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3화
633. 실종 8
-여기가 내 집이었으니까.
나와 박동준 반장은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20년 전 이태길이 실종사건을 일으킨 바로 이 집이 최성현 경위의 집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박동준 반장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지 내게 되묻기까지 한다.
“지 지금 쟤가 뭐라고 그러는 겁니까?”
“이곳이······ 자기 집이라고 하네요.”
나 역시 머리가 멍해져 제대로 된 판단이 서지 않았다.
20년 전이라면 최성현 경위는 9살.
그리고 당시 이 집에서 9살이 된 남자아이라면 딱 한 명밖에 없다.
이현성.
20년 전 <실종 – 잃어버린 자들>의 모티브가 되는 성남 연쇄 실종사건의 범인 이태길의 아들 말이다.
하지만 그 이현성은 아빠 이태길이 체포되고 엄마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나자 일가 친척이 아무도 없어 박동준 반장이 직접 미국으로 입양을 보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고로 죽었었고.
그런데 최성현 경위는 자신이 바로 그 이현성이라 말하고 있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몰라볼 줄은 몰랐어. 성은 바뀌었지만 이름은 별로 안 바뀌었잖아. 성현. 현성이란 원래 이름을 순서만 바꾼 것뿐인데 말이지.
박동준 반장이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현성이는 죽었······ 는데? 내가 분명 죽었다는 서류도 확인을······ 했는데?”
-죽을뻔하긴 했지. 그 미친 양부모가 약을 하다가 집에다 불을 지르는 바람에. 하지만 난 그날 저녁에 매일 같이 얻어맞는 게 싫어 도망쳤었어. 그런데 다행히 다른 한국인 이민자 노부부가 거둬줘서 이제껏 살 수 있었어. 내 인생도 참 대단하지 않아?
미국 경찰은 양부모가 불타 죽고 어린 이현성은 발견되지 않다 보니 이현성이 사망했다고 판단하고 서류를 작성했다고 한다.
그 사이 이현성이 아이가 없던 다른 한국 이민자 양부모 밑으로 들어가게 된 줄도 모르고서 말이다.
이제야 모든 사정을 알게 된 박동준 반장이 휘청거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린다.
난 박동준 반장을 부축하며 폐가 쪽을 향해 외쳤다.
“그렇다면 혼자서 잘 먹고 잘살 것이지 왜 이렇게 돌아왔어?”
최성현 경위가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왜긴 왜야? 내 아빠를 죽을 때까지 감옥에 살게 하고 내 엄마를 죽게 한 저 인간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지.
“복수?”
-그래. 다들 괴물이라고 부르던 사람이지만 나한테는 하나뿐인 소중한 아빠였어. 그러니까 어떻게 해? 자식된 도리로 복수는 해야지. 안 그래?
복수를 언급하는 말투가 너무도 덤덤해서 오히려 소름이 돋는다.
“그러면 박 반장님한테 직접 찾아와서 따지든가 하지 왜 이준성과 이수연을 이용했는데?”
-아~ 그거? 그게 박동준 저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거니까. 우리 박동준 반장님은 아이들이 실종되면 아주 정신이 나가버리거든.
내가 막았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과천에서 아동 실종사건이 몇 건이나 더 발생했을지 알 수가 없었다.
범죄 심리학에 도통한 놈이 실종 전담팀의 안에서 혼선을 줬다면 매번 엉뚱한 범인만 잡아댔을 테니 말이다.
-근데 뭐 이렇게 됐으니 내 인생은 이제 완전히 텄네. 근데 내가 한 가지 궁금한 건······ 정윤호 넌 대체 어떻게 내가 수상하다는 걸 안 거지? 위장은 완벽했을 텐데?
그거야 내가 회귀자라서.
그리고 에브리데이가 있어서.
또한 미소가 있어서.
하지만 놈에게 그걸 말해줄 이유 따윈 없었다.
“완벽하다는 건 네 생각일 뿐이었지. 그러니까 여기 박 반장님 말대로 자수나 해! 넌 어차피 여기서 도망 못 쳐! 막다른 곳인데다 곧 경찰특공대도 들어올 거야!”
