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화
35. 선택의 시간 2
장문기 역시 최준우가 나온 걸 보고 서둘러 자기 차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미 최준우의 람보르기니는 도로로 향하고 있었다.
“와 진짜. 저 XXX.”
입에서 절로 쌍욕이 나온다.
난 급히 시동을 걸어 최준우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누군진 몰라도 이대로 놓아두면 큰일을 당할 테니까.
최준우의 뒤를 따라가는 동안 옆 좌석에 앉은 여자의 몸이 휘청대는 걸 볼 수 있었다.
순간 최준우가 여자에게 약을 먹였다는 걸 대번에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런 움직임은 불가능하니까.
난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은 뒤 강감찬 대표에게 다이렉트로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저 윤홉니다!”
-왜? 무슨 일인데?
“저 클럽 BLUE에서 지금 최준우 따라가고 있는데요. 옆 좌석에 있는 여자가 정신을 잃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약을 먹인 거 같은데요?”
-뭐라고? 너 지금 어디야!
“클럽 BLUE에서 논현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대표님. 시간 없습니다. 지금 사진이랑 영상 전송하겠습니다!”
-어 어. 그래.
난 다급히 강감찬 대표의 까톡으로 파일을 전송했다.
-뭐 뭐야. 이거 물뽕 먹인 거 아냐?
내가 보낸 영상엔 누가 봐도 정신을 잃은 게 확실한 여자의 움직임이 담겨 있었다.
“대표님. 어떻게 하죠?”
잠깐의 침묵 뒤.
-일단 그놈 뒤를 따르면서 계속 위치 말해. 뒤는 나한테 맡기고.
“예. 대표님. 계속 따라붙겠습니다.”
졸지에 난 추격조가 되어 그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전했다.
백미러로 보니 장문기 기자는 추월을 몇 번 했는지 금세 내 뒤를 따라붙었다.
난 최준우의 람보르기니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손에 땀을 쥐며 그 뒤를 따랐다.
승합차의 느린 속도 때문에 따라가는 게 쉽지가 않았다.
“으아악. 이 똥차!”
털털털.
“슈퍼붕붕아. 제발 퍼지지 말고 힘내라!”
미소가 이름 붙인 내 승합차 슈퍼붕붕이가 람보르기니에 뒤지지 않길 간절히 빌었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서울에 모든 도로가 콱 막하길 빌었다.
그런데 그 순간.
신이 내 소원을 듣기라도 한 듯 봉은사로가 막히기 시작했다.
* * *
최준우는 막히는 도로 탓에 짜증이 머리끝까지 난 상태다.
그런데 백미러로 낯이 익은 승합차 두 대가 보였다.
주차장에서 나올 때 함께 나온 차다.
혹여 기자일까 봐 불안해진 최준우는 조금 더 빠르게 차를 몰기 시작했다.
“젠장! 걸린 건 아니겠지?”
하지만 집에만 들어가면 문제가 없었다.
자신이 사는 청담동 최고급 루첸 빌라는 철저히 외부 출입을 금지하는 곳이니까.
최준우는 즉시 갓길로 빠져 액셀을 밟았다.
부우웅.
람보르기니는 낮은 차고 때문에 과속방지턱에 차량이 걸릴 때마다 요란하게 차체가 흔들렸다.
콰지직!
“아이! X발! ”
차량 아랫부분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멈춰 설 순 없었다.
일단 이 자리를 피한다.
최준우는 오직 그것만을 생각했다.
그때였다.
“으으으······.”
물뽕(GHB)을 타서 잠재운 신인 여배우 한이슬이 눈을 뜨려 하고 있었다.
과속방지턱에 람보르기니가 여러 번 덜컥인 탓에 정신을 차리는 거 같았다.
“젠장!”
최준우는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사이 GHB에 당해 정신을 잃었던 신인 여배우 한이슬이 흐느적거리는 두 팔로 사방을 더듬기 시작했다.
