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5화
415. 백설기와 인절미
차수연 제작실장은 리모델링을 하던 중 흰색 포메라니안 암컷과 치즈 태비 코리안숏헤어 암컷이 종종 나타나 자기들을 쳐다보다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혹시 두 마리. 사이 좋아 보이진 않던가요? 개랑 고양이치고는 걔들 진짜 친한데······.”
-글쎄요. 저희도 그렇게까지 자세히 본 건 아니라서요.
유진이가 아쉬운 듯 대답한다.
“말씀해 주셔서 고마워요. 뒤는 저희가 찾아볼게요. 아 그리고 공사해주셔서 진~짜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대신 다음번에도 저희랑 같이 드라마 해요.
“예. 실장님. 무조건이요!”
유진이가 전화를 끊고 상기된 표정으로 묻는다.
“오빠. 우리 럭키랑 미미 아닐까요?”
“나중에 덕배한테 말해둘게. 보면 사진이라도 찍어두라고.”
“네. 오빠.”
“자 안에도 구경해봐야지.”
유진이가 기운을 차리고 마당에서 1층 현관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발을 올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바스락.
“응? 무슨 소리지?”
조금 전 럭키와 미미 이야기를 들은 터라 혹시나 싶어 주변을 둘러봤다.
어디서 소리가 났는지 두리번거리는 사이 다시 한번 바스락 소리가 들려온다.
그때였다.
계단 아래서 미소가 그 소리의 정체를 발견했다.
“엄마! 여기!”
미소가 가리킨 계단 아래의 틈 사이에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강아지와 새끼 고양이가 놓여 있었다.
밤톨이처럼 새하얀 털이 북실북실한 포메라니안 강아지와 노란 치즈색의 코리안숏헤어 새끼고양이는 눈을 꼭 감고 서로의 몸을 꼭 끌어안은 채 보들보들 떨고 있었다.
유진이가 놀란 듯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한다.
“오······오빠······ 우리 럭키랑 미미랑······ 똑같아요.”
그와 동시에 난 급히 담벼락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개나 고양이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돌아온 난 유진이에게 말했다.
“유진아. 얘들 부모는 흔적도 안 보여.”
그때였다.
차가운 11월 바람이 추운지 두 마리가 몸을 바르르 떨며 소리를 낸다.
“낑낑~”
“삐익~”
두 마리는 마치 살고 싶다는 듯 낑낑대며 구슬픈 소리를 낸다.
본래라면 어미가 다시 찾아올 수 있었기에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사람 손을 타게 되면 냄새가 묻어 어미가 외면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두 마리의 상태가 아슬아슬해 보였다.
이대로 차가운 바람에 놓아뒀다간 죽을 정도로.
“엄마. 얘들 아픈가 봐.”
미소가 쪼그리고 앉은 채 발을 동동 굴린다.
그때 유진이가 날 쳐다본다.
“오빠. 어떻게 할까요?”
잠시 고민 끝에 생각을 정리했다.
주위엔 어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 파르르 떠는 게 아무래도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유진아. 얘들 우리가 키울까?”
유진이와 미소가 기다렸다는 듯 동시에 대답한다.
“네!”
“네!”
그 순간 난 계단 아래 틈으로 손을 뻗어 넣었다.
손끝에 닿은 두 마리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끼잉끼잉~”
“삐익삐익~”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어린 새끼 두 마리가 내 손에 담긴 온기를 느끼며 몸을 비빈다.
작은 생명들이 살려고 발버둥 치는 움직임에 나도 마음이 급해졌다.
“유진아 일단 보일러 좀 켜줘. 옷장에 담요가 있으니까 좀 깔아주고.”
“알았어요.”
유진이는 후다닥 뛰어올라 1층 문을 열고 보일러를 틀었다.
그리고 미소는 내 뒤를 종종 따라 들어온 뒤 두 손을 꼭 모으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 * *
집으로 들어온 나는 유진이가 꺼낸 이불로 들어갔다.
