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9화
619. <지리산> 시사회 4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1년 2월 7일]
-PM 08:3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NEW. 이태풍] <지리산> 시사회 중단. (긴급회의 : 시사회 참석한 리스트 체크 후 기자들에게 사과 문자 발송할 것. VIP 관람객들에게 사과 기프티콘 발송할 것.))
<지리산> VIP 시사회용 영상이 담긴 USB를 요청하고 내가 디지털 영사기를 직접 만지겠다고 결심한 순간 일정이 사라져버렸다.
그 말인즉슨 영사기가 아닌 영사기사.
바로 최현택 기사 이 사람이 원인이었다는 뜻이었다.
아마도 류신에게 사주를 받은 모양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그를 다그쳐 증언을 받아내고 싶지만 우선은 VIP 시사회를 성공적으로 끝내는 게 백만 배는 더 중요했다.
‘잠시 뒤에 봅시다 최 기사님.’
난 심호흡을 몇 번 하고 화를 다스린 뒤 곁에 있는 이은주 팀장에게 말했다.
“팀장님. 그러면 오늘 영사기는 제가 잡겠습니다.”
이은주 팀장의 눈이 큼지막해진다.
“진짜로 그렇게 해주실 수 있겠어요?”
“예. USB가 도착하면 DCP 파일 암호 알려주시고 상영관에 있는 직원이랑 연락할 수 있도록 무전기도 주세요.”
DCP 파일은 영화관에서 사용하는 영상 파일인데 USB에 담겨올 때 암호가 걸려있다.
이은주 팀장이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알았어요. 직원이 가지고 오면 그때 파일 암호 알려드릴게요.”
“예.”
순간 팔짱만 끼고 뒤로 빠진 최현택 영사기사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이 팀장! 진짜로 이 친구한테 영사기를 맡길 거야?”
그때였다.
이제껏 굽신대던 이은주 팀장의 태도가 바뀌었다.
대안이 생기자 더는 굽신거릴 필요가 사라진 거다.
“왜요? 하기 싫으시다면서요?”
“아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로 그런 건 아니······지.”
최현택 영사기사가 뒤늦게 실수했다는 듯 기세를 누그러뜨린다.
하지만 이은주 팀장은 싸늘한 표정으로 최현택 영사기사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최 기사님. 지금 장난해요? 이제 와서 진짜로 그런 게 아니라고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죳!”
<지리산>은 홍보비를 포함 프로젝트 제작비로 100억이 넘는 거금이 들어간 프로젝트다.
그런데 VIP 시사회에서 최현택 영사기사가 영사기를 잡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자기를 기분 나쁘게 했다는 이유로.
아마도 나와 이은주 팀장을 이곳에서 몰아내기 위해 벌인 짓일 테지만 내가 영사기를 만질 수 있게 된 순간 모든 게 꼬여버린 셈이다.
“하여간 지금부터 이 영사실 임시 책임자는 정 실장님이시니 그리 아세요. 그리고 대표님한테 직접 보고드릴 거니까 처분 내려올 때까지 여기서 대기하세요.”
최현택 영사기사가 이제야 비굴하게 말하며 이은주 팀장의 팔을 잡는다.
“이 이 팀장. 기다려봐. 영사기 내가 잡을게. 내가 잡을 테니까······ 대표님한테는 말하지 마. 응? 진짜 미안.”
그러나 이은주 팀장은 최현택 영사기사의 손을 냉정하게 쳐냈다.
“실수 같은 소리 하시네. 이거 놓으래도요?”
탁.
이은주 팀장은 영사실을 떠날 생각 따윈 하지도 말라며 경고하고선 까톡으로 신종기 대표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덕분에 난 조금은 더 편하게 영사기를 만질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상영관에서 관객들이 착석을 마치고 VIP 시사회에서 관객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무대 인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맨 앞 열에는 <지리산>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앉았고 바로 뒷 열에 내 소중한 정실모 멤버들이 앉아 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소개하자 박선재 감독이 일어나 마이크를 잡는다.
한때 천재 감독이라 불리던 CK 조재경 감독에게 짓밟힐 뻔했던 그는 한껏 당당한 표정으로 기자들과 관람객 앞에 서게 되었다.
-‘지리산’의 연출을 맡은 박선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박선재 감독의 목소리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내 가슴도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시사회의 중단을 막은 덕에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고 지켜냈기 때문이다.
수고했다 정윤호.
오늘은 날 그렇게 칭찬해주고 싶었다.
이후 난 안절부절못하는 최현택 영사기사를 무시한 채 상영관에서 진행되는 VIP 시사회 무대 인사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 * *
달칵.
영사실의 문이 열리더니 직원 한 명이 뛰어 들어온다.
