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6화
536. 한소진 2
박예영 스타일리스트는 내가 들어올 때부터 문 쪽으로 폰 카메라를 향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체리블라썸이 무릎을 꿇고 있는 동영상도 녹화되었을 가능성이 상당했다.
그러니 내가 만약 그 영상을 언론에 공개하면 한소진의 연예계 생활은 그걸로 끝이었다.
디바 한소진과 오인정 매니저의 손을 잡고 있던 난 두 사람의 손을 놓고 폰으로 촬영 중인 박예영 스타일리스트에게로 향했다.
동영상으로 우리를 촬영 중이던 박예영 스타일리스트가 뒷걸음질을 친다.
하지만 작은 대기실이다 보니 그녀는 금세 내게 잡혀 폰을 뺏겨 버렸다.
덥석.
“아 안 돼요!”
난 박예영 스타일리스트의 말을 무시하고 폰을 확인했다.
내 생각대로.
현재 이 상황을 녹화 중이라는 메시지가 액정에 떠 있다.
[동영상 녹화 중 : 5분 10초]
‘역시!’
녹화 시간이 5분이 넘어간다는 건 체리블라썸이 무릎을 꿇은 상황까지 녹화됐다는 소리다.
난 그 즉시 녹화를 멈추고 동영상 파일을 저장했다.
[동영상 녹화 종료 : 5분 13초]
순간 내 등 뒤로 한소진과 오인정 매니저 그리고 박예영 스타일리스트가 폰을 뺏으려고 덤벼든다.
“뺏어!”
“잡아!”
“내놔요! 내 폰!”
난 그 즉시 몸을 돌려 벽 쪽으로 향했다.
벽과 나 사이에는 조그만 공간밖에 남지 않게 밀착한 난 녹화된 영상의 맨 앞부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5분 13초 전.
체리블라썸이 대기실에 들어오는 장면부터 녹화되어 있었다.
-선생님 사인 좀 해주세요.
영상에서는 세리가 한소진 가수를 보자마자 들뜬 표정으로 인사하는 장면이 보인다.
솔로 가수로 데뷔하게 될 세리에겐 20년간 디바였던 한소진이 우상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리가 가슴에 꼭 품고 있던 사인 용지와 펜을 내미는 순간 한소진은 미친 X처럼 세리의 손을 뿌리쳐버렸다.
세리의 사인 용지와 펜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야! 니들은 내가 무대 전에 사인하면 무대 망한다는 징크스 있는 거 몰라?
한소진이 있지도 않은 징크스 핑계를 대며 화부터 낸다.
놀란 세리가 바들바들 떨며 연신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서 선생님. 모 몰랐어요.
-모르면 다야? 그리고 니들은 선배가 왔으면 알아서 재깍재깍 무대도 바꿔주고 해야지······
무대를 바꾸지 않은 것까지 걸고넘어지며 체리블라썸을 몰아세우는 한소진이었다.
체리블라썸과 매니저들이 사과하며 수습하려 했지만 한소진은 더욱 거칠게 몰아세웠다.
-요즘에는 사과를 똑바로 서서 하나 보다? 나 때는 선배님 앞에서 잘못했을 땐 무릎부터 꿇었어!
고막이 나갈 듯한 고성에 어린 세리가 놀라서 무릎을 꿇으며 사과를 시작한다.
-죄송해요 선생님. 화나게 하려는 건 아니었어요.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그랬어요. 용서해 주세요.
아무리 탑 아이돌이라고 하지만 세리는 올해 고등학교 1학년에 올라가는 어린아이다.
그런 세리가 잔뜩 겁에 질려 무릎을 꿇자 우연희를 비롯한 나머지 체리블라썸도 무릎을 꿇는다.
빨리 사과하고 이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서였다.
그 탓에 매니저들도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고 함께 사과를 시작했다.
그러나 한소진은 작정한 듯 고함을 이어갔다.
-야! 무대 못 바꿔준다고 한 정 실장인가 뭔가 불러!
-정 실장님은 다른 일이 있어서 못 오세요. 제가 빌 테니까 일단 저희 애들은 내보내 주세요. 선생님. 예?
영상을 보면 볼수록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날 끌어내기 위해 착한 체리블라썸과 매니저들을 쥐잡듯이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고성이 들린다.
“야! 폰 내놔!”
“너 내가 가만 안 둬!”
이 와중에도 세 사람은 폭언과 동시에 주먹질을 해댄다.
당장이라도 돌아서서 모두에게 주먹을 쓰고 싶었지만 ‘나의 폭행’으로 인해 체리블라썸이 1등을 못 하는 걸 절대 볼 순 없었다.
난 이를 꽉 깨물고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텼다.
