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42화
642. 서울 지역 예선 1
미소가 두 손으로 편지지를 손에 꼭 쥐고 날 향해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유노 삼촌에게!
삼촌 덕분에 미소는 오늘 아무 탈 없이 유치원을 졸업할 수 있게 됐어요.
삼촌이 아니었다면 난 아마 이 세상에 없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너무너무 고맙고 또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삼촌한테 보답해야 할지 몰라서 열 밤 백 밤을 자고 고민하고 있는데 아직도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직 제가 어려서 그런가 봐요.
아마도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연기하고 씩씩하게 자라면 그땐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처럼 오래오래 미소 옆에 있어 주세요.
내가 어른이 되어서 삼촌에게 보답할 때까지요.
그리고 언제나 미소를 너무너무 사랑해줘서 바다만큼 우주만큼 고마워요!
앞으로는 더 착한 미소가 될게요.
삼촌을 엄~청~ 사랑하는 미소 올림!
미소가 편지를 다 읽고 히죽 웃는다.
“헤헤. 끝.”
회귀 전에는 미소가 죽었었기에 꿈에서나 그리던 풍경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일이 바뀌어 유치원에서 감사의 편지까지 받게 되었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온몸에 전율이 흐르기 시작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도 가지 않았기에 잠시 멍하니 서서 미소의 웃음을 지켜봤다.
그때였다.
곁에 있던 유진이가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오빠······ 괜찮아요?”
“아. 그 그래.”
그제야 난 정신을 차린 뒤 환한 표정으로 머리 위에 하트를 만들어서 답했다.
“미소야. 유치원 졸업 축하해~~!!”
순간 유치원에 모인 학부모들이 일제히 손뼉을 치기 시작한다.
짝짝짝.
작은 소강당이 울릴 정도의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자 미소가 씩하고 웃더니 쪼르르 달려온다.
그리고는 작은 두 팔을 활짝 벌려 나와 유진이를 동시에 와락 끌어안았다.
“사랑해요~~”
유진이와 난 동시에 미소를 꼬옥하고 안았다.
그 순간 멈춰 있는 것만 같던 심장이 미친 듯 두근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가진 듯한 충만감이 가슴을 가득 채웠기에 세상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았다.
세상 무엇보다 빛나는 보석이 내 품에 안겨 있었으니까 말이다.
한참 동안의 포옹을 푼 뒤 미소에게 정인지 아주머니에게는 왜 편지를 안 보냈냐고 물었다.
그러자 미소는 씩씩한 말투로 대답했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1층에서 편지를 낭독하고 직접 전해 드렸다고.
할머니가 제일 어른이라서 말이다.
정인지 아주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핸드백 속의 편지를 꺼내며 연신 자랑을 해왔다.
“잘했어 미소야.”
“헤헤헤. 네!”
이후 난 미소를 품에 안은 채 다른 아이들의 편지 읽기를 지켜봤다.
다른 유치원생들 모두가 부모님에게 대한 편지 낭독을 하나씩 끝내며 소강당은 한바탕 눈물바다가 되기 시작했다.
특히 한울이와 은별이가 부모님의 편지를 읽었을 땐 모두가 눈물을 흘려대고 있었다.
죽을뻔한 두 사람이 이젠 건강을 되찾고 새로운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편지를 다 읽은 한울이와 은별이는 울고 있는 덕배와 채상우와 이미리 부부에게 안겼고 두 아이는 내게도 편지를 건넸다.
감사하다는 내용이 빼곡히 담긴 편지는 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렇게 편지 읽기 행사가 끝나자 유진이와 내가 준비한 점심 뷔페 시간이 되었다.
진성 호텔에서 주문한 최고급 호텔 요리가 도착하자 학부모들과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이후 대략 한 시간 정도의 식사 시간을 가진 뒤 드디어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졸업생 모두가 같은 초등학교로 진학한 터라 고작 보름 정도 뒤에 입학식에서 다시 만날 예정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미소야. 흑······ 초등학교 가서 나 모른 척하면 안 돼? 흑.”
“우리도! 친구를 모르는 척하면 배신자야!”
“난 절대 배신 안 해! 배신자는 나쁜 사람이니까!”
감히 미소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남자 꼬맹이들이 훌쩍이고 있었지만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오늘만큼은 봐주기로 했다.
그리고 뒤편에 있던 부모님들은 웃으며 아이들의 우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겼다.
마침내 진짜 헤어질 시간이 되자 원장선생님은 유치원 입구까지 나와 두 손을 흔들며 아이들의 미래를 축복했다.
“다들 건강하고~ 초등학교 가서도 착하게 지내고~ 공부도 열심히 해~~”
미소는 원장선생님의 품에 안겨 자주 놀러 오겠다고 10번을 말하고서야 겨우 손을 놓고 차에 올랐다.
