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3화
643. 서울 지역 예선 2
고은서.
올해 17살인 그녀의 세련된 외모는 어지간한 주연급 배우 이상이고 가창력은 어지간한 베테랑 가수 뺨치는 수준이다.
거기다 어릴 때부터 무용과 피아노를 프로 수준으로 익혔기에 댄스나 악기 역주에도 강점이 있었다.
오디션 프로의 전문가인 지영식 PD가 보자마자 얜 스타가 될 거라며 반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심각한 결점이 있다.
아버지가 인천 쪽 ‘고준택’이라는 3선 국회의원이고 어머니가 탑 여배우 출신 한소예인데 두 사람 모두가 회사의 일에 엄청나게 간섭한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고은서는 본인 스스로 잘난 걸 아는 데다가 본인만 아는 이기적인 성격이었기에 탑 엔터 시절에는 그녀를 중심으로 팀을 만들려다 무려 5개의 팀을 깨 먹었다.
그래서 당시 그녀의 별명은 ‘고동설’이었다.
천동설 지동설처럼 세상은 모두 고은서를 중심으로 돈다고 말이다.
결국 난 어쩔 수 없이 철저히 그녀 말을 따르는 3명의 멤버를 엮어 팀이 아닌 팀을 만들어서 데뷔시키고서 1위까지 만들었다.
당시 그룹명은 모란꽃의 영어 이름인 ‘PEONY’였는데 김동수가 직접 지은 것이었다.
당시 김동수는 거대한 모란꽃이 꽃 중의 꽃이자 왕중왕이니 아이돌 중 왕이 되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언론플레이를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향기 없는 꽃’이라는 뜻으로 비꼰 의미였다.
제멋대로인 고은서의 성격에다가 그녀의 엄마 한소예가 허구한 날 회사로 찾아와서 이런저런 요구를 하는 게 진저리가 난다면서 말이다.
하여간 천하의 김동수도 혀를 내두를 정도니 어지간한 매니저들은 그녀와 그녀의 엄마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맡았었다.
“고은서······라고요?”
나도 모르게 당황해서 말했더니 지영식 PD가 고개를 끄덕인다.
“예. 혹시 아는 애입니까?”
난 2차 오디션 영상을 보지 않은 터라 그녀가 누군지 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 아뇨. 아는 사람이랑 이름이 비슷해서 착각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이따가 한번 보세요. 은서 걔 분명히 뜰 겁니다.”
지영식 PD는 본인도 오디션 프로의 출신이다 보니 마치 출전자가 된 듯 들뜬 표정이다.
오늘 오전 오디션 참석자 250명 중에서는 고은서가 제일 눈에 띈다면서 말이다.
하긴 나 역시도 고은서를 처음 봤을 땐 그랬지.
팀을 세 개 정도 깨 먹기 전까지는 애지중지했고 그녀의 엄마 한소예가 다섯 번 정도 날 찾아와서 곡을 바꿔라 안무를 바꾸라고 요구할 때까지도 그랬었다.
그런데 한소예에 관한 이야기가 없는 걸 보니 아직 고은서의 엄마가 누군지는 모르나 보다.
그때 지영식 PD가 아차 하며 말한다.
“아 지금 대기실에서 두 씬 정도 촬영해야 하는데 준비 서둘러 주세요.”
“예.”
우연희와 양은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촬영 준비가 끝났단 신호를 준다.
지영식 PD가 대기실 밖으로 고개를 돌려 외친다.
“촬영팀 들어와.”
대기실 입구에서 촬영팀들이 들어와 우연희와 양은비가 메이크업하는 것을 찍기 시작했다.
<프로젝트 I.O.A>에 쓰일 인트로 영상용과 인터뷰까지 따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난 앞으로 고은서를 어떻게 할지 고심하기 시작했다.
비록 내게 프로젝트 ‘자문’으로서 멤버 선발 거부권이 있긴 했지만 가수 선발에 대해서는 최대한 간섭하지 않을 거라고 말을 해놓은 상태다.