내가 직접 이 영상을 올리는 것보다 훨씬 더 파괴력 있게 사용할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몇 배로 갚아 주지. 한소진.’
그때였다.
덜컥.
타이밍 좋게 대기실의 문이 열린다.
“이것들이 미쳤나~~ 야! 니들 지금 우리 정 실장한테 뭐 하는 거야! 어?”
등 뒤에서 이말순 선생님의 고성이 들리더니 이어서 지시가 내려진다.
“양 팀장! 저것들 다 정 실장한테서 떼어내!”
“예! 선생님.”
“저도 도울게요 양 팀장님!”
이말순 선생님의 매니저 양홍석 팀장과 은지유 팀장이 내 등 뒤에 붙은 세 사람을 떼 낸다.
이말순 선생님이 빠르게 내 곁으로 다가와 괜찮은지 살펴본다.
“괜찮아? 정 실장?”
“예. 괜찮습니다.”
등이 살짝 욱씬거렸지만 버틸 만하다.
“진짜로 괜찮은 거 맞아?”
이말순 선생님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하다.
“그보다 이것 좀 봐주십시오.”
“뭔데?”
난 그 즉시 들고 있던 박예영의 폰에 녹화된 영상을 틀었다.
영상에서는 체리블라썸이 무릎을 꿇고 비는 모습이 나온다.
영상을 확인한 순간 이말순 선생님이 고함 소리가 대기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이런······ 미친 X이! 감히 우리 애기들을 무릎 꿇려? 야! 한소진 너 돌았어?”
올해 52살로 트로트 경력 30년을 가진 이말순 선생님의 걸걸한 욕설이 튀어나온다.
“서 선배. 그게 아니라요······”
선배란 말을 듣는 순간 이말순 선생님이 눈을 희번득하게 뜬다.
“아~ 내가 네 선배야? 잘됐네. 야. 싸가지. 너 무릎 꿇어!”
“예?”
“왜? 체리블라썸한테는 무릎 꿇으라고 했잖니. 그런데 내 앞에서는 왜 안 꿇지? 후배 따위가?”
한소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더니 그럴 순 없다며 바락바락 소리를 지른다.
“선배. 걔들이 먼저 내 징크스를 건든 건 안 보여요?”
“웃기고 있네! 자기 성격 안 좋은 걸 징크스 탓으로 돌리는 게 어디 한두 번이야? 와~ 너 진짜 못됐다.”
이말순 선생님은 경멸하는 눈으로 한동안 한소진을 바라보더니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소진이 너 인생은 실전이란 말 알지? 오늘 실전 한번 겪자!”
이말순 선생님은 녹화 영상이 담긴 박예영의 폰을 양홍석 팀장에게 건네고선 자신의 폰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한 국장님. 전데요. 여기 한소진 대기실에 좀 내려와 봐야 할 거 같아요. 네. 안 내려오면 오늘 아주 끝장이 날걸요? 그리고 올 때 오 CP도 같이 내려오는 게 좋을 거예요.”
달칵.
전화를 끊은 이말순 선생님은 이어서 양홍석 팀장에게 지시했다.
“양 팀장. 그 영상. 지금 바로 기자들한테 다 뿌려버려.”
“예. 알겠습니다.”
매니저들 중에서 이런 수작질에 가장 익숙한 사람들이 바로 트로트 가수를 따라다니는 매니저들이다.
트로트 가수는 온갖 행사뿐 아니라 필요하면 밤무대에도 참석하며 온갖 험한 사람들과도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양홍석 팀장에게는 한소진이 벌인 일을 갚아 주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이래서 난 양홍석 팀장과 이말순 선생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오인정 매니저가 다급히 외친다.
“자 잠깐만. 기다려봐요! 제보 안 한다고 약속하면 이번 일을 누가 시킨 건지 알려줄게요!”
양홍석 팀장이 손가락을 멈췄다.
“그게 누굽니까? 인정 씨.”
“그 영상 기자들한테 안 보내면 말할게요. 약속해요.”
곁에서 이말순 선생님이 버럭 외친다.
“웃기고 있네. 양 팀장. 듣지 말고 보내버려! 배후가 뭐가 중요해?”
순간 머릿속에 번뜩이며 떠오르는 사람이 딱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현재 한창 MBS <화란전>의 제작 발표회장에 손을 쓰고 광고를 빼버린 홍석준 대표.
그리고 또 한 명은 에이스 엔터의 남은 지분을 긁어모아 에이스 엔터를 인수 중인 김동수였다.
하지만 김동수는 에이스 엔터의 지분 뒤처리만으로도 바쁠 테니 가장 유력한 건 홍석준 대표였다.
“홍석준입니까?”
