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4화
634. 실종 그 후의 이야기 1
최성현 경위가 자신이 납치한 이준성을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준성이는 저처럼 다른 좋은 집에다가 소개해주려고 생각했습니다. 제 양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집에다가요.”
“그렇다면 설마······.”
“예. 박동준 반장님한테 복수할 생각이긴 했어도 애들에게 손을 댈 생각은 없었습니다. 애가 죄가 없잖습니까?”
최성현 경위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가 경찰이다 보니까 주로 관 내에 학대받거나 가정 폭력을 당한 일곱 살 미만의 어린아이들의 리스트를 뽑을 수가 있었습니다. 준성이는 그중 한 명이었고요.”
“그러면 그런 아이들만 납치할 생각이었습니까?”
“예. 준성이 말고도 몇 명 더요. 그리고 실종을 위장해서······ 그 아이들을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다른 지역 양부모한테 넘기려고 했습니다. 준성이 같은 경우는 아빠가 애를 보육원에 방치한 데다가 거짓말을 자주 하면서 찾아오길래······ 아예 제주도 쪽에 있는 양부모한테 소개해줄 생각이었고요.”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무작위로 범행을 저지른 줄 알았는데 정확히 목표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회귀 전 아이들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간절히 원한 아이를 얻게 된 양부모들이 끝까지 입을 닫아서인 것이다.
“그런 양부모들이 있다고요?”
“예. 입양이라는 것도 조건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은 입양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비록 돈은 좀 없어도 부부 사이에 금술도 좋고 선한 사람들한테 아이를 넘겨주면 절대로 아이를 버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뺏기지 않을만한 양부모들 리스트까지 뽑아놓았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이 몇이나 되던가요?”
“한 다섯 명 정도? 그 정도 되더군요.”
드디어 회귀 전 연쇄 실종사건이 딱 다섯 건에 그친 이유를 다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 모두 살해된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착각이었다.
“뭐 그런다고 해서 제 죄가 줄어들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 그러면 흥신소 직원은 어떻게 할 생각이었습니까?”
“싸실······ 흥신소 직원분은 아까까지 방법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굳이 생각해본다면 제가 경찰이니까 그분께는 다른 범인을 가리키는 증거를 만든 다음 풀어줬을 거 같았습니다. 흥신소 직원분이 제 얼굴을 제대로 못 봤고 그분이 무슨 말을 하든 경찰인 제 말이 더 먹힐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감정의 둔마 증상이 나타난 사람이 사이코패스와 다른 것은 바로 이런 점이었다.
살인을 하는 데 있어서 최성현 경위는 극도의 거부감이 있었다.
그제야 난 반동준 반장처럼 그를 안타깝게 여길 수가 있게 되었다.
최성현 경위가 적어도 진짜 살인자가 아니란 걸 알았으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준성이한테는 잘 이야기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씁쓸한 표정을 짓던 최성현 경위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진다.
“감사합니다. 실장님.”
그때였다.
지이잉~
폰이 울리며 에브리데이가 새로운 알람을 알려주고 있었다.
[알림 : ‘오늘의 운세’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대체 어떤 내용이 떴는지 궁금했기에 난 즉시 에브리데이를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1년 2월 12일]
[오늘의 운세 : 전화위복. 고생한 만큼 복이 돌아온다. 남은 하루 행복이 가득하다.
(삭제된 운세 :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고생한 보람이 있을 거라는 말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오늘은 이태풍의 <지리산> 영화가 개봉하고 내가 제조하는 데 공을 들인 ‘THE 베스트’가 런칭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기분이 좋은 것은 최성현 경위가 저지르려고 한 일에 대한 진실을 알았다는 것과 그의 목숨이 사라지지 않은 일이었다.
심신미약 상태이던 그가 죽었다면 박동준 반장이나 이수연 모두가 슬픔에 빠졌을 테니까 말이다.
