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8화
578. 그들의 계획 3
SBC 본관 복도.
<아홉수들>의 안병태 CP 본인으로부터 양지선을 쓸 마음이 없다는 사실도 직접 확인했다.
그러자 양지선은 눈에 불을 켜고 소지민 실장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실장님!”
“잠깐만 지선아! 내가 다 설명할 수 있어!”
“됐어요! 난 벌써 엄마랑 친구에게 자랑도 했는데 도대체 이게 뭐예요! 쪽팔려 진짜!”
양지선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그러자 당황한 소지민 실장이 황급히 양지선을 설득한다.
“지선아. 방송국에서 출연료를 깎으려고 저러는 거야. 나 믿고 조금만 기다려 봐. 오늘 당장이라도 내가 직접 가서 확실히 도장 찍어 올게!”
아무래도 안병태 CP를 설득할 시간을 끌려는 모양이다.
‘이렇게 빠져나가려고? 누구 마음대로?’
난 그 즉시 소지민 실장의 말을 반박했다.
“거짓말로 시간을 벌 생각만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사과할 건 하세요. 그래야 대책을 찾을 거 아닙니까?”
소지민 실장이 고개를 홱 하고 돌린다.
“그래서 내가 직접 가서 CP님을 설득할 거라고 말했잖아요!”
“어떻게요?”
“그 그건······.”
소지민 실장이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때였다.
양지선이 주먹을 불끈 쥐고 내게 말한다.
“혹시 정 실장님이 나서주시면 안 될까요? 실장님 실력이라면 안 CP님을 설득하시는 것도 가능하잖아요.”
난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잘랐다.
“포기하세요. 안 CP님 한 고집 하시기로 유명한 분입니다. 한번 마음을 정하신 이상 끝난 겁니다.”
안병태 CP는 회귀 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게다가 이 작품은 최종 시청률 12%의 망작.
국봉순 작가의 흑역사로 남는 작품에 우리 회사 배우를 추천할 수는 없다.
양지선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든다.
“그러면 전 이제 어떻게 해요? 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최대한 빨리 다른 작품에 지원하셔야죠.”
양지선은 고민할 시간도 아깝다는 듯 묻는다.
“어떤 작품이요?”
“조금 전 조민성 배우님께 제안한 ‘강의 경계’에 여주인공 자리가 비는 상태입니다. 출연료는 편당 2천 5백만 정도이고요.”
난 이어서 <강의 경계>의 여주인공이 될 때의 장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의 경계> 여주인공은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는 씬이 자주 나와 주류 회사 광고를 딸 수 있다는 점도 어필했다.
또 당대 최고의 탑스타 중 한 명인 조민성 배우와 연기를 하게 되는 건 엄청난 기회다.
가수와 예능인의 경계에 서 있는 양지선이지만 조민성과 함께 작품을 한다면 향후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굳힐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차피 ‘아홉수들’에서 제안받은 출연료 4천만 원은 실제로 받지도 못할 금액이니까 없던 걸로 치면 ‘연무’에서 받은 출연료 3천만 원보다 편당 500만 원 정도 손해 보는 대신 훨씬 더 많은 것을 챙길 수가 있을 겁니다.”
대안이 필요할 때 대안을 제시할 것.
그리고 그 대안은 상당히 구체적일 것.
그게 바로 실력 있는 매니저들을 가르는 요소였다.
결과적으로 돈도 인지도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말에 양지선이 각오를 다지고 말한다.
“그러면 정 실장님. 앞으로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양지선이 소속을 옮기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졸지에 직접 관리하는 배우를 눈앞에서 뺏기게 된 소지민 실장의 눈이 뒤집어졌다.
“지선아! 지금 뭐 하는 거야?”
양지선이 고개를 돌린다.
“저 앞으론 정 실장님한테 관리받을 거예요.”
소지민 실장이 쌍심지를 켜고 말한다.
“양지선! 너 지금 무슨 말 하는지 알고나 있는 거야?”
