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1화
401. <화란전> 크랭크인 3
음갈문왕 역의 송지환을 비롯해 세 왕후역의 이태연 최지영 윤주연은 원래 자신들이 S급 배우라는 걸 보여주듯 안정적인 연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직은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민규리가 쟁쟁한 선배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극에서는 ‘하시옵소서 하옵니다’ 등 존비어 체계의 말투를 쓰는 데다 극적인 상황들이 펼쳐지다 보니 일상과는 전혀 다른 연기를 펼쳐야 했다.
그래서 사극은 신인들의 무덤이라고도 불리는데 민규리는 전혀 어색함이 없는 연기를 펼쳐내고 있었다.
정확한 시선 처리와 선을 넘지 않는 표정 연기.
그리고 무엇보다 사극에 맞는 발성까지 내뱉으며 말이다.
‘하긴 저 녀석. 악마의 재능이었지······’
회귀 전.
레슨 한 번 받지 않고 첫 오디션에 나간 민규리는 2천 대 1의 경쟁을 뚫고 주말드라마 <아침 바닷소리> 주연을 따냈었다.
재능이 충만한 그녀에게 연기란 식은 죽 먹기였기 때문에 노력이란 말은 그녀의 인생에 없는 단어였다.
그런데 유진이에게 자극이라도 받았는지 일주일간 엄청난 노력을 해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버렸다.
덕분에 촬영 현장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현재 촬영하는 씬은 국왕이 세 공주에게 ‘길쌈’ 대결을 시킨 뒤 최고의 성적을 거둔 이에게 선물 하나를 주겠다고 약속하는 장면.
대본 리딩 때의 부족한 모습을 싹 지운 민규리는 능청맞게 대사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폐하. 길쌈 대결에서 이기면 뭐든 주신다는 약조가 참이옵니까?』
민규리가 대전 세트장 한가운데 서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묻는다.
그 순간 대전의 금색 왕좌에 앉은 송지환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우리 도화가 갖고 싶은 게 있나 보구나?』
『예. 폐하.』
극 중 가장 애교가 많고 욕심이 많은 도화 공주처럼 민규리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그러자 송지환이 인자한 음색으로 답한다.
『알겠다. 대신 다른 공주들에게도 하나씩 들어보자꾸나. 먼저 정화 공주부터 말해 보거라.』
그 순간 정화 공주역의 한상희도 지지 않겠다는 듯 이를 악물고 연기를 시작했다.
『제게는 비파를 하사해주셨으면 합니다.』
『비파? 공주에게 왜 비파가 필요한 것이더냐?』
‘한상희도 제법인데?’
한상희는 민규리 만큼의 재능은 아니었지만 그녀 역시도 오복희 PD의 엄격한 오디션을 통과한 배우.
대본 리딩때와는 달리 자신의 대사를 차분히 소화하고 있었다.
괜히 S급 대우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말이다.
그 결과 유진이의 원맨쇼가 될 뻔한 <화란전>이 이제야 한우주 작가가 의도한 대로 ‘꽃들의 전쟁’이 되어가고 있었다.
송지환의 질문을 받은 한상희가 더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답을 하기 시작했다.
『폐하께서 정사를 보시느라 고단하실 때마다 비파를 연주해 노고를 달래어 드리려 함입니다.』
『허허. 그러하더냐?』
극 중 차후 여왕이 되는 건 모두 국왕인 음갈문왕에게 달려있다는 설정.
그렇기에 극 중 세 공주는 아버지인 음갈문왕의 눈에 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쓴다.
그리고 송지환이 맡은 음갈문왕 역은 쉽게 말해 딸바보.
그러다 보니 가식적인 공주들의 애교에도 송지환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기뻐하는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민규리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린다.
대본대로 유화 공주보다 앞서 자기 소원을 말하기 위해서.
순간 송지환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허허. 그래. 우리 막내는 무엇을 원하길래 이리 성급하게 구는고?』
『제게는 선대 여왕의 신기를 딱 하루만 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어라? 신기를 빌려 달라?』
죽은 선왕인 선덕여왕의 유품인 신기는 천부인(天符印)의 기운을 담은 황금 방울을 말한다.
그리고 그 황금 방울은 주인이 위험에 처하면 스스로 울리는 능력이 있는 보물로서 대왕만이 소유할 수 있다는 설정이 있었다.
