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9화
479. 먹방 유랑단 1
[에브리데이 V12]
[날짜 : 2020년 12월 10일]
-PM 03:00 [NEW. 이태풍] 통영 A 병원 응급실 방문. <먹방 유람단> 촬영 취소.
-PM 05:00 [NEW. 정유진] 경주 현장 촬영 취소. 미소의 상태를 확인차 통영 A 병원 응급실로 이동.
현재 <먹방 유람단>은 첫 에피소드인 <경주 사찰 음식 편>은 촬영을 막 끝낸 상황이다.
그리고 오늘은 2화 <통영 음식> 편을 찍기 위해 이태풍과 미소 하루 그리고 우리 팀 매니저들이 통영 현장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태풍과 미소가 모두 응급실로 실려 간단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기는 거지?”
그때 에브리데이에 있는 ‘오늘의 운세’가 눈에 들어왔다.
[에브리데이 V12]
[오늘의 운세 : 질병을 조심하라.]
“통영 질병 그리고 하루 뒤에 응급실······ 그러면 잠복기가 하루란 소리인데? 그리고 오늘 촬영 장소는 굴 양식장인데 설마······.”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빠르게 결론이 나왔다.
노로바이러스.
성인이라면 배탈 정도로 끝날 수도 있지만 미소처럼 어린아이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었다.
그제야 내게도 오늘의 운세가 뜬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 역시 현장으로 내려가면 <먹방 유람단> 멤버들과 함께 식사할 테니까.
그 순간 난 급히 정상봉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팀장님.
“상봉아! 오늘 굴 양식장에서 혹시 생굴 먹는대?”
-아직 콘티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지선을 타고 나가서 양식장에서 굴을 직접 딴다는 것까지는 들었습니다
<먹방 유람단>은 이태풍이 캠핑카를 끌고 다니면서 하루와 미소 그리고 미소 엄마역의 배연진이 현지에서 요리하고 먹는 방송이다.
그래서 가끔 현지에서 아르바이트하고서 음식을 얻어 온 다음 직접 요리를 해 먹는 장면도 담긴다.
그런데 오늘은 굴 양식장에서 일하고 생굴을 얻어 오게 된단다.
그렇다면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겠다.
“상봉아. 지금 어디쯤이야?”
-지금 경주인데 막 통영으로 출발하려는 참입니다.
경주에서 통영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3시간 정도.
그리고 내 경우.
지금 바로 집에서 출발하면 경부고속도로와 대전통영고속도로를 탔을 때 걸리는 시간 4시간 안팎이다.
시간 차이를 최대한 줄여야 했다.
아직까지 현장에서 PD들의 요구를 거절하는 건 정상봉이나 이대호로서는 무리기 때문이다.
난 급히 1층으로 뛰어 내려가며 지시를 내렸다.
“상봉아. 나 지금 통영으로 내려가니까 너도 내려가는 시간을 최대한 끌어봐!”
-왜 그러세요?
“겨울이라서 통영에 노로바이러스가 돈단다. 아마도 촬영하다 보면 애들한테 생굴 먹일 텐데 너 혼자서는 유현지 PD 상대 못 해. 내가 책임질 테니까 시간 좀 끌어.”
-잠깐만요. 노로바이러스요?
“애들 들을라. 입조심 해.”
-죄송합니다. 근데 하루랑 미소는 자고 있어서 못 들었습니다.
뒷좌석에 탄 하루와 미소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고 한다.
“오케이. 그리고 현장에서도 내가 갈 때까지는 입도 벙긋하지 마.”
노로바이러스가 99%는 확실했지만 증거가 없이 말했다가는 뒷감당이 안 된다.
증거를 확인하고 대안을 마련한 다음 말해야 이 문제를 무난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시간을 끌겠습니다.
그사이 1층에 있는 차에 도착했다.
“지금 바로 통영으로 출발하니까 최대한 견뎌 봐. 욕먹을 거 알긴 알지만 고생 좀 하자.”
