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1화
441. 미소야 3
4화 씬 50을 촬영하고 있는 세트장에선 최지영이 새끼손가락에서 나는 피로 자신과 미소의 이마에 무엇인가를 그리기 시작한다.
최지영이 그리는 기묘한 그림은 <화란전>에서 사용하는 도깨비들의 문자.
인간들이 오래전에 잊어버린 이 도깨비들의 문자를 아는 자는 <화란전> 내에선 오직 2 왕후 한 사람뿐이다.
그리고 2 왕후는 그 도깨비 문자를 이용해 자신의 수명을 딸에게 넘겨주는 술법을 사용한다.
유화 공주가 여왕이 될 수 있는 18살까지만 수명을 남겨두고 남은 모든 수명을 넘기겠다고.
그 순간 성골(聖骨)인 2 왕후의 피 냄새를 맡은 도깨비 비형랑은 거래에 응한 뒤 자신이 모시는 천신을 대행해 수명을 넘겨준다.
최지영은 그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 가짜 피로 문자를 그린 뒤 두 손을 모으고 주문을 중얼대고 있었다.
순간 소품 팀장이 수신호를 보낸다.
소품팀 막내가 급히 거대한 송풍기를 켠다.
우우우웅!
송풍기의 날개가 회전하며 거센 바람이 몰아치자 세트장에 있는 문들이 바람에 덜컥덜컥 흔들리기 시작한다.
세트장 안 공주 방에 있는 모든 물건들은 바람에 이리저리 날렸고 공주를 지켜보던 국왕과 왕후들 그리고 정화와 도화 공주를 비롯해 시종들은 혼비백산하며 소란을 떤다.
『에구머니나!』
『대왕! 피하시옵소서!』
『피하셔야 합니다! 도 도깨비가 옵니다!』
『맞습니다 대왕! 이건 필시 도깨비가 일으킨 돌개바람이옵니다! 도깨비에게 해를 입으실 수도 있으니 나가셔야 하옵니다!』
시종들이 애타게 외치지만 송지환은 굳건히 버티고 있다.
아역 배우들도 오복희 PD가 알려준 그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연기지도를 받은 대로 충실하게 연기를 펼치고 있다.
덕분에 어디 하나 빠지는 데가 없는 장면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잠시 후.
송풍기가 일으킨 바람으로 세트장에 있던 촛불 4개가 동시에 꺼진다.
그에 맞춰 스태프들이 조명을 어둡게 만든다.
바람에 날려 엉망이 된 공주전에서 최지영은 미소를 품에 안은 채 곡소리를 하듯 기원하고 있다.
『천신이시여. 부디 제 명을 받으시고 제 딸의 명을 돌려주소서~』
최지영의 목소리가 점점 거세어지기 시작한다.
그 순간 오복희 PD가 다시 신호를 준다.
차후 CG가 들어갈 30초의 시간.
<화란전>에서는 2 왕후의 거래에 응한 도깨비 비형랑(鼻荊郞)이 수천 마리의 반딧불이를 보내오는 장면이다.
오복희 PD의 신호를 보자 최지영이 그에 맞춰 연기한다.
그러다 30초 뒤 오복희 PD가 다시 한번 CG가 끝났다고 신호를 준다.
그 순간 최지영은 몸을 파르르 떨다가 눈을 하얗게 뒤집고 쓰러져 버렸다.
털썩.
최지영이 열연을 펼치고 쓰러지자 스태프들은 이제 미소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제부터 미소는 최지영의 수준 높은 연기를 그대로 이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연기 수준에 차이가 벌어지면 NG가 날 수도 있는 상황.
현장에는 긴장이 맴돌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미소의 축 늘어진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꿈틀.
꿈틀.
마치 심장박동이 뛰는 속도에 일부러 맞추기라도 한 듯.
미소의 손가락이 꿈틀거리며 소생을 알리기 시작한다.
섬세하지만 눈에 띌 정도의 연기였다.
그러기를 몇 초.
눈을 감고 있던 미소가 갑작스레 눈을 번쩍 뜬다.
그리고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마치 여기가 어디인지를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내가 왜 여기에······ 있지?』
도깨비가 목숨은 살려냈지만 소생의 부작용으로 기억을 잃은 유화 공주를 연기하는 미소였다.
긴 잠을 자고 일어났다는 듯 상쾌한 표정을 지은 채다.
그때 미소가 쓰러진 최지영을 발견했다.
이제 <화란전>의 씬 50의 하이라이트인 도깨비 비형랑에게 빙의된 유화 공주가 정화 공주와 도화 공주를 가리키며 경고를 하는 연기가 시작될 순간이다.