그렇게 미소의 유치원 졸업식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 * *
미소의 유치원 졸업식이 끝난 다음 날.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가 되었다.
새벽 5시 30분.
졸린 눈을 억지로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요일이었지만 할 일들이 넘쳐났다.
밸런타인데이라서 온 오프 이벤트들이 많았을뿐더러 드디어 <프로젝트 I.O.A>의 서울 지역 예선이 열리기 때문이다.
난 침대에서 일어난 뒤 빠르게 샤워를 하고 회사로 향했다.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차에서 내린 직원들이 다가와 축하를 건넨다.
“고재수 씨 할리우드 진출한다면서? 정말이야?”
“하여간 우리 정 실장. 수완도 좋아. 어떻게 막 데뷔한 배우를 바로 할리우드에 보내냐?”
“출연료만 100만 달러라고 하던데?”
“이제 어지간한 주연급 배우들은 재수 씨 앞에서 고개도 못 들겠네. 부럽다. 부러워.”
LT 엔터는 제임스 킹 감독과 계약을 맺은 뒤 고재수가 할리우드 진출을 하게 될 거라는 기사를 냈다.
덕분에 <지리산>의 매진 사태로 달아오른 연예계는 다시금 불이 붙었다.
우리 회사의 직원들도 나를 볼 때마다 부러운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갓 조연으로 데뷔한 고재수가 출연료로 100만 달러를 받았기 때문이다.
난 운이 좋았다는 말로 여유롭게 인사를 받은 뒤 곧바로 자기 배우들도 좀 넣어줄 수 없냐는 청탁(?)을 받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이 배경이니까 충분히 가능할 듯하네요. 한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오~~ 진짜?”
“이야~ 역시 우리 정 실장.”
“와 진짜. 잘 되면 내가 밥 한 번 쏜다!”
순식간에 날 칭송하는 분위기가 엘리베이터 앞을 가득 채운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띠잉.
다 같이 엘리베이터에 오른 다음 문을 닫으려던 때였다.
“잠시만요.”
배우 3실장인 주호성이 다급히 뛰어 들어왔다.
문이 닫히자 주호성 실장이 슬쩍 고재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근데 태풍이가 아니라 왜 고재수야? 그쪽에서 요구한 건 태풍이었다며?”
“태풍이는 나중에 주연 오퍼 오면 갈 겁니다.”
“응? 이 친구 뭘 잘못 먹었어? 태풍이가 대상 배우라지만 그건 어디까지 한국에서나 알아주는 거잖아. 그러다 괜히 태풍이만 아까운 기회 날리고 섭섭해하겠다. 안 그래 다들? 어떻게 생각해?”
주호성 실장은 슬슬 분위기를 잡으며 주변 매니저들을 선동한다.
하지만 이미 모두에게 배역들을 알아봐 주겠다고 말한 터라 주호성의 말에 호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난 주호성 실장의 가소로운 짓거리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건 주 실장님 생각이고요.”
“뭐? 뭐?”
주호성 실장은 설마 정면으로 들이받을 줄 몰랐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띠잉.
엘리베이터가 4층에 도착해 문이 열렸다.
난 내리기 전 주호성 실장에게 딱 잘라 말했다.
“그렇게 틀에 박힌 생각으로 일하면 반드시 시대에 뒤처질 겁니다. 한국 콘텐츠가 지금 얼마나 핫한데요. 조금만 지나면 다들 알아서 한국으로 찾아올 겁니다.”
미래를 아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충고의 말을 해줬다.
그러나 내 예상대로 주호성 실장은 알아먹질 못하고 코웃음만 쳤다.
“요즘 잘 나간다고 아주 헛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군.”
그래 인생사.
될 놈 될 안될 안이지.
회귀까지 한 사람의 말을 귀담아들을 생각이 없다면 더는 할 말이 없다.
“어디 한번 두고 보시죠.”
그렇게 말을 마친 난 몸을 돌려 버렸다.
* * *
4층 회의실.
회의실로 들어가자 <프로젝트 I.O.A>에 참여하는 가수 2실 매니저들과 안예음 이사 정 실의 도란희와 은지유 팀장 백희영 팀장이 긴장한 기색을 하고 앉아 있다.
그리고 <프로젝트 I.O.A>의 곡을 만드는 작곡가 방선우와 작사가 장예빈 그리고 안무가 박선녀 역시도 메이크업을 마치고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다들 오늘부터 지역 예선을 펼치는 <프로젝트 I.O.A> 방송에 얼굴을 비춰야 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제일 늦었네요.”
이동민 실장이 고개를 젓는다.
“아냐. 정 실장. 나랑 이사님도 막 온 참이야.”
오래간만에 보는 전체 가수 2실 매니저들과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 곧장 회의가 시작되었다.
