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화
65. 체리블라썸의 신곡 3
예전에 만났던 사기꾼들은 작곡가가 되려면 협회 등록을 하고서 초기 투자를 한 뒤에야 작곡가로 데뷔할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작곡에 필요한 장비는 반드시 자신이 사야 한다면서 말이다.
방선우의 엄마 김춘자 여사는 그날의 일을 이해할 수 없다며 성토했다.
“내가 암만 무식해도 세상 이치가 그런 게 아니지예. 우리 아가 너무 순해 빠지가 속일 수 있을진 몰라도 난 아니라예.”
거칠긴 해도 김춘자 여사의 애틋한 모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동민 실장과 난 그녀의 걱정을 알겠다며 두 번 세 번 반복해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머님. 저흰 절대 작곡가에게 그런 일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작곡가분께 돈을 드립니다. 장비도 마련해 드리고요!”
우릴 보던 김춘자 여사의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까. 사기꾼은 아닌 거 같네예. 하지만 앞으로 지켜보겠십니더?”
그 말을 마친 김춘자 여자가 방선우의 등짝을 찰싹 두드렸다.
처얼썩.
“뭐 하노? 손님들한테 음료수 한잔 안 드리고.”
방선우가 등에 손을 뻗으며 투덜거렸다.
“아으으. 진짜! 맨날 손 안 닿는 데만 때리지 말라고!”
투덜대던 방선우는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가져왔다.
그리곤 2층으로 올라가자 말했다.
머쓱한 표정으로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이해 좀 해주세요. 저번에 제가 나쁜 사람들한테 한 번 속을 뻔한 일이 있어서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보기 좋습니다.”
“하하. 보기 좋을 거까지야. 하여간 이쪽으로 오세요.”
방선우는 좁은 2층 계단으로 우릴 안내했다.
1층은 국밥집 2층은 가정집으로 이뤄진 김춘자 여사의 평생의 노고가 담긴 집이었다.
끼덕대는 발판을 밟으며 올라가자 조그만 방들이 나왔다.
방 하나에 3평 정도.
자그마한 주택이다.
“저기 방이 좁아서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방선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낡은 컴퓨터 한 대를 중심으로 헌책들과 헌 포스터들이 가득했다.
헌책방에서 공짜로 가지고 왔을 듯한 낡은 책들은 모두 음악과 관련된 것들.
반신반의하던 이동민 실장은 그제야 조금은 안심이 된다는 표정이다.
“최태식 좋아하십니까?”
이동민이 최태식의 얼굴이 나온 옛 잡지를 들고 물었다.
순간 기가 죽어 있던 방선우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최태식 선생님이야 최고죠. 20년 전에 그런 앨범을 뽑아낼 거라고는 전 상상도 못 했다니까요. 천재세요. 저 같은 거 하고는 비교도 안 될······”
20년 전.
최태식은 싱어송라이터로 지금 들어도 어색하지 않은 멜로디라인을 뽑아낸 가수였다.
인디 쪽과 메이저를 오가며 인기를 끌었지만 뭍으로 나오기 싫어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동민 실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름의 테스트였나 보다.
눈앞의 남자가 진짜인가 가짜인가 하는.
하지만 정작 중요한 곡이 남아 있었다.
난 속으로 방선우가 만들어둔 곡이 제발 열 곡만이라도 넘기를 바랐다.
“저기 일단 곡부터 들어볼 수 있을까요?”
신이 나 이야기하던 방선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저기 제가 곡을 만들긴 했는데요. 제대로 배운 게 아니라서요.”
“혼자서 공부해 오신 건 알고 있습니다.”
방선우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이동민 실장이 날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난 모른 척하고 방선우에게 말을 걸었다.
“일단 만들어 둔 곡에서 좋다고 생각하는 곡부터 들어보죠.”
“저기 근데 전 뭐가 좋은지 몰라서요. 제 귀에는 다 괜찮아서.”
“그러면 다 들려주십시오.”
“한 50곡 정도 있는데요?”
“5곡이 아니라 50곡이요?”
“그 근데 다들 아직 완성은 다 안 된 건데······.”
방선우가 곡이라고 부르기 민망하다며 얼굴을 붉혔다.
“일단 들어봅시다.”
“아. 예.”
방선우가 느리디 느려터진 아이패드를 툭툭 두드렸다.
1세대 모델이라 누르고서 반응을 할 때까지 한참이 걸렸다.
