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3화
463. 암표상 3
‘2020년 체리블라썸 & 강하나 합동 콘서트’의 빈 좌석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티케팅을 시작하고 30초 만에 소진된 좌석은 무려 50%.
이후 초 단위로 3%씩 예매가 완료되고 있었다.
너무도 빠른 예매 완료 탓에 난 모니터링을 하는 이두오에게 물었다.
“두오야. 설마 또 다른 암표상이 매크로 쓰고 있는 거야?”
현재 이두오의 노트북 화면에는 티켓파크가 보내주는 예약 정보들이 나오고 있다.
정보를 확인하던 이두오가 고개를 젓는다.
“아뇨. 매크로 아니에요. 전부 직접 예매하고 있어요.”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리게 되면 인간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반응하게 된다.
이두오는 그 시간을 체크하고 있었는데 전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말인즉슨 전국의 팬이 직접 결제를 완료하고 있다는 뜻.
그래도 확인을 해 보고 싶은 마음에 화상 회의 화면이 떠 있는 회의실 대형 LCD로 고개를 돌렸다.
티켓파크 회의실을 보여주는 화상 회의 화면에서 표연지 이사와 은지유 대리도 역시나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이사님. 그쪽은 어떻습니까?”
표연지 이사가 대답한다.
-정 팀장님. 여기서도 매크로 사용 흔적은 안 보여요. 저희 직원들 10명을 동원해서 검토 중인데 매크로가 아니에요.
티켓파크에서도 부정 예매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때였다.
타임워치를 들고 예매 진행 상황을 체크하던 도란희가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한다.
“95% 96%······ 99% 100%! 팀장님 매진이요!”
“시간은? 초 단위로 불러 봐.”
“59초요!”
무려 8천 석이 예매 완료가 되는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정말 전 석 매진 맞아? 다시 확인해봐.”
“맞아요! 세 번 확인했어요.”
그때 화상 회의 화면에서 표연지 이사도 대꾸한다.
-팀장님. 저희도 예매 완료 확인했어요. 매진 배너 올릴게요.
티켓왕이 없는 데다가 매크로 프로그램을 막기 위해 이두오와 티켓파크 직원들이 나섰기에 8천 석의 예매가 끝나기까지 적어도 10분은 걸릴 줄 알았다.
하지만 고작 59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빠른 매진 속도에 심장이 터질 듯 벅차올랐다.
하지만 그래도 재차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부정 예매를 했다면 예비 순번 예약자에게 티켓을 넘겨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난 곧장 회의실에 있는 체리블라썸의 팬클럽 회장단인 횡성여고 4인방에게 시선을 돌렸다.
“얘들아. 검표 들어가자.”
“네! 쌤!”
성지연을 비롯한 횡성여고 네 명이 노트북을 펼친다.
총 8천석 중에서 4천 석이 팬클럽 회원들을 위해 배정된 표였기에 회원 명부와 4천 명의 명단을 비교할 예정이었다.
“두오야. 예약자 정보 뽑아서 까톡으로 보내줄래?”
“잠시만요. 엑셀로 정리해서 보낼게요.”
잠시 후.
이두오가 예약자 명단을 뽑아 우리 회의실의 매니저들과 횡성여고 4인방에게 건넸다.
다들 노트북에 2개의 파일을 띄우고 명단을 대조하기 시작했다.
“맞고. 맞고. 맞고······”
눈을 부릅뜨고 확인해 봤지만 티켓 발송 주소지가 겹치는 것도 없고 특별한 문제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를 10분.
검토가 끝났다.
횡성여고 4인 방 중 성지연이 눈을 비비며 말한다.
“팀장님. 문제없어요. 다들 찐으로 예매한 거 맞아요.”
난 이어서 이두오를 쳐다봤다.
이두오도 고개를 끄덕인다.
“프로그램으로 돌려서 재확인해봤는데 부정 예매나 매크로 사용 흔적은 없어요.”
검토까지 끝냈지만 정말로 매크로 사용도 되지 않고서 59초 만에 8천 석이 예매되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아자!”
체리블라썸의 첫 번째 콘서트로 8천 석을 잡은 것에 대해 우려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리 올 한해 흥행을 했다지만 팬덤이 강한 남자 아이돌도 아니고 그것도 곡이 부족해서 합동 콘서트를 하는데 8천 석은 과하지 않냐고.
하지만 난 과감하게 8천 석을 내질렀고 그 승부가 통했다.
순간 회의실 모두가 얼싸안고 기뻐하기 시작했다.
“와~ 대박! 진짜 이게 되네.”
“팀장님! 우리 애들 진짜 매진 맞죠?”
“쌤~ 짱이에요!”
난 모두 흥분이 가라앉길 기다렸다가 홍보 담당 김미혜 대리를 불렀다.
“김 대리님. 기자들한테 바로 기사 전송하세요.”
“기사 헤드 타이틀을 뭐로 할까요?”
“체리블라썸 연합콘서트 단 59초 만에 매진!”