게다가 <프로젝트 I.O.A>를 제작한 이유는 I.O.A를 홍보하고 성공적으로 런칭하는 것 이외에도 I.O.A를 매니징 하는 가수 2실과 ‘정 실’의 가수 파트 매니저들을 성장시키는 것 또한 주요 목적이었다.
그래서 난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렸다.
한소예나 국회의원이 외압을 행사하지 않는 이상 가수 선발에는 관여하지 않기로 말이다.
어차피 인성을 걸러내는 장치는 프로그램상에 잔뜩 넣어뒀기 때문이었다.
* * *
오늘 지역 예선 첫날에 참석한 <프로젝트 I.O.A>의 심사위원은 총 7명이다.
테이프 음반 시절부터 음악 전문 기획사를 운영해 온 안예음 이사.
가수 2실을 책임진 프로듀서 겸 제작자 출신인 이동민 실장.
한국 엔터 업계에서 가장 핫한 안무가가 된 박선녀 선생님까지 세 사람이 프로그램의 끝까지 자리할 메인 심사위원이었다.
그리고 체리블라썸의 우연희와 양은비 20년 경력의 댄스 보컬 백윤주 마지막으로 블릿의 리더이자 내 친구인 김종훈은 스케줄에 따라 교체될 수도 있는 객원 심사위원들이었다.
현재 그 7명은 심사위원석에서 태블릿으로 1차와 2차 오디션 영상을 확인하고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난 심사위원석이 보이는 옆쪽 관객석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곁에는 정상봉이 태블릿을 들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때 태블릿으로 지원자들의 동영상을 보던 정상봉이 묻는다.
“실장님. 요즘 폰카 화질도 좋은데 2차 오디션 영상으로 대부분 다 거르면 되는 거 아닙니까? 왜 현장 오디션을 하는데 1천 명이나 부르죠?”
“아 그거? 잠시 뒤에 직접 보면 알 거야.”
“예?”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보는 게 나아.”
그때 센터에 앉은 이동민 실장이 말한다.
“자 시작해 봅시다~”
이동민 실장이 손을 들어 올린다.
검은 티셔츠를 입고 있는 진행팀원이 곧장 대기 장소와 연결된 문을 연다.
“자~ 1번 참가자 들어와 주세요.”
그 순간 참가 번호 1번 19살의 이나래가 발랄한 걸음걸이로 들어온다.
“참가 번호 1번. 이나래입니다! 너튜브 BJ 래나래나로 활동 중입니다.”
그 순간 정상봉이 믿을 수가 없다며 눈을 끔뻑거린다.
“어······?”
정상봉이 1차 서류와 2차 오디션 동영상이 떠 있는 태블릿을 보다가 다시 고개 들어 이나래를 쳐다본다.
“뭐지 이거?”
이나래가 보내온 프로필에는 키가 161cm에 몸무게 45kg으로 적혀 있다.
2차 오디션 동영상 오디션에선 늘씬한 8등신의 미녀가 열심히 춤을 추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이나래는 달랐다.
키는 155cm 정도였고 갸름한 볼은 조금 통통한 편이었다.
동영상에 필터를 써서 갸름하게 만든 것이었다.
물론 원판이 좋아 귀엽긴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다른 사람이었다.
“이래서 현장 오디션을 보는 거지.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정상봉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짓는다.
“어차피 다 드러날 텐데 왜 저러는······ 겁니까?”
“학원들 상술이야.”
오디션 프로들이 범람하게 되면서 몇몇 댄스 학원이나 보컬 학원들이 오디션 프로그램 통과를 학원 실적으로 삼는다.
가령 <아이돌 프로젝트> 본선 통과 2명 <슈퍼 K 아이돌> 8강전 진출 등등으로 마치 대학교에 몇몇 입학을 했다고 플래카드를 붙이는 입시학원처럼 광고한다.
