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9화
599. 천륜(天倫) 4
‘아름다운 사람들 성형외과’의 자동문이 열린다.
병원의 로비 가운데에는 실내 분수가 있었는데 그 주위에 원형의 고급 소파가 놓여 있다.
10명 정도 되는 여자 고객들이 앉아서 잡지를 보고 있었고 먼저 올려보낸 조희영 기자는 그녀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조희영 기자가 잠깐 우리와 눈이 마주쳤지만 금세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린다.
그때 송인혜 코디네이터라고 적힌 명찰을 붙인 직원이 다가와 열렬히 반긴다.
우리 세 사람의 복장이 꽤 고급스럽기 때문이다.
난 고급 정장에 캐시미어 코트 차림이고 강인한 기자는 체크무늬 정장에 검은색 코트를 입고 있다.
최소혜 기자는 보라색 투피스에 흰색 코트를 입은 상태였다.
“환영합니다 고객님. 세 분이 다 같은 일행이신가요?”
최소혜 기자와 강인한 기자가 고개를 젓는다.
“아뇨.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을 뿐입니다.”
“처음 보는 사이입니다.”
뻔뻔할 정도로 연기를 잘하는 두 사람 덕에 코디네이터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아~ 그러세요? 잠시만요.”
코디네이터가 고개를 돌려 다른 코디네이터를 부른다.
“최 코디가 여기 검은색 코트 입으신 남자분 상담 좀 맡아줘요.”
“예~”
송인혜 코디네이터는 날 향해 싱긋 웃으며 말한다.
“고객님은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최소혜 기자와 강인한 기자는 두 명의 코디네이터에게 안내를 받아 각자 입구 옆 상담실로 들어간다.
그 틈에 소파에 앉아 있던 조희영 기자 곁으로 가서 앉았다.
난 소파 앞에 있는 잡지책 보관 코너에서 유진이가 나온 우먼즈 잡지를 하나 빼고선 속삭이며 말을 걸었다.
“조 기자님. 박이준은요?”
조희영 기자가 놀란 눈을 하고 묻는다.
“어 정 실장님이 여긴 왜 오셨어요?”
“아 제가 여기 원장에 대해서 아는 게 있어서요. 그나저나 박이준은 어디 갔습니까?”
“아까 옷 갈아입고 원장실에 들어갔는데 아직 안 나오고 있어요.”
“그래요?”
그때 주변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혹시나 최소혜 기자가 상담을 받으면서 사고를 쳤나 싶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대기실에 있던 환자들이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일제히 고개를 책으로 푹하고 파묻는다.
‘뭐지?’
난 곁에 앉은 조희영 기자에게 물었다.
“조 기자님. 혹시 여기 마스크 쓴 사람 중에 제가 모르는 연예인이라도 있습니까?”
“아뇨. 실장님 들어올 때부터 여기 있는 여자들이 다 쳐다본 거예요.”
“저를 왜요?”
조희영 기자가 얼굴을 살짝 붉힌다.
“유명하시잖아요.”
“저 같은 일개 매니저가 유명해질 일이 뭐가 있다고요?”
“헐~ 진짜 모르세요? 작년 연말부터 이태풍 얼짱 매니저로 유명하셨잖아요. 거기다 오늘은 ‘지리산’ 현장에서 산사태 와중에 스태프 구했다는 기사도 났고요. 지금 정 실장님이 어지간한 스타보다 유명할 걸요?”
며칠 전 <지리산>과 관련된 기사가 났을 때는 나를 언급한 내용이 없었다.
내가 일부러 기자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스태프들에게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그에 관한 기사가 났단다.
“여기 보세요.”
조희영 기자가 자신의 폰을 내밀어 준다.
폰케이스에는 커다란 분홍색 토끼 귀가 달려 있다.
그 부분을 쳐다보자 조희영 기자의 얼굴이 빨갛게 변한다.
“이 이건 급하게 사서 그런 거예요. 위장용으로요.”
어쩐지 귀가 빳빳하더라니.
신상이라서 그랬군.
어쨌건 조희영 기자가 보여준 폰 액정을 보자 ‘스타 특종’에서 작성한 기사가 하나 있었다.
[<지리산> 촬영 현장. 매니저 J 씨. 막내 인턴의 목숨을 구하다.]
