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4화
404. 최덕배 2
“덕배야. 너한테 동생이 있었어?”
“네. 그런데 친동생은 아니에요.”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잠시 망설이던 덕배가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실은 저 고아예요.”
덕배는 부모의 얼굴도 모른 채 버려져 이곳 쪽방촌의 어른들이 키워줬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그러던 도중 아이를 가진 채 쪽방촌으로 들어온 누나 한 명이랑 친 오누이처럼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누나가 2년 전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지금은 그녀가 남긴 아이를 친동생처럼 데리고 살고 있다고 한다.
동생의 이름은 최한울.
남자아이로 이제 일곱 살이라고 한다.
왜 보육원에 보내지 않았냐고 묻자 아이를 남기고 죽은 누나가 제발 보육원만큼은 보내지 말라고 부탁하며 눈을 감았기 때문이란다.
그녀 또한 보육원 출신으로 안 좋은 일이란 안 좋은 일은 다 겪었다며 말이다.
내가 아는 덕배라면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으면 몰라도 일단 부탁받은 일은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의리 좋은 성격.
아무튼 회귀 전에 없던 동생이 지금은 있다면 곧 헤어지는 사건이 생길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회귀 전 덕배가 혼자서 굴렁쇠로 오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처음 봤을 때 애가 영혼이 나간 것처럼 보였었군.’
단지 힘들게 살아서 표정이 어두웠던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표정에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일단 연예인이 되라고 설득하고 나서 동생부터 만나봐야겠군.’
결국 난 스카우트 조건을 바꿔 덕배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덕배야. 우리 회사가 가정 형편이 안 되는 연예인은 숙소랑 생활비도 지급하거든? 어때? 연예인 할 거라고 약속만 하면 이곳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살게 해줄게.”
덕배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날 쳐다본다.
마치 다단계 판매원이 된 듯한 기분이 들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고민하는 덕배를 보며 난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그리고 한울이 후견인이 필요하면 후견인이라도 서줄게. 한울이가 올해 일곱 살이면 내년에는 학교도 보내야 할 텐데 보호자 없으면 학교 못 가잖아. 안 그래?”
덕배가 잠시 고민하다 내게 묻는다.
“그러면 여쭙고 싶은 게 있어요······”
“뭐든.”
“형이 볼 때 제가 그 업계에서 성공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저 캐스팅 제안이 처음은 아니거든요. 물론 돈을 준다는 건 형이 처음이지만요.”
덕배는 꽤 신중한 성격이었기에 재차 확인하려 들었다.
“네 마스크에 목소리면 연예인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어. 나만 믿어.”
덕배의 장점 중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큰 키와 남자다운 외모 말고도 중음의 묵직한 목소리가 있다.
목소리에 반한 팬들이 딥 보이스라는 카페를 만들었을 정도니까.
곁에 있던 박동준이 들뜬 표정으로 말한다.
“덕배 형. 얼른 한다고 해! 덕배 형이 배우가 되면 한울이 키우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잖아.”
결국 덕배가 고개를 끄덕인다.
“생활비만 나온다면 못 할 것도 없긴 한데······ 하아. 알았어요. 할게요.”
순간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잘 생각했다. 그러면 일단 네 동생부터 만나 보자. 인사는 해야지.”
덕배가 고개를 끄덕인 뒤 언덕길로 몸을 돌린다.
“저 따라오세요.”
“오케이.”
그렇게 우리 셋은 언덕길을 따라 덕배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던 난 언덕길을 오르며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덕분에 대체 왜 덕배가 주민등록증이 없는지를 알 수 있었다.
덕배의 나이는 19살.
현재 생일이 지나지 않아 만 17세가 넘었는데 덕배는 주민등록증을 만 18세가 되어야 발급받는 줄 알았단다.
그런데 듣다 보니 동생인 한울이의 사정은 더욱 기가 찬 상황이다.
“출생신고도 안 했다고?”
