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49화
649. 컴백 4
“방법이라뇨? 하조은 CP님에 대해서 뭐라도 아는 게 있어요?”
차태희 PD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본다.
“예. 하 CP님이 주로 가는 와인바에서 고가의 와인을 접대받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하조은 CP는 와인바 W에서 가장 싼 1만 원대의 글라스 와인 한 잔만 시키고 안주로는 치즈만 주문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녀가 실제로 마시는 글라스 와인은 접대하는 쪽이 미리 와인바 W를 찾아서 결제해둔 최고급 와인이었다.
전문 소믈리에가 아닌 이상 유리잔에 든 와인을 겉보기로 구별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그런 꼼수를 쓰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접대가 가능한 건 하조은 CP가 가는 와인바 W 대표가 바로 그녀의 사촌 언니 하선주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하조은 CP도 자신이 ‘믿을만한 사람’에게만 그런 요구를 하기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서로가 윈윈이고 별로 알려지지도 않는 영리한 방법이었지만 하조은 CP에겐 불행하게도 내가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회귀 전의 나 역시 그녀에게 그런 접대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 다이어리에는 그 일정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3년 7월 11일]
-PM 10:00 KBC 하조은 CP와 청담동 와인바 W에서 미팅. (기타 : 샤토 무통 로쉴드. 2000년산으로 미리 주문해 놓을 것.)
에브리데이를 곁눈질로 슬쩍 확인했지만 역시나 일정은 그대로였다.
그 순간 안동규 CP는 이해가 안 간다며 고개를 갸웃한다.
“하 CP가 접대라니? 나랑 사이는 안 좋지만 걔 사생활 깔끔하기로 유명해.”
“그러면 와인을 즐긴다는 이야기는 알고 계십니까?”
“그거야 알지. 걘 고깃집에서 남들 소주 마실 때도 와인을 마시니까. 근데 그래봐야 고작 만 원이 안 넘는 선에서 글라스로만 마시던데? 주량도 안 세다고 하고.”
“그거 다 쇼입니다. 병으로 마시면 어떤 와인인지 어떤 빈티지인지 다 나오니까 글라스로만 마시는 겁니다. 그리고 접대받는 가게가 정해져 있고요.”
“그게······ 정말이야?”
“예. 청담동에 있는 와인바 W에서만 접대받습니다. 엔터 회사 사람이 와서 미리 결제한 다음 와인을 키핑을 해두면 거기 사장이 와인을 한 잔씩 뽑을 수 있는 와인 디스펜서로 뽑아서 하 CP에게 한 잔씩 빼줍니다. 그리고 계산서에는 글라스당 만 원짜리 저렴한 와인을 마셨다고 찍히고요.”
“비싼 와인이 먹고 싶다고 그딴 짓을 한다고? 하여간 잔머리하고는······.”
혀를 내두르던 안동규 CP가 되묻는다.
“근데 와인이 고가라고 해도 글라스 한잔으로 마시면 가격이 얼마 안 되지 않나?”
안동규 CP는 철저한 소주파다.
맥주도 싫어하고 폭탄주도 싫어하고 오로지 소주만 즐긴다.
전통식 소주 정도는 마시지만 위스키를 비롯해 와인 같은 건 입에도 대지 않았고.
그렇기에 와인의 시세는 전혀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와인을 즐기는 차태희 PD가 대신 말해준다.
“선배. 와인 한 병에 싼 건 3천 원씩 하지만 비싼 건 한 잔에 100만 원까지도 가요.”
“뭐? 한 병도 아니고 한 잔에?”
“예. 샤토 무통 로쉴드 2000년 빈티지는 750ml에 한 500만 원 정도 할걸요? 보통 한 글라스는 병의 1/5 가격을 받는 편이니까 100만 원 정도겠네요. 뭐 그런 비싼 와인을 글라스로 달라는 사람은 없긴 하지만 시세로만 따지면 그래요.”
안동규 CP가 입을 쩍하고 벌린다.
