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화
58. 미소야 울지마 2
주강용이 기사를 쓰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런데 그도 홍보비를 쓰기 시작했는지 기사가 30위 권 안으로 진입해버렸다.
[신인 여배우 J 씨의 사생활]
-J 씨와 연루된 학폭 사건의 증언자 등장.
-J 씨. 전신 성형 의혹
-J 씨의 조카. 사실은 그녀가 여고 시절 낳은 딸?
······
(제보받습니다. By 연예가 빅뉴스 주강용)
자극적인 거짓말과 함께 유진이의 사진에 모자이크를 씌워놓았다.
하지만 그게 유진이를 가리키고 있다는 걸 사람들이 모를 리는 없었다.
[네이브 실시간 검색]
2. 정유진 일진
3. 정유진 학폭 가해자
4. 정유진 딸
5. 전신 성형
······
(댓글)
-와 대박. 정유진 학폭 가해자였어?
-24살이 7살짜리 딸이 있다고? 대박 날라리네. 역시 반반한 건 얼굴값 한다니까?
-그런데도 연예인을 한다고? 파란 하늘 본방 사수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전신성형은 또 뭐야?
-미친. ㅋㅋㅋ. 니들 정유진 성형 전 사진 봤어? 대박임. (링크)
그리고 그에 맞서 굴렁쇠 엔터는 저격 기사를 올리고 있다.
[굴렁쇠 엔터 “1월 27일. SBC 휴먼스토리 방송 – 정유진 편에서 정유진의 모든 것 공개!”]
(댓글)
-정유진이 일진? 어이가 없네.
-댓글로 욕하는 인간들 뒤는 안 무서운가? 하여간 노빠꾸 인생들이라니까.
-주강용 기레기 기사 믿는 흑우 없쥬?
-정유진 얼짱 알바 시절에 직접 만나본 사람이라면 저 기사 거짓말이란 거 알 텐데.
-정유진 여고 시절 엄청 착하기로 유명했어요.
두 편으로 갈린 정유진의 팬과 안티의 싸움은 연일 치열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난 대형 LCD에 그 치열한 주강용의 기사와 댓글 SNS 반응들을 띄워 놓은 채 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요즘 애들은 차~암 겁이 없어. 그렇지 않냐? 오 팀장?”
구성철 실장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대며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순화된 말을 쓰고 있었다.
회의실 한쪽 편에선 SBC 휴먼스토리 촬영팀이 현재 우리 회의실을 촬영 중이었으니까.
“그 그렇.습니.다. 실.장.님. 그래도 나쁜. 건 기자들이니까. 착.한 사람들은. 봐. 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오덕구 팀장이 국어책 읽기로 답했다.
“커트!”
휴먼스토리 나훈석 PD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오 팀장님. 대사 좀 자연스레 안 되십니까?”
“하아. 안 되네요. 제가 연예인도 아니고요.”
휴먼스토리의 나훈석 PD는 고개를 젓더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 매니저님.”
“예?”
“아무래도 정 매니저님이랑 구 실장님만 나오는 그림 따야겠습니다.”
구성철 실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정 스타. 한 번이라도 방송 타 본 아니지 저번까지 해서 방송 두 번 타 본 네가 다 해라. 덕구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오덕구 팀장도 그게 좋겠다며 내게 방송 출연을 떠밀었다.
“알겠습니다.”
나훈석 PD가 손가락을 튕기며 큐 사인을 준다.
“자~ 가겠습니다~ 레디~ 액션!”
다시금 촬영이 시작되었다.
주강용 기자와 댓글에 대해서 성토하는 구성철 실장의 말에 난 이렇게 답했다.
“주강용 기자가 쓴 기사 때문에 오해한 걸 겁니다. 일반 팬들은 잘못이 없으니 일.단. 고소는 자제하시죠. 그리고 기사를 올린 당사자로 제한해서 명예훼손으로 대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구성철 실장이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을까?”
“예. 그리고 유진이. 이제 신인입니다. 덕분에 유진이 이름 잘 알렸다 생각하시죠.”
“흠. 그게 또 그렇게 되는 건가?”
구성철 실장의 말투가 사극처럼 변했다.
한참 동안 이어진 기레기에 관한 성토와 ‘팬들은 아무 잘못 없다’와 ‘그래도 계속 악플을 달면 그땐 가만두지 마시죠!’라고 외치는 한 편의 쇼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나 역시 딱 하나만큼은 절대 용서하지 않겠노라 경고했다.
“아무리 그래도······ 7살짜리 어린아이를 들먹이는 ‘인.간.말.종’ 같은 놈들에게는 자비를 베풀면 안 되겠죠. 그딴 건 협의 없이 고소하시죠.”
순간 구성철 실장이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답했다.
“하긴 어린애를 욕하는 쓰레기들은 고소까지 갈 거 없다. 내가 반쯤 아주 그냥······.”
빠직.
분노한 구성철 실장이 한 손으로 볼펜을 반으로 두 동강 내어 버렸다.
순간 나훈석 PD가 외쳤다.
