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1화
651. 밸런타인데이 선물 2
지잉~ 지잉~
진동이 연신 울리며 까톡 메시지가 들어오고 있다.
세리가 말한 밸런타인데이의 선물은 체리블라썸 멤버들이 단체로 예약해 둔 까톡 메시지였다.
[세리 : 유노 오빠! 해피 밸런타인데이! 언니들이랑 다 같이 약속하고 예약 까톡 보내는 거예요. 음~ 그러니까 뭘 말하려고 하냐면요~ 늘 지켜봐 주고 챙겨줘서 고맙다고요! 유노 오빠가 있어서 지금의 제가 있는 거예요. 늘 고마워하는 거 알죠? 진짜 밸런타인데이 선물은 이따가 밤에 천호동 가서 드릴게요~ 뿅!]
[우연희 : 윤호 오빠. 오디션 중이라 예약 까톡 보내요. 늘 우리 챙기느라고 오빠가 바쁜 거 보면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요. 그래도 우리가 오빠 믿고 있는 거 알죠? 늘 감사합니다. (ps. 세리가 일부러 선물 나중에 주자고 선동했어요.)]
[유은아 : 오빠 저 은아예요. 해피 밸런타인데이~ 아침에 눈 떴을 때 바로 말하고 싶었는데······ 세리가 깜짝 이벤트 하자고 해서 시간 맞췄어요. 저한테 연기를 하라고 권해 주셔서 고마워요. 덕분에 소심한 제 성격이 조금씩 변하는 거 같아요. 아 선물은 이따가 드릴게요. 나중에 봐요. (ps. 근데······ 연락 늦게 했다고 화나신 건 아니죠? 그랬으면 미안해요.)]
[양은비 : 윤호 오빠. 매일 덜렁이 세리 소심이 은아 걱정 많은 연희 언니 챙기느라 고생 많아요. 그래도 우린 오빠 없으면 안 되니까 방치하면 안 돼요. 알죠? 지금처럼 늘 우리 넷 지켜봐 주세요. 아 그리고 오늘 하루 해피 밸런타인데이~]
네 사람 모두가 장문의 까톡 메시지로 감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어쩐지 밸런타인데이 아침치고는 너무도 조용하다 싶더라니.
이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정 실의 배우와 매니저들과 그간 인연을 맺은 이들이 세리의 이름을 대며 까톡을 보내오고 있었다.
세리는 체리블라썸 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모두에게 일제히 시간을 맞춰 까톡을 보내라고 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진이와 미소의 까톡도 들어오고 있었다.
[♡러블리.유진♡ : 오빠. 아침에 초콜릿 못 받아서 섭섭했죠? 세리가 다 같이 초콜릿 주자고 하길래 꾹 참고 숨겨뒀어요. 그러니까 섭섭해하면 안 돼요~ 이따 집에서 봬요~]
[♥미소천사♥ : 삼촌! 오늘 빨리 와야 해요! 미소가 대빵 큰 초콜릿 만들어 놨으니까요!♡♡♡]
미소가 기대하라며 두근거리는 하트 이모티콘을 메시지에 세 개나 적어 놓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회귀 전.
난 이런 기념일을 빌려서 뭔가를 축하하고 또 감사하다고 말하는 걸 꺼렸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의 불편함은 내 마음 탓이었다.
스스로 마음을 닫고 있으니 마음을 주고받는 선물이 부담스러웠을 수밖에.
이렇게나 좋은데
이렇게나 기쁜데 말이다.
난 이런 감정을 깨닫게 해준 모두에게 그리고 에브리데이에게 속으로 감사하다 말했다.
‘고맙다 모두. 고맙다 에브리데이.’
그때 곁에 있던 스태프가 음향 장비 세팅이 끝났다며 외친다.
“스탠바이. 다들 조용히 하세요 무대 시작합니다.”
현장이 조용해진다.
그러자 스태프들이 인터컴으로 지시를 들으며 카운트를 시작한다.
“10초 뒤. 방송 시작입니다.”
10 9 ······.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무대 위에선 커스텀 마이크를 잡은 세리가 관객석을 응시하고 있다.
느릿느릿 시간이 흘러 10초가 지나자 또 한 번의 신호가 떨어지며 <반딧불 다리>의 인트로 부분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다.
몽환적인 멜로디가 공연홀을 채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세리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반디가 소복 내리 앉은 다리 위로~』
오늘의 1위 후보곡 <반딧불 다리>가 공개홀을 가득 채운다.
