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1화
361. 천만 배우 1
내가 김동수의 배우 3실에서 데려오려는 배우 3명은 S급으로 분류되는 송지환 그리고 A급으로 분류되는 안주희와 성한영이다.
모두 김동수가 직접 스카우트해서 데려온 배운데 송지환은 올해 45살의 나이로 사극에서 주로 왕 역할을 하는 배우였다.
하지만 사극 붐이 꺼진 이후 S급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성적을 내는 중이었다.
난 그 송지환을 <화란전>에 출연시켜주겠다는 조건으로 끌어올 생각이다.
그리고 안주희는 올해 67살의 베테랑 여배우로서 5년 전 <사랑이 지는 바닷가>에서 엄마 역으로 열연을 했지만 까다로운 작품 선정 때문에 김동수가 거의 버리다시피 한 배우였다.
물론 내 머릿속에는 그녀를 위한 작품도 준비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성한영은 내가 배우 3실로 트로이 목마 짓을 하러 갔을 때 차기작이 엎어질 거라고 예언을 해서 내 편으로 끌어들였던 배우였고.
탑급 배우들이 온다는 말에 잠깐 홀렸던 이영진이 이내 못 하겠다고 발작을 시작한다.
“신인도 아니고 그런 베테랑 배우들을 제가 무슨 수로 관리해요? 전 못 해요. 배 째요!”
“사람 더 뽑아줄게.”
“어차피 그래 봤자 방금 말한 사람들은 제가 다 관리해야 하잖아요!”
눈치가 제법 빨라졌는데 이영진?
이영진이 떼를 쓰며 못한다고 계속 징징거리자 도란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이영진에게 다가와 웃는 얼굴로 프로레슬링의 기술인 ‘찹’을 날렸다.
찰싹.
찰진 소리와 함께 이영진이 가슴께를 부여잡았다.
“커억.”
이영진이 도란희를 노려보며 외친다.
“왜 날······.”
“영진 오빠. 그냥 시키는 대로 해요. 어차피 이번 생은 우린 텄어요!”
도란희는 모든 걸 내려놓은 표정으로 물었다.
“팀장님 전 어떻게 해요?”
가끔 정신 나간 짓거리를 해대지만 이럴 때는 꽤 믿음직한 도란희다.
“알면서 묻긴 왜 물어? 뻔한 걸?”
“혹시나 해서요.”
“그래. 맞아. 너도 팀장 맡을 생각해. 내년에는 가수 쪽도 본격적으로 규모를 늘릴 테니까.”
달리기로 작정한 이상 주춤거릴 여유는 없다.
회귀 직후에는 김동수와 내부 경쟁에서 승리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내 적들의 체급이 상상 이상으로 커졌다.
일이 이렇게 된 상황에서는 차라리 내 실의 규모를 키워 체급을 불려야 한다.
도란희가 긴 한숨을 내쉰다.
“내가 한우에 미쳐서 이 팀에 들어온 게 잘못이지. 알겠어요. 그렇게 알고 준비할게요. 그러면 신입 직원들도 뽑으실 거죠?”
“어. 그 전에 내부에서 인력 수급을 했으면 하는데 대리급을 한 명씩 맡아서 빼 올 수 있을까?”
“우리 팀으로 오면 인센티브를 더 준다고 꼬실까요?”
“특별 보너스도 준다고 하고.”
정 팀은 다른 실과는 달리 소속 연예인들의 너튜브 채널까지 관리 중이다.
즉 과외 수입이 들어오고 있었기에 앞으로는 오고 싶어도 못 온다고 마감 임박 이적 제안을 하라고 했다.
‘한몫 잡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정 팀과 함께’라고 외치라고.
“알겠어요. 일에 미친 사람들로만 골라 올게요.”
이영진이 곁에서 넋이 나가 혼잣말을 해댄다.
“다 미쳤어······ 다······ 미친 게 틀림없어······.”
난 이영진의 중얼거림을 깔끔히 무시한 뒤 정상봉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상봉아. 너도 대리 승진 준비해.”
“저도요?”
“예외 없어. 넌 내년 6월까지 빠르면 2월까지야.”
어차피 정상봉이 일 잘하는 놈이라는 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정상봉이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한다.
“예! 팀장님!”
그 모습을 본 이영진과 도란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순진한 정상봉을 정윤호 아바타로 만들려고 한다면서 말이다.
* * *
회사 안과 밖에서 인재 영입 리스트를 정해놓은 난 이어서 이태풍에 관한 회의를 시작했다.
“자자. 이제 태풍이 이야기 좀 하자. 영진아. 천만 축하 이벤트는 어떻게 되고 있지?”
지난 9월 25일에 개봉한 <경계 너머로>는 4주 차에 들어와 975만 명의 관객을 달성했다.
CK 엔터가 상영관을 늘리는 강수를 두면서 예상보다 일주일은 기록이 앞당겨진 상황이 되어버렸다.
“내일 LT 타워 본점에서 하기로 준비했습니다.”
“아 이틀 후 CK 엔터 본사에서도 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둬.”
“예.”
“태풍이는 올라오고 있어?”