“커트! 됐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이 끝나자 나훈석 PD가 다가왔다.
“캬! 우리 젊은 매니저님이 아주 달변이시네요.”
“아닙니다. 저도 흥분을 좀 한 거 같은데 그림 잘 나왔나요?”
나훈석 PD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분노하는 모습과 유진이를 아끼는 마음이 잘 담겨 있었다고.
그런데 그때 내 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 : 미소천사♥]
전화를 받아 보니.
미소가 울고 있었다.
-삼촌. 큰일 났어. 엄마가······ 엄마가······ 흑흑.
* * *
“이것들이 진짜! 끝까지 가 보자는 거지?”
주강용 기자는 씩씩거리며 불똥이 남은 담배꽁초를 발로 꾹꾹 눌러 꺼트렸다.
이쯤 하면 굴렁쇠 엔터에서 아쉬운 소리를 하며 전화가 올 줄 알았다.
그런데 작전이 시작된 지 벌써 2주가 넘어 <파란 하늘>의 크랭크인이 코앞인데도 아무런 연락을 해오지 않고 있었다.
곁에서 담배를 피우던 고동민 편집장이 한 가지 제안을 해 왔다.
“주기자. 마냥 기다리고 있을 게 아니라 굴렁쇠에 연락이라도 해보지?”
주강용 기자가 인상을 버럭 쓴다.
“어떻게 제가 먼저 연락합니까? 기자 가오가 있는데!”
“가오 같은 소리 하네. 돈 못 받으면 다 똥이야 인마. 설마 너 이대로 끝까지 밀고 가게?”
“예. 이렇게 된 거 협상을 안 하면 무슨 험한 꼴을 당하는지 제대로 보여줄 참입니다. 돈도 좋지만 밟을 때는 제대로 못 밟으면 얕보인다니까요?”
“그래도 그렇지 뭔가 좀 이상하지 않냐? 굴렁쇠가 너무 자신만만하잖아.”
고동민 편집장은 불안감을 느꼈다.
보통 이쯤 되면 어떤 기사가 나던지 간에 상대 회사에서는 홍보팀이나 법무팀이 연락해 오는 게 정상이다.
돈 줄 테니 기사를 내려달라거나 고소할 테니 기사를 내려달라거나.
하지만 굴렁쇠는 그 어떤 접촉도 하지 않고 있었다.
“괜히 허세 부리는 겁니다. 하여간 이번 판 절대 못 물러납니다.”
“하아. 알아서 해라. 난 분명히 말렸다?”
고동민 편집장이 사라지자 주강용은 홀로 남아 담배 한 개비에 다시금 불을 붙였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소설 같은 기사 타이틀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씨X. 누가 이기나 어디 한 번 해 보자. 정유진.”
담배를 반절 정도 태운 주강용은 급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또다시 찌라시를 쓰기 시작했다.
* * *
미소의 소식을 받고 급히 달려왔더니 핼쑥해진 얼굴로 누워 있던 유진이가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오빠. 오셨어요?”
“괜찮아?”
“네. 괜찮아요. 별일 아닌 거로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괜찮다는 것 치고는 안색이 좋지 않다.
미소는 유진이의 곁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이리저리 쳐다보고 있었고.
“엄마. 괜찮아?”
“으응. 괜찮아.”
“진짜 진짜 괜찮은 거야?”
“그렇대두~.”
주강용 기자가 유진이를 목표로 한 이후 매일 아침 유진이의 상태를 체크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점심 무렵 갑작스럽게 급체를 한 바람에 미소가 놀라서 전화한 거다.
식은땀을 흘리며 화장실에서 먹은 걸 게워냈다나?
하지만 급체 정도로 사람이 저렇게 사색이 될 리 없다.
‘설마 오늘 주강용이 올린 기사를 본 건가?’
난 기사에 달린 악플을 봤는지 조심스레 유진이에게 물었다.
“유진아. 너 혹시 오늘 기사 본 거니?”
유진이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 섞인 말을 내뱉었다.
“······보지 말래도. 왜 그딴 기사를 봐서는. 폰 줘. 당분간은 내가 가지고 있을게.”
“알았어요······”
유진이가 힘없이 자신의 폰을 건넸다.
그런데 그 순간.
유진이가 이렇게 된 진짜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시키는 대로 그동안 기사도 안 보던 애가 기사를 보게 된 진짜 이유가 말이다.
[외숙모 : 얘는 어떻게 하고 다니길래 이딴 기사가 나는 거니? 젊은 여자가 행실을 똑바로 해야지.]
[큰아버지 : 내 친구가 기사 보내주더라. 너 고등학교 때 그러고 살았었냐? 죽은 너희 아버지가 봤으면 통곡을 했을 거다!]
[큰엄마 :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잖니. 예전에도 미소 걔가 있으면 연예계 생활 힘들다고 했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까톡!
까톡!
유진이와 절연을 했다던 친척들이 보내는 까톡이 지금도 연신 화에 올라오고 있었다.
‘설마 이것 때문에 기사를 본 거야?’
울컥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친척들이 날려대는 까톡에는 기사 링크도 들어가 있었으니까.
