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화
57. 미소야 울지마 1
최소혜와 만난 다음 날.
난 결국 병가를 내고 말았다.
“미친 인간들. 술이 물이야? 우욱······.”
온몸이 망치로 두드려 맞은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억지로 몸을 일으킨 나는 라면에 고춧가루와 콩나물 그리고 북어를 팍팍 넣고 끓인 특제 해장 라면을 만들어 속을 풀었다.
후루룩!
쫄깃하게 삶은 면발과 짭짤한 국물을 함께 흡입한 다음에는 역시 잘 익은 김치였다.
아삭!
시원한 김치를 곁들인 해장 라면을 다 비우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꺼억!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속을 진정시킨 뒤 시킨 뒤 곧장 집 근처 카페로 향했다.
유진이의 버거퀸 알바 시절의 팬카페 ‘천호동 얼짱 버거 소녀’의 운영자들을 만나 미소가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설득했다.
그때부터 운영진들은 두 팔을 걷어붙이고 돕기 시작했다.
그 결과 주강용 기자가 쓴 기사의 댓글은 팬클럽 회원들의 글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신인 여배우 J 씨의 사생활]
-J 씨의 고액 알바!!
-미성년자였던 J 씨 알바 만으로 한 달에 300만 원을 번 뒷사정.
(댓글)
-J씨라고 해놓고 정유진 사진 모자이크하면 모를 줄 아나?
-고액 알바? ㅋㅋㅋ. 어그로 쩐다.
-그러니까 정유진이 무슨 알바는 했는데 300 벌었다는 거야?
-정유진 천호동 버거퀸 알바 했음.
-제목만 보면 술집에서 일한 줄 알았는데. 그냥 버거 알바? 그런데 버거 알바로 어떻게 300이나 벌지?
-경쟁 점주들이 서로 스카웃 하려고 경쟁하다가 그렇게 됐대.
-에이. 역시 기레기네.
-사람 헷갈리게 하고 있어.
-난 또 뭐 대단한 거라고.
-‘천호동 얼짱 버거 소녀’ 카페에 가서 보세요. 거기에 해명자료 다 있음.
팬카페 회원들의 댓글 화력이 불을 뿜자 주강용의 기사는 생각보다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미소네 유치원 앞.
유진이는 모든 대응을 내게 맡긴 채 대본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기에 오늘은 내가 미소를 데리러 유치원으로 왔다.
차 안에서 기다리던 난 운전대에 턱을 괴고 투덜대는 중이다.
그런데 나올 시간이 넘었는데도 미소가 나오지 않았다.
“얘가 왜 안 나오지? 가 볼까?”
차에서 내린 난 유치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유치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씩씩대며 화를 내는 미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엄······ 이모는 그런 나쁜 사람 아냐!”
유치원 놀이터에는 머리에 커다란 분홍 리본을 단 여자아이가 미소를 비웃고 있었다.
미소보다는 머리 하나는 크다.
“시끄러워! 너희 이모 술집 나가는 거 맞잖아! 연예인들 다 그런다던데?”
분홍 리본의 아이 뒤로 두 명의 여자아이도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원장 선생님은 어딜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다.
미소는 억울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외쳤다.
두 손을 꼭 쥐곤 고개를 쭉 내밀면서.
“아냐! 우리 이모! 술집 안 가! 매일 밤에 나랑 놀아줘!”
“아 그래? 그러면 너 잠들면 그때 나가나 보지.”
순간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저런 말이 7살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순간 미소는 어찌나 화가 났는지 평소엔 하지 않는 말을 내뱉었다.
손가락으로 앞에서 여자의 분홍 리본을 가리키면서.
“너. 너! 분홍 리본 그거 하나도 안 어울려! 진~짜 안 예뻐!”
미소 나름대로 최고로 못된 말이다.
분홍 리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이익. 이 이게!”
화가 난 분홍 리본의 아이가 미소의 어깨를 거칠게 밀자 미소가 휘청대며 모래밭에 엉덩방아를 찍고 말았다.
