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1화
341. 차도희 3
소규모 기획사의 경우 재력가의 딸이 아이돌을 하고 싶다며 돈을 들고 오는 경우가 있다.
재정이 빈약한 소규모 기획사는 만성 적자로 시달리기에 옳다구나 하고 재력가의 딸을 데뷔 조에 넣어준다.
그리고 재력가는 앨범 제작과 의상 및 운영비 그리고 뮤직비디오를 만들 돈을 대주는 터라 대표부터 매니저들까지 낙하산 멤버를 금이야 옥이야 공주 대접을 해주고.
하지만 업계 1위인 에이스 엔터는 제작비가 모자랄 리 없다.
그렇다면 이유는 한 가지뿐.
엔터 회사들이 여당 대표와의 수상한 돈거래로 사회적인 지탄받는 상황이기에 차상태 의원이라는 보호막이 필요했던 거다.
그래서 임성학 대표는 소규모 기획사에서나 벌어지는 일을 태연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긴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탑 엔터테인먼트 시절에도 김동수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정치인에게 줄을 대서 해결하곤 했으니까.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갑은 차도희라는 거군.’
난 곧장 16살인 차도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차도희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되묻는다.
“매니저 오빠. 혹시 그 기사 내려달라고 여기까지 찾아오신 거예요?”
“그렇습니다.”
또박또박 높임말로 말하자 차도희가 입술을 삐죽이며 툴툴거린다.
“근데 말을 왜 그렇게 무섭게 해요? 전 그냥 기자 아저씨가 물어봐서 대답한 것뿐인데······.”
“인터뷰를 어떻게 했길래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사가 나온 겁니까?”
차도희가 혀를 빼꼼히 내밀며 대답한다.
“그 기자 아저씨가 저한테 들은 걸 제멋대로 바꿔 쓴 거예요. 저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니까요?”
차도희가 놀란 표정으로 가슴에 손을 얹는다.
순간순간 표정이 어찌나 자연스레 바뀌는지 연기를 해도 잘할 것 같다.
“말 빙빙 돌리지 말고 대답하시죠.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죄송해요~ 지금 바로 엄마한테 전화해 기사 내리라고 부탁할게요. 그럼 됐죠?”
회귀 전 수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차도희 같은 캐릭터는 처음이다.
보통 부모의 백을 믿는 경우 자기 실수를 인정하기는커녕 더 덤벼든다.
조재경 감독처럼.
그런데 차도희는 너무도 쉽게 자기 잘못을 인정해버린 뒤 사과를 해왔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전화해 이 문제를 당장 해결해달라고까지 한다.
“엄마. 응 나 도희! 지금 세리랑 하루 기사 뜬 거 내려 달라고 하면 안 돼? 응? 상황이 그렇게 됐어. 사랑해. 저녁때 봐~”
전화를 끝낸 차도희가 태연하게 말한다.
“엄마가 금방 처리한대요!”
그 순간 곁에 있던 임성학 대표가 대화에 끼어든다.
“정 팀장. 조금만 기다리면 기사 내려갈 거야! 우리 도희가 인터뷰는 처음이라 실수가 좀 있었는데 앞으로는 조심시킬게.”
표정만 봐도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걸 따지고 있기에는 세리와 하루의 스캔들 기사에 대한 정정 보도가 급했다.
“임 대표님. 에이스 엔터도 정정 기사를 내주셔야겠습니다. C모 양은 여기 차도희고 증언 내용은 사실무근이라고요.”
“오케이. 도희가 실수했으니 그 정도는 해줘야지. 알았어.”
임성학 대표는 의외로 선선히 인터폰을 들고는 홍보 이사를 향해 전화를 걸었다.
“어 난데. 당장 정정 보도를 내. 굴렁쇠 엔터에 사죄 내용도 담아서 쓰고.”
전화를 끊은 임성학 대표가 날 쳐다본다.
“됐지?”
“기사 확인하고서 답변드리죠. 그리고 저희 대표님께서 따로 전화하실 겁니다.”
“알았어.”
잠시 후.