그리고 그걸 이용해서 학원 홍보를 하고 학원생을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조작을 하는 것이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다 돈이 되니까 그래. 그래도 학원 출신 중에서 괜찮은 애들도 있으니까 일단 한번 보자.”
“예······.”
그때 이동민 실장 역시도 똑같이 이나래가 학원 출신임을 의심하고 묻는다.
“프로필이나 영상에서 보는 거랑 조금······ 다르네요?”
“아 몸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며칠 만에 살이 좀 올랐어요. 다시 금방 돌아갈 수 있어요.”
학원 출신이 맞군.
그들은 늘 이런 식으로 말을 둘러대라고 시키기 때문이다.
이동민 실장도 단번에 알아차렸다.
“혹시 학원 다니고 있어요?”
“아 아니요?”
“솔직하게 대답하세요. 아니면 오디션 합격해도 탈락 처리될 수도 있습니다.”
순간 이나래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한다.
“실은 탑 아이돌 댄스 스쿨에 다니고 있어요.”
“아~ 성대헌 원장이 하는 곳이요?”
“어? 우리 원장님 아세요?”
“예. 잘 알아요.”
이나래의 얼굴이 활짝 핀다.
하지만 이동민 실장이 잘 안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반쯤 사기꾼으로 잘 안다는 소리였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그 학원 출신 중에서 성공한 아이돌이 있긴 했기 때문에 이동민 실장은 일단 들어볼 마음을 먹는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바로 시작해 보죠. 준비한 곡이 체리블라썸의 ‘HURRY UP’이군요?”
이나래가 우연희와 양은비를 쳐다보며 콧대를 치켜들고 말한다.
“두 분 선배님께 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저만의 신선한 매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당당함을 어필하려는 전략인가 본데 오히려 심사위원들을 자극만 해버렸다.
“자신감만큼 실력이 있으면 좋겠네요. 자 시작하시죠.”
“넵!”
이나래가 반주가 나오길 기다리며 포즈를 잡는다.
정상봉은 어이가 없다며 씩씩거린다.
“실장님. 쟤 너무 오만한 거 아닙니까? 어떻게 감히 우리 연희랑 은비를 놓고 저런 말을 하죠?”
“뭐 패기는 좋잖아. 일단 한번 들어보자.”
정상봉은 왜 내가 화를 내지 않는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난 별로 화가 나지 않았다.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 치고는 제대로 된 실력을 갖춘 사람이 없으니까 말이다.
『허리~ 어업! 리스~은 어업!』
예상대로였다.
학원에서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기에 제법 그럴싸하게 들리긴 했지만 음정이 불안하고 호흡과 박자가 고르지 않다.
내 귀에도 그렇게 들리는데 전문적으로 음악을 한 이동민 실장의 귀에 좋게 들릴 리가 없었다.
지금 보니 2차 오디션 영상에 담긴 노래는 학원에서 녹음한 다음 전문가가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가다듬어 제출한 것이다.
결국 의 반주가 나오고 30초도 되지 않아 이동민 실장이 탈락 버저를 누른다.
삐이-.
이동민 실장이 탈락 버저를 누르자 옆에도 따라서 파도처럼 탈락 버저를 누른다.
만장일치 탈락.
그러나 이나래는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발끈한다.
“왜요? 제가 듣기엔 완전 똑같았는데요?”
이동민 실장이 아찔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답변한다.
“아니. 완전 달라.”
“그럼 다시 한번 해볼게요! 우리 학원 선생님이랑 가족들이랑 다 똑같다고 했단 말이에요!”
“하아~ 알았어. 그러면 잠시만.”
이동민 실장이 곧장 우연희를 쳐다본다.
“연희야. 한 소절만 불러줄래? 인트로 파트만. 그래야지 쟤가 이해할 거 같은데?”
“네 알았어요.”
우연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무런 반주도 없이 곧바로 노래를 부른다.
