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47화
647. 컴백 2
“잠실에 있는 LT 놀이공원을 통째로 빌릴 생각이야.”
성지연이 눈을 큼지막하게 뜨고 되묻는다.
“정말요? 그게 가능해요?”
“어. 가능해. 심야 시간대에 통째로 빌릴 수 있는 거 확인했어. 그리고 거기에 기자들도 싹 다 초대할 거고.”
“쌤한테는 계획이 다 있군요!”
뭔가 익숙한 말인데?
어쨌건 난 고개를 끄덕였다.
“어······.”
“대박~. 그게 가능하면 저쪽 도시락 조공 SNS 퍼지는 거랑 박은빈 기사 올라오는 건 싹 다 묻어버릴 수 있겠는데요? 원래 큰 거 한방 앞에는 다 묻히는 법이잖아요!”
쁘띠엔젤의 회장 배인정이 오늘 1인당 20만 원짜리 최고급 도시락을 돌린 것이 제법 괜찮은 화젯거리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당장 SNS에서는 그것 때문에 난리가 나고 있었고.
하지만 서울 한복판의 대형 놀이공원을 통째로 대관해 수천 명을 상대로 이벤트를 벌이는 건 그걸 뛰어넘는 빅 이벤트였다.
더군다나 기자들까지 초청해서 사진을 찍고 같이 즐긴다면 호의적인 기사로 도배될 게 틀림없었다.
들뜬 성지연이 손뼉을 치며 묻는다.
“아 근데 놀이공원 빌리는 대관료는 어떻게 해요? 팬클럽 애들한테 참가비 걷을까요? 저도 최대한 낼게요.”
잠실 LT 놀이공원을 심야에 대관하는 비용은 어떤 기구들을 탈지 몇 시간을 대관할지에 따라 5천만 원에서 2억 5천만 원까지비용이 소요된다.
체리블라썸이 작년과 올해까지 최고의 순간을 보낸 건 모두가 팬클럽 벚꽃패밀리 덕분이었다.
그러니 이젠 내가 나서야 할 차례였다.
“아니. 우리 회원들이 체리블라썸 다음에 세리 솔로 활동하는 거 지원한다고 다들 허리 휘었잖아.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난 성지연을 안심시킨 뒤 강지영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정 실장님.
“저 지금 KBC인데 혹시 박은빈 컴백 기사 보셨습니까?”
-예. 저희도 지금 확인했어요. 기자들이랑 접촉해서 방법을 찾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아뇨. 단번에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대신 통 큰 지원이 필요합니다.”
난 현재 KBC 내부 데이터로는 세리가 1위를 하는 게 거의 확정적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소소한 이벤트로는 세리의 1위 소식은 박은빈의 컴백 이슈에 다 묻힐 거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러니 LT 놀이공원 심야 대관으로 이슈 덮기를 하고 싶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 이벤트는 세리의 1등 축하뿐 아니라 체리블라썸의 감사 이벤트로 만들자고 말이다.
고민하던 강지영 이사가 답한다.
-세리가 1위가 되는 건 확실해요?
“무대에서 큰 실수를 안 하면 거의 확실합니다. 근데 알다시피 세리가 무대에는 강하잖습니까?”
-하긴······ 그렇죠. 그리고 뭐 체리블라썸 감사 이벤트도 겸하면 크게 문제는 없겠네요. 알았어요. 그럼 예산은 얼마나 필요하세요?
“알아보니까 5천에서 2억 5천까지 듭니다. 최대 8천 명까지 들어갈 수 있고요. 그래서 말인데······ 행사비로 1억 정도는 지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부족한 부분은 제가 협상을 통해서 최대한 할인을 받아 넣겠습니다.”
-잠시만요. 예산 여유 좀 확인하고요.
잠깐의 침묵 후 강지영 이사가 답한다.
-5천만 원까지밖에 안 되긴 하는데 제 재량으로 3천을 더해서 8천만 원까지 지원해 드릴게요.
8천만 원이라.
애매하긴 하다.
하지만 우는소리를 할 수 없었다.
“예. 그러면 8천만 원 안에서 제가 해결하고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연락해 주세요.
원래 예상하는 예산인 1억보다는 2천만 원이 모자라지만 정 안 되면 내가 채워 넣을 생각이다.
현재 ‘THE 베스트’의 일일 판매량은 4억까지 늘어났는데 그 매출액의 1.2%가 나의 몫이기 때문에 내 앞으로는 매일 480만 원의 돈이 들어오는 셈이니까.
그러니 2천만 원 정도를 내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다.
