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1화
601. 천륜(天倫) 6
대흥 저축은행 최영호 은행장은 한준식에게 자기 은행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붓겠다고 선언했다.
“지금 이 시각 부로 우리 은행과 거래하는 모든 기업에 성의(誠意)와의 법무 자문 계약을 끊으라고 말할 셈이네.”
법무법인의 주요 수익은 뭐니 뭐니해도 기업에 대한 법무 자문이다.
평상시에는 자문료를 받고 법무 자문을 하다가 소송이 들어오면 막대한 수임료를 받는 식으로 큰돈을 번다.
그런데 그 법무법인의 돈줄인 기업들은 정작 대흥 저축은행 같은 은행의 도움 없이는 사업을 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저축은행 업계 1위인 대흥 저축은행장이 성의(誠意)와 거래를 끊어달라고 요청하면 기업들은 흔쾌히 응할 게 분명했다.
법무 자문을 대신해 줄 법무법인들은 넘쳐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최영호 은행장이 한 말은 지금 이 시각 부로 법무법인 성의(誠意)를 망하게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한준식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해 행장님. 왜 그렇게까지 미리내에 집착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정 실장은 대체 왜 여기 끼어 있는 겁니까?”
최영호 은행장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답한다.
“여기 정 실장은 내 조카나 다름없네. 이 친구가 과시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말은 안 했지만 말이야.”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최영호 은행장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찬다.
“이봐 한 변. 자네도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봐. ‘미리내’ 같이 부도난 기업이 어떻게 그리 빨리 회생 절차를 시작할 수 있었겠나? 그리고 정 실장이 지금 왜 여기 있겠나?”
한준식이 날 한번 슬쩍 쳐다보고 아차 하는 표정을 짓는다.
“서 설마······ 미리내를 정 실장한테 주려고 하신 겁니까?”
“아예 멍청하진 않군. 그래. 원래 미리내는 여기 정 실장한테 주려고 한 거야.”
난 꿈에도 몰랐던 일이다.
그걸 바라지도 않았고.
‘미리내’는 애당초 한유식 대표의 것이었기에 되돌려 줄 생각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최영호 은행장은 그 와중에 내게 그 지분을 안겨주려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우리 정 실장은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지분에 욕심이 없어서 실망하던 참이었지. 그나마 자네 아버지가 양심은 있어서 정 실장한테 지분을 양도한다고 해서 가만히 있었지. 그런데 감히······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모르는 개뼈다귀 같은 놈이 그 지분에 욕심을 내더군. 그러니 내가 화가 나겠나~ 안 나겠나? 응? 대답을 해보란 말이야!”
한준식의 얼굴이 점점 더 하얗게 변해간다.
‘미리내’의 지분이 어떻게 내 손에 넘어오게 된 건지 이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그런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 몰랐어야지. 더불어 욕심도 내지 말았어야 했고!”
최영호 은행장이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그러니 자네에게 다시 한번 묻겠네. 아직도 ‘미리내’의 지분을 갖고 싶나?”
한준식은 미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 아닙니다. 다시는 미리내에 관심을 가지지 않겠습니다.”
그제야 최영호 은행장의 굳은 표정이 천천히 풀려가기 시작한다.
“잘 생각했어. 아 그리고 혹시나 노파심에 말해두지. 자네가 다시 한번 우리 정 실장이랑 얽힌다면 그땐 이번처럼 찾아와서 경고할 일도 없을 거야. 알겠나?”
“예!!”
최영호 은행장은 한준식에게 마지막 경고를 한 뒤 날 돌아본다.
한준식을 대할 때와는 달리 푸근한 눈빛으로.
“정 실장은 뭐 따로 할 말 없나?”
“있습니다.”
“그럼 편하게 말해.”
난 고개를 끄덕인 뒤 한준식을 노려보며 말했다.
“한준식 씨. 한유식 대표님과 이아은 여사님은 죽을 때까지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으면 한답니다. 그러니까 다시는 찾아오거나 연락하지도 마십시오. 알겠습니까?”
한준식의 고개가 힘겹게 위아래로 움직인다.
“알았어······.”
“그럼 됐습니다.”
최영호 은행장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뒤이어 홍준호 법무총괄 부행장과 장기호 상무가 함께 일어났다.
한준식이 따라 나오며 배웅하려 한다.
최영호 은행장은 한준식의 배웅을 거절하고 회의실을 나서 버린다.
사무실 밖에는 법무법인의 다른 변호사들이 서 있다.
다들 회의실에서 흘러나온 소리를 들었는지 잔뜩 긴장한 표정이다.
변호사들이 쭈뼛대며 인사를 해 온다.
최영호 은행장을 비롯한 우리 일행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법무법인에서 나왔다.