“예. 죽은 누나가 한울이를 국가에서 뺏어갈지 모른다고 생각해서요. 그리고 저도······ 보육원에 뺏길까 봐 제가 성인이 되면 등록하려고 했어요.”
“그 그렇구나.”
설마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아이가 요즘 세상에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덕분에 처리해야 할 일이 늘었지만 덕배를 찾은 기쁨에 비하면 이 정도 일 처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 그것도 처리해 줄게.”
덕배가 머쓱한 표정으로 말한다.
“고마워요 형.”
* * *
굽이굽이 휘어진 언덕의 건물로 들어가자 조명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복도에 여러 개의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중 덕배가 사는 방은 제일 안쪽 방.
달칵하고 문을 열자 밖보다 더 차가운 냉기가 방안에서 느껴진다.
그런데 어처구니가 없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뭐 뭐야. 이거?’
3평이 채 안 되는 공간에 빽빽이 들어찬 책들 사이로 일곱 살짜리 아이가 모포를 감고 웅크리고 있었다.
그런데 집안에 아무런 열기가 없어 차가운 입김을 내뿜고 있었다.
“하아······ 하아······”
덕배가 깜짝 놀라 방 안으로 뛰어들어가며 외친다.
“한울아! 지금 뭐 해?”
부스스 잠에서 깬 남자아이가 고개를 살포시 올려다본다.
“어. 형······ 언제 왔어? 콜록.”
귀엽게 생긴 일곱 살짜리 아이가 형을 보고 반갑게 웃는다.
그런데 추위에 떨었는지 얼굴이 하얗고 입술은 파리했다.
“또 보일러 껐어? 형이 집에 혼자 있을 땐 꼭 보일러 켜고 있으라고 했잖아!”
덕배가 언성을 높여도 한울이는 배시시 웃을 뿐이다.
“가스 쓰면 돈 많이 나가잖아. 형이 힘들게 돈 버는데······ 난 아끼는 거 말고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잖아.”
고작 일곱 살의 나이.
한울이는 형이 고생해서 돈을 버는 게 안타까워 아끼려고 하고 있었다.
차가운 냉골 바닥에 모포와 이불 몇 장으로 말이다.
“누가 너보고 돈 신경 쓰래? 왜 형 말을 안 들어?”
보일러를 켠 덕배가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외친다.
“헤헤······ 미안······ 형. 잘못했어. 콜록.”
가슴이 저릿하고 아려온다.
하지만 이런 감상에 빠지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아무리 봐도 한울이의 안색이 안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덕배야. 잠시만?”
덕배에게 비켜보라 말한 뒤 한울이의 이마에 손을 대었다.
한울이의 이마가 열로 펄펄 끓고 있다.
‘제길.’
역시나 내 생각이 맞았다.
한울이가 덕배와 함께 오지 못했던 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대로 있으면 위험하다.’
그때 멍한 눈으로 날 바라보던 한울이가 내 품에 쓰러져 버렸다.
털썩.
품에 안긴 아이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벼웠다.
난 지체할 틈도 없이 한울이를 달랑 들어 올렸다.
“당장 병원부터 가자!”
내가 미소를 잃었던 것처럼.
회귀 전 덕배도 유일한 가족을 잃었던 거다.
그래서 과거를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거였다.
지독한 과거의 기억이 고통스러운 가시가 되어 끊임없이 가슴을 후벼팠을 테니까.
회귀 전 내가 겪었던 그 고통처럼 말이다.
순간 난 한울이를 안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 * *
“헉헉헉.”
덕배가 사는 쪽방촌은 언덕 위에 있는 데다 골목도 좁아 구급차가 집 앞까지 들어오기 어려웠다.
그러니 한울이를 데리고 큰길까지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형! 여기요!”
정신없는 나와 덕배를 위해 박동준이 앞장서 길을 안내한다.
난 119에 전화를 하기 위해 잠시 덕배에게 동생을 건넸다.
“덕배야 받아. 나 119에 전화.”
“예. 형.”