“지금 부산에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태풍은 천만 관객 이벤트 때문에 이달 25일까지 잡혀 있는 지방 투어 일정을 중지하고 급히 서울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오케이.”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폰에서 알림이 울린다.
[알림: 2020년 10월 30일 ‘이태풍’의 새로운 일정이 추가되었습니다.]
혹시나 이태풍에게 사고라도 생기나 싶어 급히 10월 30일의 일정으로 넘겼다.
[에브리데이 V11]
[날짜 : 2020년 10월 30일]
-PM 10:00 [NEW. 이태풍] <지리산> 제작 일정 연기 발표.
‘누구 맘대로?’
그와 동시에 LT 엔터의 신종기 대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정 팀장. 아무래도 <지리산> 제작 일정을 좀 연기해야겠어.
“하루라도 빨리 들어가자고 하셨잖습니까?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신종기 대표가 한숨을 내쉰다.
-자네. 공학범 감독님 알지?
거장 공학범 감독.
영화계 최고의 원로이자 한국영화인협회장인 거물 감독이다.
“예. 알죠.”
-그 공 감독님이 태풍이를 찍었어.
“예?”
공학범 감독은 죽기 전에 황금종려상을 타겠다는 욕심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니기에 영화계도 원로를 위해 두 팔을 걷고 도왔다.
그런데 그 공학범 감독이 이번에 꼭 수상할 만한 대본이 나왔다며 이태풍을 콕 짚었다고 한다.
-일기일회. 제목은 괜찮은데······.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나도 모르게 미래를 말해버렸다.
“그 영화. 폭망할 텐데요?”
* * *
올해 70살이 된 공학범 감독은 과거 연산군의 일대기를 다룬 <폭군> 대한민국 전후의 시절을 그려낸 <철혈> 그리고 한국의 쿠데타와 관련한 <칠일의 밤> 같은 무게감 있는 영화로 한국 영화사에 큰 영향력을 미친 거장이다.
그런데 10년 전 무속인의 인생을 다룬 <영가(靈駕)>라는 영화로 칸 영화제에 초청을 받고 난 이후 이번에는 수상에 욕심이 생겼는지 예술 영화만 찍고 있었다.
공학범 감독은 최고 원로 감독 중 한 사람으로 영화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그러니 그의 뜻을 거스른다는 건 앞으로 영화 출연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가 다음으로 찍는 영화의 미래를 훤히 알았기에 폭망한다고 말해버렸다.
전화 너머로 신종기 대표가 당황한 목소리를 낸다.
-정 팀장. 혹시 공학범 감독님의 시나리오를 봤나?
공학범 감독은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는 제작사나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주지 않는다.
누가 감히 자신의 시나리오를 평가하냐면서 말이다.
그러나 난 그가 만든 영화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공학범 감독의 <일기일회>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한국의 5대 적멸보궁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일을 다룬 영화.
이름값 때문에 칸 영화제에 경쟁 부분으로 초청을 받지만 심사위원들은 혹평을 늘어놓게 된다.
신실한 대한민국의 불자가 부처의 힘을 빌려 일본 고대 밀교에서 진신사리를 훔치기 위해 보낸 첩자들을 물리친다는 조악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어디서 시나리오를 봤냐는 질문에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최진성 제작실장 쪽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최진성 제작실장은 공학범 감독의 오른팔.
그는 술에 만취하면 자기가 공학범 감독과 일한다는 걸 뽐내기 위해 시나리오 몇 자락을 풀곤 했었다.
그 최진성 제작실장에게서 흘러나왔다며 시나리오 일부를 말해줬다.
신종기 대표가 한탄하듯 말한다.
-차라리 잘하시는 한국 현대사나 다루시지······.
“예. 그래서 저도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종기 대표가 한숨을 내쉬며 알겠다고 말한다.
-미치겠네······ 그런데 정 팀장. 내 입장 알지? 미안하지만 난 공 감독 제안을 거절하기 힘들어.
LT 엔터의 신종기 대표라고 하더라도 공학범 감독이 영화 제작을 하겠다고 찍는다면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
영화계가 미는 공학범 감독의 작품에 투자를 마다한다면 영화인들이 LT 엔터에 반감을 갖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학범 감독은 한국 연예계의 가장 큰 세를 자랑하는 서예종의 자랑스러운 동문 1위이기도 했다.
그러니 그를 적대시했다가는 서예종의 반감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신종기 대표의 입장.
이제 막 천만 배우가 된 이태풍의 앞길에 먹구름이 끼게 둘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어렵게 감독이 된 박선재 감독의 앞길에도.
“제가 막겠습니다.”
-정 팀장이? 어떻게?
“방법이 있습니다.”
-말해줄 수는 없나?
“죄송합니다. 저도 지금부터 확인을 해봐야 해서 지금 단계에서 말씀드리긴 곤란합니다.”
잠깐 고민하던 신종기 대표가 묻는다.
-내가 도와줄 일은 없고?
“공 감독님이랑 만날 자리만 마련해 주십시오.”