“당연히 알죠. 그리고 실장님. 솔직히 그동안 정도 있고 해서 참았는데······ 이제 더는 실장님을 못 믿겠어요.”
“지선아. 어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렇게 할 수가 있어? 어?”
“저야말로 묻고 싶어요.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뭐?”
“제가 연무에 출연하고 싶다고 했는데 못 하게 하고! 또 무조건 된다고 한 아홉수들은 출연도 못 하게 생겼잖아요!”
“아니 사람이 일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아뇨. 이번 일은 아닌 거 다 알아요. 솔직히 매니저들끼리 파벌 싸움하는 거야 그렇다 쳐도 그것 때문에 배우 앞길을 막아선 안 되는 거잖아요! 막말로 제가 왜 소 실장님의 장기 말이 되어야 해요?”
며칠 전부터 양지선을 위해 했던 모든 조언들이 이제야 빛을 발하고 있었다.
비록 양지선이 내 담당은 아니었지만 처음부터 그녀에게 도움 될 진심 어린 조언을 했었다.
그 조언이 돌고 돌아 당사자의 귀에 이미 들어가 있었다.
그렇기에 양지선이 더는 소지민 실장을 믿지 않고 날 의지하기 시작했다.
한바탕 소지민 실장을 몰아붙인 양지선이 숨을 훅하고 내쉰다.
그리고는 오해의 여지가 생기지 않게 딱 잘라서 내게 말한다.
“정 실장님. 오늘부터 저 배우 4실에서 관리 좀 부탁드려요. 절차가 따로 필요해요?”
“제 윗선에만 정확히 의사를 밝혀주시면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단 지선 씨가 가수 활동도 겸하고 계시니까 배우 4실과 가수 2실이 공동으로 관리하겠습니다.”
“알았어요. 그렇게 부탁드려요.”
“그러면 지금 전화부터 하겠습니다.”
“예. 본부장님한테 전화 걸어주세요. 제가 허락받을게요.”
난 반쯤 넋이 나간 소지민 실장을 둔 채 김장비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 실장이 웬일이야?
“양지선 씨가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해서 전화했습니다.”
-담당인 소 실장은 뭐하고 왜 정 실장이 대신 전화해?
그때 양지선이 폰을 달라고 한다.
폰을 건네주자 양지선은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잇는다.
“본부장님. 저예요 지선이. 오늘부터 저 담당을 배우 4실이랑 가수 2실에 관리를 맡겨주세요.”
김장비 본부장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소 실장님을 더는 못 믿겠으니까 바꿔 달라고요.”
양지선은 현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말을 쏘아붙인다.
김장비 본부장은 급한 대로 타협안을 내세운다.
-이 일단······ 그러면 정 실장한테 오늘 하루만 좀 관리받고 내일 들어와서 이야기하자. 응?
“그래봤자 제 마음이 바뀔 일은 없을걸요?”
-알아. 알아. 그래도 화가 좀 가라앉으면 내일 회사 들어와서 이야기하자. 지선아. 내가 평소에 널 얼마나 챙겼니?
딱 봐도 양지선이 화가 가라앉으면 그때 설득을 하려는 모양인데.
하지만 난 양지선을 뺏기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난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요. 지선 씨.”
양지선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김장비 본부장에게 말한다.
“후우. 알았어요. 그럼 오늘 남은 스케줄은 여기 정 실장님이랑 할게요. 알았죠?”
-그래. 알았어.
양지선이 수고하라며 전화를 끊는다.
폰을 건네받은 난 짧게 심호흡을 하고 양지선에게 말했다.
“자 그러면 MBS ‘천하 소년’ 촬영부터 가시죠. 가는 길에 어썸플레이스에서 차가운 레몬 셔벗 레이드 한잔 사드릴 테니까 진정 좀 하시고요. 아 그리고 ‘천하 소년’ PD님과 작가님이 좋아하시는 쿠키도 사야 하니까 서두르시죠.”
양지선의 다음 스케줄과 양지선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마시는 음료수의 이름을 언급한 뒤 <천하 소년>의 PD와 작가에게 줄 간단한 간식을 일부러 언급했다.
