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6화
446. 황룡 영화제 준비 5
클럽 루시의 앞.
정수혁 이사가 강감찬 대표에게 전화하는 사이 난 이태풍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예상한 대로 방상영 이사가 이태풍에게 여배우를 붙였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진을 찍을 파파라치는 아군으로 전향했지만 폰만 있어도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 대비를 해야 했다.
“태풍아. 지금 어디야?”
-저요? 피팅 끝내고 이제야 집에 가는 중인데요.
“스톱. 집에 가지 말고 바로 형 집으로 가.”
-왜요?
“기자가 한 명 따라붙었어.”
난 여배우가 육탄 공격을 해 올 거라는 이야기는 쏙 빼고 파파라치가 붙었다는 이야기만 꺼냈다.
어차피 만날 수만 없게 만든다면 별것도 아닌 공격이니까.
-기자가요?
“그래. 현재 너희 집보다는 천호동 우리 집이 보안이 훨씬 좋으니까 오늘은 우리 집에서 형이랑 같이 자자.”
현재 천호동 유진이의 집은 집 앞 100m 골목길 양쪽으로 경호 초소가 세워져 있다.
유진이의 인기가 올라가자 주민들의 허락을 받고 설치한 것으로 초소에서는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한다.
그러다 보니 주민들을 제외하고는 유진이의 집 앞까지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그럼 뭐 바로 차 돌릴게요.
“정인지 아주머니한테 미리 말해 둘 테니까 3층 내 손님방에서 쉬어. 자세한 건 있다가 가서 이야기하자.”
-예. 형.
전화를 끊고 나자 정수혁 이사는 강감찬 대표와 한참 전화 통화 중이다.
“알겠네. 그럼 여기서 기다리지.”
전화를 끊은 정수혁 이사가 클럽 루시를 가리키며 말한다.
“지금 여기로 최영호 은행장이 오고 있다는군. 최은태 회장이 보냈다는구먼.”
최영호 은행장은 최은태 회장의 수족 같은 사람이다.
그가 움직였다는 것은 최은태 회장이 직접 나섰다는 뜻.
“설마 지금 이 시각에 이사회를 연답니까?”
정수혁 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 이사의 배임 행위를 최 회장님께 알리니까 바로 주주들을 소집했네. 녹음 파일이 결정적이었어.”
강감찬 대표와 한 편이 된 최은태 회장이 긴급 이사회를 열어 방상영 이사의 해임을 건의하겠다고 한다.
사실 정식으로 하면 임시 주총일을 주주들에게 통보하고 해고를 해야 했다.
그러나 최은태 회장은 선 처리 후 절차를 뒤에 채우는 걸 선호하는 편이었다.
어차피 그의 결정에 대고 왈가왈부 따질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따가 우리도 들어오라는데 그 전에 우린 이 앞 포차에서 뭐 좀 먹고 가지?”
정수혁 이사의 얼굴에 홀가분한 표정이 묻어 나온다.
“알겠습니다. 한바탕 할 거 같은데 배는 든든히 채운 다음 출발하시죠.”
“그래.”
“그런데 감시는 어떻게 하죠?”
정수혁 이사가 전화를 들고 다른 정보팀에게 지시한다.
“어 난데. 밥 먹고 있을 테니까 입구랑 비상구 쪽 잘 감시하고 있어. 일 있으면 연락해.”
다른 팀에게 감시를 맡긴 뒤 정수혁 이사와 난 어깨동무를 하고 포장마차로 향했다.
* * *
포장마차 안.
우동을 시켜놓은 뒤 난 정인지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주머니는 이태풍이 처한 사정을 듣고는 흔쾌히 답한다.
-나도 굴렁쇠 엔터에서 월급 받는 신센데 당연히 도와야지. 정 팀장이 늦어지면 내가 알아서 챙기고 있을 테니 걱정 마.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당연한 일을.
그때였다.
-아 미소가 전화 바꿔 달라네.
