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1화
611. 전속 계약 해지 2
TNT 엔터의 회의실.
유강석 대표는 내가 성규환을 빼내려고 태업을 지시했다며 길길이 날뛴다.
그러면서 무려 50억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물릴 거라고 한다.
하지만 난 눈도 끔뻑하지 않았다.
유강석 대표가 매니저에게 성규환의 차량 블랙박스를 뒤지게 한 일 말고도 그가 저지른 대형 사건 하나가 내 다이어리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1년 5월 3일]
-PM 10:00 <연예계 방방곡곡> T모 사. 연예인 P 씨의 복제폰으로 문자와 까톡 메시지와 전화 검열.
회귀 전.
TNT 엔터의 배우 박인정은 시청률 19%를 달성한 <섬마을 낚시꾼>이란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 역을 맡아 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문제는 그녀가 인기를 얻은 시점이 TNT 엔터와 재계약을 3개월 남았을 때였다.
유강석 대표는 그녀가 재계약을 하지 않을까 봐 걱정된 나머지 그녀의 폰을 몰래 복제했다.
하지만 박인정은 계약 기간이 끝나자마자 하나 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해 버린다.
그러나 그때부터 박인정에게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박인정이 하려는 작품과 광고를 모조리 TNT 엔터 연예인들에게 가로채기 당해버린 것이다.
그러자 이상하다고 생각한 하나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박인정의 폰을 전문 업체에 맡겨 조사했다.
그 결과 박인정의 폰이 복제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이후 TNT 엔터를 고소하게 된다.
당시에 유강석 대표는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미루고 빠져나갔지만 그 일이 계기가 되어 TNT 엔터가 무너지게 된다.
복제폰의 사건이 기사를 타자 TNT 엔터의 남은 연예인은 재계약을 꺼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유강석 대표는 연예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평소보다 계약금을 2배로 지급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점점 회사의 돈이 말라갔다.
결국 TNT 엔터는 돌파구로 무리한 인수 합병을 진행했고 자금난에 시달리다 결국엔 부도에 이르게 된다.
나는 그 모든 일의 시발점이 되는 복제폰 사건을 이번 기회에 폭로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 속내를 모른 채 유강석 대표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그의 표정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 자식 봐라? 실실 웃어? 왜? 내 말이 우습냐?”
난 애써 웃음을 멈추고 날 고소하겠다는 그에게 말했다.
“우습다기보다는 어처구니가 없어서요.”
“뭐?”
“그렇잖습니까? 설령 저와 성규환 배우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더라도 제가 태업을 지시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려고 그러는 겁니까?”
유강석 대표가 코웃음을 친다.
“그거야 다 아는 수가 있지.”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유강석 대표의 얼굴이 너무도 당당했다.
단지 블러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분명 성규환은 나와 나눈 대화를 일절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했었는데 말이다.
그 순간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회귀 전 TNT 엔터가 복제폰 사건으로 탈탈 털렸을 때 복제된 폰이 발견되었던 건 박인정 한 명뿐이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한 명이 아니었고 만약 이번 일 때문에 성규환의 폰도 복제를 했다면?
그렇다면 저렇게 당당한 이유가 납득간다.
복제폰으로 도청이라도 했다면 나와 성규환이 나눈 대화를 알 수가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난 그 즉시 원래 세웠던 계획을 폐기했다.
박인정처럼 성규환의 폰이 복제가 되었다면 그걸로 유강석 대표를 코너로 모는 게 더 간단하기 때문이다.
다만 확인은 필요한 터라 기습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왜요? 혹시 성규환 배우님의 폰을 복제라도 했습니까? 통화 녹음이랑 도청이라도 하려고요?”
순간 유강석 대표의 표정이 살짝 흔들린다.
“그 그런 방법이 아니라도 다 아는 수가 있어!”
목소리가 떨리는 걸 보니 내 생각이 맞은 모양이다.
게다가 곁에 앉은 성규환의 매니저인 오상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게 보인다.
황인준 법무팀장의 경우에는 나와 시선을 피하려 하고 있고.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상대가 증거를 인멸하지 못하게 전격전을 펼쳐야 했다.
난 그 즉시 함께 온 최운재 변호사를 쳐다봤다.
“최 변호사님. 성규환 배우님의 폰이 복제가 되었는지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가능하십니까?”
최운재 변호사에겐 TNT 엔터에서 박인정의 폰을 복제했다는 걸 미리 이야기해 놓았었다.
그러다 보니 그도 성규환의 폰이 복제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걸 대번에 알아차렸다.
