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4화
64. 체리블라썸의 신곡 2
김운식 작곡가가 날 빤히 쳐다본다.
어떻게 자신과 에이스 엔터가 전속계약을 맺었는지 아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자존심이 대단한 김운식은 단 한 번도 소속사와 전속계약을 맺은 적이 없으니까.
“이건 제 짐작이지만 아마 저희한테 곡을 주면 거래를 끊겠다는 이야기도 나왔을 것 같은데. 아닙니까?”
김운식의 얼굴이 더 심하게 굳는다.
“뭐냐 너?”
버럭 화를 내는 모습에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100% 확신할 수 있었다.
이동민 실장이 실눈을 뜨곤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내가 비밀병기라고 했잖아?”
김운식 작곡가는 잠시 날 노려보다 한숨을 푹하고 내쉬었다.
“하아. 잘 숨겨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알았어?”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김 작곡가님 정도 되는 분이 곡이 없다는 말씀을 하실 리는 없으니까요.”
김운식은 이동민 실장을 밀어내고 소파에 앉았다.
“좀 비켜 봐. 아 속 타네.”
그리곤 미지근한 물 한잔을 마신 뒤 결국엔 입을 열었다.
“거참. 다 알고 온 사람에게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김운식이 사정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현재 에이스 엔터는 이름을 알 만한 S급 작곡가들 전원과 1년 동안의 전속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엄청난 계약금을 주면서.
예상했던 대로 걸프렌즈7에게 곡을 몰아주는 과정이다.
그러니 정말로 곡이 없다는 것도 거짓은 아닌 셈이다.
거기다 TK 엔터 SJ 엔터와 빅스타 엔터 등 대형 엔터의 본부장들에게 압력을 받은 것도 사실이었고.
“특히 마동팔 그 인간이 쎄게 나오더라고. 체리블라썸에게 곡을 주면 자기들과의 거래는 끝이라고.”
“야! 그런 사정 있으면 진즉에 말했어야지!”
이동민 실장의 짜증에 김운식 작곡가가 버럭 하고 화를 낸다.
“씨X. 돈 때문에 그런 계약 맺었다는 게 쪽팔려서 말 못 했다! 됐어?”
“난 그것도 모르고 작곡가들한테 등신처럼 매달렸었네.”
이동민 실장이 한숨을 푸욱 내쉬자 김운식 작곡가도 미안한지 언성을 낮췄다.
“미안하게 됐어. 원래는 이거 말하는 것도 계약 위반이야. 그러니까 어디 가서 말하지 마. 알았지?”
이동민 실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새꺄. 설마 내가 그러겠냐?”
“하여간 S급 작곡가들은 나 말고도 다들 에이스랑 TK엔터한테 묶여 있어.”
결국 S급 중에 우리에게 곡을 줄 만한 작곡가는 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덕분에 내가 아는 미래의 대박 작곡가를 소개하기 편해졌다.
* * *
별 소득 없이 작업실을 나온 이동민 실장이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하아. 결국엔 지태 그놈에게 맡겨야 하나.”
이미 4월 24일 KBC 음악 나라에서 신곡 발표를 하기로 스케줄이 잡혀 있다.
그러려면 적어도 곡은 이달 말까지 안무를 포함해 나와야 했다.
그래야 연습을 시켜 무대에 올릴 수 있을 테니까.
“실장님. 사실 제가 아는 센스 있는 작곡가가 한 명 있는데요.”
이동민 실장이 놀라서 돌아본다.
“누군데? S급?”
난 고개를 저었다.
“재능은 S급이 아니라 그 이상이긴 한데······ 일단 저 한 번만 믿어주실 수 있으세요?”
이동민 실장이 미심쩍은 눈으로 날 쳐다본다.
하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지금 내가 너 아니면 누굴 믿겠냐. 그리고 정······ 안 되면 지태한테 맡기면 되니까 일단 가 보자.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니까.”
이동민 실장의 허락에 난 가리봉동에 있는 가게 주소를 말했다.
* * *
현시점에서 가장 잘나가는 작곡가를 꼽을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름이라면 역시 에필 K다.
쁘띠모의 히트곡 블링블링을 만든 작곡가니까.
하지만 앞으로 2년 뒤.
에필 K는 방선우라는 무명의 작곡가의 곡을 표절한 일로 소송전을 벌인다.
한 곡도 아닌 무려 스무 곡에 대한 소송이라 당시 엄청난 이슈를 일으켰었다.
방선우는 자신이 돈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던 아마추어 시절에 만든 곡이 어떻게 에필 K의 손에 들어간 건지 모르겠다며 항변했다.