나 역시 그를 따르며 슬쩍 뒤쪽을 돌아봤다.
투명한 회의실 유리창으로 한준식이 보인다.
그리고 그를 본 동료 변호사들이 다들 상종하기 싫다는 표정을 지은 채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다들 한준식이 패륜아인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인 듯했다.
* * *
법무법인 성의(誠意)의 1층 로비.
최영호 은행장이 웃으며 말한다.
“한준식 저 친구. 더는 성의(誠意)에서 일 못 할 거야. 여기 우찬중 대표가 꼬리 자르기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거든.”
법무법인 성의(誠意)는 남부지검장 출신의 우찬중 대표 변호사가 설립한 회사로 한준식은 그중 지분 일부만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실소유주인 우찬중 대표 변호사가 오늘 일을 듣는 즉시 한준식을 자르고서 자길 찾아올 거라고 말한다.
어쩐지 아까 최영호 은행장의 목소리가 크더라니 이유가 다 있었다.
“그러면 이제 다 끝났지?”
“아뇨. 마지막 한 가지가 남았습니다.”
“뭔가?”
“돌아가서 한유식 대표님과 이아은 여사님을 달래드려야죠.”
‘미리내’의 지분을 지켰으니 두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었다.
“그래. 그게 남았군. 그러면 돌아가서 한 대표님한테는 기운 내시라고 좀 전해줘. 회생은 다음 달 초에 끝나니까 바로 작업 들어갈 수 있게 준비해두고.”
“예. 그리고 오늘 너무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무슨. 자네가 다 처리한 거 마무리만 해준 거지. 하여간 이번 작품 보란 듯이 성공해. 그래서 저 세 놈들이 배 아프게 만들어주도록 해.”
“반드시 그럴 생각입니다.”
“그럼 우린 가보도록 하지.”
최영호 은행장과 일행들이 돌아가는 걸 배웅 하고선 깊게 숨을 들이켰다.
“후우~”
차가운 겨울밤 공기가 산뜻하게 가슴을 채운다.
맑게 갠 겨울 하늘에 촘촘히 박혀 있는 하늘의 별들이 천륜을 어긴 패륜아들을 혼내준 걸 칭찬하듯 그 어느 때 보다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 * *
최영호 은행장이 돌아간 이후 한준식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동료들에게 물었다.
“자. 오늘 야식은 내가 한턱낼게. 뭐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만 해. 김 변은 초밥 좋아하지?”
동료 변호사들과 직원들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난 배가 불러서. 오늘은 야식이 안 당기네?”
“저희도 아까 저녁을 많이 먹어서 괜찮아요 변호사님.”
한준식은 법무법인에 있는 모든 변호사와 직원들이 거리를 둔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빌어먹을!’
설마 ‘미리내’의 회생에 최영호 은행장이 그 정도로 깊이 관여해 있을 줄은 알지 못했다.
알았더라면 이렇게 나서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때였다.
벌컥.
법무법인의 문이 열린다.
우찬중 대표 변호사가 씩씩거리며 들어온다.
우찬중은 57살의 나이로 남부지검장을 하다 성의(誠意)를 설립한 법무법인의 주인이다.
“한 변! 어디 있어!”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직원들이 목을 움츠리며 사무실 구석을 바라본다.
그 눈길을 보고 우찬중이 구석에 있는 한준식을 발견했다.
“야 한 변. 넌 내일부터 나오지 마!”
“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걸 몰라서 물어? 조금 전에 최영호 은행장이 찾아와서 엎었다며!”
“아 그건······.”
우찬중이 손을 들어 올린다.
“아 됐고. 넌 이번 주까지 갖고 있던 지분을 박세찬 변호사한테 넘겨.”
한준식이 이를 악물고 말한다.
“대표님! 제가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무슨 해결? 너 때문에 우리 회사 망할뻔했다며? 그리고 미리내인가 뭔가 너희 아버지 회사 지분도 갈취하려고 했다던데? 난 너 같은 패륜아는 질색이야. 알겠어?”
우찬중은 부모도 배신했는데 자기는 배신 못 하겠냐며 한준식을 몰아붙였다.
“아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긴. 박 변이 다 말해줬는데!”
우찬중은 박세찬 변호사한테 아까 전 일을 다 들었다며 언성을 높여댔다.
“하여간 더 말할 생각 없으니까 이번 주까지 지분 정리 마쳐. 그리고 긴급 임시 이사회를 열 거니까 참여하고 싶으면 하든가.”
우찬중은 차가운 표정으로 몸을 돌려 회의실로 향한다.
최대한 빨리 한준식을 쳐내고 최영호 은행장을 만나 용서를 빌기 위해서였다.
