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2화
382. 집으로 돌아가는 길 2
오후 6시 30분.
진주 경상대학교병원 응급실 주차장에 차를 댄 뒤 고재수와 함께 응급실로 향했다.
고재수의 부모님은 경남 산청군에 살고 있었지만 인근에는 보건소밖에 없어 이곳으로 모셔왔다.
그런데 응급실에 들어간 순간.
3번 침상에 앉은 고재수의 아버지가 퇴원을 시켜달라며 애원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의사 선생. 이 정도는 집에서 좀 쉬면 나을 거니까 그냥 퇴원시켜줘요. 예?”
“아버님. 일단 제대로 검사는 받아보셔야 합니다. 딱 봐도 골절입니다.”
“아니 내 몇 번을 말합니까? 난 병원비를 낼 여력이 안 된다니까요?”
“진짜 내실 여력이 안 되면 국가에서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습니다. 일단 검사부터 받아보시죠.”
고재수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일단 엑스레이라도 찍어 보자고 한다.
하지만 고재수의 아버지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우리 형편에 그게 말이 되냐면서 말이다.
그 광경을 목격한 고재수가 가슴을 부여잡고 외친다.
“아버지 나 회사 옮기면서 큰돈 받았다고 했잖아요. 당장 검사받고 수술부터 하세요 예?”
고재수의 아버지가 고개를 돌린다.
“재수 넌 어떻게 여길······ 설마 또 이모가 전화했냐?”
병원까지 오는 동안 고재수는 여러 번 통화를 시도했지만 부모님들은 아예 전화를 꺼 놓았다.
자식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한 까닭이다.
결국 이모에게 연락하고서야 이곳에 이송되어 왔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이모가 연락했든 말든 그게 뭐가 중요해요? 그리고 저 돈 있으니까 바로 입원하세요!”
고재수의 아버지 고창한이 무안한 표정을 짓는다.
“너 힘들게 번 돈 그렇게 안 써도 된다. 집에 가서 며칠 쉬면 나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
고재수는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했는지 의사를 쳐다본다.
“선생님. 보호자가 동의하면 검사하고 수술할 수 있죠? 당장 수술시켜주세요.”
“그렇긴 한데. 본인이 이렇게 완강하게 거부를 하면 저희도 별수 없습니다.”
결국엔 내가 나섰다.
“아버님. 어머님. 처음 뵙겠습니다. 고재수 씨의 새 매니저 정윤호 팀장이라고 합니다.”
인사를 건넨 순간 고재수의 부모님이 무안해하며 고개를 숙인다.
“아이고. 우리 재수 맡아 주시는 선생님이 오신 줄도 모르고 소란을 떨었네요. 여기 앉으세요.”
고재수의 어머니가 자신이 앉아 있던 보조 의자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고재수의 아버지는 병상에 앉은 채로 고개를 숙인다.
“재수 못난 애비 됩니다.”
골절을 당해 통증이 있을 텐데 내 앞이라고 애써 참는 게 보인다.
이마와 귀밑머리에 진땀이 흘러내리는데도 말이다.
“아버님. 이렇게 검사도 안 받으시면 재수 씨가 신경이 쓰여서 제대로 된 연기 활동을 못 합니다. 병원비는 회사에서 모두 지원이 되니까 치료받으시죠.”
난 소속 스타의 가족들에게는 회사에서 병원비 지원이 된다며 수술을 권했다.
고재수의 아버지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자 결국 고재수의 엄마가 나섰다.
“팀장님 말씀 못 들었어요? 당신이 이러는 게 더 민폐예요.”
“그래요. 아버지. 아버지가 수술을 받아야지 저도 마음 놓고 배역에 집중하죠. 예?”
고창한은 결국 아들과 아내를 위해 고집을 꺾었다.
“그 그래. 알았어.”
그 순간 난 곧장 의사에게 부탁했다.
“입원실은 특실로 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바로 수술 부탁드리고요.”
특실 환자들은 치료비에 구애를 받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담당 의사의 얼굴이 환해진다.
“아 그렇습니까?”