난 폰을 넣은 뒤 빙그레 웃으며 박동준 반장에게 말했다.
“반장님. 이제 나가 보시죠?”
“알겠습니다. 제가 앞장 설 테니까 부축 좀 부탁드립니다.”
“예.”
난 최성현 경위와 함께 박동준 반장을 부축하며 천천히 폐가를 벗어났다.
* * *
경찰특공대원들은 폐가 밖에서 총을 겨누면서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성현 경위가 수갑을 찬 채 나가자 다들 안도하는 표정을 짓는다.
“성현이~ 자수했다!”
박동준 반장이 외치자 경찰특공대대장 성대현이 손을 들어 작전 중지를 외친다.
이후 성대현 대장이 조금은 장난스럽게 말한다.
“반장님. 혼자서 이렇게 해결하실 거면 부르시질 마시죠. 예?”
박동준 반장이 왼팔을 움켜쥐고 넉살 좋게 말한다.
“여기 산 밑에 오리 백숙 집이 잘해서 불렀지. 내가 쏠 테니까 온 김에 다들 밥이나 먹고 가~”
“이야~ 우리 반장님. 한 건 올리셨다고 기분 좋으신가 봅니다?”
“어 기분 좋다. 그리고 우리 성현이가 살아서 기분이 더더욱 좋고.”
성대현 대장이 헛기침을 한다.
박동준 반장이 말한 건 최성현 경위가 자살하려는 걸 말렸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박동준 반장이 피식 웃는다.
“뭘 또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여? 분위기 칙칙하게 굴지 말고 다들 오늘 밥 먹고 가라. 경찰특공대도 밥은 먹어야 할 거 아냐?”
성대현 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크흠. 예 그러면 뭐 오늘은 진짜로 잘 좀 얻어먹겠습니다. 오늘 갑자기 출동이라서 밥도 못 먹고 왔거든요.”
“그래. 두 그릇씩 시켜.”
순간 난 아까 여기에 오면서 박동준 반장에게 부탁했던 것을 언급했다.
“반장님. 안락 보육원이요.”
박동준 반장이 아차 하며 성대현 대장에게 말한다.
“아 대신에 뭐 한 가지만 부탁하자.”
“뭡니까?”
“안락 보육원. 거기 좀 털어줘. 이번에 이준성이라는 애가 알고 보니까 거기서 학대를 당했더라고.”
박동준 반장이 이준성에 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자 성대현 대장이 웃으며 답한다.
“저희가 밥 먹고 알아서 잘 처리하겠습니다.”
“생큐~”
이후 박동준 반장은 이준성 말고 원래 최성현 경위가 납치를 계획한 나머지 넷도 언급했다.
그 아이들이 학대받는데 경찰이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걔들도 챙기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난 성현이 서에 넣어 주고 병원에 갈게.”
“최성현 경위는 저희한테 맡기시고 병원부터 가시죠?”
“그래······ 그게 좋겠네.”
순간 경찰특공대원들이 최성현 경위를 감싼다.
최성현 경위는 고개를 숙이며 순순히 그들에게 인계되었다.
“성현아. 변호사 붙여줄 테니까 딱 기다리고 있어. 걱정하지 말고.”
“전 괜찮으니까 아저씨나 몸 잘 챙기세요.”
최성현 경위는 박동준 반장에게 그 말을 마친 뒤 호송차에 올라탄다.
그 순간 나도 이수찬을 불렀다.
박동준 반장은 내가 직접 병원으로 데려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수찬아. 이걸로 너희도 오리백숙 집에서 밥 사 먹어. 그리고 준성이 아빠 발견되는 즉시 연락해 줘.”
카드를 내밀자 이수찬이 어색하게 웃으며 조용히 속삭인다.
“혀 형님. 전직 조폭인 저희가 경찰특공대랑 같이 오리백숙을 같이 먹으라고요?”
“왜? 쫄리냐?”
이수찬이 시선을 회피한다.