하지만 당시 최고의 작곡가로 연간 수십억의 돈을 벌고 있던 에필 K는 대규모 변호인단을 고용해 소송에서 손쉽게 승리했다.
그 후 방선우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자신의 곡이라 주장하는 곡들이 연신 1위를 찍는 걸 견디지 못하고서.
그때의 비극적인 일정이 내 다이어리에 남아 있다.
[에브리데이 V10]
[날짜 : 2022년 7월 1일]
-PM 01:00 수원 성모병원 장례식장 8호실. 방선우 발인. 오전 9시.
나 역시 방선우의 장례식장에 찾아 명복을 빌었었다.
그 방선우를 만나서 제값을 주고 곡들을 받을 수만 있다면.
체리블라썸의 신곡 문제뿐 아니라 그의 죽음마저 막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미래의 체리블라썸의 앞길에 탄탄대로를 깔아줄 수도 있었고.
끼이익.
가리봉동에 있는 낡은 돼지국밥집 앞에 차를 멈췄다.
이동민 실장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여기에 네가 말하는 작곡가가 있다고?”
순간 가게 안에서 큰 소리가 들려온다.
“귀남아~. 손님 받아라!”
“아 진짜. 엄마! 내 이름 선우로 바꾼 게 언젠데 아직도 귀남이야!”
“니 이름이 와? 선우? 귀남이라는 존 이름 놔뚜고 왜 그런 이름 쓰는 긴데?”
“아 몰라. 하여간 앞으로 선우라고 안 부르면 대답 안 해!”
“저 몬땐기 말하는 꼬라지 보래이?”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아주머니를 지나 한 남자가 가게에서 나왔다.
“키는 저 주시면 됩니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소심하게 생긴 남자의 본명은 방귀남.
현재는 방선우으로 이름을 바꾼 요절한 천재 작곡가가 내 눈앞에 손을 내밀고 있었다.
“방선우 씨?”
“절 어떻게 아세요? 아 이야기 들으셨구나.”
방선우가 조금 전 대화를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요. 저흰 선우씨를 만나기 위해서 왔습니다. 일 끝나시면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전 굴렁쇠 엔터의 정윤호라고 합니다.”
차에서 내려 방선우에게 명함을 건넸다.
“에 엔터 회사에서 저를요? 왜요?”
방선우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추어 작곡가 카페에 샘플 곡 올리지 않으셨습니까? 그것 듣고서 찾아왔습니다.”
“말도 안 돼. 그거 50명도 안 되는 작은 카페인데······.”
몇 년 뒤에 엄청 커지는 사이트라서 지금 규모는 얼마인지 몰랐다.
하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말을 이었다.
“안 믿으시면 따로 설명할 방법은 없고요.”
“지 진짜예요?”
그제야 곁에 있던 이동민 실장도 키와 함께 명함을 내밀었다.
“굴렁쇠 엔터 이동민 실장입니다. 이 친구 말이 맞습니다.”
“이 이동민이다!”
방선우는 마치 유명 연예인이라도 본 듯 화들짝 놀랐다.
하긴 이동민 실장이 음악 쪽에선 좀 유명한 사람이지.
“지금은 바쁘신 것 같으니 저희가 기다리겠습니다. 저희 밥도 안 먹었거든요.”
방선우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그러면 밥부터 드시고 계세요. 저희 엄마 국밥 진짜 끝내주거든요. 오늘은 엄마한테 말해서 일 좀 빨리 끝낼게요!”
방선우는 키를 건네받은 뒤 주차를 하겠다며 사라져버렸다.
그 모습을 본 이동민 실장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윤호야. 네 말을 믿는다지만 이건 좀 아닌 거 같다. 저런 사람이 작곡가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하긴 나 역시 회귀하지 않았으면 믿지 않았을 거다.
방선우는 온종일 식당을 하는 엄마를 도와 국밥집 일을 거들고 남는 시간에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왕따로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해 검정고시로 겨우 졸업하고 혼자 음악을 듣고 만드는데 심취했다나?
화성학은커녕 작곡의 기초도 배우지 못했지만 친구가 준 낡은 아이패드에 음을 찍어가며 작곡을 한 거로 유명했고.
그렇기에 그는 천재였다.
가르쳐준 사람도 없는데 오로지 홀로 멜로디를 그려낼 수 있는 천재.
다만 이동민 실장에게 방선우의 그런 백그라운드 스토리를 말하는 건 지금으로선 오히려 방해가 될 여지가 컸다.
기본이 없는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심어줄 수도 있고.
“실장님. 일단 곡부터 들어보고 판단하시죠. 저 믿어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이동민 실장이 한숨을 내 쉬었다.