“예.”
전화를 바꾸자 미소가 조금 졸린 목소리로 말한다.
이제 9시지만 10시쯤 자는 미소에겐 졸릴 시간이다.
-유노 삼춘~ 왜 안 와요?
“우리 미소. 안 자고 뭐 해?”
-엄마도 없고 삼촌도 없어서 잠이 안 와요.
유진이는 현재 경주 촬영장에서 촬영 중이다.
그러다 보니 미소는 정인지 아주머니와 1층에 있다고 한다.
럭키와 미미 그리고 백설기와 인절미 행복이와 사랑이까지 다들 잠을 자고 있다 보니 놀 사람이 없다며 투덜거린다.
“그래도 잘 준비하고 코~하고 자야지. 태풍이 삼촌 모레 상 받고 나면 그다음 날은 미소랑 온종일 있을게.”
-약속!
“응. 약속.”
-그리고······ 있잖아요. 저기······ 내 생일 안 잊었죠?
미소의 목소리에 혹시나 하는 감정이 묻어 나온다.
“당연하지. 12월 1일. 우리 미소 생일을 내가 어떻게 잊어? 그래서 삼촌이 온종일 있다고 한 건데? 연가도 내놨어.”
회귀한 이후.
미소의 생일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나였다.
그리고 11월 30일 황룡 영화제가 끝난 다음 날이 바로 미소의 생일이다.
이태풍 때문에 바쁜 일상이지만 난 그날을 위해 준비한 것들이 있었다.
내 대답을 들은 미소의 목소리에 기쁨이 깃든다.
-진짜죠?
“응 진짜.”
-아싸!! 그러면 나 지금 코~ 하고 자러 갈게요.
미소가 정인지 아주머니에게 냉큼 전화를 넘기고 자러 간다.
난 아주머니에게 미소를 잘 부탁한다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정수혁 이사가 곁에서 씨익 웃는다.
“미소가 참 잘 크는 거 같아서 보기 좋네 정 팀장.”
“저도요. 벌써 초등학교 들어갈 때가 되었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그뿐인가? 요즘 미소 모르는 사람 있으면 간첩이라는 소리 들을 정도지 않나.”
“그것도 그렇고요.”
미소는 현재 워낙 귀엽고 깜찍해서 동네의 아이돌이던 과거와는 달리 이젠 국민 아역 배우가 된 상황이다.
키도 몸무게도 쑥쑥 자란 상태였고 말이다.
쑥쑥 자라는 미소를 볼 때마다 절로 미소가 입꼬리에 실린다.
그때 우동 두 그릇이 나온다.
양은 냄비에 담긴 냄비 우동 위에는 고춧가루와 잘게 썰린 파 김 가루와 어묵 꼬치 한 개가 들어있다.
“이건 제가 사겠습니다.”
“그럼. 이천만 원이나 긁고 나왔으니 우동 한 그릇 정도는 자네가 사야지. 하하하.”
조금 전 클럽 루시에서 긁은 카드값을 넌지시 언급하는 정수혁 이사였다.
“우동 한 그릇 더 시켜드릴까요?”
“어이쿠! 됐네. 이 나이가 되면 많이 먹고 싶어도 못 먹어. 하하하.”
방상영 이사의 약점을 캔 터라 무슨 말을 해도 웃음이 넘쳐난다.
“자 먹지.”
그때부터 우린 쫄깃한 면발을 호호 불며 면 치기를 시작했다.
후루룩 후루룩.
입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면발이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소리를 낸다.
그리고 난 이어서 김을 후후 불어가며 뜨거운 국물 한 모금 마셨다.
짭조름하고 달콤한 그리고도 칼칼한 뜨거운 어묵 국물이 차가운 몸을 따뜻하게 녹여준다.
이어서 냄비 우동에 들어있는 어묵을 씹었다.
