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9화
549. 박상규 3
퍽!
고동혁의 복부에 내 주먹이 파고든다.
털썩.
고동혁은 다리가 풀려 그대로 무릎을 꿇어버렸다.
“컥······ 컥······.”
고동혁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하지만 난 그가 마음껏 아파할 겨를도 주지 않고 멱살을 잡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고개 들어.”
고동혁이 한 손을 내뻗으며 외친다.
“그······ 그만······ 내가 잘못······했어.”
“잘난 세 치 혀로 남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그만? 웃기고 있네. 누구 맘대로?”
난 이어서 고동혁의 옆구리로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강렬한 주먹이 옆구리를 파고든다.
“컥!”
최대한 조절을 했지만 흥분한 상태라서 그런지 힘이 조금 더 들어간 모양이다.
쿠당탕.
휴게실의 테이블에 충돌한 고동혁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고통을 호소했다.
“끄으으윽.”
고동혁이 아파했지만 미안한 감정 따위는 들지 않았다.
고동혁이 내뱉은 말 한마디는 사람이라면 해서 안 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난 싸늘한 표정을 지은 채로 고동혁에게 저벅저벅 다가갔다.
“엄살 부리지 말고 일어나. 남의 상처를 후벼팠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지. 안 그래?”
머리끝까지 화가 난 터라 높임말이 나오질 않는다.
그래도 한 줌의 이성이 남아 있어서 힘의 반에 반을 쓰는 중이었다.
고동혁이 앉은 채 뒤로 엉금엉금 물러난다.
“저 정 실장. 내가 잘못했다고 말했잖아. 진짜 반성하고 있으니까 이제 제발 그만······.”
웃기고 있네.
진짜로 반성할 사람이라면 애당초 박상규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을 일 따위를 거론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때였다.
휴게실 밖에서 간호사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보안팀 부르기 전에 당장 비켜요!
이어서 정상봉이 간청하는 소리가 들린다.
-자 잠깐만요. 하하하. 간호사님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정상봉이 왔으니 주먹은 이 정도에서 그쳐야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밝아지는 고동혁의 얼굴을 본 순간 단단히 경고해야겠다 싶었다.
간호사가 들어온다면 고동혁은 그들을 증인으로 삼고 날 고소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난 그 즉시 왼손으로 고동혁의 멱살을 꽉 하고 틀어쥐었다.
“컥컥······.”
난 바둥거리는 고동혁에게 따끔히 경고했다.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고동혁. 만에 하나 여기서 있었던 일이 밖으로 새 나가면 당신이 이형주 박희정 최민태한테 사기 친 거 싹 다 고소하게 만들 거야. 어차피 걔들도 내가 스카우트할 거니까 더는 네 말도 안 들을 거고.”
내가 말한 배우들은 고동혁이 엔터테인먼트에 소개를 해줬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방출당한 배우들이었다.
하지만 난 그들의 진짜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박상규를 영입한 다음 그들도 영입할 생각이었다.
멱살을 잡힌 고동혁의 시선이 안절부절못한다.
“걔 걔들을 어 어떻게 알고서······.”
“그건 알 것 없고. 그러니까 앞으로 혓바닥 간수 잘해. 허튼짓하면 내가 다시 널 찾아갈 거야. 알았어?”
난 오른 주먹을 꼭 쥐고 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순간 고동혁이 움찔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저 절대로 아무 말도 안 하겠습니다! 맹세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상규 형님 앞에 나타나지도 말고 이 업계도 떠나! 알았어?”
고동혁이 두 손을 싹싹 빌며 말한다.
“예! 약속합니다. 앞으로 절대 연예계 일은 안 하겠습니다!”
그제야 난 잡은 멱살을 놓았다.
탁.
고동혁이 숨을 몰아쉰다.
“간호사들 들어오니까 일어나 있어.”
고동혁은 아픈 기색을 참은 채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내게서 멀찍이 떨어진다.
