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4화
654. 하나의 회사 2
강지영 이사는 김장비 본부장을 노려보며 합병 후 참아왔던 말을 내뱉었다.
“앞으로는 관우 엔터 출신 매니저들의 업무들도 모조리 보고 하세요. 그러면 윤 실장의 무례를 용서해 드리죠.”
굴렁쇠와 관우 엔터가 하나의 회사로 합병을 했지만 관우 엔터 출신의 업무 보고 체계는 굴렁쇠 엔터와 별개였다.
관우 엔터 출신의 매니저들은 김장비 본부장에게만 보고했고 김장비 본부장은 강지영 이사를 패싱해서 김관우 부대표에게만 보고했었다.
즉 하나의 회사안에 두 개의 회사가 존재하던 셈이다.
하지만 강지영 이사는 더는 그걸 용납할 수 없으며 자신이 직접 관리하겠다고 나섰다.
이사로서는 당연한 권리지만 관우 엔터 출신의 매니저들로서는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다.
이제껏 자율적으로 움직이던 그들의 행보에 커다란 제약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당황한 김장비 본부장이 대답을 주저하다 입을 열기 시작한다.
“이사님.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강지영 이사가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그럼 누가 결정합니까?”
“그 그건······.”
김장비 본부장이 말을 더듬거리자 강지영 이사는 거칠게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회사가 합병했으면 직위 체계에 맞게 일을 해야죠. 내가 아무 말 안 하고 있으니 호구로 보이던가요? 그동안 아무 말 안 하고 넘어간 건 적응할 수 있도록 시간을 드린 것뿐이에요. 아시겠어요?”
“그 그래도 갑자기 이러시는 건 좀 아닌 듯합니다. 저도 형님과 이야기를 좀 나눠야 하고요.”
“아 진짜 말 많으시네! 정당한 업무 지시를 하는데 왜 자꾸 헛소리하세요? 싫으면 관두세요. 즉시 징계 위원회를 소집할 테니까요!”
강지영 이사가 윤동구 실장에 대한 징계위를 바로 열겠다는 윽박을 한다.
김장비 본부장이 얼굴을 찌푸린 채 주변을 쳐다본다.
그러나 같은 관우 엔터 출신의 매니저들 또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강지영 이사가 사실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인데다가 윤동구 실장이 저질러선 안 되는 실수까지 저질러 버렸기에 일을 뒷수습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김장비 본부장은 자기편에 선 모든 이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결국 두 손을 들었다.
관우 엔터 출신 중 가장 돈을 잘 버는 윤동구 실장을 지키려면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내일부터 보고는 제가 모아서 직접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김장비 본부장이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띄엄띄엄 답했다.
“알겠어요. 그리고 중간에서 보고 빼먹을 생각하지 마세요. 만에 하나 내 귀에 다른 소리가 들린다면 그땐 본부장님이 책임을 지셔야 할 거예요. 아시겠어요?”
강지영 이사는 김장비 본부장까지 옭아매는 수완을 보여주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김장비 본부장은 모두의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역시 강지영 이사다웠다.
상대의 실수를 이용해 완전한 역전 한판을 이뤄내다니.
회귀 전에 굴렁쇠 엔터를 혼자서 지탱한 능력자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직 강지영 이사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아 그리고 또 하나 더 있어요.”
김장비 본부장의 얼굴이 썩어간다.
“또요?”
“아 이번엔 간단한 거니 걱정하지 마세요. 윤동구 씨가 저에게 직접 사과만 하면 돼요.”
김장비 본부장이 발끈한다.
“아니······ 제가 대신 사과했잖습니까? 그리고 내일부터 업무 보고도 한다고 말씀드렸고요.”
“그랬었죠.”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그건 강지영 이사로서의 요구 조건이었고 지금은 강지영 개인의 요구 조건이에요.”
어쩐지 윤동구 실장을 직위도 없이 씨라고 부른다 싶었다.
원래 강지영 이사는 방송 3사의 대표들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수완가였다.
그런 재능이 지금 이렇게 여기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장비 본부장이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마치 자신이 사과하는 것보다 더욱 어렵다는 듯 말이다.
“왜요? 사과가 싫으면 그냥 법대로 할까요?”
강지영 이사가 결코 쉽게 물러설 기색이 없자 김장비 본부장이 한숨을 내쉬고 답한다.
“아닙니다. 잠시 전화 좀 하고 들어오겠습니다.”
“그러세요.”
김장비 본부장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며 회의실을 나선다.
쿵.
잠시 적막이 이어진다.
하지만 강지영 이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김장비 본부장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달칵.
회의실의 문이 다시 열리더니 김장비 본부장이 돌아왔다.
“지금 바로 온답니다.”
“알겠어요.”