그 순간 도란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팀장님. 보통 이런 건 분 단위로 말하지 않아요? 그냥 1분이라고 말하는 게 심플하고 좋지 않아요?”
얘가 또 기초적인 데서 띄엄띄엄하네.
“넌 990원 이랑 1천 원이랑 느낌이 같니?”
도란희가 대번에 이해하고 엄지를 치켜세운다.
“오올~ 적절한 비유!”
그런데 도란희가 뭔가 생각난 듯 씨익 웃는다.
“그러면 50초대! 어때요?”
선을 모르는 그녀에게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건 아니지. 넌 누가 2만 원짜리 상품이라고 말해서 사려는데 실제로 가격이 2만 9천9백 원이면 기분이 어떨 거 같아?”
“헐~ 팀장뉨~ 대박 비유!”
도란희가 대번에 이해가 간다며 존경의 눈빛을 한 채 쌍 엄지를 치켜든다.
난 어깨를 쭉 펴고 김미혜 대리에게 지시를 내렸다.
“59초로 하세요.”
“예. 팀장님.”
김미혜 대리가 신이 나서 기자들에게 까톡을 전송하자 도란희가 오늘도 회식하자 졸라댔다.
“팀장님~ 오늘 회식. 콜~?”
난 주머니에서 법인 카드를 꺼내 도란희에게 내밀었다.
“난 오늘 일이 있어서 빠져야 할 것 같으니까 란희 네가 애들 데리고 가서 실컷 먹어.”
도란희가 눈을 번뜩인다.
“한우도 괜찮죠?”
“그래. 이 정도 고생했는데 오늘은 먹어줘야지.”
“아싸!”
들뜬 도란희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카드를 넘겨받는다.
이미 이성을 잃은 것 같지만 오늘만큼은 넘어가기로 했다.
8천 석이 매진 되기까지 도란희는 잠도 자지 않고 홍보를 했었기 때문이다.
다만 도란희의 몸 상태가 걱정이다.
“근데 란희야. 너······ 괜찮겠어? 이틀간 거의 안 잤다며?”
눈이 빨갛게 충혈된 도란희가 웃는다.
“흐흐흐. 괜찮아요. 죽더라고 먹고 죽을 거예요.”
“그 그래. 파이팅!”
난 도란희에게 파이팅을 외친 뒤 몸을 돌렸다.
이제부터 난 이두오를 자수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 * *
이두오와 함께 회의실을 나와 그의 집으로 향했다.
이두오가 자수를 하기 전 여동생에게 자신이 저지른 짓을 털어놓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구로에 있는 이두오의 낡은 주택 앞에다 차를 세운 뒤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고작 몇 시간 만에 집이 싹 바뀌어 있었다.
지저분하던 마당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고 주택의 벽면 곳곳에 나 있던 틈이 메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페인트가 발라져 얼룩덜룩한 모습이 온데간데없었다.
확 바뀐 집을 보자 이두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끔뻑거린다.
“형. 이거 누가······ 한 거예요?”
현재 경찰이 암표상이란 게 밝혀지고 사회적으로도 꽤 큰 문제가 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이두오는 서재일 검사가 마음대로 봐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서재일 검사가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이두오는 오늘 자수를 하면 구속될 가능성이 높았다.
“호재랑 애들이 너 없는 동안에 서연이 잘 보살피겠다고 약속하는 차원에서 한 모양인데?”
이두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고마워요 윤호 형.”
“고맙긴.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 서 검사님이 이리저리 알아보고 있으니까 금방 나올 거야.”
이두오가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힘들지 않을까요? 경찰들이 저 벼르고 있을 거 같은데요?”
“에이. 지금 상황에서는 못 나서. 괜히 나섰다가 같은 공범으로 몰리려고?”
난 이두오를 재차 안심시킨 뒤 집을 가리켰다.
“어서 인사하고 자수하러 가자.”
“예.”
이두오가 한숨을 쉰 뒤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코끝을 간질거린다.
그와 동시에 주방에서 이서연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빠 왔어?”
이두오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답한다.
“어. 왔어.”
이서연이 주방에서 휠체어를 끌고 나온다.
앞치마를 두른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저녁 안 먹었지 오빠들?”
현재 시각은 오후 9시.
아까 전 김밥으로 간단히 밥을 때웠지만 이두오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 서연이 네가 밥해준다고 까톡 보냈었잖아. 당연히 안 먹었지.”
“잘했어. 주방에 밥해놨으니까 밥 먹으러 가자!”
“어!”
“윤호 오빠도 들어 오세요!”
“그래.”
밥 정도는 먹고 가도 될 것 같아 이서연의 뒤를 따라 주방으로 향했다.
“형님. 오셨습니까?”
주방에는 이호재가 앞치마를 입고서 애호박전이 타지 않도록 부치고 있다.
“어. 수고 많다.”
“아닙니다. 서연이가 다 한 거 제가 안 타도록 뒤집고만 있는 거예요.”