“폰 돌려주면 말해줄게요.”
홍석준 대표인 듯했지만 오인정 매니저가 포커페이스라 확신할 순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이 하나 있다.
“양 팀장님. 어차피 국장님 불렀으니까 조금만 기다리죠.”
“하긴 그러면 되겠네.”
오인정 매니저의 얼굴이 다급해진다.
“그러면 절대로 안 밝힐 거예요!”
“급한 건 우리가 아닌데요?”
양홍석 팀장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며 여유만만한 표정을 짓기 시작한다.
잠시 후.
벌컥.
대기실의 문이 열리면서 한석영 국장과 오세찬 CP가 헉헉거리며 뛰어서 들어온다.
새빨개진 얼굴에 거친 호흡을 보니 급하게 뛰어 내려온 모양이다.
한석영 국장이 숨을 몰아쉬며 묻는다.
“선생님! 헉헉헉.”
“한 국장님. 왔어요? 여기서 무슨 일이······”
“오면서 들었습니다.”
“말보다는 직접 보는 게 좋죠. 이 영상부터 봐요.”
양홍석 팀장이 영상을 튼다.
한석영 국장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한다.
순간 이말순 선생님이 곁에서 입을 연다.
“오늘 일. 뒤에 배후가 있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배후라뇨? 그러면 이 짓거리를 누가 시켜서 그랬다고요?”
“그렇다는데요?”
한석영 국장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한소진을 향해 거침없는 말을 내뱉는다.
“소진 씨! 미쳤어? 당신?”
한소진이 이를 빠드득 깨물고 말한다.
“잠깐만요!”
“잠깐은 무슨 잠깐!”
한소진이 자기 폰을 꺼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자신의 배후에게 이르는 모양이다.
“어디에 거는데?”
한소진은 대답도 없이 전화 상대에게 말한다.
“저예요. 지금 영상이 하나 찍혔는데 좀 도와주셔야 할 거 같아요. 예. 예. 여기 MBS 한석영 국장님이 계세요. 바꿔드릴게요.”
한소진이 전화를 건넨다.
“받아보세요.”
한석영 국장이 인상을 찌푸린 채 전화를 받는다.
“누군데 그래?”
“받으시면 말아요.”
한석영 국장이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그의 표정은 점점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한석영 국장이 빽 하고 고함을 내지른다.
“홍석준 대표! 우리 MBS가 그렇게 만만해 보입니까? 안 그래도 ‘화란전’에 광고까지 빼더니 이제는 아주 프로를 말아먹으려고요? 예. 좋습니다. 저희도 그러면 가만히 안 있겠습니다!”
한석영 국장은 화를 내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
달칵.
“홍석준 이 새X. 화란전에 광고 뺀다고 협박하더니 이제 음방까지 건드려? 지가 무슨 왕인 줄 아나!”
분통을 터트린 한석영 국장이 곧장 양홍석 팀장을 바라본다.
“양 팀장. 아까 그 영상. 제보할 거지?”
“아 예······ 예. 그러려고 했는데 배후가 누군지 몰라서 못 하고 있었습니다. MBS 쪽 사정도 있고 해서요.”
“그거 올려버려.”
“예?”
“HK 쪽은 따로 파볼 테니까 그 영상은 올려. 그래야 다른 가수가 HK랑은 손 안 잡지.”
“아 예. 그러면 지금 바로 보내겠습니다.”
순간 한소진이 당황해서 외친다.
“구 국장님! 이러고도 괜찮을 줄 아세요?”
“어. 괜찮을걸?”
한석영 국장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오세찬 CP에게 지시를 잇는다.
“그리고 오 CP. 한소진 씨는 앞으로 MBS에 출연 중지시켜.”
“출연 중지요?”
“그래. 앞으로도 우린 소진 씨 볼 일 없을 거야. 그리고 너도 시말서 쓰고.”
오세찬 CP가 이를 빠드득 갈며 한소진을 쳐다본다.
오늘 무리를 해줘서 음악방송 자리를 빼줬는데 터무니없는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아오~ 진짜. XX. 재수 X 붙었네.”
오세찬 CP까지 거친 말을 하자 한소진이 그제야 한석영 국장의 팔을 잡고 빌기 시작한다.
“구 국장님. 자 잠깐만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영상만은······”
“뭐야? 이 정도 각오도 없이 HK를 끌어들였어? 배팅에 실패했으면 책임져야지. 안 그래?”
“아 아니 그래도······”
“이거 놔! 옷 구겨져!”
한석영 국장이 한소진을 뿌리친다.
밀려난 한소진은 바닥에 엉덩방아를 쿵 하고 찧어버렸다.
“아악.”
