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5화
605. VVIP 패션쇼 1
서윤지 매니저가 태블릿으로 보여준 전자 서류에는 내게 막대한 금액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후원 계약서]
-연화선은 서희주가 활동하게 될 가칭 ‘글로벌 아이돌 걸그룹’에 후원을 한다.
-후원금의 액수는 3년간 최대 50억으로 정하나 별도의 합의에 따라 늘어날 수 있다.
-후원금 사용에 관한 모든 결정권은 ‘굴렁쇠 엔터테인먼트의 정윤호’에게 위임을 한다.
······
서희주의 엄마이자 한국 무용 인간문화재인 연화선 선생님은 강남에 땅과 대형 빌딩들을 소유하고 있는 거부였다.
그런 그녀가 자기 딸이 활동하게 될 걸그룹의 활동비를 후원하겠다고 하고 있었다.
왕룽에 이어서 또 한 명의 막강한 후원자가 생긴 셈이다.
그러나 회사가 아니라 소속 스타의 부모에게 후원받게 되면 차후에 문제가 생길 여지도 있다.
가령 후원해 줬으니 자식을 센터로 세워달라는 등 방송 출연 빈도를 늘려달라는 등 말이다.
연화선 선생님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럴 확률은 낮았지만 차후 추가될 멤버들에게 오해를 살 수 있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의 호의는 감사드리지만 추가 활동비는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서윤지 매니저가 잔잔한 미소를 짓는다.
“혹시 운영에 간섭할까 봐 걱정하시는 거라면 여기 맨 아래 조항을 보세요.”
서희주가 태블릿의 전자 서류 맨 아래를 가리킨다.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데뷔 후 서희주가 부상이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무대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해도 후원액이나 일정에는 변경이 없다.
‘정윤호’가 요청한 금액에 대해선 ‘연화선’은 용도와 사용처를 묻지 않도록 한다.
“이건 희주를 잘 봐달라는 뇌물이 아니라 정 실장님이 일하시기 편하도록 선생님이 후원하는 돈이에요.”
순간 말이 턱하고 막혔다.
이건 그냥 내게 주겠다는 거나 다름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해 이렇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필요도 하지 않는 돈을 받을 순 없었다.
“선생님께 감사하지만 괜찮다고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선생님께서 완쾌하는 것이 제게는 가장 큰 기쁨이라고 전해주시고요.”
재차 거절하자 서윤지 매니저가 아쉬운 표정으로 한발 물러섰다.
“알겠어요. 하지만 필요하면 부담없이 말씀해주세요. 계약서에 사인하는 즉시 사용하실 수 있는 돈이에요.”
회귀 전에는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것이라며 주변에 마음을 열지 않고 외롭게 지냈다.
하지만 회귀한 이후 주변을 챙기면서 사람들을 돕고 살기 시작하자 회귀 전보다 훨씬 많은 돈과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다시 한번 내 두 번째 삶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서윤지 매니저에게 기분 좋은 제안을 거절했을 때였다.
지잉.
4층의 자동문이 열린다.
회사 구경을 갔던 링링과 릴리 도란희와 주시시가 다 같이 들어왔다.
순간 링링은 서희주를 발견하고선 총총걸음으로 뛰어왔다.
통통 튀는 듯한 걸음걸이 때문에 포니테일 머리가 위아래로 찰랑거리며 흔들린다.
링링이 반갑게 다가오자 3살 차이 언니인 서희주가 먼저 용기를 내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니······ 하오?”
순간 링링이 씩하고 웃으며 맑고 쾌활한 목소리로 말한다.
“안녕하세요! 희주 언니!”
링링의 입에서 능숙한 한국어가 튀어나온다.
서희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후~ 다행이다. 진짜로 한국말 잘하네요?”
“네~ 공부 열심히 했어요.”
“말이 통해 다행이에요. 난 한국말로 노래만 잘하는 줄 알았어요.”
“드라마로 많이 배웠어요. 그래도 부족한 게 많으니까 언니가 많이 알려주세요~”
서희주에게 링링의 한국어 실력을 말해줬지만 이 정도인지 몰랐다는 듯하다.
그때 이동민 실장이 말한다.
“희주야. 앞으로도 너무 걱정하지 마. 글로벌 아이돌 프로젝트 선발 조건이 한국어 가능이니까.”
수년간 준비해서 키울 거라면 언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앞으로 4개월 안에 오디션을 한 뒤 한국에서 데뷔하고 메인 활동을 해야 했기에 한국어는 필수였다.