순간 대전의 신하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선덕여왕의 신기는 왕만이 가질 수 있는 물품이기 때문이다.
딸바보라고 한들 왕은 왕.
송지환이 약간은 노기를 담아 외친다.
『어허! 도화 공주는 신기를 가지겠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 것인지 정녕 모르는 것인가!』
『알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전 그저 선덕왕의 유품을 모시고 제를 올리고 싶을 뿐이옵니다.』
『제를 올린다?』
『예. 폐하께서 매일 밤잠을 못 이루신다는 걸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래서 신기를 빌려 붕어하신 선왕의 제단에 놓고 폐하를 보살펴 주셨으면 하는 제를 올리고자 할 따름이었습니다.』
민규리는 왕에게 잘 보이려는 착한 딸의 연기를 너무도 태연스레 해내고 있었다.
덕분에 세트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스태프들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잘하는데?
-오디션 현장에 온 경쟁자들도 다들 기가 팍 죽어서 돌아갔다더니······ 충분히 그럴 만한데?
-와~ 진짜 선배들 사이에서 눈도 끔뻑 안 하네. 인성은 몰라도 천생 배우네.
-쟨 뜨겠다. 마스크도 동글동글한 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타입이고.
-근데 저러다 정유진도 쟤한테 먹히는 거 아냐? 조연이 너무 매력적이면 주연의 존재감이 약해지는데?
대본 리딩 현장에서 도망한 일로 민규리에게 부정적이었던 스태프들이 호의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만큼 민규리의 연기가 매력적이라는 뜻이었다.
민규리가 몇 년 뒤에나 보일 모습을 보여준 터라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진이에 대한 내 믿음이 흔들리진 않았다.
잠시 후.
기다렸던 유진이의 차례가 되었다.
송지환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단 아래에 있는 유진이에게 묻는다.
『두 공주가 원하는 건 들어봤으니 이제는 유화의 차례니라. 유화는 무엇이 갖고 싶은 것이더냐?』
유화 공주를 연기하는 유진이가 두 손을 모으며 답한다.
『제겐 쌀과 고기를 넉넉히 내려 주시옵소서.』
『쌀과 고기? 그것은 무에 쓰려고?』
『길쌈에 동원된 이들은 앞으로 한 달간 제대로 된 생계를 꾸리지 못하고 이번 행사에 매진해야 하옵니다. 그동안 가솔들의 고생이야 오죽하겠나이까? 소녀가 쌀과 고기를 풀어 그들을 위로하려 하나이다.』
순간 웃고 있던 송지환의 표정이 단숨에 굳었다.
『우리 둘째가 바라는 건 신외지물이 아니라 민심이구나. 그러하더냐?』
권력은 오직 왕의 것.
그리고 권력은 민심 즉 백성의 마음에서 나온다.
왕조 국가에서 민심을 탐하는 자는 부모 형제라고 할지라도 왕의 정적이 된다.
딸이 자신의 정적이 되겠다는 선언을 한 거나 다름없었기에 송지환의 질책은 서릿발 같았다.
하지만 유진이는 고개를 들고 태연하게 송지환의 눈을 마주했다.
『민심은 오직 대왕님의 것. 소녀는 대왕님의 치세를 지탱하는 도구일 뿐이옵니다. 이 일은 오직 대왕님의 이름으로 행해질 것이니 염려 거두소서.』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하지만 이내 송지환이 굳은 얼굴을 풀고 후련한 웃음을 터트렸다.
『기껍도다. 우리 둘째의 성정이 작고하신 선왕과 꼭 빼닮았구나. 이는 계림의 홍복이다. 허허허.』
계림은 신라가 스스로를 칭하던 호칭 중 하나고 작고한 선왕은 선덕여왕을 말하는 것.
송지환의 너털웃음이 커질수록 한상희와 민규리의 눈빛에 독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유진이의 대사와 행동에서는 자신들의 연기와는 달리 진짜 공주와 같은 품격이 묻어 나왔기 때문이다.
표정 발성 몸짓을 모두 활용해 연기한 덕분에 유진이는 ‘유화 공주’ 그 자체가 되어 버린 상황.
그러자 민규리를 칭찬했던 스태프들이 다시금 속닥이며 정유진을 칭찬하기 시작한다.
-와~ 역시 정유진. 다른 배우들도 잘하지만 쟨 뭔가 다르네.