그리고 대략 10초가 지나자 방선우가 작곡한 첫 곡이 아이패드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띵~띵띵~♬~띵~♬.』
초창기에 만든 곡인 듯 멜로디라인이 단순하다.
때론 느리게 때론 빠르게.
방선우의 곡은 심장을 쥐었다 풀었다 하며 가슴을 두근대게 하고 있었다.
‘역시 에필 K가 이 사람 곡을 가져간 게 맞았어!’
내 기억 속 에필 K의 히트곡 <둠칫두둠칫>이 정확히 이 멜로디라인이었으니까.
3분 정도가 순식간에 지났다.
“다 다음 곡 좀 들려주십시오.”
이동민 실장이 숨을 헐떡이며 모든 곡을 들려달라 요청했다.
“아 예.”
방선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연속 플레이를 눌렀다.
좁은 방 안에 울려 퍼지는 음악의 향연은 마치 내가 회귀했을 그때처럼 내 심장을 뛰게 했다.
한 곡.
두 곡.
아무리 들어도 놓칠 게 없었다.
‘크. 거를 타선이 없네.’
어쿠스틱 기타만으로 연주하는 심플한 발라드부터 힙합 댄스 음악에 트로트까지?
이건 뭐 솔직한 말로 현재의 체리블라썸에게 과할 정도의 곡들이다.
편곡을 위한 전문적인 기교야 떨어지지만 그건 프로듀서의 역량으로 커버할 수 있는 문제고.
하여튼 곡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감성과 전달력은 이미 완성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난 가수보다는 배우의 필모 관리가 전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음악에 대한 문외한은 아니었다.
막말로 내가 10년 동안 탑가수와 이이돌을 관리했던 경험이 몇 건인데.
방선우의 곡에 안도한 나는 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런 기대 없이 아니 실망한 표정으로 따라 올라온 이동민 실장의 얼굴엔 온갖 감정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저 반신반의하던 이동민 실장의 얼굴은 이미 경악한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반면 맞은편에 앉은 방선우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대형 엔터 회사의 사람들 앞에서 이런 미흡한 곡을 들려주는 게 부끄러운 모양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지막 곡이 끝이 났다.
이동민 실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다급히 말했다.
“이 이런 곡이라니. 도대체 얼마 동안 만드신 겁니까? 작업 시간이 어마어마했을 것 같은데.”
방선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 그러니까 아이패드를 친구가 준 게 1년 전이고 실제로 음을 찍기 시작한 건 6개월입니다. 혹시 너무 느린가요?”
음악을 듣는 동안 넋이 나간 우리 모습을 봤어도 정작 평가를 받을 때가 되자 기가 죽은 기색이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허 어이가 없네.”
이동민 실장의 실소 탓에 방선우가 또 한 번 오해했다.
“미······흡하다는 거군요.”
방선우가 고개를 푸욱 숙인다.
생각보다 자존감이 높지 않은 사람이었다.
앞으론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그때 곁에 있던 이동민 팀장이 대뜸 손을 내밀었다.
“미흡하다니! 무슨 그런 황당한 말을! 아니다 이럴 게 아니라. 선우 씨! 당장 저희 굴렁쇠 엔터와 전속 계약을 맺으시죠!”
“예?”
“곡비는 제대로 챙겨 드리겠습니다. 신인 최고 대우를 해드리죠. 대신 지금 들려준 곡은 저희랑 다 계약하시는 조건입니다.”
“그 그게······.”
“아 참. 작업실도 마련해 드릴게요. 특히 15번째 곡 그거 좋던데. 혹시 체리블라썸을 아시나요? 우리 2실에서 키우는 애들인데······”
곡의 가치를 알아본 이동민 실장이 쉴 새 없이 떠들어댄 탓일까.
방선우의 표정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어둡고 자신감 없던 얼굴에 ‘희망’이라는 무엇인가가 드러났다.
“지 진짜요? 거짓말 아니······죠?”
방선우가 재차 묻자 이동민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럴 게 아니라 그냥 지금 당장 계약하러 가시죠. 아 그리고 아이패드는 최신형으로 지금 당장 사드릴게요. 그리고 그 데이터 백업을 해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한다?”
이동민 실장이 방선우의 손에 들린 꼬질꼬질한 1세대 아이패드를 보고 발을 동동 굴렀다.
데이터를 옮길 때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냐는 듯.
