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9화
429. 김동수의 몰카 4
김동수의 아지트로 쓰이는 K 오피스텔 1606호의 입구.
띠리딕.
“열렸습니다.”
지하 주차장에서 CCTV를 피해 올라와 문을 열자 도합 10분이 소비되어 버렸다.
남은 시각 20분.
달칵.
문을 열고 내부에 들어서자 센서에 의해 현관등이 켜진다.
붉은 현관등 불빛으로 내부 구조가 한눈에 보였다.
예전에 봤었던 그 모습 그대로 기본 가구가 단 하나도 없는 썰렁한 모습이다.
“잠시만요 형님. 내부에 CCTV가 있을지도 모르니 확인 좀 하겠습니다.”
“신경 안 써도 돼.”
우리가 가져갈 건 도촬한 사진들.
보유하는 것만 밝혀져도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 있는 것들이다.
즉 김동수는 도난당한 물건이 무엇인지 경찰에 신고할 처지도 못 된다.
다만 김동수가 개인적으로 뒤를 쫓는 것을 막기 위해 변장을 했을 뿐이었다.
“호재야. 이쪽으로.”
“예. 형님.”
난 현관 등의 자동 센서 스위치를 내린 뒤 플래시를 켜고 방 세 개 짜리 오피스텔의 가장 작은 방으로 향했다.
가장 작은 방에는 오늘 옮긴 금고 한 개와 종이 상자 10개가 놓여 있었다.
개수가 많은 걸 보니 미리 옮겨 놓은 모양이다.
“호재야. 넌 금고를 맡아. 난 나머지 상자에 있는 것들을 확인할 게.”
“예.”
이호재가 장비를 꺼내 금고에 달라붙었다.
그러는 동안 난 종이 상자를 열어 자료들을 확인하며 담기 시작했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 종이 상자에는 잡다한 서류만이 있었다.
하지만 네 번째부터 몰카 사진이나 여배우들의 치부 파일들이 서류 사이에 섞여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하여튼 김동수 이 인간······.”
이미 은퇴한 배우들도 있고 김동수에게 이용을 당하고 버려진 배우도 있다.
그 안타까운 면면에 절로 입에서 욕이 튀어나온다.
재깍재깍.
눈 깜짝할 사이 시간이 흘러간다.
종이 상자를 일곱 개 깠을 무렵 25분의 시간이 흘러갔다.
남은 시간 5분.
하지만 아직 우린 김동수의 오피스텔을 떠나지를 못하고 있다.
아직 리버스 엔터에서 영입한 여배우들의 몰카 사진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고에······ 파일이 있나?’
이호재는 아직 진땀을 뻘뻘 흘리며 금고를 열려고 하는 중이다.
오랜만에 금고를 따는 게 쉽지 않은 기색이다.
뒤이어 종이 상자 여덟 개를 깐 순간 30분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때 마침 기다렸다는 듯 서재일 검사의 전화가 걸려온다.
[발신자 : 서재일]
뻔한 내용이겠지만 확인차 방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정 팀장님. 지금 막 김동수가 조사실을 나섰습니다.
서울중앙지검 조사실에서 나왔다면 여기까지 오는데 앞으로 남은 시각은 10분에서 20분 남짓.
차가 막히는 정도에 따라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더 오래 붙잡아 두지 못해서. 태성의 변호사가 영장이 기각된 걸 알아차린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닙니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서재일 검사는 자신이 약속한 시간을 벌어줬다.
그렇다면 이젠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할 차례였다.
전화를 끊고 난 뒤 난 지하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수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찬아. 김동수가 나왔다니까 곧 그쪽에 도착할 거야. 차는 양태민이 끌고 갔으니까 아마도 입구 쪽으로 나타날 거다. 기다리고 있다가 놈이 오면 붙잡고 실랑이 좀 해.”
-실랑이를요?
“어. 넌 리버스 엔터 부대표잖아. 김동수한테 우리 애들 협박해서 어떻게 할 거냐고 따져. 우리가 빠져나갈 때까지. 그리고 혹시나 놓치게 되면 바로 전화 주고.”
-아! 알겠습니다.
난 곧장 전화를 끊은 다음 남은 종이 상자를 열어 사진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재깍재깍.
시간이 총알같이 흘러가기 시작한다.
* * *
법무법인 태성의 곽현성 변호사 덕분에 김동수는 곧바로 풀려났다.
그런데 함께 중앙 지검을 나오던 중 곽현성 변호사가 조용히 속삭인다.
“서 검사가 압구정 오피스텔을 압수 수색하려고 한 거 보니까 꽤 중요한 게 있나 보군요. 당장 돌아가서 증거나 없애시죠. 숨기려면 철저하게 숨기고요.”
“알겠······습니다. 그분께 감사하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건 됐고. 약속만 지키십시오.”
약속이라는 건 S급 여배우인 오주현과의 스폰서쉽을 성사시키란 이야기였다.
자신을 구해 준 이유도 그런 이유였고.