하긴 근육질의 우락부락한 경찰특공대들과 밥을 먹기 싫긴 할 것 같다.
그런데 그때 이호재가 곁으로 다가와서 속삭인다.
“그냥 먹죠? 그리고 우리 이제 조폭 아니잖아요. 설마 죄 없는 우릴 때려눕히겠어요?”
이호재의 말에 이수찬이 고민하다 답한다.
“하긴 전직 조폭이라고 잡아가진 않겠지. 그래 온종일 뛰어다녔더니 배가 고파서 뭐라도 먹어야겠다. 콜!”
“아싸!”
이수찬이 보이는 태도가 웃겼기에 그에게 말했다.
“나중에 사진 찍어서 후기나 들려줘.”
“알았······ 습니다.”
대체 어떤 식사 자리가 펼쳐질지 궁금한 건 사실이었다.
이후 난 박동준 반장을 모시고 이수연이 있는 과천 M 병원으로 향했다.
* * *
안락 보육원장실.
최태용 원장은 정윤호라는 후원자를 만난 후 온종일 기분이 저기압이다.
그에게서 감사를 의뢰할 거라며 협박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촌 형이 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안락 재단에서 이 보육원을 관리하고 있었기에 잘릴 거라는 걱정은 잊고선 이준성이 돌아오면 분풀이하려고 하고 있었다.
“준성이 이 자식. 들어오기만 해봐라.”
그때였다.
똑똑똑.
원장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난다.
“누구야?”
-원장님. 저 최 기삽니다.
최 기사는 보육원에서 모든 시설을 담당하는 관리인이다.
“왜? 설마 준성이 그놈이 돌아오기라도 했나?”
-아 아니. 그게 아니라요······.
-비키세요.
드르르륵.
갑자기 문이 열리며 건장한 경찰들 네 명이 들이닥친다.
“뭐 뭐야?”
“최태용 원장님?”
“그런데요?”
“아동 학대 혐의와 후원금 횡령으로 긴급 체포 영장이 발급되었습니다!”
“예?”
“연행해!”
마치 조폭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긴 경찰들이 우르르 달려와서 최태용의 양팔을 붙든다.
그 순간 최태용이 외친다.
“너 너희들 이러고도 괜찮을 줄 알아? 내가 누군 줄이나 알아?”
맨 앞에 섰던 경찰이 비웃듯 묻는다.
“누구긴 누구야? 범죄자지.”
“이이익······ 안락 재단의 이사장이 내 사촌 형이야! 그리고 안락 재단에서 경찰에다 얼마나 후원하는 줄이나 알아? 우리 사촌 형이랑 너희 서장이랑 호형호제하는 사이고! 으이~? 같이 밥도 먹고! 어? 사우나도 하고!”
경찰이 피식 웃는다.
“최 이사장님은 나도 알지. 사재로 이런 보육원도 지으시고 힘든 아이들이나 경찰한테도 후원도 많이 하시고. 한마디로 훌륭하신 분이시지. 근데 당신은 왜 이 모양이지?”
“뭐? 당신?”
그때였다.
지잉지잉~
최태용 원장의 폰이 울린다.
때마침 사촌 형의 전화다.
“이거 봐봐! 니들은 이제 다 끝났어!”
경찰이 팔을 풀어주자 최태용 원장이 외친다.
“안락 형님. 지금 여기 경찰들이 들이닥쳐서······.”
그때였다.
-이놈이 어디서 형님 소리가 튀어나와? 그리고 뭐? 아이들 밥값을 떼먹어?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더냐!!
평생을 인격자로 산 최안락 이었지만 생전 처음으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최태용이 당황해서 급히 말한다.
“오햅니다 형님. 그나저나 여기 경찰들이 들이닥치면 재단 이미지에도 안 좋고······. 일단 형님이 서장님에게 전화 한 통만 넣어 주세요. 자세한 이야기는 내가 곧 찾아뵙고 찬찬히 설명해 드릴 테니까······.”