“대신 희주 넌 중국어랑 일본어를 공부해야 해. 영어도.”
서희주가 슬금슬금 눈치를 본다.
“하 하고 있어요.”
그때 링링이 서희주의 팔짱을 끼며 말한다.
“언니. 제가 다 가르쳐 드릴게요. 저 일본어도 잘해요!”
“고마워요. 앞으로 잘 부탁할게요.”
“예. 근데 언니 말 편하게 하세요. 저보다 언니잖아요.”
“그 그럴까?”
“예.”
링링이 서희주에게 달라붙어서 눈웃음을 지으며 애교를 부린다.
그 모습을 본 도란희와 은지유 팀장 역시 작게 한숨을 내쉰다.
두 사람을 어떻게 친하게 만들지를 따로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성 바른 아이들을 영입한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우린 글로벌 아이돌 프로젝트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회의를 시작했다.
먼저 이동민 실장이 서희주와 링링에게 간단히 오디션에 관해 이야기해준다.
“일단 링링과 희주는 이미 발탁되었으니까 이제부터는 나머지 멤버들을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오디션으로 선발할 거야. 지금 안 이사님이 SBC에서 오디션 일정 잡고 계시는데 각국에서 지역 오디션은 이달부터 시작해. 첫 방송은 다음 달부터 진행될 거고.”
링링이 손을 번쩍 든다.
“몇 명이나 뽑아요?”
“나라별로 한 명은 뽑아야 하니까 최소 3명은 더 뽑겠지? 하지만 실력에 따라서 더 늘어날 수도 있어.”
최종적으로 5인조에서 9인조 사이에서 인원이 결정 날 거란 말에 링링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서희주가 조심스레 묻는다.
“혹시 그룹명도 정해졌어요?”
“아직 최종 확정된 건 아닌데 우선 거론된 것들은 아프로디테 GI.GIRLS 퀸즈파티 버블티 판타지아스 아제로스 같은 것들인데······.”
순간 서희주가 깜짝 놀라 말한다.
“아 아제로스는 좀 아니지 않을까요?”
“걱정하지 마. 란희가 낸 아이디어인데 이미 가수 2실 매니저들 전부 다 반대했어.”
서희주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하아~ 다행이다.”
그때 도란희가 두 사람을 설득하고야 말겠다는 강렬한 눈빛으로 서희주와 링링을 쳐다본다.
“얘들아. 아제로스 좋지 않아? 지금은 아이돌이 수도 없이 많은 시대잖아. 격전의 전장에 정면으로 뛰어 들어가서 적들을 무릎 꿇리자는 의미를 담은 이름인데? 다시 한번 생각해봐! 의미를 듣고 나니까 좀 끌리는 거 같지 않아?”
서희주와 링링이 슬며시 시선을 회피한다.
딱 봐도 싫다는 표정이다.
이동민 실장이 피식 웃는다.
“란희야. 애들 이상한 말로 낚으려고 하지 마!”
도란희가 입술을 삐죽거린다.
“이상하다뇨. 전 그 말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데요?”
이동민 실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서희주와 링링에게 말한다.
“란희 말은 무시하고. 하여간 그 뒤로 많은 이름이 나왔는데 유력한 건 I.O.A.(Idol of Asia)야. 아시아 최고의 아이돌이 되겠다는 의미로.”
글로벌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만 활동할 아이들이다.
그래서 I.O.A라는 이름이 가장 유력한 후보에 올렸다.
그때였다.
서희주와 링링이 미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진짜~ 괜찮은 거 같아요! 짱짱!”
링링이 쌍엄지까지 들어가며 격렬하게 찬성 의사를 밝힌다.
“전 아제로스만 아니면 다 좋아요!”
서희주는 아예 만세를 부를 분위기다.
두 사람의 반응을 보자 이동민 실장이 키득거리며 웃는다.
“우리 란희가 큰일 했네.”
I.O.A란 이름이 꽤 좋았지만 이렇게까지 환영을 받은 건 도란희의 덕분이다.
공공의 적이 생기면 내부는 결속한다더니.
‘도란희. 너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도란희를 힐끗 쳐다봤다.
그런데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다.
미안 내 착각이다.
도란희는 계획이 없었다.
이동민 실장은 걸그룹 이름이 정해지자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안 이사님한테도 너희들의 의견을 전할게.”
이동민 실장이 SBC에 나가 있는 안예음 이사에게 I.O.A가 좋을 거 같다고 까톡을 보냈다.