강지영 이사는 그 말을 끝으로 윤동구 실장이 오기를 기다렸다.
회의실에는 매니저들이 숨도 제대로 못 쉰 채로 그녀의 눈치만을 보고 있어야만 했다.
달칵.
회의실의 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윤동구 실장이 들어온다.
나갈 때는 발갛게 단 얼굴로 나갔는데 들어왔을 땐 잿빛으로 얼굴이 변해 있었다.
그는 터벅터벅 걸어온 다음 강지영 이사의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모두의 시선이 한데 몰린 그때였다.
주먹을 꽉 쥔 윤동구 실장이 결국엔 눈을 꼭 감고 허리를 반으로 굽혔다.
“죄송······합니다.”
떨어지지 않던 입에서 겨우 작은 목소리가 나왔지만 회의실에 있는 사람 중 그 말을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강지영 이사는 그를 빤히 쳐다보다 답한다.
“군말 안 하고 사과하셨으니 나도 이번 한 번은 봐 드릴게요. 앞으로는 입조심 하세요. 아시겠어요?”
“예······.”
“그리고 본부장님한테 들었을지 모르겠는데 앞으로는 보고 체계 분명히 하세요. 아 그리고 윤 실장님이 ‘베리식스’ 걱정 많이 하시던데 나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친구들이니까 그 친구들 일에 관한 거라면 본부장님 말고 저한테도 보고하시고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마친 윤동구 실장은 그대로 몸을 돌려 회의실에서 나가려고 한다.
하지만 그때였다.
“뭐해요? 회의 아직 안 끝났으니까 자리에 앉으셔야죠?”
용서는 용서고 일은 일.
엉망진창으로 멘탈이 나가 버린 윤동구 실장을 기어이 꿇리는 강지영 이사였다.
강지영 이사의 진짜 모습을 처음 본 관우 엔터 출신 매니저들 표정이 돌처럼 딱딱해졌다.
특히나 승기를 잡은 순간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 집요한 모습에 몇몇 이들은 기가 질린 표정마저 짓고 있었다.
그사이 윤동구 실장이 자리에 앉자 강지영 이사가 단호하게 말한다.
“회의 계속 이어갑니다.”
합병 이후 늘 두 개처럼 나뉘었던 굴렁쇠 엔터가 강지영 본부장이 휘어잡은 덕분에 처음으로 하나의 조직이 되었다.
윤동구 실장이 반기를 들었을 때 응원하던 관우 엔터 출신 매니저들도 지금은 바짝 군기가 든 모습이었다.
비록 다들 속으로는 딴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최소한 하나의 회사가 될 토대는 이뤄졌다.
그렇다면 이제 난 조만간 관우 엔터 쪽의 실장급들을 하나씩 제거해야겠다.
진짜로 하나가 된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
* * *
회의가 끝나자 이동민 실장은 <프로젝트 I.O.A> 오디션 둘째 날 일정을 위해 가수 파트 담당 매니저들을 이끌고 먼저 장충체육관으로 떠났다.
그리고 난 배우팀에게 업무 분담을 하기 위해 다시금 회의실로 돌아와 우리 부서 배우 파트들을 불렀다.
곧 박인기 팀장 남판규 팀장 연소희 팀장과 이영진이 달려왔다.
정상봉과 난 당분간 <프로젝트 I.O.A>에 전념해야 했기에 이영진에게 업무 분담을 요청했다.
“영진아. 상봉이는 당분간 ‘프로젝트 I.O.A’를 담당하니까 네가 당분간 상봉이 일을 좀 대신해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우선 유진이부터. 유진이는 화란전의 평균 시청률이 26%를 넘어서도 계속 상승 중이니까 당분간 관련 배우들 앞으로 광고랑 섭외가 쏟아질 거야. 나가기 힘들더라도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해. 요즘 PD들 분위기 까칠하니까.”
“예.”
“아 그리고 하루 요즘에 성장통 때문에 고생하니까 스케줄 하더라도 약 꼭꼭 잊지 않고 먹이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루가 180cm를 넘길 때까지는 제가 직접 챙기겠습니다.”
“오케이. 그리고 태풍이랑 재수 씨는 수요일까지 매진 떴으니까 홍보팀이랑 업무 협의 잘해. 관객 수는 250만 명부터는 50만 명 단위로 알려줘. 300만 명부터 이벤트 할 건데 매 100만 명 단위로 이벤트 벌일 거니까 기획서 올리고. 아 그리고 두 사람이 광고 모델인 ‘THE 베스트’ 판매량도 체크해. 진성 식품 쪽에서 도와줄 거야.”
숨도 쉬지 않고 지시를 내리자 이영진이 헛웃음을 짓기 시작한다.
“시······ 실장님. 저 죽이시려는 거 아니죠?”