-오해? 너야말로 오해하지 마라! 경찰서장이 날 먼저 찾아와 사정을 설명하길래 내가 고소한 거다 이놈아! 널 당장에 잡아넣으라고!
“예?”
그때였다.
최안락 이사장이 전화 너머로 목소리가 튀어나올 정도로 큰소리로 외친다.
-내 부탁 좀 합니다. 그 쌀벌레 같은 놈을 당장 좀 처분해 주시오 경찰 분들!
순간 맨 앞에 선 경찰이 외친다.
“다들 들었지? 이사장님 말씀대로 당장에 이 쌀벌레 새X를 밖으로 끌어낸다! 실시!”
“예. 팀장님.”
그 순간 경찰들은 더욱 거칠게 최태용 원장의 팔을 붙잡은 뒤 질질 끌고 나간다.
인간 취급을 하지 않으려는 듯 말이다.
“으아아악~ 내 팔. 팔 떨어져~ 살살 좀~ 으아악~”
최태용이 아프다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지만 경찰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최태용이 학대했을 아이들은 더욱 아팠을 테니 말이다.
* * *
과천 M 종합병원.
VIP 병실 7번 방에 입원한 박동준 반장은 CT로 왼쪽 어깨 탈구 증상을 확인받았다.
같은 병원에 이송되었던 이수연은 어깨를 감싼 박동준 반장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린다.
“아빠. 뭘 했길래 이렇게 다쳤어요? 예?”
박동준 반장이 다급히 날 쳐다보며 말한다.
“아 이거? 좀 뛰다가 엎어져서 팔을 잘못 짚어서 그래. 그쵸? 정 실장님?”
“예. 그렇습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다행히 이수연은 한숨만 내쉴 뿐 더는 따지지 않았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 그리고 저기······ 성현 오빠는요?”
이수연의 질문에 박동준 반장이 한숨을 내쉬고 말을 잇는다.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잠시 후.
이수연은 최성현 경위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듣더니 그저 눈물만 흘려대기 시작한다.
“성현 오빠가 그랬었다고요?”
“그래. 녀석도 피해자야. 다행히 감정을 찾았고 네게 죽을죄를 지었다고 하더구나.”
이수연의 입에서 말이 사라지자 박동준 반장이 이수연의 손을 꼭 잡는다.
“수연아. 너한테까지 용서하라 마라 그런 말은 못 하겠다. 하지만 우리 이제 과거는 잊고 살자. 난 네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이수연이 대답 없이 눈물을 또르르 흘린다.
하지만 이수연의 얼굴을 보니 왠지 아빠인 박동준 반장의 뜻에 따를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분노가 아닌 안타까움이 묻어나오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박동준 반장에게 최태용 원장이 긴급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횡령과 배임 아동 학대 등 죄만 7가지를 뒤집어쓴 터라 적지 않은 형량이 예상된다고 한다.
덕분에 이준성이 고통받은 것에 대한 화가 조금은 줄어들고 있었다.
그때였다.
드르륵.
이준성이 이동용 링거를 꽂고 VIP 병실로 들어왔다.
특별히 다친 곳은 없지만 가벼운 영양실조 때문에 맞고 있는 것이었다.
어젯밤 최성현 경위가 맛있는 걸 잔뜩 먹여서 체력이 좀 있는 편이었기에 아이의 표정이 밝은 편이었다.
그런데 그때 이준성이 이동용 링거를 끌고 침대로 오더니 누워있던 박동준 반장을 보고 걱정부터 한다.
“경찰 아저씨. 많이 아파요?”
“아~니~ 그냥 좀 피곤해서 누워있는 거야.”
“그렇구나. 그럼~ 빨리 나으세요!”
자신도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데도 타인을 먼저 걱정하는 착한 아이였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 터라 씨익 웃으며 이준성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준성아. 몸은 좀 어때?”