이후 계속해 회의하던 도중 안예음 이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 : 안예음 이사]
전화를 받자 안예음 이사의 목소리가 들떠 있다.
-정 실장. 지금 다 같이 있어?
“예. 회의실에 다 모여 있습니다. 스피커폰으로 틀겠습니다.”
스피커폰을 틀자 안예음 이사가 곧장 방송 스케줄을 말해주기 시작한다.
-2월 14일부터 면접을 시작할 거야. 첫 방송일은 3월 14일로 잡혔고.
한국부터 시작해서 일본 중국으로 지역 오디션을 진행하는데 각각 2주씩 진행될 거라고 한다.
한국에선 2월 14일부터 2월 28일까지 일본은 2월 21일부터 3월 7일까지 그리고 중국은 2월 28일부터 3월 14일까지라고.
그렇게 3개국에서 지역 오디션을 끝낸 이후 첫 방송은 화이트데이인 3월 14일 밤으로 잡았다고 한다.
“앞으로 2주인데 일정을 너무 타이트하게 잡은 거 아닙니까?”
-이미 준비는 많이 해뒀잖아. 그리고 아이돌 오디션 할 애들은 세 나라에도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어. 또 SBC에서 오디션 알리는 데 제대로 홍보비를 쓸 거래. 걱정 안 해도 돼.
“알겠습니다.”
-그래. 지영현 PD가 전해달래. 희주랑 링링도 2주 뒤부터 지역 오디션에도 참석해야 하니까 준비 바로 시키라고.
내가 KBC에서 빼 온 지영현 PD는 SBC로 가서 <프로젝트 I.O.A>의 메인 PD가 되어 있었다.
“알겠습니다. 오늘부터 샵이랑 피부과부터 돌리겠습니다.”
-그리고 방송명은 <프로젝트 I.O.A>로 정해졌어. 어차피 우리 걸그룹이 될 멤버를 뽑는 방송이니까 그룹 이름을 알리는 게 좋겠다 싶어서.
“괜찮은데요?”
-오케이. 아 그리고 지금 SBC 예능국장이랑 지영현 PD랑 같이 이야기 중인데 아이디어 추가할 거 있어?
그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난 즉시 곁에 있는 왕룽에게 물었다.
“왕룽. 혹시 전용기 좀 빌려줄 수 있어?”
왕룽은 상하이 뉴미디어 그룹이 소유한 전용기 중 하나를 타고 들어왔다.
한국 중국 일본을 돌아다닐 아이들이었기에 오디션 방송 때 전용기를 사용하면 딱 일 듯했다.
방송이라는 건 그럴싸해 보일수록 시청률이 높아지니까 말이다.
왕룽이 씨익 웃는다.
“얼마든지. 요청만 해. 바로 지원해줄게.”
“오케이.”
난 즉시 안예음 이사에게 아이디어를 말했다.
“전용기를 지원받을 수 있으니까 프로그램 기획 때 사용하는 거 어떻습니까?”
그 순간 곁에 있던 지영현 PD의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정 실장님. 정말입니까?
“당연하죠.”
지영현 PD가 어찌나 신이 났는지 과거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 불렀던 랩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세상! 세상! 빌어먹을 세상! ~ 바꿔! 바꿔! 내가 모두 바꿔!~』
라임이 살아있는 지영현 PD의 저세상 텐션 랩에 안예음 이사가 키득거리며 말한다.
-지 PD가 아주 신이 났네. 뭘 바꿀진 모르지만 기대해도 될 거 같아. 하여간 그러면 나 기획 회의 좀 더 하고 들어갈게.
“예. 이사님.”
전화를 끊고 난 뒤 회의실에 있는 서희주와 링링을 쳐다봤다.
“두 사람. 잘 할 수 있지?”
서희주와 링링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프로젝트 I.O.A>가 시작하기까지 이제 2주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 이제 시작이니까 다들 파이팅하자!”
서희주와 링링이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더니 서로 왼손과 오른손을 머리 위로 올린 뒤 하트모양을 만든다.
“위 아더 아시아 I.O.A입니다!”
두 사람이 즉석에서 만든 구호를 외친다.
“그래. 당분간은 그걸로 가자.”
“괜찮네.”
서희주와 링링이 꺅꺅대며 발을 구르기 시작한다.
“자 그러면 안무 담당인 박선녀 선생님을 뵈러 갈까?”
“예!”
드르륵.
서희주와 링링이 엉덩이를 빼고 의자에서 일어난다.
나 역시 그 뒤를 따라가던 도중 이동민 실장이 조심스레 물어온다.