보일러 온도가 올라오기까지는 시간이 있었기에 급한 대로 내 체온으로 두 마리를 감쌌다.
꼬물거리는 두 생명체가 떠는 게 불안했는지 미소가 자기가 하겠다고 나선다.
“삼촌! 강아지랑 고양이! 내가 안을게요!”
“그럴래?”
미소에게 강아지와 새끼 고양이를 내밀자 미소가 마치 알을 품는 닭처럼 몸을 말아 꼬옥 껴안았다.
그 사이 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거실에 설치된 CCTV 모니터로 향했다.
유진이가 이 집에 살지 몰라 동작 감지가 가능한 CCTV를 설치해 둔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CCTV를 설치한 시각은 3일 전.
녹화된 3일 치 영상을 확인해 봤지만 아쉽게도 어미들이 오가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방으로 돌아간 난 그 사실을 알렸다.
“어미가 찍힌 영상은 없어.”
유진이가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내일부터는 덕배 살림살이가 들어오니까 그분들에게 말해둘게. 혹시나 개랑 고양이가 보이면 바로 연락 달라고. 그리고 만약 럭키랑 미미가 맞으면 사람을 써서라도 찾아다 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알았어요.”
그 순간 미소가 고개를 빼꼼히 들어 올린다.
“삼촌. 우리 얘들 이름 지으면 안 돼요?”
“혹시 우리 미소. 생각한 이름이라도 있어?”
“응! 그러면 노랑이 고양이는 노란색이니까 보리! 그리고 흰둥이 강아지는 흰색이니까······ 밥! 합치면 보리밥! 어때요?”
미소의 작명 센스에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온다.
개와 고양이를 합쳐서 ‘보리밥’이라니!
어지간해서는 미소 말이면 다 맞는다고 해주는 나지만 이건 아니다 싶다.
“미소야. 다른 이름은 없니?”
미소가 유진이를 쳐다본다.
“엄마. 이상해?”
“으응······ 조 조금?”
유진이가 엄지와 검지를 살짝 벌리며 대답하자 미소가 고민에 빠진다.
오른쪽에 안긴 강아지와 왼쪽에 안긴 새끼 고양이를 보면서.
그러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미소가 왼손에 든 흰색 포메라니안 강아지를 향해 말한다.
“그러면 얜 그럼 새하야니까······ 백설기!”
백설기가 꼬물꼬물 움직이며 작은 혓바닥을 내민다.
“끼잉~”
“어? 마음에 든다고? 힛! 그래. 나도!”
미소가 기분이 좋은지 다음 고양이를 향해 말한다.
“얜 온몸이 노~랗고 목덜미가 조금 희니까······ 인절미!”
새끼 고양이가 눈을 감은 채 하품하듯 입을 벌린다.
“삐익.”
“그래? 너도 마음에 든다고?”
“삐익삐익.”
고양이는 그저 배가 고픈 듯 입을 벌리며 소리를 내는 것 같지만 미소는 멋대로 해석하고 결론을 내렸다.
“엄마. 얘들도 좋데! 그러니까 이제 얜 백설기고 얜 인절미야!”
한식과 떡을 좋아하는 미소는 결국 강아지와 고양이 이름을 백설기와 인절미로 지었다.
“그건 좀 괜찮은 거 같아.”
덕분에 보리밥이 될 뻔한 두 마리는 ‘백설기’와 ‘인절미’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어쨌건 급한 대로 두 마리의 체온을 올렸기에 그제야 난 미소에게서 백설기와 인절미를 넘겨받았다.
“이제 조금 괜찮아졌으니까 애들 병원에 데려가 볼까?”
“네 삼촌!”
우린 두 마리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집구경도 미룬 채 동물 병원으로 향했다.
* * *
암사동의 24시 동물 병원.