난 전화를 끊자마자 곧장 LT 엔터의 신종기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LT 놀이공원은 LT 엔터에서도 지분을 조금 소유하고 있는 LT 그룹의 계열사이기 때문에 할인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몇 번의 벨 소리 끝에 전화가 닿았다.
-정 실장. 무슨 일인가?
전화를 받은 신종기 대표에게 LT 놀이공원 심야 대관료의 할인을 부탁했다.
순간 그가 웃음을 터트린다.
-하하하. 자네가 먼저 아쉬운 소릴 다 하다니. 아참. 이거 거래 맞지?
“예. 맞습니다.”
-오늘 내가 땡잡았군. 그래 언제 대관하려고?
“금요일 밤부터 주말 중에 비어있는 날을 골라서 할까 합니다.”
-알았네. 최대한 할인받을 수 있도록 힘 써 보지. 지금 전화 끊고 나면 LT 놀이공원 운영 회사에서 자네한테 바로 연락이 갈 거야. 그 친구들이랑 구체적인 건 조율해봐.
“감사합니다.”
-우리 사이에 감사는 무슨. 대신 나도 부탁 하나 하자고.
거래를 제안했으니 당연한 순서다.
“말씀하십시오.”
-조만간 제임스 킹 감독과 미국 쪽에서 미팅할 예정인데 고재수 배우와 함께 자네도 같이 갈 수 있겠나?
신종기 대표의 LT 엔터는 곧 LT 글로벌 픽처스라는 미국 영화사를 설립할 예정이다.
그 LT 글로벌 픽처스의 첫 번째 작품은 제임스 킹 감독의 가 될 건데 그 영화에 관한 회의를 미국에서 할 예정이라고 한다.
미국 쪽 파트너 회사인 유니버스와의 구체적인 협의 때문에 말이다.
“체류비는 누가 내는 겁니까?”
-하여간 꼼꼼하기는. 당연히 우리 쪽일세.
그렇다면 오케이지.
어차피 고재수가 미국에서 협상을 맺어야 한다면 한번은 들러야 하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알겠네. 날짜 정해지면 연락하겠네.
“예.”
달칵.
전화를 끊고 나자 신종기 대표가 말한 대로 곧바로 LT 놀이공원 운영 측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LT 놀이공원 운영을 총괄하는 신인준 대표의 전화였다.
그는 신종기 대표의 사촌 동생이기도 하다.
-종기 형님께 연락받았습니다. 무조건 협조하라고 으름장을 놓더군요.
“죄송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종기 형님 성격이야 워낙 불도저라. 아무튼 전체 대관을 하는 분은 거의 없으니까 일정은 편하신 대로 잡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비용은 5천만 원으로 모든 시설을 사용할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5천만 원으로요?”
-예. 종기 형님이 가장 싼 금액으로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시더군요. 제가 빚진 게 좀 많거든요.
1억으로 가장 인기 있는 놀이기구를 3개 정도만 사용할 수 있으면 대박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상상 이상의 결과였다.
“너무 감사합니다. 그러면 대관 시간이 몇 시간 정도 되나요?”
-시간도 풀입니다.
“이거 예상왼데요?”
-어차피 저희 LT 놀이공원에서도 체리블라썸이 방문을 했다는 것 자체로 홍보가 되어서요. 아 전 우연희 씨 팬입니다. 하하하.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어서라고는 말하지만 실제로 LT 놀이공원 쪽에서 엄청난 배려를 해준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나 역시 보답해야 했다.
“그러면 LT 놀이공원에 대한 홍보를 저희가 책임지고 하겠습니다. 스타그램과 트윈터 너튜브에 올린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때였다.
-역시 종기 형님에게 들은 대로군요.
“예?”
-정 실장님과 협상을 하려면 잔뜩 긴장해야 할 테지만 미리 베풀면 기대한 것 이상의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요. 하하하.
신인준 대표는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말을 잇는다.
-좋습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제 전결로 2천을 더 빼 드리겠습니다. 총 결제액은 3천만 원만 내십시오. 대신에 SNS 노출 횟수나 방법은 저희 기준을 맞춰주십시오.
생각지도 못하게 다시 한번 할인을 받았다.
“이거 부담이 팍팍 되는데요?”
-예. 그러니까 그날 홍보 좀 제대로 해주십시오.
“그날이 아니라 오늘부터 바로 해 드리겠습니다.”
대충 사정을 말하자 기분 좋은 웃음이 터져 나온다.
