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1화
351. 단서 2
김동수는 자신만 아는 비밀 정보팀의 도움을 받아 X-FILE을 만들고 그걸 이용해 연예계 인사들을 쥐락펴락했다.
그 X-FILE에는 마약 도박 등의 스캔들을 비롯해 수많은 비리가 담겨 있었는데 정치인이나 재벌의 이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 진짜 힘이 있는 사람이 X-FILE을 얻는다면 무서운 무기가 되고도 남는다.
그런 이유로.
회귀한 이후부터 X-FILE의 위험성을 알고 김동수의 정보팀을 찾으려 했지만 그 흔적을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김동수가 회사에서 정직을 당한 이 순간 드디어 그 꼬리가 드러났다.
김동수의 숨겨져 있었던 그 힘이 말이다.
난 들뜬 흥분을 가라앉힌 뒤 이수찬에게 말했다.
“수찬아. 이제부터는 좀 놓쳐도 되니까 김동수한테서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봐 줘. 더 다가갔다간 이쪽이 털릴 수도 있다.”
-혹시 아는 놈입니까?
“추측이긴 한데 거의 확실해.”
상대는 정보를 다루는 인간들.
나와는 달리 약점이 많은 이수찬이 그 뒤를 캤다간 오히려 역으로 당할 수가 있었다.
잠깐 고민하던 이수찬이 알겠다고 답한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사진?”
-예. 바로 까톡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어제 찍은 겁니다.
이수찬이 정보팀 일원일지 모르는 사람의 사진 한 장을 까톡으로 보내왔다.
사진에는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의 옆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야구 모자를 깊게 눌러 쓴 탓에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회귀 전에는 정보팀의 얼굴조차 본 적 없었기에 이것만 해도 큰 소득이었다.
-그러면 다음 주 목요일 은기 형님 재판 때 뵙겠습니다.
“그래. 그때 보자. 그리고······ 늘 고맙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희 사이에.
전화를 끊은 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내가 직접 그들을 쫓아다닐 수는 없다.
하염없이 길어질 수도 있는 일이기도 하고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니 일을 진행하는 도중 문제가 생겨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이 필요했다.
그 순간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 * *
명동 최은태 회장의 고택.
인사를 마치고 나자 최은태 회장은 초조한 표정으로 은기의 소식부터 물어왔다.
“다음 주 목요일이 재판인데 은기 그놈에게선 아직 날 만나겠다는 말이 없는가?”
“20여 년이나 쌓인 원망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진 않을 겁니다. 믿고 기다려봐 주십시오.”
이수찬에게 듣기론 강은기가 요즘 최은태 회장에 대해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것만 봐도 꽉 닫혀 있던 마음에 균열이 생겼다는 뜻.
얼마 가지 않아 좋은 소식을 전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르신. 이 친구 말대로 조급해하지 마시고 느긋하게 기다려 보시지요. 최소한 이젠 아드님이 어디 있는지는 아시잖습니까?”
대흥 저축은행 최영호 은행장이 내 편을 들자 최은태 회장이 뚱한 표정으로 불만을 늘어놓았다.
“영호 넌 누구 편이냐?”
최영호 은행장이 빙긋이 웃는다.
“저야 늘 회장님 편이지요.”
“그런데 왜 정 팀장 말만 맞다고 하느냐?”
최은태 회장이 역정을 내어도 최영호 은행장은 웃기만 할 뿐이다.
툴툴대던 최은태 회장이 금세 화제를 바꾼다.
“그건 그렇고······ 대체 오늘은 무슨 일 때문에 왔나?”
난 이수찬으로부터 받은 사진을 최은태 회장에게 보였다.
“김 실장에게 정보를 구해다 주는 놈입니다. 혹시 이 인간의 뒤를 캐주실 수 있습니까?”
최은태 회장이 사진 속 남자를 보다 고개를 갸웃한다.
“영호야. 이거 그놈 아니냐?”
최영호 은행장이 사진을 보고 미간을 찌푸린다.
“맞습니다. 제가 어떻게 이놈의 얼굴을 잊겠습니까?”
