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9화
639. 오퍼 4
홱!
놈이 내 안경을 벗겼다.
안경테에 소형 카메라가 달렸다고 생각한 거다.
회귀 전 경호팀장인 찰리에게 처음 검문을 당했을 때도 이렇게 당했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행동을 하면 마치 전쟁 포로를 심문이라도 하듯 붙잡아 놓고 온몸을 뒤졌었다.
그때 그가 늘 먼저 확인해 보는 건 바로 뿔테 안경이었다.
“새X. 어디서 장난질이야?”
경호팀 대장인 찰리가 득의양양하게 말한 순간 나머지 경호원 셋이 날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다.
순간 흥겹게 놀던 분위기가 싸하게 식어 버렸다.
“찰리. 지금 뭐 하는 거야?”
리처드 케인 부사장이 언성을 높이자 찰리가 내 안경을 들어 올렸다.
“이놈이 몰래카메라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그 안경에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나?”
그 순간 수습 웨이터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만들어낸 내 목소리는 평소의 톤보다 높았고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모 몰카가 아닙니다! 정말 아니에요! 오늘 렌즈를 안 가지고 와서 그냥 뿔테 안경을 썼을 뿐이에요.”
“웃기고 있네.”
찰리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안경을 반으로 쪼갰다.
또각.
뿔테 안경에서 가장 두꺼운 브릿지 부분을 부수자 초소형 카메라는 없이 하얀 플라스틱 절단면만이 드러났다.
“어? 왜······ 없네?”
당황한 찰리는 이어서 안경테가 접히는 양쪽 힌지 부위를 다시 부쉈다.
빠각.
역시나 초소형 카메라가 나오지 않는다.
“어? 뭐야? 이럴 리가 없는데?”
불안해진 그가 이번엔 내 왼 손목을 잡고 시계를 벗긴다.
그러고는 테이블 위에 시계를 내려놓고 단단한 병으로 그대로 부숴버렸다.
쾅!
시계의 유리가 부서지고 파편이 튄다.
그러나 카메라의 흔적 따윈 있을 리가 없다.
난 놈이 몸수색할 걸 대비해 일부러 눈에 띌 만한 뿔테와 시계를 착용했을 뿐이니까 말이다.
나무를 숨길 때는 숲에다 숨기는 법.
즉 이건 내가 일부러 한 셋업이었다.
또한 사람의 심리상 한 번 실패하면 두 번째부터는 같은 행위를 하기 어려워진다.
이쯤 되면 벨트에 숨겨둔 몰카까지 뒤지기에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벨트를 풀라는 건 옷을 홀라당 벗으라는 거나 진배없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당황한 찰리는 더 이상 날 뒤질 생각을 하지 못한다.
심리적인 저항선이 생겼기 때문이다.
난 그 저항선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때를 놓치지 않고 억울하다는 듯 하이톤의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 사장님들. 그러니까 아니라고······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순간 찰리가 무안한 표정으로 외친다.
“인마! 그러길래 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손가락을 까닥거려 엉? 엉!”
“떨려······서요.”
“뭐?”
“부장님 앞에서는 괜찮다고 했는데 막상 혼자 들어와 보니까 떨려서 그랬어요. 저 신입이라서 이렇게 혼자 룸에 들어와 본 적이 없단 말이에요.”
그때였다.
리처드 케인이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하하하. 우리 찰리가 틀리는 날이 다 있군. 겁먹어서 그런다니까 내버려 둬.”
“제가 틀리는 적이 없는데······ 죄송합니다 부사장님.”
“아냐 아냐. 찰리 덕에 내가 편하게 놀 수 있는데 뭐. 그나저나 검문은 끝인가?”
“예.”
“그러면 이제 손님 맞을 준비나 하지. 도착할 시간이 다 된 거 같은데.”
“알겠습니다.”
찰리는 함께 들어온 경호원들과 룸 밖으로 나가며 내게도 지시를 내린다.
“너도 얼른 정리하고 나와!”
“예~”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한 난 우울한 표정을 지은 채 테이블 뒷마무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젠 나가야 할 시간이니까.