-자수? 나도 아빠처럼 감옥에서 평생을 썩으라고? 웃기지 마. 내가 죽을 곳은 내가 직접 정해!
놈은 이제 자살이라도 각오한 듯 외친다.
그런데 감정이 없던 놈도 죽음이 다가오니 약간은 흔들리는 듯 목소리가 거칠어진다.
그때였다.
곁에 있던 박동준 반장이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는 내 팔을 붙잡고선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힘을 내서 부른다.
“성현아~”
폐가에서 빽 하고 큰 목소리가 나온다.
-난 성현이가 아니라 이현성이라니까?
“그렇다고 한들 나한테는 넌 여전히 성현이다.”
-하여간 똥고집은. 마음대로 불러!
박동준 반장이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고 외친다.
“성현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총 버리고 나와라. 자수하면 정상 참작이 될 거다. 그러니까 죗값 치르고 나서 다시 시작해 보자. 내가 도와주마. 너 원래 착한 아이였잖아?”
-착해? 아저씨가 착각하고 있는데 나 안 착해. 정확히는 감정을 못 느껴. 착하다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아저씨도 이제 알 정도는 됐잖아? 그동안 모든 걸 다 연기한 거야. 아저씨 앞에서도 수연이 앞에서도!
하지만 박동준 반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다. 넌 그런 아이가 아니야! 최성현일 때도 어린 시절 이현성일 때도 착했던 아이야. 지금은 그저 잠깐 길을 잃었을 뿐이다! 그리고 네가 해 준 모든 게 연기라고? 그건 불가능하다 성형아. 수연이도 나도 너로 인해 얼마나 위안을 받았었는데!”
최성현 경위가 답답하다는 듯 말한다.
-아니 그거야말로 아저씨의 착각이고 바람이라니까? 그거 다 연기였어! 그리고 사이코패스 자식 새X가 정상일 리 있어? 날 봐. 이렇게 복수하러 왔잖아. 그것도 다른 사람을 납치까지 해서. 그런데 아직도 모르겠어? 나도 아빠랑 똑같은 사이코패스란 걸? 그 피가······ 어디 가겠어?
최성현 경위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고함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지이잉~
내 폰에서 진동이 울려댄다.
‘기자인가?’
아침부터 경찰들 사이에서 수많은 일이 있었으니 경찰 중 한 명이 언론에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알림 : 오늘의 운세가 등록되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운세를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1년 2월 12일]
[오늘의 운세 :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처음엔 잘못 본 건가 싶었다.
어제 봤던 오늘의 운세가 글귀 하나 틀린 것 없이 다시 떴기 때문이다.
그 즉시 어제 날짜의 ‘오늘의 운세’를 확인했지만 똑같은 글귀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왜 이렇게 똑같은 글귀가 다시 뜨지?’
어제 봤던 최성현 경위는 너무도 착해 보이는 외모였기에 이 운세가 경각심을 갖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보는 최성현 경위는 말 그대로 사이코패스였다.
부모의 복수를 위해 한국까지 돌아온 다음 자신을 도와준 박동준 반장의 곁에서 미치게 하려는 괴물이었고.
그런데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니.
선입견을 갖지 말라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범죄자를 범죄자로 보지 말라는 뜻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기에 진심으로 에브리데이에게 묻고 싶었다.
대체 왜 이러냐고 말이다.
그런데 그 해답의 실마리는 의외로 너무도 가까이서 풀리고 있었다.
“넌······ 이태길의 자식이 아니다······ 성현아.”
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박동준 반장이 목이 멘 채 말을 잇고 있다.
최성현 경위 그러니까 이현성이 이태길의 아이가 아니라고 말이다.
대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어 멍하니 박동준 반장을 쳐다봤다.
그때 폐가에서 최성현 경위의 고함을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저씨. 난 아빠랑 다르게 살 수 있다고 말하려고? 틀렸어. 내 운명은 벌써 정해져 있어. 그러니까 설득하려 하지 마.
박동준 반장이 고개를 연신 저으며 외친다.
“아니다. 그런 게 아니야······ 진짜로 넌 이태길의 아들이 아니란 소리라고!”
-XX. 지금 무슨 X소리야!!