“미쳤네······ 한 병에 500만 원?”
“더 비싼 거도 많아요.”
“와~ 난 줘도 안 먹겠다. 아니지. 주면은 소주로 바꿔먹겠지. 아니 세상에 500만 원이면 소주가 몇 궤짝이야?”
와인이 글라스 한 잔에 100만원이나 한다는 소리는 안동규 CP의 눈이 튀어나오기에는 충분했다.
그가 보통 마시는 건 한 병에 4천 원짜리 소주니까.
“하여간 오늘은 하 CP가 박은빈의 깜짝 컴백을 도와줬으니까 TK 엔터 쪽에서 접대할 거 같은데요?”
“잘됐네. 그런데 이거 아는 사람 몇이나 돼? 증인이 있으면······.”
“죄송한데 아직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당장 CP님도 전혀 모르셨을 정도로요.”
내가 알려준 정보가 있다고 해도 당장 하조은 CP를 털기는 어려웠다.
이건 경찰이나 검찰에 넘겨도 시간이 걸릴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아~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거지?”
“빙빙 돌아가지 말고 오 대표님을 직접 뵈러 가시죠. 일단 이 건으로 내부 감사만 진행하더라도 당장은 발령을 보류할 수 있을 겁니다.”
비록 하조은 CP가 KBC <뮤직 스테이지>의 CP로 발령됐지만 절차상의 문제도 많을뿐더러 비리 첩보가 접수되면 발령을 보류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경찰이나 검찰을 통해서 증거를 모아 터트리면 되는 거고.
“오케이. 안 그래도 우리 대표님을 만나서 한번 따져보려고 했는데 잘됐네. 같이 가지.”
“예. CP님.”
안동규 CP가 차태희 PD에게 고개를 돌린다.
“차 PD. 넌 남아서 최대한 하 CP가 방송 흔들지 못하게 막아. 아까 보니까 박은빈 컴백 때문에 세리에게 가야 할 시간을 줄이는 것 같아. 아무리 박은빈이 오늘 이슈가 있다고 해도 세리한테 비비는 건 아니지. 언제 적 박은빈이야!”
“예. 그러면 전 바로 부조정실로 가볼게요.”
“수고!”
차태희 PD가 먼저 휴게실을 빠져나간다.
안동규 CP 역시 화를 다스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 실장. 우리도 가지.”
“잠시만요.”
난 곧장 폰을 꺼내 들고선 이 상황에서 가장 큰 도움이 될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정 실장. 무슨 일이야?
내가 전화를 건 사람은 회생 절차를 거의 다 마친 드라마 제작사 ‘미리내’의 대표이자 전 KBC 전무였던 한유식 대표다.
“혹시 지금 어디 십니까? 대표님.”
그는 워낙 인품이 좋아 한창때는 KBC 차기 대표이사로 거론되던 거물이었다.
그리고 오한국 대표 또한 전에는 그의 라인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 한유식 대표만 와준다면 오한국 대표도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여전히 회사에는 한유식 대표를 따르던 사람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있어야지 내가 오한국 대표를 도울 정보들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가 있었다.
아무리 내가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해도 신뢰를 하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한유식 대표는 KBC의 주차장이라고 한다.
-지금 난 KBC 본사 앞이야. 이번 주부터는 우리 미리내도 회생 끝내고 정상 운영되니까 그 전에 드라마 국장 좀 만나봐야겠다 싶어서.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운이 좋았다.
“혹시 지금 바로 대표이사실로 와주실 수 있습니까?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난 하조은 CP가 KBC <뮤직 스테이지>로 발령됐고 그로 인해 내 연예인들이 피해를 좀 크게 입을 것 같다고 답했다.
덩달아 그녀에게 비리가 있다는 사실도 알렸고.
-알았네. 대표이사실에서 보도록 하지.
한유식 대표가 온다고 하자 안동규 CP의 얼굴도 환해지고 있었다.
안동규 CP로서도 오한국 대표와 단독 면담하는 건 부담이기 때문이었다.