저게 감히 미소를?
내가 어떻게 살렸는데!
난 얼른 달려가 미소를 일으켜 세우곤 요리조리 살폈다.
“미소야. 다친 데 없어?”
엉덩이를 찧었다 일어난 미소는 날 알아보곤 눈물을 글썽거렸다.
“흑흑. 삼촌~~. 우아아앙!”
참고 있던 미소의 눈물샘이 폭발해 버렸다.
“그래. 이제 괜찮아. 미소야.”
미소가 내 품에 안겨 왔다.
미소가 워낙에 서럽게 우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눈을 부릅뜨고 분홍 리본의 아이를 노려봤다.
“너 친구 이모에게 술집에 나간다니? 어디서 그런 못된 말은 배웠어?”
분홍 리본의 여자아이가 내 낮은 목소리에 겁을 먹었다.
분홍 리본 뒤에 있던 아이들은 딸꾹질하더니 쌩하고 도망쳐 버렸고.
하지만 분홍 리본의 아이는 홀로 남아서 지지 않으려는 듯 빽 하고 외쳤다.
“내 내 말이 맞아! 난 거짓말 안 해! 우리 엄마가 그랬어! 얼굴 반반한 연예인들은 다 밤에 술집 나간다고!”
몸을 부르르 떠는 걸 보니 어린 나이에도 분노 조절 장애가 있나 보다.
확 강제로 장애를 고쳐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난 어른의 인내심으로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건 너희 엄마가 잘 몰라서 그러시는 거야. 잘 나가는 연예인이 얼마나 바쁜데 술집을 가니? 너도 미소 이모가 드라마에 나온 거 봤지? 미소 이모는 잠잘 시간도 없을 정도로 엄청 바쁜데?”
내 말이 이어질수록 품에 안긴 미소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그리곤 큰소리로 외친다.
“맞아! 우리 이모 엄청 유명해! 대땅~ 잘 나가!”
미소가 이런 거로 큰소리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래 대한민국에서는 목소리 큰 게 짱이지.
분홍 리본은 그에 질세라 외쳤다.
“아냐! 우리 엄마도 연예계에서 일해! 아저씨 말 틀렸어! 우리 엄마 말이 맞아!”
분홍 리본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내게 외쳤다.
하지만 이미 기울어진 판이다.
“어? 너 울어? 울면 지는 건데?”
“아 아냐. 나 나 안 울어. 히끅히끅. 우에에엥엥!”
어른의 깐죽거림과 인내심이 승리를 맛보는 순간이다.
그런데 분홍 리본의 우는 소리가 유치원에 울려 퍼지는 순간.
저 멀리서 인상이 날카로운 여자 하나가 우리 방향을 향해 달려왔다.
“당신 뭐야! 우리 애를 왜 울려!”
하이 톤의 찢어지는 목소리다.
그런데······
아는 여자다.
분홍 리본이 곧바로 엄마에게 뛰어갔다.
“엄마~~!! 우아앙!”
“우리 공주! 누가 그랬어!”
분홍 리본의 엄마는 검은 정장을 입고 왁스를 바른 숏컷에서도 지적인 이미지가 물씬 풍겨왔다.
하지만 그녀는 외모와는 달리 지독히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진소미.
회귀 전.
그녀는 김동수의 모든 구린 뒤처리를 법적으로 처리해주던 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였다.
저 여자를 지금 여기 천호동에서 만날 줄이야.
김동수의 악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상종하지 못할 인간인데 말이다.
‘잠깐 공주라고 했지? 그렇다면 저 분홍 리본이 그 공주?’
애칭이 아니라 본명이 공주다.
진소미의 품 안에 안긴 여자아이는 나중에 탑 엔터테인먼트의 다국적 아이돌 ‘VIVA4’ 의 멤버이자 최고의 문제아가 된다.
진공주.
엄마와 성격도 꼭 닮은 데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이 소녀가 차후 유명 걸그룹의 리더라니.