순간 온몸이 전율이 일었다.
회귀 전 김동수가 그토록 숨겼던 정보팀의 정체가 드디어 드러났기 때문이다.
“누굽니까?”
최은태 회장이 사진 속 남자의 정체를 말하기 시작했다.
* * *
일명 ‘백 대령’.
전직 국정원 블랙 요원 출신으로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오가며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작전을 진행한 베테랑이라고 한다.
그는 중국 쪽에서 일어난 비리에 연루되어 옷을 벗었는데 그 뒤에 자신만의 정보팀을 꾸렸다고 한다.
정치인의 스캔들 건 같은 값비싼 정보들만 전문적으로 캘 수 있게 말이다.
하지만 백 대령의 성이 정말 백 씨인지 군대에서의 직책이 대령이었는지는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단다.
본인이 스스로를 그렇게 소개할 뿐이라면서 말이다.
사진의 인물은 그저 정보팀의 일원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바로 내가 찾던 정보팀의 수장 백 대령이었다.
“백 대령을 어떻게 알게 되셨습니까?”
“날 적대하는 정치권 인사의 정보를 캐려고 사람을 하나 샀는데 다음날 이상한 놈 하나가 이 집으로 날 찾아오더군. 이왕 일을 하려면 제대로 된 사람에게 의뢰하라면서. 먼저 샀던 놈은 이유도 밝히지 않고 일을 그만둬 버렸고.”
그때 그 남자는 자신을 백 대령이라고 부르라고 했단다.
“그나저나 백 대령 몸값이라면 김동수 그놈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닐 텐데? 만식이가 돈을 댔나?”
“그게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김동수 실장이 화연 미디어의 장웨이 회장을 만나고 다닌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최은태 회장의 눈이 번뜩인다.
“김 실장이 만식이 말고 다른 줄을 잡았나 보군?”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자금 출처는 정확히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최만식인지 아니면 장 회장인지요.”
최은태 회장이 최영호를 쳐다본다.
“영호 네가 수고를 좀 해 줘야겠다. 자금을 누가 댔는지 알아보거라.”
“예. 어르신.”
최은태 회장은 이어서 내게 말한다.
“그럼 정 팀장. 이 일은 우리 쪽에 맡겨주게. 우리도 이놈한테 갚아줘야 할 게 있거든.”
과거 최은태 회장은 백대령에게 의뢰를 맡길 때 수하 중 한 명에게 그의 뒤를 캐라고 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그 부하가 자신을 배신하고 백 대령의 편에 붙어버리는 바람에 피해를 받았단다.
벼르고 있었는데 잘 되었다면서 최은태 회장이 눈을 번뜩인다.
이곳으로 오길 잘했다.
굳이 조건을 걸지 않아도 알아서 백 대령의 뒤를 캐주겠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난 최은태 회장과 긴밀하게 연락하기로 한 뒤 이수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동수의 뒤를 쫓는 건 앞으로 아예 최은태 회장에게 맡기기 위해서.
그때였다.
전화를 받은 이수찬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한다.
-형님. 여기 명동인데 어제 봤던 그놈이 나타났습니다.
이수찬은 김동수를 멀리서 관찰할 팀을 재구성하기 위해 김동수를 관찰하던 동생들에게 왔단다.
그런데 때마침 그곳에 어제 봤던 백 대령이 나타났다고 한다.
명동이면 이 근처다.
“혹시 잡을 수 있겠냐?”
-죄송합니다. 골목으로 들어간 건 봤는데 어디에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섣불리 따라갔다가는 들킬 수도 있었기에 입구 쪽만 지키고 있단다.
난 급히 최은태 회장을 바라봤다.
최은태 회장과 최영호 은행장이 눈을 번뜩인다.
“하긴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이틀째로구먼.”
백 대령은 보통 의뢰자를 단 두 번 만난다.
한 번은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서.
다음 날은 의뢰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렇다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최은태 회장이 눈을 번뜩이며 말한다.
“영호야. 당장 애들 데리고 출발해라.”
“예.”
최영호 은행장이 급한 대로 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난 이수찬에게 백 대령이 도망가지 못하게 자리를 지켜달라 말했다.