탱글탱글한 어묵이 입안에서 맴돌며 코웃음을 나게 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동을 다 먹어갈 무렵 내 전화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발신자 : 한연홍 기자]
‘무슨 일이지?’
JJ 스튜디오 앞에서 만난 스타 패치의 한연홍 기자이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젓가락을 내려놓고 전화를 받았다.
“예. 한 기자님.”
순간 한연홍 기자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방금 오지석 그 인간. 조금 전 횟집에서 술 한잔하고 나왔는데 추운데 차 끌고 왔다고 로드 매니저한테 주먹질을 하더라고요. 제가 다 찍었어요.
현재 시각 밤 9시 10분.
이제 황룡 영화제까지 48시간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서예종 출신 심사위원들이 밀고 있는 오지석이 폭행 사건을 일으켰다고 한다.
“지금 바로 기사 올릴 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아 그리고 방금 막 여배우를 태풍 씨한테 붙였다는 까톡을 받았어요. 사진 찍는 대로 자기한테도 보내라고 하던데. 어떻게 할까요?
“여배우 이름은 뭡니까?”
-최민희라고 하던데요?
에이스 엔터의 최민희.
신인 여배우로서 주로 PD들과 어울리는 배우였는데 굳이 건들지 않아도 조만간 알아서 무너질 여자였다.
“그냥 씹으세요. 그리고 방 이사는 오늘 밤 중으로 정리될 겁니다.”
-그래요? 그러면 전 마음 놓고 오지석만 캡니다?
“예. 기사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자 최영호 은행장의 일행들이 도착했다는 연락이 들려왔다.
“정 팀장. 나가 보지.”
“예.”
급히 테이블 위에 돈을 올려놓고 포장마차를 나왔다.
승합차 두 대가 클럽 루시 입구에 선다.
최영호 은행장이 차에서 내리자 10명 정도가 따라 내린다.
최영호는 일행들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더니 그대로 클럽으로 들어섰다.
경비원들은 앞을 막기는커녕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입장을 허락한다.
그리고 5분 정도 지났을 무렵.
최영호가 사색이 된 방상영 이사와 이동구 감독을 데리고 나왔다.
“이거 놔!”
“왜 왜 나까지 데려가? 응?”
두 사람은 겉옷도 입지 못한 채 떡대들에게 달랑 들려 나온다.
“시끄럽고 회장님이 부르시니까 잔말 말고 타시죠.”
“회 회장님이 왜?”
“거~ 참 말 많네. 그냥 입 닥치고 차에 오르시죠 예?”
“그 그래.”
두 사람은 최영호의 겁박을 듣는 순간 승합차에 얌전히 오른다.
이후 최영호와 동생들은 빠르게 클럽 루시 앞을 떠났다.
그 광경을 본 정수혁 이사가 씨익 웃는다.
“이제 우리도 가야겠지?”
“예.”
그때 때마침 한연홍 기자가 쓴 기사가 올라온다.
[(특종) 한밤의 폭행 사건. 황룡 영화제 남우 주연상 유력 후보 오지석. 매니저 폭행 사건?]
-본 기자가 우연히 식당을 가다가 발견한 폭행 장면은 끔찍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탑스타인 오지석은 반항도 못 하는 젊은 매니저를 향해 서슴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말리고자 했을 땐 눈 깜짝할 사이에 상황이 끝나 있었다.
-운동을 좋아할 뿐이라던 오지석의 실체가 드러난 순간 본 기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사진 1 : 로드 매니저가 땅바닥을 구르는 사진) (사진 2 : 쓰러진 로드 매니저의 가슴을 치는 사진)
한연홍 기자는 사진과 함께 스타 패치 온라인판 메인에 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댓글)
-어이오지서기 : 스타면 사람 패도 됨? 당장 구속시켜야죠! 청와대 청원 갑시다!
-특전사24 :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진짜 겁이 없네. 자기는 무서운 게 없다고 떠들고 다니더니. 팩트였음.