“제가 찍은 음은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이거 없어도 그냥 옮겨 넣을 수도 있어요. 다시 찍는 거야 하루면 되고요.”
“그렇습니까?”
“네. 15번째 곡이면 따라~따따! 따~!”
자신이 찍은 멜로디라인을 정확히 따라 하는 걸 본 순간 이동민 실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천재가 있긴 있었네.”
두 사람이 들뜬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난 방을 나가려는 두 사람을 붙들었다.
“저기 선우 씨.”
“예?”
“지금 바로 카페에 있는 곡 모두 내려주시고 아이패드에 있는 파일들은 옮겨 담는 즉시 다 지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당연히 태블릿에 비번은 거시고 장비도 보안이 잘되는 것들로 싹 바꿔드리겠습니다.”
구체적인 지시에 방선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저기 계약하려면 그래야 하나요? 그냥 쓰던 걸 계속 쓰는 게 편한데.”
1세대 아이패드를 만지작대던 방선우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끼던 물건인가 보다.
하지만 난 단호히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내 다이어리에 있는 방선우에 관한 기록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으니까.
[에브리데이 V10]
[날짜 : 2022년 7월 1일]
-PM 01:00 수원 성모병원 장례식장 8호실. 방선우 발인. 오전 9시.
혹시 이 아이패드를 분실이라도 하면 곡이 새어 나갈 수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 탓에 난 이동민 실장과 방선우에게 내가 가진 ‘표절’에 관한 걱정을 털어놓았다.
다행히 이동민 실장이 내 의도를 파악하고 방선우를 설득했다.
“표절의 경계가 너무 모호해서 멜로디라인만 따서 흉내 내는 놈들이 많아요. 정 대리 말대로 카페에 올려둔 것도 내리시고 보안에 최대한 신경을 씁시다.”
방선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시키시는 대로 할게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표절 소송은 정말 지저분하거든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에 앞서 찾아왔다는 그 엔터 업체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삼촌 뮤직?’
처음 들어보는 곳이다.
방선우는 그때 받은 명함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분들에게는 아마추어 작곡가 카페에 올린 곡 두 곡만 들려줬는데요.”
“그렇습니까? 하여간 일단 회사로 돌아가는 대로 저작권 등록부터 해야겠네요.”
이동민 실장이 애가 닳아 있었다.
“제 곡이 저작권 등록이 되나요? 아직 미완성인데요?”
“충분합니다. 곡명만 지으면 되니까요. 그리고 나중에 발매용 음반 낼 때 또 한 번 재등록하면 됩니다.”
방선우가 당황해 손을 저었다.
“전 등록할 돈이 없는······”
“작곡가님. 그런 비용 부담은 회사에서 합니다. 방선우 씨는 저희와 계약만 해주시면 다른 건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방선우의 표정이 다시금 밝아진다.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그제야 방선우의 엄마인 김춘자 여사의 우려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자 마치 아이 같은 표정으로 뭐든 다 하겠다고 하고 있었으니까.
순수한 사람이란 게 행동 하나하나에서 다 묻어나고 있었다.
딱 사기당하기 좋은 타입이다.
그때였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방에 들어온 지 2시간이 훌쩍 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누구세요? 엄마?”
“은제까지 기다리야 카노? 귀남아?”
“아 엄마. 다 됐어. 그리고 귀남이가 아니라 선우라니까!”
발끈한 방선우가 문을 열자 굳은 표정의 김춘자 여사가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들요. 우리 아랑 이야기 끝났으면 밑에 내리가서 지하고도 이야기 좀 하지예?”
선생님들?
문디자슥에서 선생님으로 부르는 호칭의 격이 올라갔다.
하지만 김춘자 여사의 표정은 여전히 예사롭지 않았다.
1층으로 내려가자 가게 문이 닫혀 있었다.
셔터 문이 끝까지 내려온 채 간판의 불도 꺼져 있었고.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한다고 붙어 있었지만 9시가 되었는데 벌써 문을 닫은 상태였다.
“엄마. 왜 이렇게 일찍 문을 닫았어?”
“이 판국에 장사가 중요하나?”
오로지 자기 자식에 대한 걱정 때문에 일찍 장사를 접은 것 같다.
김춘자 여사의 거친 말이 왜 이렇게 다정하게 들리는 건지 모르겠다.
김춘자 여사는 차 네 잔을 내려놓고선 우리를 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진짜로 그짝이 듣기에 우리 아 곡이 좋다 이기라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