“지분 보유한 파트너급 변호사들은 다 회의실 들어와. 긴급 임시 이사회 할 거니까.”
우찬중이 회의실로 향하자 다른 변호사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회의실로 향한다.
그때 한준식이 지나치려던 박세찬 변호사의 어깨를 붙잡는다.
“야! 이 양아치 같은 새X야! 그새 조르르 가서 일러바쳤냐?”
박세찬이 한준식의 손을 탁하고 쳐냈다.
“부모도 버리는 패륜아에게 들을 소린 아닌 것 같은데요?”
패륜아 한준식.
천륜을 저버린 죄는 낙인이 되어 그렇게 한준식의 이름 앞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박세찬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말한다.
“아참 그리고 그쪽 첫째 형님이 긴급 체포됐다는 소식 들었습니까? 뭐 대리 수술 때문이라던가? 아주 형제끼리 잘들 노십니다. 예?”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뉴스나 보십쇼.”
박세찬은 경멸하는 눈을 하고 회의실로 가버렸다.
홀로 남은 한준식이 다급히 폰으로 포털 기사를 확인했다.
포털 기사에는 한준태의 모자이크 된 얼굴과 함께 ‘아름다운 사람들 성형외과’에 관한 대리 수술 기사들이 가득했다.
“이 이게 뭐야?”
분명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수백억이 될지 모른다는 ‘미리내’의 지분을 나눠 가질 생각으로 형제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야?’
그 순간 누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 : 한준희]
전화를 받자 한준희가 말한다.
-야 준식아. 한준태 그 인간 잡혀간 거 들었어?
“어 누나. 지금 막.”
-하여간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쓰레기 같은 자식!!
“누나. 무슨 일이 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형에게 높임말만큼은 하던 누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무슨 원수처럼 대하고 있다.
-소식 못 들었어? 그 자식 성형외과 땅이랑 건물 그거 준태 마누라가 돈 댄 게 아니라 전부 엄마 돈으로 산 거였대.
“뭐?”
-XX. 준태 마누라가 나한테 전화해서 말하더라. 이미 어머니한테 전부 다 넘겨받았으니까 다시 내놓으라고 할 생각하지 말라고.
한준태가 감옥에 구속되자 한준태의 아내 이필선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단다.
만에 하나 그 병원이 팔리게 되면 자기 몫을 챙길 생각으로 말이다.
그래서 자기 입으로 이아은이 그 땅을 물려줬다는 걸 털어놔 버렸다고 한다.
순간 한준식이 이를 빠드득 갈기 시작했다.
“XX. 한준태 그 자식이 그랬다고?”
-그래. 그렇다니까?
“그러면 그 재산에는 우리 지분도 있잖아?”
-내 말이. 그니까 빨리 움직여. 준태 마누라가 다 팔아 치우기 전에!
“아 알았어. 내가 알아볼게.”
부모와의 천륜을 어긴 자들은 이번엔 형제와의 천륜을 어기며 완벽한 패륜아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 길의 끝은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되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 * *
난 한유식의 세 자녀에게 미리내의 지분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천호동으로 돌아왔다.
밤 10시가 된 늦은 시각이다.
그러나 오늘 일을 알려주기 위해 한유식 대표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집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던 순간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단독) 강남 A 성형외과 원장. 대리 수술!]
[(단독) 강남 A 성형외과 피해자 인터뷰!]
[(단독) 업계에 만연한 대리 수술. 이래도 좋은가?]
“끝났군.”
강인한 기자는 오늘부터 한국에서 대리 수술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시리즈 기사를 쓸 거라며 호언장담하고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강 기자님.”
끈질기기로 유명한 강인한 기자였기에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끼익.
현관문을 열자 거실에서 굳은 표정으로 TV를 보는 한유식과 이아은이 있었다.
TV에서도 대리 수술에 관한 내용이 나오고 있다.
“어 정 실장 왔나?”
한유식이 TV를 끄고 날 맞이한다.
난 두 사람에게 다가가 자식 셋이 모조리 ‘미리내’의 지분을 포기했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한유식이 한숨을 푹 내쉬며 내 오른손을 붙잡는다.
“고생했네 정 실장. 못난 우리 때문에 자네가 고생했어.”
이아은은 내 왼손을 잡고 손등을 토닥인다.
“고마워요 정 실장. 정말 고마워.”
자식들과 절연(絶緣)을 한 건 끔찍한 아픔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오히려 내게 고맙다고만 말한다.
대체 이 상황에서 어떻게 두 사람을 위로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말했다.
“앞으로는 제가 두 분을 더 많이 신경 쓰겠습니다.”
연신 고맙다던 두 사람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잠시 후.
한유식이 애써 웃으며 말한다.