주연 배우가 지각하면 모든 일정이 꼬이지만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다.
-괜찮아요. 매니저가 욕먹는 건 업무의 일환이라고 형이 그러셨잖아요. 잘 버티고 있겠습니다.
아이들이 타고 있으니까 멀미를 했다든지 혹은 화장실에서 오래 있었다든지 핑계를 대면서 시간을 끌 수 있을 거라 자신 있게 말한다.
날 따라다니다 보니 요령이 많이 늘었다.
전화를 끊은 난 이후 이태풍에게도 똑같은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서둘러 통영으로 향했다.
* * *
3시간 47분.
생각보다 빨리 오늘 촬영 장소인 통영의 굴 양식장에 도착했다.
통영시 이만리에 있는 ‘이만리 굴 양식장’은 작은 만처럼 된 지형의 바다에 수도 없이 많은 부표를 띄워 놓은 곳이었다.
그리고 만의 한쪽에는 ‘이만리 굴’이라는 간판을 단 거대한 조립식 건물이 세워져 있다.
양식장에서 굴을 건져 껍질을 까고 포장하는 일체형 공장 건물이다.
그런데 공장 건물은 설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조립식 건물 벽면에 페인트도 벗겨진 곳 없이 깨끗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차에서 내렸다.
인근 선착장에서 유현지 PD가 이대호와 정상봉을 갈구는 게 보였다.
“두 사람! 경주에서 출발한 게 언젠데 지금 오면 어떻게 해요? 예?”
“죄송합니다.”
이대호와 정상봉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다.
다행히 두 사람이 시간을 끌어준 덕에 아직 촬영이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
난 다급히 유현지 PD를 불렀다.
“유 PD님.”
두 사람을 닦달하던 유현지 PD의 언성이 조금 수그러든다.
“정 팀장님.”
“죄송합니다. 오면서 사정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유현지 PD가 언성을 조금 낮춘다.
“그래도 이러면 안 되죠. 차라리 늦어지면 늦어진다고 말을 정확히 하던가요.”
난 일절 변명하지 않고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만 반복했다.
“죄송합니다.”
나와 불편해지기 싫은 유현지 PD가 결국 한 걸음 물러섰다.
“하아~ 알았어요. 대신 30분 이내로 배 타고 촬영 시작할 거니까 준비나 잘해주세요.”
난 이대호와 정상봉에게 슬쩍 눈치를 줬다.
“두 분은 가서 태풍이랑 하루 미소 다 빨리 스탠바이 시키세요.”
“예. 팀장님.”
두 사람이 고개를 숙인 뒤 뒤로 물러난다.
그제야 유현지 PD도 뒤를 보며 스태프들을 향해 말한다.
“박 AD는 양식장까지 갈 바지선에 오를 인원 최소한도로 꾸려. 그리고 최 AD는 저기 바닷가에 있는 굴 공장에서 미리 씬 10 씬 11 따 놓고. 제작팀은 캠핑카 댈 곳 다시 한번 점검해 봐요.”
“예. PD님!”
수많은 스태프가 그제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지시를 마친 유현지 PD가 흥분을 조금 더 가라앉히고서 말한다.
“내가 언성을 좀 많이 높인 거 같은데 미안해요. 곧 도착한다고 하면서 하도 안 와서 그랬어요.”
“이해합니다.”
유현지 PD가 큐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말한다.
“오늘은 씬 6 10 11만 찍을 거예요. 그렇게 알고 준비해주세요.”
“씬 6이면 바지선에서 굴 건져 올리고 굴 공장으로 옮기는 장면이네요?”
씬 6이면 이태풍과 하루가 바지선에 올라 굴 양식장에서 굴을 따는 씬이다.
그리고 그 씬에선 미소와 미소의 엄마 역인 배연진도 함께 그 바지선에 올라 간단한 식사 준비를 도와준다.