“뭐 들어보니 그래야 할 것 같군요.”
그 순간 최운재 변호사가 함께 온 강형범 변호사에게 말한다.
“강 변. 규환 씨 폰을 받아서 한번 파 봐. 도청 복제 녹음. 뭐든 간에 나오는 대로 나한테 연락하고.”
“예. 대표님.”
강형범 변호사가 일어나선 맞은 편에 앉은 성규환에게 다가간다.
죽을상을 하고 있던 성규환이 안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건넨다.
“여기요.”
유강석 대표가 버럭 외친다.
“야! 왜 정 실장 변호사가 규환이 폰을 받아 가? 이것 봐봐. 딱 걸렸어 니들!”
최운재 변호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누가 정 실장의 변호사라는 겁니까?”
“예?”
“저희 법무법인 청성은 처음부터 성규환 씨를 변호하려고 온 겁니다만?”
“지 지금 뭐라 했습니까?”
유강석 대표의 얼굴이 당황으로 일그러진다.
내 곁에 앉아 있다 보니 두 사람이 내 변호사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유강석 대표가 놀랄 일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제껏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린 채 웅크리고 있던 성규환이 어깨를 쭉 펴고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후우. 연기를 며칠이나 해야 할 줄 알았네.”
유강석 대표의 눈이 큼지막하게 변한다.
“야! 성규환! 너 뭐야?”
“뭐긴 뭡니까? TNT 엔터에서 절 밟겠다고 협박하는데 제가 가만히 밟혀 줄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50억 소송으로 패닉에 빠졌던 성규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깨를 쭉 펴고 당당한 자세를 취한다.
마치 유주얼 서스펙트의 한 장면 같이 연기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과연 2년 뒤 S급 배우란 평을 듣는 배우다웠다.
성규환은 당당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최운재 변호사의 곁으로 이동해 버렸다.
갑자기 상황이 돌변하자 유강석 대표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규환의 매니저의 오상준과 황인준 법무팀장은 입을 쩍하고 벌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강형범 변호사가 폰을 들고 회의실 밖으로 나가려 하고 있었다.
그때 유강석 대표가 외친다.
“자 잠깐!! 오 매니저! 막아!”
멍하니 있던 성규환의 매니저 오상준이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는 회의실 문 앞으로 뛰어가 강형범 변호사의 앞을 막았다.
유강석 대표가 마른침을 삼키고 나와 성규환에게 말한다.
“정 실장. 규환아. 우리 셋이서 좀 이야기를 할 수 없을까?”
난 딱 잘라 말했다.
“그냥 여기서 이야기하시죠?”
유강석 대표가 부들부들 떨더니 어렵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 그래. 일단 규환이는 여 연무에 출연시켜줄게. 그리고 피해보상도 좀 해주고. 그리고 정 실장한테는······ 그래 내가 따로 사례를 하지. 고소도 안 하고. 그니까 이쯤 하자. 응? 소란 벌어지면 그쪽도 좋을 건 없잖아? 우리도 그냥은 당하고 있지 않을 텐데 피차 험한 꼴은 안 보는 게 좋지 않아?”
여기까지 와서 ‘비긴 걸로 하지 않을래?’라니.
터무니없는 소리다.
지금부터 TNT 엔터가 무너지는 걸 구경할 차례인데 말이다.
“전 험한 꼴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성규환 역시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내 차를 뒤지고 내 뒤를 캐놓고선 이제 와서 뭐라고요? 됐습니다. 끝까지 가 봅시다!”
성규환이 최운재 변호사를 쳐다본다.
“최 변호사님. 저 절대로 합의는 안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블랙박스 건만으로도 고소 가능하니 그건 진행하고 핸드폰 조사 결과를 보고 추가 고소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아 더불어 전속 계약 해지 소송도 진행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도저히 꼬인 실타래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유강석 대표의 얼굴은 점점 사색으로 물든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이제껏 입을 닫고 있던 한유식 대표가 유강석 대표를 노려보며 말한다.
“아 그리고 자네가 절연한 내 자식들에게 ‘미리내’ 주식의 지분에 관해 알려줬다면서?”
“그 그건······.”
“그 일. 난 절대로 잊지 않을 걸세. 각오하게.”
한유식 대표는 여전히 KBC에 수많은 인맥이 있었다.
비록 나태환 CP가 이사로 승격해서 힘을 가진다고 해도 그보다 높은 오한국 대표이사가 한유식 대표의 라인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자 유강석 대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자 저흰 이만 일어나죠. 우리 유 대표님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실 것 같습니다.”