-안 그래도 오늘 저녁 식사 자리가 잡혔는데······ 그때 같이 볼까?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내일 저녁땐 천만 관객 이벤트를 해야 하는데······ 그 전에 해결해야죠.”
-시원시원해서 좋군. 콜!
신종기 대표는 오늘 저녁 7시로 스케줄을 잡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온다.
“어디서 감히 천만 배우를 노려?”
단지 공학범 감독의 시나리오가 엉망이라고 한다면 이렇게까지 싫어하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는 온갖 비리를 저지르다 결국엔 고소까지 당하는 범죄자였다.
그리고 그에 관한 기록이 내 다이어리에 남아 있었다.
[에브리데이 V11]
[날짜 : 2021년 9월 1일]
-PM 10:00 ‘거장 공학범 감독. 영화 제작비 횡령 보도.’ 영화진흥위원회 강상수 본부장과 한패. (중간일보 강인한 기자)
영화진흥위원회는 일명 영진위 또는 KOFIC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한국 영화 제작 전반에 걸친 막대한 힘을 발휘하는 곳이다.
그런데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매년 공학범 감독에게 지원해 준 금액의 상당수가 사적으로 횡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회귀 전 대중들은 거장 감독이 나랏돈을 사적으로 횡령한 사실에 놀라며 지탄의 손길을 보냈다.
그리고 당시 우리 굴렁쇠에선 공학범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필모를 일일이 삭제했다.
흔히 말해 ‘손절’을 한 셈이었다.
그래서 난 공학범 감독의 그 일에 대해서 낱낱이 알고 있었다.
같은 서예종 라인인 김동수가 뒷정리를 내게 시켰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걸 터트릴 수밖에 없겠군.’
이태풍과 박선재 감독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없애기 위해선 다른 방도가 없다.
설령 영화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영화진흥위원회와 다소 거리가 벌어진다고 해도 말이다.
당시 이 기사를 터트린 건 중간일보 사회부의 강인한 기자.
최소혜 기자를 통하면 충분히 연락이 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팀장급 회의를 알리는 까톡이 울린다.
“일단 윗선에 허락은 받아야겠네.”
지난번 하루의 일정을 마음대로 조정했다가 반발을 샀으니 이번에는 최소한 허락은 받아야 할 것 같았다.
* * *
팀장급 회의가 시작되자 난 상하이 뉴미디어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확약하는 서류와 함께 출장 결과를 보고했다.
“이상입니다.”
강감찬 대표가 그럴 줄 알았다며 축하의 말을 건넨다.
그리고는 대표 전결로 이동민 실장에게 가칭 KCJ 아이돌 프로젝트를 맡겼다.
오디션 일정에 관한 대략적인 이야기가 끝난 뒤 난 곧바로 이태풍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대표님. 그런데 태풍이 쪽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내일이면 천만 관객을 달성할 텐데······ 문제가 생길 게 있나?”
“공학범 감독님이 태풍이를 차기작에 쓰고 싶어 하십니다.”
순간 강감찬 대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공 감독님이?”
순간 회의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현재 굴렁쇠 엔터의 최고의 흥행 배우 중 하나가 수익성을 노리는 작품이 아닌 해외 수상만 노리는 예술 작품에 강제 캐스팅되게 생겼기 때문이다.
방상영 이사 역시도 얼굴을 찌푸렸다.
“잘 나가다가 이 무슨 X 같은 상황이야?”
그 역시 같은 서예종이지만 공학범 감독의 낙점을 내켜 하지 않았다.
지난 10년 동안 결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내 현실을 받아들이자는 이야기를 꺼낸다.
공학범 감독이 영화계에 끼치는 힘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최대한 빨리 찍고 끝내버리자고. 계약서에 촬영 기간만 확실히 명시하고.”
순간 손을 들어 올린 강감찬 대표가 내 의견을 묻는다.
“방 이사는 잠깐 조용하고. 그래서 정 팀장 생각은 어때?”
난 기다렸다는 듯 딱 잘라 반대 의견을 내었다.
“이제 천만 배우가 된 태풍이를 어떻게 망할 게 뻔하게 보이는 예술 영화에 밀어 넣습니까? 전 맞아 죽어도 그렇게는 못 합니다.”
다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회의실이 술렁이자 공사다망하신 방상영 이사님이 또 한 번 태클을 걸어왔다.
“정 팀장! 그러다가 일이 잘못되면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그 순간.
방상영 이사가 키워 낸 배우 1실에서도 배우를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샘솟기 시작했다.
뭘 하든 반대를 할 방상영 이사의 힘을 빼놓기엔 그게 딱 좋은 방법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낚시를 조금 해야겠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대신 전권을 주십시오.”
방상영 이사가 버럭 소리친다.
“또 전권 타령인가?”
“예. 단 이 일을 해결 못 할 경우 어떤 징계든 달게 받겠습니다~”
호시탐탐 날 밟을 핑계를 찾고 있던 방상영 이사에게 달콤한 미끼를 던졌다.
물어라 물어.
그 순간 방상영 이사가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억누르며 말한다.
“한 번 뱉은 말은 못 돌려. 낙장불입. 알지?”
월척이 미끼를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