* * *
명동의 허름한 중식당 ‘태성 중화반점’.
텅 빈 가게에 김동수와 검은 모자를 쓴 백 대령이 말없이 차를 홀짝이고 있다.
김동수는 어제에 이어 오늘이 두 번째로 백 대령을 만나고 있었다.
백 대령이 ‘앞으로 의뢰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오늘 알려 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5분간의 적막이 흐른 후.
백 대령의 폰으로 전화가 걸려온다.
“어. 그래. 응. 알았어. 문자로 보내.”
전화를 건 상대가 누군지 백 대령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고 있었다.
김동수는 상대가 도통 뭘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불안함이 커지기 시작했다.
최만식으로부터 한 번만 더 실수하면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겠다는 경고를 들은 이후.
따로 살길을 찾기 위해 장웨이 회장을 찾았다.
그러자 장웨이 회장은 눈앞의 이 백 대령이라는 자를 소개해줬었다.
“백 대령님······ 그럼 이제는 어떤 식으로 일을 맡기면 됩니까?”
검은 모자를 쓴 사내가 마시던 차를 내려놓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비용은 장 회장 쪽에서 댄다고 하니 김 선생은 의뢰만 하시면 됩니다. 일이 있으면 이 폰으로 연락하시오.”
백 대령은 대포폰이라며 최신형 스마트폰 하나를 내밀었다.
김동수가 스마트폰을 건네받자 백 대령이 말한다.
“아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거요.”
“마지막이라뇨?”
“말 그대로요. 앞으로 직접 얼굴 볼 일은 없다는 거지. 그나저나 당신. 이걸 좀 확인해 줬으면 좋겠는데.”
백 대령이란 남자가 자신의 폰을 내밀었다.
“이 이건······.”
백 대령이 내민 폰의 액정에는 김동수가 홀딱 벗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당신 맞소?”
“이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백 대령은 씨익 웃으며 화면을 내렸다.
김동수와 연예인들의 치정 사진이 끝도 없이 나오기 시작한다.
사진을 본 김동수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이 이······걸 어떻게 다······.”
“만약 우릴 배신하거나 날 만났다는 사실을 엉뚱한 곳에서 떠벌린다면 이 사진들이 언론에 공개될 거요.”
김동수가 빠르게 머리를 끄덕거렸다.
“아 알았······습니다.”
백 대령이 웃음을 머금고 폰을 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내가 일을 의뢰받을 땐 고객에게 단 두 가지만 바라오. 하나는 내 정체에 대해선 입을 다물 것 둘은 거짓말을 하지 말 것. 간단하지 않소? 그러면 이 사진이 공개될 일은 없을 거요.”
“알겠······습니다.”
백 대령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 그러면 선금은 이미 넉넉히 받았으니 의뢰를 하시오. 무슨 정보를 구해다 드릴까?”
김동수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모든 연예인의 비리 목록!”
이제껏 김동수는 날새나 몇몇 흥신소들을 이용해 연예인들의 비리를 모았었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으로는 연예인들을 온전히 잡아둘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장웨이 회장이 앞으로 계속 돈을 댈 거라고 약속했으니 이 기회에 김동수는 자신만의 비밀 파일을 만들 생각이었다.
백 대령이 희미하게 웃는다.
“그거 재미있겠군. 하지만 장 회장에게 받은 돈으로는 S급 탑스타 두 명이 끝이오.”
김동수가 놀란 눈으로 묻는다.
“예? 선금으로 10억을 받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맞소. 1명당 5억이니까 10억이면 2명 맞지.”
“뭐 그렇게 비쌉니까?”
“연예인의 코를 영영 꿸 수준의 정보를 원하는 게 아니었던가? 흥신소 수준의 정보를 원한다면 그리고 가시던지 마음대로 하시오. 아니면 수준을 낮춰 A급으로 4명을 고르던지.”
정보의 값은 상대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법.
고민하던 김동수는 결국 S급 연예인 두 명의 정보를 요구했다.