“그래?”
그런데 가만히 보니 주방에도 바뀐 게 있었다.
가스레인지가 아니라 인덕션으로 바뀌어 있었다.
‘수찬이가 신경 좀 썼네.’
이두오를 보내놓고선 전화라도 한 통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때 이서연이 이두오에게 묻는다.
“오빠. 호재 오빠랑 다른 오빠들이 와서 집수리하고 인덕션 바꿔줬어. 근데 말이야······ 다들 왜 이렇게까지 우릴 도와주는 거야?”
이서연의 말에 이두오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꾸한다.
“일단······ 밥부터 먹고 이야기하면 안 될까?”
이서연은 궁금한 표정을 꾹 참으며 대답한다.
“알았어. 그러면 앉아서 밥부터 먹자.”
그 말과 동시에 이호재가 음식을 나르기 시작한다.
된장찌개에 계란프라이.
일미무침 두부조림 애호박전 시금치나물과 어묵볶음.
거기다 흰 쌀밥이 놓인 조촐하지만 정갈한 식단이었다.
인덕션을 끈 이서연이 휠체어를 끌고 식탁으로 다가왔다.
“자~ 맛있게들 드세요~!”
나 역시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숟가락을 들어 맛보기 시작했다.
‘맛있는데?’
구수한 된장찌개의 맛은 간이 딱 맞았고 반찬들은 손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입에 짝짝 달라붙는다.
덕분에 이서연이 차려준 밥상을 눈 깜짝할 사이에 비웠다.
식사를 마친 이서연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맛 평가를 바란다.
“어땠어요? 맛있었어요 호재 오빠 윤호 오빠?”
이호재와 난 엄지를 치켜들었다.
“최곤데?”
“맛있었어.”
그런데 그때였다.
이서연이 활짝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우리 오빠랑 친구 되어줘서 고마워요 오빠들.”
갑작스러운 이서연의 행동에 잠깐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다.
“우리도 서연이 같은 동생이 생겨서 좋은데?”
고개를 든 이서연이 햇살 같은 웃음을 머금고 있다.
“고마워요. 오빠들.”
“고맙긴. 뭐.”
“아니에요. 저희 오빠. 집 밖으로는 거의 안 나가거든요. 그런데 윤호 오빠랑 호재 오빠가 오고 나서는 밖에 자주 나가는 거 같아서 보기 좋아요.”
요 며칠 이두오와 함께 티켓파크의 시스템을 체크하고 다른 매크로 프로그램을 잡기 위해 함께 일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이서연은 자주 밖으로 나가는 오빠가 보기 좋다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그럴게.”
이두오가 여동생을 걱정하고 생각하듯 이서연도 오빠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이두오가 심호흡하고 입을 연다.
“서연아. 사실······ 할 말이 있어.”
“응? 뭔데?”
이두오가 눈을 질끈 감는다.
두 손을 꼭 쥔 이두오가 천천히 과거의 자기 잘못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신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를 말이다.
“오빠가 말이야······”
* * *
전혀 예상하지 못한 오빠의 고백에 이서연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난 1년간의 일을 털어놓은 이두오는 이어서 요 며칠간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릴 만난 부분에서는 내가 말한 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두오를 잡은 게 아니라 이두오가 내게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말이다.
“내가 티켓왕에게 협박을 당하고 힘들어하던 찰나에 윤호 형이 도와주겠다고 나섰어. 다행스럽게 일은 잘 풀렸는데 죄를 지은 건 맞으니까······ 조금 있다가 자수하러 가야 해. 서연아.”
이서연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이두오는 동생을 향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목이 메는지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미안해 서연아. 오빠가······ 너 혼자 절대 안 놔둔다고 했는데······ 어쩌면 당분간 못 볼지도 몰라. 그래서 그동안은······ 여기 윤호 형이랑 호재 형이 도와줄 거야······”
그 순간 오빠의 말을 듣던 이서연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미안해······”
이두오가 화들짝 놀라서 말한다.
“응? 네가 왜 미안해?”
이서연은 숫제 하늘이 무너지듯 울음을 터트리며 말한다.
“내 병원비 때문에······ 나 때문에······ 죄지은 거잖아······ 으흐흑.”
이서연이 눈물을 그치지 않자 이두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동생에게 다가갔다.
“아냐. 서연아. 네 잘못 아냐. 절대로 네 잘못 아냐. 그러니까 울지마 제발······.”
이두오는 눈물을 흘리는 자신의 여동생을 꼭 껴안았다.
“나 없는 동안 윤호 형이랑 호재 형이 너 보살펴 줄 거야. 그리고 검찰에 협조 잘했으니까 금방 나올 거야. 그니까······ 죗값 치르고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
“오빠······”
오빠에게 안긴 이서연은 처연히 눈물만 흘려대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폰이 울렸다.
[발신자 : 서재일 검사]
난 심호흡을 한 뒤 지금 곧 자수하러 가겠다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서재일 검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