『Hurry Up~! Listen Up~!』
메인 보컬이 아닌데도 우연희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무대 위를 가득 채울 정도로 풍부하게 울린다.
일반인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성량에서 맑은 고음이 뿜어져 나오는데 그 와중에 가사가 또렷하게 들린다.
완벽한 딕션을 가진 영어 발음에 힘들지 않고 가볍게 부르는 여유로움까지.
그러면서도 멜로디라인이 그대로 살아 있는 우연희의 보컬은 비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수준 차이가 났다.
“됐어 연희야.”
우연희가 고개를 까닥이고 숙인다.
이동민 실장이 다시금 이나래를 쳐다본다.
“봤죠? 나래 씨한테는 미안하지만 성량 발성. 기교까지 모조리 다 떨어져요. 아이돌이라고 너무 쉽게 보시고 나온 것 아닌가요?”
눈앞에서 엄청난 실력 차를 확인한 순간 이나래는 슬금슬금 시선을 돌리고 인정한다.
“제······ 제 연습이 부족했나 봐요.”
순간 안예음 이사가 고민하다 입을 연다.
“아뇨. 나래 씨. 이건 연습 문제가 아니에요. 타고난 재능을 갈고닦아도 될까 말까 한 곳이 이곳 연예계인데 지금 나래 씨 수준으로는 힘들어요. 그리고 그 성대헌 원장은 업계에서 오디션 전문 강사라고 알려져 있으니까 괜히 돈 낭비하지 마시고 다른 길을 알아보세요. 본인을 위해서라도요.”
안예음 이사는 이나래의 인생을 위해 어른으로서 조언해주고 있었다.
이 업계에서 희망 고문을 당한 아이들이 얼마나 망가지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나래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오른쪽 문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당장은 받아들이기 힘들 거다.
그러나 오늘의 오디션이 그녀에게는 쓰고 좋은 약이 되길 바랐다.
그나저나 성대헌 원장은 기회가 되면 한번 직접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아이들의 인생을 가지고 헛된 꿈을 팔고 있으니 말이다.
“자 2번 참가자 들어오세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심사위원들은 놓치는 점 없이 심사를 깔끔하게 보고 있었다.
덕분에 프로그램이 성공할 거라는 기대감이 잔뜩 일기 시작했다.
* * *
100번까지를 오디션을 본 결과 합격자에게 주는 [I.O.A 서울예선 통과]라는 띠를 두른 분홍 인형은 총 5개만이 나갔다.
“잠시 쉬고 하겠습니다.”
지영식 PD가 휴식을 알리자 다들 한숨을 돌리고 대기실로 향했다.
나 역시 이동민 실장과 이야기를 할 게 있어 대기실로 향했다.
대기실에 들어가자 이동민 실장과 김종훈이 메이크업을 수정 중이다.
“실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생큐. 그나저나 오랜만에 방송 촬영이라서 쉽지 않네.”
난 김종훈에게도 인사를 한 뒤 이동민을 바라봤다.
“표정이 왜 그래? 혹 떨어진 애 중에서 우리가 놓친 애라도 있어?”
그에게는 전권을 다 맡겼는데도 이동민 실장은 계속 내게 확인을 받으려고 한다.
이것만 봐도 이번 오디션에 최대한 간섭하지 않겠다고 한 건 잘한 것 같다.
만약 내가 없이 이런 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해 낸다면 반대로 더욱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다만 외압이 들어올 수 있는 고은서의 엄마 한소예에 관해서는 언급해 둘까 싶었다.
“아 그게요······.”
그때였다.
복도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대기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똑똑.
“누구세요?”
-저 강대웅입니다.
이번 <프로젝트 I.O.A>의 책임 CP인 강대웅이었다.
“아 들어오세요.”
강대웅 CP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리고 그 뒤로 박한종 국장 지영식 PD가 다 같이 들어오고 있었다.
“국장님. 오셨습니까?”
“허허허. 그래. 그래. 앉아 있어. 이동민 실장 오늘 제법 독하게 심사평을 하던데?”
