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화
56. 기자와 기레기 3
중간일보의 최소혜 문화연예부 팀장과 만나기 위해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사이 주강용이 쓴 새로운 기사가 올라왔다.
[신인 여배우 J 씨의 사생활]
-<아침이 간다> 현장 스케치.
-선배 박은빈과의 충돌?
-‘선배. 저 마음에 안 들죠?’라는 신인 여배우. 인기와 인성은 반비례?
(제보받습니다. 연예가 빅뉴스 주강용)
하여튼 제목 빨로 사람 낚는 건 도사급이다.
“어떻게 된 게 이 인간은 날이 갈수록 필력이 좋아져? 이 좋은 글빨로 소설가나 할 것이지 기레기 짓은 왜 하나 몰라.”
박은빈이 했던 발언을 유진이가 했다고 날조까지 하다니.
그나마 다행인 건 굴렁쇠 엔터의 홍보팀도 물량전을 펼치고 있었기에 주강용 기자의 기사가 연예 기사 상위 순위로 올라오는 일은 없었다는 거다.
난 연예 기사면을 위로 올려 1위부터 기사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의 첫 대본 리딩 현장. 배우들의 불꽃 튀는 연기 경쟁.]
[주영인과 정유진. 굴렁쇠 엔터의 쌍두마차 출격!]
[SBC의 야심작 <파란 하늘> 1월 30일 크랭크인!]
한참 기사를 확인하고 있는데 룸 밖에서 강지영 본부장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드르륵.
강지영 본부장과 함께 들어온 단발 정장에 숏컷의 미인이 룸에 들어서자마자 날 위아래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앞으로 한국 연예계를 쥐락펴락하는 거물이 될 최소혜 기자였다.
“이 사람이야?”
“응. 우리 회사의 기대주. 괜찮지?”
강지영 본부장의 말에 최소혜 기자가 킥킥 웃음을 흘렸다.
“야. 네 타입인데? 맞지?”
“무슨 헛소리야. 빨리 앉기나 해요!”
“근데 매니저라기보다는 연예인 지망생 같은데······”
“언니. 나 피곤해.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자니까. 온종일 걸어 다녔더니 다리가 팅팅 부었어.”
“까칠하기는······ 알았어 얘.”
최소혜 기자가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나 최소혜라고 해요. 반가워요.”
정통 일간지인 중간일보의 연예문화부에서 최연소로 팀장을 단 능력자인 최소혜는 강지영보다 한 살 위다.
또 그녀는 앞으로 3년 뒤 독립해 ‘스타 특종’이라는 회사를 설립한다.
결국엔 그 회사를 연예 신문사 중 1위로 만들어 내게 되고.
하지만 지금 최소혜 기자를 만나려는 건 그런 능력보다 그녀에게는 주강용을 매장시키고도 남을 정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서 자리에 앉았다.
한우 가격표를 보던 최소혜 기자가 강지영 본부장에게 따지듯 말했다.
“뭐야? 너무 비싼데? 이러면 김영란법에 걸리는 거 몰라?”
“이거 청탁 아니거든? 사회 정의 구현을 위한 제보를 하려고 부른 거야. 언니는 정보원이랑 밥도 안 먹어?”
“그래? 그러면 일단 소주부터 시켜.”
“대낮부터?”
“얘가 왜 이래? 원래 대한민국 기자라면 술 먹는 자리는 밤낮 안 가리는 거 몰라?”
강지영 본부장이 한숨을 쉬며 벨을 눌렀다.
“이 언니 페이스에 맞춰 마시면 또 저승 문턱 넘어갈 텐데.”
잠깐만.
천하의 ‘궤짝’이 저승 문턱을 넘는다는 둥 약한 소리를 한다고?
도대체 이 사람은 얼마큼 술을 마신다는 거지?
회귀 전에도 최소혜 기자와 직접 술을 마신 적은 없다.
하지만 강지영 본부장의 핼쑥한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오늘 두 발로 걸어 나가기는 그른 것 같다.
역시나 주문부터가 스케일이 달랐다.
일단 입가심으로 가볍게 소주 3병부터 시작하자고 하다니.
주문을 마친 최소혜 기자가 눈을 번뜩였다.
“기다리기 지루하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죠. 그쪽에서 날 보자고 했다면서요?”
“예. 기자님.”
“주강용 그 인간이 그쪽이 담당하는 배우를 건드리고 있다는 말은 듣긴 했는데 대응 기사를 써 달라고 하는 거라면 번지수 잘 못 짚었어요.”
아무리 연예면이 돈 받고 기사를 쓰거나 내리는 판이라지만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중간일보 정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렇게 체급이 큰 신문사들은 방통위의 감사를 심하게 받으니까.
“대응 기사 청탁이 아닙니다.”
“그러면?”
“기자님이 주강용의 범죄에 대해 취재하신 지 오래되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순간 최소혜 기자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아무리 찌라시라도 동료 기자에 대한 공격은 자제하는 게 한국 기자 판의 문화였으니까.