-괜히 정유진 정유진 하는 게 아니야.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더니. 디테일부터 차원이 달라.
-하여간 장난 아니다 이번 드라마.
-그래도 정유진이 제일 낫네.
유진이의 연기가 이어질수록 역시나 주연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평가가 뒤를 잇고 있었다.
* * *
<화란전>의 첫 번째 씬 촬영이 대성공으로 끝이 났다.
“컷! 좋~습니다!”
성공적인 드라마의 촬영 시작에 오복희 PD가 들뜬 목소리로 외친다.
그러자 스태프들 역시도 흥분에 싸여 그 말에 동의했다.
“감독님. 우리 드라마 대박 나겠는데요?”
“전 자신이 없네요! 실패할 자신이!”
조연들부터 주연까지.
어느 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 좋은 연기를 보여준 덕에 촬영 스태프들의 표정에는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이후 잠시 동안 다음 촬영을 위한 휴식이 주어졌다.
그 틈을 타 유진이가 대기 의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유진이도 일취월장한 민규리와 한상희의 연기를 상대하는 게 만만치는 않았는지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유진아 여기 앉아.”
“네.”
유진이가 대기 의자에 앉자마자 이미리 대리가 의상을 체크하고 양소리 대리가 이마의 땀을 닦아준다.
그 순간 유진이가 뒷목을 부여잡는다.
“으으 내 목······”
유진이의 머리카락 위엔 금색 장신구들이 잔뜩 꽂혀 있고 원래의 머리카락엔 길게 땋은 가발이 붙어 있다.
<화란전>의 왕후들이 쓰는 거대한 가체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가벼웠지만 지금 찬 장신구와 붙인 머리카락만으로도 목이 아프다며 울상을 짓는다.
“왜 그것도 부담돼? 장신구랑 다 해서 1kg도 안 되는데?”
“말도 안 돼. 이렇게 무거운 데 1kg 라고요?”
“적응이 안 되어서 그런가 보네. 잠시만 기다려 봐.”
난 급히 이미리 대리에게 장신구만이라도 빼달라고 부탁했다.
이미리 대리가 장신구를 빼내자 유진이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유진이가 목을 이리저리 까닥이며 움직인다.
두두둑 하며 뼈마디 소리가 난다.
“으으······ 죽는 줄 알았네.”
“유진아. 이걸로 죽는다면 앞으로 가체를 쓰면 어떻게 하려고?”
세트장 한쪽에 있는 1 왕후 역의 이태연은 대략 6kg의 화려한 가체를 쓰고 있고 2 왕후와 3왕 후인 최지영과 윤주연은 5kg짜리 가체를 쓰고 있다.
하지만 세 사람은 가체가 무겁지도 않은지 목 받침을 하고서 편안한 표정으로 음료수를 마시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본 유진이가 고개를 젓는다.
“오빠. 나 극 중에서 시집 안 가죠?”
“대본이 이제 20화 나왔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회귀 전 <화란전>의 여주인공인 유화 공주는 극 중 혼인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왕이 된 후에는 온갖 장식을 하고 가체를 써야 했다.
‘미리 말해주면 안 되겠네······’
어차피 매일 가발을 쓰는 것만으로도 목훈련은 될 테니 난 모른 척 고개를 저었다.
때론 미래를 모르는 게 약이 될 때도 있다면서.
“오빠. 나중에 한 작가님한테 좀 물어봐요. 네?”
“알았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근육은······ 길러두자?”
순간 유진이가 눈치 빠르게 날 노려본다.
“쓰는구나······ 가체.”
흠칫했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제로 콜라를 내밀었다.
“모른다니까?”
유진이가 음료수를 받아들며 피식 웃는다.
“알았어요. 목운동할게요. 근데 오빠. 연기 어땠어요?”
“언제나 그렇듯 최고지.”
“아니 저 말고요. 민규리 쟤요. 며칠 전에 봤을 때랑은 완전히 다르지 않아요?”
힐끗 민규리를 쳐다본 뒤 고개를 저었다.
“규리 쟤. 처음만 그럴싸했지 그 뒤로는 별 볼 일 없었어.”
“에이~ 괜찮아요. 솔직히 이야기해 주세요.”
잠깐 고민하던 난 솔직히 대답하기로 마음먹었다.
유진이가 전혀 기가 죽은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음······ 솔직히 말하면 잘하긴 잘하더라. 조금만 더 노력하면 너한테도 버금갈 만큼?”