긴장한 탓에 손에 땀이 쥐어진다.
그때였다.
미소는 쓰러진 최지영을 보자 감전이라도 된 듯 몸을 파르르 떨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눈을 반쯤 까뒤집고는 양이지와 진공주를 가리키며 기괴한 음성을 내기 시작한다.
『나는 모든 것을 다 보았다. 너희들이 쌓은 업이······ 너희들의 여생을 옭맬 것이니라······』
진짜 귀신이라도 들린듯한 미소의 연기에 양이지와 진공주의 얼굴이 공포에 젖어 든다.
그러자 미소는 그 둘을 바라보며 씨익하고 짙은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감전이라도 된 듯 몸을 부르르 떨다가 또다시 정신을 놓아 버렸다.
털썩.
기력이 빠진 미소가 최지영의 위로 쓰러져 버렸다.
그렇게 유화 공주는 기억을 잃어버리고 정화 공주와 도화 공주가 입을 다무는 <화란전>의 4화 씬 50의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화란전>에서의 독버섯 사건은 훗날을 기약하며 도깨비만 알고 있는 일화로 남게 된다.
* * *
“커어~엇! 오케이!”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오복희 PD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뼉을 쳐댄다.
“미소야 싸랑해!”
그 순간 금은동 AD가 옆구리를 살짝 찌른다.
편애하지 말라는 신호였다.
뒤늦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달은 오복희 PD는 다른 배우들을 향해서도 하트를 날린다.
“물론 이지랑 공주도 싸랑한다~ 니들도 너무 잘했어!”
최지영과 미소의 연기가 주였지만 아역 배우들의 리액션 덕에 극의 퀄리티가 올라가 버렸다.
배우들이 몰입에서 깨어나자 그제야 스태프들도 정신을 차리고 환호성을 지른다.
“야. 최지영 씨 연기 봤냐?”
“미소는 또 어떻고요?”
“지영 씨가 텐션을 워낙 올려놓아서 어떻게 따라가나 아찔했는데 저 어린 미소가 용케도 그걸 받아 쳐주네?”
“미소 연기하는 거 보면 내 심장이 두근댄다니까?”
감탄을 토로하는 촬영감독과 혀를 내두르는 조명팀 막내.
송풍기를 두드리며 환호를 보내는 소품팀 식구들.
큐 카드를 옆구리에 끼고 휘파람을 불어대는 금은동 AD까지.
모두가 감동에 가득 차 박수를 그치지 않는다.
그 순간 최지영이 미소의 손을 잡고 일어선다.
자신의 연기를 이어받아 펼쳐준 것에 대한 감탄이 어린 표정이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미소가 <화란전>에서 출연하는 마지막 현장.
그 막이 이렇게 내리고 있었다.
* * *
아역들이 <화란전>에서의 마지막 촬영을 끝낸 후.
스태프들이 미소를 비롯한 아역들에게 한가득 꽃다발을 선물했다.
미소는 품에 꽃다발을 가득 안고 대기 천막으로 돌아왔다.
미소가 생글생글 웃으며 묻는다.
“삼촌 나 잘했어요?”
“물론이지.”
미소가 유진이를 쳐다본다.
“엄마! 나 잘했어?”
유진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미소······ 최고였어.”
순간 미소가 안절부절못하고 내게 꽃다발을 내민다.
“삼촌 나 이것 좀 받아줘요.”
“응.”
미소에게서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미소가 울고 있는 유진이를 향해 다가간다.
그리고는 작은 팔을 벌려 엄마를 끌어안았다.
“엄마. 왜 울어? 울지 마.”
유진이 역시도 미소를 꼭 껴안았다.
“대견해서······ 기특해서······.”
“근데 왜 울어? 잘하면 엄마가 머리 쓰담쓰담 해줘야지.”
미소가 작은 머리를 엄마한테 내민다.
유진이가 미소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는다.
“그래······ 우리 미소. 잘했어. 장하다 우리 미소.”
그런데 고개를 든 미소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나 엄마랑 계속 연기하고 싶은데 오늘이 정말 끝이야?”
유진이가 미소의 볼을 쓰다듬는다.
“괜찮아! 앞으로도 함께 연기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잖아.”
“진짜?”
“그럼!”
그러자 유진이와 미소가 동시에 날 쳐다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두 사람이 함께 출연할 작품을 찾으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재벌 회장님 앞에서도 거물 스타들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지만 이 두 사람의 눈빛 공격만은 도저히 당할 수가 없다.
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찾아볼게. 이왕이면 끝날 때까지 함께 나올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로!”
유진이와 미소가 해맑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네~!”