* * *
KBC 대표이사실.
소파에 앉아 자세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기도 전 오한국 대표가 안동규 CP에게 사과부터 한다.
“갑작스러운 인사 발령이 이해가 안 가겠지. 그런데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미안하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KBC 이사진들이 나태환 이사를 밀고 있어. 그러다 보니 내 인사권에 좀 제약이 많아. 그래서 KBC 예능 국장을 내가 임명하는 대신 뮤직 스테이지 자리를 양보해야 했어.”
“그 그러면 하조은 CP가 나태환 이사한테 붙었다는 사실도 알고 계십니까?”
“그래.”
“그러면 적어도 저한테 이야기를 해주셨어야죠!”
“미안하다. 보는 눈이 많아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최근 KBC의 인사는 말 그대로 난리였다.
먼저 전임 KBC 대표인 박찬식은 미소의 초등학교 취재 사건에 얽혀 해고되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차기 대표이사로 예정된 봉숙희 마저 시청률 조작 건으로 자진사퇴 해버렸다.
그러자 방통위와 KBC 이사진들은 사태를 급히 무마하기 위해 자신들의 반대 라인에 서 있던 오한국을 대표로 골랐다.
하지만 사태가 진정되기 시작하자 KBC 이사진들은 다시 나태환 이사를 내세워 오한국 대표를 견제하고 있었다.
“일단은 ‘한밤의 노래’로 가 있어. 내가 상황 정리가 되고 나면 다시 부를게.”
야심만만했던 오한국 대표였지만 취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바지사장 취급을 받는 중이었다.
내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덕분에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풀기가 조금은 쉬워졌다.
하지만 무난하게 정보를 풀고 그를 납득시키려면 한유식 대표가 와야 했다.
그때였다.
삐익-.
오한국 대표의 집무실 인터폰이 울린다.
오한국 대표가 인터폰을 받았다.
“뭐? 들어오시라고 해.”
곧 대표이사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한유식 대표가 들어섰다.
“우리 오 대표. 고생이 많군그래?”
오한국 대표가 반갑게 맞이한다.
“선배님! 잘 오셨습니다.”
드라마 제작사 ‘미리내’의 대표가 된 한유식이 껄껄대며 웃는다.
“그 자리 안 편하다고 내가 말했었지?”
한때 KBC의 대표이사로 거의 확정적이란 소리를 듣던 한유식 대표가 하는 말이라 오한국 대표도 별다른 거부감없이 받아들인다.
“하아~ 못 해 먹겠습니다. 중환자가 된 회사를 메스 들고 수술 한번 해보려 했는데······ 저도 돌팔이였나 봅니다.”
오한국 대표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한유식 대표를 소파로 안내한다.
한유식 대표가 자리에 앉으며 묻는다.
“이 정도면 잘하는 거지. 그런데 뭘 그렇게 어렵게 고민해?”
“선배님이야. 워낙 인품이 좋으셔서 후배들이 따랐죠. 그런데 전 아닌가 봅니다.”
“자네가 못한 게 아니라 이사들의 압박이 정도를 넘었겠지. 내가 자넬 몰라?”
“하아······ 네. 맞습니다. 그 압박에 허리가 휘어질 거 같습니다. 당장 여기 안 CP가 있던 뮤직 스테이지 총연출자 자리를 하조은에게 내줘야 했습니다.”
그 순간 한유식 대표가 웃음을 짓는다.
“자네한테는 잘됐군. 그 친구가 망하게 생겼으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정 실장한테 이야기 못 들었나?”
“이제 막 와서 못 들었습니다.”
한유식 대표가 날 쳐다본다.
“정 실장. 말해주게나.”
한유식 대표가 판을 자연스레 깔아준다.
그 순간 난 하조은 CP가 접대받는다는 사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 * *
하조은 CP의 비리 의혹을 언급한 순간 오한국 대표의 입꼬리가 쓰윽 올라간다.
“그래서 자네가 따라온 거였군.”
“예.”