먼저 입을 연 건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안예음 이사였다.
“오늘부터 ‘프로젝트 I.O.A’ 서울예선이 열리게 됩니다. 상당히 많은 인원이 지원했는데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하시죠.”
오늘부터 한 달간 한국과 일본 중국에서 지역 예선이 열린다.
2월 14일부터 각각 2주씩 3국에서 지역 선발 예선이 펼쳐지는데 한국에서만 10만 명이 지원했다.
일본에서는 1만 명 중국에서는 20만 명이나 지원했다.
I.O.A의 핵심 멤버인 링링과 서희의 나이가 어린 터라 지원 자격에 최대 23살이라는 제약이 있고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야 하는 제약이 있는데도 말이다.
“1차로 온라인 예선을 걸러내고도 오늘부터 3일간 서울에서만 천 명을 봐야 하니까 다들 신경 바짝 쓰세요. 그리고 언제 어디서 카메라가 찍을지 모르니까 방송국 인간들에게 책잡힐 짓은 하지 말자고요. 알겠죠?”
<프로젝트 I.O.A>는 굴렁쇠 엔터의 아이돌 I.O.A 멤버를 뽑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선발 과정뿐 아니라 굴렁쇠 엔터에서 매니징하는 모습도 방송을 타게 될 예정이다.
그러니 자칫 꼬투리가 잡히면 회사가 욕을 먹을 수도 있었다.
이동민 실장이 이어서 말한다.
“이따가 30분 뒤인 7시에 SBC에서 촬영팀이 올 겁니다. 이사님 말대로 조심은 하되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큰 문제 없을 겁니다.”
그때 도란희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린다.
“그럼 오늘 인력 배치는 어떻게 되죠? I.O.A팀이 방송국에서 장충체육관으로 가면 오늘 음방 현장 케어는 누가 하나요?”
오늘 세리는 <반딧불 다리>로 서연우의 <화연가>를 젖히고 1위가 유력한 상황이었다.
최근 <화란전>에서 유진이와 도깨비의 비중이 늘어난 까닭이었다.
평소라면 당연히 내가 갔겠지만 <프로젝트 I.O.A>의 첫 예선을 점검해야 했기 때문에 오늘은 내가 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난 도란희에게 말했다.
“일단 세리는 란희 네가 맡아줘. 내가 장충체육관으로 갔다가 시간 봐서 되면은 음방 쪽으로 넘어갈게.”
그 순간 도란희가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 오늘 방송 타나 했는데~ 쳇. 어쩔 수 없죠. 세리를 위해서라면야 이 미모를 희생하는 수밖에요.”
우리 란희.
오늘따라 메이크업에 힘 좀 들어갔더니 방송 출연할 거라고 기대가 컸구나.
“네 미모를 보여 줄 기회는 많으니까 일단은 세리 음방 무대나 잘하고 와. 우리 세리도 오늘 1등 코 앞이잖아.”
“예. 썰~”
“아 그리고 오늘 밸런타인데이니까 팬클럽 회원들에게 초콜릿 잘 돌려. 누군 주고 누군 빼먹으면 큰일 난다. 알지?”
“물론이죠. 제가 이런 일~ 어디 원투 데이 해요?”
“그래.”
이후 백희영 팀장이 서연우를 맡기로 하고선 나머지는 모조리 <프로젝트 I.O.A>에 붙기로 업무 분담을 끝냈다.
이후 이동민 실장은 방선우에게 첫 번째 경연곡이 준비되었는지 물었다.
“선우야. 곡은 됐어?”
“예. 준비됐어요.”
방선우는 그동안 끝없이 편곡한 이라는 첫 곡을 사람들 앞에서 틀었다.
중독성 있는 후렴구와 통통 튀는 멜로디를 가진 곡은 허밍으로도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기억에 남는다.
장예빈은 멜로디에 딱딱 떨어지는 발랄한 가사를 써 놓았고 박선녀 안무가는 일명 ‘찍기춤’이라는 포인트 안무를 만들어 놓았다.
“먹히겠는데?”
이동민 실장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오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애썼다 선우야.”
“다들 수고했어요. 예빈 씨도 선녀 씨도.”
그 순간 난 즉시 한 가지를 제안했다.
“이 실장님. 이거 체리블라썸 애들한테 맡겨서 가이드 좀 해달라고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흐음. 그러면 너무 비교되지 않을까?”
“어차피 오디션을 시작하는 순간 비교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체리블라썸 애들한테 부탁해서 가이드 동영상을 녹화해서 뿌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프로그램 시작부터 이슈몰이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슈가 없으면 오히려 묻혀버린다.