“아 참. 그리고 병원비는 앞으로 저랑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저희 고재수 배우님이 조만간 지리산이라는 영화에 들어가느라 바쁘셔서요.”
의사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지리산이라면 혹시 이태풍 씨의 차기작인 그 지리산 말입니까?”
“예. 여기 고재수 씨가 거기 출연할 예정입니다.”
“정말입니까? 이야~ 나중에 사인 한 장 부탁드려야겠는데요?”
순간 고재수의 부모님이 깜짝 놀라 되묻는다.
“우리 아가 지리산에 나온다꼬예? 그기 참말인교?”
“진짜라예?”
현재 한국 최고 인기 배우와 함께 출연한다는 말에 어찌나 놀랐는지 갑작스레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고재수에게 말하지 않았냐는 눈치를 보내자 그는 그저 머리만 긁적였다.
“아직 배역이 확정된 게 아니라서요.”
회사를 이적한 건 말했지만 지리산에 출연하는 건 최종 컨펌이 떨어지기 전에는 말할 생각이 아니었나 보다.
“그럼 재수 씨. 부모님들이랑 말씀 나누세요. 사정도 찬찬히 설명해 드리시고요. 전 원무과에 가서 수납부터 하겠습니다.”
“예. 팀장님.”
난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다는 고재수의 부모에게 인사한 뒤 원무과로 향했다.
* * *
원무과에서 수납을 마치고 응급실 밖으로 나와 고재수를 기다렸다.
그사이에도 응급실 앞에는 119 차량들이 계속해 들어온다.
“으으으······.”
“아아악!”
119 차량의 문이 열릴 때마다 고통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뒤로 제발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보호자들이 따라 내리며 있었고.
생과 사의 갈림길이 눈앞에서 나뉜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
난 죽은 다음 회귀를 하고 두 번째 삶을 살고 있지만 다른 사람도 그런 기회를 받을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시작했다.
조금 전 배달 대행이라는 옷을 입고 응급실로 들어간 교통사고 환자를 위해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엄마한테 안겨 들어간 아이를 위해서.
부디 오늘만큼은 적어도 내가 있는 이곳에서만큼은 아무도 죽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때였다.
드르륵.
자동문이 열리고 고재수가 나왔다.
“어떻게 됐습니까?”
“방금 검사 들어가셨어요. 그리고 수술방 비면 바로 수술 들어갈 거랍니다.”
“잘됐네요.”
그런데 고재수가 쭈뼛거린다.
“왜 그러세요?”
“저기······ 병원비는 제가 내도록 하겠습니다.”
“예?”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에서 병원비를 다 내줄 리가 없을 것 같아서요. 아직 전 배우로서 증명도 안 되었잖습니까?”
그의 말이 맞다.
사실 고재수를 위해 전액 내 개인 카드로 긁었다.
S급 배우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연예인들의 가족 병원비까지 전액 지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대략 20~30% 선까지가 회사에서 지원해 줄 수 있는 맥시멈.
하지만 고재수가 성공하면 이 정도 지출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그의 성공에 따른 인센티브가 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돈 들어갈 곳이 많으시잖습니까? 그러니까 아버님 병원비를 신경 쓰실 시간에 대본이나 한 줄 더 보세요. 그게 진짜 회사와 절 위해 주시는 겁니다.”
잠시 아무 말도 못 하던 고재수가 눈빛을 빛내며 각오를 다졌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반드시 만족할 만한 연기를 펼쳐 보이겠습니다.”
“그거면 됩니다.”
그때였다.
50대 여자 두 사람이 응급실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 다가온다.
“어머? 재수 아냐?”
“재수 언제 내려왔니?”
고재수의 첫째와 둘째 이모인 양현자와 양숙자였다.
두 사람은 늘 자기 아들과 고재수를 비교하며 잔소리만 늘어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서도 보자마자 걱정을 빙자한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재수야. 솔직히 이제 그 연기라는 것 그만 좀 해라. 가능성이 없는 일에 목매지 말고 좀.”
“너희 아버지가 저렇게 힘들게 돈 버시는 거 보고 뭐 느끼는 거 없니? 이제 제발 철 좀 들어.”
고재수가 반응하기 전 매니저인 내가 먼저 나섰다.