“아싸! 유노 삼촌 짱!”
아무래도 만사 제치고 당장이라도 두 사람이 나올 작품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다.
* * *
서라벌 삼겹살집.
아역 배우들의 촬영이 끝난 기념으로 전체 회식을 가지는 중이다.
사극 촬영에 보조 출연자들까지 100명을 훌쩍 넘는 인원들이 고기를 구워대자 가게 사장님은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뛰어다닌다.
하지만 비어나가는 고기와 술을 보자 사장님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했다.
고생한 만큼 오늘 매상은 엄청날 테니 말이다.
다만 여배우 이태연은 기분이 상한 나머지 회식에 참석도 안 하고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지금 우리 테이블의 경우엔 미소와 진공주가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흡사 바둑을 두고 난 뒤 복기하는 프로기사들처럼.
그때 진공주가 사이다병 잡고 플라스틱 컵에 사이다를 따라주며 솔직한 감상을 말한다.
“미소 너. 아까 진짜 연기 잘하더라?”
졸졸졸.
미소가 씩하고 웃더니 사이다병을 받아 진공주의 플라스틱 컵에다 다시 따라준다.
“고마워. 공주야. 너도 잘했어.”
진공주의 엄마는 현장에 오지 않았기에 미소와 진공주는 적어도 현장에서만큼은 친구가 되어 있었다.
사이다를 서로 따라주고 연기(?) 평가를 할 만큼.
나름 진지한 두 사람을 보고 주변에서는 빵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미소와 진공주가 플라스틱 컵을 들어 건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짠~”
사이다를 홀짝인 미소와 진공주가 몸을 파르르 떤다.
“으으으. 목 따가워.”
“으으으. 나도!”
두 사람이 컵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목을 부여잡는다.
그때 어느새 다가온 오복희 PD가 섭섭하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이제 우리 미소랑 공주 못 봐서 어떻게 하지~이?”
“저두요 감독님!”
“저도 저도!”
미소와 진공주가 오복희 PD를 덥석 껴안아 주자 오복희 PD는 도저히 놓기 싫다는 듯 얼굴을 부비부비거린다.
잠시 후 두 사람을 회상씬에서라도 다시 부르겠다고 약속한 오복희 PD가 내게 잠시 밖으로 나가자고 말한다.
“정 팀장님. 잠깐 따로 이야기 좀 하시죠.”
“예.”
무슨 일인가 하고 그녀를 따라갔다.
가게 밖 자판기 옆에서 오복희 PD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실은 비형랑 역 때문에 불렀어요.”
“비형랑요? 그러고 보니 오늘 선혁 씨가 안 오셨네요?”
비형랑 역은 오늘부터 촬영에 들어가야 했는데 그 역을 맡은 배우 김선혁이 아직도 현장에 오지 않은 상태였다.
“예. 선혁 씨가 사고를 쳐서요.”
오복희 PD가 선택한 비형랑 역은 오디션을 통해 김선혁으로 결정이 나 있었다.
김선혁은 TNT 소속으로 올해 32살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는데 꽤 선 굵은 연기를 하는 연기자다.
그런데 워낙 술을 좋아하다 보니 술을 마신 뒤 음주 운전 폭행을 반복하다 몇 년 뒤에는 연예계를 떠난다.
그 김선혁이 어저께 밤 술을 마시고 팬과 주먹 다툼을 벌였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팬과는 합의했지만 언제 기사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
회귀 전에도 있었던 일인데 당시에는 유야무야 넘어갔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며칠 전에 유강석 대표가 유진 씨 인터뷰로 장난질을 쳤었잖아요. 그래서 리스크도 없앨 겸 TNT 엔터한테 징계를 내리라고 하시네요. 김선혁을 쳐내는 거로요.”
MBS 최상병 대표가 제대로 벼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오늘 현장에 오기도 전에 잘려버렸단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내게 한다면 이유는 딱 하나였다.
“설마 저한테 배우를 구해달라고 부르셨습니까?”
오복희 PD가 씨익 웃는다.
“척하면 척이네요. 어디 좋은 배우 없어요?”
비형랑 역은 신비로운 이미지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배우를 구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게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배우야 찾아보면 되죠.”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 오복희 PD가 어려운 조건을 단다.
“원래 비형랑 비중이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지영 씨나 유진 씨에게 밀리지 않게 연기력이 좀 되는 배우로 구해야 할 것 같아요.”
“한 작가님은 뭐라고 하세요?”
“당연히 오케이 하셨죠.”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였다.
“그러면 출연료는 얼마 정도 생각하십니까?”