벌컥.
휴게실의 문이 열리며 간호사와 정상봉이 들어온다.
어질러져 있는 휴게실을 보고 간호사가 버럭 외친다.
“지금 뭣들 하시는 거예요! 여기 병원이에요!”
난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죄송합니다. 잠깐 넘어져서 그만.”
내가 허리를 굽힌 순간 박상규와 정상봉도 다급히 허리를 굽힌다.
얼떨결에 뻣뻣하게 있던 고동혁까지 고개를 숙이자 수 간호사로 보이는 사람이 째려보며 말한다.
“하아~ 이번 한 번만 봐 드릴게요. 그리고 면회 끝났으니까 환자 보호자 빼고는 전부 다 나가세요.”
“아 예!”
그때 박상규가 다급히 수 간호사를 향해 외친다.
“수 간호사님. 여기 정 실장님이 제 독지가이십니다. 잠깐만 잠깐만이라도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해 주십시오.”
“410호 환자분 병원비 대줬다던 독지가가 이분이라고요?”
“예.”
수 간호사가 날 위아래로 쳐다본다.
“알았어요. 그러면 이분만 남고 다 나가세요.”
다행히 박상규와 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상봉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동혁을 데리고 나간다.
이어서 간호사들까지 그 뒤를 따라나섰다.
순간 박상규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고동혁이 뿌리고 간 독설의 여파가 컸는지 가슴을 부여잡은 박상규의 눈에는 굵은 눈물이 맺혀 있다.
“상규 형님.”
박상규가 애써 울음을 참고 대답한다.
“고맙습니다. 저 대신 나서주셔서요. 정 실장님 아니었으면······ 진짜 그 새X. 가만 안 뒀을 겁니다.”
난 박상규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배우의 매니저라면 당연히 해야죠. 그리고 앞으로 주먹을 날리는 건 매니저에게 맡기십시오.”
배우가 폭행 사건에 휘말리면 엄청난 불이익을 당한다.
몇 개월 동안 활동하지 못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광고주들에게 집단 소송까지도 당할 수 있다.
자칫 연예계에서 은퇴를 당할 수도 있고.
그럴 바에는 매니저들이 총대를 메는 게 좋다.
박상규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예. 그리고 이제 말씀 좀 편하게 하세요. 저는 형님이라고 부르는데 형님은 정 실장이라고 높여 부르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냥 윤호라고 불러주세요.”
박상규가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어······ 그래······윤호야.”
말을 편하게 놓았지만 여전히 박상규의 표정이 어둡다.
고동혁이 과거 교통사고가 박상규 탓이라고 말한 여파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미래 이야기로 기운을 차리게 해줘야겠네.’
난 폰을 꺼낸 다음 내 다이어리 속 일정 하나를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2.1]
[날짜 : 2021년 12월 24일]
-PM 02:00 희망 병원 면회. (이사연 형수님 자연 회복. 선물 챙길 것.)
올해 말.
이사연은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한다.
그런데 이후 알게 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이사연은 처음 2년간은 전혀 의식이 없었지만 2021년에 들어서는 의식을 조금씩 찾기 시작했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비록 남편의 말을 듣고 이해도 할 수 있었지만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었다면서.
포기할 만큼 절망스러웠던 시간이었지만 이사연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남편의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 끝없이 노력했다고 한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눈꺼풀과 손가락 그리고 발가락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고 애를 쓰면서.
난 박상규에게 힘을 주기 위해 그때의 일을 마치 내가 아는 사람이 겪은 것처럼 말해 주기 시작했다.
“형님. 제가 아는 분 이야기인데요······ 형님처럼 아내가 식물인간이셨다가 깨어나신 분이 계세요.”
박상규의 눈이 큼지막해진다.
“저······ 정말?”
“예. 몸만 못 움직였지 말도 듣고 의식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누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환자의 보호자들은 가느다란 희망이라도 붙잡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 정도 이야기만으로도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박상규가 내 손을 덥석 붙잡고 묻는다.