그제야 난 미소를 짓고선 세리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천천히 온몸을 맡겼다.
* * *
5분 30초 동안 스피커를 타고 세리의 환상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름답게 속삭이는 저음은 귓가에 기분 좋게 간질거렸고 호소력 짙은 고음은 듣는 모두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현장에 있는 모두는 세리의 노래에 흠뻑 빠졌고 나 역시 그 목소리에 취해버리고 있었다.
탁.
반주가 끝나자 핀 조명이 세리에게 내리꽂힌다.
노래를 끝마친 세리는 깊게 숨을 몰아쉰다.
그리고는 객석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팬클럽이 선물한 커스텀 마이크 덕에 최고의 무대를 펼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였다.
그 순간 팬들의 환호성이 일제히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5분 30초 동안 참았던 감정이 일제히 폭발했고 팬들은 연신 환호를 보내며 세리의 이름을 불러대기 시작했다.
감격한 세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어 댄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세리는 한참을 그렇게 팬들에게 호응해 준 후 무대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왔다.
그러고는 마지막 계단에 도착한 순간 세리는 날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점프를 해버렸다.
“유노 오빠~~”
덥석.
꼬맹이 세리는 그렇게 내 품에 안겨들었다.
“고마워요. 다 오빠 덕분이에요~”
몇 번을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다.
“수고했어. 세리야. 오늘 무대 진짜 1위다웠어.”
세리는 한껏 눈웃음을 지은 뒤 내 품을 떠나 옆에 와 있던 도란희에게도 안겼다.
“란희 언니~~”
순간 도란희가 세리를 꼭 하고 안아주며 장난스레 말한다.
“우리 애기. 오늘 좀 부르던데?”
세리가 눈물을 닦고 미소를 짓는다.
“마이크가 좋아서 그런 거예요. 마이크가······.”
세리는 자기 자랑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괜스레 말을 돌린다.
그런 세리가 귀여운지 도란희가 깔깔 웃으며 다시 한번 껴안았다.
“네가 잘 부른 거지. 마이크는 그저 거들었을 뿐이던데?”
“힛.”
세리가 혀를 빼꼼히 내밀며 아이처럼 웃는다.
그때 서연우와 백희영 팀장이 무대 뒤로 다가왔다.
경쟁자인 서연우도 웃으며 축하를 해준다.
“세리야 오늘 진짜 잘했어.”
“아 고마워요. 쌤! 쌤도 열심히 하세요!”
“그래. 그렇게 할게.”
서연우는 지난주까지 1위를 지켰지만 이번 주는 1위를 하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번 주 내내 음원차트에서 2위를 한 데다가 현장에서 세리가 워낙 노래를 잘 불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포기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서연우는 오히려 내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다.
내가 가르쳐준 대로 말이다.
“형. 저도 끝날 때까지는 최선을 다할게요.”
세리에 이어서 서연우까지.
언제 이렇게 성장했나 싶을 정도로 기특했다.
난 그런 서연우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쥐며 응원을 보냈다.
“그래 파이팅!”
그러자 세리도 도란희도 백희영도 주먹을 불끈 쥐며 응원한다.
“연우 오빠 파이팅!”
“연우야 수고해!”
서연우는 우리의 환호를 받으며 무대를 향해 올라간다.
그때 무대로 올라가는 서연우의 오른손에는 공용 마이크가 들린 게 보인다.
신인은 함부로 커스텀 마이크를 쓸 수가 없는 것이 이 업계의 룰이었다.
그러나 이젠 1위를 찍고 내려왔으니 상황이 달라졌다.
업계의 룰도 인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조만간 회사에서 체리블라썸의 커스텀 마이크와 인이어 마이크를 맞출 예정이니 그때 서연우도 함께 사줘야겠다.
그리고 서연우의 팬클럽도 이제 만들어야 했고.
‘연우야. 고생 많았다.’
그렇게 난 서연우에게 해줘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무대가 시작하길 기다렸다.
잠시 후.
서연우가 심호흡을 마치고 오케이 사인을 준다.
그 순간 <화연가>의 애절한 인트로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작스레 객석에서 체리블라썸의 팬클럽들이 일제히 폰을 들어 올렸다.
[서연우가 짱이시다!]
[최고의 보컬. 서연우]
[연우 오빠. 최고!]
[꿀 성대 서연우]
체리블라썸 팬클럽들이 서연우가 같은 회사라는 이유로 스마트폰을 켜서 밸런타인데이 선물을 해주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서연우가 가볍게 몸을 떨더니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 뒤 천천히 노래를 시작했다.