-<지리산> 촬영 현장.
막내 매니저의 위급 상황을 확인한 스타 매니저 J 씨.
-(사진 : 막내 인턴을 껴안고 구하는 장면.) 이태풍과 정유진의 매니저로도 알려진 그는 몸을 날려 한 생명을 구했다.
인턴 직원은 평생의 은인이라며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
(스타 특종 : 최소혜 기자)
(댓글)
-막내 인턴이 추울까 봐 직접 커피 가져다주다가 산사태 현장에서는 몸을 던져 목숨까지 구했다고 함. 현장 스태프가 내 친구인데 친구가 찍은 영상임.
-대박이네 이 남자.
-지리산에서는 매니저가 액션 영화를 찍는구나.
-그냥 이태풍이랑 같이 연기자 해도 될 것 같은데?
-외모 인성을 다 가졌지만 딱 한 가지를 못 가졌네. 훗.
-윗 댓글 적은 사람. ‘나’라고 하면 죽여버린다?
-······ 살려주세요 ······.
-이 정도면 경찰서 같은 데서 상 줘야 할 거 같음.
조금은 낯부끄럽고 간지러운 댓글들이 판을 친다.
다들 날 보며 웅성거린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최 기자님이······ 이 기사를 썼네요?”
“예. 정 실장님한테 보답하고 싶다고요.”
최소혜 기자는 내가 늘 특종을 주는 것에 고마워하며 이 사실을 알자마자 제일 먼저 기사로 썼다고 한다.
의인상이나 모범시민상을 받을 수 있도록.
그 마음이 고맙긴 했지만 덕분에 약간의 소란이 생겨 버렸다.
그때 접수처에 남아 있는 간호사 한 명이 날 힐끔힐끔 쳐다보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만일을 위해 일단은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조 기자님. 전 잠깐 밖에 나가 있을 테니 최 기자님이랑 강 기자님이 취재 시작하면 신호 주세요. 그때 들어오겠습니다.”
“아 알겠어요.”
그런데 밖으로 나가려던 그때였다.
달칵.
원장실의 문이 열린다.
흰색 가운을 입은 빼빼 마른 남자는 박이준이란 명찰을 달고 있다.
그는 접수처의 간호사에게 다가가더니 뭔가를 말하고 화장실로 향한다.
이대로 나갈까 하던 난 마음을 바꿨다.
한준태를 빠르게 무너뜨리기 위해한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박이준의 증언을 받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 기자님. 최 기자님이랑 강 기자님 나오면 저 화장실 갔다고 바로 이야기해주세요.”
“예.”
난 그 즉시 스마트워치의 녹음기능을 켜고선 화장실로 향했다.
* * *
덜컹.
문을 열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에서는 은은한 솔잎 향의 방향제 냄새가 풍기고 있다.
변기부터 세면대까지 모조리 고급스러운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부모에게는 돈 한 푼 주기 싫어했으면서도 자기 병원에는 엄청난 투자를 해 놓은 한준태였다.
난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박이준의 작은 볼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볼일을 마친 그가 내 곁으로 와 손을 씻는다.
쏴아~
“박이준 선생님?”
일부러 선생님이란 존칭을 붙이고 대화를 걸었다.
손을 씻은 박이준이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아 예. 무슨 일이시죠?”
“이 병원이 그렇게 솜씨가 좋다면서요?”
“예. 고객님. 절 포함해서 여기 있는 의사 선생님들은 최고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박이준은 영업 사원답게 생글생글 웃으며 의사인 것처럼 자연스레 말한다.
그는 불법 의료 행위를 하는 데도 일말의 양심에 가책도 없어 보였다.
보통 대리 수술을 하는 영업사원들은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는 어찌 된 영문인지 오히려 즐기는 듯했다.
덕분에 그가 혹시나 어쩔 수 없이 대리 수술을 한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싹 털어낼 수 있었다.
인간쓰레기 같은 한준태 곁에는 똑같은 인간이 있었다.
난 박이준이 발뺌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 이번엔 ‘의사’란 호칭을 붙이며 물었다.
“여기 오길 잘했네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보실 땐 전 어디를 손봐야 할 것 같습니까?”
박이준이 날 가만히 쳐다본다.