이후 난 문을 나서기 전 유강석 대표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러게······ 왜 절 건드셨습니까? 예?”
유강석 대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후 우리 일행은 TNT 엔터를 나왔다.
최운재 변호사는 전속 계약 해지와 복제폰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성규환과 함께 법무법인으로 향했다.
그리고 난 즉시 최소혜 기자와 장문기 기자에게 이 사실을 제보했다.
이후 또 다른 복제 폰 피해자인 박인정에게 알리기 위해 즉시 MBS로 차를 몰았다.
재깍재깍.
TNT 엔터를 부도낼 시한폭탄의 타이머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 * *
황인준 법무팀장이 뒤처리를 위해 자리를 비운 터라 회의실에는 유강석과 전 성규환의 매니저 오상준만이 남아있다.
유강석이 아찔한 기분에 의자에 축 늘어진 채 기대고 있다.
아침까지만 해도 성규환이 싹싹 빌면서 용서해 달라고 했기에 정윤호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복제폰으로 도청한 음성도 있었기에 그를 흔들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그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심지어 상대는 성규환의 폰을 복제했다는 걸 알아차려 버렸다.
그때 곁에 있던 오상준이 말한다.
“대 대표님. 이러고 있을 게 아니잖습니까? 애들 폰 복제한 것부터 수거하셔야죠.”
유강석이 폰을 복제한 배우는 TNT 엔터 전체에서 단 네 명이다.
현재 <정희왕후>에서 여주인공인 소이영.
막대한 돈을 주고 영입한 <화란전>의 민규리.
최근 재계약을 앞둔 박인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무(煙霧)>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한 성규환이다.
그런데 만에 하나 성규환이 기사라도 내게 되면 나머지 배우들도 폰을 자체적으로 검사할 가능성이 있었다.
유강석이 정신을 차리고 말한다.
“그 그래. 기사 내기 전에 수거해야지.”
유강석이 급히 소이영과 민규리를 담당하고 있는 장삼덕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 실장. 지금 어디야?”
-예. 대표님. 지금 군산에서 소이영이랑 같이 있습니다.
“장 실장. 소이영이랑 민규리랑 폰에 심어 놓은 ‘그거’ 당장 없애! 당장!”
-예?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성규환 그놈 폰에도 ‘그거’ 하나 심었는데 놈이 알아챘어. 혹시 기사 나올지 모르니까 빨리 없애라고!”
-아 예. 이따가 이 씬 촬영만 끝나고······.
“이따가 말고 지금! 폰을 차로 갈아버리든 바다에 빠트리든 당장 하라고!”
-알겠습니다. 그러면 민규리 쪽은 최 팀장한테 말해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달칵.
전화를 끊은 유강석 대표는 숨을 헐떡이며 다음으로 박인정의 매니저 오한중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뭐야 이 자식. 왜 전화를 안 받아!”
그때였다.
웅성웅성.
회의실 밖에서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뭐야? 또?”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이 떠들어 대는 소리였다.
“밖에 나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봐!”
“예. 대표님.”
오상준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회의실의 문이 벌컥 열린다.
조금 전 나갔던 황인준 법무팀장이 뛰어 들어왔다.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왜? 또 뭔데?”
“기사가 벌써 떴습니다.”
“뭐? 벌써?”
“그리고 지금 회사로 전화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기사 내용이 맞냐고요. 이것 좀 보십시오.”
황인준 법무팀장이 태블릿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속보라며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속보) T 모 엔터 소속 연예인의 블랙박스를 뒤지고 폰 까지 복제! 오늘 밤 녹취록 공개!]
그런데 문제가 심각했다.
“왜······ 왜······ 누군지를 말 안 해?”
성규환의 이름이 나오는 것도 곤란했지만 회사 이름만 덩그러니 나온 기사는 더 심각했다.
이렇게 되면 회사 소속 연예인들 모두의 폰을 복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황인준 법무팀장이 말한다.
“기자들뿐 아니라 소속 연예인들이랑 매니저들도 모두 전화를 걸어오고 있습니다. 자기도 그랬냐고요. 이거······ 어떻게 할까요?”
열린 회의실 문으로 끊임없이 폰 벨소리가 들려온다.
당황한 TNT 엔터 직원들의 해명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마치 전쟁이라도 난 듯한 분위기다.
이걸 대체 어떻게 수습하란 말인가.
유강석은 온몸에서 피가 사라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끝없는 무저갱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윤호의 뒷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게······ 왜 절 건드셨습니까? 예?