“내가 널 왜 죽여?”
잘 키운 매니저가 얼마나 구하기 힘든데 무슨 그런 무서운 소리를.
난 만약 이영진이 죽는다고 해도 반드시 살려낼 거다.
일을 해야 하니까.
그런 내 결연한 의지를 읽었는지 옆에서 보고 있던 박인기 팀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그러다 우리 이 대리 허리 휘겠습니다. 너무 이 대리만 괴롭히지 마시고 저희에게도 분담해 주시죠. 한 사람이 종일 할 일도 여럿이서 하면 금방 할 수 있으니까요.”
연소희 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실장님 때문에 빛을 못 봐서 그렇지 이 대리 정도면 어떤 회사를 가든지 팀장 역할은 너끈히 할 친구예요. 그렇게 빡빡하게 업무를 시키지 않아도 이미 대리가 아니라 팀장급 능력은 다 된 거 같은데요?”
남판규 팀장도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볼 때도 그렇습니다. 정 실장님과 함께 다니면서 배워서 그렇지 현장에서 우리 이 대리의 업무 처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PD와 CP들의 칭찬이 자자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이영진도 주변인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다.
사실 이영진에게 일을 많이 떠넘기는 건 승진 때 뒷말이 나올 여지를 없애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나조차 초고속 승진을 했는데 동기이자 친구인 이영진도 승진을 빨리하는 건 뒷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팀장으로 올리고 신입 직원을 붙여줘도 될 거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늦어도 6월까지는 영진이도 팀장 직함을 안기죠. 제가 방금 내린 업무 지시는 같이 좀 나눠서 하시고요.”
연소희 팀장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실장님.”
그 순간 이영진을 가장 오래 봐 왔던 박인기 팀장은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어이~ 이영진 대리. 축하한다. 초고속 승진하게 생겼네?”
그때였다.
정작 본인이 다급히 손을 휘젓는다.
“전 반대입니다!”
“왜?”
사색이 된 이영진이 외친다.
“조금······ 조금만······ 천천히 승진하고 싶습니다!”
“아니. 우리 팀장님들이 입을 모아서 너 능력 된다고 보증하셨는데 뭘 천천히 해?”
이영진이 날 보며 애원한다.
안 돼 돌아가.
들어줄 마음 없어.
단호한 눈빛을 보여주자 이영진이 눈을 질끈 감더니 조건을 건다.
“그 그러면 란희도 같이 승진하기 전에는 전 안 합니다! 아니 못 해요!”
이영진이 여자친구를 위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왠지 느낌이 묘하다.
뭐랄까?
물귀신 작전이랄까?
하지만 나로서는 팀장이 2명이나 늘어나면 무조건 오케이지.
도란희도 역시도 강하나와 세리 그리고 체리블라썸의 일 대부분을 처리하느라 능력 있단 소리를 듣고 있기에 비슷한 시기에 승진시킬 생각이긴 했었고.
“콜~”
“하~”
이영진이 한숨을 내쉰다.
아무래도 도란희에게는 꼭 전해줘야겠다.
본인의 남자친구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팀장으로 꼭 함께 승진을 부탁하더라고 말이다.
* * *
<프로젝트 I.O.A>의 오디션 둘째 날.
어제의 밝은 분위기와는 달리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는 <프로젝트 I.O.A>의 이틀째 오디션 현장은 날이 서 있었다.
오디션에 오기로 한 아이들이 많이들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오디션 참석자가 왜 이렇게 적어?”
이태은 AD의 외침에 지나가던 스태프가 말한다.
“안 그래도 급히 전화 돌려보고 있는데 못 온다고 전화를 딱 끊는 애들이 많아요.”
“왜?”
“자세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대요.”
“미치겠네. 겨우 둘째 날부터 참가자가 30%나 빠지면 어떻게 해?”
경험이 부족한 이태은 AD는 발을 동동 굴리더니 PD와 CP에게 보고하러 가야겠다며 황급히 사라져버린다.
그때 태블릿을 들고 오늘 오디션에 참여한 아이들의 정보를 체크하던 정상봉이 내게 묻는다.
“실장님. 왜 힘들게 2차까지 합격하고 나서 안 오는 겁니까?”
“어제 500명 와서 최종적으로 15명 붙었잖아. 그게 알려져서 그래.”
보통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10% 정도는 2차까지 합격하고도 오지 않았다.
부모의 반대로 혹은 겁을 먹어서 등등의 다양한 이유로.
그런데 <프로젝트 I.O.A>의 합격자가 적다는 이야기가 새어나간 탓에 지원자가 훨씬 줄어버렸다.
“합격률 같은 건 보안 사항 아닙니까? 어떻게 애들이 알았대요?”
“이것 때문에 그래.”