친절한 수의사 선생님의 손에 맡겨진 백설기와 인절미는 무사히 정밀 검진을 마쳤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며칠 굶은 것 말고 큰 문제는 없었다.
“태어난 지는 10일가량 된 것 같네요. 그리고 영양실조가 조금 있는데 잘 먹이기만 하면 됩니다.”
“우유를 따듯하게 데워 먹일까요?”
“아뇨.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녀석들이니까 전용 분유를 타서 먹이시면 됩니다.”
그제야 마음을 놓은 우린 강아지와 새끼 고양이가 먹을 수 있는 분유와 젖병 그리고 배변 패드등을 구매해 집으로 돌아왔다.
미리 전화를 해서 허락을 받았기에 정인지 주인아주머니는 백설기와 인절미를 환히 반겼다.
“아이고~ 요 녀석들이 백설기랑 인절미야? 어쩜 이리 이쁘게 생겼을까?”
“할머니! 얘들 이름은 내가 지었어요!”
주인아주머니와 유진이 그리고 미소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머물 자리를 준비한다.
세 사람은 분유를 타서 먹이느라 부산을 떨었고 난 덕배를 오디션에 합격시키느라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3층으로 향했다.
* * *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1층으로 향했다.
그런데 원래 이 집에서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려온다.
“끼잉~”
“삐익~”
백설기와 인절미가 눈을 뜨고 배를 바닥에 대고 기어가고 있었다.
“설기야~ 절미야~ 이리 와.”
미소가 바닥에 누워 손뼉을 치며 부르자 하얀 솜뭉치 같은 백설기와 노란 공 같은 인절미가 꼬물꼬물거리며 바닥에 누워있는 미소에게 기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주방에서 유진이가 젖병을 가지고 오다 날 발견한다.
“어 오빠. 일어났어요? 좀 더 안 자고요?”
“아냐. 근데 왜 벌써 일어났어?”
“저도 지금 막 눈떴어요. 쟤들이 밥 달라고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서요.”
순간 미소가 백설기와 인절미를 품에 안고 일어나 날 향해 꾸벅하고 인사한다.
“삼촌!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설기야! 절미야! 너희들도 인사!”
한 주먹 크기의 두 마리가 미소의 손에 잡혀 손을 흔든다.
털이 뽀송뽀송한 두 마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짝짝 벌린다.
어젯밤 배부르게 먹었는지 통통해진 배와 핑크색 젤리 발바닥을 자랑하면서.
“끼잉?”
“삐익?”
하지만 백설기와 인절미는 이내 유진이가 가져온 젖병을 보고는 이내 정신을 잃고 쪽쪽 빨기 시작했다.
“끼잉끼잉~쩝쩝”
“삐익삐익~쭉쭉”
마치 맹수처럼 분유를 먹는 모습을 보자 겨우 안심이 든다.
“잘들 먹네.”
“근데 오빠. 오늘도 안 쉬고 바로 또 출근해야 해요?”
주말도 쉬지 않고 일했기에 오늘은 쉬어도 괜찮았지만 밀린 일 때문에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어. 덕배 스카우트랑 오디션 때문에 밀린 일이 산더미야.”
체리블라썸과 강하나의 연말 합동 콘서트 기획도 해야하고 <화란전>의 OST 가수들 선정도 마무리 지어야 했다.
그리고 연말에 있는 TV 시상식과 방송 3사의 연말 가요 대축제 스케줄을 조정해야 했고.
거기다 3주 뒤 11월 말에 있는 영화제 시상식도 대비해야 했다.
올 한해 <경계 너머로>의 대흥행으로 이태풍의 수상이 예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와~ 진짜 바쁘다~”
“연말이잖아. 아 너도 드레스 맞추러 가야 하니까 알고 있어. 내가 못 오면 상봉이 보낼 테니까.”
“예~썰~”
유진이가 대답하자 미소도 고개를 빼꼼히 든다.
마치 자기는 없냐는 듯.