테이블 위에 있는 휴지와 쓰레기를 휴지통에 버리고 빈 병을 쟁반에 담았다.
이제 막 나가려는 순간 문밖에서 다시 찰리의 목소리가 들린다.
-보스! 손님이 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그런데 그때였다.
문이 열리더니 내가 아는 사람이 나타났다.
“잘 지냈습니까? 리처드 부사장님.”
“하하. 어서 오게. 류 실장.”
문을 열고 나타난 건 경호원들을 데리고 온 화연 미디어의 류신이다.
‘저 인간이 여긴 왜 왔지?’
회귀 전 화연 미디어와 21세기 울프사가 협력 비즈니스를 하는 건 화연 미디어 코리아가 설립되고 나서도 한참 세월이 흐른 후였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 나타났다는 건 두 사람 사이에 이미 사적인 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이런 곳에서 즐기는 걸 남들에게 드러내지 않는 리처드 케인의 성향을 고려하면 둘 사이는 내 예상보다 훨씬 친밀한 것일 수도 있다.
류신이 경호원들과 함께 룸으로 들어온다.
그때 찰리와 경호원들이 류신의 경호원들 앞을 가로막았다.
“너희들은 여기까지.”
리처드 케인을 보호하기 위해 찰리가 선을 긋자 류신의 경호원들이 인상을 쓴다.
양측이 으르렁거리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류신이 나서서 손을 들고 말린다.
“됐어. 괜찮으니까 나가 봐. 분위기 흐리지 말고.”
경호원들이 대립을 멈추자 류신이 혼자서 테이블로 터벅터벅 향한다.
그런데 그때였다.
류신이 내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설마 들킨 건가?’
리처드 케인이야 서양인이라서 동양인의 얼굴을 잘 분간하지 못하지만 류신은 같은 동양인이기 때문에 내가 변장한 걸 알아볼 가능성이 높았다.
“흠······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순간 난 변조된 목소리 톤을 가늘게 떨며 대답했다.
“워 워낙 흔한 얼굴이라 그런 소리 많이 듣습니다. 사장님.”
겁을 잔뜩 먹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떨자 류신이 천천히 의심을 거둔다.
“아닌가? 확 이걸 그냥! 괜히 사람 헷갈리게 하고 있어.”
“죄 죄송합니다! 사장니~임!”
내 얼굴 흔적을 발견하고 확인하려 했지만 열심히 겁먹은 연기를 하자 금세 아니라고 결론을 내려버렸다.
류신이 아는 정윤호라면 이런 상황에선 주먹부터 뻗었을 줄 안 것이었다.
‘내가 바보냐?’
현재 룸 입구 쪽에 있는 떡대들만 무려 여덟 명이다.
그중 리처드 케인의 경호원들은 파병 경험까지 있는 특수부대원들이었고.
즉 살인 병기나 다름없는 넷이 포함된 경호원들과 좁은 공간에서 싸우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 순간 리처드 케인이 키득거리며 웃는다.
“크크크. 오늘 저 웨이터가 고생하는 군 찰리에 이어서 류신까지.”
류신은 그제야 내게서 완전히 시선을 돌린 뒤 의자에 앉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룸을 나가려고 했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난 하지 않아도 되는 쓰레기통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때 류신은 여자 한 명을 밀어내고 리처드 케인의 옆자리로 다가간다.
그러고는 영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오늘 LT랑 이태풍에게 수모를 당하셨다면서요?”
“벌써 그 이야기가 귀에 들어갔나? 자네 한국통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소식이 빠르군?”
“손봐 주고 싶은 놈들이 있어서 레이더를 돌리고 있습니다.”
“하긴 류 실장 당신도 그쪽과는 얽힌 히스토리가 있다고 했지? 풉. 우린 공통점이 많군.”
“적의 적은 아군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같이 손잡고 일 하나 해보시죠.”
“일단 LT의 신 대표 콧대를 꺾는 게 먼저야. 신 대표 무릎만 꿇리면 배우와 매니저 나부랭이는 알아서 기겠지.”