하지만 최소혜 기자는 그 문화를 무시하고선 선배 격인 주강용의 뒤를 캐고 있었다.
“어떻게 아는 거지?”
최소혜 기자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경계심을 드러낸다.
순간 강지영 본부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언니 너무 경계하지 마. 주강용 기자라면 충분히 그럴 만한 인간인 거 모르는 사람도 있어? 당연히 언니도 취재했을 거라고 내가 미리 말해 둔 거야.”
이미 강지영 본부장에게는 주강용 기자에 관해 언급을 했었다.
신입 여기자와 여자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벌인 범죄들을 말이다.
그중 몇 건은 강지영 본부장도 알고 있었기에 대화가 편했다.
“하긴······ 그 인간말종 새X가 저지른 짓이 어디 한둘이냐.”
그때였다.
드르륵.
“반찬부터 깔아 드리겠습니다.”
술과 반찬거리를 가져온 직원 때문에 잠깐 대화가 멈췄다.
최소혜 기자는 직원에게 고기는 잠시 후에 먹겠다고 말했다.
“그러면 반찬이랑 소주는 어떻게 할까요?”
“그건 먼저 주세요.”
직원이 나가자 최소혜는 내 잔에 소주를 따르곤 굳었던 얼굴을 풀었다.
“일단 한잔 마시고 이야기하죠.”
“예.”
그녀가 따라준 차가운 소주가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리자 정신이 번쩍 든다.
날 빤히 바라보던 최소혜 기자가 내게 다시 한잔을 내민다.
“한잔 더.”
꼴꼴꼴.
“오늘은 내가 밑천을 털리게 생겼으니까 이건 진짜로 김영란법 아닌 거예요?”
꼴깍.
난 태연히 잔을 비우며 답했다.
“전 그게 뭔지도 모릅니다.”
“오케이. 좋아요. 모르면 한 잔 더 받아야지.”
도대체 한 잔 받는 거랑 모르는 게 무슨 상관이람.
연달아 잔에 콸콸 따라지는 소주를 보며 난 속으로 생각했다.
안주 없이 술 안 마신다더니.
‘고기라도 좀 시키고 먹지!’
다시 한잔을 마신 직후.
최소혜 기자는 내 이야기에 답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모아놓은 기삿거리를 듣는 순간 소주의 쓴맛에 달콤함이 섞여들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대로.
그녀는 이미 주강용을 구속시키고도 남을 온갖 자료를 모아둔 상태였다.
* * *
머리가 징징 울리고 있다.
아니 몸이 흔들리는 거군.
누가 이렇게 사람을 흔드는 거야?
억지로 눈을 뜨고 게슴츠레 쳐다보니 최소혜 기자가 얼굴을 들이밀고 날 흔들고 있었다.
“정 스타~. 약속한 거다아~?”
“······.”
“정 스타~. 야~. 왜 말을 안 해? 죽었니?”
“······.”
“언니. 그만해. 이 사람 술 잘 못 마셔.”
“우리 지영이가 남자 편을 다 드네? 이 언닌 정말 섭섭하다. 둘이 같이 우아한 독신으로 늙기로 약속했으면서”
“아! 또 뭐래! 그리고 누구 혼삿길 막을 일 있어? 내가 언제 독신으로 늙는다고 했어! 하여튼 입만 열면 구라야!”
“이히히히. 천하의 강지영이가 남자 편을 든대요~. 얼레리 꼴레리.”
“으이구 저 빌어먹을 주사! 언니! 그만 좀 해!”
강지영 본부장의 뾰족한 투덜거림이 이어진다.
“시끄럽고 넌 정보 값이나 내놔.”
“아 그래서 고기랑 술 사잖아! 우우욱. 쏠려 죽겠네.”
“그거 말고!”
“아 그럼 뭐.”
“나도 끼워 달라고!”
겨우 정신을 차렸지만 정신을 잃은 척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최소혜 기자는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주강용 기자의 범죄 사실을 폭로하는 기사는 자신의 이름으로 쓸 거라는 선언이다.
두 번째는 피해자들의 소송 비용을 굴렁쇠 엔터가 감당 좀 해달라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항소가 들어오면 법무팀을 붙여 달라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우리 회사에서 나 안 지켜줄지도 몰라. 그니까 니가 책임져.”
강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돈이든 변호사든 우리 회사에서 커버해 줄게. 언니는 그 자료 넘겨.”
“오케이~.”
드디어 주강용 기자를 완전히 묻어버릴 카드를 손에 쥐었다.
어차피 그대로 놓아뒀다면 유진이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줬을 인간.
다행히 거래가 성사되었기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물론 그와 동시에 그대로 기절해 버린 건 두말할 나위가 없었고.
* * *
“뭐야. 씨X. 이것들이 돈이 썩어나나? 정유진 쉴드 치는 기사가 줄을 잇네?”
주강용은 어이없는 일에 맞닥뜨렸다.