현재 시각 8시 27분.
예상보다 2분이 늦은 시각이다.
“헉헉. 팀장님. 여기요.”
직원 한 명이 VIP 시사회용 파일이 담긴 USB를 내민다.
“고마워. 암호는 원래 쓰던 거지?”
“아 아뇨. 그거에다가 _VIP를 더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알았어. 수고.”
이은주 팀장이 USB를 받은 다음 내게 내민다.
난 USB를 받은 다음 디지털 영사기의 후면 슬롯으로 단번에 꽂았다.
달칵.
이어서 난 디지털 영사기를 컨트롤하는 컴퓨터 쪽으로 향했다.
컴퓨터 앞에는 최현택 영사기사가 앉은 상태였기에 비켜 달라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드르르~
컴퓨터 테이블에 놓인 최현택 영사기사의 폰에서 진동이 울린다.
그런데 순간 폰 액정에 뜬 발신자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발신자 : 물주]
물주?
그 순간 난 반사적으로 폰을 쥐었다.
류신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덥석.
최현택 영사기사가 놀라서 외친다.
“야! 왜 남의 폰을 만져!”
최현택 영사기사가 과한 반응을 보였기에 확신이 든다.
순간 난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으며 녹음 버튼을 눌렀다.
-최 기사. 약속한 거 알지? 1분 정도 지났을 때 영사기 손대기로 한 거?
류신의 목소리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굳이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다.
고개를 돌려보자 최현택 기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다.
반면 이은주 팀장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고.
-뭐야? 왜 대답이 없어?
난 폰에서 나오는 류신의 목소리에 답했다.
“이야~ 설마 영사기사에게 손을 써 뒀을 줄은 몰랐습니다. 협력 사업을 하자 하고서는 뒤통수를 칠 생각이셨습니까?
-······.
뚜우~~
전화가 끊긴다.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그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린다.
그와 동시에 이은주 팀장이 폰을 들고 전화를 건다.
“어. 난데 지금 LT 시네마에 있는 경호팀 2명 1관 영사실로 보내줘. 빨리! 체포 대상은 최현택 영사기사. 화연 쪽으로부터 사주를 받은 다음 오늘 시사회를 망치려고 했어.”
그때였다.
최현택 영사기사가 벌떡 일어나더니 도망치려 한다.
우당탕!
그가 앉았던 의자가 넘어진다.
난 그 즉시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최현택 영사기사는 다짜고짜 주먹을 휘두른다.
“비켜! 이 새X!”
50대의 아저씨가 휘두르는 느린 주먹에 내가 맞을 리 있나.
느린 주먹을 보고 고개를 살짝 숙였더니 그의 주먹이 내 머리 위를 스친다.
부웅.
화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아버지뻘인 그를 때릴 순 없었다.
대신에 난 그의 옆으로 돌아간 다음 허리를 감싸 안고 들어 올려 버렸다.
“끄윽! 놔! 이거 안 놔?”
그를 달랑 들어 올리고선 허리를 꽉 하고 죄었다.
최현택 영사기사가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며 바둥바둥 발버둥을 친다.
“끄으으윽······.”
그때였다.
이은주 팀장이 달랑 들린 최현택 영사기사의 앞으로 오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한다.
“어떻게 당신이······ 어떻게 우리 LT를 배신할 수가 있어요! 회사가 얼마나 당신을 배려해 줬는데요!”
“쥐 쥐꼬리만 한 월급을 주고서 배려는 무슨······.”
“연봉 6천만 원이 쥐꼬리라고요? 수당 합치면 8천만 원을 받아 가면서요? 대체 어떻게 그 돈이 쥐꼬리예요?”
“나랑 같이 입사한 녀석들은 그보다 훨씬 더 받잖아!”
“장난해요? 직군이 다르잖아요! 그리고 그게 그렇게 불만이면 왜 안 나가셨어요? 최 기사님도 여기만큼 연봉을 주는 데가 없어서 안 나간 거잖아요. 게다가 디지털 영사기로 바뀌어서 그쪽 같은 기술자가 필요 없는데 회사에서 왜 해고를 안 한 지 알고는 있어요?”
“내 내가 어떻게 알아?”
“대표님 때문에요! 그래도 그쪽이 LT 시네마 삼성에서 가장 오래 계신 분이라서 대표님께서 배려해 주라고 하셔서 그래요. 그뿐인 줄 알아요? 연봉은 아니더라도 대우는 연차에 맞춰서 해주라고 했어요. 그래서 나조차 그쪽 앞에서는 양보해 왔던 거예요. 알긴 해요?”
영사기사로서는 상당한 연봉과 각종 복지와 대접을 받았는데도 같은 회사에 있는 다른 전문직 직원들을 보고 질투를 하고 있었다.