그 순간 양지선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아니 어떻게 그런 것들도 다 알고 계세요?”
“매니저라는 게 언제 어떤 배우와 일할지 모르잖습니까? 현장에서 지원을 나갈지도 모르고요. 그래서 소속 연예인들에 관한 거나 스케줄에 관해서는 웬만큼은 기억해 두는 편입니다.”
그 순간 양지선이 소지민 실장이 들으라는 듯 말을 한다.
“대박이다. 왜 다들 정 실장님을 찾는지 이제야 알 것 같은데요?”
“칭찬 감사합니다. 자 그러면 가실까요?”
“예. 실장님.”
처음부터 양지선의 미래만을 위해 움직인 덕에 생각보다 쉽게 그녀를 빼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번 일을 시작으로 난 관우 엔터 소속의 매니저들과 배우들 간에 거리를 벌릴 생각이다.
그들이 오늘 내 배우에게 시도한 것처럼.
그리고 결국엔 관우 엔터 소속 핵심 매니저들이 없는 하나의 굴렁쇠 엔터를 만들어 낼 생각이다.
난 날 보며 이를 빠드득 가는 소지민 실장을 홀로 남겨 둔 채 양지선과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 * *
SBC 본관 주차장에 도착한 난 다이어리부터 확인했다.
하지만 역시 오늘의 운세는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1년 1월 20일]
[오늘의 운세 : 잡아 놓은 큰 물고기들이 도망칠 수 있다. 얼기설기 얽혀진 그물을 더욱 촘촘히 조여야 한다. 내부의 적을 조심하라.]
내가 낚아둔 큰 물고기는 하나가 아니다.
즉 다시 말해 조민성 말고 다른 배우 중에서도 흔들릴만한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다.
난 우선 양지선에게 차에 올라타라고 이야기한 뒤 배우 2실 단톡방에 들어갔다.
역시나 다른 현장에도 우리와 적대적인 매니저들이 나타났다는 내용이 있었다.
[배우 2실 단톡방]
······
[주영훈 팀장 : 방금 ‘천계의 뜰’ 촬영 현장에서 소지민 실장이 수작을 부리다 정 실장에게 들켜서 난리가 났습니다. 다른 현장은 어떻습니까?]
[구성철 실장 : 난 성호준 배우랑 영화 ‘어쩌다 보니 김철수!’ 용산 프로모션 현장에 왔는데 여기도 백상범 실장이 왔다 갔다. 다들 긴장해. 아무래도 관우 엔터에서 온 애들이 오늘 날 잡고 우리 배우들 꼬드기려나 보다.]
[조지아 팀장 : 전 송지환 씨와 함께 ‘토크쇼! 해피 토요일’ 촬영 현장에 왔는데 여긴 주호성 팀장님이 왔네요. 안 그래도 뭔가 수상하다 싶어서 녹음 중이에요.]
조지아 팀장은 올해 나이 35살로 원래는 배우 1실 소속이었는데 구성철 실장이 공을 들여 스카우트해 온 능력자였다.
현재 그녀는 내가 배우 3실에서 빼내 온 S급 배우 송지환을 담당하고 있는 상황인데 한 치 실수가 없는 꼼꼼한 성격이라서 송지환도 매우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쪽에는 관우 엔터 출신이 아닌 주호성 팀장마저 붙었다고 한다.
“주호성 팀장까지 붙었으면 백세기 실장도 붙었겠군.”
아니나 다를까 오덕구 팀장이 까톡 메시지를 보내온다.
[오덕구 팀장 : 여긴 MBS ‘전지적 관찰 시점’ 본관 촬영 현장. 박은성 씨 녹화 중인데 방금 백세기 실장이 찾아왔습니다.]
‘백세기. 거기가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는 거냐?’
현재 난 다른 S급 배우 중에서 성호준과 송지환에 관해서는 큰 걱정을 하지 않고 있다.