“그러면 일단 S급으로 두 명의 뒤를 캐오세요. 누구든 가리지 않겠습니다. 단 올해 안으로 제가 확실하게 영입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백 대령이 씨익 웃는다.
“최대한 빨리 영입할 수 있는 인간으로 골라 파일로 엮어 드리겠소. 만족할 거요. 내 장담하지.”
워낙 자신만만한 백 대령의 태도에 김동수도 기대하기 시작했다.
순간 백 대령이 묻는다.
“전화할 때 알아듣기 편하게 그 파일을 뭐라 부를지나 정하는 게 어떻소?”
김동수가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X-FILE.”
“엑스 파일이라······. 고전적이군. 부르기도 좋고. 그럼 그렇게 부르도록 합시다.”
김동수의 얼굴에 웃음이 짙어진다.
그때였다.
김동수의 폰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발신자 : 정윤호]
“이 자식은 왜 하필 이럴 때 전화질이야?”
마치 백 대령을 만나길 기다렸다는 듯 정윤호가 전화를 걸어왔다.
순간 백 대령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혹시 우리가 만난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 알린 건 아니겠지?”
백 대령이 품속으로 손을 넣는 순간 김동수가 다급히 손을 저었다.
“아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백 대령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쳐다보며 말한다.
“스피커 폰으로 받아보시오.”
“예.”
김동수가 침을 꼴딱 삼키며 전화를 받았다.
“어. 왜?”
-실장님 저 정 팀장입니다. 지금 좀 뵈었으면 합니다.
“지X. 내가 널 왜 봐?”
-꼭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전 지금 명동인데 실장님은 어디십니까?
백 대령이 손을 젓는다.
끊으라는 신호였다.
“됐어. 지금은 너 보고 싶은 생각 따윈 없어!”
달칵.
전화를 끊자 백 대령이 김동수를 쳐다보며 으르렁거린다.
“진짜로 나 만난다는 거 정 팀장한테 말 안 했소?”
“예! 그렇다니까요?”
백 대령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주방 쪽을 쳐다본다.
“그러면 그놈을 여기로 당장 부르쇼.”
“뭐 하시려고요?”
“난 빠져나갈 테니 녀석 좀 잡아두라고.”
백 대령이 벌떡 일어나 주방 쪽으로 달려나갔다.
김동수는 백 대령의 말대로 정윤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생각해 보니 나도 할 말이 있긴 하네. 여기 명동 태성 중화반점이야. 위치 알려줄 테니 혼자 와. 술이나 한잔하면서 이야기하자.”
-금방 가겠습니다.
* * *
명동 태성 중화반점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앞.
고택에서 출발한 지 5분도 안 되어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내 뒤로 승합차 여섯 대가 줄지어 멈춘다.
끼이익.
승합차에선 최영호 은행장과 그 수하들 30명이 우르르 내렸다.
다들 깍두기 머리에 검은색 정장 차림이다.
그때 태성 중화반점이 있는 골목 입구를 지키고 있던 이수찬이 달려왔다.
“오셨습니까?”
“상황은 어때?”
“아직 나온 사람은 없습니다.”
태성 중화반점이 있는 건물은 출입구가 여러 개였기에 이수찬도 확신하진 못했다.
그러나 자신들이 보는 동안엔 나온 사람이 없단다.
“수고했다. 수찬아. 이제 여기서부터는 최 회장님 쪽 식구들이 맡을 거다.”
“예. 형님.”
그때 최영호 은행장이 30명이나 되는 일행들에게 마치 토끼몰이를 하듯 지시를 내렸다.
“골목길 싹 다 뒤져! 출입구는 봉쇄하고.”
“예.”
최영호 은행장이 데려온 정장 남자들이 태성 중화반점과 연결된 골목길로 달려간다.
난 최영호 은행장을 향해 말했다.
“백 대령이 김동수랑 아직 같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린 근처를 수색하고 있겠네. 그러니 자넨 들어가자마자 안의 상황을 말해주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위치추적기와 도청기를 몸에 달아 놓은 상태였다.
“알겠습니다.”
난 짧게 심호흡을 한 뒤 ‘태성 중화반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