그 감정 자체야 얼마든지 납득할 수 있지만 류신과 손을 잡은 건 용서할 수 없는 죄였다.
그건 배신이었으니까.
그때였다.
벌컥.
문이 열리고 경호원 2명이 나타난다.
이은주 팀장이 치가 떨린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빨리 이 인간 데리고 가. 오늘 시사회를 박살 내려고 한 인간이니까 사정 봐주지 말고 뒤를 탈탈 털고.”
“예. 팀장님.”
그제야 난 최현택 영사기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순간 경호원 두 명이 즉각 양옆으로 달려와 최현택의 팔짱을 낀다.
“이 이거 놔!”
경호원 두 사람은 눈도 끔뻑하지 않고 영사실에서 최현택 영사기사를 달랑 들어 사라져 버렸다.
쿵.
영사실의 문이 닫힌다.
현재 시각 오후 8시 29분.
유리창 아래로 보이는 상영관에서는 배우들의 인사가 모두 끝나고 다들 착석하고 있다.
이제는 <지리산>을 상영할 시간이 되었다.
치지직.
테이블 위에 있는 무전기에서 무전이 들려온다.
-영사실. 준비됐습니까? 오버.
상영관에 내려가 있는 LT 엔터 직원이 보내온 무전이다.
이은주 팀장이 컴퓨터 위에 있는 무전기를 잡는다.
“잠깐만 기다려달라 오버.”
이은주 팀장이 무전을 치고 날 쳐다본다.
“정 실장님. 진짜 하실 수 있어요?”
난 컴퓨터 앞에 앉으며 말했다.
“파일락 비밀번호부터 알려주세요.”
“20210207_LT_SAMS_0X0_VIP 요.”
난 그녀가 부르는 암호를 입력했다.
USB 파일의 락이 풀리면서 실행 가능 상태가 되었다.
난 즉시 DCP 파일 플레이어에 파일을 불러들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팅을 끝낸 난 이은주 팀장에게 말했다.
“준비 끝났습니다. 1분 후에 시작하겠습니다.”
“잠시만요.”
이은주 팀장이 무전을 친다.
“스탠바이 됐어. 1분 뒤에 시작할게.”
-1분. 알겠습니다. 오버.
상영관에서 직원이 말한다.
-자 그러면 이제 모두 착석해 주십시오. 1분 뒤에 상영이 시작되겠습니다.
몇몇 앉지 않은 사람들이 좌석에 앉기 시작한다.
그 시각 난 영사실에 붙어 있는 시계를 보고 있다.
8시 29분 13초 14초······.
재깍재깍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8시 30분이 되었을 때 난 우선 조명 버튼을 눌렀다.
상영관의 조명이 꺼지며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영사실의 조명도 어둑어둑해진다.
그리고는 정확히 1분이 되었을 때 <지리산> VIP 시사회 본 파일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지리산 : 재생 시작]
위이잉~
디지털 영사기가 돌아가며 상영관 스크린에 영상을 쏘아낸다.
[LT 시네마]
LT 시네마의 로고가 먼저 나온 뒤 검은 화면에서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헉.헉.헉.
도망치는 이태풍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쉬익······ 쉬익······ 쉭.
뒤를 쫓는 고재수의 거친 호흡소리가 들려온다.
자극적인 소리로 관심을 끈 순간 <지리산>이라는 타이틀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제야 이은주 팀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후~ 진짜 수고하셨어요.”
나 역시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 팀장님도요. 그런데 최 기사님이랑 류신 쪽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쪽은 저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니까 일단 시사회가 무사히 끝나면 대표님이랑 같이 이야기해 보시죠. 보고는 지금 폰으로 해둘 거예요.”
“예.”
시사회가 상영되자 그제야 나도 두 다리를 뻗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난 영사실에 있는 24인치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24인치 스크린에는 현재 상영되고 있는 <지리산>의 영상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 * *
류신은 전화를 끊은 후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XX. 어떻게 된 거지?”
영사기사에게 일부러 상영을 망치라고 한 걸 사주한 것이 들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심지어 정윤호에게 직접 들켜버릴 줄이야!
졸지에 LT 엔터테인먼트까지도 변명의 여지 없이 적으로 돌리게 생겼다.
그때 자신의 수하 중 한 명이 말한다.
“총괄 비서님. 일단 본국으로 몸을 피하시는 게······.”
순간 류신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다친 팔이 아닌 발로 발차기를 날린다.
퍽.
발에 맞은 수하가 뒤로 쓰러진다.
“등X아! 이렇게 돌아가면 회장님이 용서하실 것 같아?”