‘감히······ 나와 내 소중한 배우를 노려?’
비단 신종기 대표를 돕고자 하는 이유 말고도 리처드 케인을 나락으로 보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그런데 그때 류신이 뜬금없는 제안을 한다.
“아 그리고 옆방에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와 있는데 한번 만나 보시겠습니까?”
리처드 케인이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린다.
“류신. 나 노는 데서는 사람 소개 안 받는 거 알잖아? 누가 어떤 놈인지 알고? 됐으니까 그런 이야기 할 거면 자네도 나가게!”
“부사장님. 입이 무거운 친굽니다. 한국에서 제법 규모가 있는 엔터 회사의 대표인 데다 좋은 제안까지 가지고 왔다는데 한번 만나보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됐어! 꺼지라는 말 못 들었나?”
규모 있는 엔터 회사 대표?
그게 누구지?
언뜻 생각나는 사람은 있었지만 확실히 하고 싶어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야. 넌 왜 아직도 안 나가?”
경호 대장 찰리가 내 어깨를 움켜잡았다.
좋은 정보를 계속 얻는다는 마음에 시간을 너무 끌어버렸다.
다시금 모두의 의심이 내 눈에 꽂힌다.
아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긴장감이 룸에 감돌기 시작한 순간 난 처음으로 목소리에 힘을 담아 말했다.
“티입······을 안 주셔서요.”
순간 모두가 벙찐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는 동시에 리처드 케인이 크게 웃음을 터트린다.
“푸하하. 그래. 팁을 줘야지. 그러고 보니 찰리가 안경과 시계도 부쉈었군.”
여전히 테이블 위에 시계는 부서져 있고 안경테는 산산조각이 난 채 여전히 놓여 있다.
다른 쓰레기를 치우며 혹시 몰라서 놔둔 게 적절한 핑곗거리가 되었다.
경호원들 모두가 머쓱해지며 긴장을 풀자 리처드 케인이 테이블에 놓인 지폐 중에서 10장을 빼내 들어 올린다.
백 달러짜리밖에 없었기에 총 1천 달러다.
제법 통이 크군.
“이 정도면 되겠지?”
난 환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손에 잡힌 지폐를 잡았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리처드 케인이 뱀 같은 눈빛으로 웃으면서 영어로 말한다.
“그러면 오늘 밤이 끝날 때까지 부킹 확실하게 해. 알겠나?”
난 의심을 사지 않게 어설픈 영어로 대답했다.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말이다.
“부킹? 오케오케! 노 프라블럼! 트러스트 미! 아 해브 어 플랜! 아이 엠 어 유어 큐피트!”
리처드 케인이 다시 한번 크게 웃음을 터트린다.
“푸하하하. 역시 사람은 돈을 받아야 적극적으로 일한단 말이지. 그래. 너 오늘 내 큐피트 해라.”
리처드 케인뿐 아니라 룸에 있는 모두가 웃음을 짓는다.
심지어 리처드 케인은 내 말이 재미있다며 옆에 앉은 아가씨를 껴안고 볼뽀뽀를 해대기 시작했다.
순간 난 대담하게 벨트를 두드려 몰카를 찍었다.
구도 좋고 조명 좋고.
완벽한 사진이 찍혔다.
난 이후 리처드 케인이 내민 1천 달러를 주머니에 넣고선 씩씩하게 답했다.
“좋은 시간 되십쇼!”
난 휴지통과 쟁반을 들고 룸 밖으로 나온 뒤 입구에서 허리를 반으로 접었다.
경호원들이 룸 안에서 문을 닫는다.
쿠웅.
순간 난 복도에 기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워낙에 경계심이 많은 인간들이다 보니 별것 아닌 일에도 심력을 쏟느라 힘들었다.
다른 이를 들여보냈다면 틀림없이 들켜서 사달이 나고도 남았을 게 분명했다.
그때 복도 끝에서 기다리던 김태봉 부장이 빠르게 다가왔다.
“괜찮습니까?”
“예. 괜찮습니다. 그리고 나갈 때까지는 말 놓으세요. 혹 누가 들을 수도 있으니까요.”
