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1화
481. 먹방 유람단 3
배연진이 미소를 껴안고 휴게실을 나섰고 이태풍 역시 하루를 데리고 휴게실을 나갔다.
덕분에 굴 한 상이 차려진 곳은 시장 일행과 백희태 대표 그리고 소수의 촬영팀만 남아 있는 상태가 되었다.
여전히 내게 팔을 잡혀있는 이한종 부시장이 씩씩거리며 외친다.
“너 너 이러고도 괜찮을 줄 알아? 아아악. 빨리 놔.”
난 그제야 이한종의 팔을 놓았다.
“으윽.”
강하게 쥐었더니 이한종 부시장의 팔에 손자국이 남아 있다.
순간 한상규 시장이 들고 있던 잔을 내린다.
얼굴에는 화가 잔뜩이다.
“거 어린 친구가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드는 데 소질이 있군?”
난 한상규 시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딸뻘인 여배우한테 술을 따르라고 하는 인간한테 그딴 소리 들을 생각 없습니다.”
“뭐 뭐? 감히······.”
한상규 시장의 얼굴이 부들부들 떨린다.
하지만 배연진에게 찝쩍거린 인간에게 존대해 줄 생각은 없다.
난 코웃음을 치며 휴게실에 세팅된 카메라를 쳐다봤다.
그때 두 대의 카메라 중 한 대에 REC의 붉은 램프가 켜진 게 보였다.
“AD 님. 혹시 촬영하고 있습니까?”
“어······ 어······ 테스트한다고 잠깐 돌리고는 있는데?”
“그러면 여기 찍은 영상 본 저한테 좀 보내주십시오.”
“응? 영상을?”
“예.”
당황한 박응준 AD가 유현지 PD를 바라본다.
영상에는 조금 전의 모든 곤란한 상황이 다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현지 PD는 흔쾌히 건네주라고 말한다.
“영상 떼서 바로 보내줘.”
“PD님 어떻게 하시려고요?”
“내가 책임질 테니까 보내주래도?”
“아 알겠습니다.”
유현지 PD 역시 시장 일행이 조사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까닭에 더는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박응준 AD가 녹화 버튼을 끈다.
영상 전송을 하기 위해 카메라의 버튼을 만지작거린다.
순간 이한종 부시장이 혀를 차며 욕설을 내뱉었다.
“XX!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이어서 한상규 시장도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협박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부시장. 최 검사 불러.”
“최 검사 말입니까?”
“그래. 오다가 보니 촬영한답시고 멋대로 만을 오염시키고 굴이니 미역이니 바닷가에서 멋대로 캐고 있던데 시정을 맡은 사람으로서 어업자원 훼손하는 자들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이한종 부시장의 표정이 밝아진다.
“아~ 그렇죠. 예! 맞습니다 시장님.”
“그래. 그러니까 이것들. 싹 다 잡아넣으라고 해. 그리고 환경과장과 어업 과장을 불러서 위반 사항 있는지 확인하고 있으면 촬영 못 하게 막아! 방송국에도 소송 걸고!”
아주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신이 났다.
그때 PPL로 큰돈을 쓴 백희태 대표가 유현지 PD를 몰아세운다.
이대로라면 자신이 가장 큰 피해를 받기 때문이다.
“유 PD! 거 시장님이 분위기 좋게 하자고 건배하자는 걸 뭘 또 이렇게 받아들이고 그러나!”
유현지 PD가 코웃음을 치며 묻는다.
“분위기 좋게 하자면서 여배우한테 술을 따르라고 시켜요?”
“그게 뭐 어때서?”
“아직도 정신 못 차리셨네요 백 대표님.”
“정신 못 차린 건 그쪽이지. 이런 식으로 나오면 당신들한테 준 광고비 전부 손해배상 청구할 거야! 그래도 괜찮아?”
유현지 PD가 코웃음을 친다.
“맘대로 해요. XX. 나도 이딴 꼴 보면서 촬영할 마음 없으니까.”
유현지 PD와 내가 물러서지 않자 결국엔 이한종 부시장이 폰을 들었다.