“명심하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한 김동수는 곧장 택시를 잡아타고 오피스텔로 향했다.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다 보니 차가 별로 없어 10분 만에 오피스텔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단단한 체구를 가진 남자가 터벅터벅 자신에게 다가온다.
대체 누군가하고 쳐다본 순간 남자가 큰 소리를 내질렀다.
“야. 김동수. 네가 우리 여배우들에게 협박했다며?”
“넌 누구······.”
“나? 난 리버스 엔터의 이수찬이다! 네가 감히 우리 회사 여배우들한테 전화해서 협박질을 해?”
이수찬은 빠르게 다가와 김동수의 멱살을 덥석 쥐어 올려버렸다.
그리고는 한껏 힘을 줘 김동수를 공중으로 들어 올려 버렸다.
“컥! 컥. 수 숨이 안 쉬어······져······ 경비······원! 경비······원!”
김동수는 발버둥을 치며 경비원을 부르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 * *
띠리릭.
결국 금고의 문이 열렸다.
이수찬과 전화한 지도 무려 10분이 지났기에 시간이 촉박했다.
“형님. 죄송합니다. 오랫동안 안 했더니 손이 굳어서······.”
“아냐. 잘했는데 뭘. 일단 담기부터 하자.”
김동수의 금고 안에는 생각한 대로 리버스 엔터 여배우 10명의 사진이 있었다.
“급수가 높은 스타들 자료는 여기에 모아뒀나 봅니다.”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리버스 엔터의 피해자 10명은 나름 주목받는 연예인들이다.
A급이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가능성 있는 신예들.
그러다 보니 김동수는 그녀들의 몰카 사진을 소중히 따로 보관해놓았다.
그런데 그때.
금고의 가장 깊은 곳에 최근에 넣어둔 듯한 빳빳한 노란색 종이봉투가 보인다.
마음이 급했지만 열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내용이 담긴 자료였다.
[X-FILE : 오주현]
‘이것 봐라?’
김동수가 만든 X-FILE.
아마도 백 대령에게서 받은 자료인가 본데 역시 그 디테일함의 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오주현의 성격과 능력.
장점 단점 약점 그리고 현재 상황까지.
게다가 치명적인 치부 사진도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
이 정도라면 한 연예인의 인생과 미래를 한 손에 틀어쥐는 목줄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다시 전화가 울린다.
[발신자 : 이수찬]
난 급히 X-FILE을 가방에 담고 이수찬의 전화를 받았다.
“어. 수찬아.”
-형님. 경비원들이 오는 바람에 김동수를 놓쳤습니다. 빨리 나오십쇼. 막 올라갔습니다.
“어. 다됐어. 바로 나간다.”
그때 발칙한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난 이호재가 장비를 챙기는 동안 바닥에 떨어진 서류 한 장을 쥐었다.
그리고는 사인펜으로 내 필체를 알아볼 수 없게 문장을 남겼다.
마치 도둑들이 사인을 남기듯 말이다.
난 종이를 반으로 접어 금고를 열면 바로 볼 수 있게 한 뒤 금고문을 닫았다.
덜컹.
“호재야. 나가자.”
“예. 형님.”
난 이호재와 가방을 나눠 들고 급히 현관문을 나섰다.
“이쪽으로.”
김동수가 엘리베이터로 올라올 게 뻔했기에 다급히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우린 최대한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게 계단을 내려가며 이수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수찬이 전화를 받는 순간 속삭이듯 외쳤다.
“수찬아. 차 대기 시켜.”
-예. 형님.
김동수가 가진 몰카 사진을 내 손에 넣었다.
더군다나 그의 X-FILE 중 하나도 손에 쥐었다.
상황 역전이다.
* * *
띠잉.
-16층입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옷차림이 엉망이 된 김동수가 뛰쳐나왔다.
“헉헉헉······ 죽는 줄 알았네.”
리버스 엔터라면 그 구성원의 절반 이상이 전직 조폭으로 유명한 회사다.
그나저나 하필이면 찍어뒀던 여배우들이 모두 그쪽 회사로 가다니.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여배우들의 사진은 당분간 봉인해 두는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데려온다.”
어쨌건 지금은 리버스 엔터보다 서재일 검사가 들이닥치는 게 더 문제였다.
띡띡띡.
버튼을 누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런데 오피스텔 내부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뭐야? 센서 등이 나갔나?”
김동수는 더듬거리며 센서 등을 찾았다.
달칵.
등이 켜지자 김동수는 급히 자료를 보관해 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김동수는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이 이게 뭐야!”
종이 상자들은 다 까져있고 내용물은 흩어져 있다.
누가 봐도 도둑이 다녀간 흔적이다.
급히 상자를 살폈지만 보관해 두었던 수많은 여배우들 몰카 사진이 모조리 사라진 후였다.
“으아아악!”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자료들이 사라진 터라 머리가 어찔할 정도였다.
그때 김동수의 눈에 금고가 들어왔다.
다행히 금고는 잠겨있었다.
“그래! 돈 되는 애들은 다 여기 있으니까······ 그 금고만 안전하면 돼.”
금고엔 리버스 엔터에 있는 여배우 10명의 사진과 거액을 주고 구입한 X-FILE이 보관되어 있다.