김태봉 부장이 쓰레기통을 받으며 말한다.
“알았어. 어서 나가자. 펜트하우스에서 다들 기다리고 있어.”
“잠시만요.”
“왜?”
“이 옆 2번 방에 누가 있는지 좀 보려고요. 엔터 회사 대표라는 거 같던데 알아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태봉 부장이 내 팔을 잡고 고개를 젓는다.
“그럴 필요 없어. 누가 있는지 아니까.”
“누군데요?”
“에이스 엔터 김동수 대표 그리고 TNT 엔터 유강석 대표가 들어갔어.”
김동수와 유강석?
에이스 엔터는 검찰 조사 중이라 무너지기 직전이고 TNT 엔터도 복제폰 사건의 파장으로 회사를 인수해 줄 곳을 찾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곤궁에 빠진 두 사람이 류신을 통해 리처드 케인과의 관계를 트려고 하고 있었다.
만약 그들의 생각대로 성공하게 되면 두 사람은 할리우드의 거물과 손을 잡았다며 언론 플레이를 하고선 회사의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김동수와 유강석의 부활도 꿈이 아니란 소리였다.
그뿐 아니라 류신도 화연 미디어 코리아를 설립하는 일정이 빨라질 수도 있었고.
‘그렇게 내버려 둘 줄 알고?’
리처드 케인을 날려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생겨버렸다.
* * *
“여깁니다.”
김태봉 부장이 진성준 대표와 진아람 이사 그리고 신종기 대표가 기다리는 펜트하우스로 날 안내했다.
클럽에서 나오면서 리처드 케인에게 받은 1천 달러를 넘겼더니 대접이 극진하다.
순간 펜트하우스의 문이 앞에 있던 호텔리어들에 의해 열린다.
안으로 들어가자 소파에 앉아 있던 진성준 대표와 진아람 이사가 동시에 일어서며 괜찮냐고 묻는다.
“실장님. 괜찮으세요?”
뒤쪽에 있던 신종기 대표가 큰 웃음을 짓는다.
“이거 진성의 두 분께서 우리 정 실장을 많이 아끼는구먼. 그래 별문제는 없었고?”
“예. 괜찮습니다. 생각 외의 소득도 있었고요.”
난 사람들을 안심시킨 뒤 소파에 앉은 다음 벨트를 풀었다.
그리고 곧장 몰카 사진을 볼 수 있는 잭을 노트북에 연결하고선 사진들을 확인했다.
사진 속에는 룸에서 리처드 케인이 저지른 모든 짓이 담겨 있었다.
사진을 보던 신종기 대표가 씨익 웃는다.
“제대로 찍었구먼.”
“예. 그런데 이 사진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난 빠르게 사진을 넘겼다.
류신과 리처드 케인이 함께 있는 사진도 나온다.
“류신 실장이군. 이 친구도 리처드와 관련이 있었군.”
“예. 거기다가 두 사람이 저와 이태풍 그리고 LT 엔터까지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신종기 대표는 리처드 케인뿐 아니라 류신까지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처리하겠다며 각오를 다진다.
“지체할 시간이 없군. 리처드 케인 쪽이랑 류신 처리는 나한테 맡겨. 내가 생각이 있으니까.”
“예. 대표님.”
“그리고 내일 아침 콘퍼런스에서 제임스 감독을 빼 오도록 하자고.”
신종기 대표는 그 즉시 펜트하우스를 떠났다.
나 역시 따라 나가려고 하는 순간 진아람 이사가 날 붙잡았다.
“실장님. 오늘 여기 펜트하우스 비었으니까 여기서 쉬시고 가세요.”
그녀는 진성호텔 & 리조트의 대표 대행이다 보니 비어 있는 호텔 방을 제공하는 부담감이 없었다.
하지만 난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잠은 집에 가서 자야죠.”
난 내일 아침에 보자고 말한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펜트하우스를 떠났다.
내가 가장 편하게 잘 수 있는 곳은 바로 유진이와 미소가 있는 집이었으니까 말이다.
* * *
다음 날 아침.
