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8화
418. 콘서트장 대관
코엑스 컨벤션홀 DX는 지난 5년간 에이스 엔터 소속의 발라드 가수 김기태가 연말 콘서트를 하던 장소였다.
그러나 대관 신청 날이 되었는데도 예약을 하지 않았기에 그 틈에 우리가 선금과 동시에 예약을 걸었다.
그리고 오늘 잔금을 치르고서 남은 대관 절차를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김기태는 곧장 콘서트를 하겠다고 했단다.
그 순간 대관 담당자 박연수 팀장은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우리 선금을 반환해주고 에이스 엔터의 김기태에게 대관해주기 위해 나섰다고 한다.
이게 다 대관 담당자 박연수 팀장이 김기태의 열렬한 팬이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물론 내겐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박연수 팀장의 비리에 관해서 몇 가지를 알뿐더러 곧 김기태에게 일어날 일도 있기 때문이다.
[에브리데이 V11]
[날짜 : 2020년 11월 23일]
-PM 09:00 <연예계 방방곡곡> 김기태 대마 밀반입. 구속.
-PM 10:00 전체 회의 (회의 내용 : 김기태 12월 연말 콘서트 코엑스 컨벤션홀 DX 대관 취소. 굴렁쇠 엔터 대관 실패.)
앞으로 일주일 뒤.
김기태는 자신에게 대마를 공급해준 공급상의 증언으로 구속당하게 된다.
당연히 연말 콘서트는 할 수 없게 되고.
회귀 전 굴렁쇠 엔터는 그 소식을 듣고 곧장 콘서트장 예약에 나섰지만 실패했었다.
이미 김기태의 소속사인 에이스 엔터에서 김기태 대신 다른 가수가 콘서트를 하겠다며 예약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직접 찾아왔다.
가만히 손을 놓고 기다리다간 올해 체리블라썸의 연말 합동 콘서트는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난 곧장 세리를 이주영 대리에게 맡긴 뒤 코엑스로 향했다.
* * *
코엑스 관리센터 사무실 앞 복도.
도란희는 얼굴을 벌겋게 붉힌 채로 입구의 복도 의자에 앉아 있다.
“팀장님~”
날 발견한 도란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목도리도마뱀처럼 옷깃을 날리며 달려온다.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애써 당황한 기색을 지우며 말했다.
“차가 막혀서. 그런데 왜 여기 나와 있어?”
도란희가 고개를 푹하고 숙인다.
“쫓겨났냐?”
“네······.”
“주먹이라도 휘두른 건 아니지?”
“그럴까 싶었는데 팀장님 오신대서 소리만 좀 질렀어요.”
순간 지난번 지하 녹음실에서 데시벨 측정기로 내기를 했을 때 도란희가 115 데시벨을 기록했던 기억이 난다.
공룡이 우는 줄 알았었는데.
아무튼.
“잘 참았어. 박연수 팀장 연락처는 있고?”
“여기요.”
관리센터 사무실의 유리문이 굳게 닫혀 있었기에 명함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뚜뚜뚜.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샘으로······]
“역시나 안 받네.”
“팀장님. 이러면 박연수 팀장 윗분들에게 연락해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 대관은 전적으로 그 사람 담당이라 전화해봤자 어차피 박 팀장한테 다시 전화 돌릴 거야.”
비록 김기태에 관한 일로 그녀도 곤란을 겪긴 했지만 내가 회귀 전까지 박연수 팀장은 쭉 대관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니 앞으로도 그녀가 다른 사람으로 바뀔 일은 없다고 봐도 된다.
그때였다.
에이스 엔터의 이찬동 실장이 발라드 가수 김기태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이게 누구야? 정 팀장 아냐? 여긴 어쩐 일로 왔어?”
“뭘 모르는 척하십니까?”
이찬동 실장이 히죽 웃으며 답했다.