“이모님들은 앞으로 재수 씨의 미래를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재수 씨는 이제 곧 영화 ‘지리산’에 출연할 예정이니까요.”
양현자와 양숙자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근데 대체 누구세요?”
“이번에 재수 씨가 이적한 굴렁쇠 엔터의 정윤호 팀장이라고 합니다.”
두 사람이 코웃음을 친다.
“TK 엔터에 들어갔을 때도 곧 영화 들어간다는 소리 많이 들었거든요? 지리산이든 백두산이든 들어가 봤자 또 단역이겠죠.”
“회사 이름이 굴렁쇠가 뭐야? 연예계 매니저들은 다 사기꾼들이라고 하던데······.”
도통 내 말은 믿을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다.
업계 2위 TK 엔터에 들어가서도 빛을 보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하여간 재수 너.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봐.”
두 사람은 고재수를 향해 굳이 한 마디씩 더한 뒤 우릴 지나쳐 응급실로 들어갔다.
드르륵.
응급실의 자동문이 닫히자 고재수가 무안한 표정을 짓는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아뇨. 괜찮습니다.”
어차피 양현자와 양숙자 같은 사람은 직접 눈으로 본 것만 믿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고재수는 늘 힘없고 자신감 없는 삼류 연기자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냥 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배우의 멘탈 관리도 매니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발신자 : 이대호]
‘왔나 보군.’
난 내려오던 도중 부산에서 <경계 너머로>의 관객 수 1400만 명 축하 행사에 참석 중인 이태풍에게 진주 병원으로 와달라고 부탁했다.
어차피 내일 설악산에서 만나게 될 사이였으니 미리 고재수와 얼굴을 익히고 같이 올라가자고.
전화를 받자 이대호가 어디로 와야 하는지를 묻는다.
-팀장님. 이 앞에 경상대학교 병원이 보이는데······ 여기 맞습니까?
“예. 응급실 쪽 주차장으로 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태풍이한테 제 말 좀 전해주십시오.”
난 이태풍에게 고재수의 기를 세워달라 부탁했다.
다시는 고재수를 무시할 수 없게 말이다.
* * *
잠시 후.
응급실 문이 열렸다.
양현자와 양숙자가 질색을 하고 뛰쳐나왔다.
“재수 너 미쳤니? 특실 입원비가 얼만 줄이나 알아?”
“너 이모들도 돈 대줄 형편 안 되는 거 알지?”
보태줄 것도 아니면서 잔소리부터 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 때를 맞춰 이태풍의 거대한 흰색 벤츠 스프린터 차가 응급실 앞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이태풍이 문을 열고 내린 뒤 기지개를 켜다 날 발견했다.
“윤호 형!”
이태풍이 손을 흔들며 내 쪽으로 다가온다.
“어. 태풍아. 여기.”
그 순간 내 곁에 있는 양현자와 양숙자가 멍한 표정으로 나와 이태풍을 번갈아 본다.
“어머머머! 저게 누구야?”
“이태풍이 여길 어떻게······.”
두 사람이 놀란 표정을 짓는 사이 난 다가온 이태풍과 포옹하며 반가움을 나눴다.
그리고는 곁에 선 고재수를 가리켰다.
“인사해. 이쪽이 재수 씨. 한동안 호흡을 맞출 분이니 미리미리 친하게 지내는 게 좋을 거야.”
“아 이분이 재수 형이구나.”
이태풍이 나와의 포옹을 푼 뒤 고재수에게 깍듯하게 손을 내밀었다.
“이태풍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천만 배우인 이태풍이 손을 내밀자 고재수가 떨리는 손으로 그 손을 맞잡았다.
“예. 예······ 태풍 씨.”
“에이~ 형이 저보다 열 살 정도 더 많으시잖아요. 그냥 태풍아 하고 부르세요.”
“예?”
“어서요. 빨리 친해져야지 연기 호흡을 하루라도 빨리 맞출 거 아니에요?”
<지리산>의 극 중에서 두 사람은 말을 편하게 하는 사이.
결국 고재수가 어쩔 수 없이 말을 편히 한다.