“그게 문제예요 지금 제작비가 간당간당해서 회당 백만 원 정도가 한계예요.”
“백만······ 원이요?”
회당 백만 원이면 방송국 미니시리즈에서 대사 고정이 있는 조연 중 이름이 있는 배우들이나 받을 수 있는 괜찮은 출연료다.
하지만 유진이나 최지영에게 밀리지 않는 수준을 가진 연기자에게 줄 출연료라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편당 천만 원이라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편당 백만 원이라니!
그런데 조건은 그게 끝이 아니다.
“거기다 나이는 30살 전후여야 해요.”
“지금······ 장난하시는 거죠?”
“아뇨. 진담이요. 어렵다는 거 아는 데 꼭 좀 부탁드려요. 네?”
나이 제한이라도 없다면 조연 중에서 구할 수 있다.
그것도 안 되니 사람을 구하기 극단적으로 어려워졌다.
‘어떻게 한다?’
그런데 그때 배우 한 명이 떠올랐다.
한우혁.
올해 30살로 3년 전 데뷔와 동시에 뛰어난 연기력을 보였다가 위암으로 인해 잠정 은퇴한 배우였다.
그리고 아마도 지금쯤은 항암 치료를 끝마치고 복귀를 시도하고 있을 시기였다.
‘일단 만나봐야겠군.’
후보가 떠올랐기에 잠깐 심호흡을 한 뒤 조심스레 대답했다.
“출연료가 낮아서 장담은 못 하지만 삼일 뒤에 황룡 영화제가 끝나고 나면 한번 구해보겠습니다.”
오복희 PD가 그럴 줄 알았다며 반드시 보상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이번에는 또 뭘 주려고 그러지?’
* * *
미소의 촬영이 끝난 다음 날.
유진이는 이영진과 함께 모레 있는 황룡 영화제 시상식에 맞춰 돌아올 예정이었기에 미소만을 데리고 서울로 돌아왔다.
미소를 천호동 집에 데려다주고 곧바로 회사에 출근했다.
점심 식사를 마친 각 부서의 직원들이 이를 쑤시며 엘리베이터 앞에서 수군거리고 있다.
모레 황룡 영화제로 바쁠 상황이지만 대화의 주제는 연말이 지나야 살 수 있는 ‘우리사주’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관우 엔터 전체를 인수하는 데 수십억을 들였다는데 우리 회사 재정은 괜찮나?
-아직 돈을 넣은 건 아니라던데? 그나저나 그냥 인수를 안 하면 안 되나? 지금도 잘 되고 있잖아.
-그게 우리 뜻대로 되나. 그나저나 우리 주연이 엄마는 그냥 주식 사지 말고 돈 보태서 집부터 사자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우리 배우 1실은 우리 사주를 무조건 사라고 강요하는 분위기라······ 이거 미치겠네. 괜히 샀다가 돈을 날릴 수도 있다면서?
구성철 실장과 배우 2실 팀장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유언비어(?)를 퍼트렸는지 직원들은 다들 걱정이 태산이다.
배우 1실의 경우 최은석 실장은 ‘우리 사주’ 매입을 강요하다 보니 오히려 역효과가 나고 있었고.
그때 날 발견한 선배들이 급히 입을 다문다.
“어 어. 정 팀장. 왔어?”
“예. 선배님들. 혹시 황룡 영화제 이야기하고 계셨어요?”
“어 어? 그 그래. 모 모레가 시상식이잖아. 태풍이는 준비 잘하고 있지?”
“예.”
“그래. 수고해.”
선배들은 그렇게 도망치듯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버렸다.
난 빙긋이 웃으며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모든 것이 뜻대로 되어 가고 있었기에 웃음이 잦아지고 있었다.
* * *
사무실로 올라가자 정 팀에 와 있던 구성철 실장이 급히 내게 손짓을 한다.
“정 팀장. 이리 좀 와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구성철 실장이 속삭이며 말한다.
“방 이사가 최근에 서예종 쪽 심사위원들과 만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봤어?”
방상영 이사는 150억짜리 영화의 주연을 맡겨주겠다며 3실 배우들을 내 팀으로 못 가게 하려다 실패한 후 한동안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모레 있을 황룡 영화제의 심사위원들을 따로 만나고 다닌단다.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이때 서예종 심사위원들을 만난다는 건 황룡 영화제 심사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소리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
그때였다.
폰에 진동이 울리며 다이어리가 메시지를 보내온다.
[알림 : 2020년 11월 30일 ‘이태풍’의 새로운 일정이 발생하였습니다.]
11월 30일은 황룡 영화제 당일.
급히 다이어리를 넘겨 일정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 일정엔 터무니없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