“어 어떤 병원에서 치료했다는데? 거기가 어디야?”
“아뇨. 병원에서는 포기했어요. 대신 남편분께서 엄청 노력하셨다고 하더라고요. 매일 아내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돌아오라고 귓가에 사랑 고백을 하셨대요. 그러다 보니깐 1년이 채 가기 전에 정신을 차리셨다고 하던데요?”
“지 진짜로 그 그게 도움이 됐대?”
“예. 의식이 있다 보니 상당히 자극되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내가 우리 남편한테 빨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던데요?”
내가 지금 하는 이야기는 회귀 전에 박상규와 이사연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박상규의 눈에는 점점 기대가 어린다.
“형님. 그러니까 누님부터 한번 뵙죠. 제가 보고서 혹시라도 그 형님 내외분께 상황을 말해 볼게요. 뭔가 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회귀 전에는 모두가 이사연이 의식을 되찾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이사연이 보낸 신호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난 이번엔 이사연이 보내는 신호를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
전문 간병인도 따로 두고 말이다.
내 말에 기운을 차린 박상규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그래. 그렇게 하자. 그리고 이참에 나 계약됐다는 것도 자랑하고.”
“그러시죠.”
“그러면 오늘부터 잘 부탁할게. 윤호야······ 아니 내 매니저.”
난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배우님.”
난 조금은 밝아진 박상규와 함께 410호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구로 희망병원의 410호 병실.
6인실에 있는 TV에는 <화란전>의 예고편 1화가 재방송 되고 있었다.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유진이와 미소의 발랄한 모습을 보며 저마다 소감을 늘어놓는다.
“유진이 쟨 미소랑 있을 때가 제일 얼굴이 밝아 보여.”
“그러게. 그나저나 진짜 둘 다 어쩜 저리 예쁘지?”
“거기다 둘 다 연기도 잘하잖아.”
“그럼. 그럼~ 요즘 쟤들 나오는 연기 보는 맛에 산다니까?”
유진이와 미소에 대하여 칭찬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괜스레 매니저인 내 어깨도 으쓱거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박상규와 함께 병실로 들어가자 보호자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상규 씨. 왔어?”
“근데 이 잘생긴 총각은 누구야? 왠지 낯이 익은데?”
“아 이분은······.”
그때 4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날 보며 손뼉을 짝하고 친다.
“어머머! 저 양반. 정유진이랑 이태풍 매니저이잖아.”
“아 맞다. 연말 시상식에 나온 그 얼짱 매니저?”
“맞네 맞아!”
“세상에! 우리 병실에도 스타가 다 방문하네?”
“매니저 총각. 유진 씨 화장품 뭐 써요?”
“유진이 머릿결이 좋던데 샴푸는 뭘 써?”
졸지에 스타 대접을 받게 되자 조금은 어색했다.
난 어색하게 웃으며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대답했다.
“유진이는 진짜 예뜨랑만 씁니다. 머리카락에 윤기가 나는 건 샵에서 관리를 받다 보니 그런 거고요.”
“그게 정말이면 나도 당장 예뜨랑을 써야겠네.”
“나도. 나도.”
그때 방에서 가장 나이 많아 보이는 3번 침대 할머님이 보호자들을 진정시켰다.
“자자. 다들 수다는 그만 떨지. 보아하니 우리 사연 씨 병문안을 온 거 같은데 방해하지 말자고.”
“이그~ 알았어요.”
“하도 신기해서 잠깐 말 붙여봤어요 언니.”
“그럼. 우린 입 꾹 닫고 있을게요~”
순간 환자와 보호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어 준다.
그러자 3번 침대 할머님이 우릴 보며 웃음을 짓는다.
“걱정하지 말고 인사 나누셔. 우린 신경 쓰지 말고.”
“감사합니다.”
짧은 인사를 나눈 뒤 그제야 박상규와 함께 병실의 가장 안쪽으로 향했다.