“전 괜찮아요!”
이준성이 한쪽 팔을 들고 작은 알통을 보여준다.
“그러면 우리 준성이. 아빠 보러 갈래?”
“진짜요?”
“응.”
“네. 그럼 당장 가요.”
이준성이 당장이라도 링거를 빼고 가려고 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더니 이수찬과 이호재와 함께 초췌한 얼굴을 한 40대의 남자가 나타났다.
다른 흥신소 팀이 수원에 있던 그를 찾았고 오리백숙집에 있던 이수찬과 이호재가 중간에 만나서 데리고 온 것이다.
“주 준성아?”
이준성이 눈을 끔뻑거린다.
“어? 아빠??”
“준성아~~”
이준성의 아빠가 달려와 아이를 껴안았다.
오는 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들은 탓에 눈물을 펑펑 흘려대며 말도 더듬는다.
“아······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일을 못 구해서······ 근데······ 우리 준성이가 실망할까 봐서······ 그랬어. 미안해······.”
이준성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냐 아빠. 내가 보육원 나가지 말아야 했는데 나가서 내가 더 미안해. 다시는 보육원 안 나가고 아빠가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릴게!”
이준성이 씩씩하게 말한 순간 준성이 아빠가 아이의 손을 잡고 바닥에 웅크려 꺽꺽 울어대기 시작했다.
아이를 건사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도 비통하다는 통곡 소리였다.
돈이 없어서 아이를 보육원에 맡겼는데 하마터면 그 아이를 잃어버릴 뻔했기 때문이었다.
순간 난 이수찬과 눈을 맞췄다.
이수찬이 고개를 끄덕이고 이준성의 아빠에게 말한다.
“아버님. 혹시 저희 회사에서 일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목수 경험도 있으시고 보일러와 여러 장비를 다루실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건물 시설 관리를 맡아주셨으면 하는데 어떠세요? 월급은 300 정도이고 보너스도 좀 나갈 겁니다. 그리고 사택으로 준성이랑 살 수 있는 투 룸도 제공할······.”
이준성의 아빠가 잠깐 멍한 표정을 짓다가 무릎을 꿇고 이수찬의 손을 잡는다.
“시 시켜만 주십시오. 우리 준성이랑 살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이수찬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이준성 아빠를 일으켜 세운다.
“아버님. 아이가 보잖습니까 이러지 마십시오. 아빠는 아이의 슈퍼맨이 되셔야죠.”
이준성의 아빠가 눈물 가득한 눈으로 일어난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리고 이 제안을 해주신 건 저기 계신 정윤호 실장님이니까 감사는 저쪽에 하시면 됩니다. 저희는 솔직히 그렇게 세세하게 신경을 못 썼거든요.”
내가 돈을 대겠다곤 했지만 이수찬은 안 그래도 회사에 사람이 필요하다며 자신들이 이준성과 아빠를 책임진다 했었다.
그런데 이수찬은 그 공을 모두 내게 돌리고 있었다.
순간 이준성의 아빠가 내 쪽에 다가와 내 손을 덥석 잡는다.
“감사합니다. 실장님. 우리 아이도 구해주셨다던데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는 그의 손을 잡으며 부탁했다.
“준성이만 잘 키워 주십시오. 전 그거면 됩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준성 아빠의 확답을 듣는 순간 힘들었던 오늘의 피로가 씻은 듯이 날아가는 듯했다.
동시에 가슴 속에 충만감이 가득 차올랐다.
에브리데이 덕에 이준성과 이준성 아빠의 운명 또한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맙다 에브리데이.
그렇게 생각한 뒤 난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대로 오늘은 병실을 하나 잡고 푹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오늘 밤.
중요한 일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 * *
이준성의 아빠에게 새 직장을 소개해 준 나는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니 오후 3시를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아침부터 폭우를 뚫고 과천까지 가서 돌아다니며 거칠게 움직였더니 온몸에 안 아픈 곳이 없다.