“그러고 보니 연말 대관을 가로채려던 인간들이 있었다고 하던데 그거 혹시 그쪽이었어?”
도란희가 발끈하려 했지만 난 그녀를 달랬다.
어차피 이 사람들과 싸워봤자 결론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순간 베이지색 롱코트를 입고 선글라스에 포마드 머리로 한껏 멋을 낸 김기태가 웃음을 짓는다.
“그래. 그쪽이 요즘 그 유명한 정 팀장이라고?”
“아. 예.”
“미안하게 됐어. 그런데 어차피 여긴 내가 5년 동안 하던 곳이라서 누가 와도 안 돼.”
올해 35살인 김기태가 거만한 표정으로 반말을 찍찍 내뱉는다.
그때 센터의 입구 유리문이 열린다.
대관 담당인 박연수 팀장이 검은색 정장과 분홍 블라우스로 한껏 멋을 내고 나왔다.
“어머~ 우리 기태 씨 오셨어요?”
박연수 팀장이 활짝 웃으며 김기태를 반긴다.
하지만 도란희와 내가 있는 걸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정 팀장님도 계셨네······요.”
“팀장님. 잠깐 저랑 이야기 좀 하시죠?”
“할 말 없어요!”
“전 할 말 없는데 좀 비켜주실래요?”
날 밀어낸 박연수 팀장은 이찬동 실장과 김기태를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렇게 되면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팀장님. 어떻게 하죠?”
“별수 없지.”
난 곧장 폰으로 최소혜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자님. 서초 경찰서에 취재원 있으시죠?”
-어 있지. 왜?
“가수 김기태에 관해서 제보할 게 있어서요.”
김기태에게 대마초를 제공해왔던 공급책이 체포되어 있다는 제보를 듣자 최소혜 기자가 환호성을 지른다.
-오케이~ 진짜면 내가 오늘은 꼭 뽀뽀 한 번 해줄게!
노 쌩큐 절대 사절이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급히 끊어 버렸다.
* * *
대략 30분간.
나와 도란희는 복도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하지만 여전히 다이어리의 일정은 그대로였다.
곁에 앉은 도란희가 참지 못하고 묻는다.
“팀장님. 김기태가 진짜 대마 한 거 맞아요?”
“어 상습범이야.”
“근데 어떻게 이제까지 안 걸렸대요?”
“공급책이 꽤 조심해서 그래. 그래도 이번에는 공급책이 경찰에 잡혀 있으니까 절대 그냥은 못 넘어가.”
“공급책이 증언할까요?”
“세상에 제일 의리 없는 게 약 하는 놈들이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있는 거 없는 거 다 불 테니까.”
그때 센터의 유리문이 열린다.
이찬동 실장이 나오며 웃음을 짓는다.
“정 팀장. 다 끝났으니까 우리 저녁이나 같이할까?”
“됐습니다.”
이찬동 실장이 낄낄대며 고개를 끄덕인다.
“까칠하기는. 아 맞다. 그리고 우리 대표님이 주영인 일로 한번 보자는데 시간 좀 내.”
뭔가 께름칙했지만 그렇다고 안 만날 수도 없다.
주영인의 수익 때문에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는 건 사실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그럼 우린 갈게. 수고해 봐.”
두 사람은 그렇게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사라져 버렸다.
‘다음번 만남에 그렇게 웃나 한번 봅시다.’
그때 박연수 팀장이 슬쩍 나와 우릴 쳐다본다.
“뭐야? 아직 안 갔어요?”
“예. 잠시만 시간 내 주셨으면 합니다.”
박연수 팀장이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돌린다.
“알았어요. 들어와서 차나 한잔하고 가요.”
대관을 마쳐서 안심한 모양인지 사무실로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은 경쾌했다.
그때였다.
까톡이 도착했다.
[최소혜 기자 : ㄱㅅㄱㅅ. 정 팀장 말이 맞네. 오늘 밤에 기사 날 거야. 기다려 봐!]