고소를 피하려고 J 씨라 언급했지만 정유진을 검색하면 자신의 기사가 뜨게 몰래 설정을 해놓았다.
하지만 정유진의 이름을 검색하면 뜨는 기사량은 어지간한 탑스타를 방불케 했다.
그 탓에 자신의 기사는 아예 검색 결과 5페이지 안에는 보이지도 않았다.
“이것들이 진짜 나랑 한번 해 보자는 거야 뭐야?”
주강용의 이마 위로 굵은 핏줄이 치솟아 올랐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고.”
주강용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편집장실로 달렸다.
별도 사무실을 쓰는 고동민 편집장은 수영복인지 천 쪼가리인지 구분되지 않는 헐벗은 섹시 아이돌그룹의 리더 김은지의 모습을 보며 감탄사를 발하고 있었다.
“캬! 예술이 따로 있나? 이게 바로 예술이지.”
손가락을 까닥이며 눈을 모니터에서 떼지도 못하고선 말이다.
“인기가 떨어지면 얜 더 벗을지도. 크크크.”
고동민 편집장이 킬킬대면서 입술을 매만졌다.
하지만 어느새 편집장의 뒤로 온 주강용이 한숨을 내쉬었다.
“걔. 그 정도 수위가 끝입니다. 더는 안 벗어요.”
“으허허헉.”
고동민 편집장이 깜짝 놀라 마우스로 다른 탭을 눌렀다.
하지만 그 탭은 더 헐벗은 사진들이 가득했다.
“끄허허헉.”
마음이 급해진 고동민 편집장은 가까스로 인터넷 창을 모조리 닫아버렸다.
“씨X놈아! 놀래라! 너 도둑놈처럼 소리 없이 다가오지 말라고 했지! 새X야!”
고동민 편집장이 인상을 찌푸린 채 눈을 부라렸다.
“들어올 때 노크했고. 이름도 불렀습니다.”
“그 그랬냐? 잠깐. 근데 그건 뭔 소리야. 얘가 더 안 벗다니?”
“김은지. 2주 전에 제대로 된 스폰 물었어요.”
“누구?”
“재운 그룹 부사장요.”
고동민 편집장의 눈이 번쩍였다.
“그럼 그 기사 쓰게?”
섹시 아이돌그룹 ‘나인 레이디스’와 리더인 김은지의 스폰서 썰이라면 꽤 쓸만한 기삿감이다.
“아뇨. 그거 말고요. 지금 작업 중인 프로젝트에 홍보비나 좀 더 쏴 달라고요.”
순간 고동민 편집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 인마 회사 사정 몰라? 먹고 죽으려고 해도 돈 없어.”
“맨날 돈 없다고만 하시네. 있어도 없고 없어도 없고.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 정말 독립합니다?”
주강용이 다른 연예인과 기획사를 등쳐 회사에 넣어주는 돈만 연간 수억은 된다.
그걸 떠올린 고동민 편집장이 냉큼 안색을 바꿨다.
“어휴! 저놈의 성질머리하고는. 또. 말이 왜 그리로 튀냐. 돈 없다는 말은 습관적으로 나온 거고 우리 주 기자가 달라면 줘야지 암. 그래 얼마나 줄까?”
협박 한 방에 고동민 편집장은 태도를 싹 바꿨다.
“편집장님. 지금 내가 정유진 작업 들어간 거 알죠?”
“알지. 왜? 잘 안 돼? 천하의 주강용이 작업하는데 안 될 리가 없는데?”
주강용은 안색을 찌푸리곤 고동민 편집장의 컴퓨터로 현재 상황을 보여줬다.
“상대가 기사 폭탄을 던져서 암만해도 상위로 노출이 안 돼요. 이 상황 해결하려면 내 기사에 돈 좀 부어야 한다고요. 큰 거 한 장은 필요합니다.”
“큰 거라면······ 억? 야! 안 돼! 그 돈이면······.”
고동민 편집장이 큰소리로 외치자 주강용이 고개를 저었다.
“아 고막 나가겠네. 누가 1억이랍니까? 천만 있으면 됩니다. 늘어나면 3천까지. 그쯤이면 돼요.”
“아 그래? 진즉에 그렇게 좀 알아듣게 말을 하지.”
“그러면 내일 아침까지 제 계좌로 쏴 줄 거죠?”
고동민 편집장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았다. 대신 딴 데 빼돌리지 마라. 나중에 다 확인할 거야?”
“예이~.”
고동민 편집장에게 말을 끝낸 주강용은 휴게실로 가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씨X. 정유진. 1억 선에서 끊어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넌 3억 정도는 뱉어줘야겠다.”
찌라시 기사를 쓰는 목적은 간단했다.
기사를 내고 늘어난 조회 수로 광고주한테 돈을 받거나 혹은 연예인과 소속사에게 기사를 내려달라 돈을 받거나.
하지만 그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아 돈을 쓴 이상.
원래 받아내려는 돈보다 몇 배는 더 받아낼 생각인 주강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