난 우선 뜨거운 물로 가볍게 샤워를 한 뒤 침대에 몸을 던졌다.
오늘 밤 12시에 시작하는 <지리산>의 개봉일 무대 인사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난 이불을 덮지도 않고 그대로 정신을 잃고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눈을 감자마자 모닝콜의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
위용~위용~위용~
요즘 들어 잘 일어나지 못하다 보니. 알람음을 고음의 119구급차 소리로 바꿔놓았었다.
그런데 그 큰 알람 소리를 들어도 한 번에 눈이 떠지지 않는다.
“으으······ 으으······ 5분만.”
어린 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딱 5분만을 외치면서 알람 소리를 끄기 위해 핸드폰을 찾았다.
그런데 갑자기 알람음이 꺼진다.
탁.
폰의 알람을 누가 대신 끄는 소리와 함께 미소의 목소리와 유진이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엄마. 알람 껐어.
-잘했어.
순간 손이 갈 곳을 잃어버리고 멈춘다.
그때 두 사람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온다.
-어 삼촌 멈췄다. 다시 자나 봐 엄마.
-그러게?
-근데 엄마 유노 삼촌. 오늘 행사에 꼭 가야 해? 안 가면 안 돼? 나 유노 삼촌 힘들어하는 거 보기 싫어!
-엄마도 그래. 그나저나 오늘 하루 그렇게 고생해놓고서 또 행사에 가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어떻게 된 게 우리 오빠는 연예인보다 더 바쁘지?
-응. 맞아! 엄마 그러면 그냥 태권 삼촌 보고 혼자 가라고 그러자.
-그럴까?
미소와 유진이의 목소리가 이어질수록 더욱 정신이 또렷해지고 있다.
그때 발밑 쪽에서 정상봉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기······ 실장님이 꼭 깨우라고 하셨는데요?
혹시나 깨지 못할까 봐서 정상봉에게 데리러 오라고 했는데 그 틈에 유진이와 미소가 같이 올라온 모양이다.
그리고는 날 깨우지 말자고 유진이와 미소가 알람을 끄고 있나 보다.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걱정해서 그런다는 걸 잘 알기에 한편으로는 가슴이 뭉클했다.
하지만 오늘 <지리산> 개봉 일에는 빠질 수가 없었다.
영화의 첫 주 주말 영화 관객 수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스크린을 유지하게 될지 결정하는 지표가 된다.
즉 오늘 무대 행사나 이벤트를 통해서 다음 주 스크린 개수가 정해지는 셈이다.
그래서 난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에 힘주어 눈을 떴다.
미소와 유진이가 내 침대 머리맡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게 보인다.
“지금······ 몇 시야? 미소야?”
원래 알람은 5시로 맞춰져 있는데 내 폰을 미소가 품에 꼭 안고 있어 시간을 알 수가 없다.
미소가 날 빤히 쳐다보며 말한다.
“안 알려줄 거예요!”
미소가 폰을 꼭 껴안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내가 힘들어 보인다고 오늘은 쉬라는 듯했다.
“미소야. 태풍이 삼촌 영화가 정식으로 개봉하는 날이라서 삼촌이 꼭 가야 해.”
미소가 걱정하듯 한숨을 폭 내쉰다.
“대신 내일은 꼭 쉬기! 약속!”
미소가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내일은 미소의 유치원 졸업식인데 아무것도 하지 말라며 재촉한다.
일단은 알겠다고 해야겠다.
미소에게 폰을 돌려받아야 하니까.
“으······ 응. 약······ 속!”
미소가 내 새끼손가락에 자기 손가락을 꼭 걸고선 흔들어 댄다.
그제야 미소가 폰을 내게 돌려주며 말한다.
“5시 20분 넘었어요!”
오후 5시 22분.