“정 실장.”
“예?”
“혹시 이번에는 아는 애들 없어? 응? 있으면 오디션에 참여하라고 해.”
난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있습니다.”
내 기억 속에는 꼭 추천하고 싶은 아이들이 있었다.
회귀 전 오디션으로 두각을 드러냈지만 소속사를 잘못 만나 묻혀버린 아이들이 잔뜩이기 때문이다.
난 그녀들이 I.O.A로 데뷔할 수 있게 도와줄 생각이었다.
“누군데?”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이동민 실장이 씨익 웃는다.
“기대되는데?”
나 역시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요.”
아시아 최고의 아이돌이 될 I.O.A의 멤버를 찾는 여정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 * *
링링과 서희주를 가수 2실 매니저들과 인사시킨 난 숙소로 사용할 DH 빌라부터 보여줬다.
이후 박선녀 안무가에게 인사를 시킨 뒤 천호동의 집으로 향했다.
지난번 한국에 왔을 때도 우리 집에서 지낸 터라 정인지 아주머니와 링링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친 뒤 링링과 주시시는 미소와 놀게 놓아둔 뒤 왕룽과 릴리만을 데리고 대천백화점 본점으로 향했다.
오늘 밤 10시.
유진이가 대천백화점 본점 최상층 플로어에서 진행되는 L.M.L 블랙라벨 패션쇼의 메인 뮤즈로 서기 때문이었다.
대천백화점 본점에 있는 지하 주차장 2층에 차를 대고 내리자 밤 9시 30분이다.
난 차에서 내려 직원에게 키를 맡긴 뒤 왕룽과 릴리와 함께 직원을 따라 지하 2층 주차장에 붙어 있는 VVIP 전용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유진이는 양소리와 이미리와 함께 이미 2시간 전에 와서 최상층에서 준비하고 있었기에 쇼를 시작하기 전에 잠깐 들여다볼 생각이다.
그때 엘리베이터 앞에 있던 직원들이 우릴 알아보고 반겨 준다.
“어서 오세요. 정 실장님. 왕룽님과 릴리님.”
초청 상대가 VVIP다 보니 본사에서 가장 엘리트들만 있다는 비서실 직원들이 안내하고 있었다.
“예. 안녕하세요. 고생 많으시네요.”
“별말씀을요?”
그런데 그때였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 끝에서 비서실 직원들과 똑같은 복장을 한 채 머리를 말아 올린 20대의 미녀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런데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정 실장님~ 이제 오세요?”
“하윤 씨가 여길 어떻게······.”
이하윤.
그녀는 김애련 부회장의 장녀로 진아람과 더불어 재계의 양대 미녀로 소문나 있는 사람이다.
이하윤은 얼음공주라는 진아람 이사와는 정반대로 스마일 공주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늘 웃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재계의 남자들에게는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녀가 진아람 이사보다도 훨씬 냉정하고 선을 잘 긋는 성격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은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라는 선민의식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같이 직원들과 같은 복장으로 손님을 안내하는 건 회귀 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대체 무슨 속셈이지?’
분명히 뭔가 바라는 게 있는데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이하윤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무래도 VVIP들이 오시다 보니 제가 있는 게 낫겠다 싶어서요. 그리고 겸사겸사 정 실장님도 좀 뵙고요. 궁금한 게 있어서 보자고 부탁드렸는데 어떻게 한번을 보자는 말씀이 없으세요. 진짜 너무 하신 거 아시죠?”
김애련 부회장은 패션과 영상 쪽 전공을 한 첫째 딸이 내게 궁금한 게 있다며 한번 만나봐 달라고 했었다.
하지만 난 매번 바쁘다고 거절했었다.
그랬더니 이렇게 직접 만나러 나올 줄이야.
대체 무슨 이유로 날 보자고 한 건지 물어보려 한 순간 이하윤의 시선이 내 뒤를 향한다.
“어? 저분이 왜 오셨지?”
뒤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보자 고급스러운 호피 무늬 코트를 입은 60대 여자가 제일 가운데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 40대와 50대의 여자들 열 명이 우르르 떼를 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맨 가운데 있는 60대 여자가 오늘 여기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
그녀는 바로
내가 감옥으로 보낸 HK 전자 홍석준과 HK 의류 홍성범 두 사람의 엄마인 노현희였다.
‘저 여자가 왜 왔지?’
그때였다.
날 발견한 그녀가 눈을 부릅뜨고 빠르게 다가온다.
또각또각.
그녀의 하이힐 소리가 마치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처럼 들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