그래서 난 화젯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잠시 고민하던 이동민 실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케이. 그러면 한명호 팀장이 맡아서 해. 곡 가이드할 수 있게 노래 연습시키고 트레이닝복 입혀서 안무 연습시켜. 그리고 투명 메이크업만 해서 촬영하고.”
“예. 실장님.”
그렇게 지시를 마친 뒤 이동민 실장이 말한다.
“그리고 한국 일본 중국의 선발 일정이 다 다르니까 그 동영상은 끝나고 나면 공개할 겁니다. 그때까지 보안 철저히 합시다. 특히 작사 작곡 안무 세분. 지인들에게도 공개하면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회의하다 보니 점점 촬영 시간이 다가왔다.
다들 긴장한 기색이 짙어진다.
이번 프로젝트는 나의 관여는 최소한으로 줄인 채 가수 2실과 ‘정 실’의 가수팀들이 나머지는 알아서 일해야 했기 때문이다.
초대형 프로젝트에 다들 부담감이 가득한 눈치지만 이걸 성공하면 한층 더 성장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한 그들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굴렁쇠 엔터의 미래를 책임지게 될 핵심 인재들이 될 거라 확신했다.
그게 내가 이 <프로젝트 I.O.A>를 우리 굴렁쇠에서 진행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지이이잉~
테이블에 올려 둔 이동민 실장의 폰이 울린다.
SBC의 <프로젝트 I.O.A> 촬영팀이 회사에 도착했다는 연락이었다.
“자 이제 시작입니다. 제대로 한번 사고 쳐 봅시다.”
“예! 실장님!”
그렇게 또다시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장충체육관 대기실.
난 오늘 심사위원으로 출연하게 된 우연희와 양은비를 케어하고 있었다.
거울 앞에서 메이크업을 받던 우연희가 깊은 심호흡을 연신 해댄다.
그래도 도저히 불안한지 거울을 보고 말한다.
“윤호 오빠. 우리가 할 수 있을까요?”
“못할 건 또 뭐야? 10주 1위에 이어 12주 연속 음방 1위를 달성한 한국 최고의 아이돌인데.”
대한민국에서 체리블라썸의 실력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연희는 지금의 성공이 아직도 꿈만 같다며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겸손한 성격은 알고 있지만 때론 당찬 기세가 필요한데 말이다.
스스로를 믿자고 말하려는 순간 양은비가 웃으며 말한다.
“윤호 오빠. 걱정하지 마세요. 연희 언니 엄살이에요 엄살. 어제 리허설 했는데 완전 대~박! 지영식 PD님이 그러시던데 전문 심사위원인 줄 알았대요.”
“그래?”
<프로젝트 I.O.A>의 기획 회의와 리허설 그리고 선발 과정에는 일부러 거의 참석하지 않았기에 정확한 사정을 알지 못한다.
시간이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이번 기회에는 나의 동료들이 성장할 기회를 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아예 심사위원 역할도 맡지 않고 ‘자문’ 역할만 하는 중이다.
양은비의 말에 우연희가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다.
“아니에요 오빠. 은비 쟤는 내가 하는 건 뭐든 좋게 봐줘서 저래요.”
“오빠. 연희 언니 말 믿지 마요. 연희 언니는 20주 연속 1위를 해도 자신 없다고 할 사람이니까요. 알았죠?”
양은비가 두 손을 꼭 쥐며 날 쳐다본다.
입을 앙다문 모습이 귀여웠기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보통은 이 정도로 성공하면 아이돌이든 배우든 콧대가 하늘을 찌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이 아이들은 처음 만난 그날 그 모습 그대로 순수함이 남아 있었다.
“왜 웃어요?”
“이뻐서~”
‘마음이’라는 말을 빼먹고 말했더니 양은비의 볼과 귀가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오른다.
“아 진짜. 갑자기 그게 무 무슨 말이에요!”
논리왕 양은비는 이렇게 직접적인 칭찬에 약했다.
우연희가 그 모습을 곁에서 키득거리며 웃는다.
“응. 은비 너 예뻐.”
“하 하지 마!”
“예쁘다니까아~~”
“하지 말라고오~ 아 진짜.”
결국 둘은 자매처럼 틱틱거리며 장난스레 다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벌컥.
문이 열리며 <프로젝트 I.O.A>의 책임자 지영식 PD가 나타났다.
“아 정 실장님도 계셨네요?”
지영식 PD의 얼굴이 환하다.
이런 건 이유가 딱 하나밖에 없다.
“좋은 후보를 발견하셨습니까?”
“하하하. 이거 제 속마음을 훤히 들여보시기라도 합니까? 예. 고은서라고 참가 번호 111번인데 아주 빛이 납니다. 빛이 나!”
그 순간 난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고은서.
그녀는 민규리와 더불어 탑 엔터테인먼트 시절 내 위통의 근원 중 한 명이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