“미치겠네! 이 X은 하필이면 이럴 때 깨어나냐고!”
최준우는 서둘러 집으로 가기 위해 더욱 험하게 차를 몰았다.
부우웅!
칼치기를 할수록 차는 더욱 휘청거렸고 한이슬이 정신을 차리는 속도도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여 여긴······ 어디?”
한이슬이 게슴츠레 눈을 뜨고 묻자 최준우가 당황해서 말했다.
“아냐! 좀 더 자라! 제발!”
“어? 최······준우 선배님? 근데 내가 여기 왜······.”
한이슬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최준우는 그 모습을 보고 급히 거짓말을 내뱉었다.
“네가 우리 집 보고 싶다며? 그래서 가고 있는 거야. 도착하면 깨울 테니까. 자라.”
“내······ 내가 언제······요?”
한이슬의 머리가 뒤죽박죽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한이슬이다.
선배 여배우의 생일을 축하하러 난생처음으로 클럽에 갔고 술을 못하는 그녀는 주스를 마셨을 뿐이다.
그런데 눈을 뜨니 곁에는 탑스타인 최준우가 있다.
등골이 오싹했다.
영문을 몰랐지만 이대로라면 큰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감이 밀려들었다.
“내······ 내려······ 주세······요. 제발.”
한이슬은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기에 한이슬은 이번엔 고함을 치려 노력했다.
“으아······아.”
하지만 한이슬의 외침은 크지 않았다.
그때였다.
한이슬의 눈에 곁으로 다가오는 경찰차 한 대가 보였다.
한이슬은 숨을 헐떡이며 몇 번의 실패 끝에 버튼을 눌러 창문을 내렸다.
위이이잉.
창문이 내려가자 한이슬은 죽을힘을 다해 외쳤다.
“도와······ 주······세요.”
거의 들리지 않는 정도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민 탓에 경찰들이 알아차렸다.
“야! 미쳤어? 조용히 안 해?”
놀란 최준우가 오른손을 뻗어 한이슬의 입을 막았다.
하지만 그때였다.
으직!
“으아악. 씨X. 이 미친 X이!”
한이슬이 온 힘을 다해 최준우의 오른손을 물었다.
좌우로 휘청대던 최준우의 람보르기니 차량이 가드레일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 * *
강감찬 대표와 통화를 하며 계속해 최준우의 위치를 알렸다.
그때 내 옆을 스쳐 지나간 경찰차 한 대가 최준우의 차량을 발견하고 속도를 올렸다.
부우웅.
‘됐다!’
미소가 이름 붙인 내 승합차 슈퍼붕붕이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가진 경찰차가 최준우의 차량 바로 곁으로 달라붙었다.
이제 안심이라 생각하던 그때 갑작스레 최준우의 람보르기니가 갈지자로 운행을 시작했다.
끼기긱!
“어?”
나와의 거리는 대략 50m.
떨어진 거리 탓에 난 차 안에서 고함을 칠 수밖에 없었다.
“안 돼!”
그때였다.
쾅!
경찰차가 람보르기니의 옆으로 차를 가져다 붙이더니 고의로 충돌을 일으켰다.
끼기기긱!
타이어가 끌리는 소리가 나더니 람보르기니가 막아서는 경찰차를 인도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쿵!
두 대의 차량이 함께 가로수를 받고 멈춰 섰다.
급속도로 속도가 줄었기에 망정이지 자칫했으면 큰일이 날 뻔했다.
“최준우 저 미친놈이!”
충돌한 두 차의 앞 트렁크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때였다.
덜컥!
람보르기니의 운전석 문이 열리며 최준우가 튀어나와 휘청대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최준우를 잡으러 경찰들도 차에서 나왔다.
그런데 충격이 남은 건지 휘청거리고 있었다.
남은 거리 30m.
난 차량의 속도를 늦춰 도로를 횡단하려는 최준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툭.