“말 그대로다. 성현아. 네가 갓난아기일 때 아이를 갖지 못하는 이태길 부부가 널 입양했다. 넌 진짜로 이태길의 친아들이 아니야!”
-뭐······ 라고?
최성현 경위가 놀란 만큼 나 역시 놀랐다.
이태길이 유일하게 애정을 줬던 대상인 아들이 친아들이 아니라 나처럼 보육원에서 입양한 아이였을 줄이야.
순간 최성현 경위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아 아니야. 말도······ 안 돼. 아빠가 나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그건 말이 안 되잖아!
“놈이 너만을 아낀 게 나도 이해가 안 가긴 하지만 사이코패스인 그놈 속을 누가 알겠냐? 하지만 단언컨대 넌 그놈 핏줄이 아니다. 네가 미국에 가고 나서 알게 된 건데 확인시켜줄 수도 있다. 그리고 네가 감정이 없다니? 말도 안 된다. 애당초 그날의 사건이 있기 전에는 넌 잘 웃고 떠들던 아이였다! 내가! 이 내가 두 눈으로 직접 봤다고!”
에브리데이는 사이코패스처럼 보이는 최성현 경위의 지금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똑같은 사람 똑같은 문구였지만 정반대의 의미일 줄이야.
그 순간 최성현 경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아차렸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원래의 이현성이 잘 웃고 감정도 잘 드러내는 아이였다면 아빠가 체포당하고 엄마가 자살한 그 날의 일로 인해 PTSD가 온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걸 아는 건 나 역시 회귀 전 미소의 죽음 이후 PTSD를 겪었기 때문이다.
당시엔 의사가 날 진단하기를 극도의 흥분 상태가 이어지면서 죽을 듯한 압박감에 시달릴 거라고 말했다.
난 죽도록 일을 함으로써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강박증만큼은 없애지 못하고 다이어리에다 매일매일의 일정을 일기처럼 적어댔다.
그런데 그 시절 의사가 내게 나타날지 모른다고 말했던 PTSD의 증상 한 가지가 떠올랐다.
‘감정의 둔마(鈍痲).’
그건 바로 감정 표현이 없어져서 화도 내지 않고 슬픈 것도 없어지는 증상을 말한다.
심지어 도덕심도 없어지고 희로애락의 반응까지 사라져버리기도 할 정도로 감정 장애가 오기도 하고.
그래서 마치 사이코패스처럼 감정이 사라지게 되지만 엄연히 사이코패스와 다르다.
타고난 문제가 아니라 외상 후 장애로 나타나는 심리적인 ‘증상’일 뿐이니까 말이다.
즉 쉽진 않아도 치료가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성현아. 넌 그날 일 때문에 충격을 받아서 그런 거다. PTSD 알지? 그날 이전의 기억이 없는 것도 충격을 받아서고! 내가 널 입양 보낼 때 조금 더 신경 써야 했는데 미안하다. 그땐 내가 너무 아는 게 없었다. 그러니까······ 이제······ 이제······ 그만하고 나와라. 치료만 받으면 다시 돌아갈 수 있다 성현아. 그러니까 제발 이렇게 삶을 포기하지 마!”
어쩐지 최성현 경위가 이준성과 흥신소 직원을 납치하고서도 거의 손을 대지 않은 게 그래서인 듯했다.
엄청난 사실을 듣게 된 탓일까 최성현 경위는 충격으로 대답이 사라져버렸다.
그때 박성준 반장이 앞으로 나선다.
난 즉시 박성준 반장의 팔을 붙들었다.
“반장님. 뭐 하시려고요?”
“직접 가서 설득해야죠.”
“놈이 총을 갖고 있잖습니까?”
“저희에게 쏠 거면 이미 쐈을 겁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이거 입었잖습니까?”
박동준 반장이 가슴을 툭툭 건드린다.
둔탁한 소리가 난다.
우의 안에 입은 방탄조끼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리고 지체하면 경찰특공대가 올 겁니다.”
경찰이 총기를 들고 외진 곳으로 알아서 들어갔으니 사살 명령이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박동준 반장은 그런 일을 생기는 걸 두고 볼 수 없다며 20년 전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일을 마무리하려고 하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난 알겠다며 답했다.
“대신 같이 가시죠.”
“예?”