“으흠. 쌍꺼풀도 자연스러우시고 전반적으로 상당한 미남이긴 하신데······ 굳이 추천하면 이마에 필러 조금만 맞으시면 될 거 같아요. 이따가 상담을 받고 오시면 제가 자세히 봐 드릴게요. 보톡스도 맞으면 좋을 거 같고요.”
“그러면 다른 사람 말고 박이준 선생님께 시술을 받을 수도 있나요?”
“물론이죠~ 제가 이 병원에서는 ‘황금손’이라고 불립니다.”
됐다.
그가 불법 의료 행위를 했다는 걸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난 그 즉시 박이준을 향해 말했다.
“박이준 선생님. 아니 박이준 씨. 의료기기 영업 사원이 스스로 의사라고 말하면서 상담해주시는 건 너무 뻔뻔하신 거 아닙니까? 이거 의료법 위반인 거 아시죠?”
박이준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한다.
“XX!”
순간 박이준은 몸을 돌려 도망치려 한다.
난 손을 뻗어 그의 흰색 가운 뒤 목덜미 쪽을 붙잡았다.
박이준의 빼빼한 몸이 가운에서 쏙하고 빠져나간다.
유연성 하나만큼은 발군이다.
“정 간호사!!”
박이준이 화장실에서 빠져나가 고함을 지른다.
난 증거가 될 수 있는 의사 가운을 들고 천천히 그 뒤를 따라나섰다.
“박 선생님 왜요?”
“그게 아니라 저 사람이······.”
그때 상담을 마친 최소혜 기자와 강인한 기자가 나온다.
“최 기자님. 본인이 자백한 거 녹음했습니다.”
“그래요?”
순간 두 사람은 평범한 상담을 받던 직장인에서 기자로 돌변했다.
그리고 최소혜 기자는 폰을 녹음기로 사용하며 인터뷰를 시작한다.
대기실에 있는 대기자들이 다 들릴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로 말이다.
“박이준 씨. 스타 특종의 최소혜 기자입니다. K 의료기기 영업사원이면서 이 병원에서 대리 수술을 하셨다고 하던데 맞으십니까?”
곁에 있던 강인한 기자는 서류 가방에서 디카를 꺼내 촬영을 시작한다.
번쩍번쩍.
눈앞에서 플래시가 터지며 박이준의 얼굴을 사진에 담는다.
박이준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젓는다.
“아 아냐······ 아냐······ 난 아무것도 안 했어······.”
간호사들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하며 뛰어온다.
“그 그만 하세요!”
대기실에 있던 환자들은 눈을 끔뻑거린다.
갑작스러운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은 듯 혼란스러워한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외치기 시작한다.
“지 진짜야?”
“미친······ 나 저 사람한테 쌍꺼풀 수술받았는데······.”
“의사가······ 아니라고?”
로비에 있는 이들은 다들 충격을 받아 얼어붙어 버렸다.
믿었던 사람이 의사가 아니란 사실은 충격을 넘어 공포였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벌컥.
원장실의 문이 열리고 한준태가 나온다.
“무슨 소란입니까? 정 간호사?”
한유식의 집에 와서 난리를 피운 것과는 달리 조용조용한 음색이다.
그때 한준태가 날 발견하고 눈이 동그래진다.
“응 넌 정 실장?”
난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아깐 그쪽에서 찾아오셨으니 이번엔 제가 찾아올 차례인 거 같아서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그때 박이준이 한준태에게 달려간다.
“워 원장님! 도와주십시오!”
“박 선생. 왜 그래?”
“이 사람들 다 알고 왔습니다.”
한준태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입 다물어!”
난 한준태를 보며 말했다.
“대리 수술이라니. 도대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이런 짓을 하신 겁니까?”
곁에 있던 최소혜 기자는 증거를 확보했다며 폰을 흔들어 댄다.
“상담할 때 박이준 선생님께 수술을 받고 싶다고 말하니까 코디네이터들이 날짜도 잡아 주더라고요. 대신 주치의는 원장선생님이니까 기록에는 원장님 이름만 들어갈 거라고 말하는 것까지 전부 녹음했습니다. 한 원장님. 빠져나갈 생각하지 마시죠. 예?”