유진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연기 레슨 한 번도 안 받았다는데 저 정도 연기라니······ 재능이 장난 아니네요. 진짜 천재라는 게 있긴 있나 봐요?”
“당연히 있지. 여기 내 눈앞에. 연기 천재 정유진!”
“풉. 아~ 뭐예요~ 오빠.”
넉살 좋은 내 대답에 유진이가 기분 좋은 웃음을 짓는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 민규리 쟨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니까 넌 지금처럼 꾸준히 네 연기만 신경 쓰면 돼.”
유진이가 고개를 갸웃한다.
“폭탄이라니······ 뭐 또 터질 거 있어요?”
“어. 어?”
회귀 전 민규리가 저지른 수많은 사고를 생각하면 지금은 사라진 헬리코박터균이 다시금 무한 증식을 하는 기분이 든다.
난 몸을 부르르 떨며 회귀 전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아니 뭐 들리는 소문에 그렇다고. 그리고 재능이라면 너도 지지 않아. 문제는 그 재능을 꾸준히 이어가는 노력이지. 반짝 스타가 됐다가 사라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회귀 전 민규리는 조금만 하기 싫으면 태업을 일삼았기에 흥행과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곤 했었다.
괜히 그녀가 ‘악마의 재능’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었다.
“아~ 그러니까 방심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라?”
“빙고. 그러니까 지금 하는 것처럼만 하면 걱정할 필요 없어. 재능도 있고 노력까지 하는 널 민규리 쟤는 너 절대로 못 따라올 테니까.”
순간 유진이가 웃으며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는다.
“하긴 오빠가 내 편이기도 하니까······”
유진이의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때 오복희 PD가 배우들을 부른다.
“자 이어서 5분 뒤에 시작합니다. 스탠바이 하세요.”
이미리 대리가 다시 금빛 장신구를 꽂는 사이 유진이가 날 빤히 올려다본다.
“근데 오빠. 제 가발이랑 장신구를 다 더해서 100g짜리로 못 구해줘요?”
1kg짜리를 100g으로?
내가 회귀까지 했지만 연금술까지는 익히진 못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딱 한 가지.
정신론이다.
“1kg짜리를 100g이라고 생각해. 너라면 할 수 있어! 네 목은 강철 목!”
유진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 날 쳐다본다.
“칫. 알았어요. 그러면 다녀올게요.”
“정유진 파이팅!”
유진이가 목을 부여잡고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린다.
힘을 내겠다는 건지 다녀와서 보자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 * *
“오케이~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했을 때 첫날의 촬영이 끝났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덕에 예상한 것보다 첫날의 촬영 속도가 20%나 앞당겨졌다.
촬영을 마친 유진이가 돌아오자 기다리고 있던 미소가 쌍 엄지를 치켜든다.
“엄마가 최~고!”
“그래?”
“응! 그리고 엄마 진짜 공주님 같았어.”
“그래? 그럼 누가 제일 이뻤어?”
“엄마!”
“진짜~? 고마워~ 미소야.”
유진이는 당연한 대답을 들은 뒤 미소의 볼에 뽀뽀해준다.
그리고는 미소를 먼저 승합차로 보냈다.
선배들과 인사를 한 뒤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쟨 또 왜 와?’
민규리가 장삼덕 실장도 놓아둔 채 홀로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중간에 과한 감정 연기로 NG를 한 번 냈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큰 실수가 없었기에 그녀의 얼굴에는 자신만만함이 어려 있었다.
터벅터벅 걸어온 민규리가 유진이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유진 선배님. 수고하셨습니다~.”
유진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에이~ 아니에요. 규리 씨 연기가 얼마나 대단하던지 전 깜짝 놀랐어요.”
민규리가 눈웃음을 지으며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한다.
“그쵸?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저 선배한테 안 질 거라고요. 그래서 노력 좀 했어요.”
기껏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내가 ‘각 잡고 하면 이 정도야’란 도발이라니.
순간 유진이가 주변을 둘러본다.
‘유진아. 뭐 하려고?’
유진이는 선배들과 매니저들이 떨어져 있는 것을 확인한 순간 순식간에 영업용 미소를 띠기 시작한다.
쁘띠모의 리더 박은빈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하긴······ 이 정도면 유진이 성격에 많이 참은 거지.’
그 순간 유진이는 웃음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민규리가 상상도 못 했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