“걱정 마. 우리 미소 드레스도 맞출 테니까.”
그제야 미소가 환히 웃음을 짓는다.
“네~!”
유진이가 밥부터 먹고 가라며 주방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직 아침 먹을 시간도 안 됐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발신자 : 성한영]
성한영 배우는 배우 3실에서 배우 2실로 옮기기로 약속된 배우.
조만간 매니저인 정성곤 대리와 함께 배우 2실로 올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이른 시각부터 전화였다.
무슨 일인가 하고 전화를 받은 순간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 팀장! 회사 좀 빨리 들어와 줘.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주 팀장이 글쎄 나한테 150억짜리 영화에 주연을 맡겨 준다네? 배우 2실로 안 옮기는 조건으로. 근데 이거······ 거절하기가 좀 그래.
성한영 배우는 이제껏 이 정도 영화의 주연을 맡아 본 적이 없었기에 흔들리고 있었다.
“곧 가겠습니다.”
최만식 대표가 그동안 준비해왔던 일들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굴렁쇠 엔터 6층 회의실.
회의실 안에는 성한영과 성한영의 매니저 정성곤 대리가 함께 앉아 있다.
그리고 성한영 배우에게 150억짜리 영화를 제안한 주호성 팀장과 박환서 감독도 함께였다.
회귀 전 박환서 감독이 만든 <인간 시장>은 예산 50억짜리 영화로 19금이 걸렸는데도 550만 명의 관객을 불러들여 꽤 흥행한 작품이다.
좋은 시나리오에 박환서 감독의 뛰어난 연출 인신매매 조직에 대한 현실 고증 등등의 여러 화제를 뿌리면서 말이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여러 제작사가 탐내던 작품이었기에 성한영 배우가 흔들리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 왔어? 정 팀장.”
성한영이 반가운 기색으로 손을 든다.
반면 주호성 팀장과 정성곤 대리는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주호성 팀장이 안색을 굳히고 묻는다.
“정 팀장이 여긴 왜 왔지? 이건 배우 3실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인데?”
“성한영 배우님이 저희 배우 2실의 케어를 받기로 되어 있으니 당연히 저도 와야죠.”
“아직 배우 2실로 가는 게 확실히 결정 난 것도 아니잖아?”
이때다 하고 정성곤 대리가 급히 주호성 팀장의 편을 든다.
“그래 정 팀장. 성 배우님이랑 내가 배우 2실로 옮긴다고 말하긴 했었지만 힘들 것 같아. 미안한데······ 이 정도 영화의 주연은 쉽지 않은 기회잖아. 안 그래?”
순간 어찌 된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최만식 대표가 투자를 빌미로 3실의 성한영 배우를 주저앉히려 하고 있었다.
정성곤 대리는 그 와중에 뭔가를 약속받았을 거고.
하지만 난 태연히 자리에 앉으며 답했다.
“글쎄요? 전 성한영 배우님이 이 작품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시작부터 폭탄을 투하하자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인간 시장>의 시나리오를 직접 쓴 박환서 감독이 씩씩거리며 날 쳐다본다.
“너······ 내 대본은 봤냐?”
“봤습니다.”
“그런데도 그딴 말이 나와?”
올해 45살인 박환서 감독은 꽤 권위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감독이라는 직책 때문인지 날 처음 봤음에도 반말을 찍찍 내뱉고 있다.
게다가 150억이라는 거액의 투자 약속을 받아서 그런지 박환서 감독은 벌써 거물이라도 된 것처럼 거만하게 굴었다.
“이번 작품은 이 박환서 인생 최고의 역작이야! 다른 사람들이 모두 흥행한다는데 넌 대체 뭐길래 그딴 X소리를 해대는 건데? 엉? 박수무당이라고 불리면 뭐라도 된 줄 알아?”
그의 말이 맞다.
대본은 잘 나왔다.
그리고 영화도 흥행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