“정윤호라고 했지? 두고 봐. 넌 뒤졌어.”
“예. 한번 전화해 보십시오.”
“못할 줄 알아?”
이한종 부시장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그런데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뚜뚜.
연이은 전화에도 검사가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당황한 이한종 부시장이 고개를 돌린다.
“저 시장님.”
“왜?”
“최 검사가 전화를 안 받습니다.”
“뭐라고? 잠깐만.”
한상규 시장이 이번엔 자기 폰으로 전화를 건다.
그런데 그때였다.
『허리 어~업~ 리슨 어~업』
체리블라썸의 의 벨 소리가 휴게실 밖에서 들려온다.
그리고 이어서 수많은 사람의 발소리가 들린다.
쿵쿵.
그와 동시에 휴게실 밖에서 한상규 시장을 찾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 시장님 어디 있습니까?
-저 저기요.
그 말이 끝나자 문이 벌컥 하고 열린다.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뭣들 해? 사진 찍어!”
폰을 든 검사가 지시를 내리자 뒤따라 들어온 수사관들이 일제히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한상규 시장이 얼굴을 가리며 외친다.
“뭐야? 최 검사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한 시장님. 김영란법 위반으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저희랑 같이 가시죠.”
“야! 최대주! 아니 최 검사! 이거 나하고 한번 해 보자는 거야 뭐야?”
최대주 검사가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그동안 머리 숙이고 비위를 맞춰줬더니 내가 아주 졸로 보였나 보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이한종 부시장이 최대주 검사의 팔을 잡으며 애원한다.
“이봐. 최 검사. 가 갑자기 왜 이러나? 잠깐만 저쪽으로 가서 이야기 좀 해. 응?”
최대주 검사가 손을 탁 떨친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예?”
“아니 그게······.”
“XX. 손대지 마! 그동안 비위 맞추느라고 기었더니 내가 당신들 같은 범죄자들이랑 같아 보여?”
한상규 시장과 이한종 부시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그 그러면 그동안 우리가 술자리에 부를 때마다 왔던 게······.”
“예. 증거자료 모은다고 그랬수다.”
최대주 검사가 바로 서재일 검사가 소개해줬다는 후배였다.
그는 아마도 그동안은 말 잘 듣는 검사처럼 굴며 두 사람의 비리를 캤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참에 최대주 검사를 화끈하게 밀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 검사님. 굴렁쇠 엔터의 정윤호라고 합니다. 이 두 사람을 상대로 추가로 고소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뭡니까?”
서재일 검사가 보냈으나 보는 눈이 많아 일부러 모른 척 군다.
난 박응준 AD에게 받은 영상을 내밀었다.
“일단 한번 보시죠.”
난 조금 전 휴게실에서 일어난 일이 담긴 영상을 내밀었다.
“여배우 손목을 잡고 어깨를 껴안고. 술까지 따르게 하셨다? 그것도 어린 애 앞에서? 허······완 전 미친 새X들 아냐?”
최대주 검사가 함께 온 수사관들에게도 영상을 보여준다.
수사관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검사님. 이 정도면 현행범으로 충분히 체포 가능하겠는데요? 김영란법보다 이쪽이 셀 거 같습니다.”
“그쵸? 바로 수갑 채워서 연행하시죠.”
“예.”
검찰 수사관들이 수갑을 꺼낸다.
당황한 한상규 시장과 이한종 부시장이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저항한다.
하지만 수사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란다원칙을 읊으며 시장과 부시장에게 수갑을 채워 버렸다.
“놔. 놔······ 이거 놔!”
“야! 니들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한상규 시장과 이한종 부시장은 고함을 치다 그대로 끌려 나간다.
그때였다.
백희태 대표가 최대주 검사를 향해 두 손을 싹싹 빌기 시작했다.
“최 최 검사. 난 아무것도 안 했어. 진짜야.”
“여기 굴 한 상 번듯하게 차려놓고 무슨 소리 하십니까? 김영란법은 준 사람도 걸리는 거 몰라요?”