‘고맙다 얘들아.’
좋은 연예인들을 만난 것 이상으로 좋은 팬클럽 멤버들을 만난 건 내 두 번째 삶에서 가장 큰 축복이었다.
* * *
KBC <뮤직 스테이지>의 모든 무대가 끝이 나고 가수들이 일제히 무대에 올라가 1위 발표를 기다린다.
가수들 앞에 선 MC가 큐 카드를 보며 힘차게 외쳤다.
“오늘의 1위는······ ‘반딧불 다리’의 김세리입니다. 축하합니다.”
세리의 1위가 호명된 순간 공개홀은 다시 한번 팬클럽의 환호성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세리의 우렁찬 목소리가 공개홀에 울리자 다른 가수들 역시 일제히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무대 아래에 있는 매니저들 역시 손뼉을 보내기 시작한다.
비록 CP 실에서 그 난리가 있었다곤 하지만 그것이 매니저들 사이에서 최소한의 예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역시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같이 정중하게 인사를 마친 도란희는 인사를 끝내자마자 내 팔을 잡고 아이처럼 폴짝폴짝 뛴다.
“실장님!! 꺄악~ 어떻게 해요?”
내 팔이 위아래로 오르내린다.
‘너나 이것 좀 어떻게 해주련 란희야?’
겨우 도란희를 진정시키고 난 순간 세리가 앙코르 곡을 부를 준비를 하는 게 보인다.
다른 가수들이 무대에서 우르르 내려오는 걸 본 난 즉시 도란희에게 말했다.
“란희야. 뒤풀이 준비는 됐지?”
“에이. 그건 기본이죠. 이미 연락해 뒀어요. 돼지본가 사장님이 가게 통으로 비워났으니까 몸만 오래요. 오늘 셔터 내려놨다고요.”
체리블라썸이 1위를 할 때마다 뒤풀이하러 가는 KBC 앞 삼겹살 가게에다가 연락해 놓았다고 한다.
“오케이. 잘했어.”
“저기 그러면 오늘은 법카 어디까지 써도 돼요?”
“배 터질 때까지!”
“콜~!!”
난 백희영 팀장에게도 서연우와 함께 참여하라고 말했다.
서연우는 경쟁자 이전에 세리의 보컬 트레이너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지이잉~
[발신자 : 이수찬]
“어. 수찬아.”
-형님. 방금 하조은 CP가 와인바 W로 들어갔다는 보고가 왔습니다.
흥신소 직원을 통해 연락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이수찬이 직접 연락해왔다.
매번 괜찮다고 해도 이수찬은 나에 관한 모든 걸 이렇게 직접 챙긴다.
날 걱정하기 때문이란 걸 알기에 조금은 미안해졌다.
“근데 혹시 마동팔 본부장은 거기 없어?”
안동규 CP가 컴백한 이후 마동팔 본부장은 KBC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예. 같이 들어갔습니다.
역시나 내가 생각한 대로였다.
“알았어. 소식 고맙다. 그리고 늘 내가 너한테 고마워하는 거 알지?”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난 그렇게 이수찬과 전화를 끊고 도란희에게 말했다.
“란희야. 오늘 뒤풀이 먼저 하고 있어.”
“에이~ 왜요? 같이 가야죠.”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끝나고 시간 봐서 연락할게.”
하조은 CP는 현재 발령 보류 상태였기에 그녀를 완벽히 쳐내지 않는다면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 내 가수들을 위해서 반드시 그 일을 막아야 했다.
난 즉시 오한국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하조은 CP가 와인바 W에 갔다고 합니다.”
-그래? 지금 당장 와인바 W에서 보도록 하지.
“예. 와인바 W 주차장에서 뵙겠습니다.”
-알겠네.
난 전화를 끊은 뒤 곧장 주차장으로 향했다.
* * *
와인바 W 주차장.
오한국 대표와 난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한유식 대표 역시 오한국 대표와 내내 같이 있었는지 이곳에도 함께 왔다.
그때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벤X S클래스 차량에서 흥신소 직원이 내린다.
“안에 있는 저희 팀원 말로는 두 사람이 리조또를 먹고 있답니다. 와인은 이제 막 시켰다고 하고요.”
“글라스 와인입니까?”
“예. 각각 한 잔씩 시켰고 치즈랑 과일을 시켰답니다. 다 합쳐서 3만 원은 안 넘게 세팅하는 거 같았습니다. 김영란법을 신경 쓰는 거 같더군요.”