아슬아슬하게 직접 치는 건 피했다.
“어? 어?”
내 차에 가로막힌 최준우는 다리가 꼬여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뭐야! 이 새X 사람을 쳐? 경찰! 당신들도 봤지? 나 고소할 거야!”
하지만 그 말이 통할 리가 없다.
뒤따라온 경찰들이 거세게 최준우의 팔을 꺾었다.
“어? 뭐야? 놔! 이거 안 놔? 내가 뭘 했다고?”
“당신은 묵비권을······.”
경찰들이 최준우의 팔목에 수갑 채우며 미란다 원칙을 말하는 동안 뒤늦게 도착한 장문기가 사진을 연신 찍어댔다.
그리곤 이내 파란색 람보르기니로 뛰어가 아직 의식을 차리지도 못한 여자의 사진을 찍어댔다.
찰칵찰칵!
어떤 의미로는 프로답다.
이 와중에 사진을 찍을 생각을 하다니.
이제는 안심이다.
장문기 기자라면 내일 해가 뜨기도 전 특종으로 기사를 낼 테니까.
그 때문인지 내 다이어리에 있는 일정도 사라지고 있었다.
[에브리데이 V10]
[날짜 : 2020년 1월 15일]
-PM 11:05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보고 사항) 주간 스타 속보. 최준우 클럽 BLUE 입구에서 약에 취해 난동. 현행범으로 체포.)
“끝났네.”
그제야 안심한 나는 강감찬 대표에게 상황이 끝났다는 보고를 올렸다.
-진짜 수고 많았다. 윤호야.
“운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어쩌죠? 장문기 기자가 여기서 사진 찍고 난리인데요?”
-뒤는 나한테 맡겨라. 거기 경찰들한테도 말해뒀으니까 모른 척하고 그냥 빠져나와.
“그래도 되나요?”
-그래. 이야기 다 해뒀다.
어쩐지 경찰들이 날 검문하지 않고 장문기를 말리는 데만 애를 쓰고 있었다.
“예. 대표님. 그런데 여자는 반드시 곧바로 혈액 검사시키셔야 합니다. GHB는 하루 안에 검사 안 하면 증거 다 사라지잖습니까?”
-허! 그런 건 또 어떻게 아냐?
“뭐 미드만 봐도 나오는 거 아닙니까?”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회귀 전 탑 엔터에서 이 같은 일을 일으킨 탑스타가 한두 명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 뒤처리는 모두 내 몫이었고.
“대표님. 피해자도 피해 없도록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알았다. 내가 알아서 하마.
난 경찰과 눈짓으로 인사한 뒤 곧바로 현장을 피했다.
* * *
회식 장소로 갈까 싶었지만 시간은 이미 12시다.
“끝났겠지?”
눈앞에 먹지 못한 한우가 아른거렸지만 이제 가서 고기를 먹는다는 건 무리지.
그런데 집으로 차를 돌리려던 순간 오덕구 팀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예. 팀장님.”
-매니저 오빠. 언제 와염?
유진이의 혀가 꼬인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아직 회식이야?”
-넹~. 이제 막 시작했거든여. 네! 가요~!
응?
어딜 가?
잠시 후 오덕구 팀장이 전화를 건네받았다.
-윤호야. 급한 일 끝났으면 너도 어서 와라. 아직 회식 한창이다. 그리고 유진이 좀 진정시켜 봐라. 얘가 막 주사를 부린다.
“유진이가요?”
-그래. 너 찾고 난리다. 어서 와.
“저를요?”
유진이가 주사를 부린다는 말에 난 곧장 차를 돌려 회식 장소로 향했다.
여배우의 주사는 기사가 나기에 딱 좋은 소재.
최준우를 추격할 때보다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 * *
“팀장님. 헉헉.”
“어. 왔냐?”
오덕구 팀장이 날 반겼다.