난 이수찬에게 고개를 돌렸다.
“수찬아. 방탄조끼 있어?”
“직원들이 가진 방탄조끼가 있긴 한데 들어가지 마세요. 저희가 들어가겠습니다.”
이수찬은 자기가 나서겠다며 날 말린다.
늘 느끼지만 참 고마운 녀석이다.
하지만 최성현 경위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들어가면 오히려 자극할 가능성이 있었다.
게다가 난 안전할 거라는 자신도 있었다.
만약 내가 다치거나 할 거라면 에브리데이가 먼저 알려줄 테니 말이다.
“괜찮아. 다칠 일 없어.”
“형님······.”
난 걱정하는 동생들을 안심시킨 뒤 방탄조끼를 착용했다.
그리고는 왼손에 폰을 쥐었다.
다시 한번 에브리데이를 확인했지만 운세가 바뀌진 않는다.
하지만 혹시라도 에브리데이가 업데이트될 수도 있었기에 왼손에 핸드폰을 꽉 하고 쥔 채 박동준 반장에게 말했다.
“반장님. 이제 가시죠.”
덩치가 큰 박동준 반장이 내 앞을 가리며 말한다.
“알겠습니다. 대신에 제 뒤에 서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정면으로 가면 위험하니 이쪽 길로 가시죠.”
박동준 반장은 20년 전 기억을 떠올려 폐가의 뒷문으로 향하는 오솔길로 날 안내한다.
사박사박.
오솔길에 난 비에 젖은 풀들이 우의에 쓸리며 작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 * *
이태길이 살았던 폐가의 뒤쪽 외벽이 무너져 내려 있다.
게다가 안방과 작은방의 내벽까지도 무너져 있다 보니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방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최성현 경위는 안방의 한 가운데에서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바닥에 앉아 있었다.
천장 사이로 떨어지는 비가 그의 우의에 툭툭 떨어지며 소리를 내린다.
3m 거리밖에 떨어지지 않았으나 그는 우리가 다가온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후욱······ 후욱······.”
우의를 입은 그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때였다.
최성현 경위가 우의 안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천천히 권총을 꺼낸다.
순간 박동준 반장이 내 앞을 가린다.
그러나 최성현 경위는 팔을 바들바들 떨면서 총을 자기 머리 쪽으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박동준 반장은 그 즉시 힘껏 땅을 박차고 안방으로 달린다.
그리고 나 역시 박동준 반장의 뒤를 따랐다.
쿵쿵.
낡은 마루가 부서지는 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최성현 경위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다.
초점 없는 눈이 우릴 바라보고 있다.
“성현아아~~ 안 된다아~~”
박동준 반장이 고함을 치며 거대한 몸으로 최성현 경위의 몸을 덮친다.
난 그 틈에 최성현 경위의 권총을 쥔 오른손 몸을 날렸다.
거구의 박동준 반장의 몸이 최성현 경위를 덮친 순간 난 최성현 경위의 오른 손목을 꽉 하고 쥐었다.
탁.
힘없이 잡고 있던 권총이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박동준 반장과 나 최성현 경위가 한데 엉켜 바닥에 나뒹굴어 버렸다.
쿠웅.
오래되어 거의 다 삭아버린 장판 바닥에 얼굴이 닿았다.
삭은 장판서 이끼와 곰팡내 그리고 흙냄새가 동시에 코끝을 확 하고 스친다.
하지만 불쾌하다는 생각보단 짙은 안도감이 먼저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때 박동준 반장이 몸을 일으킨다.
넘어지면서 왼쪽 어깨 쪽으로 충격을 받았는지 왼팔을 들어 올리지 못하고 있다.
박동분 반장은 권총이 멀찍이 떨어진 걸 확인하곤 바닥에 대짜로 누워있는 최성현 경위에게 버럭 소리를 내지른다.
“이 자식아! 그렇다고 그렇게 죽으려고 하면 어떻게 해!!”
박동준 반장이 씩씩대며 오른 주먹을 꼭 쥐고 들어 올린다.
하지만 박동준 반장의 그 주먹은 최성현 경위에게 닿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 누워있던 최성현 경위를 보더니 주먹을 펴고선 한 손으로만 최성현 경위를 껴안아 버렸다.