다른 기자들과 달리 최소혜 기자는 중간일보 문화부 팀장으로 있으면서 쌓아놓은 인맥으로 빠른 정보를 획득했다.
순간 난 재빨리 다이어리를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1]
[날짜 : 2020년 11월 23일]
-PM 09:00 <연예계 방방곡곡> 김기태 대마 밀반입. 구속.
-PM 10:00 전체 회의 (회의 내용 : 김기태 12월 연말 콘서트 코엑스 컨벤션홀 DX 대관 취소. 굴렁쇠 엔터 대관 실패.)
‘뭐지? 왜 안 사라지지?’
영문을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은 박연수 팀장을 따라가는 게 우선이다.
난 폰을 덮고 도란희에게 말했다.
“란희야. 들어가자.”
그 순간 도란희가 내 팔을 덥석 붙잡는다.
“팀장님. 이번 일 잘 처리해주시면 제가 오늘 소고기 쏠게요! 우리 체리블라썸 애들 진짜 준비 많이 하고 있단 말이에요.”
난 도란희를 지긋이 쳐다보며 외쳤다.
“콜~!”
* * *
센터 사무실로 들어가자 박연수 팀장이 회의실로 안내한 다음 커피를 한 잔씩 내준다.
설탕도 넣지 않은 아메리카노로.
인생의 쓴맛을 느껴보라는 모양이다.
“연말 무대는 기태 씨가 하기로 결정 났는데 무슨 이야기를 더 하려고요?”
호로록.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그녀의 얼굴이 웃음으로 가득하다.
자기는 설탕을 넣었나 보다.
난 회의실 밖으로 목소리가 새지 않게 낮게 속삭였다.
“김기태 씨. 대마 스캔들 터질 거 아십니까?”
박연수 팀장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이 이봐요 정 팀장님. 어디서 그런 음해를 하시는 거죠? 지금 이 이야기 기태 씨 귀에 들어가면 고소감인 거 모르세요?”
“오늘 밤에 기사가 뜰 겁니다.”
난 최소혜 기자가 보낸 기사 요약본을 슬쩍 보여줬다.
그 기사를 본 박연수 팀장의 몸이 부르르 떨린다.
광 팬이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박연수 팀장이 갑자기 폰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시는 겁니까?”
“화장실에요. 금방 올게요.”
순간 이상한 마음에 다이어리를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1]
[날짜 : 2020년 11월 23일]
-PM 09:0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연예계 방방곡곡> 김기태 대마 밀반입. 구속.)
9시의 일정이 사라졌다.
그러나 10시의 예약이 실패한다는 내용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에브리데이 V11]
[날짜 : 2020년 11월 23일]
-PM 10:00 전체 회의 (회의 내용 : 김기태 12월 연말 콘서트 코엑스 컨벤션홀 DX 대관 취소. 굴렁쇠 엔터 대관 실패.)
그 말인즉슨.
이대로 박연수 팀장이 나가서 에이스 엔터에 연락을 넣게 되면 그때처럼 또다시 대관을 실패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난 회의실 문고리를 잡은 박연수 팀장에게 급히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박 팀장님. 이번에는 티켓을 몇 장이나 받으셨습니까?”
박연수 팀장은 대번에 내 말을 알아듣고 발걸음을 멈췄다.
“며 몇 장을 받았냐뇨?”
“왜 모른 척하십니까? 연말 티켓 받으신 거 다 아는데. 그것도 초청권이 아니라 판매가 가능한 일반 티켓으로.”
보통 대관을 하게 되면 담당자에게는 초청장을 지급한다.
일종의 관례 같은 것인데 박연수 팀장은 그 초청장을 윗분들에게 무상으로 뿌리게 된다.
그런데 김기태는 비매품인 초청장이 아닌 돈으로도 거래가 되는 일반 티켓으로 지급했다.