-역시~ 투자하길 잘했는데요? 좋습니다. 오늘 저희 쪽에서도 필요한 보도자료나 사진 같은 것 좀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저희 회사의 강지영 이사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강 이사님이 대표님에게 다시 전화드릴겁니다.”
-예. 그렇게 하시죠.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인사를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곁에서 모든 걸 들은 성지연이 혀를 내두른다.
“대~~박!! 3천만 원이면 저쪽에서 뿌린 도시락 값도 안 될 거예요. 역시 우리 쌤! 완전 대~~박! 우리 정 실장님이 최고~~.”
성지연은 쌍 엄지를 날리며 제 자리에서 방방 뛰기 시작한다.
팬클럽 회장이라 그런지 리액션이 참 찰지다.
난 들뜬 그녀를 달랜 뒤에야 강지영 이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전했다.
-진짜요? 와~~ 우리 정 실장님. 앞으로 이런 협상은 전부 정 실장님한테 다 맡겨야겠는데요?
강지영 이사의 목소리도 덩달아 한 톤이 올라가 있다.
“운이 좋았습니다.”
-풋. 운 가지고는 절대 안 될 거 같은데요? 하여간 신 대표님이랑 통화한 다음 기자들에게 연락 돌릴게요.
“예. 이사님. 그리고 기자들한테도 자유이용권 꼭~ 준다고 말씀하시고요.”
-호호호. 물론이죠. 기자들도 엄청 좋아하겠는데요?
“그럴 겁니다.”
웃으며 전화를 끊을까 하던 그때였다.
갑자기 강지영 이사가 말한다.
-아참. 그리고 회사의 다른 직원들한테는 3천만 원에 빌렸단 이야기 절대 하지 마세요.
“왜 그러십니까?”
강지영 이사가 한숨을 내 쉰다.
-어차피 정 실장님 말고는 불가능하니까요.
그런 거라면 이해가 간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일단은 관우 엔터 쪽 식구들은 8천만 원 정도에 빌린 걸로 알고 있어요.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난 뒤 그제야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들떠 있는 성지연을 향해 다시 한번 말했다.
“지연아. 고맙다. 네가 현장에서 회원들 흔들리지 않게 잡아줘서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어.”
“에이~ 아니에요. 쌤. 그래도 쌤이 오면 뭔가 해주겠지 하고 기대하는 게 있어서 버틴 거예요. 저 혼자서는 못 버텼을걸요?”
날 신뢰한다는 성지연의 대답이 가슴을 뛰게 했다.
그 순간 난 주먹을 들어 올렸다.
성지연이 내 주먹을 보고 따라 들어 올린다.
툭.
우리 둘은 주먹을 맞부딪히며 세리를 위해 싸우는 전우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 * *
한꽃님 박한별 양지우는 배인정이 주문한 최고급 도시락 배달 차를 우리 쪽으로 끌고 왔다.
그러자 배인정과 쁘띠엔젤들은 마치 자신들이 1위라도 한 듯 뿌듯한 표정으로 우리 팬클럽 회원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준다.
“우리 은빈이. 많이 사랑해주세요.”
“이것 좀 드세요~.”
그렇게 거의 모든 도시락을 다 나눠줬을 무렵이었다.
지이잉~.
내가 기다린 기사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까톡이다.
난 그 즉시 포털의 연예 기사면을 확인했다.
[김세리. LT 놀이공원 통 대관 이벤트. 이미 1위 예감?]
[체리블라썸. 팬클럽과 함께 LT 놀이공원에서 대형 이벤트 개최!]
[김세리 서연우의 1위 경쟁. 겹경사가 난 굴렁쇠.]
[김세리. <화란전>의 OST로 최초의 1위 유력.]
[<프로젝트 I.O.A> 서울 지역 예선. 눈에 띄는 유망주 대거 등장.]
······
연예 기사면을 세리와 체리블라썸 그리고 <프로젝트 I.O.A>에 관한 기사를 빠르게 채우기 시작한다.
동시에 자연스럽게 박은빈의 컴백 기사들은 밀려나고 있었다.
“지연아. 이것 봐.”
끝까지 기사를 기다리며 도시락을 받지 않고 버티던 성지연이 기사를 확인한다.
“떴네요.”
“그래.”
“그러면 저도 다녀올게요.”
성지연은 흐뭇한 표정을 짓더니 배인정이 끌고 온 도시락 차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리고는 도시락을 나눠주던 배인정 앞에 서서 당당히 손을 내민다.
“나도 하나만 줘요 언니.”
배인정이 고개를 갸웃한다.