“아니 이건 우리끼리 먹는 자리였는데 시장님 일행이 들러서 나눠 먹은 거야. 진짜야.”
“이 양반이 그걸 말이라고 하나!”
최대주 검사의 분노가 폭발하려는 찰나.
휴게실의 입구 쪽에서 CK 식품의 박민상 과장이 고개를 빼꼼히 들이밀었다.
“저기······.”
최대주 검사가 날 선 표정으로 고개를 홱 하고 돌린다.
“그쪽은 또 뭡니까?”
“아 전 정 팀장님한테 볼일이 있는······ 사람인데요.”
“들어오세요.”
최대주 검사가 슬쩍 비켜주자 박민상 과장이 들어와 말한다.
“맞습니다. 노로.”
노로바이러스 간편 검사키트에는 양성 반응이 뜬 게 보인다.
난 그 즉시 검사키트를 유현지 PD에게 보였다.
“유 PD님?”
유현지 PD가 씨익 웃으며 백희태 대표에게 말한다.
“백 대표님. 여기 노로바이러스 검출됐네요. 작업 현장을 보니까 너무 더러워서 PPL에는 무리겠습니다. 현장 유지는 대표님 책임이니까 저희한테 주신 금액의 30%만 되돌려드릴게요.”
“유 유 PD. 그 그런 게 어디 있어! 그건 갈취야!”
“그러길래 잘 관리하셨어야죠.”
순간 최대주 검사가 뒤쪽을 쳐다보며 외친다.
“박 수사관. 굴 박신장에 있는 분들 다 모아서 체크해 봐. 밖에 일하는 사람 중에서 최저임금을 위반한 일은 없는지 불법 체류자는 없는지! 아 위생 쪽 부서에 연락해서 검사 한 번 싹 다 돌리고.”
“예. 검사님.”
최대주 검사는 작정하고 굴 양식장을 탈탈 털고 있었다.
이후 최대주 검사가 백희태 대표를 노려본다.
“자 우리 백 대표님도 가시죠. 아니다 한 시장님의 후원회장이라고 불러드릴까요?”
최대주 검사가 왜 이렇게 거칠게 터는가 싶었는데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리고 통영시에서 이곳을 추천한 것도 바로 이 백희태 대표가 한상규 시장의 후원회장이었기 때문이다.
당황한 백희태 대표가 주춤거린다.
“최 최 검사. 우 우리 사이에 진짜 이러기야?”
“우리 사이가 무슨 사이입니까? 그쪽이 내는 술. 한 방울도 안 마셨고 밥 먹을 땐 꼬박꼬박 더치페이했는데?”
“그 그래서 매번 밥값을 낸 거였어?”
“당연하죠.”
백희태 대표가 뒷목을 부여잡는다.
혈압이 오르는지 얼굴이 붉어진다.
그 순간 수사관들이 백희태 대표에게 달라붙어 달랑 들어 올린다.
“놔~ 이것들아! 내가 누군지 알아! 나 나오면 니들 다 죽을 줄 알아!”
‘쌩쌩한 걸 보니 쉽게 죽진 않겠네.’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난 그 즉시 다이어리부터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2]
[날짜 : 2020년 12월 10일]
-PM 03:0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NEW. 이태풍] 통영 A 병원 응급실 방문. <먹방 유람단> 촬영 취소.) -PM 05:0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NEW. 정유진] 경주 현장 촬영 취소. 미소의 상태를 확인차 통영 A 병원 응급실로 이동.)
노로바이러스 때문에 발생한 모든 일정이 이제야 사라지고 있었다.
* * *
상황을 마무리 지은 최대주 검사가 날 한쪽으로 따로 불렀다.
“선배가 정 팀장님만 한 정보통도 없다며 칭찬하시더니 왜 그런지 오늘 알았습니다. 협조 감사드립니다.”
현직 시장이라서 접근이 힘들었는데 내가 물꼬를 터준 덕에. 남해사랑 굴축제 비리 건에 접근이 훨씬 쉬워졌단다.
“별말씀을요.”
그때 최대주 검사가 통영 출신이라는 기억이 떠올랐다.