덕배가 동생을 등에 업고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난 뒤를 따라가며 119에 전화를 걸었다.
“119죠? 애가 고열에 시달리고 있는데요. 빨리 좀 와주세요.”
-어딥니까?
“여기가······”
곁에서 박동준이 말한다.
“지금 동자동 쪽방촌에서 후암삼거리 쪽으로 내려가요! 우리 한울이 좀 살려주세요!”
박동준의 말을 들자 119 상담사가 빠르게 답한다.
-3분 안에 갈 겁니다. 계속 위치 알려주세요.
“예. 후암삼거리까지는 한 2분 정도 안에 갈 거 같습니다. 저희 세 명이고요 등에 일곱 살짜리 애를 업고 가고 있어서 한눈에 알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때 박동준이 다시 한번 길을 가리킨다.
“형. 오른쪽으로요.”
잠시 후.
후암삼거리가 나왔다.
밤 11시가 넘었는데도 차들이 꽤 지나간다.
숨을 헐떡이며 발을 멈춘 순간 시끄러운 경광등 소리와 중앙선 너머로 119 구급차가 보인다.
“여기요!!”
우린 다 같이 손을 들어 목청이 떠나가라 외쳤다.
그 순간 중앙선 너머에서 구급차가 유턴을 한다.
끼이익.
구급차가 우리 앞에 섰다.
구급차의 옆문이 열리더니 구급대원이 내린다.
“신고하신 분 맞습니까?”
“예!”
확인과 동시에 119 구급차의 뒷문이 열린다.
구급대원이 날 보며 말한다.
“보호자 분만 타세요.”
“둘 다 타면 안 됩니까?”
“예. 한 명만이요! 어서요!”
순간 난 곁에 있는 덕배에게 말했다.
“덕배야. 타!”
덕배가 지체할 것 없이 차에 올라탔다.
“덕배야. 우선 강북 칠성 병원으로 가! 내가 뒤따라갈 테니까 돈 걱정은 말고 무조건 치료부터 해! 의사한테는 내 명함 주고!”
“예.”
달칵.
119구급차의 뒷문이 닫힌 뒤 차량이 급히 출발해버렸다.
부우웅.
이내 119 차량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제야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헉헉헉.”
등은 땀으로 축축하고 숨이 턱까지 올라온다. 대체 어떻게 내려왔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우릴 안내한 박동준 역시도 미간에 땀이 가득했다.
난 지나가는 택시가 있나 확인하며 박동준을 향해 말했다.
“동준아.”
“예? 예!”
박동준은 내 지갑을 소매치기한 전적 탓인지 내 얼굴만 봐도 바짝 얼어붙었다.
하지만 그걸 따질 생각은 없었다. 사정이 있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녀석 덕에 덕배를 만날 수도 있었고.
난 지갑에 있던 현금을 박동준에게 건넸다.
“이거 받아.”
5만 원짜리 다섯 장을 건네자 박동준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이걸······ 왜 저한테 주세요?”
“난 지금 칠성 병원 응급실로 갈 건데 너희 할머니도 거기로 모셔와. 구급대원들이 못 간다고 하면 근처 아저씨들이나 사람들한테 돈 드리고서 모셔오라고. 알았지?”
“할머니를요?”
박동준의 할머니는 뺑소니 차에 치였지만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집에서 누워만 있는 상황.
그래서 박동준은 대신 폐지를 줍고 다니는 중이었다.
소매치기는 일을 나가니 이제부터 돈을 상납하라는 왕파리파의 협박 때문에 한 거였고.
“뺑소니 당해 다치셨다며? 형이 병원비를 대 줄 테니까 모시고 와.”
박동준이 당황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그렇긴 하지만······ 제가 형 지갑을 훔쳤는데도요······?”
“네가 원해서 한 것도 아니라면서. 하여간 시간 없으니까 빨리 모셔와! 알았지?”