회귀 전에도 엄마 백으로 엄청난 갑질로 유명했었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고 일단은 상황 정리가 우선이다.
난 만일을 위해 사 두었던 펜 모양 녹음기의 전원을 몰래 켰다.
자신의 딸이 다친 곳이 없는지 꼼꼼히 살핀 진소미가 내게 다가왔다.
“이봐요! 당신이 뭔데 우리 딸에게 윽박을 질러욧?”
뾰족한 음성으로 쏘아대는 진소미의 눈에 독기가 가득했다.
난 두 모녀를 바라보다 품에 안긴 미소에게 말했다.
앞으로 나올 대화는 교육상 안 좋으니까.
“미소야. 귀 막아.”
“응! 삼촌.”
“그리고 삼촌한테 안겨.”
“응! 삼촌.”
“미소 삼촌 말 다 들리지?”
“안 들려! 안 들려!”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는지 미소는 한쪽 귀를 열고 있었다.
하지만 재차 말하자 그제야 두 귀를 꼭 막고 품에 안겼다.
미소가 눈까지 질끈 감은 걸 확인하고서야 진소미의 말에 대꾸했다.
“그쪽 아이가 우리 미소를 먼저 밀쳤습니다. 그래서 훈계를 했을 뿐입니다. 때리거나 욕설을 하지도 않았고요. 자기 혼자 놀라서 운 것뿐입니다.”
“우리 공주가 쟤를 밀었다고? 얘가 얼마나 연약한데! 당신 함부로 거짓말하면 콩밥 먹을 줄이나 알아!”
연약 같은 소리하네.
우량아 선발 대회 나가도 1등 할 체구인데.
“흥! 그리고······ 설령 밀었다고 쳐. 그렇다면 걔가 우리 공주한테 먼저 나쁜 말을 했겠지! 딱 봐도 애가 되바라져 보이는 게 아주 그냥!”
미소 귀를 막길 잘했다.
안 그랬으면 미소가 얼마나 억울했을까.
진소미의 말에 한마디를 쏘아주려는데 저 멀리 원장 선생님이 다급히 뛰어나오고 있었다.
“미소 삼촌! 공주 어머니! 참으세요. 애들 보고 있잖아요.”
얼굴이 사색이 된 원장 선생님의 허리춤에는 끊이지 않은 휴지가 뱀 꼬리처럼 붙어 있다.
화장실에 있느라 못 왔나 보다.
성격 좋은 원장 선생님이 연신 사과를 했다.
하지만 진소미는 그런 걸 들어줄 위인이 아니다.
“원장 쌤. 유치원 분위기가 왜 이따위예요?”
“공주 어머니. 그러니까 그게······”
“진짜 내가 이래서 없이 사는 동네엔 오는 게 아니었는데. 우리 애. 오늘부터 여기 안 다닐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환불 해주세요!”
“고 공주 어머니. 그러지 말고······”
원장 선생님이 미안한 표정으로 연신 허리를 굽혔다.
하지만 난 더는 참지 못하고 진소미를 쏘아붙였다.
“듣고 있자니 정말 어이가 없네. 없이 사는 동네? 이 여자가 어린애들이 듣고 있는데 못 하는 말이 없네?”
“미소 삼촌. 참으세요.”
원장 선생님은 다툼이 커지기라도 할까 급히 내 옷소매를 붙잡았다.
“미소 삼촌? 아~. 아 그 술집 나가는 연예인의 매니저? 정유진이라고 했던가?”
‘감히 유진이를 뭐라고?’
순간 이마에 힘줄이 빠직하고 치솟아 올랐다.
이런 여자와는 아예 안 만났으면 더 좋았을 텐데.
난 진소미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조심하세요 진소미 씨. 아니. 진추자 씨였던가?”
진소미는 오랫동안 자신의 이름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변호사가 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자기 이름을 바꾼 일이라던가?
물론 지금으로부터 5년은 지나야 일어나는 일이다.
“어 어떻게······ 내 보 본명······을······ 너 너 뭐야?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아!”
