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화
54. 기자와 기레기 1
신사동 연예가 빅뉴스 본사.
보통 연예 신문사들은 극히 영세하다.
하지만 연예가 빅뉴스는 신사동의 5층 빌딩 하나를 단독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구성원들이 모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번 덕분이다.
그중 3층 가장 좋은 곳에 자리를 앉은 주강용 기자는 요즘 핫하다는 정유진에 관한 찌라시 기사를 작성했다.
그 정도로 예쁘면 학폭 사건 하나쯤은 연루되어 있을 게 뻔했으니까.
[신인 여배우 J 씨. 그녀의 사생활]
-<아침이 간다>가 낳은 가장 핫한 신인 여배우 J 씨가 사실은 일진?
(J 씨에 관한 기사를 제보받습니다. 연예가 빅뉴스 주강용)
“어디 보자. 제보가 왔나?”
주강용은 자신의 이메일 계정을 열었다.
하지만 수신함을 보곤 인상을 찌푸렸다.
[(발신자 : 박은영) 유진이의 친구입니다. 유진이는 학창 시절 너무도 착했던······]
[(발신자 : 최민주 선생님) 유진이는 타에 모범이 되는······]
[(발신자 : 정우람) 저는 지체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진이의 도움으로 고등학교 시절을 잘 보낼 수 있······]
“아. 재수 없게. 정유진이 무슨 성모 마리아라도 되는 거야 뭐야? 기사로 쓸 게 하나도 없네. X발. 반반하게 생긴 주제에 뭐 이리 얌전해?”
자극적인 제보를 바라고 과거를 캤지만 쓸 만한 제보 하나 건지지 못했다.
이건 뭐 담배나 일진이나 학폭이나 뭐 하나 얽힌 것 하나 없고 다들 도왔단 이야기뿐이니.
요즘 핫한 배우를 타깃으로 삼고 다음 기삿거리로 정했는데 괜히 맥만 빠지는 기분이다.
배우의 선행은 재미도 없고 돈도 안 되니까.
그때 옆 좌석에 앉은 조교인 기자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왜? 스토리가 안 나와?”
“어. 하나 정도는 걸릴 줄 알았는데······ 도저히 와꾸가 안 나오네. 외모만 보면 일진 클럽에 들어갈 필인데. 조 기자 요샌 이쁘고 돈 많아도 일진이지 않냐?”
“그래. 우리 때랑은 다르지. 건달 같은 애들 말고 잘생기고 이뻐도 일진 한다더라. 세상 많이 변했지.”
“강남에서는 학생회장도 일진들이 한다고 하던데? 맞지?”
“크크크. 그래서 선생들도 걔들한테는 손도 못 댄다잖아. 엄빠의 지원 빵빵하게 받는 금수저 애들은 선생들에게 욕 한마디만 들어도 바로 변호사한테 전화부터 때린대.”
주강용 기자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쌍욕을 내뱉었다.
“X나게 부럽네. 부모 덕 보는 것들은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극도로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기에 부모를 잘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만 나와도 혈관이 터져나갈 듯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주강용이다.
자신에게 부모란 민폐만 끼치는 대상일 뿐이었으니까.
그때 조교인 기자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근데 정유진 걔. 천호동 얼짱 알바 시절에······ 부모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잠깐······ 부모가 없다고?”
순간 주강용 기자의 입술 위로 야비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머릿속으로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니까.
그 모습을 본 조교인 기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 이 새X. 또 그 짓 하려고? 야. 어려운 애들 아픈 곳을 건드리는 건 인간적으로 좀 아니지 않냐?”
“새꺄. 네가 그러니까 돈을 못 버는 거야. 우리가 무슨 민족 정론지냐? 우린 인마 대중들이 원하는 걸 살살 긁어서 씹을 거리를 주는 사람들이라고.”
“에휴. 난 모르겠다. 알아서 해라.”
조교인 기자도 기레기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그래도 넘지 않는 선이란 게 있다.
하지만 주강용은 달랐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물어뜯는 미친개 인간말종.
그게 바로 주강용이었으니까.
그때였다.
띠리리링.
주강용 기자의 폰이 울렸다.
“누구지?”
전화를 받은 주강용 기자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 예. 연예계 진실을 탐구하는 최고의 신문사 연예가 빅뉴스 주강용입니다.”
터무니없는 수식어로 회사를 소개한 주강용은 전화를 걸어온 사람의 목소리에 반색했다.
“아 예. 김 실장님. 웬일로? 예?”
전화를 걸어온 상대는 다름 아닌 굴렁쇠 엔터의 김동수 실장.
가끔 협력 관계를 맺고 있던 그가 정유진에 관한 몇 가지 소스를 넘겨주고 있었다.
스토리가 나오지 않아 근심 걱정이 가득하던 주강용 기자의 얼굴에 큰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전화를 끊은 주강용 기자가 웃음을 지었다.