파트너를 구하란 지시에도 실패했고 정윤호를 엿 먹이라는 지시도 실행하지 못했다.
이 상태로 돌아가면 장웨이 회장은 류신을 버릴 게 틀림없었다.
“그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류신이 자신의 수하를 노려본다.
“경찰이 찾아오면 네가 했다고 자백해. 너 내 목소리 흉내 낼 수 있잖아. 안 그래?”
“시 실장님······.”
“최고로 비싼 변호사를 사서라도 금방 빼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류신은 자기 부하를 희생양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정윤호가 전화로 직접 목소리를 들었다지만 국적도 다른 데다가 수하가 스스로 증언하면 빠져나갈 길은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약속······ 지켜주십시오.”
“그래. 나오는 대로 돈도 두둑하게 챙겨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내 성격 알지?”
“예.”
어찌 된 것이 손을 쓸 때마다 정윤호를 더 키워주는 꼴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류신의 입술은 바짝바짝 말라만 가고 있었다.
정윤호.
대체 넌 뭐냐?
류신의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만이 가득 차고 있었다.
* * *
<지리산>의 시사회 영상은 시작부터 스릴이 넘치는 장면이 이어졌다.
고재수가 맡은 사이코패스 살인마 오주현은 등산 동아리의 멤버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냥해댔는데 그때마다 관객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18세 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으면 관객 동원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15세 관람가로 편집하며 영상을 많이 덜어냈지만 고재수가 연기한 섬뜩한 분위기만은 제대로 살아 있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예고편에서 고재수가 꿩을 날것으로 먹는 임팩트 장면은 적나라하게 담을 수가 있었다.
-으드득. 으드득.
등을 돌린 고재수에게 카메라가 다가가자 살아있는 생물의 뼈를 씹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마침내 생살을 이빨로 씹어 뜯는 피비린내 나는 장면이 스크린에 나오고 있었다.
관객들은 일제히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고재수의 존재감이 관객들의 뇌리에 틀어박히는 순간이었다.
이후 마지막 살아남은 주인공 역의 이태풍이 딸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고재수와 함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덕분에 무려 러닝타임 1분 40분 동안 잠시도 지루한 시간은 없었다.
지이잉~
디지털 영사기가 후끈 달아올라 열기를 뿜어낸다.
그와 동시에 <지리산> 시사회의 스크린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감독 : 박선재]
단 한 줄의 이력을 위해 박선재 감독의 달려온 시간이 스쳐 지나간다.
[강대현 역 : 이태풍]
[오명진 역 : 고재수]
[강영아 역 : 강시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배우들마다 필모에 남을 한 줄 이력이 생겨나고 있었다.
‘다들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였다.
엔딩 크레딧에는 내 이름도 올라가 있었다.
‘어?’
[스태프]
······
[캐스팅 디렉터 : 정윤호]
박선재 감독과 안유주 제작실장은 날 잊지 않고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
두 사람의 섬세한 마음 씀씀이에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각종 사건 사고가 있었던 <지리산>은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드디어 첫발을 떼고 있었다.
그때 무전이 들려온다.
-치직······ 영사실. 라이트 ON 부탁드립니다.
난 그 말을 듣는 즉시 조명 스위치를 ON으로 올렸다.
상영관에 불이 들어오면서 영사실도 밝아진다.
그와 동시에 시사회장에 온 팬과 기자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기립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
-와! 대박!
-미친. 고재수 씨 장난 아닌데?
-와 나 진짜 살인자인 줄 알았어.
-이 정도면 악역 연기에 한 획을 그은 거 아냐?
-근데 진짜 살벌하더라. 내 팔뚝 좀 봐. 닭살 돋은 거.
-뭐야 벌써 끝이야?
-이태풍은 괜히 이태풍이 아니네.
-아까 봤어? 이태풍 딸 지키는 아빠 얼굴 할 때? 나 완전 심쿵 했잖아.
-아역도 연기 진짜 잘하더라.
관객들은 배우들의 연기를 끊임없이 칭찬하고 있었다.
이은주 팀장 역시도 발갛게 상기된 표정으로 말한다.
“우리 영화. 성공하겠는데요?”
“저도 그럴 것 같습니다.”
이제껏 본 시사회 반응 중에서 최고의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치이익.
-정 실장. 거기 있나?
무전기에서 직원이 아닌 신종기 대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예. 대표님.”
-지금 잠시 좀 보지. 직원 보낼 테니까 이은주 팀장이랑 같이 당장 내려와.
“아 혹시 류신 때문이시라면······.”
-아냐 그건 나중에 처리해도 되고 이게 더 급해. 영사실에 사람 보냈으니까 둘 다 바로 밑으로 내려와 봐.
류신 때문이 아니라면 대체 왜 부르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