도란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팀장님! 연예가 빅뉴스에서 기사 내린다고 전화가 왔어요! 사과 기사도 바로 올리겠대요!
차도희가 생글생글 웃으며 그것 보라 말한다.
“거봐요 됐죠? 엄마가 처리한다고 했잖아요.”
예상외로 빠른 속도였다.
메인 찌라시인 ‘연예가 빅뉴스’의 기사가 내려가자 빠르게 다른 기사들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저 세리 좀 만나게 해주세요. 직접 만나서 오늘 일 사과도 하고 싶어요!”
어림도 없는 소리.
세리가 원하지 않는 이상 절대 만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어쨌건 급한 일들은 마무리되었기에 이참에 차도희의 기부터 꺾어 놓아야겠다 싶었다.
이렇게 언론을 이용할 정도로 대담한 녀석을 그대로 둔다면 다음번에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말이다.
난 세리를 보게 해달라고 연신 애교를 떠는 차도희에게 쌀쌀맞게 말하기 시작했다.
“도희 씨. 아이돌에게 연애 스캔들보다 무서운 게 왕따설이라는 건 아시죠?”
“에이~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어요?”
“아시니 다행이네요. 그러면 경고하겠습니다. 만약 또 한 번 우리 회사 스타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함부로 떠들면 저희는 도희 씨가 세리를 왕따한 사실을 기사로 내겠습니다.”
“헐~ 세리가 그래요? 제가 왕따를 했다고?”
“세리뿐만이 아니라 하루도 그렇게 증언하더군요. 필요하면 안동으로 내려가 증인을 더 찾을 수도 있습니다.”
차도희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루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말도 안 돼. 하루 걔가 그럴 애가 아닌데······.”
하루가 거론되자 차도희에게서 여유로운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어쨌건 전 한 번 시작하면 대충 끝내는 법이 없는 사람이니까 내 말 명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그제야 차도희가 임성학 대표에게 도와달란 표정으로 쳐다본다.
임성학 대표가 그 눈빛을 알아채고 내게 맞선다.
“정 팀장. 우리 애가 실수한 걸 가지고 그렇게 나오는 건 좀 너무 간 것 같군. 그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도 가만히 못 있어.”
그와 동시에 에필 K와 이찬동 실장도 끼어든다.
“정 팀장. 적당히 해라. 데뷔도 전에 밟으려 드는 경우가 어딨어?”
난 세 사람을 빤히 쳐다보며 대꾸했다.
“그러길래 왜 저희 애를 건듭니까? ZIZAK 멤버들이 통째로 날아가고도 배운 게 없으십니까?”
골든로드와 함께 체리블라썸을 건들다가 사실상 해체된 보이그룹 ZIZAK은 이찬동 실장이 관리하던 팀이다.
순간 세 사람이 날 씹어먹을 듯이 쳐다본다.
하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는 실수로도 우리 애들을 건들지 말라고 경고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예가 빅뉴스 측의 기사가 내려갔고 정정 보도 기사가 올라왔으니 더 있어봤자 얻을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김 대리님. 가시죠.”
“예. 팀장님.”
회의실을 나온 난 다이어리부터 살폈다.
[에브리데이 V11]
[날짜 : 2020년 10월 24일]
-AM 10:0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NEW. 김세리] <연예가 빅뉴스> 김세리. 걸프렌즈7 차도희를 폭행. (회의 내용 : 에이스 엔터와 협상 준비.))
차도희에게 직접 경고를 한 게 답이었던 것 같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난 체리블라썸의 숙소로 향했다.
이제는 놀란 세리를 달래야 했으니 말이다.
* * *
정윤호가 돌아간 후에도 차도희는 찌푸려진 얼굴을 풀지 않았다.
임성학 대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달랬다.
“도희야.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냥 겁준다고 저러는 거야.”
순간 차도희가 고개를 저은 뒤 임성학 대표에게 뜬금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대표님. 저 오빠. 영입할 순 없어요?”
“영입? 정윤호 저 인간을?”
“예. 저 매니저 오빠······ 갖고 싶어요.”