“크크킄. 됐어. 김 실장 이 인간이 날 살려주네.”
“왜? 뭔데?”
조교인 기자가 물어왔지만 주강용은 고개를 저었다.
“네 기사나 써. 인마. 남의 밥그릇 탐내지 말고.”
“와. 이 인간 봐라? 또 혼자 다 먹으려고?”
주강용이 씨익 웃었다.
“나중에 기본 뼈대 잡으면 보조 기사 쓸 수 있게 붙여 줄게. 그때 떨어지는 뽀찌나 좀 먹어.”
그러자 조교인이 웃었다.
“그래? 그런 거라면······ 맡겨만 줘.”
찌라시 기사도 여러 명이 쓰면 파급력이 커진다.
그리고 그때엔 상대 엔터 회사로부터 뜯어낼 돈도 커지게 된다.
더 막장 기사를 보고 싶지 않으면 돈을 내놓으라는 협박이 통하려면?
적어도 이건 세 명 이상이 기사 돌림을 해야 했다.
분명히 이번 건은 큰돈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떠오르는 샛별을 자근자근 밟을 수 있는 쾌감은 덤이고.
* * *
지하주차장에 차를 댄 나는 다이어리를 확인한 후 연예 기사를 살폈다.
그런데 유진이에 관한 찌라시 기사가 하나 올라와 있었다.
[신인 여배우 J모 씨. 그녀의 사생활 (주강용 기자)]
-<아침이 간다>가 낳은 신인 여배우 J모 씨. 사실은 일진?
“이 미친놈은 회귀 전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또 이러네?”
회귀 전.
놈은 가스 사고로 인한 가슴 아픈 사연으로 이슈를 모은 유진이를 먹잇감으로 삼았다.
이번 삶에서는 그런 일은 미리 막았지만 좋은 연기와 광고로 화제를 모았기에 그게 또 놈의 시선을 끈 모양이다.
난 급히 다이어리를 넘겨 주강용에 관한 일정을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0]
[날짜 : 2020년 2월 7일]
-AM 10:00 연예가 빅뉴스 주강용. 유진이 관련 일진 낙태 찌라시 유포. 전체 대책 회의.
여전히 그때의 일정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 말인즉슨.
이번에도 주강용은 그 끔찍했던 기사를 낸다는 뜻이다.
당시에 얼마나 화가 났던지 주강용이 냈었던 기사 타이틀도 기억하고 있다.
[최근 가스누출 사고로 사망한 M 양(5세)은 신인 배우 J 씨의 친딸로 드러났다.]
[J 씨. 고등학교 시절 임신으로 자퇴.]
[애를 가지지 못했던 J 씨 언니 부부가 입양. 친딸을 조카로 위장.]
[죽은 딸의 친부라 주장하는 K 씨와의 전격 인터뷰!]
당시 난 미소의 죽음 이후 배우 3실 소속으로 이직했었기에 아무런 대처를 할 순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주강용이 연일 터트릴 기사의 내용을 알고 있으니 최대한 빠르게 손을 써 막을 생각이다.
“주강용. 이번엔 네 뜻대로 안 될 거다.”
난 폰을 넣고 곧장 사무실로 뛰어 올라갔다.
* * *
구성철 실장의 방으로 들어가 내가 찾은 기사를 내밀었다.
“실장님. 이것 좀 보시겠습니까?”
구성철 실장이 기사를 읽곤 인상을 찌푸렸다.
“하여간 이 인간말종들 또 시작이네. 알았다. 홍보팀에 연락해 두마.”
“아뇨. 유진이는 물면 물릴 게 하나 있습니다.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당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라니?”
“기억 안 나십니까? 유진이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 회사에 돌았던 소문 말입니다.”
“유진이에게 딸이 있다는 그거?”
유진이는 우리 회사에 오자마자 미소가 사실은 딸이 아니냐는 소문에 휩싸인 적이 있다.
강감찬 대표가 나서서 조카라고 소문을 차단했지만 그 내용이 찌라시로 터진다면 위험하다는 걸 알아차린 구성철 실장이다.
“예. 인간말종 주강용. 아시잖습니까? 침소봉대해서 소설 쓰는 거.”
거기까지 들은 구성철 실장은 이제야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눈치다.
“이건 홍보팀 선에서 처리될 문제가 아니구나. 본부장님한테 보고하마.”
다행히 내 의견이 빠르게 먹혔다.
구성철 실장은 곧장 강지영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파했다.
이야기를 들은 강지영 본부장은 즉각 대표이사실로 구성철 실장과 날 불러들였다.
대표이사실로 올라가자 강감찬 대표와 강지영 본부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회사 확장을 위한 일본과 중국에 관한 자료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대표님 저희 왔습니다.”