“응? 아깐 죽어도 안 먹겠다고 하더니?”
“아~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져서 먹을래요. 보니까 맛있어 보이는데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배인정이 고개를 갸웃한다.
성지연은 그저 웃으며 도시락을 받아든다.
그때였다.
쁘띠엔젤이 나눠 준 서포트 도시락을 먹고 있던 벚꽃패밀리들 사이에서 소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야! 우리 LT 놀이공원 통으로 빌려서 팬 미팅한대~~!”
“아 미친! 심야에 논다는 데 어떻게 하지? 나 통금 10신데!”
“아 나도! 아빠한테 허락 어떻게 받지?”
“대박이다! 봐! 박은빈 기사 싹 다 밀렸어!”
순간 도시락을 나눠주던 배인정과 쁘띠엔젤 회원들이 다급히 폰을 확인한다.
박은빈의 컴백 기사가 세리와 체리블라썸의 LT 놀이공원 대관 이슈로 빠르게 덮이는 걸 보자 다들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이 이거 왜 이래?”
“최 기자님은 우리 편 아냐?”
“아 진짜! 이거 뭐야?”
‘벚꽃패밀리’는 마치 벚꽃이 만개한 봄 축제 분위기가 되었고 ‘쁘띠엔젤’들은 초상집 분위기가 되고 있었다.
기사를 본 배인정의 얼굴 역시도 일그러진다.
모처럼 도시락도 살포하고 기자들에게 손도 썼는데 그게 모조리 헛것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배인정이 쓴 모든 돈은 마치 저승길 노잣돈을 불태우듯 허공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 * *
자신이 꾸민 모든 일이 수포가 되자 배인정이 날 빤히 노려본다.
“정 실장님이 일 잘한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소문이 사실이었네요. 오늘 일. 절대로 안 잊을게요.”
배인정은 처음 보였던 미소와는 달리 이를 빠드득 갈며 쁘띠엔젤들과 함께 자기들이 모여있던 공간으로 돌아간다.
그러자 KBC 본관 앞에는 벚꽃패밀리가 외치는 승리의 환호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 진짜. 우리 회사 진짜 대박이다.”
“정 실장님.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세리에 관한 1위 유력 기사가 기사면을 채우자 저마다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방방 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아이들이 다들 마치 볼드모트처럼 우리 팬클럽 명을 말하지 않고 있었다.
그 순간 난 횡성 4인방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연아. 이제 우리 체리블라썸 팬클럽 명 바꾸는 것도 생각해 보자.”
배인정에게 받은 초밥 도시락을 맛있게 먹던 성지연이 묻는다.
“음음······ 그럼 뭐라고 해요? 원래는 싫었는데 자꾸 부르다 보니 이제 벚꽃패밀리도 입에 쫙쫙 붙는데요?”
박한별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말하다 보니 정감이 가긴 해요. 조금 옛날 센스이긴 해도요.”
원래는 임시로 사용하던 팬클럽 이름이었을 뿐인데 많이 쓰다 보니 익숙해진 거다.
하지만 앞으로는 당당히 부를 수 있는 이름이 필요했다.
“생각해봤는데······ 내 개인적으로는 블루밍(blooming)이 어떨까 해. 어떤 거 같아?”
블루밍(blooming.)
영어로 활짝 핀 만발한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인데 체리블라썸의 꽃 핀 이 순간이 영원히 이어지길 기원한다는 뜻이었다.
심드렁하던 성지연의 눈이 일순간 초롱초롱하게 변한다.
“전 완전 찬성이요!”
아니 조금 전까지 쫙쫙 붙는다며?
그건 지금 먹고 있던 전복 초밥을 이야기 한 거였어?
한꽃님이 씨익 웃는다.
“진짜 예뻐요 쌤! 이제 팬클럽 이름 마음껏 부를 수 있겠다. 힛!”
그래 솔직한 게 좋다 꽃님아.
그러자 박한별도 입을 오물거리며 찬성의 뜻을 표한다.
“인정. 벚꽃패밀리보다는 한 3배 정도 좋은 거 같아. 딱 좋아. 완전 좋아.”
양지우는 입에 유부초밥을 하나 밀어 넣으며 답한다.
“난 3만 배······ 정도?”
아이들은 배인정이 벌인 수작질을 밟아준 것보다 다들 몇 배는 더 즐거운 표정들이다.
“오케이. 그러면 팬클럽 식구들 의견도 물어본 다음에 대답해줘. 알겠지?”
“네~~!”
“이따 보자.”