그리고 강인한 기자는 카메라를 코 앞에 들이대고 외친다.
“자~ 카메라보고 치즈하세요. 치~즈~”
번쩍.
플래시가 다시 한번 터지자 한준태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외친다.
“최 간호사는 뭘 보고만 있나! 당장 경찰 불러!!”
순간 강인한 기자가 말한다.
“이 양반 정신이 나갔나 보네. 경찰은 우리가 불러야지.”
강인한 기자가 폰을 꺼내더니 알고 있는 형사에 신고해버렸다.
“어 박 형사. 난데 여기가 강남 ‘아름다운 사람들 성형외과’인데 대리 수술을 하고 있더라고? 빨리 좀 와줘! 대리 수술한 사람까지 여기 다 있어.”
작정하고 쳐들어온 걸 안 한준태가 이를 꽉 깨물고 폰을 든다.
“XX!”
아마도 자신의 막냇동생이자 변호사인 한준식에게 전화하려는 모양이다.
“혹시 한준식 변호사한테 전화하는 겁니까?”
“그래. 내 동생 오면 니들은 다 콩밥 먹을 각오 해. 니들 이거 업무 방해인 거 알지?”
대리 수술을 했다는 게 들켰는데도 뻔뻔하게 우릴 협박한다.
드디어 그의 약점을 털어놓을 때가 왔다.
“후회할 텐데요?”
“X 까고 있네. 구속되고서 용서해 달라고 빌지나 마!”
“한준식이 당신을 도울 것 같습니까?”
“당연히 돕지. 그 녀석이 내 동생인데?”
“지금 이 건물의 땅이랑 건물 올리는 데 들어간 돈은 당신 아내 돈이 아니라 전부 다 이아은 여사님이 준 돈이란 걸 안다고 해도요?”
한준태가 고소를 못 하게 만들 방법은 바로 이 빌딩의 매입 자금에 관한 내용이었다.
난 한유식과 이아은을 달랠 때 이아은에게 자기 아버지에게 받은 땅을 팔아서 장남인 한준태의 병원 신축 자금을 대줬다는 사실도 들었다.
욕심 많은 둘째와 셋째가 시기할 것을 걱정했기에 빌딩을 짓는 비용을 처가에서 대부분 해줬다고 말을 맞춘 상태라는 것도.
하지만 그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둘째와 셋째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말해줬다.
“그 그걸······ 어떻게······.”
“왜? 부모를 버릴 때 이런 게 알려질 거라고는 생각 안 했어? 더는 당신 자식도 아니라면서 흔쾌히 말씀해 주시더라고. 아 그런데 이 사실을 알면 변호사인 한준식이 가만히 있을까? 아니지. 아마도 소송을 걸어서 자기 몫을 받아내려고 하지 않을까?”
폰을 잡은 한준태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러니까 만에 하나 여기 있는 두 사람을 고소라도 하거나 혹은 앞으로 ‘미리내’의 지분을 노리기라도 해봐. 난 이 땅과 병원 건물에 관한 걸 바로 당신 동생들한테 말할 거야. 그래도 괜찮아?”
한준태는 날 뚫어지게 쳐다보며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하고 있었다.
난 승리의 기분을 만끽하며 고개를 돌렸다.
“최 기자님. 이 정도면 됐죠?”
“어. 코디 쪽에서 불법적으로 상담해주는 것도 녹음했으니까. 이제 박이준 이 사람 회사에 가서 인터뷰만 하면 돼.”
강인한 기자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이젠 의료기기 회사를 털 거야. 여기 계신 피해자분들과 인터뷰도 좀 하고.”
그때였다.
소파에 앉아 있던 여자 환자들이 자리에서 일제히 일어난다.
그리고는 한준태와 박이준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한 원장. 당신 미쳤어?”
“이 쓰레기 같은 자식아아~~!!”
“야 내 얼굴 어떻게 할 거야?”
덥석.
여자 환자들이 한준태의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아아악······ 내 머리······ 내 머리······ 놔. 이거 놔······.”
환자들은 이어서 박이준 역시도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아아아악. 저 전 시키는 대로 한 죄밖에는 없어요.”
환자들이 달려들어 흔들어 대자 두 사람은 휘청거리다가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그러자 몇몇 환자들은 넘어진 두 사람 위에 올라타더니 백으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퍽퍽퍽.