“그러면 혹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아 마동팔 본부장이 비싼 와인 한 병을 별도로 시켰다고 합니다. 어떤 와인인지까지는 모르는데 내일 다시 올 테니까 키핑을 해달라고 부탁했다네요.”
순간 오한국 대표가 한숨을 내쉰다.
“휴우 자네 말이 사실이었군. 정 실장.”
한유식 대표가 그것 보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거봐. 내가 그랬지? 우리 정 실장 말은 믿어도 된다고.”
“예. 선배님. 그러면 우리도 안에 들어가서 같이 저녁이나 하시죠. 단 저녁은 제가 쏘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건 몰라도 방송국 대표에게 얻어먹는 건 김영란법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희가 들어가는 즉시 알아차릴 겁니다. 잔을 치우기 전에 몰아쳐야 합니다.”
하조은 CP나 마동팔 본부장이 마셔서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
“그러면······ 바로 덮쳐야겠군.”
“예. 식사는 일이 끝나고 천천히 하시죠.”
“그렇게 하지.”
그때였다.
곁에 있던 흥신소 직원이 전화를 끊고 말한다.
“방금 글라스 와인이 나왔답니다.”
오한국 대표가 눈빛을 번뜩인다.
“당장 들어가지.”
“예.”
난 그 순간 지갑에서 5만 원짜리 20장을 꺼내 흥신소 직원에게 건넸다.
100만 원이라는 거금이었다.
와인바 W에 두 명이 있다고 했으니 셋이서 나눠 쓰라 말했다.
흥신소 직원이 놀란 눈을 한다.
“이거······ 괜찮습니다. 저흰 이미 비용을 받고 있습니다.”
난 고개를 저으며 내밀었다.
“밸런타인데이 같은 날에 불러내서 죄송합니다. 안에 들어간 분들이랑 나눠 쓰세요.”
흥신소 직원의 입꼬리가 씩 하고 올라간다.
“감사합니다! 정 실장님!”
난 허리를 반으로 접는 그의 인사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 * *
와인바 W.
들어가자마자 직원이 자리를 안내했다.
하조은 CP는 7번 테이블.
우리가 앉을 자리는 10번이다.
직원을 따라가던 우린 7번 테이블 곁을 지나던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그 순간 오한국 대표가 글라스 와인으로 목을 축이는 하조은 CP에게 말을 건다.
“하 CP. 아무리 발령 보류가 떴다고 해도 술로 화를 다스리면 쓰나?”
와인을 마시던 하조은 CP는 사레가 걸린 듯 콜록거린다.
“켁켁! 대표님이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우리도 밥 먹으러 왔지.”
순간 맞은 편에 앉은 마동팔 본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다.
그러나 오한국 대표가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괜찮네 마 본부장.”
“아······ 예······”
그 순간 오한국 대표가 넌지시 질문을 던진다.
“아 그런데 설마 이거 비싼 거 아닌가? 3만 원은 안 넘지?”
순간 마동팔 본부장이 다급하게 붉은 와인잔을 가리킨다.
“물론이죠 대표님. 3만 원 안 넘습니다. 여기 글라스 와인도 마브루디라는 저렴한 와인입니다.”
오한국 대표가 되묻는다.
“그 말 사실이겠지?”
하조은 CP가 고개를 끄덕인다.
“예. 제가 싼 글라스 와인을 좋아해서요. 이거 한잔에 1만 원인데 꽤 괜찮아요 대표님.”
그때 오한국 대표가 날 힐끔 쳐다본다.
“정 실장. 자네가 와인을 좀 잘 안다던데 이 친구 말이 맞는지 알아볼 수 있나?”
난 두 사람의 잔에 담긴 와인을 빤히 쳐다보며 색깔을 확인했다.
“한 모금만 마셔도 되겠습니까?”
하조은 CP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난 그녀에게서 잔을 받은 다음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선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콧속으로 다양한 향들이 일제히 들어오고 입 안에는 다양한 맛의 향연이 펼쳐졌다.
그 순간 이 와인이 뭔지 확신할 수 있었다.
맛도 맛이지만 이 와인은 회귀 전 그녀가 가장 좋아하고 내게 부탁했던 와인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천천히 눈을 뜬 난 씨익하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건 마브루디가 아닌데요?”
“그러면 뭔가?”
난 하조은 CP와 마동팔 본부장을 노려보며 자신 있게 답했다.
“샤토 무통 로쉴드. 빈티지 2000! 최고급 와인입니다.”
그 순간 하조은 CP와 마동팔 본부장의 표정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