“죄송합니다. 적당히 하려고 해도 너무 기본이 안 된 지망생들이 많아서······.”
“아냐. 자네 예전에 잘나가던 시절이 떠올라서 보기 좋았네. 너무 밍숭맹숭한 것보다는 그렇게 톡톡 쏴줘야 제맛이지. 방송 분량도 좀 나오고.”
이상하게 공치사가 길다.
뭔가 본론이 남은 느낌인데······
그때였다.
하이톤의 목소리가 복도 쪽에서 들린다.
-국장님은? 여기 계셔?
곧 요란한 구두 소리와 함께 열린 대기실로 챙이 넓은 모자를 쓴 40대의 아름다운 미녀가 들어왔다.
고은서의 엄마 한소예였다.
“어머~~ 국장님!”
“아니! 이게 누구야? 우리 한 여사 아닌가!”
“호호! 여사님은 무슨. 그냥 예전처럼 소예라고 부르세요.”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야?”
“아~ 국장님 좀 뵈려고요.”
그녀는 19살에 데뷔해서 수년간 큰 인기를 누린 탑여배우였지만 정치인과 결혼하면서 연예계를 은퇴했었다.
그런데 그녀가 지금 보좌관으로 보이는 정장의 사내 두 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 순간 그녀가 여기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압박하러 온 거군.’
한소예는 국장과 짜고 은근슬쩍 대기실에 나타난 게 틀림없다.
대기실이 있는 곳은 스태프의 도움 없이는 함부로 들어올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양반은 못될 인물이다.
“그나저나 여긴 어쩐 일이신가? 왜? 다시 작품 한번 하시게?”
“에이~ 지금은 나 배우 아니에요. 남편 뒷바라지하고 딸 키우기 바쁜데요~ 뭘.”
국장과의 인사를 겉핥기로 한 한소예가 이동민 실장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는다.
“이 실장님. 우리 오랜만이죠?”
이동민 실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아 예.”
한소예는 과거 배우 인기로 음반을 3집이나 낸 가수이기도 했다.
그래서 서로 만난 적이 있었다.
“오늘은 우리 딸 은서가 오디션을 보러 온 김에 놀러 왔어요. 호호호. 보니까 가족 인터뷰 같은 것도 한다면서요? 나 그동안 방송에는 출연 안 했었는데 우리 은서가 나오면 응원차 한번 나와 볼까 해서요. 우리 그이도 허락했고요.”
결혼과 동시에 연예계에서 은퇴한 그녀는 이 기회에 방송 출연을 해주겠다고 제안하고 있었다.
방송국에서는 자극적인 시청률을 생각하면 거절하기 힘든 소스였다.
그러나 바로 이게 청탁이다.
천하의 한소예가 방송에 출연해버리면 그 딸을 떨어뜨리는 건 극히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이동민 실장이 정중히 말한다.
“죄송하지만 그러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괜히 얽혀서 선발에 공정성을 의심받기 싫습니다.”
한소예가 코끝을 찡그린다.
짜증이 났을 때 보이는 습관이다.
“우리 실장님. 답답한 건 여전하네. 어차피 아는 사이끼리 좀 편하게 가자는 건데 뭘 또 그렇게 정색해요? 그리고 솔직히 내 딸이긴 해도 은서. 나보다 더 예쁘고 실력도 있는 애라서 고민 안 해도 돼요. 그리고 내가 방송 타면 시청률도 올라가서 좋잖아요. 아니에요?”
“그거야 모르죠.”
이동민 실장이 한소예를 상대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강하게 쳐내지를 못한다.
이쯤에서는 화를 내서라도 밀어내야 하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 할 것 같다.
가수 선발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런 외압만큼은 보고 있을 생각이 없으니까.
‘그럼. 국회의원 사모님 한소예를 이곳에서 몰아내 볼까?’
난 자리에서 일어난 뒤 한소예에게 딱 부러지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이곳에서 몰아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