한참 어린 내게 말이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실장님. 우리 딸.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간절한 그녀의 마음이 와 닿았기에 나 또한 정중히 답했다.
“맡겨 주신 따님. 최선을 다해 돌보겠습니다.”
고개를 든 정혜수가 생긋 웃더니 주춤거리며 말한다.
-그러면 저기······ 저는 또 일을 나가봐서요.
“알겠습니다. 어머님. 소원이 일어나면 전화 드리겠습니다.”
-한 2시간 뒤에는 통화 가능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그녀와 다음 통화 시간을 정한 뒤 전화를 끊었다.
달칵.
전화를 끊고 나자 수도 없는 상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생각에 빠져 있을 시간에 조사를 하는 게 낫다 싶었다.
난 그 즉시 오늘 팔팔 코인 노래방에 대타로 아르바이트하는 이호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쿵쿵쿵. 나의~~~ 사랑~~~ 예 형님! 말씀하세요~
노래방에서 흘러나오는 고성에 섞인 이호재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 호재야. 거기 사장한테 한소원에 대해서 좀 물어봐 줄 수 있을까?”
-왜요?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난 이호재에게 한소원의 엄마가 생활비와 학원비로 수백만 원을 보냈는데도 한소원이 영양실조에 걸린 데다가 학원도 안 다닌다는 사실을 전했다.
-뭐라고요?
“그래서 말인데 일진한테 갈취당하는 건지 알아보고 싶어. 애가 절대로 다른 곳에 돈을 쓸 애는 아니거든.”
-알겠습니다. 바로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이호재가 당장 알아보겠다며 전화를 끊는다.
현재 시각 오후 6시 30분.
초조한 시각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 * *
오후 7시.
30분 동안이나 전화가 없어서 다시 전화하려던 찰나 이호재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그런데 이호재가 대뜸 거친 말을 내뱉는다.
-형님. 한소원 걔 이모부와 이모가 범인입니다. 와~ 그 인간들 완전 쓰레기던데요?
“그게 뭔 소리야?”
이호재는 노래방 사장과 이야기를 나눈 뒤 마침 팔팔 코인 노래방에 놀러 온 한소원의 학교 친구들에게도 물어보고 사정을 알았다고 한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한두 달은 학원을 보내줬대요. 그런데 엄마가 보내오는 돈이 줄어드니까 바로 학원부터 끊었답니다. 그리고 애한테는 엄마한테 받은 돈을 일절 안 나눠 주고요.
“용돈을 안 줘?”
-그뿐이 아닙니다. 저녁때 집에 가도 밥을 안 주고 애가 필요한 생필품이나 그런 것도 안 사준대요. 학교 급식비나 필요한 돈도 전부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내고 있답니다. 형님 이거 가만 놔두면 안 됩니다!
“가족이라는 인간들이 돈에 눈이 멀어서 그딴 짓을 해?”
-이모 딸 둘도 아이돌 연습생이다 보니 딸보다 한소원이 잘난 걸 시기해서 그런 것도 있나 보더라고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애써 화를 억눌렀다.
지금부터 일을 처리하려면 냉철해야 했기 때문이다.
난 심호흡하며 분노로 끓어오르는 마음을 달랜 뒤 이호재에게 말했다.
“그런데 왜 엄마한테 그런 사정을 이야기 안 했대?”
-쫓겨나면 대전으로 내려가야 할까 봐서 그랬답니다. 아직 미성년자다 보니까 혼자서 서울에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서울 아니면 연예인 되기가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참았다고 합니다.
한소원의 이모와 이모부는 함부로 입 놀리면 집에서 쫓아낸다고 협박했단다.
차라리 오디션을 보고 소속사에라도 들어갔다면 좋았을 텐데 아르바이트를 빼고서 오디션을 보러 갈 형편이 안 되었다고 한다.
-그나마 여기 팔팔 코인 노래방 사장님이 빵하고 우유를 챙겨줘서 먹곤 했답니다.
그제야 왜 한소원이 팔팔 코인 노래방 사장님께 감사하다고 말한 건지 알 것 같았다.
사정을 안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해졌다.
한소원을 그 집에서 빼내는 것.
그리고 한소원에게 힘들게 한 두 사람을 처리하는 것 말이다.
“수고했다. 호재야.”
-형님. 어쩌시려고요?
“빼내야지.”
-그럼 제가 가겠습니다.
“거기 어쩌고?”
-여긴 동진이한테 대타로 맡기려고요. 어차피 자세한 사정 아는 건 저뿐이잖습니까?
이호재의 말대로 사정을 아는 녀석이 있다면 해결에 도움이 된다.
“그럼 수명 클리닉에서 보자.”
-예! 금방 가겠습니다.
난 전화를 끊고 회사와 이동민 실장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한소원을 구하려면 회사 직원들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 *
2시간이 지나자 이동민 실장은 <프로젝트 I.O.A> 팀원들과의 회의 결과를 알려왔다.
-한소원 말고도 비슷한 사례가 있을 수 있으니까 숙소는 회사 앞에 DH 빌라로 정했다. 별도로 트레이닝까지 하면 구설수가 생길 수 있으니까 그것까진 힘들고.