유진이의 주사가 신문에 날까 걱정되었지만 이내 안심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PD가 회식 시작부터 함부로 사진을 찍어 유출하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경고했다면서.
“미리 말 좀 해 주시죠. 걱정되어서 얼마나 액셀을 밟은 줄 아세요?”
“자식. 그렇게 걱정되디? 하긴 첫 담당 배우니까 그럴 만도 하긴 하겠지. 야 근데 내가 있는데 뭔 그리 걱정이냐?”
오덕구 팀장이 장난스럽게 웃는다.
듣고 보니 그렇네.
난 헛기침을 하고서 슬그머니 말을 돌렸다.
“근데 유진이 쟤. 도대체 얼마나 마신 겁니까?”
“겨우 소주 반병 먹고 저러고 있다.”
술에 취한 유진이는 어디서 구했는지 앞치마를 걸쳐 입고 팔뚝까지 상의를 걷어붙이고 테이블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덕분에 여배우인지 고깃집 아르바이트생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아니 여배우가 고기 집게와 진짜이슬병은 왜 들고 있는 거냐고.
“맛있게 드세염~.”
“하하하. 이야. 유진 씨. 고기 진짜 잘 굽는데?”
“제가 알바를 얼마나 했는데염~. 감독님. 자~ 한잔!”
얼씨구.
유진이가 집게로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들더니 스태프의 상추쌈 위로 올려 준다.
조로록!
얼씨구 소주까지 따르고.
혀가 살짝 꼬여 혀 짧은 목소리를 내면서 저런 식으로 스태프들에게 술을 먹이다니.
고기 한 점.
술 한잔.
스태프들은 밝게 웃으며 유진이의 술 권유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쟤 저런 주사가 있었네요.”
“나도 처음 봤다. 넌 몰랐냐?”
“예. 뭐 같이 술을 먹을 기회가 있었어야죠.”
“그래도 우는 것보단 낫네. 저 봐라. 최송현 AD. 술 한잔 못 하는 양반이 유진이가 주니까 넙죽넙죽 잘도 마시네.”
유진이는 배우와 스태프 할 것 없이 공평하게 술을 먹이고 있었다.
“뭐 갑질하는 것보다는 백배 보기 좋네요.”
“그러니까 놔뒀지.”
유진이는 ‘야 너’라고 불리는 막내 스태프들에게도 이름을 꼬박꼬박 불러주며 술을 건넸다.
덕분에 회식 장소는 ‘위 아더 월드’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 PD들과 잔을 기울이던 이지연 작가가 김솔잎 작가를 데리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유노~.”
“아. 작가님!”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이지연 작가에게 인사를 건넸다.
한우 집을 통째로 빌려 회식을 할 수 있었던 건 모두가 이지연 작가 덕분이다.
시청률 20%를 넘은 기념으로 그녀가 쏘는 회식이었으니까.
김솔잎 작가도 이지연 작가의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왔어요? 근데 유진 씨는 왜 저래요?”
김솔잎 작가의 말에 홀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유진이는 언제 또 주방에 들어갔다가 왔는지 머리 위로 넓은 은빛 쟁반을 이고 반찬을 나르고 있었다.
“소고기는 핏기만 가시면 드세요. 여기 소금장. 그리고 이모! 여기 간장소스랑 양파 좀 더 가져다 주세여~.”
네가 여기 집주인이냐?
반찬 세팅은 왜 신경 쓰고 있는 건데.
“호호호. 알았어요. 유진 씨. 내 금방 가져다줄게. 상추는 필요 없고?”
“상추는 괜찮고요. 깻잎 7장만 주세요. 이모~.”
“오케이~.”
한우 집의 이모들도 즐거워할 정도로 유진이는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이지연 작가는 그 모습에 재미난다는 표정으로 웃어넘겼지만 김솔잎 작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 모습을 담고 있었다.
잠깐.
유진이가 서빙을 하는 이 상황이 왠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