그 말대로였다.
대체 왜 정윤호를 건드렸을까 하는 후회가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때였다.
지잉지잉~
유강석 대표의 폰이 울린다.
[발신자 : 오한중]
박인정의 매니저 전화다.
유강석은 애써 정신을 다잡고 전화를 받았다.
“한중아. 그게 말이다······.”
그 순간 평소와는 달리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표님. 우리 인정이 폰도 복제하셨습니까? 예?
“그 그게······.”
-지금 복제된 거 확인하러 가고 있으니까 나오면 저······ 가만 안 있을 겁니다.
대답을 하려 했다.
하지만 유강석은 들고 있던 폰을 털썩 아래로 떨어뜨렸다.
극심한 스트레스 탓에 손에 힘이 빠진 것이다.
TNT 엔터의 미래가 펑 하고 폭발해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순간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연이어 과호흡 증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어? 어? 대표님! 대표님!”
유강석은 그 말을 들으며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 * *
TNT 엔터를 나와 MBS 촬영장에서 박인정을 만났다.
박인정의 매니저 오한중은 회귀 전 하나 엔터테인먼트로 함께 이적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기에 그에게도 오늘 성규환에게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오한중은 즉시 나와 함께 핸드폰 검사 업체에 들렀고 그곳에서 박인정의 폰이 복제되었다는 확답을 들을 수가 있었다.
그러자 박인정은 성규환을 변호해주는 최운재 변호사를 만나 TNT 엔터를 고소해 버렸다.
덕분에 다이어리에 있던 일정도 삭제가 되었다.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1년 5월 3일]
-PM 10:0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연예계 방방곡곡> T모 사. 연예인 P 씨 복제폰으로 문자와 까톡 메시지와 전화 검열.)
그뿐 아니라 최소혜 기자는 TNT 엔터에 관한 기사를 연달아 올리고 있었다.
단 대상이 누군지를 특정하지 않은 채로.
그 탓에 현재 TNT 엔터는 폭탄을 맞은 것처럼 변해있다는 소문을 들을 수가 있었다.
이제부터 TNT 엔터는 쇠락의 길을 걸을 게 분명하다.
TNT 엔터에 내재 된 모든 문제가 터질 것이고 재계약은 곳곳에서 불발이 일어날 테니 말이다.
이젠 ‘미리내’의 회생에 걸림돌은 모두 사라졌고 성규환도 주연 배우로 끌어올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오후 3시였다.
그때 보조석에서 기사를 보던 한유식 대표가 날 보며 묻는다.
“그래도 TNT는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진 않을 걸 세.”
“연예인과 매니저가 신뢰라는 주춧돌을 빼버렸으니 점점 빠르게 무너질 겁니다.”
회귀 전에도 TNT 엔터는 처음엔 버텨내지만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무너져 버린다.
난 그 미래를 알고 있었기에 눈도 끔쩍하지 않았다.
“흠. 알겠네. 그러면 나도 KBC에 있는 모든 인맥을 통해서 자넬 돕지. 그러면 조금 더 빨리 무너져 내리지 않겠나?”
그의 도움이 있으면 조금 빨리 진행될 게 틀림없다.
“늘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무슨 내가 감사하지. 내 자식 놈들을 부추긴 그놈에게 복수할 수 있게 해줬잖나.”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천호동 앞에 도착했다.
골목 입구의 경비 초소 앞에 고급스러운 차 한 대가 서 있다.
경비원들이 뭐라고 하자 차 문을 열고 정장 차림의 사내가 내린다.
그런데 내가 아는 사람이다.
“류신이······ 여긴 왜 왔지?”
왕룽이 한국에 온 그를 찾고 있다고 했는데 이렇게 직접 찾아올 줄이야.
그때였다.
골목에서 정상봉이 몰고 있는 회사 차가 나온다.
링링의 일정 때문에 잠시 집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나가는 모양이다.
경비 초소 앞에 차가 있자 정상봉의 차가 멈춘다.
그런데 그 순간 조수석의 문이 열린다.
단발머리를 흩날리며 검은 정장을 입은 주시시가 달려 나온다.
주시시는 다른 곳도 보지 않고 눈 깜짝할 사이에 류신과의 거리를 좁혀 간다.
탁탁탁.
달려가던 주시시가 갑자기 중국어로 욕을 내뱉는다.
“차오!”
순간 경비원에게 이야기하던 류신이 고개를 돌린다.
그 순간 주시시의 날카로운 발차기가 류신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