“그래. 배도 고프고 하니까 일단 국밥부터 먹자. 그리고 뭐 네 말대로 곡부터 들어보지 뭐.”
“반드시 만족하실 겁니다.”
여전히 의심이 가득한 표정이지만 이동민 실장이라면 충분히 방선우의 곡을 알아볼 수 있을 거다.
우린 주린 배를 쥐고 방가네 돼지국밥집으로 향했다.
건더기가 가득한 돼지국밥을 한 그릇씩 비우자 그제야 눈이 뜨인다.
이동민 실장이 배를 두드리며 환히 웃는다.
“여기 국밥 맛있네. 국물이 진한 게 속이 확 풀리는 것 같다.”
“실장님. 2시간 기다릴 필요 없겠는데요?”
“응?”
방선우가 주방에 있는 어머니를 상대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아 엄마. 나 오늘 일 좀 빨리 끝내게 해 줘. 귀한 손님이 오셨다니까?”
“손님이라꼬? 그게 눈데?”
“굴렁쇠 엔터라고 엄청 큰 회사에서 온 분들이셔. 내가 만든 곡을 듣고 싶으시대.”
방선우의 말에 사장이자 어머니인 김춘자 여사가 인상을 쓴다.
“니가 맹근 곡을? 그기 말이 되나?”
“아 말이 되지! 왜 안 돼?”
“아따마 야야. 그거 저번 맹키로 니 속칼라고 샛빠닥을 놀리는기라.”
“아니래도 엄마?”
“시끄럽고! 그놈들 으디 있노? 으이? 확 내가 지기뿌게!”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가게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아니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죽일 거까지야.’
김춘자 여사는 두 팔을 걷고 국자를 휘두르고 있었다.
엄마가 화를 내자 방선우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아 엄마. 좀! 사투리 좀 그만 쓰라니까!”
“이노마가 어디서 엄마한테 따박따박 말대꾸고!”
김춘자 여사가 앞을 가로막는 방선우에게 국자를 들이밀었다.
방선우의 목이 거북이처럼 쏙 들어갔다.
위로 누나가 셋이랬던가?
여자가 많은 집에서 자라다 보니 유독 여성들에게 기를 못 편다고 했었다.
이동민 실장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물어왔다.
“넌 저 아주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겠냐?”
“예.”
“어떻게?”
“중학교 때 보육원에 온 친구 한 명이 부산 쪽 출신이었거든요.”
“아······”
이동민 실장은 실수했다 싶은지 더는 묻지 않았다.
물어도 상관없지만 보육원 이야기만 꺼내면 다 이런 식이다.
하여튼 이전에 누가 방선우를 만나러 왔었는진 몰라도 큰 잘못을 했나 보다.
그 탓에 우리를 보는 김춘자 여사의 눈길은 곱지 않았다.
하지만 방선우의 재촉이 계속되자 김춘자 여사는 못 이기는 척 우리에게 다가왔다.
국자는 여전히 손에 쥔 채로.
“그쪽이 우리 아 곡이 좋다고 했심니까?”
이동민 실장과 함께 벌떡 일어나 명함을 내밀었다.
“예. 어머님.”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김춘자 여사가 명함을 홱 가로챈다.
“굴렁새?”
“예. 맞습니다.”
“이름이 요상한데? 제대로 된 대 맞아예?”
거친 말투지만 자식을 아끼는 마음이 그대로 묻어난다.
회귀 전에도 방선우가 죽은 뒤 에필 K의 집 앞에서 3년간 현수막을 세우고 항의하던 어머니였다.
내 자식은 억울하다고.
착한 내 자식이 절대 그럴 리가 없다면서 방선우의 결백을 외치던 사람이다.
어머니란.
때론 이해 불가의 존재란 걸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사람이기도 한 사람이었고.
“어머니. 혹시 조민성 배우 아십니까?”
“민서이~? 조민서이~? 창공에 나래에 나 온?”
“예. 그 조민성 배우님이 저희 굴렁쇠 엔터 소속입니다.”
김춘자 여사가 굳은 표정으로 내 명함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조금은 표정이 풀려있었다.
“그 그라믄. 우리 아 작곡가 될라몬 돈 내야 칸다는 거 아니라예?”
엉뚱한 사기꾼 같은 놈들에게 당한 전력이라도 있는가 보다.
“아닙니다. 저희가 곡을 사고 아드님께 돈을 드리려는 겁니다.”
조금은 의심이 풀린 걸까.
김춘자 여사가 의자를 빼고 자리에 앉았다.
“승질부려서 미안합니더. 내가 오해했어예.”
김춘자 여사는 들고 있던 국자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방선우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말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