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화
63. 체리블라썸의 신곡 1
띠잉~.
이동민 실장이 있는 지하 2층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꽤 넓은 복도 양옆으로 1번부터 6번 녹음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복도 끝에는 소극장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는데 150명 정도가 동시에 공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압구정에 이 정도면 크기면 땅값만 해도 수백억이겠네.”
이런 걸 보면 우리 회사도 은근히 알부자다.
그때였다.
녹음실 2번 방에서 두 사람이 다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실장님! 그냥 지태한테 맡기자니까요? 걔 요즘 물오른 거 아시잖아요!”
“안 돼. 이번에는 S급으로 갈 거라고 몇 번을 이야기하냐?”
“아 S급이 미쳤다고 체리블라썸에게 곡을 줍니까? 지태 정도면 감지덕지해도 모자랄 판에 상황 파악이 그렇게 안 되세요? 다들 곡 안 준다잖아요!”
2번 녹음실에서 싸우는 사람은 이동민 실장과 아이돌 담당 프로듀서인 강시온이다.
서울예술종학대학교 라인인 그는 골든로드를 만든 일등 공신.
하지만 체리블라썸의 1집과 2집을 맡으며 이렇게 말아먹은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두 사람이 싸우면서 언급하는 지태란 사람은 골든로드의 앨범 중 나름 괜찮은 평을 받은 <바밤바!>란 곡을 작곡한 최지태 작곡가를 말한다.
역시나 서울예술종합대학교 라인이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지태 곡도 못 받을 수 있어요. 왜 그때는 직접 작곡이라도 하시려고요?”
“야. 넌 내 일에 신경 끄고 골든로드나 챙겨! 체리블라썸은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두 사람이 거칠게 싸우기에 밖에서 잠깐 기다렸다.
이내 소란이 잦아들며 문이 열렸다.
덜컥.
강시온 프로듀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나온다.
“안녕하십니까.”
“안녕? 네 눈엔 지금 내가 안녕해 보여?”
왜 나한테 불똥이 튀는 분위기지?
“야. 정 스타. 이동민 실장님한테 이야기 좀 잘해라. 무슨 5년 만에 현역 복귀야? 아재 감성 가지고 아이돌 음악 만드는 게 말이 돼?”
어처구니가 없다.
체리블라썸을 이 지경까지 떨어지게 한 게 누군데?
그렇게 만든 당사자가 이동민 실장을 까?
“잘하시겠죠. 클래스가 어디 갑니까?”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강시온의 눈빛이 한층 더 사나워졌다.
“지랄. 니가 음악에 대해 뭘 안다고. ”
강시온은 더 말하기도 싫은지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가 사라진 걸 본 후 녹음실 2번 방의 문을 열었다.
끼익.
이동민 실장은 불 켜진 녹음 부스를 보며 의자에 기대 있었다.
며칠은 집에 들어가지 않은 듯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와이셔츠를 풀어헤친 채로.
“실장님.”
“아 또 뭐······ 어 윤호냐?”
강시온 프로듀서가 다시 온 줄 알고 짜증을 내려다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언제 왔어?”
“지금 왔습니다. 그보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설마 작곡가들이 아직 곡을 안 주는 겁니까?”
이동민 실장이 한숨을 쉰다.
“시원한 캔커피나 한잔하면서 이야기할까?”
“예.”
의자가 끼익하고 뒤로 밀려나는 소리와 함께 이동민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녹음실 밖으로 나가 소극장 바로 앞에 있는 휴게실로 향했다.
딸깍.
자판기에서 뽑은 레쯔리 커피를 받아들고 한 모금을 머금었다.
아 맛없다.
“맛없지?”
난 금세 표정을 굳히고 답했다.
“아닙니다. 맛있습니다!”
“맛있긴. 네 커피가 짱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근데 어쩌겠냐 옛날에 그 시절 느낌 떠올리려면 어쩔 도리가 없다.”
처음으로 프로듀서를 하던 그 시절을 떠올리기 위해 그때처럼 지낸다고 한다.
그 시절처럼 먹고 살고 하다 보니 몸무게가 몇 kg은 빠졌다고 한다.
“밥은 챙겨 드십니까?”
“신경성인지 면 말고는 잘 넘어가지도 않아. 식사는 삼시 세끼 컵라면. 이 커피는 영양제고.”
이동민 실장이 웃으며 레쯔리 커피 캔을 흔들어댔다.
‘저러다 사람 죽지. 나도 저렇게 몸을 안 아끼다 죽었는데.’
난 인상을 찌푸리고 말했다.
“실장님 이렇게 지내시는 거 사모님도 아십니까?”
“흐흐. 짜식. 걱정하지 마라. 어차피 이 짓도 일주일 했는데 더는 못 하겠다. 나 이제 퇴물 되었나 보다. 클래스는 개뿔. 늙어서 감 떨어지면 다 끝인데.”
“에이 실장님도 참. 약한 소리 마십시오. 그런데 작곡가들이 왜 곡을 안 준다는 겁니까?”
이동민 실장도 도통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곡 비를 4천만 원까지 불렀는데도 준다는 놈이 하나도 없다는 게 이게 말이 되냐?”