차도희의 생뚱맞은 대답이 이어지자 임성학 대표가 헛기침한다.
“갖고 싶다니······. 갑자기 왜?”
“임 대표님도 우리 엄마 아빠 때문에 나한텐 꼼짝 못 하잖아요. 근데 저 오빠는 나한테 협박까지 할 정도로 깡이 넘치는 게 멋져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잘생겼잖아요.”
차도희는 가지고 싶은 걸 반드시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기에 임성학 대표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도희야.”
“대표님은 뭐만 하면 어렵다고 하시더라?”
차도희가 쌍심지를 켜자 임성학이 손사래를 친다.
“아니 이게 꼭 안 된다는 건 아니고······.”
임성학은 이전에도 정윤호를 영입하려다 실패했다는 것을 털어놓아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그 순간.
임성학의 머릿속에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
잘만하면 주영인의 재계약 조건인 정윤호 영입 문제가 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 도희가 하고 싶다면 해야지. 그런데 말이다. 저 친구 영입은 그냥은 좀 힘들어. 봤다시피 자존심이 아주 강하거든.”
“그래서요?”
“그러니까 우리 도희 아버지가 도움을 조금 주시면 가능할 것도 같구나.”
차도희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하긴 아빠한테 부탁하면 안 되는 일이 없긴 해요. 알았어요. 제가 부탁해 볼게요.”
차도희가 콧노래를 부르는 순간 임성학과 이찬동이 눈빛을 교환했다.
“그나저나 우리 도희. 이제 연습 가야지. 세리한테는 절대로 안 질 거라면서?”
“아~ 그치 참. 그럼 저 연습하러 갈게요~”
세리만 언급되면 투쟁심을 보이는 차도희였다.
* * *
체리블라썸의 숙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세리가 눈을 끔뻑이며 조르르 달려와 날 올려다본다.
조금 울었는지 눈가에 눈물 자국이 보인다.
“유노 오빠! 어떻게 됐어요?”
난 세리의 눈가를 닦아주며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되긴 다 해결하고 왔지~”
“하아~ 다행이다.”
체리블라썸 멤버들이 서로를 도닥이며 한숨을 내쉰다.
난 아이들을 위해 사 온 치즈떡볶이와 튀김을 테이블에 놓았다.
“얘들아. 이거 먹으면서 스트레스 좀 풀어.”
“네~”
아침부터 난리가 터져 아무것도 안 먹은 아이들에게 떡볶이와 튀김을 먹으라고 했다.
체리블라썸이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와 검은 봉지를 뜯기 시작했다.
그사이 나는 이주영 대리를 주방으로 데려가서 에이스 엔터에서 있었던 일을 전했다.
이주영 대리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고작 16살짜리 애가 그런 짓을 했다고요?”
“엄마가 도와주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센스가 타고난 애예요. 세리가 괜히 싫어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이주영 대리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거실을 바라본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오늘 밤 세리한테서 차도희에 관한 정보를 좀 끌어내 보세요.”
차도희에 관해선 많이 알수록 대비를 할 수 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이주영 대리에게 몇 가지를 더지시한 뒤 거실로 나갔다.
“다들 먹으면서 들어.”
체리블라썸 멤버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숟가락을 멈췄다.
“컴백 무대 때는 우리 팀 매니저들이 총출동해서 케어할 테니 그렇게들 알아 둬. 기자들이 또 이 사건을 묻는다면 무조건 매니저들에게 넘기고. 세리는 하루에 관해서는 소꿉친구라고 꼭 알리고.”
네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세리는 컴백 날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올라오시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세리가 눈을 끔뻑인다.
“할아버지가요?”
“응. 너 컴백 하는 거 보러 오신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올라오시면 차도희가 도발해 오더라도 세리의 멘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세리는 사랑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앞에선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했으니까.
“하여간 이번 곡도 잘 빠졌으니까 1위를 노려보자. 걸프렌즈7 따위한테 질 수는 없잖아. 안 그래?”
세리가 가장 힘차게 대답했고 나머지 체리블라썸이 따라 외쳤다.