한 장에 10만 원짜리 티켓이니 백 장이면 대략 천만 원어치 현금을 준 거나 다름없었다.
이번처럼 특수한 경우라면 얼마를 더 받았을지 모르고.
박연수 팀장이 몸을 돌리며 따진다.
“새 생사람 잡지 마세요. 제가 무슨 일반 티켓을 받았다고 그래요? 증거도 없이 이러시면 저 정 팀장님 고소할 거예요!”
“하십시오. 그러면 경찰이 자세히 밝혀주겠네요. 초청권을 받으셨는지 일반티켓으로 받으셨는지요. 그리고 몇 장이나 받았는지.”
박연수 팀장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난다.
그 순간 도란희가 센스있게 대화에 끼어든다.
“팀장님. 우리 팀장님은 한다면 하시는 분이세요. 기태 씨의 팬이라고 해서 같이 죽을 필요는 없잖아요 네?”
박연수 팀장은 뭔가를 더 말하려다 빈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버린다.
잠시 아무 말 없는 시간이 흐르다 결국엔 한 가지 제안이 나온다.
“기태 씨 쪽에서 잔금은 아직 입금을 안 받았는데······혹시 지금 바로 입금해 줄 수 있어요? 그러면 저도 대관을 원래대로 돌릴게요.”
도란희가 밝아진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팀장님~ 굳이 서로 삭막하게 막 고소하고 그럴 필요 없잖아요. 예? 그리고 박 팀장님도 그 티켓을 설마 돈으로 바꾸셨겠어요?”
난 못이기는 척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박연수 팀장의 비리보다 체리블라썸의 무대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지금 입금해 드릴게요. 대신 다시 되돌리거나 하면 저도 그땐 못 참습니다.”
“알았어요.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박연수 팀장이 자신을 따라오라 말한다.
난 그 뒤를 따라가며 다시 한번 다이어리의 일정을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1]
[날짜 : 2020년 11월 23일]
-PM 10:0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전체 회의 (회의 내용 : 김기태 12월 연말 콘서트 코엑스 컨벤션홀 DX 대관 취소. 굴렁쇠 엔터 대관 실패.))
이제야 일정이 삭제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고맙다 에브리데이.’
다이어리 덕분에 모든 일을 깔끔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 * *
김기태의 대관을 취소하고 굴렁쇠 엔터에서 잔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대관 계약을 마무리 지었다.
공증까지 맡겼기에 다시는 돌릴 수 없게 만들었고.
그 이후 도란희와 함께 관리센터를 나오자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에이스 엔터 김기태 대마 상습 복용!]
[15년 차 발라드 가수 김기태. 대마 대량 밀반입!]
뒤이어 에이스 엔터가 해명 기사를 띄운다.
[에이스 엔터. “사실무근. 법정에서 결백을 밝힐 것!”]
“웃기고 있네.”
이제 다 끝났다 싶은 생각에 안도한 순간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발신자 : 이찬동 실장]
조금 전 만난 이찬동 실장의 전화였지만 깔끔히 씹어버렸다.
도란희가 씨익 웃는다.
“팀장님. 전화 안 받으세요?”
“어. 받아봤자 욕만 할 건데 내가 왜?”
“하긴 그렇겠죠?”
“근데 란희 너. 목소리가 왜 그렇게 떨고 있어? 누가 잡아먹는데?”
“제 제가요?”
“어. 네가요.”
도란희가 한숨을 푹 내쉰다.
“알았어요. 가요! 가! 오늘은 제가 살게요. 한우!”
“영진이도 부를까?”
도란희가 날 째려본다.
난 시선을 회피하며 빠르게 답했다.
“하긴 영진이는 한우 안 좋아할 거야. 우리 둘이서만 먹자.”
“네!”
그리고 그날 밤.
난 쌀과 반찬에는 일절 손도 대지 않고 한우만을 음미했다.
가볍게 3인분만 말이다.
역시 남이 사주는 고기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