“대리인과 숙소만 지원해 주면 충분할 겁니다.”
-법적인 문제야 회사가 대리하니까 그건 문제없겠네. 아 그리고 그래도 안 되면 연락해. ‘프로젝트 I.O.A’ 방송으로 내보내 버리지 뭐.
“예. 그건 정 안 되면 그렇게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오케이. 그런데 만약에 소원이가 최종 라운드에서 떨어지게 되면 그땐 어떻게 하려고?
이동민 실장의 입장에선 한소원이 I.O.A의 멤버가 되지 않을 경우를 예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소원의 실력이면 솔로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기에 편하게 대답했다.
“그 뒤는 제가 알아서 관리하겠습니다. 최종 합격이 안 되어도 그 정도 마스크에 실력이면 어디 갈 데가 없겠습니까? 트레이닝 시간이 필요하긴 해도 어디든 데뷔조에 들어갈 거 같은데요? 정 안 되면 솔로로 키워도 되고요.”
-하긴 알았다. 그리고 네가 힘들면 나한테 말해. 내가 아는 소속사도 있으니까. 아니면 우리 가수 2실이 키워도 되고.
“예. 실장님.”
그렇게 대책을 세우고 전화를 끊었다.
검사를 마친 김수명 원장이 다가온다.
“다행히 영양실조가 매우 심한 건 아니네요. 다만 빈혈 상태가 생각한 것보다 안 좋으니까 약은 잊지 말고 잘 먹이세요.”
노래방 사장님이 준 빵과 우유 덕분에 사태가 심각해지는 걸 막은 모양이다.
“예.”
“그런데 혹시 어떻게 된 건지 알아내셨습니까?”
난 그 즉시 그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말해줬다.
김수명 원장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하여간 세상 참. 시대가 어떤 시댄데 그런 놈들이······ 설마 그냥 두실 건 아니죠?”
“지금 처리할 생각입니다.”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이야기해주십시오. 법원에 나가는 한이 있어도 증언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때 진료실 안에서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린다.
-하아~ 이게 뭐야······.
이게 뭐라니?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즉시 김수명 원장에게 말했다.
“소원이가 일어났나 보네요.”
“예. 들어가시죠.”
난 즉시 김수명 원장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갔다.
달칵.
한소원이 눈을 비비며 폰을 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들어가자 깜짝 놀라서 외친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피곤해서 깜빡 잠들었나 봐요.”
“괜찮아. 졸리면 잘 수도 있지.”
난 심호흡을 하곤 한소원이 누워있는 침대 옆 낮은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내가 알아낸 사실을 찬찬히 털어놓았다.
“소원아. 너 자는 동안 알아봤는데······ 너희 이모랑 이모부가 너한테 들어갈 돈을 다 쓰고 있던데 맞니?”
한소원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린다.
“호 혹시 그거 엄마한테 말씀하셨어요?”
“아니.”
이제껏 씩씩한 모습만 보여주던 한소원이 처음으로 걱정 가득한 눈으로 애원하기 시작한다.
“실장님. 그거 엄마한테 말하지 마세요. 저 그 집에서 쫓겨나면 학교에도 못 다녀요. ‘프로젝트 I.O.A’에 떨어지면 다시 학교 다니면서 다른 오디션 봐야 하는데 이모 집에서 나가면 서울에 갈 곳이 없어요.”
나한테 도와달라고 요청할 줄 알았다.
그런데 한소원은 합격도 아닌 <프로젝트 I.O.A>의 탈락 이후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왜 네가 떨어질 거라고 생각해? 아까 심사위원들이 칭찬하는 거 못 들었어?”
“들었어요.”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을 해?”
그 순간 한소원이 조금 전까지 보고 있던 폰 액정을 내 쪽으로 내민다.
[@ENT_jjirasi]
[게시물 1237 팔로워 51만 팔로잉 0]
-<프로젝트 I.O.A> 서울 지역 예선 유력 후보 명단.
다들 장난 아님.
빽이 없으면 최종 합격하기 힘들 듯?
1. 고은서 (얼짱 한일예고 1학년)
2. 성나라 (전 FIVE 엔젤스 얼짱 멤버)
3. 예성연 (중견기업 A사 막내딸 성지예고 2학년) ······
연예계의 찌라시를 다루는 유명한 ENT_jjirasi 스타그램 계정에는 벌써 유력 후보들 이름이 올라오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선 최종 선발이 되려면 빽이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죽을 만큼 열심히 해도 저처럼 빽 없는 애는 최종 라운드 통과가 힘들잖아요. 그러니까 오디션에 떨어지면 다른 오디션에 지원하기 위해서라도 서울 이모 집에 붙어 있어야 해서요. 그러니까 엄마한테는 이야기하지 말아 주세요. 제가 오디션 붙고 나면 그때 엄마한테 말 할게요.”
한소원은 앞으로도 이 고통을 참겠다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어이가 없었다.
빽이 없으면 안 된다고?
<프로젝트 I.O.A>에서 그딴 건 필요 없다고 외치려던 그 순간 더 좋은 대답이 머릿속을 스쳤다.
난 심호흡을 한 뒤 한소원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 빽. 내가 되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