곡 비를 더블로 불렀는데도 안 준다고?
이것 봐라?
“에필 K 지노스 밤비 김운식 그리고 창희까지. 전부 지금 만든 곡들은 주인이 정해져 있다며 튕기더라고.”
대한민국 현역 S급 작곡가들의 이름이 줄줄이 다 나왔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러니까. 내 말이.”
작곡가들은 의뢰를 받으면 새롭게 곡을 뽑아낸다.
보통은 예비로 한두 곡 정도는 늘 준비해 두기도 하고.
그런데 모두가 곡이 없다고만 한단다.
경험 많은 이동민 실장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러다 지태 그놈 곡이라도 다시 받아야 하나 모르겠다.”
하지만 2집을 대차게 말아먹은 일이 떠올랐는지 혀를 차는 이동민 실장이다.
순간 이맘때쯤 있었던 대형 걸그룹의 데뷔가 떠올랐다.
‘걸프렌즈7이 이 무렵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지 아마?’
고민하는 이동민 실장을 놓아둔 채 난 다이어리를 뒤졌다.
[에브리데이 V10]
[날짜 : 2020년 4월 18일]
-PM 07:00 (보고 사항) 에이스 엔터 걸프렌즈7 KBC 뮤직 스테이지 데뷔곡 3곡. AD에게 항의.
에이스 엔터의 신인 아이돌 걸프렌즈7.
데뷔와 동시에 강력한 1위 후보가 되어 쁘띠모 골든로드와 더불어 걸그룹 3파전 시대를 연다.
이때쯤 에이스 엔터가 걸프렌즈7을 띄우기 위해 모든 S급 작곡가들의 곡을 쓸어 담았다던 소문이 떠올랐다.
난 곧장 이동민 실장에게 내 생각을 털어놓았다.
“에이스 엔터에서 대형 걸그룹을 런칭 준비 중이라던데 실장님은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들어만 봤겠냐? 직접 가서 봤지. 잘들 해. 와꾸도 좋고. 곡만 잘 나오면 뜨겠더라. 아니 잠깐.”
이동민 실장의 눈에 어이없다는 감정이 보였다.
“그러니까 네 말뜻은 에이스 엔터에서 쓸 만한 곡을 싹쓸이했다고?”
척하면 척이다.
“네.”
이동민 실장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럴듯한 생각이긴 한데······. 걔들이 곡을 싹쓸이하더라도 체리블라썸에게 곡을 안 주는 건 별개인 것 같은데?”
“견제하려고 그러는 걸지도 모르잖습니까?”
“체리블라썸을 견제한다고? 고작 2군 끝머리에 있는 애들을?”
“성적만 보면 그렇지만 지난 한 달 동안의 인지도만 보면 이야기가 다르죠. 연말 무대 이후 체리블라썸의 위상도 많이 올라갔잖습니까?”
작년 연말 무대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어글리 슈즈로 인한 실검 장악까지.
체리블라썸의 노출도는 수직 상승 한 상태였다.
“그 그렇긴 하지.”
“하여간 실장님. 이럴 게 아니라 김운식 작곡가님과 직접 만나서 확인해 보는 게 어떻습니까? 두 분 친하잖습니까?”
이동민 실장이 다 먹은 레쯔리 커피 캔을 휴지통에 던졌다.
달캉!
골인이다.
뭐가 그리 기쁜지 이동민 실장의 얼굴에 웃음이 깃들었다.
“알았다. 운식이 그놈이 내 전화를 안 받으니까 직접 만나서 쪼아보자고. 그러면 사실을 털어놓겠지.”
결심을 마친 이동민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친 몸을 휘청거린다.
하지만 눈빛만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녹음실을 나서던 이동민 실장이 내게 물었다.
“유진이한테 안 가봐도 되냐?”
“그쪽 급한 일들은 이제 다 끝났습니다. 나중에 가 봐도 됩니다.”
주강용 기자가 체포되었다고 하자 이동민 실장이 내 어깨를 토닥였다.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나도 유진이처럼 착한 애가 고초를 겪는 게 안타까웠는데.”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한명호 팀장이나 이동민 실장이 체리블라썸 상황을 말하지 않은 건 이유는 단 하나였다.
유진이가 더 급했단 이유로.
“자 가자.”
우린 김운식 작곡가를 만나기 위해 곧장 홍대로 움직였다.
* * *
이동민 실장의 차를 타고 가면서 유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호텔은 어때? 불편하진 않고?”
-여기 완전 좋아요! 미소도 잘 놀고 밥도 맛있고. 근데요 오빠. 여기 미니바는 왜 이렇게 비싸요?
시중에서 5백 원에 살 수 있는 생수 한 병도 미니바에서 사면 3천 원이 넘는다.
무려 6배.
저걸 누가 먹나 했지만 의외로 신경 안 쓰는 사람도 꽤 된다고 한다.
“괜찮아. 회사에서 경비로 처리할 테니까.”
-으으. 바가지 쓰는 기분이 들어서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요.
이름도 알지 못하는 외국 과자들이 가득한데 가격표를 보니 욕부터 나온단다.