난 엔터테인먼트 찌라시 기사만 내는 스타그램 계정을 내밀었다.
[@ENT_jjirasi]
[게시물 1232 팔로워 51만 팔로잉 0]
-<프로젝트 I.O.A> 첫날 서울 오디션 합격자 수. 500명 중에서 합격한 사람은 15명. 합격률 매주 낮음. 경고.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듯?
(첨부 사진 : 해골)
(댓글)
-진심임?
-와 대박이네. 500명 중에 15명이면 대부분 다 떨어지는 거네.
-얼마나 기준이 엄격하길래······.
-내 친구 오디션 포기했음.
대체 누가 이 계정을 작성하는지는 모르지만 어제 오디션을 본 결과가 새어 나갔다.
게다가 무려 50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가진 계정이다 보니 꽤 많이 정보가 퍼져나가 버렸다.
포털 연예 기사면에도 기사가 실리고 있었고.
원래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은 보안을 철저히 하려고 노력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 완벽할 수는 없다.
현장 스태프나 현장 도우미들이나 참석자를 통해서 정보가 새기 때문이다.
개인 스타그램 계정을 가진 고은서도 바로 그런 부류 중 하나였고.
[@GOEUNSEO_NO.1]
[게시물 122 팔로워 11.2만 팔로잉 1]
-<프로젝트 I.O.A>의 예선 도전.
-행복했던 하루.
(첨부 사진 : 내가 제일 아끼는 인형.)
(댓글)
-은서야 너 합격한 거야?
-합격 인형 저거 아닌데?
-은서 성격에 합격 안 했으면 이런 거 올릴 리가 없지. 인형이래잖아. 합격 암시 일 듯.
지역 예선 합격자들만 하더라도 합격 인형을 SNS에 올리면 안 된다고 했었지만 고은서는 다른 인형을 올려놓은 다음 합격을 암시하고 있었다.
정상봉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래서 본 예선부터는 합숙하는군요.”
“그래. 안 그랬다간 방송이 나가기도 전에 기사로 다 나올 테니까.”
그때였다.
지영식 PD가 오디션장에 나타났다.
“자자~~ 집중!”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 지영식 PD가 곧 오디션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렸다.
“70%나 왔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어차피 본선 예선에 들일 사람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정도 자신감도 없는 애들은 신경 쓰지 마요! 그럼 지금 바로 오디션 시작하겠습니다~”
지방에도 오디션을 볼 것이고 일본과 중국에서도 오디션을 볼 예정이었다.
지영식 PD의 말대로 고작 30%만 불출석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지영식 PD가 분위기를 잡고 서야 둘째 날의 오디션이 제대로 시작되고 있었다.
* * *
지원자가 줄어든 탓에 오디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예. 599번. 조예서 씨. 합격입니다. 축하드리고요 인형 받아 가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160cm 귀여운 10대 소녀가 합격 인형을 받고 고개를 숙인다.
그녀는 바로 3년 뒤 ‘에스퍼걸’이라는 걸그룹으로 데뷔하는 멤버였다.
그런데 그녀를 보던 정상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장님. 저 친구는······ 최종 합격 힘들지 않을까요?”
“왜?”
“현장에 온 애들을 보니 계속 보다 보니까 조금씩 알게 된 건데 뭐랄까 쟨 반짝거림이 안 보이네요.”
“반짝거림?”
“예. 뭔가 독특한 외모를 가지고 있거나 목소리든 체형이든 남들과 달라 보이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정상봉의 말이 정확했다.
스타가 될 아이들은 타고난 ‘끼’라는 게 있다.
어떤 부류와 섞이더라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능력.
흔히 ‘튄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개성이었다.
스타가 되려면 외모와 춤 노래 실력은 기본이고 거기에 더해 남들과는 다른 ‘끼’가 있어야지 진짜 위로 올라갈 수가 있었다.
정상봉은 바로 그 점을 캐치하고 있었다.
회귀 전에는 몇 년이나 지나서 알아차린 걸 나와 함께 다니더니 금세 알아차리다니.
이영진이나 도란희나 정상봉이나 모두가 쑥쑥 자란다는 생각에 흐뭇해졌다.
정상봉의 말대로 조예서는 데뷔 6개월 만에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가수 활동을 그만두기 때문이다.
“그래. 맞아. 그게 바로 ‘끼’라는 거야.”
“아~”
“그리고 그 ‘끼’를 발견하고 키워 주는 게 매니저인 우리가 할 역할······.”
그런데 그 순간 난 잠시 말을 잃어버렸다.
바로 그런 ‘끼’를 가진 인물이 무대 위로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600번. 한소원 입니다!”
회귀 전
고은서로 인해 쳐내야 했던 ‘끼’ 많던 내 아픈 손가락이 바로 이곳에 나타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