덕배를 만나게 해준 은인이나 다름없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택시 온다. 그리고 문제 생기면 아까 준 명함으로 바로 전화하고. 알았지?”
“네 형.”
그 사이 택시가 내 앞에 선다.
난 택시의 뒷문을 열며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더블! 바로 강북 칠성 병원 응급실로 가주세요!”
택시 기사가 호쾌하게 외친다.
“꽉 잡으십쇼!”
그와 동시에 택시가 빠르게 가속을 시작했다.
그리고 난 출렁이는 택시 뒷좌석에 앉아 강감찬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꼭 영입하고 싶은 배우가 있다는 뜻을 밝혔다.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보네. 생활비에 후견인까지 되어 준다고 하는 거 보면?
“비용은 제가 다 대겠습니다. 대표님.”
강감찬 대표가 너털웃음을 짓는다.
-됐다. 유진이 데려올 때 생활비를 지원한 케이스가 있으니 그대로 적용하면 될 거다. 그리고 곽 팀장을 병원으로 보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강감찬 대표는 덕배의 주민등록증 발급과 한울이의 출생신고 및 후견인 문제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 순간 저 멀리 강북 칠성 병원 응급실이 보이고 있었다.
* * *
강북 칠성 병원 응급실.
도착하자마자 응급실에서 한울이를 찾았다.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터라 응급실에서 치료를 거부했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의사들은 아픈 아이를 내치지 않았다.
다만 병원 원무과에서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덕배는 친형도 아니고 주민등록증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아~ 어떻게 하지. 쟤들······”
발을 동동 굴리는 원무과 직원을 발견한 순간 난 명함을 내밀며 급히 말했다.
“최한울. 최덕배. 제가 두 사람의 신원을 보증하겠습니다.”
원무과 직원의 안색이 환해진다.
“정말요?”
“예. 그리고 일단 수납부터 할게요.”
“그럼 여기 사인부터 해주세요.”
원무과에 비용을 지불하고 나자 선임 원무과 직원이 나온다.
선임 원무과 직원에게 명함을 건네자 고개를 갸웃한다.
“굴렁쇠? 혹시 거기 정유진 씨네 회사 아닙니까?”
“아. 예. 제가 유진이 매니저입니다.”
“아~ 이거 귀하신 분이 오셨네.”
한땐 굴렁쇠 엔터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젠 유진이 덕에 굴렁쇠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원래 이런 경우에는 저희가 경찰이랑 구청이랑 몇 군데 연락을 돌리게 되어 있습니다.”
“압니다. 그런데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저희 회사 변호사가 와서 처리할 겁니다.”
법대로라면 이미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 했다.
하지만 선임 원무과 직원이 유진이의 팬이다 보니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잠시 후.
응급실 안에서 나온 덕배와 만났다.
“저기 아저씨······”
난 덕배의 말을 막으며 물었다.
“형이라고 불러. 나 이제 27살이야.”
“네 형님.”
“형.”
“예. 형.”
난 웃으며 덕배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의사가 뭐래?”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대요.”
영양실조도 있었던 데다 감기가 오래되어 폐렴으로 번진 상태였다고 한다.
“휴우~ 다행이다.”
한울이의 생명을 살렸다는 생각에 다리의 힘이 풀려 응급실 앞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순간 또 한 번 생명을 살려냈다는 생각에 가슴이 터질 듯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내 앞에서 선 덕배가 눈물을 글썽거린다.
“형. 형 덕에······ 한울이가 살았어요. 이 은혜······ 절대로 안 잊을게요······”
말한 건 반드시 지키는 덕배의 입에서 맹세의 말이 나온다.
그와 동시에 덕배의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바닥으로 톡톡 떨어지는 눈물은 회한의 눈물이 아닌 기쁨의 눈물이었다.
그 순간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소매치기를 당한 일이 신이 나와 덕배를 만나게 해주기 위한 한 안배라고.
그래서 난 믿지도 않는 신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내게도 덕배에게도.
두 번째 기회를 줘서 너무도 감사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