김동수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기어갔다.
띠리릭.
터치 음과 동시에 금고문이 달칵하고 열린다.
그 순간 김동수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여배우들의 사진이 담긴 종이봉투가 사라졌다.
그리고 X-FILE이 적힌 노란색 봉투마저 사라져버렸다.
“아 안돼······.”
그와 동시에 김동수의 눈에 접힌 종이에 글귀가 보인다.
[내가 누구~게?]
그 순간 김동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누 누구냐······ 넌?”
고전 공포 영화에나 나올법한 식상한 문구였지만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누군가 마치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은 섬뜩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모든 것이 누군가의 손 위에서 놀아나는 기분이다.
그동안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도 그렇고.
‘최만식? 양태민? 날새? 그것도 아니면······ 정윤호? 누구지?’
수많은 이름이 떠올랐지만 그 어떤 것 하나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
오늘 막 이사를 한 이곳을 어떻게 알고······
그때였다.
뜨끔!
혈압이 치솟아 오르더니 수천 개의 칼날이 목 뒤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그와 동시에 눈앞이 캄캄해지며 사방이 고요해졌다.
쿠웅.
김동수는 그렇게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은 냉방에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 * *
리버스 엔터로 돌아온 난 곧바로 몰카 명단에 있는 여배우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
그리고 이호재와 함께 빼 온 사진첩 10개를 여배우들에게 나눠 줬다.
이틀 전 나눠줬던 것과 같은 사진들이다.
“이 이걸 어떻게······?”
“자세한 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이제 김동수 그 인간이 여러분을 괴롭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오늘부터는 마음 푹 놓고들 주무세요.”
최혜연이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감사······해요······ 팀장님.”
얼른 일으키려 했지만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뜨거운 눈물방울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흑흑.”
“흑.”
뒤를 이어 다른 여배우들도 줄줄이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린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녀들이 겪었을 고통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난 그간의 고통이 눈물로 씻겨나갈 수 있게 잠시 동안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여배우들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줄어들고 하나들 고개를 든다.
난 그 타이밍에 맞춰 그녀들에게 말했다.
“사진을 빼 왔기에 김동수 그놈을 감옥으로 보내는 건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아마 고소를 해봤자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날 겁니다.”
눈물을 그친 맏언니 최혜연이 말한다.
“괜찮아요. 맘 편히 연기만 하고 살 수 있는 것만 해도 더는 바랄 게 없어요.”
뒤를 이어 우지영 박은채 그리고 막내인 오수진까지.
여배우들 10명은 이것만 해도 다행이라며 안도하고 있었다.
이후 이수찬은 절대 우리가 자료를 빼냈다는 걸 알리지 말아달라 신신당부한 다음 여배우들을 내보냈다.
그리고 난 이수찬과 함께 그의 방으로 향했다.
이수찬이 다른 여배우들의 몰카 사진이 담긴 가방들을 가리킨다.
“저건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딱 하나만 빼고 다 폐기해야지.”
“딱 하나만이라면······.”
오주현의 모든 게 기록된 X-FILE 만큼은 손에 쥐고 있을 생각이었다.
오주현은 스폰서의 힘으로 배역을 따내는 걸 즐기는 배우.
현장에서도 뒷배를 믿고 갑질을 하는 걸 예사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런 배우가 설치고 다니면 앞으로도 여러 피해자가 생긴다.
그때를 위해서 그리고 김동수의 목줄을 위해서 이것만큼은 가지고 있을 생각이다.
“그래도 이번에 못 끝내서 아쉽긴 합니다.”
이수찬은 김동수의 숨통을 끊지 못한 게 영 마땅치 않은 눈치다.
“걱정하지 마. 김동수 그 인간 지금쯤 온몸의 피가 다 마를 거다. 그리고 우리에겐 김동수의 약점 하나가 더 있잖아?”
이번엔 김동수를 엮을 순 없었지만 놈에겐 또 하나의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최성애.
‘연예가빅뉴스’의 인간 말종 주강용 기자가 가짜 기사로 협박하던 그때 난 지하주차장에서 김동수와 주강용 기자의 통화를 엿들었다.
미국으로 사라져버린 반짝 스타 최성애의 녹취록이 터지면 수많은 사람이 다칠 거라는 것을.
그리고 최성애가 연예계에서 사라진 이유와 김동수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도.
그래서 난 날새를 미국으로 보내 최성애를 찾는 중이었다.
“하긴 날새가 그 여자만 찾아서 데려오면 게임이 끝이긴 하죠.”
“그래. 하여간 이왕 말 나온 김에 날새에게 전화나 한번 해볼래?”
“예. 형님. 스피커폰으로 걸겠습니다.”
뚜뚜뚜-.
벨 소리가 몇 번 울린 후 날새가 전화를 받는다.
-어이~ 이 시간에 왜 전화 하슈? 거긴 새벽 아닌가?
“형님이 소식을 궁금해하신다. 최성애는? 찾았어?”
그런데 그때였다.
날새가 소스라치게 놀란 목소리로 대답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