“성현아······ 평생이 걸리더라도 내가 고쳐줄게. 그러니까······ 사죄하고······ 벌 받고······ 치료받자······ 응?”
박동준 반장이 애가 끓는 목소리로 최성현 경위를 달랜다.
20년 전 이태길이 저지른 그 범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해주면서 말이다.
그때였다.
박동준 반장이 자신을 용서하고 애원해서였을까.
아니면 자신이 이태길의 친아들이 아니란 걸 알고 충격을 받아서였을까.
누워있던 최성현 경위가 뜨거운 눈물을 주룩 흘리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천천히 띄엄띄엄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저씨······ 죄송······ 해요.”
마치 20년간 막혀있던 감정의 통로가 뚫린 듯 최성현 경위는 피눈물을 흘리며 자기 잘못을 실토하고 있었다.
박동준 반장의 노력이 기적을 일으켜 버렸다.
감정의 둔마 증상이 사라지다니!
그 순간 박동준 반장은 덜덜 떨며 한 손으로 최성현 경위를 더욱 힘차게 껴안았다.
“아니다. 내가 더 잘못했다. 그때 널 그렇게 보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멍청했다. 네가 이렇게 고생할 줄 알았다면 보내지 말걸! 내가 보살 필걸! 내가 더 미안하다.”
순간 최성현 경위가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는 두 팔을 벌려 박동준 반장을 꽉하고 껴안았다.
“죄송해요 아저씨. 죄송해요. 끄으으윽. 제가······ 아저씨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건데······ 잘못했어요.”
그렇게 두 사람은 이태길의 집에서 껴안은 채 한참을 울어대고 있었다.
* * *
드드드득.
자갈 소리가 산을 울리며 경찰특공대들 차량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난 그 즉시 박동준 반장에게 말했다.
“반장님. 특공대인 거 같습니다.”
“아 예.”
박동준 반장이 최성현 경위와 포옹을 풀고 눈물을 닦는다.
“성현아. 일단 자수부터 하자.”
눈물범벅이 된 최성현 경위가 고개를 끄덕인다.
“예. 아저씨.”
‘감정의 둔마’ 증상이 사라진 그는 판단력이 제대로 돌아와 있었다.
찰캉.
박동준 반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오른손으로 수갑을 꺼낸다.
그런데 왼쪽 팔을 들어 올리지 못하다 보니 수갑을 제대로 채우지 못했다.
최성현 경위가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자기가 먼저 한쪽 수갑을 오른 손목에 채운다.
찰칵.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린다.
“남은 한쪽은 아저씨가 채워주세요.”
“그 그래······.”
박동준 반장이 이를 꽉 깨물고 최성현 경위의 손을 채웠다.
찰칵.
최성현 경위가 눈물을 그치며 말한다.
“최성현 경위. 박동준 반장님께 자수합니다.”
박동준 반장이 울음을 참으며 말한다.
“박동준 반장. 자수 의사를 확인했습니다.”
난 옆에서 증인이 되어 주겠다고 답했다.
이후 박동준 반장이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비틀.
최성현 경위가 수갑이 묶인 두 손으로 박동준 반장을 지탱한다.
“괜찮으세요?”
“후우. 괜찮다. 어서 나가자.”
최성현 경위는 잠깐만이라고 말한 뒤 날 쳐다본다.
“정 실장님. 너무 많은 폐를 끼쳤습니다. 저기······ 머리를 맞으신 분이 아는 분인 거 같던데······ 대신 좀 사과를 전해주십시오.”
정신을 차린 최성현 경위의 눈빛은 예전과는 달랐다.
에브리데이가 알려준 것처럼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이한테는 하아······ 진짜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알겠다고 말하려던 그 순간 난 한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떠올랐다.
회귀 전 최성현 경위는 과천에서는 연쇄 실종사건이 다섯 건이 일으킨다.
그러니 그 일의 범인인 최성현 경위에게 이준성을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 듣는다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대답 여하에 따라 나도 박동준 반장처럼 최성현 경위를 용서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준성이를 납치해서 어떻게 하려고 했습니까?”
최성현 경위가 한숨을 내쉰다.
“그게 말입니다······.”
그 순간 그는 내가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