“정 실장. 혹시 야식 먹을 생각 있나? 우린 아직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이아은도 눈물을 찍어내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요 정 실장. 같이 뭐라도 좀 먹어요.”
두 사람이 밝은 모습을 원하는 것 같았기에 조심스레 말했다.
“유진이랑 미소도 부를까요?”
“당연히 불러야지.”
“그래요. 인지 언니도 부르고.”
“예.”
난 곧장 정인지 아주머니와 유진이 그리고 미소를 불렀다.
바로 옆 옆집이다 보니 세 사람은 금방 찾아왔다.
눈치 빠른 세 사람은 웃고 있는 우릴 보고 일부러 더 환하게 웃기 시작하며 분위기를 띄운다.
뭘 먹겠냐고 하자 미소와 유진이 그리고 정인지 아주머니 셋 다 짜장면을 외친다.
이사하는 날은 짜장면을 먹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24시간 영업하는 중국집에 전화를 걸려는데 유진이의 얼굴이 살짝 부어 있는 게 보인다.
“유진아. 넌 저녁 많이 먹었지?”
유진이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아니······ 요?”
미소가 곁에서 손을 번쩍 들어 올린다.
“유노 삼촌. 엄마 아까 할아버지랑 할머니 먹을 전복죽 한 그릇을 다 먹었······ 읍읍.”
유진이가 다급히 미소의 입을 가린다.
“오 오빠. 마 맛만 봤어요. 맛만. 저 야식 먹어도 괜찮아요.”
유진이는 짜장면을 먹고 싶은지 필사적으로 외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유진 씨는 곤약면 드세요.”
“어? 왜 갑자기 사무적인 말투예요?”
“지금은 정윤호가 아니라 정유진 배우님 매니저인 정 실장이라서요.”
“퇴근한 거 아니에요?”
“어. 아니에요. 옷도 그대로 입고 있잖아요.”
내 외출복을 본 유진이가 바닥에 풀썩 쓰러진다.
“말도 안 돼······.”
미소가 유진이의 곁에 쪼그리고 앉아 등을 톡톡 두드려 준다.
“엄마. 미안.”
그때였다.
유진이가 뱅글하고 몸을 돌리더니 미소를 끌어안았다.
“배고파서 안 되겠다. 우리 미소라도 잡아먹어야겠다. 아아앙~”
유진이가 입을 짝 벌리고 미소의 팔을 장난스레 깨문다.
그와 동시에 유진이가 미소의 옆구리를 간지럽힌다.
미소가 간지러운 듯 까르륵 웃는다.
“꺄하하하. 엄마. 엄마. 미안. 내 짜장면 나눠줄게. 꺄하하하하.”
“진짜지?”
“응.”
유진이가 날 쳐다본다.
“오빠. 짜장면 먹어도 되죠? 아니면 미소를 먹을 거예요.”
치사하게 미소를 인질로 잡고 협박을 하다니.
어쩔 도리가 없다.
“항복!”
유진이가 살짝 윙크를 한다.
짜장면을 먹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한유식과 이아은 부부를 웃게 하려고 일부러 과장된 행동을 한 것이었다.
유진이의 행동 덕에 두 사람의 얼굴이 조금 더 밝아진다.
그런데 그때였다.
엄마에게서 풀려난 미소는 한유식과 이아은에게로 가서 가운데에 풀썩 주저앉는다.
“할아버지랑 할머니는 삼선 짜장이랑 삼선 짬뽕 드실 거예요?”
미소는 마치 친손녀라도 된 듯 두 사람을 향해 방실방실 미소를 지어 보인다.
한유식이 자애로운 웃음을 짓는다.
“그래야지.”
미소가 활짝 웃으며 말한다.
“그러면······ 으음······ 제가 시켜도 돼요?”
“그럼~”
“아싸!”
미소가 손에 폰을 들고 꼭꼭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는 폰으로 주문을 시작한다.
“황금룡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 미소예요.”
단골집 아저씨에게 이름을 밝힌 미소는 옆 옆집에 있다며 주문을 이어간다.
“우리 한 할아버지가 먹을 삼선 짜장은요 면은 따로 챙겨주세요. 면발이 탱글탱글한 거 좋아하시거든요. 그리고 우리 이 할머니가 드실 삼선 짬뽕은 면을 넣어주세요. 면발이 부드러운 거 좋아하세요. 그리고요······ 정 할머니가 드실 건 그냥 짜장이에요. 근데 그건 고춧가루 좀 잔뜩 챙겨주세요······.”
미소는 마치 친손녀처럼 한유식과 이아은이 좋아하는 스타일을 정확히 짚으며 주문하고 있었다.
한유식과 이아은은 그런 미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마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자식들과 천륜(天倫)이 끊긴 자리에는 새로운 인연(因緣)들이 자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