-양파깡 : 예능에서 근육 자랑할 때부터 싸하더라. 저딴 인간을 좋아했던 내가 미친 X이지.
-방구석여포 : 오지석 집 앞으로 레이드 뛰러 갈 파티원 모집 [1/4].
이제 막 9시가 넘은 시각이라 그런지 댓글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난 곧장 정수혁 이사에게 폰을 내밀었다.
기사를 본 정수혁 이사도 피식 웃는다.
“이 정도면······ 오지석. 수상은커녕 후보 자리 지키기도 힘들겠는데?”
황룡 영화제 심사위원들은 골라놓은 작품과 배우들을 11월 30일 오후 1시부터 투표에 부친다.
본래 황룡 영화제는 개인사에 관한 문제가 있어도 심사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 문제가 커지면 그 원칙을 지키기 힘들어지게 된다.
모레 투표에서 오지석을 찍었다가는 전 국민에게 지탄받게 될 테니 말이다.
이 게임은 내가 이겼다.
기사를 본 정수혁 이사가 기지개를 켜며 말한다.
“자 우리도 방 이사와 작별 인사는 해야지. 명동 고택으로 가세.”
“예. 이사님.”
우린 흥겨운 콧노래를 부르며 각자의 차로 향했다.
그리고 나란히 명동 최은태 회장의 고택으로 향했다.
* * *
명동 최은태 회장의 고택으로 들어서자 이동구 감독과 방상영 이사가 대청마루 밑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대청마루 위에는 최은태 회장을 비롯해 강감찬 대표와 나머지 주주들이 앉아 있었다.
흡사 죄인을 심문하는 포도청에 온 것 같은 분위기다.
최은태 회장이 날 발견하고 손짓을 했다.
“정 팀장은 이쪽으로 오지.”
“예. 회장님.”
대청마루의 앞까지 다가가자 최은태 회장이 무릎을 꿇고 있는 두 사람을 가리킨다.
“이 몹쓸 인간들이 자네 배우 이태풍과 관련된 추문을 조작하려 했네.”
최은태 회장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
다 알고 있지만 처음 들었다는 표정으로 방상영 이사를 노려봤다.
“방 이사님. 진짭니까?”
방상영 이사가 몸을 파르르 떨며 내 시선을 피한다.
그 모습을 본 최은태 회장이 혀를 차며 말한다.
“이사들에게 이견이 없다면 방 이사는 배임 행위로 해고할까 하네. 어찌 생각하나?”
그 순간 방상영 이사가 깜짝 놀란 표정을 하고 고개를 든다.
“회 회장님. 그게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면 뭐? 할 말이 있으면 해보게. 타당한 이유가 있으면 결정을 취소하지.”
방상영 이사가 고민에 빠진 표정으로 이리저리 눈치를 본다.
그때 방상영 이사의 눈이 최만식 대표의 시선과 마주쳤다.
최만식 대표가 인상을 쓰자 방상영 이사가 시선을 회피한다.
그때였다.
최은태 회장이 이제까지의 태도를 바꿔 슬그머니 악마의 유혹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방 이사.”
다정한 말투에 방상영 이사가 고개를 빼꼼히 치켜든다.
“예 회장님.”
“난 자네 혼자 이런 일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네. 그러니 솔직하게만 말하게. 내 모든 걸 걸고 자네를 보호해 주지. 누가 시키기라도 하던가?”
다정한 최은태 회장의 말에 방상영 이사의 눈빛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지금 이 순간.
최은태 회장은 이참에 그의 배후를 입으로 실토하게 하려 하고 있었다.
최만식 대표가 이 일의 배후인걸 최은태 회장도 알고 있지만 그를 치기 위한 명분이 필요한 까닭이다.
그 순간 최만식 대표의 눈도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방상영 이사의 입에서 배후가 지목되면 모든 명분을 잃고 속절없이 당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눈치를 보던 방상영 이사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기 시작한다.
“그게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