오한국 대표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당장이라도 인사 발령을 취소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가 나서는 건 월권행위였기에 슬쩍 안동규 CP를 쳐다봤다.
안동규 CP가 내 뜻을 알아차리고 말한다.
“대표님. 정 실장이 말한 게 사실이라면 당장 발령을 취소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하지만 증거가 없잖아. 괜한 무리수를 두다가 빌미를 잡혀서 더 피곤해지면 어쩌려고?”
“그건······.”
안동규 CP의 입이 닫힌다.
그때였다.
한유식 대표가 딱 부러지게 말한다.
“자네답지 않게 왜 그래? 지금 당장 ‘발령 보류’ 때리고 조사는 그 뒤에 별도로 진행하면 되지. 적을 몰아칠 땐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건 바로 자네가 아닌가? 그 자리에 앉으니까 외려 더 소심해졌군?”
오한국 대표의 표정이 굳는다.
“선배 말대로······ 제가 소심해졌나 봅니다. 그러니까 고견을 좀 들려주십시오.”
자조적인 말과는 달리 새겨듣겠다는 자세를 취한다.
이제야 내가 아는 핵심 정보를 전해도 될 타이밍이 되었다.
난 눈치를 보다 조심스레 내가 아는 정보를 전했다.
“오 대표님. 현재 방통 위원장님이 조만간 바뀔 거 혹시 알고 계십니까?”
KBC 이사들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임명권을 가지고 정해준다.
그리고 나태환 이사를 뒤에서 밀고 있는 건 바로 박영환 위원장이었다.
하지만 조만간 박영환 위원장을 비롯해 위원회 인원 모두가 교체된다.
작년 연말 고급 선물을 받은 사건을 한창 경찰 내부에서 조사 중이기 때문이다.
그 정보를 전하자 오한국 대표가 깜짝 놀라 되묻는다.
“어디서 들었나?”
“아는 기자한테 들었습니다. 위원장님뿐 아니라 이사들이 작년 연말 미디어 관련 회사에게 광범위한 접대를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경찰이 내사에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그······래?”
“예. 증거가 확실해서 라인이 싹 갈릴 테니까 안심하시고 일 처리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그때였다.
한유식 대표가 믿고 끝도 없는 보증을 해준다.
“이 친구의 말은 내가 보증하지. 믿어도 되네.”
“선배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그런 거겠죠.”
오한국 대표는 흔쾌히 알겠다며 인터폰을 들어 올린다.
“인사과에 최 과장 들어오라고 해요.”
달칵.
인터폰을 내린 오한국 대표가 우릴 쳐다본다.
“그러면 난 우리 선배랑 이야기를 좀 더 해야겠으니까 동규 넌 이제 내려가 봐. 오늘 음악 방송 만들어야지. 안 그래?”
“그 말씀은······.”
“그래. 발령을 보류할 테니까 일단 오늘 음방은 네가 맡아. 조만간에 증거 확보하는 대로 취소시켜 버릴 테니까 넌 모른 척하고 있고.”
“예! 대표님!”
안동규 CP는 들뜬 표정을 짓더니 내게 말한다.
“정 실장. 내려가자!”
안동규 CP는 KBC <뮤직 스테이지>의 부조정실을 되찾기 위해 앞장을 서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의 뒤를 따랐다.
여전히 세리가 1위를 하지 못한다는 일정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 * *
쿠웅.
정윤호와 안동규가 문을 닫고 나가자 오한국이 장고를 시작했다.
한유식은 이런 후배의 버릇을 잘 알고 있기에 차를 마시며 그의 생각이 끝나기만 기다렸다.
잠시 후.
“선배님. 정 실장 저 친구 정보를 어디서 캐 오는지 혹시 아십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하지만 인맥이 상당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네. 여러 대기업의 거물들은 물론이고 한국 제일 거부라는 명동의 그 전주까지. 그런데 그건 왜 묻나?”