당황한 진소미가 움찔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생전 초면인 남자가 숨기고 싶은 비밀을 안다?
당연히 무섭고 당황스럽겠지.
동시에 난 녹음기를 꺼냈다.
“방금 하신 말씀은 전부 녹음했습니다.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가는 유진이가 왜 당신에게 그딴 평가를 받아야 합니까? 예?”
한 발자국 다가가자 진소미가 한걸음 뒤로 물러난다.
자기가 한 말이 고소 사유가 된다는 것 정도는 알겠지.
순간 원장 선생님이 다시금 우릴 말렸다.
“미소 삼촌. 참으세요. 애들이 보고 있어요.”
아이들이 겁을 먹은 듯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보였다.
그제야 난 약간의 이성을 붙잡을 수 있었다.
“후우. 죄송합니다. 원장 선생님. 그래도 사과는 받아야겠습니다.”
진소미의 눈알이 팽그르르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은 역시나였다.
“어디 두고 봐! 당신 얼굴 똑똑히 기억해 둘 거니까!”
진소미가 날 향해 손가락질해댔다.
진소미는 이번엔 고개를 홱 돌려 원장 선생님을 쏘아붙였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환불은 계좌로 해 줘요!”
진소미는 그 말을 끝으로 공주를 유치원 밖으로 이끌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본명을 아는 날 힐끗힐끗 쳐다본다.
“가자! 공주야.”
“어 엄마. 지 진짜 가?”
“빨리 안 와?”
진공주가 엄마의 손에 끌려 유치원을 나섰다.
와 보길 잘했다.
내가 안 왔다면 미소가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을지 생각만 해도 온몸이 으슬으슬하다.
진소미가 신경 쓰이긴 하지만 당장 부딪힐 일은 사라졌으니 그 당분간은 안심이고.
두 사람이 유치원 밖으로 나간 순간 난 미소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조금 전 진공주의 뒤에 있던 아이들을 불렀다.
“거기 두 어린이.”
아이들이 살짝 겁먹은 표정이다.
“아 아저씨 잘못했어요.”
그래 니들이 뭘 알아서 그랬겠니.
진공주 같은 애들한테 휘말려서 그렇겠지.
“그래요. 미소네 이모는 엄청 착한 사람이니까 공주 엄마가 한 말 믿으면 안 돼요. 알겠죠?”
나긋나긋한 말투로 이야기하자 원장 선생님과 아이들이 안도한다.
“네!”
두 아이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연우와 지은이라는 아이가 조심스레 다가와 미소에게 사과의 손길을 내밀었다.
“미 미소야 미안.”
“나도 공주 편만 들어서 미안해.”
아이들은 금방 싸우고 금방 다시 친해진다.
미소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나름 경고를 한다.
“하지만 또 우리 이모 욕하면 나 진짜 화낼 거야!”
“응! 안 할게.”
약속하고 도장까지 찍더니 미소는 금세 아이들과 포옹하고 화해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본 원장 선생님의 안색이 펴졌다.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아뇨. 안 그래도 잘되었어요. 안 그래도 공주가 애들 분위기를 흐려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차라리 잘된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더 죄송하죠. 애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생긴 일이니까요.”
원장 선생님은 연신 내게 사과를 해왔다.
거기다 진공주가 나가서 다행이란 말도 해왔다.
“어머? 쟤들······”
원장 선생님의 시선을 따라가니 그사이 미소는 조금 전 두 아이와 손을 잡고 놀고 있었다.
‘저렇게 착해서야 원.’
그런데 그때 유진이의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 러블리.유]
큰일이다.
미소를 빨리 데리고 가기로 했는데.
난 미소를 달랑 들어 품에 안고선 차로 달렸다.
그리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서야 유진이의 전화를 받았다.
“어. 가고 있어. 차가 많이 막히네.”
-아 그래요? 죄송해요. 오빠. 천천히 오세요.
“어.”
전화를 끊는 순간 내 숨도 같이 끊어질 뻔했다.
“헉헉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