창가 쪽에 있는 박상규의 아내는 호흡기를 달고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식물인간이라도 낮에는 이렇게 눈을 뜨고 지내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사연의 몸 상태가 좋다.
보통 2년간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는 사람은 몸을 가누지 못해 살도 찌고 몸 상태도 별로고 지저분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박상규가 얼마나 애지중지 마사지하고 관리를 해줬는지 약간 살이 붙은 것 말고는 예전에 봤던 모습과 큰 차이가 없었다.
박상규가 이사연의 손을 잡으며 내게 들은 이야기부터 하기 시작했다.
“여보. 나 굴렁쇠 엔터에 들어가게 됐어. 요즘 제일 유명한 정유진 씨 담당 매니저가 날 맡아 준대. 잘됐지?”
박상규가 아내의 손을 마사지해주며 울음 섞인 말을 꺼낸다.
“그리고······ 말이야. 당신처럼 고생하다가 멀쩡하게 회복하는 사람이 있대. 몸이 안 움직여도 의식은 있다나? 그러니까 당신도 내 목소리 듣고 힘내. 내가 꼭 성공해서 당신 호강시켜줄게. 그러니까······ 일어나자 사연아. 알았지?”
나 역시 이사연의 곁에서 이야기를 꺼냈다.
“안녕하십니까 사연 누님. 예전에 극장에서 한 번 뵈었습니다. 상규 형님의 매니저를 맡게 된 굴렁쇠 엔터 정윤호라고 합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녀가 깨어있다고 생각하고 마치 대화를 하는 듯 말이다.
“아 그리고 제 입으로 말하기는 좀 부끄럽지만 제가 요즘 엔터 업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매니저입니다. 그러니까 상규 형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반드시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곁에 앉은 박상규가 맞장구를 친다.
“사연아 들었지? 나 이제 진짜 배우가 될 거야. 그러니까 너도 얼른 일어나서 내가 연기하는 거 봐야지. 나 TV에 나오는 거 진짜 보고 싶어 했잖아? 그치?”
그때 등 뒤에서 숙덕이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고~ 짠한 거. 그냥 확 털고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그러게나 말이야.
-처자가 빨리 훌훌 털고 일어나서 남편 웃는 거 봐야 할 건데······.
-선남선녀인데 참 하늘도 무심하시지.
같은 병실을 쓰던 사람들이 박상규의 눈물을 보고 안타까움에 한소리를 한다.
난 그 이야기들을 다 들으며 이사연에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병원비는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병원비는 저희 회사가 다 부담할 테니까 사연 누님은 낫는 것만 집중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일어나시면 제가 직접 결혼식장도 알아봐 드릴게요. 훌훌 털고 일어나셔서 못한 결혼식을 하셔야죠.”
박상규와 이사연은 혼인 신고만 했을 뿐 결혼식은 비용 문제 때문에 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난 회귀 전 이사연이 그토록 꿈처럼 바랐던 결혼식을 언급했다.
혹시나 이사연이 조금이라도 일찍 회복될까 하는 마음에서 말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깜-빡.
이사연의 눈이 보통 때보다 훨씬 천천히 깜빡인다.
‘어? 내가 잘못 봤나?’
회귀 전 그녀가 진짜 의식을 되찾은 건 이맘때쯤이었다.
그러나 눈꺼풀이나 손가락을 의지대로 움직인 건 크리스마스이브였다.
그때였다.
그녀가 또 한 번 눈을 천천히 깜빡인다.
깜-빡.
순간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한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녀가 일부나마 자기 몸의 통제권을 찾았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회귀 전에는 손가락부터 움직였었는데 그때부터 그녀는 빠르게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었다.
난 그 기억을 떠올리며 들뜬 심정으로 에브리데이의 일정을 확인했다.
그녀가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게 맞다면 그녀에 관한 일정이 삭제되었을 테니까.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