그때 미소가 전화를 건네받았다.
-삼촌. 언제 와요?
“어. 미소야. 저녁때 갈 거야. 그리고 엄마 몰래 미니바 과자 먹고 싶은 거 막 먹어! 그거 먹어도 돼.”
-안 돼요! 비싸요! 과소비는 안 된다고 선생님이 그랬거든요.
단호한 미소의 말에 나도 모르게 납득해 버렸다.
과소비가 나쁘다는데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태어나 처음 간 호텔인데 그냥 나오면 섭섭하잖아.
“그러면 한 개만 먹어.”
-한 개요?
“응. 많이 말고. 딱 한 개! 호텔에 왔는데 그것도 안 먹으면 되겠어?”
-엄마~. 삼촌이 딱 한 개만 먹으래! 나 먹어도 되지?
미소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안 봐도 생생하게 그려졌다.
-오빠. 다시 저예요!
“그래. 이제 일은 다 끝났으니까 맘 편히 하루만 더 쉬어. 곧 기자들이 철수하면 집으로 돌아가자.”
-고마워요.
흐뭇하게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뭘. 매니저가 해야 할 일인데.”
운전하던 이동민 실장이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히죽 웃었다.
“그리 좋냐?”
“아 실장님. 하하 그게요······”
“좋으면 좋다고 해. 자기 연예인이 잘되는 걸 누가 싫어하냐?”
이동민 실장은 그러고 보니 처음 맡았던 가수가 생각난다며 추억을 떠올렸다.
박운기 그리고 최은실 등 당대의 솔로 가수들.
함께 했던 사람들이 은퇴한 걸 아쉬워했다.
‘다시 살리면 되죠.’
하지만 지금 말하기엔 이동민 실장이 자신감을 많이 잃은 상태였다.
다음 기회에 말을 하자 싶었다.
홍대 쪽에 있는 김운식의 작업실에 도착했다.
아직 낮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허름하네요.”
“아냐. 내부는 으리으리하게 꾸며놓고 사는 놈이야.”
S급 작곡가라 돈은 많아 평창동에 집은 있어도 작곡만큼은 늘 자신이 처음 작곡하던 곳에서 한다고 한다.
지하실 계단으로 내려가자 습기를 머금은 시멘트의 눅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입구에는 짜장면을 먹고 내놓은 빈 그릇도 보였고.
“짜식. 청소 좀 하지.”
이동민 실장이 투덜대며 문을 열었다.
그런데.
외부와는 달리 지하 작업실 내부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리모델링 된 내부가 나왔다.
‘뭐야 이 언밸런스함은?’
이동민 실장은 작업실로 들어서자마자 잔소리를 퍼부었다.
“인마! 왜 전화를 안 받아!”
이탈리아산 가죽 소파에 누워 있던 한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으······ 으으. 누구야?”
머리가 부시시한 남자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저작권료만 연간 5억 이상 벌어들인다는 김운식 작곡가다.
“동민이······ 형?”
“동민이 형은 개X. 곡도 안 주는 놈이. 누가 형이야!”
김운식 작곡가가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해한다.
“아 진짜 또 왜 이래. 써둔 곡 다 나갔다니까?”
김운식 작곡가는 테이블에 놓인 미지근한 물을 들이켜고 눈을 비벼대 물었다.
“근데 여긴 왜 또 왔어?”
“왜 왔긴. 곡 받으러 왔다니까?”
“맡겨 놨수?”
김운식 작곡가는 정말 곡이 없다며 억울해했다.
“그럼 새로 파. 신곡! 3분이면 되지?”
“곡이 그렇게 뚝딱 나오면 얼마나 좋게. 내가 컵라면이야? 3분이면 뚝딱 완성하게?”
시작부터 말싸움이 격해진다.
본론으로 넘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내가 먼저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굴렁쇠 엔터 정윤호라고 합니다.”
김운식 작곡가가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적였다.
“얜 또 누구야?”
“있어. 우리 회사가 키우는 비밀병기.”
이동민 실장이 뻔뻔한 표정으로 이야기하자 김운식 작곡가가 날 빤히 바라본다.
“그래? 마스크는 괜찮네. 랩? 노래? 댄스? 어느 쪽?”
“아닙니다. 작곡가님. 전 매니저입니다.”
김운식 작곡가가 이동민 실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비밀병기라며?”
이동민 실장이 김운식 작곡가의 말을 씹고는 빈 소파에 몸을 뉘었다.
“윤호야. 네가 궁금한 거 물어봐. 이야기 끝나면 깨우고.”
“와······ 진짜 난 사람도 아니냐? 이제 말도 안 할 거야?”
“어. 너 사람 아냐.”
김운식 작곡가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내게 시선을 돌렸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곡 없다는 말은 들었지?”
“예.”
“그럼 대답 끝났잖아? 얼른 너희 실장님 데리고 가라. 나 좀 더 자야 해.”
퉁명스레 말한 김운식이 다시 소파에 누우려 엉금엉금 자세를 잡았다.
“김운식 작곡가님. 혹시 에이스 엔터와 전속계약 맺었습니까?”
순간 소파에 누우려던 김운식이 그대로 멈춰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