성호준은 작품을 보는 눈이 없어 내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데다 현재 내가 추천한 <어쩌다 보니 김철수!>란 작품으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왕 역을 주로 하던 중년 배우 송지환은 내가 이번에 <화란전>에 출연시킨 이후 예능 섭외 제의가 엄청나게 늘어난 상태였고.
이미 잘나가는 배우들은 아무리 옆에서 흔든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 법.
문제는 불만이 있을 만한 경우다.
현재로는 그 대상이 바로 박은성이었다.
내가 스카우트 해온 다른 배우들은 모두가 눈에 띌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그에 비해 박은성은 인기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잡다한 프로그램을 정리하다 보니 출연 프로그램의 수가 줄어든 상태였다.
물론 개별 출연료를 올렸기에 적게 일하고 더 많이 벌 수 있도록 해줬지만 노출도가 떨어지자 그는 현재 자신의 인기가 더 떨어진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내 다이어리에 남는 일정 때문에 한 일이었다.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1년 11월 12일]
-PM 10:00 <연예계 방방곡곡> “배우 박은성. 갑상선 기능 저하증으로 당분간 모든 활동 중지.”
회귀 전 박은성은 이 시기에 갑자기 피로와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하지만 워낙 자신의 건강에 자신 있던 운동광이다 보니 올해 말이 되어서야 인생 처음으로 종합검진을 받는다.
그리고 그제야 피곤했던 이유가 갑상선 기능 저하증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다.
결국 박은성은 그 이후 꽤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고 한동안 연기도 쉬어야만 했다.
그러나 미리 말한다면 그의 자존심을 건드는 것이었기에 방법을 찾을 때까지 스케줄을 줄여 놓았다.
비록 그가 불만스럽게 생각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관우 엔터 매니저들이 박은성을 노리는 이상 최대한 빨리 그에게 건강검진을 받게 해야 했다.
더불어 백세기의 유혹도 물리쳐야했고.
그 순간 이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난 곧장 오덕구 팀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정윤호 실장 : 오 팀장님. 저 지금 양지선 씨를 데리고 MBS로 갑니다. 박은성 배우가 많이 흔들릴 수 있으니까 유심히 좀 봐주십시오. 백세기 실장이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오덕구 팀장 : 오케이. 그렇게 할게.]
난 까톡을 마친 뒤 승합차에 올라 MBS로 향했다.
* * *
MBS <전지적 관찰 시점> 촬영 현장.
<전지적 관찰 시점>은 배우와 매니저의 사이를 관찰하는 프로그램으로 오늘은 박은성과 에이스 엔터의 박유희가 게스트로 출연하는 중이다.
2시간 동안 촬영이 이어지던 도중 <전지적 관찰 시점>의 방상진 PD가 휴식을 지시한다.
“컷! 잠깐 쉬었다가 가지. 카페인이 부족해서 그런가 자꾸 집중이 흐트러지네.”
그 순간 박은성이 한숨을 푹 하고 내쉬며 의자에 기댄다.
“후우~ 아침부터 촬영이라 좀 힘드네.”
그때 곁에 있는 에이스 엔터 출신의 여배우 박유희가 슬쩍 말을 건다.
박유희는 올해 32살의 나이로 피트니스 모델로도 활동하는 건강미 넘치는 여배우였다.
“예~? 오빠가 이 정도로 힘들다뇨? 박은성 하면 체력으로 유명했잖아요.”
“야. 그것도 옛말이지. 40대가 되어 봐.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
“아~ 그래서 저기 오 팀장이 꼬박꼬박 보약을 챙겨주고 있구나.”
“그래. 우리 오 팀장이 신경 많이 써줘. 덕분에 내가 많이 편해졌지.”
그때였다.
박유희가 눈웃음 지으며 말을 건다.
“예전 블루 엔터에 있을 땐 엄청 바쁘더니 요즘에 피곤해서 그렇게 스케줄을 확~ 줄인 거예요?”
그 순간 박은성의 미간이 팍 찌푸려진다.