“네!”
“알겠어요!”
그런데 파이팅을 외치고 나자마자 세리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세리야. 갑자기 왜 그래?”
“내일 하루 결승전에 응원가기로 했는데 스케줄이 취소된 게 마음에 걸려서요. 하루는 가족도 없는데······.”
“취소? 누가 그래?”
이주영 대리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방상영 이사님이요.”
이어서 우연희가 말했다.
“네. 활동이 코 앞이니까 당분간 몸을 사리자고 하시던데요?”
방상영 이사는 자신이 일하는 방식으로 체리블라썸에게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내 방식은 달랐다.
이럴 때일수록 더 떳떳하게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내는 게 내 스타일이었다.
“걱정하지 마 세리야. 대표님한테 바로 보고하고 내일 스케줄은 그대로 진행할게.”
세리의 얼굴이 환해진다.
“진짜요?”
“그럼~ 우리 세리가 하고 싶다는데 감히 누가 말려?”
세리가 내게 덥석 안겨 온다.
“역시 유노 오빠가 짱이야!”
순간 오늘 한 고생이 다 날아가는 듯했다.
* * *
폭풍 같은 하루가 지나가고 눈을 뜨자마자 연예 기사면을 살폈다.
연예면의 분위기는 하루 만에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굴렁쇠 엔터. 악의적인 찌라시 스캔들 기사를 쓴 연예가 빅뉴스 측에 7억 대 소송.]
[에이스 엔터. 다시 한번 정정 보도.]
[걸프렌즈7 차도희. SNS으로 눈물 흘리며 해명. “세리와 하루는 소꿉친구예요. 어릴 적 친구였던 두 사람에게 진짜 미안해요.”]
[굴렁쇠 엔터. 악플러에 대한 소송 준비.]
연예가 빅뉴스가 사과 기사를 연신 띄웠지만 강감찬 대표는 사과를 받지 않고 곧바로 소송을 걸어버렸다.
강감찬 대표는 에이스 엔터에도 소송을 걸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결국 에이스 엔터와 차도희가 재차 공개 사과를 해야만 했다.
강감찬 대표의 과감한 소송 덕에 악플도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일부 남은 악플러들은 횡성여고 4인방에 의해 빠르게 정리가 되어 버렸다.
뉴스를 읽으며 안도하는 순간 거실에서 하루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식사하세요!”
“어~”
거실로 나가자 식탁에는 새하얀 쌀밥과 된장찌개 그리고 계란말이에 절임류 음식 4 가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오늘 경연인데 왜 아침부터 무리하고 그래? 형이 차려 주려고 했는데.”
“아. 연습해 본다고요.”
“연습?”
“예. 이게 오늘 방송에서 낼 조반이에요.”
오늘 하루가 만들어야 하는 요리는 ‘소중한 사람에게 대접하고 싶은 하루 세끼 밥상’.
그중 첫 번째 끼니인 조반이라고 한다.
“이런 귀한 걸 내가 먹어도 되려는지 모르겠다.”
“에이~ 형이니까 먹어도 되죠. 그나저나 어서 드셔보시고 평가 좀 해주세요.”
하루의 소중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엄마일 터.
난 미안한 마음으로 수저를 들었다.
새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을 한 입 뜨자 찰기 가득한 쌀알이 입 안에서 톡톡 터지듯 씹힌다.
다음으로는 된장찌개.
구수하고 짭짤한 된장의 맛과 부드러운 두부 녹진하게 잘 익은 애호박이 흰쌀밥과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마지막으로 계란말이는 입에 넣는 순간 단맛과 짠맛 감칠맛이 기가 막히게 어울리더니 사르륵 녹아내렸다.
정신을 놓고 허겁지겁 손을 놀렸다.
“최곤데?”
하루가 해맑은 웃음을 짓는다.
“진짜요?”
그런데 그때였다.
이수찬에게서 오랫동안 기다렸던 까톡 하나가 도착하고 있었다.
[이수찬 : 형님. 하루 엄마의 단서를 찾았습니다.]