간호사들은 살벌한 분위기에 말리지도 다가가지도 못한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다음은 자기들 차례라는 걸 안 까닭이다.
그때 문이 열리며 가죽점퍼를 입은 남자들이 들어온다.
“박 형사. 이쪽이야.”
그때 바닥에 엎드린 한준태가 형사에게로 달려가며 애타게 외친다.
“사 살려······ 주세······ 요.”
“뭐 알았수다.”
형사들은 피해자들에게 고통받은 한준태와 박이준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 늦게 보호하고 있었다.
* * *
한준태와 박이준은 현장에서 긴급체포 당했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모자이크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인터뷰에 응했다.
이후 경찰과 피해자들이 사라지고 간호사까지 경찰서에 끌려가고 나서야 최소혜 기자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고마워 정 실장. 덕분에 큰 문제 없이 넘어갈 거 같네.”
“별말씀을요.”
강인한 기자는 곧장 최소혜 기자와 함께 의료기기 회사에 가겠다고 말한다.
그래야지 증거를 더 확보할 수 있을 거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때 홀로 회사에 들어가야 하는 조희영 기자가 최소혜 기자와 강인한 기자에게 묻는다.
“근데 두 분. 상담받은 견적은 얼마 나오셨어요? 기사에 좀 쓰게요.”
강인한 기자가 씨익 웃으며 최소혜 기자를 쳐다본다.
“그래 최 기자. 견적은 얼마 나왔어? 기사에 수치 좀 넣어야 리얼하지.”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해요?”
“아니 그냥. 얼마나 이 병원이 뻥튀기로 남겨 먹었는지 궁금하지 않아?”
최소혜 기자가 미간을 찌푸리고 말한다.
“1200이요. 얼굴 전체를 건들면 그 정도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최소혜 기자의 미모는 제법 괜찮은 편인데 성형 비용으로 무려 1200만 원을 불렀단다.
강인한 기자가 장난스레 말한다.
“뭐 그 정도면 적당히 부른 건가? 아니다. 조금 싸게 부른 건가?”
최소혜 기자가 강인한 기자를 노려보며 말한다.
“선배는요?”
“나? 크흠. 난 비밀.”
“말.하.시.죠. 선배?”
강인한 기자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속삭이듯 말한다.
“하하하. 그 그게······ 3천······ 2백이야.”
“예~~? 3200만 원이요? 대체 누굴 닮게 해달라고 했길래요.”
강인한 기자가 쭈뼛대며 말한다.
“이태풍.”
강인한 기자는 남자답게 생긴 외모였는데 이태풍이 되려면 거의 얼굴 골격을 재창조해야 한다며 견적을 불렀단다.
최소혜 기자가 씨익 웃으며 말한다.
“그 정도면 블랙 프라이데이 급으로 할인을 해준 거 같은데요?”
강인한 기자가 빽 하고 외친다.
“야! 그러는 넌 누구 닮게 견적 뽑은 건데?”
최소혜 기자가 먼 산을 보며 말한다.
“유진······ 씨요.”
강인한 기자가 피식 웃는다.
“이 병원 양심 병원이네.”
“뭐라구욧?”
순간 두 사람이 으르렁대며 서로를 노려본다.
졸지에 난 애처럼 싸우려는 두 사람을 말려야만 했다.
잠시 후.
투덜대던 두 사람은 애 같은 싸움을 멈춘 뒤 오늘 밤에 기사를 내겠다며 의료기기 회사로 향했다.
난 두 사람을 배웅한 뒤 최영호 은행장이 보내준 까톡을 다시 확인했다.
한준희는 현재 MBS <만물척척>에 고정 패널로 출연 중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H 대학의 교수지만 방송 출연에 상당히 집착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방송 출연을 놓고 그녀를 설득해 봐야겠다.
다시는 부모에게 접근하지 말고 ‘미리내’의 지분도 노리지 말라고.
다만 그녀가 내 말을 들을 거라는 기대는 크게 하지 않았다.
이미 천륜을 저버린 인간에게 말이 통할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난 그녀를 상대할 방법을 머릿속에 정리한 뒤 곧장 MBS로 향했다.
‘한준희 씨. 이번엔 당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