8시가 되어서 일어난 나는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9시에 열리는 콘퍼런스에 갈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미소와 약속한 걸 어기게 된 게 영 마음이 걸렸다.
더군다나 10시부터는 미소의 졸업식도 있었고.
결국 난 2층으로 향했다.
졸업식 앞두고 들뜬 미소가 날 반긴다.
“삼촌~~! 안녕히 주무셨어요?”
오늘도 아침부터 에너지가 넘치는 미소의 인사부터 받았다.
그 이후 조심스레 사정이 있다고 말했다.
“미소야. 삼촌이 말이야~ 잠깐 어디 좀 갔다가 와야 해. 태풍이 삼촌 좀 돕고 다른 사람도 도와주러 가야 하는데······ 우리 미소가 좀 봐주면 안 될까? 10시에 졸업식까지는 꼭 갈게. 응?”
미소가 날 빤히 쳐다본다.
“힘든 일 아니죠?”
“응. 전혀. 진짜로 힘들지도 위험하지도 않아.”
미소가 고개를 끄덕인다.
“으음~ 으음~ 알았어요. 그러면 대신 오늘은 절대 힘든 일 안 하기로 약속!”
다행히 미소의 허락이 떨어졌다.
“약속. 그리고 삼촌은 무슨 있어도 우리 미소 졸업식은 꼭 참석할 거야!”
회귀 전에는 참석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미소의 졸업식이다.
그걸 절대로 놓칠 순 없다.
“네~~”
미소의 허락에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난 삼성동으로 향했다.
* * *
진성 호텔 삼성점에 도착하자 정문에는 [아시아 시네마 콘퍼런스]라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정문에서 차를 세운 난 발렛을 맡기고 대연회장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길을 따라 걸어가며 폰으로 오늘의 기사를 확인했다.
[<지리산> 주말 전석 매진! 예상 주말 관객 수 170만 명!]
[<지리산> 1500관으로 상영관 확대!]
[이태풍과 고재수. 한국형 스릴러의 새로운 장을 열다.]
[<지리산>. “반드시 극장에 가서 봐야 할 작품. 긴박감의 차원이 다르다.”]
[충무로의 신성 박선재 감독. 충격적인 연출로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긋다.]
정식 주말 집계는 월요일이나 되어야 뜨지만 상영관이 매진된 터라 이미 집계가 끝난 상황이었다.
주말 이틀간 관객 수 170만 명.
상영관이 더 늘어나게 되었기에 <지리산>의 최종 성적이 얼마나 될지도 기대가 되고 있었다.
그런데 좋은 소식은 그뿐이 아니었다.
[‘THE 베스트’ 런칭과 동시에 흥행 돌풍! ‘THE 순수 & 베스트’ 공장 24시간 가동 중!]
이태풍을 광고 모델로 내세운 ‘THE 베스트’ 역시도 <지리산>의 흥행 덕에 하루 만에 무려 3억 원어치를 팔았다.
그중 매출의 1.2%가 내게 돌아오기 때문에 어제 하루에만 내 몫으로 360만 원이 된 셈이다.
일당 360만 원이라니!
아무리 들어도 꿈만 같은 숫자였다.
요즘 들어 여러모로 돈 쓸 데가 많아졌는데 ‘THE 베스트’ 덕에 걱정은 내려놓아도 될 것 같았다.
“실장님~”
진아람 이사가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진아람 이사가 날 보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그녀는 오늘 [아시아 시네마 콘퍼런스]의 운영을 맡은 터라 직접 나서서 귀빈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예. 진 이사님.”
그녀가 내 곁으로 다가와 위치를 알려준다.
“실장님 자리는 A7이에요. 신 대표님이랑 제임스 감독이랑 같은 테이블에 앉을 수 있게요.”
“리처드 케인 부사장은요?”
“그분은 제작자들만 따로 모이는 다른 자리로 배정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난 그녀의 호의에 감사를 표하며 A7 번 테이블로 향했다.
대회의장으로 들어가자 A7 테이블에 제임스 감독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의 곁에는 낯익은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저 인간이 왜 여기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