행복한 표정을 짓는 횡성 4인방을 뒤로한 뒤 대기실로 향했다.
* * *
대기실 복도를 빠르게 뛰어 세리가 있다는 3번 단독 대기실로 향했다.
벌컥.
문을 연 순간 도란희가 두 팔을 위로 들어 올리고선 목도리도마뱀처럼 빠르게 달려온다.
“실장니~~임!”
깜짝 놀란 난 두 손을 뻗어 달려오던 그녀의 어깨를 꽉하고 붙잡았다.
턱.
어찌나 빠르게 달려왔는지 몸이 휘청일 정도다.
“으윽. 뭐 뭐냐. 너?”
어깨를 붙잡인 도란희가 씨익 웃는다.
“싸랑한다고요오~~.”
“아니. 네 사랑 따위 필요 없어. 그 사랑은 영진이한테나 줘.”
“에이~ 남친한테 주는 사랑이랑 실장님한테 주는 사랑은 다르죠.”
“무슨 사랑이든 다 필요 없거든?”
도란희가 킥킥거리며 답한다.
“암튼 잘 오셨어요. 근데 대체 쁘띠엔젤 새 회장이 누구예요? 걔 때문에 진짜 끝장나는 줄 알았어요!”
“있어. 갑부 딸. 아니 정확히는 본인이 갑부라고 해야겠지.”
난 도란희에게 배인정이 어떤 아이인지 알려줬다.
도란희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미친······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지 하루에 중형차 한 대 값을 뿌려요?”
“그 정도로는 걔 통장에 기스도 안 가니까 앞으로 정신 바짝 차려. 그리고 팬클럽 대응은 현장에서 바로바로 해결해야 하니까 란희 네가 할 일이 많을 거야. 앞으로 혼자 감당하기 힘든 일은 오늘처럼 연락 바로 해. 내가 확실하게 커버 해줄게.”
“하긴 실장님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에요. 알았어요. 전 제 일만 하고 있을게요.”
그렇게 도란희를 안심시켜놓자 그제야 세리가 눈에 들어온다.
세리는 메이크업을 마치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사실상 1위라는 정보를 건너 들은 탓인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다.
“세리야. 부담돼?”
세리가 고개를 젓는다.
“아뇨. 전혀요! 그냥 꿈인지 생시인지 멍~ 해서요. 유노 오빠. 이거 진짜~ 꿈 아니죠?”
늘 체리블라썸의 이름으로 언니들과 함께 활동하다가 혼자서 이런 결과가 나자 믿기지 않는단다.
“꿈 아냐.”
“아 도저히 못 믿겠어요. 유노 오빠. 내 볼 좀 꼬집어 봐봐요.”
세리가 졸라대길래 피식 웃으며 세리 앞으로 걸어갔다.
세리가 눈을 꼭 하고 감는다.
난 세리의 볼을 꼬집는 척하다가 손바닥을 펴고는 세리의 작은 두 볼을 손으로 감쌌다.
소중한 내 연예인의 볼에 상처를 낼 순 없으니까 말이다.
“앗 뜨거!”
내 손바닥이 뺨에 닿자 눈을 감았던 세리가 활짝 눈을 뜬다.
내 손바닥이 열이 많다 보니 뜨거워서 놀란 거다.
“봐봐. 꿈 아니지?”
내 두 손 사이에 있는 세리의 작은 얼굴에 웃음이 깃든다.
“꿈 아니네요 진짜~.”
난 두 손으로 탱탱한 볼을 살짝 눌러줬다 뗀 뒤 잔머리를 정리해주며 말했다.
“오늘 무대는 네가 그동안 노력한 결과야. 그래도 아직 100% 확정된 건 아니니까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하자. 알았지?”
“예~썰!”
난 그렇게 세리에게 힘을 불어넣고선 세리의 머리카락에서 손을 뗐다.
그때였다.
똑똑.
대기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들어오세요~.”
문이 달칵 열리더니 박은빈과 함께 마동팔 본부장이 들어온다.
‘뭐지?’
대기실 인사를 꺼리던 그녀가 후배인 세리의 대기실로 찾아오다니.
그런데 그와 동시에 폰에서 진동이 울린다.
뭔가 하고 봤더니 에브리데이가 보내온 알림이다.
[알림 : 2021년 2월 14일. ‘김세리’에게 새로운 일정이 등록되었습니다.]
박은빈과 마동팔 본부장이 나타나자마자 일정이 뜬 게 의아했다.
그래서 난 그 즉시 일정부터 확인했다.
그런데 새롭게 뜬 일정에는 터무니없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