넋이 나간 한소진과 오인정 매니저 그리고 박예영 스타일리스의 모습을 보며 난 에브리데이의 일정을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2.1]
[날짜 : 2021년 1월 2일]
-PM 10:0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NEW. 김세리] <연예계 방방곡곡> “체리블라썸의 정모 씨의 MBS 음방 폭행 사건 발생” “체리블라썸 음악방송 무대 자진 사퇴” “11주 연속 1위의 대기록 물거품”)
미션 성공이다.
순간 등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그제야 씻은 듯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난 이번 일의 배후에 ‘홍석준 대표’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 HK 전자의 홍석준 대표는 MBS 보도국에 맡겨서 터트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오늘 당장 리더스 클럽 모임에 가서 홍석준 대표를 무너뜨려야겠다.
* * *
한석영 국장과 이말순 선생님이 양홍석 팀장과 함께 먼저 대기실을 나섰다.
오세찬 CP는 멍하니 있는 한소진과 오인정 매니저를 향해 5분 뒤까지 대기실을 비워달라고 말한 뒤 나와 은지유 팀장과 함께 대기실을 나왔다.
오세찬 CP에게 다시 한번 사과를 받은 뒤 체리블라썸의 대기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체리블라썸의 멤버들이 사슴 눈을 하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날 발견한 세리가 내게로 뛰어와 가슴팍에 안긴다.
덥석.
“유노 오빠~~”
세리는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눈물을 그렁그렁거리고 날 올려다본다.
이제 고작 16살에서 17살로 넘어가는 아이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난 세리를 품에서 떼어놓으며 그녀와 눈을 맞췄다.
“세리야. 괜찮아?”
“예. 전 괜찮아요. 근데 오빠는 괜찮아요?”
“나야 우리 세리가 괜찮으면 당연히 괜찮지.”
“하아~ 다행이다.”
세리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때 곁으로 다가온 체리블라썸이 이제 한소진 선생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냐고 묻는다.
“걱정하지 마. 한소진 가수는 이제 MBS 출입 정지당했어. 기사도 뜰 테니까 아마 연예계 은퇴당할 거야. 뭐 앞으로는 볼 일 없어.”
체리블라썸은 잠깐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안도하기 시작한다.
“그니까 멘탈 잘 부여잡고 무대에서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면 돼. 너희들을 시기하고 무너지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보라는 듯 말이야.”
세리가 더 이상 한소진은 우상이 아니라며 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무대를 펼치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유노 오빠. 오늘 꼭 1위 할게요!”
“그래. 오늘 제대로 한번 해보자?”
은아가 곁에서 조용히 목소리를 높인다.
“그 그래. 오늘 꼭 1등 해서 본때를 보여주자.”
양은비가 만족하는 표정을 짓는다.
“우리 은아가 꽤 야심찬데? 그래. 까짓것 오늘도 1위 하자! 음방 최초의 11주 연속 1위!”
우연희 역시 눈물을 훔치며 리더답게 애들을 도닥인다.
“그래. 은아 말대로 한소진 선배는 잊고 우릴 기다리는 팬들한테 보답하자. 그게 우리가 할 일이야.”
“응 언니!”
“그래. 언니.”
네 사람은 서로를 도닥이며 한소진이 준 충격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많이 컸다. 내 새끼들.’
예전 같으면 마음 약한 네 사람은 온종일 눈물바다였을 텐데 이제는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때였다.
똑똑.
스태프가 대기실 문을 두드리며 외친다.
-체리블라썸. 1분 뒤에 리허설 가실 시간이에요.
“예. 나갈게요.”
대답을 마친 체리블라썸들은 화장대로 향한 다음 부리나케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다.
난 그 틈에 습관적으로 아이들의 신발 끈들이 잘 매어졌나를 확인했다.
혹시라도 헐렁하다면 재차 테이핑을 해줘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아이들의 무릎이 눈에 들어왔다.
한소진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던 터라 네 사람의 무릎이 다들 빨갛게 물들어 있다.
순간 다시 한번 울컥하는 게 차오른다.
이 일의 진짜 배후는 바로 홍석준 대표.
난 체리블라썸을 무릎 꿇린 죄를 반드시 그에게 받아낼 생각이다.
그때 체리블라썸이 힘찬 표정으로 대기실을 나선다.
“오빠. 다녀올게요~”
“저희 리허설 하고 올게요~”
난 대기실을 나서는 체리블라썸에게 힘차게 파이팅을 외쳤다.
“어~ 아자! 아자! 파이팅!”
난 힘찬 체리블라썸의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전화를 들었다.
오늘 밤 ‘리더스 클럽’에 가서 홍석준 대표를 박살 내기 위해선 한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