그 와중에 막 건진 굴을 까서 먹는 씬도 찍게 된다.
오면서 콘티를 확인한 터라 어디까지 찍겠다는지 단번에 알 수가 있었다.
“예. 오늘 이동하느라 다들 지쳤으니까 조금만 촬영하고 쉴 거예요. 이만리 굴 사장님이 저녁 회식 잡아줬으니까 그거 먹고 힘내서 내일 촬영하려고요.”
그렇다면 나뿐 아니라 스태프들 모두가 걸릴 가능성이 있었다.
“자 그러면 전 촬영을 준비하러······.”
유현지 PD가 몸을 돌리려 한 순간 난 유현지 PD를 붙들어 세웠다.
“저기 PD님.”
“예?”
난 노로바이러스 기사를 태블릿으로 펼쳤다.
“여기 보시면 요즘 남해안에서 노로바이러스 경보가 이곳저곳에서 떴다고 합니다. 생굴은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유현지 PD가 태블릿을 힐끗 쳐다보고 대답한다.
“저도 그 이야기 듣긴 했어요. 그런데 여기 환경도 깨끗하고 최근에 만들어서 그럴 위험이 아예 없다던데요? 노로바이러스는 지저분한 환경에서 걸리는 거라면서요?”
그녀의 말대로 이 장소의 모든 시설이 최신식이었다.
심지어 바지선마저 새 배다.
하지만 내 다이어리는 팩트만을 말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습니까? 노로바이러스가 있다면 다들 뻗어서 촬영 불가가 될 텐데 생굴을 먹는 것만 어떻게 피해갈 수가 없겠습니까?”
유현지 PD가 고민하다 고개를 젓는다.
“그러긴 좀 힘들어요. 생굴 시식이 계약 조건이라서요.”
“그런 게 PPL 조건이라고요?”
“예. 여기 통영시가 소개해 준 곳인데 그게 조건이에요.”
<먹방 유람단> 2화 촬영이 방송되는 2월에는 ‘남해사랑 통영 굴 축제’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반드시 생굴을 먹는 장면이 나와야 한단다.
그땐 노로바이러스의 기세도 한풀 꺾이기 때문에 생굴도 잔뜩 팔아야 한다면서.
“그러면 삼키지만 않고 뱉어내면 안 됩니까?”
유현지 PD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다.
“글쎄요······.”
“그러면 바지선에서 먹는 장면만 빼면 어떨까요? 오는 도중에 CK 식품 쪽에다 사람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는데 다음 촬영은 검사 결과 보고서 하면 되잖습니까?”
<먹방 유람단>은 전 시즌인 <먹방의 대가> 때처럼 메인 스폰서로 CK 식품이 붙었다.
그래서 난 현장으로 오면서 CK 식품의 양은정 홍보이사에게 노로바이러스 검사 테스트를 부탁한 상황이다.
“그리고 PPL 계약서상에 이런 일이 생기면 면책 조건도 있잖습니까. 예?”
고민하던 유현지 PD가 되묻는다.
“그러면 검사원이 오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린대요?”
“외근 끝나는 대로 오신다고들 했는데 대략 30분 정도 안에 온다고 합니다. 검사에는 15분에서 20분 정도 걸리고요.”
유현지 PD가 심란한 표정을 짓는다.
만에 하나 진짜로 노로바이러스로 인해 배탈이 나면 현장 책임자인 그녀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다행스럽게도 유현지 PD가 내 의견에 동의한다.
“30분 내로만 오도록 조치해 보세요. 그러면 검사하고 촬영 들어갈게요.”
“감사합니다!”
“제발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노로바이러스라면 다른 촬영장을 찾고 PPL 취소에 메뉴 바꾸고······ 아······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네요.”
유현지 PD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박응준 AD를 불러 우리 둘이서 협의한 내용을 전했다.
“CK 식품에서 사람 오면 검사하고 촬영 들어갈 거야. 그렇게들 알고 현장 통제해.”