적게 일하고 더 벌게 된 건 더 좋은 일이다.
하지만 노출도와 인기도가 비례하는 연예계다 보니 프로그램이 줄었다는 후배의 말은 마치 한물갔다는 것처럼 들리고 있었다.
“야. 그래도 나 여전해! 버는 건 좀 더 벌고!”
“아~ 누가 뭐래요? 지금은 그렇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프로그램이 개편되면 확 빠질 수도 있을 거고······.”
“야 박유희. 내 걱정할 바에는 너나 신경 써!”
“오빤 기껏 걱정해서 말했더니 왜 화를 내고 그래요? 알았어요. 아무 말 안 할게.”
“에잇! 진짜!”
박은성은 괜히 기분이 상해 짜증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그러자 박유희는 세트장에 서 있는 백세기 실장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백세기에게 부탁받은 대로 박은성의 성질을 건드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백세기는 나중에 보답하겠다는 사인을 보낸 뒤 오덕구 몰래 화장실로 가는 박은성을 뒤따랐다.
박은성은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화를 달랬고 백세기는 그 모습을 보며 슬그머니 다가갔다.
“은성 씨. 유희가 절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좀 전해달라고 하네요.”
“아? 백 실장. 후우. 괜찮아요. 나도 괜히 짜증이 나서 언성을 높였으니······ 미안하다고 해줘요.”
백세기가 고개를 끄덕인 뒤 박은성을 달랜다.
“은성 씨 기분 저도 다 압니다. 프로그램이 줄어들었다는 데 좋아할 배우가 어디 있습니까? 윤호 그 자식. 배우가 이렇게 마음고생을 하는데 혼자만 4실로 가고. 자식이 기본이 안 됐어 기본이.”
그때 웃는 얼굴로 대하던 박은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잠깐만요. 여기서 정 실장 이야기가 왜 나옵니까?”
박은성은 프로그램이 줄어 짜증이 났지만 블루 엔터에서 구해 준 정윤호에게는 특별한 고마움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정윤호에 대해서 안 좋은 소리를 말하자 기분이 나빠졌다.
다만 불안한 것만은 사실.
정윤호의 곁에 있는 배우들은 하나같이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아 오르는데 자신만 여전히 그대로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화를 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백세기가 말한다.
“후우~ 은성 씨. 딱 까놓고 말하겠습니다. 저의 배우 3실로 오십시오. 저희 지금 S급은 차태훈 혼자뿐이라서 박은성 배우님을 전적으로 밀어드릴 수 있습니다. 출연할 만한 방송도 지금의 2배로 잡아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아직 박은성이 안 죽었다는 거 보여줘야죠. 예?”
박은성은 단독 푸쉬란 말에 흔들렸다.
하지만 애써 무시하고선 수건에 손을 닦으며 대답했다.
“아 됐어요. 사람이 양심이 있지! 난 정 실장이랑 이야기할 테니 가봐요.”
박은성은 더 있다가 백세기 실장의 말에 말릴 것 같았기에 서둘러 화장실을 나와 버렸다.
머리에서 생각을 지우려고 했지만 잘 지워지진 않았다.
연예계에서 인기란 신기루와 같아서 한번 사라지면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장실을 나선 순간 박은성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박은성 배우님!”
고개를 돌리자 오덕구 팀장 옆에 정윤호가 웃으며 서 있는 게 보인다.
“어······? 정 실장? 여긴 왜······.”
“아 오늘 임시로 양지선 씨를 제가 맡게 되어서 왔습니다.”
“양지선을?”
“예. 옆 세트장에서 촬영 중입니다. 촬영하는 동안 잠시 박은성 배우님 뵈러 왔죠.”
“아 그······ 그래?”
백세기 실장의 말에 흔들린 것이 부끄러웠기에 정윤호를 대하는 게 조금은 미안해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 그리고 온 김에 알려드려야 할 것도 있고요.”
그런데 그 순간 정윤호의 입에선 백세기가 한 제안을 싹 잊어버릴 정도의 제안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