오한국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실은······ 저도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닙니다. 방통 위원장 뒤를 집중적으로 캐던 보도국 기자를 포섭했는데 그 친구가 조금 전에 막 보고를 올렸습니다.”
“잠깐. 설마 그거 정 실장이 말한 비리야?”
“예. 그동안 반신반의했는데 그게 진짜라니······ 아무튼 신기하군요. 어떻게 기자나 경찰도 아닌 일개 매니저가 그런 것까지 다 알고 있는지······.”
한유식이 피식 웃는다.
“뭐가 됐든 무슨 상관인가? 저 친구가 자네의 편인데.”
“뭐 그건 그렇네요. 어떻게 보면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도 저 친구가 박찬식이랑 봉숙희를 날려준 덕이니까요. 근데 그러고 보니 사례도 제대로 못 했군요. 언제 날 잡고 자리 한번 하시죠.”
“그렇지. 나 역시 미리내 대표로 있을 수 있는 것도 저 친구 때문이니까.”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피식 웃는다.
자신들의 위치가 정윤호 덕분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때 오한국이 슬쩍 떠보듯 묻는다.
“그래서 말인데······ 저 친구를 저한테 주실 수 없습니까?”
한유식이 너털웃음을 짓는다.
“이 사람아. 저 친구가 내 사람이 아니라 내가 저 친구 사람일세.”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날 살린 게 저 친구니 내 목숨은 저 친구의 것이란 뜻이지.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안돼. 잠깐 설마······ 자넨 저 친구를 방송국이 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오한국이 자신 있게 답했다.
자신이 있는 곳은 지상파 3사 중 하나인 KBC였기 때문이다.
“예. KBC가 연봉 테이블도 좋기도 하고 또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방송은 곧 권력 아닙니까?”
한유식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내 자네와의 인연으로 충고하는데 그딴 생각 하지 마. 말하는 건 더더욱 안 되고!”
“예? 아니 왜 그러십니까?”
“저 친구. 연봉이 10억을 넘어. 그리고 올해는 20억도 넘길 친구야. 거기에 ‘미리내’의 지분도 저 친구에게 갈 거고. 그뿐인 줄 아는가? 굴렁쇠 엔터의 최 회장이 자기 지분도 흔쾌히 나눠주는 게 바로 저 친구야. 남의 집안 대들보이자 미래란 말이지. 그런데 그쪽에서 순순히 놓아주겠나? 꿈 깨게. 아니 시도하다가는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네.”
오한국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정윤호에 대한 소문을 듣긴 했지만 모두 과장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한유식의 말이 아니었다면 믿지도 않았을 것이고.
“크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밥이나 사게. 그거면 만족할 친구니까. 아 우리 ‘연무(煙霧)’ 제작비 좀 더 올려주면 좋고.”
“그건 팍팍 밀어드리겠습니다.”
“고맙네.”
오한국은 정윤호에게 손대는 걸 포기한 듯 두 손을 들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고작 28살짜리가 방통 위원장의 인사를 알고 명동 최 회장의 미래라고? 이거 재밌는데?’
오한국의 눈빛이 번쩍였다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 * *
안동규 CP와 함께 부조정실에 도착했다.
아직까진 세리가 1위를 하지 못한다는 일정이 여전히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문 앞에 선 안동규 CP가 심호흡을 가다듬는다.
“자~ 그러면 들어가 볼까?”
“예.”
그 말과 동시에 안동규 CP가 부조정실의 문을 거칠게 연다.
쾅!
부조정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컨트롤 패널 뒤쪽에 있는 소파에 하조은 CP와 매니저들이 함께 앉아 있는 게 보인다.
그 순간 안동규 CP가 고성을 내지른다.
“이야~ 다들 팔자 좋~~네. 민감한 장비가 있는 부조정실에서 커피도 마시고? 여기 음식물 반입 금지인 거 몰라? 엉?”
웃고 있던 하조은 CP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한다.
“뭐야? 넌 또 여기 왜 왔는데?”
그때였다.
안동규 CP가 씨익하고 웃으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한다.
“컴백이다 짜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