5시부터 알람이 울리기 시작한 이후 5분 간격으로 울리는 알람을 20분이 지날 때까지도 못 들은 걸 보니 피곤하긴 했나 보다.
몸을 일으키자 미소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면서 말한다.
“근데 유노 삼촌. 조금 전에 과천에서 수연 이모 전화가 왔어요. 오늘 삼촌이 크게 다칠뻔했다고요.”
곁에 있는 유진이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요 오빠. 오늘 오빠가 과천 전역을 누비고 다녔다고 해서 쉬게 해 드리려고 했어요. 일도 일이지만 그러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말짱 꽝이잖아요. 사람이 좀 쉬어가며 살아야죠.”
유진아 웃으면서 말하지 마.
무섭잖아.
말 그대로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하지만 미리 이런 일을 대비해서 준비해둔 대응책이 있지.
“거 수연 씨 그렇게 안 봤는데 뻥이 좀 심하시네. 하나도 안 위험했어. 아 맞다. 오늘 어떤 일이 있었냐면······.”
난 그 즉시 두 사람의 관심을 최성현 경위의 이야기로 돌렸다.
최성현 경위가 실은 20년 전 이태길의 아들 이현성이라는 걸 말이다.
그러자 두 사람이 두 손을 모으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이후 10분 넘도록 두 사람은 넋을 놓고 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실종 – 잃어버린 자들>에 얽힌 인연과 악연들이 어떻게 풀려가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꽤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 그렇게 된 거야.”
미소와 유진이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와~ 오빠. 그러면 최성현 경위님. 아니 이현성 씨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특히 수연 언니랑은요?”
“응. 맞아요. 수연 이모랑 경찰 아저씨는 이제 어떻게 돼요?”
두 사람은 마치 실종 그 이후의 이야기를 해달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건······ 바로······.”
“바로~?”
그때였다.
난 폰을 슬쩍 본 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5시 40분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가야겠다~”
미소와 유진이가 당황한 눈으로 날 쳐다본다.
심지어 정상봉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오빠. 세상에. 이렇게 끊어요?”
“으와아~ 삼촌 진짜. 너무해!”
“실장님. 이렇게요?”
난 세 사람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뒷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해 줄게.”
그러나 세 사람은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되었냐며 거실로 졸졸 따라 나오면서 물어댄다.
하지만 이수연의 마음은 나도 정확히 알지 못했기에 뒤를 말해 줄 수가 없었다.
사랑하던 최성현 경위가 엄마를 죽인 원수의 아들이었을 뿐 아니라 자신을 복수의 도구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본 그녀라면 왠지 아빠 박동준 반장처럼 모든 것을 용서해 줄 것 같았다.
올바른 마음을 가진 아빠 밑에서 키워진 이수연은 과거의 상처를 이겨낼 만큼 다정하고 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니까.
게다가 이수연의 눈에는 최성현 경위가 진심으로 다가왔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들었다.
비록 ‘감정의 둔마’를 겪었다고 하더라도 최성현 경위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착하던 어린 시절의 마음이 남아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이수연을 사랑했던 마음도 말이다.
하여간 나로 인해 1200만 명의 관객이 들어오는 영화 <실종2 – 그날의 이야기>가 탄생할 수 없게 되었지만 사람의 목숨을 구했고 많은 사람을 과거의 악연에서 벗어나게 한 터라 아쉬움은 없었다.
오히려 누군가의 운명을 바꾸고 생명을 구했기에 화장실로 가는 내 발걸음은 당당했다.
그리고 절대로······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면서 따라오는 세 사람을 피해서 도망치는 건 아니었다.
달캉.
화장실 문을 닫고 들어온 순간 콩콩 소리가 울린다.
-오빠~~ 이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해요~
-삼촌~ 나중에 꼭 해 주세요~~
마지못해 알았다고 말하려던 그때였다.
까톡.
‘응? 뭐지?’
발신자를 보니 안정해 감독이다.
그런데 그가 보내온 까톡에는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