“최 검사님. 혹시 굴 양식장 믿을만한 곳 아십니까?”
순간 최대주 검사가 어깨를 쭉 펴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제가 또 통영 출신 아닙니까? 여기 돌아서 한 10분 정도 거리에 백성리라고 있습니다. 거기 제 친구가 하는 굴 양식장이 있는데 거기 가보십시오. 진짜배기 통영 굴이 어떤지 확실히 맛볼 수 있는 곳입니다.”
최대주 검사는 통영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고 있었다.
“친구요?”
“예. 한인성이라는 친구인데 말 그대로 한 인성 합니다. 부모님 때부터 30년째 굴 양식을 하고 있는데 얼마나 깨끗하게 관리하는지 사고 한번 난 적 없는 곳입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더 감사하죠. 덕분에 깨끗한 통영시가 만들어졌으니까요. 노로나 한상규나요.”
일순간 한상규 시장은 노로바이러스 급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면 나중에 서울에서 뵙죠.”
그렇게 최대주 검사는 웃으며 수사관들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 * *
백성리 ‘인성 굴 양식장’.
바다에 떠 있는 굴 양식장의 크기나 굴 박신장으로 쓰이는 조립 건물은 조금 전 ‘이만리 굴’보다는 반도 안 될 정도로 작았다.
하지만 최대주 검사의 말처럼 상당히 깨끗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자 깨끗한 작업복을 입은 한 남자가 달려왔다.
“어서들 오세요. 전 이곳을 운영하는 한인성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한 대표님.”
올해 31살인 한인성은 친구에게 이야기를 미리 들었다며 우릴 반겼다.
유현지 PD가 넙죽 고개를 숙인다.
“바쁘실 텐데 갑자기 이렇게 들이닥쳐서 죄송합니다. 며칠 신세를 졌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
“편한 대로 있다가 가세요.”
“정말······ 입니까?”
“예. 그까짓 거.”
한인성은 씨익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어차피 자기들 작업장은 그리 바쁘지 않다면서 말이다.
순간 유현지 PD가 촬영 현장 로케 비용을 묻는다.
먼저 협찬해주겠다고 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비용은 방송국에서 내야 했기 때문이다.
“삼 일간 로케 비용은 얼마나 드리면 될까요?”
“친구 소개로 오신 분들에게 돈을 왜 받습니까? 괜찮습니다.”
“아 아니. 그래도 저희가 촬영하면 사업에 영향을 받으실 텐데······.”
“걱정하지 말고 촬영이나 잘하고 가시면 됩니다. 근데 바지선은 시간이 늦어서 오늘은 힘들고 내일이나 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시각은 오후 5시가 넘어가다 보니 바다에 나가면 위험할 수 있단다.
“그러면 오늘 굴 박신장에서 한 씬만 찍을 수 있을까요?”
한인성이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박신장 아주머니들은 벌써 퇴근들 하셔서 아무도 없는데요. 이걸 어쩌지······.”
그때였다.
내 머리 속으로 콘티 속의 장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 혹시 굴 남은 것 좀 있을까요? 저희가 굴 요리를 해 먹는 장면을 좀 찍고 싶어서요.”
씬 45.
굴 양식장에서의 일이 끝난 뒤 굴을 얻어 캠핑카에서 요리해 먹는 장면이다.
“그거야 문제가 아닌데 손님들 온다고 해서 저희 어머니께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죠?”
그렇다면 그건 또 다른 방법이 있다.
“PD님. 아무래도 씬 25부터 찍어야겠네요.”
씬 25는 작업을 끝낸 뒤 식사를 대접받는 씬이다.
유현지 PD도 민망한 듯 웃으며 한인성에게 고개를 숙였다.
“원치 않게 폐를 끼치게 되었네요. 그러면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한 대표님.”
한인성이 환하게 웃으며 건물을 가리킨다.
“자자. 다들 저쪽으로 가시죠.”
이른 저녁 시간이지만 다들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했기에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굴 박신장 옆의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한 명도 빠짐없이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와~ 이거······ 대박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