“예? 안 그래도 배 띄우는 게 늦어진다며 사장님이랑 선장님이 화를 많이 내시던데요.”
“박응준! 네 짬이 얼만데 이 정도 일을 처리 못 해?”
박응준 AD가 잔뜩 뿔이 난 얼굴로 툴툴거린다.
아마도 뭐 이런 것까지 세세하게 따지냐는 듯한 표정이다.
괜히 일만 늘어났다며 날 보는 눈에도 불만이 가득했고.
그러나 이게 매니저의 일이니 어쩔 수 없다.
난 어떤 경우라도 관리하는 연예인을 지켜야 했다.
박응준 AD와 유현지 PD가 자리를 떠나자 즉시 CK 식품 구매부 박민상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정 팀장님.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대충 15분 이내로 도착할 것 같습니다.
“예. 기다리겠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조처를 한 상황에서도 아직 일정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왜······ 안 없어지지?’
고민을 하던 난 배우들에게 직접 경고하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했다.
* * *
두 개의 스프린터 차량이 나란히 대어진 주차장.
난 이태풍과 하루 그리고 미소와 미소의 엄마 역의 배연진을 모아 놓고 굴을 함부로 먹지 말라고 경고했다.
“씬 6이랑 씬 10에서 생굴 먹는 장면을 찍을 겁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누가 권하면 먹는 척만 하고 삼키지는 마세요. 이후 매니저가 주는 가글로 입을 잘 씻어내고요. 그리고 오늘 저녁 회식에는 저희는 참석하지 않을 테니 명심하세요.”
싸우는 한이 있어도 회식에는 참석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여전히 일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때 배연진에게 안긴 미소가 손을 번쩍 들고 묻는다.
“엄마도 꼭 손 잘 씻고 익혀 먹으라고 했어요! 아무거나 먹으면 배 아프다고요!”
칭찬을 바라며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는 미소를 보자 날 선 기분이 조금 가라앉는다.
“그래. 우리 미소. 삼촌이 미소 아야 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러니까 PD님이나 작가님이 먹으라고 해도 먹는 척만 하고 실제로는 먹지 마. 알았지?”
“네! 삼촌.”
미소의 뛰어난 연기력이라면 모두를 속이고도 남을 테니 걱정은 한시름 놓아도 될 것 같다.
그때 미소를 품에 안고 있는 배연진이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 제가 상의드릴 일이 좀 있는데 시간 괜찮으신가요?”
“아. 예. 괜찮습니다.”
올해 28살인 배연진은 현재 소속사가 없어 평소에는 언니가 매니저를 해주고 있다.
오늘은 언니가 다른 일이 있어서 경주에서부터 이태풍의 차를 얻어 타고 함께 통영으로 내려왔다.
아직은 투박한 연기를 보이는 그녀였지만 연기가 점점 늘어 앞으로 5년 뒤 <지니의 꿈>이라는 드라마로 대박을 터트리는 배우다.
그래서 그녀와 그녀의 언니에게는 함께 굴렁쇠 엔터로 들어오기를 권한 상태였다.
“이따가 언니가 오면 굴렁쇠에 들어가겠다고 말할 거예요.”
“정말입니까?”
“네. 이번 작품에 픽업된 것도 정 팀장님 덕이라고 다들 말하고 있고······ 이제 슬슬 제대로 된 회사와 일을 해 봐야 할 것 같아서요.”
1화를 찍고 나자 <먹방 유람단>이 성공할 것 같다는 예감이 왔단다.
“저만 믿으십시오.”
비록 노로바이러스 때문에 걱정되는 상황이지만 그 와중에도 좋은 소식은 들려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부우웅.
굴 양식장으로 검은 승용차 세 대가 줄을 지어 들어온다.
그런데 주차한 차에서 내린 사람들을 본 순간.
내 다이어리의 일정이 왜 사라지지 않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저 사람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