“어 그래······ 태풍아.”
“예. 앞으로는 쭉 그렇게 불러주세요. 근데 형 목소리가 진짜 듣기 좋은데요? 연습 따로 하신 거예요?”
두 사람이 친근하게 대화하자 양현자와 양숙자는 아예 넋을 놓아 버렸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믿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마 말도 안 돼.”
“어 어떻게 재수 같은 애가······.”
이태풍은 내 부탁대로 친근하게 고재수를 대했다.
“형. 근데 형은 어떻게 스카우트 됐어요? 윤호 형이 찍으면 진짜 연기 잘하는 거란 뜻인데······.”
이태풍이 고재수의 연기에 대한 기대감마저 보이자 두 이모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그 순간 고재수의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천천히 펴지고 있었다.
* * *
하루가 지났다.
어젯밤 이태풍은 여기까지 온 김에 지리산 현장을 답사 겸 둘러보고 싶다 했었다.
그러자 고재수의 아버지 고창한이 정상 인근에 친형제 같은 동생이 소유한 산장을 소개해줬다.
천왕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동생이 허락하면 설악산이 아니라 거기서 연습하는 게 더 좋지 않겠냐면서.
이태풍이 냉큼 그 제안을 받아들이자 고창한은 곧장 산장 주인인 오태완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태완은 산장에 들르는 건 허락했지만 며칠간 머무는 것에 대해선 확답을 주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나자 이태풍은 직접 올라가 허락을 받자 말했다.
그래서 지금 난 고재수 이태풍 이대호와 함께 산을 타는 중이다.
천왕 산장은 정상보다 조금 낮은 곳에 있어 6시간을 꼬박 걸어가야 한다.
법계사까지 셔틀을 타고 올라가서 이동하면 1시간 조금 넘게 걸으면 도착하는 곳이지만 현장 답사차 올라가는 터라 일부러 걷는 루트를 택했다.
대충 여섯 시간을 넘게 걸었을 무렵.
고재수가 멈춰 섰다.
그리고는 갑자기 길을 벗어나 나무들이 빼곡한 숲속으로 향한다.
“이쪽으로 천천히 절 따라오세요.”
길도 없는 곳을 가는 고재수를 보며 물었다.
“산장이라면서요?”
“10년 이상 손님을 안 받고 태완 아재 혼자 살고 있습니다.”
원래는 길이 있었지만 10년간 사람이 다니지 않아 어느새 길이 사라지고 없었다.
고재수의 뒤를 따라 나무 사이로 걷기 15분 정도.
갑자기 눈앞에 넓은 길이 나타났다.
자갈이 잔뜩 깔린 길에는 풀이 듬성듬성 허리까지 높게 자라나 있었다.
“여기로 15분 정도만 더 가면 나옵니다.”
그런데 길을 가로지르는 금줄에 빛바랜 흰색 나무판자가 걸려 있었다.
[사유지. 외부인 출입 금지]
고재수가 줄을 살짝 들어 올리며 따라오라고 한다.
“태완 아재가 외부인을 좀 싫어하셔서요. 제가 함께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들어오시면 됩니다.”
“예.”
풀이 있었지만 평지길이라 조금은 걷기 편해졌다.
그렇게 다시 걷기를 15분.
‘ㅅ’ 자 모양으로 된 산장 지붕이 보였다.
고재수가 산장을 가리키며 말한다.
“다 왔네요. 저깁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폰에서 진동이 울린다.
뭔가 하고 봤더니 다이어리가 새로운 일정을 알리고 있었다.
[알림 : 2020년 10월 25일 ‘이태풍’에게 새로운 일정이 발생하였습니다.]
‘25일이면 오늘인데?’
난 곧장 오늘 자 일정을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1]
[날짜 : 2020년 10월 25일]
-PM 12:50 [NEW. 이태풍] 부상으로 인한 일정 긴급 연기. (보고 사항 : 119 헬기 이륙 시각 12시 45분. 진주 경상병원으로 긴급 이송.)
‘뭐야 이건?’
해발 1400m 높이의 길도 없는 지리산 한가운데서 이태풍이 다친다는 정보가 업데이트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