강지영 본부장과 이야기 하던 강감찬 대표가 자리 한쪽을 가리켰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강감찬 대표가 입을 열었다.
“주강용 그 인간말종이 유진이 기사를 내기 시작했다며?”
“예. 여기입니다.”
구성철 실장은 태블릿으로 주강용의 기사를 펼쳤다.
“하필이면 걸려도 이놈이냐. 골치 아프게 생겼네. 똥 묻었다.”
강감찬 대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측에 앉은 강지영 본부장이 굳은 표정으로 의견을 제시했다.
“대표님. 직접 만나서 기사 내리는 협상을 해 보는 건 어떠십니까? 어차피 돈 때문에 이러는 거 같은데······.”
강감찬 대표가 잠깐 고민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주강용 그놈은 상대가 약하게 보이면 대번에 뭔가 있다고 생각하고 더 비싸게 무는 놈 아니냐? 일단 법무팀 대비시키고 홍보팀 써서 반박 기사 준비시켜.”
“예. 대표님.”
강지영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이 정도로 그칠 일이 아니다.
회귀 전 녀석이 유진이에게 보였던 집요함은 상상을 초월했으니까.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내 다이어리의 일정은 그대로고.
난 호흡을 가다듬고 강감찬 대표에게 말했다.
“대표님.”
“응?”
“차라리 이번 기회에 터트리시죠.”
“그걸?”
강감찬 대표와 나 사이에 대화가 이어지자 강지영 본부장과 구성철 실장이 고개를 갸웃한다.
“지금 무슨 이야기 하는 겁니까?”
잠깐 고민에 빠졌던 강감찬 대표는 미소가 사실은 유진이의 딸이란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실은 유진이가······”
강감찬 대표가 유진이의 인생사를 이야기하자 구성설 실장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다시 들어도 먹먹해지는 이야기다.
부모를 잃고.
언니 부부를 잃고.
친척들의 반대 속에 홀로 남은 미소를 입양하기까지.
이야기가 끝나자 두 사람의 표정이 대번에 변했다.
“그렇다면 주강용이 만약 찌라시로 미소가 딸이라고 쓴다면 그건 사실이 되는 거잖습니까?”
“결과론적으로는 그렇지. 조카였던 미소는 지금 현재 유진이의 딸이니까.”
구성철 실장이 머리를 벅벅 긁는다.
“이러면 우리가 너무 불리하네요.”
반면 강지영 본부장은 차가운 음료수를 마시며 생각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때였다.
구성철 실장이 짐짓 나무라듯 내게 말한다.
“윤호 넌 언제부터 알고 있었냐? 그리고 이런 일이 있으면 진즉에 말했어야지!”
구성철 실장은 고개를 돌려 강감찬 대표에게도 투덜거렸다.
“대표님도 참 너무하십니다. 적어도 저한텐 미리 말씀해 주셨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 진짜 섭섭합니다.”
강감찬 대표가 고개를 저었다.
“유진이가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부탁한 사항이야. 윤호 저놈은 내가 알려준 게 아니라 스스로 알아낸 거고.”
그 사이 생각을 마친 강지영 본부장이 입을 열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대표님. 대응이 더 중요합니다.”
“안 그래도 이런 일이 있을까 싶어서 준비한 게 하나 있다.”
강감찬 대표는 미리 준비한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KBC 휴먼스토리의 나 PD와 유진이에 관한 다큐를 찍자고 미리 합의를 했거든.”
“어? 그거 괜찮은데요?”
유진이의 지난 삶은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도 될 만큼 좋은 소재였다.
더군다나 공중파의 다큐멘터리라면 연예 신문사가 터트리는 찌라시보다 훨씬 더 파급력이 있었고.
강감찬 대표가 왜 자신만만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지금 촬영하면 2주 안에는 방영 가능할 거다. 좀 빡빡하긴 하겠지만 대응할 정도의 스토리는 뽑을 수 있겠지.”
강감찬 대표의 말이 끝나자 강지영 본부장이 즉각 동의했다.
“시간이 촉박하긴 하지만 저도 찬성입니다.”
모두의 의견이 하나로 뭉쳐지고 있었다.
주강용 기자와 협상하기보단 제대로 된 이야기로 정면으로 싸워 보자는 쪽으로.
하지만 나에게는 한 가지 더 좋은 수가 있었다.
난 강감찬 대표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표님. 제게 쓸 만한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뭔데?”
그때부터 난.
잠시 탑 엔터테인먼트의 부사장 정윤호가 되어 비장의 플랜을 프레젠테이션하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이어진 내 이야기를 들은 세 사람의 눈에는 황당 어이없음 그리고 기대가 어리기 시작했다.
“좀 세긴 한데. 확실히 마무리하려면 그게 좋겠다. 그렇게 하자.”
“준비하겠습니다.”
회귀 전에는 싸워 보지도 못했던 인간말종 주강용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