걱정하는 척.
염려하는 척하며 유진이를 어리석다 탓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일이 끝나면 모조리 내 선에서 정리해야겠다.
두 번 다시 연락하지 말라고.
남이 된 주제에 더는 괴롭히지 말라고 말이다.
소파에 앉아 있는 유진이는 내 얼굴을 보더니 입을 벙긋거렸다.
‘오.빠. 저 진.짜. 괜.찮.아.요.’
괜찮긴.
하나도 안 괜찮구만.
시간이 갈수록 유진이의 창백한 얼굴이 더 하얘지고 있었다.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나.’
그때였다.
내 등 뒤에서 카메라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날 따라온 휴먼스토리 팀이 현장을 촬영 중이다.
‘언제부터 촬영한 거지?’
난 자리에서 일어나 카메라를 가렸다.
“나 PD님. 이런 모습을 촬영하는 건 좀 자제해 주시면······”
초췌한 모습의 유진이를 보여주기가 싫었다.
하지만 나훈석 PD가 잠시 카메라를 내리고는 자신을 믿어달라 말했다.
“정 매니저. 미안한데 이거 촬영합시다. 나 한 번만 믿어봐 줘요.”
“믿어 달라뇨?”
나훈석 PD의 얼굴은 상당히 진지했다.
악의적인 기사를 적는 기레기와 악플을 단 네티즌 때문에 연예인들이 얼마나 고통받는지를 보여주고 싶다면서.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자신들이 남긴 댓글이 그걸 보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유진 씨의 이런 모습을 찍는 게 저 또한 불편하지만. 그래도 제가 느끼는 이 기분. 시청자들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단 말입니다!”
나훈석 PD는 유진이를 따라다니며 촬영하다 보니 엄청나게 감정이입을 한 상태였다.
어찌나 격분했는지 손을 부들대고 있었다.
그 순간 유진이가 내 옷자락을 잡았다.
“괜찮아요. 오빠. 시작할 때부터 각오한 거잖아요.”
“유진아······”
유진이의 말에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회귀 전.
난 연예인을 띄우기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한 조작도 서슴없이 했었다.
하지만 회귀한 후론 다르게 살겠다며 억지로 그 허용범위의 선을 그어놓은 것 같다.
‘유연해지자.’
김동수나 주강용 기자 같은 인간들과 싸우려면 그래야 했다.
나쁜 짓을 나서서 하진 않겠지만 착하게 당하고만 있을 생각은 없으니까.
나훈석 PD의 말대로 이렇게 힘들어하는 유진이의 모습이 방송을 타면 큰 반향을 일으킬 거다.
마음속에 그어놓은 선을 없애버린 난 카메라 앞에서 비키며 손으로 사인을 건넸다.
‘계속 촬영하세요.’
그리고 난 호흡을 가다듬고 휴먼스토리의 카메라 앵글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길래······ 기사들 보지 말라니까 왜 사서 고생을 하니?”
유진이의 앞에 앉으며 투덜거리는데 내 말투에는 감정이 자연스레 묻어나왔다.
유진이가 미안한 표정으로 답했다.
“사실 보려고 한 건 아닌데 친척분들 문자를 확인하다 눈에 띄어서요.”
그딴 인간들이 친척은 무슨 친척.
하는 짓은 악플러보다 못한데.
아니 미소를 보육원에 넘기라고 한 순간부터 철천지원수나 다름없지.
내 눈치를 보던 유진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근데 오빠.”
“응? 왜?”
“나 그렇게 잘못한 거예요? 우리 미소······ 혼자 될까 봐 입양한 게 그렇게 욕먹을 짓이에요?”
유진이가 미소를 감싸며 묻는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콕콕 쑤신다.
“아니. 전혀!”
유진이의 표정이 희미하게나마 밝아졌다.
“나 잘한 거 맞죠?”
유진이의 질문에 나보다 먼저 미소가 대꾸했다.
미소는 유진이의 손을 꼬옥 붙잡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엄마가 잘한 거 맞아! 나 엄마 때문에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거잖아!”
미소의 응원에 유진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래. 미소는 내 딸이야. 난 미소 엄마고.”
유진이가 미소의 볼을 쓰다듬는다.
미소는 반달 눈을 한 채 연신 유진이를 향해 엄마라고 한다.
“응 엄마! 나 엄마 딸이야.”
그리고 유진이가 날 향해서도 인사를 한다.
“오빠. 저 이제 괜찮아요. 대본 리딩 하러 가게 저 좀 일으켜주세요.”
이 와중에도 일을 잊지 않는 프로다운 모습까지 보여주는 유진이다.
“일단 병원에 들러서 링거부터 좀 맞자.”
괜찮다는 유진이의 말을 무시하고 곧장 119를 불렀다.
“여기 천호동인데요. 가스냐고요? 아뇨. 교통사고냐고요? ······아니라니까 정말! 진짜 아픈 사람이 있다고요!”
아 이건 NG다.
119 상담사는 대번에 날 알아채고 이번엔 또 무슨 일이냐고 물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